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피스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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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 로튼
글렌 매틀록
스티브 존스
폴 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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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멤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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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scograph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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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피스톨즈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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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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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섹스 피스톨즈
SEX PISTOLS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존 라이든[1], 스티브 존스, 글렌 매틀록, 폴 쿡, 시드 비셔스
입성 연도
2006년
후보자격 연도
2002년
후보선정 연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섹스 피스톨즈
Sex Pistols

파일:sex pistols 1977 members.jpg
▲1977년의 사진. 왼쪽부터 스티브, 시드, 존, 폴
국적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결성
1975년
잉글랜드 런던
데뷔
1976년 11월 26일
싱글 <Anarchy in the UK>
해체
1978년, 2003년, 2008년
재결성
1996년, 2002년, 2007년
멤버
쟈니 로튼 (보컬, 리더)
글렌 매틀록 (베이스 기타)
시드 비셔스(베이스 기타)
스티브 존스 (기타)
폴 쿡 (드럼)
장르
펑크 록
링크
파일:sexpistolslogo.pn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상세
3. 약력
3.1. 결성
3.2. 빌 그런디 쇼에서의 스캔들
3.3. 전성기 - 시드 비셔스의 합류
3.4. 해체
3.5. 재결합
4. 평가
5. 멤버
6. 그 외의 인물들
7. 관련 영화
8. 에피소드
9. 여담



1. 개요[편집]


롤링 스톤스, 더 후,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이런 밴드들은 우리들을 대변하지 않는다. 백만장자 록밴드들은 이제 자기 사랑 얘기나 세금 불평만 하고 있을 뿐이다. 실업자들에게 러브 송 따위는 필요 없는데 말이다. 우리들은 백만장자 록스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음반 시장에 저항할 것이다.

쟈니 로튼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펑크 록 밴드이다.


2. 상세[편집]


음악적으로는 패티 스미스더 클래시 같이 섹피와 비슷한 음악적 평가를 받는 펑크 록 아티스트들은 있지만, 섹피 이상으로 영향이 컸던 펑크 록 아티스트들은 없었다. 섹스 피스톨즈는 공격적인 3코드 연주와 난폭한 행보로 펑크 정신 그 자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펑크 록의 대중화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펑크 록이 역사적으로 미친 영향을 보자면 좀 과장 보태서, 현재 록 음악을 하는 밴드중 섹스 피스톨즈의 영향을 받지 않는 밴드는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다. 그정도로 유명하고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밴드.

유명한 곡으로는 메가데스도 커버한 적이 있는 <Anarchy in the UK>, 영국 국가를 패러디한 <God Save the Queen> 등이 있다.

음악 외적인 거친 행보로도 늘 화제를 몰고 다녔는데, 인터뷰 등에서 언제나 남에 대한 비난과 독설을 서슴지 않고 심지어 생방송에서까지 욕설을 해서 파장을 일으키고 관객들과 패싸움에 휘말리는 등 언제나 아슬아슬한 사고뭉치 악동의 이미지로 유명했다.[1] 하지만 이런 막장짓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꽤나 중요해서, 이들이 낸 정규 앨범 하나가 그 후의 락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놨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등장하기 전 까지는 펑크 록은 그저 "별로 연주능력이 신통치 못한 뮤지션들의 개러지 음악"이라는 인식만 있었고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컬트적인 장르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의 음반이 인기차트 정상에 오르고 온갖 화제를 몰고 다니면서 펑크록은 일반대중들에게도 정형화된 하나의 음악장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수록 장황한 허세와 기교 중심으로 흐르던 당시 70년대 록 음악계에 록의 단순하고 원초적인 근원을 다시 생각해 볼 자극을 준 충격파로서의 역할도 했다.

이들이 있었기에 펑크록이 더욱 널리 퍼질 수 있었고[2], 이들을 비롯한 펑크록은 심지어 이후의 헤비메탈에게도 영향을 줘서 NWOBHM스래쉬 메탈로 진화할 수 있었다. 훗날 주류 록 음악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그런지로 대표되는 얼터너티브 록이란 카테고리에도 펑크록은 롤모델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들을 보면 록의 큰 흐름에서 이들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는 없다. 커트 코베인이 가장 좋아했던 밴드이기도 하다.


3. 약력[편집]



3.1. 결성[편집]


섹스 피스톨즈의 이야기는 1972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17살과 16살이었던 스티브 존스와 폴 쿡은 록시 뮤직데이비드 보위와 같은 글램 록 스타일의 밴드를 꾸리기로 한다. 존스는 보컬을 맡고, 쿡은 드럼을 맡고 기타에 월리 나이팅게일을 영입해 스트랜드 앤 스왱커스(The Strand and the Swankers)라는 밴드를 만들어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말콤 맥라렌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창업한 로큰롤 패션을 다루는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라는 옷 가게를 다니게 되면서 그곳의 주인인 말콤 맥라렌을 알아가게 된다.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말콤은 보컬에는 스티브 존스, 드럼에 폴 쿡, 기타에 월리 나이팅게일 이렇게 3인조 밴드에게 매니저도 맡아주기로 했지만 아직 공식적인 매니저는 아니었다. 그 뒤로 미국에서 뉴욕 돌스 매니저로 잠시 있다가 귀국한 말콤은 가게의 이름을 "SEX"라고 바꿨다. 그리고 바로 밴드 매니저로 공식 영입되자마자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던 미대생 글렌 매틀록을 베이스로 영입했다. 그런데 나이팅게일과 다른 멤버들 사이에 불화가 생겨 존스가 기타를 맡게 되었다.[3] 보컬을 맡을 사람이 없어지자 말콤은 뉴욕 돌스의 실베인 실베인에게 보컬을 맡아달라 부탁했지만 거절하게 된다. 그래서 가게에는 밴드의 새 보컬 영입을 위한 오디션을 한다는 공고가 붙여졌다.

마침 또 다른 단골이었던 존 라이든이 그 공고를 보고 오디션에 참가하여 앨리스 쿠퍼I'm Eighteen을 틀고는 제멋대로 가사를 빼고 부르며 막춤을 추는 등 맬컴은 그 똘끼에 감탄하며 그를 보컬로 영입하기로 했으나 다른 멤버들은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결국은 보컬로 영입이 됐다.[4][5] 이렇게 다른 멤버들은 싫어했지만 결국에는 보컬이 됐는데 이렇듯 존의 막 질러대는 듯한 보컬과 스티브의 3도코드 위주의 연주로 당시에는 굉장히 생소한 음악이 등장하자 관중들은 충격을 받았다. 또한 보컬인 존은 관중들에게 욕설을 하며 시비를 거는 등 자주 싸움에 휘말렸고 공연장에서는 자주 폭력사태가 일어났다. 이렇게 무질서한 악명높은 공연으로 섹스 피스톨즈는 유명해졌고 런던의 온갖 불량배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1976년 8월에는 토니 윌슨[6]이 진행하는 음악 프로그램인 'So It Goes'에 출연해 처음으로 TV 출연을 했다.


3.2. 빌 그런디 쇼에서의 스캔들[편집]


1976년 12월 1일 '빌 그런디 쇼'라는 런던지역에 송출되는 테임즈TV라는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했는데, 여기서 영국 텔레비전 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fuck'이라는 단어를 써서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켰다. 그런디 쇼가 하필 황금시간대에 방송되는 방송이었던 터라, 프로그램은 몇 주간 방송 금지를 먹고 섹스 피스톨즈도 출연 금지 조치를 받았다.

다만 이 에피소드에도 다소 간의 비화가 있는데, 원래는 프레디 머큐리가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되는 바람에 '너희들이 대타로 방송 뛰어라.'는 식으로 내던져지듯 섭외되어 멤버들 모두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화가 난 스티브는 을 진탕 마시고 녹화에 들어갔는데, MC인 그런디가 은근히 섹스 피스톨즈를 까는 낌새를 보인 것도 모자라 자신들 뒤에 서있던 미성년자인 수지 수에게 추파를 던지자 욕설을 선사해 버렸다.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스티브의 욕설은 검열삭제도 없이 그대로 전파를 타고 영국 전역에 방송되었으며, 방송이 끝나자마자 방송사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치게 날아왔다.

당시 황색언론지였던 데일리 미러에서는 이 사건을 1면에 실으면서 "욕설과 분노! 이 양아치들은 누구인가?"(The Filth and the Fury! - Who are these punks?)라는 기사 제목을 붙였는데, 하술할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도 여기서 유래했다.

논쟁이 시작됐던 인터뷰는 12월 1일 수요일, Thames TV[7] 시사 프로그램 Today에서 진행되었다. 실제 인터뷰는 빌 그런디의 소개와 44초 정도의 영상이 방영된 것을 제외하고 1분 40초 가량이었다.
녹화는 그런디의 소개 몇 초 후에 시작되었고, 스튜디오에서는 그와 밴드 멤버 네명이 마주 보고 있었다. 피스톨즈(The Pistols, 섹스 피스톨즈를 말함) 뒤에는 친구들 한 무리가 서 있었다. 아래 내용은 당시 있었던 대화 내용이다.
Grundy(빌 그런디) : …목에 체인을 감구요. 겨우 그게 다죠, 네, 안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그냥 불량배들(fellas)일 뿐이죠? 펑크 로커라고 합니다. 새 유행이라고 하더군요. 그들의 모델은 바르고 깔끔한 롤링 스톤즈는 아니구요.[8] ㅡ 보면 아시겠지만, 저만큼 취해 있군요. ㅡ 그들에 비하면 깔끔하죠. 섹스 피스톨즈라는 그룹입니다.

BG : 제가 듣기론 음반사로부터 4만 파운드를 받으셨다고 들었는데, 그건 좀…
음… 반-물질주의적 인생관에 조금 어긋나지 않나요?
글렌 : 아뇨. 많을 수록 좋죠.
BG : 정말입니까?
글렌 : 그럼요.
BG : 음, 그럼 더 얘기해 주시죠.
스티브 : 존나 써댔죠. 그지?
BG : 모르겠군요. 그렇습니까?
글렌 : 네. 다 썼어요.
BG : 정말입니까?
글렌 : 다 마셔버렸죠.
BG : 정말입니까? 하느님 맙소사! 자, 한가지 물어보겠습니다…
글렌 : 뭐죠?
BG : …정말 진지하게 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절 웃기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글렌 : 아뇨. 다 썼다니까요. 없어요.
BG : 정말요?
글렌 : 네.
BG : 아뇨, 제 말은 여러분들이 하고 계시는 음악 말입니다.
글렌 : 아 그거요.
BG : 진지하게 (음악을) 하시는 겁니까?
글렌 : 음...
BG :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 브람스 모두…
쟈니 로튼 : 그 분들은 저희들의 영웅이시죠, 그치?
BG : 정말요? 뭐… 뭐라구요?
쟈니 : "대단하신" 분들이라구요.
BG : 그렇습니까?
쟈니 : 그럼요- 우리를 아주 흥분하게 만드는 분들이죠.[9]
스티브 : 근데 그 사람들은 죽었죠!
BG : 글쎄요,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생각하세요?
쟈니 : (작게) 그거야 그 사람들 개소리(shit)고.
BG : 그게 뭐라구요?
쟈니 : 아뇨. 나쁜 말입니다. 다음 질문요.
BG : 아니 아니, 나쁜 말 뭐라구요?
쟈니 : 개소리(shit)요.
BG : 정말입니까? 이런 세상에, 절 난처하게 하시는군요.
쟈니 : 아, 그래요, 지그프리드…
BG : (섹스 피스톨즈 뒤쪽에 서 있던 수지[10]와 친구들을 보며) 뒤에 계신 여성분들은 어떻습니까?
글렌 : 저 사람 니 아버지 같다, 아님 할아버지나.
BG : …걱정되시나요, 아니면 즐기고 계시나요?
수지 : 즐기고 있어요.
BG : 그러십니까?
수지 : 네.
BG : 네, 그럴 줄 알았죠.
수지 : 늘 만나뵙고 싶었어요.
BG : 그렇습니까?
수지 : 네.[11]
BG : 끝나고 보도록 하죠, 그럴까요?
(웃음)
스티브 : 이 더러운 새끼, 이 더러운 영감탱이야. (You dirty sod, you dirty old man.)
BG : 아, 계속 해요 감독님, 계속 해요. (잠시 멈춤) 계속 하시죠. 5초 남았으니 막말 계속 해 보시죠.(Well keep going chief, keep going. Go on. You've got another five seconds. Say something outrageous.)
스티브 : 이 더러운 개새끼야(You dirty bastard).
BG : 계속 해보시죠.(Go on, again.)
스티브 : 이 더러운 씨발놈아(You dirty fucker).
BG : 참 재치있는 자식일세.(What a clever boy)
스티브 : 완전 지독한 깡패새끼네(What a fucking rotter).

풀 영상

후에 스티브는 빌 그런디가 술마시고 당시 미성년자였던 수지에게 찝쩍거리는 모습이 보기 역겨워서 그런 욕을 했다고 했다.

참고로 빌 그런디는 스티브보다 32살이나 많았다[12]. 방송 사건 이후 섹스 피스톨즈는 범죄 집단과 마찬가지로 취급되었고, 잡혀 있던 공연 일정도 대부분 취소되고 말았다.[13] 사실 방송 직후에 섹스 피스톨즈의 전국 투어인 "Anarchy in the UK tour"가 잡혀있었는데, 좋든 싫든 이 투어에 영향이 갈 수 밖에 없었다. 한편 말콤 맥라렌은 이 사태는 자신이 유도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것이었다나.

이후에도 섹스 피스톨즈는 계속해서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1978년의 B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존 라이든은 유명 방송인 지미 새빌[14]롤링 스톤즈믹 재거를 죽이고 싶다며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녹화 방송이었기에 당시에 그 부분은 삭제되고 방송되었지만, 2013년에 발매된 PiL 박스세트에 포함된 미공개 인터뷰 모음을 통해 공개되었다.


3.3. 전성기 - 시드 비셔스의 합류[편집]


섹스 피스톨즈가 EMI에 낸 싱글은 날개돋힌 듯 팔렸고, 1977년 1월에 계약이 취소될 때까지 밴드의 자금줄이 되었다. 치솟는 인기와 반비례하게 멤버들 간의 반목은 여전했는데, 특히 글렌 매틀록과 쟈니 로튼 간에 갈등이 심해져서 결국 글렌 메틀록이 2월에 밴드에서 탈퇴하게 된다.[15] 근데 아이러니컬 한 점은, <Anarchy in the U.K.>, <God Save the Queen>같이 섹스 피스톨즈의 음악성을 대변하는 대표곡들은 모두 글렌 매틀록이 만든 곡들이란 점이다. 즉 밴드에서 음악적으론 가장 뛰어났지만 말콤 맥라렌과 쟈니 로튼이 추구하던 반골적인 애티튜드 면에서 밴드와 잘 안 맞았던 것이다.

록 역사가들은 글렌 매틀록 방출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보다 글렌 매틀록과 쟈니 로튼 사이에 밴드의 주도권을 놓고 벌인 파워게임에서 쟈니 로튼이 승리했기 때문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글렌의 음악적 재능만 빨대로 쏙 빼먹은 후에 차버린 셈이 됐다. 글렌의 후임은 초기의 수지 앤 더 밴시스와 'Flowers of Romance'라는 단명한 밴드에서 드럼을 치던 쟈니의 친구 시드 비셔스로 결정되었다.[16] 아무튼, 원래 섹스 피스톨즈의 곡들을 대부분 작곡했고 음악적인 기둥이었던 글렌 매틀록의 탈퇴로 밴드는 중요한 작곡가를 잃게 된다.

3월에는 A&M과 두 번째로 전속 계약을 체결했는데, 같은 레이블의 뮤지션들이 '저런 또라이들 받아들이려면 우리를 잘라라.'고 징징거리는 바람에 6일 만에 쫓겨났다.[17] 하지만 그 사이 'God Save the Queen'이 담긴 밴드의 두 번째 싱글이 발매되어 며칠 사이에 25000장이 팔려나갔다. 5월에 신생 음반사였던 버진 레코드와 세 번째 계약을 맺었는데, 이 계약이 밴드가 맺은 음반 계약 중 마지막이자 가장 긴 계약이 되었다. 여기서 'God Save the Queen'의 두 번째 싱글과 'Pretty Vacant'의 싱글이 발매되었고, 각각 음반판매 순위 2위와 6위를 차지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공연이나 이벤트 참가에는 여전히 심한 제약이 뒤따랐는데, 7월 중순에 템스 강에서 열린 야외 파티에서 'Anarchy' 등을 연주하다가 경찰에 진압당하기도 했고[18] 극우 왕당파 폭력배들이 멤버들을 습격해 상해를 입히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폴 쿡은 지하철 역에서 테디 보이 갱들에게 다구리를 당한적이 있고,[19] 쟈니 로튼은 건물 주차장에서 극우파에게 두들겨 맞아서 아예 왼손에 칼빵을 맞는 바람에 아직도 왼손을 쓰는데 약간 불편하다고 한다. 결국 섹피 이름으로 예정되었던 공연들이 거의 모두 취소되자 'The SPOTS(Sex Pistols on Tour Secretly)'비밀리에 행사뛰는 섹피(...)라는 이름으로 즉석에서 지은 가명을 써서 몰래 출연하는 꼼수를 쓰기도 했다. 10월에는 밴드의 네 번째 싱글인 'Holidays in the Sun'과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 앨범인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이 나왔고, 각각 싱글 순위 8위와 앨범 순위 1위의 판매량을 기록했다.[20]


3.4. 해체[편집]


인기가 많아진 섹스 피스톨스는 여러 공연을 연속적으로 벌였는데, 이 당시 매니저였던 맬컴은 멤버들을 혹사시키는 강행군을 감행한다. 점점 멤버들과의 사이는 멀어지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1978년 1월 애틀랜타에서 첫 미국 투어를 개최했는데, 이 때 밴드는 그냥 막장이었고, 특히 시드가 마약 때문에 벌이던 병크와 영국 황색언론 기자들의 폭동 조장 등으로 인해 제대로 된 공연을 하기도 벅찼다고 한다. 샌 안토니오에서는 쟈니 로튼에게 햄버거가 날아들었고, 스티브 존스는 날아오는 맥주캔을 피해 기타를 쳐야만 했다. 결국 빡친 시드 비셔스가 관중 한명을 베이스로 팼다.# 댈러스에서는 시드 비셔스가 관객에게 맞아서 코피를 흘리면서 공연을 해야 했고, 관객들은 쟈니 로튼의 티셔츠를 찢었다. 섹스 피스톨즈가 미국의 펑크 밴드들과 공연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공연 한번뿐이었다.

투어 스케줄이 저렇게 잡힌 이유는 당시 섹스 피스톨즈의 전과기록을 문제로 미국 비자가 안 나와서였다고 한다. 미국 입국도 주영 미국 대사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비자를 얻어서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애틀랜타 전에 시카고를 비롯한 몇개의 공연이 더 잡혀있었는데, 취소됐다.

결국 1월 14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공연 직후 빡친 쟈니가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아?(Ever get the feeling you've been cheated?)라는 말을 남기고 뉴욕으로 가버리면서 사실상 해체되고 말았다. 이후 말콤은 새 보컬로 열차 강도짓을 벌이고 브라질에 숨어 지내던 로니 빅스를 영입하는 만행을 벌였고, 소속사였던 버진 레코드도 섹피의 싱글을 포함한 모든 후속 앨범 발매를 거부했다.

조니와 시드는 각각 PiL(Public image Limited)과 솔로 활동을 따로 벌이기 시작했지만, 시드의 경우 여친이었던 낸시의 사망과 살해 혐의 등이 겹쳐 체포되는 등의 악재[21]가 겹친 끝에 1979년 마약 과용으로 죽고 말았다.[22] 이후 조니와 스티브, 폴은 밴드를 막장으로 이끈 주범으로 매니저 말콤을 지목했고, 수 년간에 걸친 지루한 소송과 맞고소 끝에 1986년 승소해 그 동안 밀린 계약금과 앨범 로열티 등을 고르게 배분받을 수 있게 되었다.


3.5. 재결합[편집]


이렇게 꽤 찌질하고 혼란스럽게 밴드의 역사가 막을 내리는가…싶었지만, 쟈니가 1994년에 PiL을 해체한 뒤 1996년 섹피 결성 20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재결성을 선언하면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다음은 1996년 3월 16일 런던 100클럽[23]에서의 인터뷰 중 일부다. 전문은 여기에

Q : (섹스 피스톨즈의 재결합이)폐기처분 되기 직전의 마차를 끄는 말에 불과하다는 말콤 맥라렌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존 라이든(이하 A로 통일) : 그 녀석이 아직도 우리 홍보를 해주니 정말 고맙군.
Q : 당신들은 서로를 여전히 증오하는가?
A : 그래, 복수심이 남아있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너희들의 돈'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어.
Q : 얼마나 벌려고?
폴 쿡 : 시끄럽게 만들지 마. 올해 끝나고 말해줄테니까.
Q : 그린 데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 초딩같이 버벅이는 놈들이지.[24]
Q : 왜 이리 (재결합에) 오래 걸렸나?
A : 음, 오랫동안 도망치려고 했어. 매니저와 다른 멤버 놈들에 의해 끔찍하게 잘못되어버린 결말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거든. 돈이 전부가 아니고, 끝이 아니야. 난 항상 누군가가 그것이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할 때 꽤나 화가 나거든. 난 그걸 건드리고 싶다.
Q : 예전에 섹스 피스톨스의 재결합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당신은 "시드를 무덤에서 파내야 되냐?"라고 되물었다. 그 때보다 더 나은 공연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나?
A : 생각해보긴 했는데, 시드의 재는 공항에 이미 뿌려졌잖아.(시드 비셔스 항목 참조) 염병할 놈의 청소기가 필요하겠군!
Q : 글렌, 책 쓰는 걸 그만 둔 뒤로 무얼 하면서 살았는가?
글렌 : 많은 걸 했지. 존, 고마워. 이번달에 크리에이션에서 앨범이 하나 나와. "Who's he think he is when he's at home"이라고.
Q : 오아시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 그냥 팝 밴드잖아. 니도 알면서.
글렌 : 그 녀석들에 대한 발언을 원하지 마. 그 녀석들은 원채 거칠어서 우릴 칠지도 몰라.[25]
Q : 더 클래시가 따라서 재결합을 할 것 같나?
A : 난 걔네 잘 몰라.
Q : 당신들은 스타디움 록 밴드(말 그대로 대형 공연을 하는 유명한 메이저 밴드를 일컫는다.)를 싫어한다고 했는데, 이제 당신들이 그러한 밴드가 되었다.
A : 아닌데? 어떤 스타디움을 말하는거야? 니가 스타디움이라 말했는데, 니가 거짓말쟁이구만? 핀스버리 파크는 스타디움이 아니고, 필드야.
Q : 콘서트가 만약 잘 되면 계속 활동할 생각인가?
A : 아마 안될거고, 지속되지 않을 거야. ...(중략)... 나는 핀스버리 파크에 비가 내려서 너희들의 휠체어가 진흙탕에 붙어버렸음 좋겠다.
Q : 시드의 어머니가 섹스 피스톨스의 수입에 어느 정도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
A : 우린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를 돌보고 있어.
Q : MTV 언플러그드에 출연할 것인가?
A : 우리가 구세군처럼 보이냐? (탑 오브 더 팝스에 출연할 생각은 없냐 묻자) 아냐, 그럴 생각 절대로 없어. 그런 쇼들은 너무 구려. 그런 X같은 질문은 좀 하지 말아.
Q : 번 돈은 어디에 쓸 것인가?
스티브 : 창녀에. 나는 그럴 거야.[26]

재결성의 이유가 대놓고 " 때문이다"[27]였기 때문에 밴드 부활 선언 직후 그 때까지 음악 활동을 하던 주변 뮤지션들은 충격을 받아 은퇴하거나[28] 밴드를 맹비난하는 등[29] 갖가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온갖 여론에도 불구하고 밴드는 잘 돌아가고 있고, 2011년까지도 꾸준히 공연을 하였다.돈은 진짜 미친듯이 쌓였을 것이다

멤버는 시드 영입 전과 마찬가지로 쟈니, 스티브, 글렌, 폴 네 명이었고, 새 노래 없이 예전 곡들만 갖고 순회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 직후 'Filthy Lucre Live'라는 라이브 앨범이 나왔다.

2006년 유니버설 뮤직 그룹에 전작 재발매권을 넘겼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2012년 9월 24일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가 리마스터 재발매되었다. 판권이 정리되면서[30] 오리지널 마스터에 접근이 가능해진데다 프로듀서인 크리스 토마스가 리마스터링을 검수해서 소리가 상당히 좋아졌다고 한다.

4. 평가[편집]


DIY 정신과 펑크 씬 내의 파급력, 영향력 때문에 과대평가 받는다는 냉소적인 평가도 일부 존재하나 애초에 섹피가 '펑크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제시한 밴드라는 것을 생각하면 잘못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음악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말투며 행동거지며 옷차림까지 거의 대부분의 펑크 밴드들 중 섹피의 영향을 안 받은 밴드들이 없다.

음악적으로는 라몬즈, 패티 스미스더 클래시를 높이 쳐주는 사람들이 많지만, 인지도라던가 펑크 정신에 있어서 이들은 섹스 피스톨즈에 비교도 안되는 수준이다. 대놓고 좌파 성향을 표방한 더 클래시와는 달리 섹스 피스톨즈는 좌우파 모두 다 까던 과격한 노선으로 엄청나게 유명해졌다. "나는 핑크 플로이드를 혐오한다"(I Hate Pink Floyd)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31] "영국을 무정부 상태로 만들어버리자"나 "여왕은 파시스트고 인간도 아니야"와 같은 노래를 부르는건 오늘날에도 충분히 충격적인 일인데, 보수적이었던 1970년대 영국 사회에 미쳤던 파급력에 대해서는 말할것도 없다. 그래서 클래시, 라몬즈, 패티 스티스를 높게 쳐주는 음악 평론가와 달리, 펑크 록의 팬들은 음악적인 요소보다도 펑크 정신 그 자체를 만든 섹스 피스톨즈를 클래시나 라몬즈보다 더 높게 쳐주는 경우가 많다.

5. 멤버[편집]


섹스 피스톨즈의 핵심 멤버들은 모두 다섯 명이다. 물론 쟈니 영입 직후 스티브 뉴와 닉 켄트가 잠깐 멤버가 된 적은 있었지만, 얼마 안되어 탈퇴해 버려서 인지도는 낮다.

섹스 피스톨즈의 보컬이자 리더.

  • 글렌 매틀록 (Glen Matlock)
섹피의 첫 번째 베이시스트. 쟈니와 동갑인 런던내기로, 세인트 마틴 예술학교를 나와 멤버들 중 가장 고학력자에 속했다. 이런 배경 외에도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성격상 거칠고 반항적인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32] 등 때문에 다른 멤버들과 궁합이 안 맞아 갈등을 빚었고 결국 1977년 초에 밴드에서 탈퇴한다. 섹스 피스톨즈 측에서는 밴드가 글렌을 잘랐다고 주장하지만, 글렌은 멤버들의 모든 쓰레기 짓거리에 진절머리가 나서("sick of all the bullshit") 스스로 그만 뒀다고 주장한다. 사실 글렌은 멜로디 메이킹 재능이나 작곡 능력은 섹스 피스톨즈 멤버들 중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심지어 섹스 피스톨즈 곡 중 제일 명곡으로 꼽히는 , <God Save the Queen> 같은 곡들은 모두 글렌 매틀록의 작품이다.
밴드에서 나간 이후에도 계속 베이시스트로 음악 활동을 했다. 그리고 1996년에 다시 쟈니를 비롯한 예전 멤버들과 함께 2기 섹피를 결성했고, 지금도 멤버로 남아 있다. 물론 재결성 기자회견에서도 쟈니가 '우리는 아직 서로를 증오하고 있다'는 식의 말을 한 것으로 봐서는, 아직까지 앙금이 약간이나마 남아있는 듯. 어쨌든 시드가 재림하지 않는 이상 대체할 베이시스트가 없고, 성질도 나이들면서 죽었는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2018년에 철원 고석정 에서 개최된 락 페스티벌인 DMZ Peace Train Music Festival에 깜짝 내한하여 공연에 참가했다! 국내 조선펑크 1세대 밴드인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의 차승우와 함께 합동공연을 벌였는데, 이는 섹스 피스톨즈 활동역사를 통틀어 첫 내한공연(...).
파이터즈 히스토리에 등장하는 짝퉁 대기군인매트록 제이드는 이 사람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 시드 비셔스 (Sid Vicious, 본명: 사이먼 리치 Simon Ritchie 또는 존 비벌리 John Beverley)
섹스 피스톨즈의 두 번째 베이시스트이긴 한데 현실은 얼굴마담.

  • 스티브 존스 (Steve Jones)
1955년생인 섹피의 기타리스트로, 드러머 폴 쿡과는 어렸을때부터 친구 사이. 섹피의 전신인 스왱커즈에서는 기타 겸 보컬이었다. 그리고 존 라이든이 섹스 피스톨즈를 탈퇴했을때 보컬을 구하기 전까지 보컬을 맡았었다. 보컬 실력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집안이 워낙 막장이라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40대가 돼서야 까막눈에서 벗어났다.[33] 해산 후에도 꾸준히 활동하다가 섹피 재결성에도 참여하는 등 여전한 음악인 인생을 살고 있다.
전형적인 뒷골목 불량아 출신답게 성질머리며 말투도 거칠었고, 당시 불량아들이 대부분 그랬듯 훌리건 경력도 있으며, 특히 도벽이 엄청나게 심했다고 한다. 심지어 초기에 사용하던 악기며 앰프 등등은 거의 악기상을 털어서 마련한 것이었고 심지어 1973년 데이빗 보위의 지기 스타더스트 고별공연의 악기들을 몽땅 훔쳐서 나온 일화는 유명하다.[34] 쟈니의 말에 의하면 '그놈은 빌어먹을 신발 끈도 훔칠거야'라나. 참고로 유일한 섹피의 정규 앨범 제목도, 쟈니의 회상에 의하면 스티브가 무심코 던진 욕설에 삘꽂혀서 지은 거라고 한다. 덕분에 처음 나온 LP 커버에는 점잖게는 고환, 상스럽게는 부랄을 뜻하는 'BOLLOCKS'의 B가 스티킹돼서 나오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역시 4명의 막장이 모였어도 각자 재능이 융화된 것이 불세출의 밴드 섹스 피스톨즈인 만큼, 그에게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바로 칼박이었던 것이다. 아직 디지털 레코딩이란 단어도 없던 시절, 스티브 존스가 기타를 친 것을 녹음해서 들어보면 언제나 일정한 시간으로 박자가 딱딱 끊겼다고 한다. 쉽게 말해 1분 30초부터 35초까지 스트로크가 10번 들어가는데 1초단위로 녹음 테이프를 잘라보면 정확히 스트로크가 두 번씩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이건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못 받은 사람치고는 기가 막힌 재능이다.
2011년 갱신된 롤링 스톤 선정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인에서 97위에 올랐다. 참고로 바로 밑이 러쉬의 알렉스 라이프슨. 한국은 테크닉적인 면에 치중하느라 록 음악 본연의 인기에는 다소 소홀한 감이 있는데, 라몬즈의 조니 라몬이 항상 위대한 기타리스트에 랭크되는걸 보면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2008년에는 Gibson에서 한정판으로 시그니춰 Les Paul 모델을 제작해주기도 했다.

  • 폴 쿡 (Paul Cook)
1956년생인 섹피의 드러머. 위에도 적혀있듯이 스티브와 어렸을 때부터 친구 사이였고, 양조장에서 일하며 같이 도둑질을 하다가 잡혀가기도 했다. 스티브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 성깔이 있었는지, 술에 취해서는 계속해서 짜증나게 굴던 쟈니를 물리적으로 개바른 적도 있다.
글렌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밑바닥부터 시작한 터라 별다른 기교는 없지만, 까딱하면 쟈니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의 똘끼로 엉망진창이 되기 십상이었던 연주를 견고한 드럼 비트로 다스리는 재주가 출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섹피의 정규 앨범이며 싱글을 들어보면 요즘처럼 신나게 달려대는 펑크 넘버들보다는 약간 느린 듯한 템포를 지니고 있다.
스티브와 마찬가지로 해산 후에도 계속해서 음악을 했으며[35], 섹피 재결성에도 당연히 참가. 현재 그의 딸인 홀리 쿡도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다. 스티브 존스와 쟈니 로튼이 LA에 살고있는데 반해 폴 쿡은 부인, 딸과 함께 런던의 해머스미스에 살고 있다고 한다.


6. 그 외의 인물들[편집]


  • 말콤 맥라렌 (Malcolm Mclaren)[36]
섹스 피스톨즈를 존재하게 한 매니저. 세인트 마틴 아트 스쿨을 졸업한 미술학도였으며, 1960년대 후반 상황주의 운동의 영국 지부인 King Mob의 일원이었(다고 주장한)다. 1970년대 초반부터 옷가게를 하면서 기기묘묘한 옷을 팔기 시작했다. 1974년경에는 영국에 온 미국의 프로토 펑크 밴드 뉴욕 돌스의 매니저를 맡기도 했다.[37]
쟈니 로튼의 말마따나 섹스 피스톨즈 초기에는 탁월한 일처리와 심도있는 전략으로 멤버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후반기에 들어서는 자신의 이기심을 다 드러내고 밴드에게 무리한 일정을 강요하여 멤버들을 지치게 만드는 동시에, 멤버들을 이간질 시키는 등 막장행보를 이어간다. 영화 그레이트 로큰롤 스윈들을 보면 알겠지만, 섹스 피스톨즈 전기영화랍시고 나온 영화 주제에 말콤 맥라렌이 주인공이다! 섹피 해체 후에는 자기가 직접 음반 활동을 벌였는데, 1982년에는 "Duck Rock"이라는 힙합 앨범을 발표한 바 있다.[38] 의외로 재능이 있었는지 평가가 좋다.
2010년 4월 8일 으로 사망했다.

펑크 패션의 대모라고 평가받는 인물로 현재도 자신의 이름을 딴 옷가게를 운영하며 패션 디자이너로써 활동하고 있다. 말콤 맥라렌과 함게 옷가게를 운영하면서 펑크 패션의 확립과 확산에 이바지했다. 원래는 초등학교 영어교사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패션 디자이너로 전업을 한다. 이 당시 맬컴과 연인관계였다. 펑크 패션의 기본처럼 여겨지는 가죽재킷 + 체크무늬 본디지 팬츠같은 것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디자인에서 출발한 것. 사실 당시 영국 펑크를 제외하면 펑크패션은 그냥 거지 패션이었다. 짧은머리에 간단한 티셔츠에 청바지정도.

  • 제이미 리드 (Jamie Reid)
섹스 피스톨즈의 디자이너. 그 유명한 "괴문서 로고"를 비롯해서 섹스 피스톨즈의 앨범 쟈켓, 로고 등 많은것을 디자인했다.


7. 관련 영화[편집]


섹스 피스톨즈에 관한 영화는 두 편이 있는데, 하나는 1979년에 개봉한 더 그레이트 로큰롤 스윈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1996년 개봉한 The Filth and The Fury이다.

  • 더 그레이트 로큰롤 스윈들 (The Great Rock 'n' Roll Swindle)[39]
섹스 피스톨즈 해산 후 제작된 영화. 스토리가 일관성 없이 산으로 흘러가는 것이 특징이다. 굉장히 내용 하나하나가 연결되어 있는 에피소드가 아니라 뜬금없는 내용들이 많다. 궁금하면 유튜브에 검색해서 직접 찾아보길 바란다.

  • The Filth and The Fury
섹스 피스톨즈 재결성 후, 말콤 맥라렌을 제외한 오리지널 멤버들이 담담하게 당시를 회상하는 방식의 다큐멘터리. 섹스 피스톨즈 멤버들의 인터뷰는 철저히 조명을 꺼놓은 상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늙은 모습은 철저히 나오지 않는다. 당시의 일들을 당시의 시대에서 재조명하기 위한 감독의 연출이었다고 한다. 이 영화 역시 줄리언 템플이 감독했다. 오리지널 멤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해체 당시에는 섹스 피스톨즈가 너무 과대평가 되어있어서 그것을 깎아내릴 필요가 있었는데, 더 그레이트 로큰롤 스윈들같은 영화가 필요했는데, 그로부터 15년동안 너무 많은 가짜정보와 억측이 난무해서 이제는 진솔하게 이야기 할 필요가 생겼다"라고 한다. 결국 일종의 역사 바로잡기를 위해 만든 진솔한 영화. 당시의 시대상황이나 멤버들의 개인적인 이야기, 소박했던 초기의 상황, 밴드가 왜 막장으로 흘러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심지어 쟈니 로튼은 시드 비셔스에 관해 이야기 하다가 울음을 터트리기까지 한다.


8. 에피소드[편집]


글렌 후임으로 들어온 베이시스트 시드 비셔스의 경우 너무 연주 실력이 형편없어서[40], 정규 앨범에는 그의 연주가 녹음되지 않았을 뿐더러 앰프에 잭도 꽂지 않은 상태로 공연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베이스 연주는 스티브가 대신 맡아 녹음했다고. 그렇지만 시드가 전혀 녹음을 하지 않은것은 아니었다. Submission이나 Bodies 등의 곡에서는 시드가 몇 소절이나마 직접 녹음했다고 한다. 로튼이 자서전에서 '글렌을 세션으로 기용해야 했다'고 쓴 것은 다소 맞는 말.

재결성 후에도 여전한 반골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2006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을 거부한다며 자필로 휘갈겨 쓴 거부문을 전달해, 전미 음악계에 섹피다운 똥칠을 했다.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록큰롤과 그 명예의 전당은 오줌 자국일 뿐이다."라고 비하하는 것이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Next to the Sex Pistols, rock and roll and that hall of fame is a piss stain. Your museum. Urine in wine. We're not coming. We're not your monkeys. If you voted for us, hope you noted your reasons. Your anonymous as judges but your still music industry people. We're not coming. Your not paying attention. Outside the shit-stream is a real Sex Pistol."

해석하면,
"로큰롤, 그리고 그것의 명예의 전당은 섹스 피스톨즈 다음가는 오줌자국에 불과하다. 니들의 전당은 포도주 속의 오줌[41]일 뿐이다. 우리는 참석 안 한다. 우리는 니들의 원숭이가 아니다. 우리에게 투표한다면, 그 이유를 말해주길 바란다. 헌액 판정단은 익명이지만 음악산업 관계자들일 것이다. 우리는 안 간다. 우리에게 신경쓰지 마라. 똥줄기 밖에 서는 것이 진정한 섹스 피스톨이다."[42]

9. 여담[편집]


  • 중국에서는 이 밴드를 性手枪이라고 부르는데 직역하면 성관계 권총이다.

  • 2023년 3월, TWICE채영시드 비셔스가 그려진 옷을 입었는데, 문제는 옷에 그려진 시드 비셔스가 나치 문양이 그려진 옷을 입고 있어서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었다. 채영은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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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중에서도 멤버 시드 비셔스막장 행보 등으로도 유명하다.[2] 펑크록의 탄생지인 미국에서조차도 이들과 더 클래시의 강렬한 사운드와 정치적 급진성을 받아들여 하드코어 펑크 무브먼트가 탄생했을 정도다.[3] 섹스 피스톨즈의 다큐멘터리 The Filth and The Fury를 보면 맬컴이 "저놈은 멋이 없으니 잘라라"라고 해서 잘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4] 참고로 존 라이든의 예명인 조니 로튼은 스티브 존스가 그의 충치를 보고는 '죽여주게 썩었네' 하며 지어준 이름이다.[5] 당시 존은 런던 첼시의 킹스 로드에서 시중에서 파는 일반 핑크 플로이드 티셔츠에다가 Pink Floyd 글자 위에 "I hate"란 글씨를 쟈니가 직접 매직으로 크게 써서 I hate Pink Floyd라는 문구를 만들어 입고 다닌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실 존 라이든은 애초부터 핑크 플로이드를 싫어하지 않았지만 당시 영국의 시대적 상황이 이런데 마냥 핑크 플로이드 음악만 들으며 사색에 잠긴 것은 뭔가 잘못됐다 생각하여 장발머리를 자르고 핑플 셔츠에 I hate를 써서 입고 다닌 것뿐 핑플의 멤버인 데이비드 길모어도 섹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실제로 존 라이든을 만나보니 자신의 팬이라는 걸 확실히 느꼈었다고 한다.[6] 팩토리 레코드를 설립해 조이 디비전을 발굴했다.[7]ITV London 방송의 전신이다.[8] 스톤즈를 거론한 건 반어법이다. 스톤즈는 그때나 지금이나 막장 이미지를 자랑하는 그룹. 그런 스톤즈보다도 더 막 나가는 친구들이라는 이야기다. 한국으로 치면 '유승준처럼 애국심이 투철한 놈은 아니구요~'[9] They really turn us on![10] 훗날 영국의 전설적인 펑크/고스 밴드가 되는 수지 앤 더 밴시스의 보컬 수지 수(Siouxie Sioux)였다[11] 당연히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빌 그런디를 조롱하는 의도이다.[12] 빌 그런디는 1923년 생, 1993년에 세상을 떠났다. 스티브는 1955년생.[13] 여기에 빌 그런디는 2주일 출연 정지를 받았지만 이 여파는 어마어마해서 두 달 뒤에 프로그램은 종영할 수 밖에 없었다.[14] 참고로 이 인간은 죽은 뒤에 생전에 성추행을 상습적으로 저질렀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15] 글렌이 비틀즈, 특히 폴 매카트니를 너무 좋아해서 쫓아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글렌은 그런 얘기는 당시 밴드 언론홍보용으로 지어낸 얘기일 뿐이며, 자기가 스스로 그만둔 것이라고 주장한다. 글렌의 어머니가 아들이 그런 음악을 하는걸 너무 싫어해서 그만 둔 것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성격상으로도 글렌은 반항적인 양아치 기질이 적어서 반항의 아이콘인 섹스 피스톨즈의 멤버로서는 안 어울리는 면이 있었다.[16] 여기에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하나 있는데, 원래는 쟈니 로튼의 친구인 쟈 우블이 들어오려 했다. 그런데 매니저 말콤 맥라렌이 "시드 비셔스가 더 간지난다"라는 이유로 쟈 우블을 내치고 시드 비셔스를 끌어들인다. 쟈 우블은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에서 쟈니 로튼과 함께하게 된다. 사실 자 워블의 음악적 역량은 시드 비셔스보다 훨씬 출중한 편이었다.[17] 이 시기에 뜻하지 않게 돈을 무지하게 많이 벌었다. EMI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 위약금 + A&M의 계약금 + 곧바로 A&M과 계약을 해지하는 바람에 받은 위약금이다. 물론 대부분은 맬컴이 꿀꺽해서 큰 의미는 없다.[18] 평론가 존 새비지는 이를 두고 "권력이 문화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별 이유가 없이 진압한 것이기도 했다. 당시 영상[19] 1977년 중반쯤 가면 그 당시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서브컬쳐 집단인 테디보이들과 펑크들간의 반목이 심해진다. 이 둘은 모드족과 로커들의 싸움처럼 거의 시가전 수준이었다고 한다.[20] 그러나 앨범 스타일이 스타일인지라 순위 차트에는 검열삭제가 된 채로 게재되었다. 1위를 했음에도 밴드 이름과 앨범명이 검은색 마크로 가려진채 랭크되거나, 아예 빈칸으로 남겨놓은 차트도 있었다.[21] 이게 또 음모론자들을 자극해 시드가 살해했느냐 다른사람한테 살해됐느냐를 놓고 논란이 있다. 시드 비셔스가 살던 방에는 마약상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당시 시드 비셔스는 완전히 약에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정황을 알기 힘들다고 한다.[22] 1990년대에 와서 밝혀진 사실인데, 어머니가 구해다 준 약을 과다복용하고 죽었다고 한다. 사실상 자살인 셈이다. 그의 사망 전 24시간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적이 있다.[23] 섹피가 처음으로 밴드로서 공연을 했던 클럽.[24] 존 라이든은 현재도 그린 데이는 밴드가 아니라 비즈니스라며 여전히 매우 싫어하고 있다.[25] 사실 이 당시 오아시스는 그야말로 최전성기였다. 그리고 갤러거 형제의 성깔을 생각해보면 여기서 섹피가 아무리 까댔다한들 더한 디스와 쌍욕으로 받아쳤을게 뻔하니 말을 아낀 것.[26] 컨셉에 맞춘 농담일 확률이 높지만, 영국은 성매매가 비범죄화된 국가다.[27] 이것도 사실 노이즈 마케팅 수단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밴드들이 고상한척 하지만 실제로는 일정수준 이상이 되면 돈 때문에 움직이는게 현실인데 이들은 이걸 과감하게 깨버린것. 훗날 인터뷰에서는 1978년 1월에 엉망으로 끝내버린 역사를 바로잡고 싶었다라고 한 바 있다.그러나 로튼의 경력을 봤을 때 둘 다 맞는 것 같은건 기분 탓이다[28] 섹피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시작했다는 수지 수는 섹피 재결성 기자회견 직후 음악계에서 은퇴 선언을 했다...고 하지만 사실 오보였고, 지금도 잘 활동하고 있다. 물론 폭풍까임을 시전했음은 사실이다.[29] 버즈콕스 등.[30] 영국은 버진그룹인데 미국 판권 소유자가 한때 워너 브라더스였을 정도로 판권이 좀 꼬여있는 상태였다.[31] 당시 핑크 플로이드는 영국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록밴드였다. 한국으로 치면 "BTS는 극혐이야"라고 적힌 옷을 입고 라이브 공연에 서는 것이나 다름 없는 행위였다,[32] 글렌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모두 한 성깔 하는 거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33] 심지어 나중에 고백하기로는 양아버지가 성적으로 학대했다고 한다. 섹스 피스톨즈가 없었다면 진짜로 나락에 떨어질 뻔했다고.[34] 이 때 공범이 바로 폴 쿡이었다.[35] 오렌지 주스의 에드윈 콜린스 세션으로도 일하기도 했다.[36] 외래어 표기법에 준수한 표기는 맬컴 매클래런. 성과 같은 이름을 쓰는 자동차 회사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이 표기로 알려졌다.[37] 이 당시 뉴욕 돌스는 거의 맛이 간 상태였고, 인기가 하락세에 접어들었는데, 말콤 맥라렌이 "나한테 묘안이 있으니 내 말을 따르라"라고 야심찬 아이디어를 내놓게 된다. 그 아이디어는...멤버들에게 빨간색 가죽옷을 입힌 뒤 공산주의 컨셉의 밴드로 탈바꿈 하는 것이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대실패.[38] 이 앨범의 수록곡인 에 나오는 한 구절은 에미넴에 샘플링되었다.[39] '위대한 로큰롤 사기극' 이란 뜻이다.[40] 고작 4코드만 연주할 줄 알정도로 기본기조차 형편없다...[41] "Urine in wine" 다른 부분은 난잡하게 갈겨쓴 글 같지만 이 부분은 라임에도 신경 썼다.[42] 여기서 shit-stream은 '주류'를 뜻하는 mainstream을 철저한 경멸을 담아서 비꼬아 부른 것이다. 따라서 이 마지막 문장은 '메인스트림이라는 똥줄기'가 아닌 그 '밖'이 섹스 피스톨즈라는 자의식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한다. 정신 면에서나 표현 면에서나 그야말로 섹스 피스톨즈다운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