석조(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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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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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石肇
생몰연도 미상
후조의 황족. 고조 명황제 석륵의 동생.
2. 생애[편집]
어느정도 독자적인 세력을 갖추게 된 형 석륵은 동생 석조로 하여금 군대를 통솔할 기회를 주었으나, 석조가 군대를 능히 다스리지 못하여 병사들이 그를 석륵에게로 돌려보냈다. 사실상 병사들에게 거부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된 동생을 불쌍히 여긴 석륵은 그를 건위장군으로 임명했지만, 석조가 워낙 재주와 능력이 부족했기에 우수한 참좌를 선발해 그를 보좌토록 하였다.
광천(廣川) 출신의 유전(劉典)이 합류했을 때, 석륵은 동생을 생각해서 유전의 조카딸을 석조에게 시집보냈는데, 석조는 그녀마저도 무척 두려워했다고 한다. 장락(長樂)태수로 부임하여 관사로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을 때조차 무언가를 하기 전에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경칭까지 써가며 그녀의 의견부터 물어보았다. 석조의 이런 행동은 당시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어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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