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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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구성
4. 후대 판본


1. 개요[편집]


說文解字

중국 후한 때의 유학자·문자학자 허신(許愼)이 지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부수자전.


2. 상세[편집]


서기 100년부터 집필하여 121년에 완성했다. 소전체를 기반으로 하여[1] 글자의 유래를 해석한 책으로, 정문(正文, 기본자) 9353 자 + 중문(重文, 이체자) 1163자[2]를 수록했다.

편찬 당시에는 14편이었다. 상·하편으로 나눠진 후에 각 부수의 목차인 부목을 추가해 15편 상(上)편, 시간이 흘러 아들인 허충이 안제에게 올린 상주서 15편을 하(下)로 하여 총 30편 구성이 되었다.

설문해자의 집필 의도는 각 한자의 본래 뜻과 음, 표준 형태를 규정하여 설명하고, 글자의 구조를 해석하는 것이다. 작가 허신이 살았던 후한 시대에는 예서라는 한자 서체를 사용하였는데, 당시엔 예서의 표준 글자체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문자를 써서 비공식적인 이체자가 늘어났고, 한자가 처음 등장한 상나라 시기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기 때문에 한자의 정확한 뜻과 음이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잊혔다. 상고시대 창힐이 만든 글자가 어떠한 변화도 거치지 않고 전해진 것이 예서라는 믿음이 있었을 정도였다. 결국 이러한 세태 때문에 학자들이 각 글자를 잘못 해석하고, 그릇된 해석을 경전 해석에 그대로 적용하여 학문이 변질되는 일이 생기자, 허신은 이를 바로잡고자 설문해자를 지었다.

물론 당시에도 5천여 자가 실린 양웅(楊雄)의 『훈찬편(訓纂篇)』과 같은 한자 교육용 서적이 있었다. 하지만 설문해자는, 중국 최초의 문자학 관계 서적인 것은 아니지만, 수록된 글자를 해설하고 정리한 체계가 이전에 나온 어느 문자학 서적보다 훌륭했다. 그리하여 후세의 많은 학자들이 고대의 한자를 연구함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책으로 여겼다.


3. 구성[편집]


설문해자는 최초로 한자를 부수별로 분류한 한자 연구 서적으로, 부수를 이용한 한자 분류는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자전에서 사용되는 방식처럼 부수의 획수 + 나머지 획수 순으로 분류된 서적은 아니다.

설문해자에서는 부터 시작하여 에 이르기까지 총 540여 개 부수를 구분하였다. 이렇게 부수가 많은 이유는 허신이 처음 부수로 한자들을 분류하려 했을 때, 여러 글자들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글자가 있으면 곧 그것을 부수로 여겼기 때문이다. 부수를 거듭해 만들어진 글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하여 또 다른 글자를 만들면, 그 부수를 거듭한 글자도 하나의 부수로 인정하였다. 예로 玉(구슬 옥)이 두 번 거듭한 玨(쌍옥 각)은 班(나눌 반) 등, 虫(벌레 훼)가 세 번 거듭한 蟲(벌레 충)은 蠱(독벌레 고) 등에 사용되므로 하나의 부수로 인정하였다. 百(일백 백)이 두 번 거듭한 皕(이백 벽)은 파생된 글자가 奭(클 석)뿐이지만 그럼에도 부수다. 그리고, 원래 같은 글자였으나 형태가 바뀌어 분리된 부수들( 등)은 독립된 각각의 부수로 인정하였다. 설문해자에 나오는 부수의 목록은 여기(한국어)나 여기(영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각 부수를 사용하는 글자들끼리 배열할 때엔 부수를 맨 앞에 배열하고, 부수 자체와 자형이 비슷하거나 뜻이 비슷한 글자일수록 앞에 배열하였다. 예를 들어 木부에서는 木 자가 가장 먼저 오고, 그 다음 과수(果樹), 그 다음 일반 나무, 나무의 부분을 실었다. 이렇게 필획 수를 무시하고 배열하였기 때문에 현대의 기준으로 보기엔 검색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부수와 표제자의 자형은 소전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현재 해서체를 기반으로 한 글자들과는 부수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어 이 글자가 왜 이 부수인지 순간적으로 의아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착할 선)은 현재는 (입 구)를 부수로 한다고 분류하지만, 설문해자에서는 譱( 밑에 이 두 개 있는 자형)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誩(말다툼할 경, 두 개의 言)을 부수로 삼았다.


4. 후대 판본[편집]


설문해자는 자전의 시초로, 후한대 한자 연구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설문해자가 본격적으로 대접을 받고 연구된 때는 고증학이 발달한 청나라 때였다.

사실 청대 이전에도 설문해자 연구의 움직임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당나라 말기의 학자 이양빙(李陽氷)이 독자적으로 설문해자를 연구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이양빙은 책 내용 중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면 함부로 고쳤기 때문에 후대 학자들이 비판했다. 이후 이양빙이 고친 내용 중에 일부 타당한 것들이 있었음이 밝혀졌지만... 이양빙이 직접 쓴 판본은 현존하지 않고, 후대 학자들이 베껴 쓴 것만이 남아 전한다.

청대의 설문해자 연구는 매우 활발하여 각 연구 서적을 따로따로 분류해야 할 정도였는데, 보통 고증작업만 한 것, 개정을 한 것, 주석을 가하고 연구한 것, 이 3종의 연구 서적들을 비교하거나 보충, 정정한 것으로 나뉘었다. 그 중 전면적인 주석을 가하고 연구한 것이, 특히 단옥재(段玉裁)의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 계복(桂馥)의 설문해자의증(說文解字義證)가 가장 널리 퍼졌는데, 이 책들의 저자들은 설문석례(說文釋例), 설문구독(說文句讀)의 저자 왕균(王筠), 설문통훈정성(說文通訓定聲)의 저자 주준성(朱駿聲)과 함께 청대 설문 4대가(說文四大家)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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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의 유래를 해석할 때엔 가장 오래된 서체인 갑골 문자를 기반으로 해야 합리적이다. 그러나 상나라(기원전 11세기 멸망) 이후 서서히 사라진 갑골문이 다시 후세에 알려진 것은 대략 3천 년 뒤인 청나라 말기(19세기 말)였고, 그때까지 허신을 포함하여 아무도 갑골문에 대해서 몰랐다.[2] 허신이 직접 집필한 원본은 소실되고 후대의 학자들이 남긴 판본만이 현존하기 때문에, 허신이 원본 설문해자에 한자를 얼마나 수록했는지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