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공주(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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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7공주 구단
4. 세리에 A 7공주 시대에 대한 언사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Sette Sorelle / Seven Sisters

세리에 A의 전성기 시절[1] 7개 우승 후보 구단들을 일컫는 용어.


2. 역사[편집]


세리아의 전성기는 일찍부터는 마라도나, 카레카, 지오르다노로 이루어진 마지카 트리오가 이끌던 나폴리로부터, 대체적으로는 트라파토니 감독이 이끌고 플라티니, 로시, 보니에크가 활약했던 유벤투스로부터 시작한 1980년대 초반부터,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조가 활약했던 유벤투스, 사키 감독이 이끌던 오렌지 삼총사밀란 제너레이션 1기, 인테르게르만 삼총사, 비알리만치니가 이끌던 삼프도리아, 사키 감독의 뒤를 이어 카펠로 감독이 이끌던 AC 밀란, 지단이 활약했던 리피 감독 1기 시절의 유벤투스 등으로 이어지는 1990년대 중후반까지였다.

1997/98 시즌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레알 마드리드와 1998/99 시즌 트레블을 달성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기점으로 세리아는 황혼기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많은 수의 대중적인 스타들과 월드클래스 선수들, 축구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만한 감독들이 활약했던 시기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1998/99 시즌 ~ 2002/03 시즌)였고, 이때 리그, 코파 이탈리아와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우승 후보, 나아가서는 트로피를 가져오면서 경쟁했던 7개 팀들을 일컬어 세리에 7공주로 부르기 시작했다.

파일:7공주 ELO.png

1998-99 시즌 종료 당시의 Elo 랭킹. TOP 10팀 중에 7공주의 6팀이 줄세우기한 모습이다. 해당 시즌의 챔스 우승팀이자 트레블 팀인 알렉스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챔스 준우승 팀인 오트마어 히츠펠트바이에른 뮌헨이 아닌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의 SS 라치오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라치오는 끝내 다음 시즌인 1999-00 시즌에 스쿠데토를 차지한다. 당시의 리그 순위 테이블이다.

파일:serie a 1999-00 season table.png

우승부터 7위까지 모두 7공주의 7팀이 나란히 상위권을 독식했다. 그리고 당시 UEFA 규정으로 이 7팀까지 유럽 대항전에 진출 할 수 있었다.


3. 7공주 구단[편집]


문단 순서는 창단 순서를 따른다.


3.1. 유벤투스 FC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편집]


파일:7유베1.jpg

파일:7유베2.png

유벤투스는 피아트의 총수 아넬리 가문 휘하에 오래전부터 세리에 A의 터줏대감이자 강팀이었다.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지네딘 지단, 에드가 다비즈, 필리포 인자기, 안토니오 콘테, 잔루카 잠브로타, 다비드 트레제게, 에드빈 판데르사르 등 슈퍼스타가 우글거리는 팀이었으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1999-00 시즌에는 최종전 직전까지 1위를 달리다가 최종전에서 패배해 우승컵을 라치오에 내줬고, 2000-01 시즌에는 승점 2점 차이로 AS 로마에게 우승컵을 내줬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탈락도 겪었다.


3.2. AC 밀란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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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7밀란2.png

1986년 기업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구단주로 부임한 이후 세계 최고의 팀이 되는 등, 세리에 A의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젠나로 가투소, 세르지뉴, 올리버 비어호프, 안드리 셰브첸코 등이 포진된 AC 밀란은 자케로니 감독 부임 첫 시즌인 1998-99 시즌에 리그 우승, 1999-00 시즌에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조별 리그 탈락까지 하는 등 부진했다.


3.3. SS 라치오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편집]


파일:7라치오1.jpg

파일:7라치오2.png

1992년 '치리오' 라는 거대 식품회사의 소유주였던 고향 출신 세르지오 크라뇨티가 구단주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우승 경쟁에 참가한다.

알레산드로 네스타,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디에고 시메오네, 파벨 네드베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에르난 크레스포, 시모네 인자기, 클라우디오 로페스 등이 포진되었다. 1999-00 시즌에 리그,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하여 더블을 기록했고, 1999년에 UEFA 슈퍼컵UEFA 컵 위너스컵에서도 우승했다.


3.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마르첼로 리피 감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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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과거 60년대 그란데 인테르를 이끈 구단주 안젤로 모라티의 차남 마시모 모라티가 구단주로 부임하면서 다시 한번 맹주로서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호나우두, 크리스티안 비에리, 로랑 블랑, 하비에르 사네티,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클라렌스 세이도르프, 로베르토 바조 등이 있었으나 7공주 시대에는 1997-98 시즌 UEFA컵 우승 정도 외에는 큰 성과가 없었다.


3.5. 파르마 칼초 1913 (알베르토 말레사니 감독)[편집]


파일:7파르마1.jpg

파일:7파르마2.png

1990년 현지 파르마의 식품 회사 '파르마라트'의 칼리스토 탄치가 구단주가 되어 재정지원을 하였고, 당해 세리에 A 승격을 시작으로 하는 스칼라 시대를 열면서 전성기가 지속되고 있었다.

잔루이지 부폰, 파비오 칸나바로, 릴리앙 튀랑, 세르지우 콘세이상, 사보 밀로셰비치 등 수비진이 막강했다. 1998-99 시즌에 UEFA컵 우승을 차지했다.


3.6. ACF 피오렌티나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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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7피렌체2.png

1990년 이탈리아 영화계의 거물 피렌체 출신의 마리오 체키 고리가 구단주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인 투자를 했던 시기였다.

후이 코스타, 누누 고메스, 엔리코 키에사의 공격진이 강력했다. 2000-01 시즌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3.7. AS 로마 (파비오 카펠로 감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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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7로마2.png

1993년 AS 로마는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던 차, 정유 회사를 운영하는 로마 출신의 프랑코 센시가 구단을 인수하면서 스쿠데토를 차지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뱅상 캉델라, 조나단 제비나, 왈테르 사무엘, 안토니우 카를루스 사구, 카푸의 철벽 수비진과 빈첸조 몬텔라,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프란체스코 토티의 공격진을 자랑했다. 2000-01 시즌에 리그와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차지했다.


4. 세리에 A 7공주 시대에 대한 언사[편집]



다시는 저 리그에서 경쟁하고 싶지 않다. 내겐 이젠 그만큼의 무모함이 없기 때문이다.

- 카를로 안첼로티


지독한 곳 (posto tagliagole).

- 파올로 말디니


세리에 A는 내 생에 최고의 리그였지만, 공격수로서는 최악의 시련을 주었다.

- 호나우두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내 승부차기가 이탈리아의 우승과 함께 하늘로 날아가 버렸을 때, 아주리 동료였던 코르타(corta)는 나에게 다가와서 이런 위로를 했었다. "괜찮아. 넌 여전히 세계 최고의 선수야. 세리에 A에서 우승했으니까."

- 로베르토 바조



5. 관련 문서[편집]



[1] 짧게는 세리에 A 팀들이 연속으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갔던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길게는 1972-73 시즌 이후 10시즌 만에 유벤투스가 챔스 결승에 올라간 1982년부터 인테르가 트레블을 하고 이탈리아 축구의 저주받은 세대가 시작된 남아공 월드컵이 치러진 2010년까지 2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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