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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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잉글랜드의 시인이며 극작가.[4]
많은 문인들에게 선구자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으며, 그가 문학에 집어넣은 화소들은 근현대 문학과 철학에서 신화와 같은 수준으로 차용되고 있다.
2. 생애[편집]
1564년, 아버지 존과 어머니 메리와의 사이에서 맏아들이자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친은 부유한 상인으로, 피혁가공업과 중농(中農)을 겸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읍장까지 지낸 유지였으므로, 당시의 사회적 신분으로서는 중산계급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풍족한 소년 시절을 보냈다.
셰익스피어는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그 때문에 한 번은 학교에서 내 준 숙제를 깜빡하고 못하는 바람에 다음 날 담임에게 꾸중을 들은 적도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글쓰기를 즐기다 보니까 학교를 결석하는 일도 잦았다. 며칠 후 부모에게 이 사실을 실토하며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아버지는 성격이 둥글고 쾌활한 사람이었기에 이런 행위를 꾸중하지 않고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고, 윌리엄은 13살 때이던 1577년에 학교를 자퇴하였다. 게다가 이 때부터 가세가 기울면서 학업을 이어나가기도 어려워졌던 것도 있었다.
1580년대에 극단에 들어가서 1594년 "시종장관 극단"의 일원이 되었으며, 1599년에는 글로브 극장(Globe Theatre)을 세워[5] 공동 소유주가 되었다.
1585년부터 1592년 사이에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
1616년, 고향인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숨졌다. 향년 52세.
셰익스피어의 최초 작품집이 사후 400년 만인 2016년에 발견되었다. 링크
2001년에 나온 연구 결과에 의하면 그의 집에서 나온 파이프에서 대마초와 코카인 성분이 검출되었다.
2.1. 시인으로서[편집]
당대에 언어로 구성되는 모든 것에 통달하여 시도 능했다. 오늘날 모든 서사가 따른 기본 기술을 정립시켰으며 4대 비극으로 유명하지만 희곡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를 섭렵한 천재. 제목만 남은 작품을 포함해 희곡 38편, 소네트 154편, 그리고 장시 2편 등이 전해진다. 잉글랜드의 르네상스 초기에 이탈리아의 시형식 칸초네가 토머스 와이엇(Thomas Wyatt)에 의해서 잉글랜드로 들어왔다. 그 뒤로 14행시 5음보(Pentameter) 정형시인 소네트가 잉글랜드의 모든 작가들이 쓰기 시작했고(문학 = 소네트 수준), 시드니(P. Sidney), 스펜서(E. Spenser) 같은 위대한 작가를 낳는다. 이 때 들어온 소네트의 형식은 이탈리아의 시인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정립한 것이어서 페트라르카식 소네트(Petrarcan sonnet)라고 부른다. 페트라르카식 소네트는 그 시작부터가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찬미였기에, 100년 이상 시간이 지나면서 온갖 클리셰[6] 가 난무하게 되었고, 1580년대 후반 인기가 식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이 진부해진 소네트 형식으로 참신한 내용을 담아내면서 인기를 끌었고, 지금까지 그 명성을 전한다. 또한 셰익스피어는 종전의 소네트와는 다른 내용을 담아내기 위해 자신만의 소네트 형식을 만들어낸다. 페트라르카식 소네트는 1개의 옥텟(octet, 8행의 묶음)과 1개의 섹스텟(sextet, 6행의 묶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8행에서 볼타(volta)라 하여 시상의 전환이 일어나고, ABBA ABBA CDC CDC의 각운 구조(Rhyme Scheme)을 따른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3개의 콰텟(quartet, 4행의 묶음)과 하나의 커플릿(couplet, 2행의 묶음)으로 이루어져있으며, ABAB CDCD EFEF GG의 각운 구조를 따른다. 그래서 이런 소네트들을 따로 분류하여 셰익스피어(식) 소네트(Shakespearean Sonnet)라고 한다. 본인 이름 = 장르인 수준.
셰익스피어가 이렇게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 것은 기존의 페트라르카 소네트 형식으로는 자신이 쓰고자 하는 내용을 담아내기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술했듯이, 페트라르카 소네트의 내용은 연인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과 찬미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도 연인에 대한 찬미가 주된 내용을 이루기는 하나, 페트라르칸 소네트와의 차별점은 어느 정도의 논리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맹목적으로 연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기만 했던 페트라르카식의 소네트와는 달리 (모든 페트라르카식 소네트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연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거나, 연인의 아름다움을 영원화(永遠化)하는 데 있어서, 일종의 변증법을 사용한다. 전술했듯이, 셰익스피어식 소네트는 3개의 콰텟과 하나의 커플릿으로 이루어지는 데 이 중 앞의 두 개의 콰텟(즉, 앞의 8줄)이 정명제 (thesis)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콰텟 (다음 4줄)이 반명제 (antithesis)의 역할을 하며,[7] 두 명제의 대립이 커플릿 (마지막 2줄)에서 종합 (synthesize)되어 합명제 (synthesis)로 결론을 맺는다. 각운 구조 또한 이러한 변증법적 구조를 뒷받침한다. ABAB CDCD EFEF GG. 앞의 12줄에서 마치 변증법에서 정명제와 반명제가 서로 대화를 하듯 (변증법 Dialectic의 어원이 대화 Dialog임을 생각하라) 서로 다른 각운이 번갈아서 등장하던 것이, 정과 반의 합이 일어나는 커플릿에서는 하나의 각운으로 통일된다. 플라톤이 철학 (즉, 논리) 로부터 시를 추방한 이래 거의 최초로 철학과 예술, 논리와 감성을 종합하고자 하는 시도인 셈.
2.2. 극작가로서[편집]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극찬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시대와 문화, 공간의 보편성이다. 그가 쓴 희곡들을 보면 현대인에게도 대부분 통할 개그센스가 은근히 많이 들어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는 당시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관련된 주제가 많이 나오는데 특히 왕이 죽고 나라가 엄청난 혼란에 빠지는 묘사가 꽤나 자주 사용된다. 당시 여왕이던 엘리자베스 1세(1558년 즉위, 1603년 사망)가 나이는 많고 후계자가 없어서 민심이 꽤나 불안했기에 이를 자신의 극에 반영한 것. 사실 유명한 글로브 극단의 소유주가 된 것 등등은 제임스 1세 덕이 많다고 한다. 시종장관 극단을 왕실(King's Men) 극단으로 승격시키는 듯 셰익스피어에게 돈을 많이 투자하기도 했다.
그의 극본은 판본마다 텍스트가 제각기 매우 다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셰익스피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폴저 도서관은 셰익스피어의 제1 이절판을 최대한 많이 수집한 것으로 유명한데, 같은 제1 이절판이라도 내용이 제각기 다르다. 이는 무대에서 상연을 목적을 하는 희곡의 특성상 관객의 반응에 따라 대본이 수시로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크리스토퍼 말로의 희곡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존재한다.
햄릿에 나오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는 그야말로 영문학사 전체에서 꼽히는 명대사. 다만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적다. 사실 지금도 재해석이 이루어지는 대사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라고 쉽게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Be라는 단어가 영문학적으로도 너무나도 많은 뜻을 품어서 은유적인 의미까지 따지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끝이 없다.[8][9]
후대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10] 와 조지 버나드 쇼는 셰익스피어를 깠다. 물론 그들 역시 대문호의 입장에서 일종의 라이벌 의식이 있었던 모양.
2.3. 언어 창조자[편집]
셰익스피어는 엄청나게 많은 신조어들을 만들었다. 그의 희곡에 나온 2만 단어 중에 2천 가지는 새로운 단어였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만들어진 신조어들은 셰익스피어의 신조어(Shakespearean neologisms)라고 한다.가령 우리가 입만 열었다 하면 열 마디 가운데 한 마디는 신조어라고 생각해 보라.
영어사(The history of the English language)를 배우다보면 셰익스피어가 만든 어휘들이 꼭 나온다. 사전을 찾아 봤더니 어원에 대해 별다른 말이 없고 1600년 전후부터 쓰이기 시작했다고만 나온다면 셰익스피어가 만든 말이라고 보아도 좋다.[11] 당대 영어는 문법 책도 라틴어로 나오던 수준이었다. 비슷한 시기 간행된 킹 제임스 성경과 함께 영어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인데, 영문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킹 제임스 성경을 최고봉으로 하는 험준한 산맥이라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다만 셰익스피어가 정말로 해당 단어들을 창조했는가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셰익스피어가 해당 단어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전까지도 쓰이던 단어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문서일 뿐이라는 것.
어찌됐든 고증적으로 가장 확실한 점은 셰익스피어는 아예 새로운 단어를 창조했다기 보단 기존의 단어들을 당대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응용하여 신조어들을 만들어서 현대 영어의 초석을 다져놓았다는 것. 셰익스피어가 신조어들을 만든 방법은 대표적으로 5가지로 분류된다.
이런 방식들을 통해서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그 당시 신조어들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아래와 같다. 생각보다 익숙한 단어들이 많을 것이다.
2.3.1. 단어[편집]
2.3.2. 관용구[편집]
3. 그에 대한 평가들[편집]
Indian Empire will go, at any rate, some day; but this Shakspeare does not go, he lasts forever with us.
(잉글랜드가) 인도는 언젠가는 잃게 되겠지만, 셰익스피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15]
한 시대가 아닌 만세(萬世)를 위한 작가
― 벤 존슨
하느님 이외에는 신이 없으며, 그의 이름은 윌리엄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는 모르는 사이에 알게 된다. 그것은 영국인의 헌법의 일부분이다. 그의 생각과 아름다움은 해외에 퍼져 있어서 어디에나 만지고, 본능적으로 그와 친밀하다.
아마도 인간의 본성이 아직 만들어내지 못한 가장 위대한 천재, 우리의 무수한 마음가짐의 셰익스피어.
그는 위대한 시인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철학자였다.
단테와 셰익스피어는 현대 세계를 그들 사이에 나누었다.
만약 셰익스피어가 한 마디를 필요로 하고 문명화된 담론에서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 말을 지어냈다.
―안소니 버게스 #
그러나 나의 신이시여, 셰익스피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또 누가 그처럼 신비로운가, 그의 언어와 방법은 흥분과 황홀감에 떨면서 붓과 같다.
셰익스피어의 놀라운 점은 그가 정말 훌륭하다는 것이다. 그가 매우 훌륭하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로버트 그레이브스#
셰익스피어는 우화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작품들은 그것에 대한 논평이다.
셰익스피어는 우리의 시인이 아니라 세계의 시인이다.
― 월터 새비지 랜도어#
이 행성에서 셰익스피어의 명성은 안전하다. 우주의 다른 곳에서 생명이 발견되고 어떤 행성간 여행자가 우리의 지상 문화의 결실을 이 새로운 세계에 가져다 줄 때, 호기심 많은 이방인들에게 전해지는 최초의 책들 중 그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성경과 월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될 것이다.
― 루이스 마더 #
셰익스피어의 언어 시적 질감은 세계가 알고 있는 가장 위대한 것이며, 그의 희곡의 구조보다 훨씬 뛰어나다.
셰익스피어: 신의 눈에 가장 가까운 화신.
4. 비판 및 논란[편집]
우선 당시 기준으로 그다지 관념도 없고 애매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표절 논란인데, 대표적인 예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 바지선에 올라 탄 클레오파트라를 묘사하는 부분으로, 토머스 노스가 번역한 플루타크 영웅전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 관한 부분을 표절했다. 하지만 플루타크는 당대의 사람들이 애독하던 도서이다. 벤 존슨의 Devil is An Ass 에서도 서민들도 플루타크를 읽어서 자신의 자식을 플루타크로 이름 짓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이 대부분 아는 이야기를 올리는 것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데다가, 셰익스피어 본인도 플루타크를 배웠기에 표절이라기보단 배운 대로 썼다고 보는 것이 맞다. 덧붙여, 완전 표절이 아니라 후술할 '줄리어스 시저'에 나오는 시계같이 일부러 고증을 어겨서 당대의 이야기를 담는 기법도 많다.
'줄리어스 시저'라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일생을 다룬 극을 썼는데 사료 고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창작소설이라고 불리나[17] 사실 줄리우스 시저가 쓰였던 시기엔 반란과 기근으로 민중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며, 엘리자베스 1세의 건강이 나빠지며 후대를 걱정해야하는 시기였기에 그 불안감이 극에 나타난 것이다. 시계뿐만이 아니라 상영시 로마식 복장을 쓰지 않고 올린 것은 일부러 시대적 고증을 무시하여 당대의 문제를 극으로서 반영하고 논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과거 작품들중 고증을 신경쓰지 않은 작품은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건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는건 아니다. 당장 한국의 판소리 적벽가도 내용은 고대 중국이지만 작중 나오는 군편제는 조선군편제다.
박홍규 교수의 저서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에서는 흑인인 오셀로의 묘사의 비판뿐 아니라 템페스트를 영국에 대한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주의, 섬의 괴물 칼리번은 식민지의 원주민을 상징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래서 일부 시각에선 셰익스피어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보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이것 역시 절대적인 분석이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 본, 이런 새로운 해석도 있을 수 있다고만 알아두자.
그냥 당신이 뭘 생각하든, 그런 쪽으로 해석한 누군가가 이미 있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오늘날까지 파고 파도 계속 무한히 나오는 것이 셰익스피어다. 아무튼 당신이 뭘 공부하더라도 이 작가와 연관시킬 수 있다.
4.1. 잔 다르크 비하[편집]
셰익스피어는 헨리 6세 제1부에서 잔 다르크를 마녀, 악녀, 요부, 패륜녀로 묘사했는데, 일각에서는 오늘날 잔 다르크에 대한 평가와는 크게 동떨어져 있는 폄하라고 보고 셰익스피어를 비난한다.
이는 잔 다르크가 참전한 백년전쟁이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원시적인 민족주의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왕실과 귀족들은 어느 정도 비슷한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고 있었지만[18] 노르망디처럼 프랑스 내부의 잉글랜드령이 아닌 브리튼섬 본토의 백성들은 프랑스의 백성들과 문화적 동질감을 느꼈을 가능성은 적다. 특히 헨리 5세는 그전의 잉글랜드 왕들이 프랑스어를 주로 쓰던 것과 달리 종종 영어를 쓰며 자신이 잉글랜드인이라는 정체성을 어느 정도 드러냈고 이를 바탕으로 잉글랜드 출신의 장궁병 위주의 농민 병사들에게 큰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반대로 프랑스는 그런 구심점이 없다가 잔 다르크가 등장하여 샤를 7세를 추대하며 프랑스인들을 자각시켰다. 특히 잔 다르크를 비롯한 왕세자를 지지하는 프랑스인들은 대륙에 상륙한 이질적인 잉글랜드군의 약탈에 대해 이골이 난 상태였으며[19] 잉글랜드에서 태어난 왕이 프랑스 왕으로 추대되는 것 자체에도 반감을 가졌다. 이렇게 잔 다르크가 어찌되었든 프랑스 민족주의의 상징이기 때문에 잉글랜드인인 셰익스피어는 그를 불편해하고 폄하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잔 다르크가 유럽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기껏해야 19세기부터이며, 이는 민족주의의 완성 및 당시의 안정된 국제정세, 제국주의 열강으로서의 동질감 형성 등과 관계가 있다. 잔 다르크가 교황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성인으로 인가받은 것은 무려 1차대전이 끝난 후인 1920년(!)이다. 16세기 잉글랜드 대중들이 잔 다르크를 긍정적으로 생각했을리는 없고 대중들의 인기를 바탕으로 먹고사는 극작가가 이런 생각을 거스를 수도 없다. 다만 잔 다르크는 이미 죽은 지 25년 뒤인 1456년에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재판을 다시 열어 마녀와 이단자가 아니었다고 발표가 났으므로 따라서 외국에 대한 지식이 적지 않았던 셰익스피어도, 또한 셰익스피어가 참고했던 역사서를 쓴 영국의 역사가들도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 어차피 왕정 시대여서, 게다가 엘리자베스 1세 때 가톨릭 탄압이 심했을 때여서 의미가 없겠지만.
아무튼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이 작품을 두고 셰익스피어가 아닌 다른 작가가 썼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인간 잔 다르크를 제대로 조명해보려 했던 작가 조지 버나드 쇼도 제기한적 있는 의견인데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전부 셰익스피어 혼자 쓴 게 아니다. 그의 시대에는 공연을 빨리빨리 올리기 위해서 극작가들이 협업하는 일이 흔했다.
대표작 멕베스, 잣대엔 잣대로, 아테네의 티몬은 토마스 미들턴과의 협업이 유력하며 가장 최근에 셰익스피어 작품에 포함된 에드워드 3세도 젊은시절 셰익스피어가 40% 정도만 담당한 작품이다. 헨리 6세는 셰익스피어의 습작기(1590~94)기 작품중에서도 초기작에 속하는 작품으로 천재로 이름을 날렸으나 20대에 요절하는 크리스토퍼 말로와의 협업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버나드 쇼가 지적했듯 작품속 잔 다르크의 묘사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실존인물 잔 다르크와의 거리가 먼걸로 따지면 아주 전형적인 로망스 주인공인 실러의 잔 다르크와 중세를 깔아보는 19세기인의 시점에서 쓰여진 마크 트웨인의 잔 다르크도 전혀 나을 게 없다.
어쨌거나 근현대에 들어서는 잔 다르크에 대해 원작처럼 직접 마녀나 악녀로 묘사하는 게 부담되는 일인지 이미 20세기 때부터 해당 작품의 무대화에서 잔 다르크의 부정적인 묘사를 지우기도 했으며, 2011년 한국에서의 공연도 그랬고, 2016년 셰익스피어의 사극을 드라마화 한 할로우 크라운 시리즈에서도 잔 다르크의 묘사에 대해 원작과 달리 부정적인 묘사를 지우고 각색해서 연출했다.
4.2. 가상 인물설[편집]
이러한 추측은 근거 없는 음모론이다.
이 음모론은 19세기 초에, 영문학 및 역사학을 공부하지 않은 미국인의 입에서 처음 나온 것이다. 즉 셰익스피어 사망 후 200년이 지난 후에 유럽 바깥에서 나온 썰이며, 그 전까진 셰익스피어가 가상의 존재일 가능성을 제시하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가 가상 인물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측이 내세우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개인적인 사료가 이상할 정도로 부족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초급학교(Grammar school)만 나왔기에 위대한 문학 작품을 쓸 지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근거로서 매우 빈약하다.
일단 셰익스피어의 개인 기술(일기, 편지, 낙서 등)이 거의 남지 않은 건 사실이긴 하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는 평민에 불과했고 후손이 외손자대에서 끊겼기 때문에, 그의 사사로운 유산을 오래 보전할 사람이 없었다. 셰익스피어는 좋은 집안의 부모[20] 밑에서 자라긴 했으나 엄연히 신분은 평민이었다. 중산층 평민의 사사로운 기록을 굳이 수백년간 보전할 사람이나 예산이 있을리 만무했다. 16~17세기 잉글랜드 평민의 기록이 백년도 지나지 않아 멸실되는 것은 전혀 특이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셰익스피어는 그 시대 작가 중에선 기록을 많이 남긴 편이다. 존 헨들이나 헨리 콘델 같은 셰익스피어의 친구들이 그의 작품을 보전하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기울였기에,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 중에 완전히 소실된 것은 몇 편 없다. 게다가 셰익스피어라는 작가가 문학사에서 전무후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보니, 그의 사후 몇백 년간 역사학자들이 달려들어 그의 기록을 건지려고 강박적으로 애를 썼다. 반면 셰익스피어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극작가들은 언제 어디서 태어났으며 도대체 뭘 몇 편이나 썼는지도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만큼 이 시기 영국의 정보는 유실된 것들이 많다.[21]
그리고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영문학계의 북극성으로서 숭앙받기 시작한 때는 그가 죽은 이후다. 영국인들은 살아 생전의 그를 위대한 극작가로 대우하긴 했어도 연극계의 일인자로 기리지는 않았다. 셰익스피어 생존 당시는 벤 존슨이나 크리스토퍼 말로 등 존재감이 거대한 라이벌들이 도처에 있었고, 그들이 후세에 더 존경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받았다.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의 개인사료를 보존할 가치를 느꼈을 때는 이미 당사자가 죽고 그의 가문도 대가 끊긴 뒤였다.
그리고 개인적인 기록이 없다는 것도 어느 정도 걸러들어야 한다. 셰익스피어 본인이 기록한 사적인 흔적은 얼마 없을지언정 남이 셰익스피어에 대해 기록한 공적인 문서는 많이 남았다. 그 당시 잉글랜드 관공서 서류엔 셰익스피어 가족들의 이름이 올라있다. 거주 기록, 앤 해서웨이와의 혼인 신고서, 자녀들의 출생, 사망, 혼인 기록, 전출입 신고서, 하숙집 주인의 재판에 증인으로 끌려가서 선서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법정서류, 주택구매기록, 벌금고지서, 공무원의 실수로 이름을 틀리게 쓴[22] 시민 등록부, 왕실 공연용 팸플릿[23] , 유언장 등등. 거주 이전 기록을 보아도 그가 작가로서 형편이 피었을 무렵 좋은 집으로 이사갔고, 그 후 가끔씩 체납을 해서 벌금을 물었으므로 아주 부유한 편은 아니었고 매년 소득이 왔다갔다 했으리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즉, 셰익스피어라는 한 인간이 16세기 잉글랜드의 국민으로 태어나 법적/사회적/경제적인 실체로서 존재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둘째로, 셰익스피어가 그래머 스쿨(Grammar school)만 나와서 학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당대의 평균 학력과 교육 격차를 감안하지 않은 억측에 불과하다. 그는 르네상스라는 말이 나온 지 얼마 안 된 시기[24] 인 1564년에 태어났다. 이 시대에는 민중의 대다수가 학교 문턱도 넘지 못했고, 교육을 받은 소수조차 기초적인 글을 읽고 쓰며 간단한 셈을 하는 정도의 기술만 익히는데서 그쳤다. 당대의 잉글랜드는 전근대 기준으로 문해율이 높은 축에 들긴 했으나, 온전한 서류를 작성할 수 있을 정도로 고급 교육을 받은 지식인은 소수였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5세까지 다녔을 거라 짐작되는 킹스 뉴스쿨은 귀한 집 자제들에게 라틴어와 고전을 가르치던 그래머 스쿨이다.[25] 중세 이후에 세워진 이러한 형태의 학교에서는 당대 지식의 기반을 이루는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의 문법, 운문 기술법을 포함한 '자유 과목(Liberal arts)'의 기초를 가르쳤다. 16세기의 잉글랜드 내의 그래머 스쿨이 학생들에게 가르친 라틴어 수준만[26] 본다면, 현대 영국 인문학부생은커녕 박사도 따라가기 힘든 수준이다. 즉, 셰익스피어는 어릴 때부터 전문적인 교육기관에 들어가 고전 언어를 읽고 쓰는 법을 배웠으니 16세기 기준으로는 학력이 높은 인물이었다. 극작가를 하기엔 적합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당시 위대한 극작가가 되기 위해 대학 졸업장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대표적으로 제임스 1세 시대의 계관시인이었던 벤 존슨 역시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이 사람도 영문학에 남긴 발자취가 상당하며, 현대인들에게도 문학사의 거장으로 존중받는다. 단순히 대학을 못 나왔다고 벤 존슨이 가짜라는 음모론을 만드는 사람은 없는데, 왜 셰익스피어만 유독 가상인물이라는 썰이 많이 도는가? 그 정도급 인물이 아니면 저런 음모론을 만들어봤자 관심을 못 받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그리스-로마의 고전 희곡에서 많은 설정을 차용했다. 문학 외 법학, 의학, 박물학에 관심이 지대했고 궁중 지식도 많았으며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알았던 것 같다. 도저히 무명 연극 배우 출신이 이런 대작들을 썼다고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작품을 쓰고, 셰익스피어는 이름만 빌려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또한 음모론이다. 이 당시는 이국적인 요소들이 잉글랜드로 많이 유입되던 시절이었다. 즉, 셰익스피어가 머리가 비상하게 좋긴 했으나 접근이 불가능한 지식에 도달한 건 아니다. 라틴어를 잘 교육받은 르네상스인이 고전문학을 탐독하는 것이나,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습득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그도 자기 전공이 아닌 지리학이나 역사 쪽에선 실수를 짬짬이 했다.
셰익스피어 음모론에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후보자들은 다음과 같다.
- 윌리엄 스탠리
- 크리스토퍼 말로
셰익스피어와의 연결성과는 별개로 말로의 죽음 자체에 관해서도 음모론은 많다. 사건 발생 후 조사 과정에서 그는 잉글랜드 정부와 가톨릭 단체의 이중 첩자였다고 밝혀졌으며 살해자도 그를 감시하던 정부 측 스파이였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것도 그야말로 가설이다. 말로는 젊은 시절에도 다른 시인과 싸움 붙어서 체포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적이 있으며, 주변 인물들의 평에 따르면 몹시 불 같고 반항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술집에서 결투하다 죽었다고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등등이 있다. 물론 이 설들도 하나하나 사실 관계를 따져보면 금세 파훼된다. 우선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엘리자베스 1세 사후에 쓰인 게 더 많으니 엘리자베스 여왕 손에 쓰였을 가능성은 없다. 두 번째로, 프랜시스 베이컨은 연극을 싫어했으며, 본업 진행하면서 뒷구멍으로 작품도 쓰고 상연도 관찰할 시간 따위를 낼 수가 없었다. 르네상스 시대 연극작가는 대본을 제작자에게 보내고 땡인 직업이 아니라, 감독이며 배우들하고 실제로 만나서 무대 상황에 맞춰 많은 걸 조율해야 하는 직업이었다. 더구나 베이컨은 셰익스피어와 활동 지역이 아예 다른데, 지금처럼 교통수단이 발전하지 않은 시대에 지난 주에 이 도시에서 연구하고 다음 주엔 저 도시에서 극장으로 출근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세 번째로, 크리스토퍼 말로는 셰익스피어와는 취향과 문체가 완전히 달라 둘이 동일인물일 가능성은 (적어도 작품 분석을 통해서는) 추상적 가능성에 그친다.
셰익스피어가 쓴 실제 초판은 매우 거칠고 조악했으나, 시대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갈고 닦아 지금과 같은 주옥 같은 문장으로 재탄생했다는 설이 있다. 실제 판본이 여러 가지나 되고 햄릿에서는 저 유명한 '죽느냐 사느냐'라는 대사가 존재하지 않고 해당 부분의 대사가 상스럽거나 단순한 욕설로 나온 판본도 있다. 물론 이 설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려면, 셰익스피어 초판을 정리해준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의 현실 친구였고, 그들의 판본이 우리가 아는 셰익스피어 작품과 별 차이 없다는 사실을 무시해야 한다.
셰익스피어 자체는 실존인물이지만 우리나라의 이현세, 박봉성 등 양판소 만화가처럼 셰익스피어가 메인 작가일 뿐, 실제로는 작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글을 쓴 공장 만화식의 체계로 운영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유는 셰익스피어가 생전에 발표한 만큼의 글은 절대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분량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계에서는 이 논란을 쓸모 없는 음모론으로 취급한다. 학계에서 진지한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문서든 유물이든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공동 저술이거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있다는 증거가 나와야 하는데, 이런 게 지금까지는 전혀 발견된 바가 없기 때문.[27] 이렇게 음모론에 떡밥 주듯 애매하게 표현한 적도 없고 셰익스피어는 엄연히 실존한 위인이며, 단지 우리가 그의 사적인 삶에 대해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을 뿐이라고 단정한다. 셰익스피어가 실존했다는 증거는 많으나 실존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없기 때문.
5. 학생과 배우들에게[편집]
영어권의 교육 과정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무조건 교과 과정 내에 있다. 그리고 영어교사[28] 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대한 과제를 많이 낸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영국의 GCE A Level과 International Baccalaureate의 문학 과목, 미국의 AP 영문학, SAT의 문학 과목에서 출제되는 것과 수능 국어 영역에서 정철과 박인로의 가사가 빈출되는 것과 같다.
한국인 고등학생들이 중세 국어에서 쓰는 문법 패턴과 한글 패턴, 한문을 외우듯이 영국의 고등학생들은 후기 중세 영어와 초기 근대 영어에서 쓰이는 고대 영어의 문법 패턴과 어휘, 문장 구조를 외운다. 당시에는 5형식의 아버지인 찰스 탤벗 어니언스가 없었기 때문에 5형식이라는 구조가 없었고 있어도 주어 - 간접 목적어 - 직접 목적어 등으로 쓰일 정도로 문법 패턴이 복잡하다. 그런 까닭에 영어 문장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고등학교에서도 셰익스피어 관련 수업시간이라면 교실의 대다수 학생들의 동공이 풀리고 유체이탈하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다른 작품에 비해 진도를 빼기 쉽지 않고 4대 비극과 희극, 소네트만 보더라도 최소한 4시간 정도 필요하며, 끝나고는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과제도 작성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빌과 테드의 엑설런트 어드벤쳐 애니메이션판에선 과거로 돌아간 일행들이 셰익스피어에게 "이건 미래에 니가 괴롭힐 모든 학생들의 몫이다!"라고 싸대기를 갈기는 장면이 나올 정도다. 수능 과탐 물리 I, 물리 II를 공부하는 사람이 농담삼아 뉴턴과 아인슈타인 때문에 공부할 게 늘었다고 하는 것과 같다. 미국식 교육을 받는 고등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가봤을 스파크노트의 예시에서는 중세 영어로 쓰인 셰익스피어 작품을 현대어로 바꾸고 분석까지 자세하게 쓴 내용을 업로드해서 큰 각광을 받았다.#[29]
영문학과 영어교육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영어권[30] 의 중고등학생 뿐만이 아니라, 연기나 연출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매우 어려운 존재이다. 특히 4대 비극의 경우 배우와 연출가의 역량을 판가름하는 작품으로 쓰인다. 일단 대사가 1600년대 영어인데다 현대에 없는 문법 구조가 있는데다 만연체로 쓰여있어서 적당한 호흡이 없으면 대사가 길기 때문에 배우가 준비를 많이 해야퇸다.
특히 햄릿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긴 대사가 연달아 독백으로 나온다면, 배우는 그 대사를 제대로 잘 전달헤야 하고, 그 대사에서 적당히 끊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햄릿 자체가 셰익스피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하고, 햄릿이 배신당한 부분과 죄책감을 느끼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감정 연기도 잘 해야 한다. 한국어에 비유하자면 구운몽과 같은 고전 산문을 당시의 국어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왠만한 사극 연기력이 아닌 이상 지겨워하고 대사를 이해하지 못 한다.
관객의 집중력을 유지시켜주기 위해서 배우는 물론이고 연출자 또한 각고의 노력을 해내야 하는데, 충분한 연습과 연구가 없다면, 배우는 그저 대본을 읊는 수준에서 그치고 만다. 업계에서는 대사에 배우가 먹혀버린다고 표현할 정도이다. 연출자 또한 관객들의 집중을 유지시키기 위해 배우나 무대에 이런저런 색다른 시도를 많이 요구하기도 한다. 아마 연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안톤 체호프만큼이나 두렵고 무서운 존재.
6. 기타[편집]
"Good friend for Jesus sake forbear to dig the dust enclosed here.
Blessed be the man that spares these stones
And cursed be he that moves my bones."
"벗이여, 부디 여기 덮인 흙을 파헤치지 마시오.
이 돌을 건드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그리고 이 뼈를 옮기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을진저."
셰익스피어의 무덤의 묘비명[32]
- 한국의 경우 색사비아(索士比亞), 酒若是披霞(주약시피하) 등 음역한 이름도 있었으며 해방 직후까지 이 음역한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 서양권 전체에서 제일 많이 상연되는 그의 작품은 리처드 3세라고 한다. 리처드 3세는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 리처드 3세의 전기를 다루는데, 리처드 3세의 형제에 대한 질투, 권력을 향한 질투와 그의 몰락에 대해 이야기한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에는 신 중심의 중세적 세계관에서 인간이 자유롭게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르네상스적 세계관으로 바뀐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또한 르네상스적 세계관과 영향을 주고받았다 분석하는 이들도 일부 존재한다.
- 현재 영국에서 웬만큼 거장 취급 받는 배우들(스크린/무대를 막론하고)은 상당수가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역사가 시작된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Royal Shakespeare Company) 출신이다. 예를 들면 이언 매켈런 경. 그리고 캐나다인인 크리스토퍼 플러머 역시 셰익스피어 공연 전문 배우였다.
- 현 시대의 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알 파치노가 특히 셰익스피어 덕후다. 베니스의 상인 등 여러 영화를 비롯, 브로드웨이와 미국 대도시에서 연극을 올린 것도 여러 번이고, 심지어 1994년에는 리처드 3세를 만드는 다큐멘터리 <뉴욕 광시곡>[33] 까지 감독/출연했을 정도이다. 2012년 현재 리어왕까지 찍고있다니 뭐, 할 말 다했다. 파치노 이외에도 오슨 웰스도 한 덕후심하기로 유명하다.
- 셰익스피어의 연극 대본에서 따온 프로그래밍 언어가 있다. 자세한 것은 셰익스피어 프로그래밍 언어 문서 참조.
- 2014년 4월 26일, 세계적인 영국 극작가로 유명한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4.26 ~ 1616.4.23)의 탄생 450주년을 맞아 그의 고향인 영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대대적인 축제 행사가 열렸다.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영국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는 음악, 거리 공연, 스토리텔링, 연기, 춤 등 다양한 연극의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셰익스피어 생애를 따라 여행하는 "Cycle Shakespeare's way"를 테마로, 셰익스피어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방문한 관광객들은 그의 출생지인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부터 그의 무덤이 안착된 성 트리니티 교회까지 돌아볼 수 있었다. 특히, 그가 거주하며 극작가로써 활발히 활동했던 런던에서는 2014년 한 해 동안 셰익스피어 작품을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글로브 극장에서 성대한 박람회를 열어, 셰익스피어 시대의 연극을 재현한 공연, 해설, 전시회 등을 제공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국가를 모두 넘겨주는 때에도 셰익스피어 한 명만은 넘겨줄 수 없다.”라고 남긴 유명한 말처럼, 그에 대한 영국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개최되었다. 특히, 아시아에서 셰익스피어 작품 공연 빈도수가 가장 높은 나라인 한국에서는 한국 셰익스피어학회 및 협회, 대학로 연극인들이 대규모 ‘셰익스피어 문화축전’ 주최했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탄생 4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되새기고자, 2014년 4월부터 7월까지 네 달에 걸쳐 릴레이 연극을 펼쳤다.
- 셰익스피어와 관련해서 유명한 인물 가운데 토머스 바우들러(Thomas Bowdler)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1807년 The Family Shakspeare이라고 해서 일반 가정을 위한 셰익스피어 판본을 찍어내는데, 문제는 어린이들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을 수정했다는 것이다. 감탄사인 'God!'을 'Heavens!'로 수정하는 것은 약과고, 햄릿의 오필리어가 죽은 이유가 자살이 아니라 실족에 의한 익사로 고쳐버리는 등 과감한 수정도 주저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문제는 이 판본이 본편 못지않게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후대에 바우들러는 검열삭제의 대명사가 되었고, 그의 이름을 딴 bowdlerize는 내용을 순화시키고 수정해서 고친다는 의미의 일반 동사로 통용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원래 담배를 즐겨 피웠던 캐릭터가 담배 대신 막대사탕을 물고 다니는 경우. 다만 이후에 밝혀진 바로는 바우들러 본인이 아니라, 그의 여동생이 손을 댄 것이었다. 하지만 성은 동일한 데다 바우들러가 수정한 책은 에드워드 기번의《로마제국 쇠망사》를 포함해서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이다.
- 프랑스, 파리에 셰익스피어 & Co.라는 역사깊은 영서(英書) 전문 고서점(古書店)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 글을 쓴 문학가도 많고 봐야 할 관광지 중 하나로 지정되어있으며, 파리에 거주지가 없는 가난한 사람에 한정해
공짜로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밥값은 해야 한다고 한다. 주소는 37 rue de la Bûcherie. (홈페이지도 생겼으니 확인해볼 것.)
- 셰익스피어 본인 또는 희곡의 원저자가 이탈리아를 직접 방문하고 "이탈리아 희곡"을 썼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 나왔다.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원제: The Shakespear Guide to Italy)" 작가에 따르면 르네상스 당시 이탈리아에 대해 잘 몰랐던 편집자와 비평가들로 인해 벌어진 각종 오류들이 수두룩하다고.
- "1417년 근대의 탄생(The swerve : how the world became modern)"을 쓴 스티븐 그린블랫은 이전에 셰익스피어 전기를 저술했다. "세계를 향한 의지: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되었는가(Will in the World : How Shakespeare Became Shakespeare)"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
- 죽고 난 뒤 300여년 뒤인 2차대전 직후에 뜬금없이 거론된다. 이유는 본인이 쓴 작품 베니스의 상인이 나치 독일에서 반유대주의를 위해 연극으로 상영되었다. 이 때 샤일록 역을 맡은 배우가 베르너 크라우스인데 그 연기력이 너무나 절륜해서 철저한 악인 샤일록 역할을 잘 해냈다. 이러한 이유로 전쟁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자 연합국이 크라우스를 나치 부역 혐의로 기소했는데 이 때 크라우스는 나는 내 배역에 충실했을 뿐이고 반유대주의가 문제라면 베니스의 상인을 쓴 셰익스피어부터 무덤 파내고 기소해보라고 맞섰고 너무 맞는 얘기인지라 영국의 문학가와 연극계도 크라우스가 나치라면 셰익스피어도 나치냐며 반발했다. 이 외에 미국, 유럽, 심지어 유대인 연극계조차 배우가 배우 일을 한건데 어쩌냐는 거냐고 반대했다. 같은 연극에 나온 배우들은 그럼 셰익스피어 무덤 파서 기소하고 우리도 기소해보라며 시위까지 벌였다. 그럼에도 끝내 크라우스는 나치에 동조했다는 억지 죄목을 온전히 벗지는 못하여 약간의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이마저도 크라우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대신 내줬다.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버나드 쇼도 이 재판에 대해 "악독한 정권을 향한 어리석은 복수심이 낳은 촌극"이라며 비난하고 "원작대로 제대로 연기한 것을 호평해야지, 그걸 엉터리 복수심으로 얽매이는 것부터가 문제다. 그를 처벌한다면 정말로 셰익스피어 무덤도 파내고 그도 기소해야 하는 거다!" 라며 크라우스를 옹호해 주었다. 크라우스는 재판이 끝난 1948년 이후 한동안 배우 활동이 중단되었으나 1950년대 이후 다시 복귀하여 죽을 때까지 남은 평생 배우로 활동했고, 이에 전후 독일 연극계를 수호하는 데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고 수차례 독일 정부에 의해 상을 받기도 했으며 제대로 천수를 누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출처는 1993년 4월 4일자 뉴욕 타임즈 예술부문 기사
7. 작품[편집]
7.1. 시[편집]
- 비너스와 아도니스
- 루크리스의 능욕
- 불사조와 산비둘기
- 연인의 불평
- 열광적인 순례자
- 기타 소네트
7.2. 4대 비극[편집]
이 4대 비극 속 주인공들은 모두 성격상의 결함을 가지고 있고 그 결함으로 인해 비극이 전개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4대 비극에 포함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작품의 우측에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결함의 종류를 함께 기록했다.
7.3. 5대 희극[편집]
7.4. 역사극[편집]
- 헨리 6세 제1부 ~ 제3부
- 존 왕
- 리처드 3세
- 리처드 2세
- 헨리 4세 제1부 ~ 제2부
- 헨리 5세
- 헨리 8세
- 에드워드 3세 - 현재까지 밝혀진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최근에 포함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가 젊은 시절 참여한 작품으로 전부가 아니라 약 40% 가량을 맡아 집필했다. 1623년 출간된 첫 번째 폴리오에는 포함되지 않았고 조악한 표절로 보는 시선도 있었으나 한편으론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닌가 꾸준히 논의가 있었고 90년대 이후로 셰익스피어의 작품군에 공식적으로 포함되었다. 최근에 포함된 탓에 연극의 국내 초연은 2010년에야 이뤄졌고 2000년대 이전 발간된 국내 셰익스피어 번역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한 시기에 각자 파트를 맡아 진행해 합치는 협업은 촉박한 일정 안에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흔히 행해지던 방법으로 맥베스, 잣대엔 잣대로, 아테네의 티몬은 토마스 미들턴과의 협업이 유력하며 헨리 6세는 크리스토퍼 말로와의 협업이라는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가 아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모두 본인이 출간한 것이 아니라 배우나 작가들이 그때 그때 사정에 맞춰 무대에 올리던 대본을 후대에 긁어모아서 정리하고 편집한 것으로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도 있고, 협업후 대표작가 한명의 이름만 올렸거나, 극작가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는 경우도 흔했기 때문에 지금 전해지는 작품이 전부가 아니다.
7.5. 비극[편집]
- 율리우스 카이사르
- 아테네의 티몬
-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 코리올라누스
-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 로미오와 줄리엣
7.6. 희극[편집]
- 템페스트
- 베로나의 두 신사
- 실수연발
- 윈저의 즐거운 여인들
- 사랑의 헛수고
- 헛소동
- 트로일루스와 크레시다
- 티레의 왕자 페리클레스
- 겨울 이야기
- 심벨린 - 2014년 영화를 통해 현대적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는 '범죄의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다만, 심벨린이라는 극이 유명하지 않은 작품이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내용이 왜 이러냐 할 정도로 반응이 시큰둥했다. 단, 극과 영화 사이에도 간극이 커서 극의 내용을 영화로 잘 살려내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
- 잣대엔 잣대로
-
카르데니오- 돈키호테의 조연 카르데니오의 이야기를 다룬 희곡이라고 하지만 유실되었다.
8. 대중매체[편집]
- DC 코믹스에서 작가 닐 게이먼이 만든 명작 만화 THE SANDMAN에서는 영원 일족의 꿈과 거래를 하여 한여름 밤의 꿈과 템페스트를 써냈다. 셰익스피어가 원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가 영원히 기억되는 것, 꿈이 원한 것은 한여름 밤의 꿈으로 요정들이 영원히 기억되는 것과 자신을 위한 이야기 템페스트였다.
- Epic Rap Battles of History 시즌 1 에피소드 12에 등장해 닥터 수스와 대결을 펼친다.
- Fate/Apocrypha의 등장 서번트 적의 캐스터로 등장.
- Hulu 드라마 세계사 Part 2에 등장하며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를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발표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조시 개드가 연기했다.
- 가면라이더 고스트에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영혼이 담긴 셰익스피어 고스트 아이콘을 통해 고스트 체인지를 할 수 있다. 간바라이징에 등장하는 특별 고스트 체인지이다. 아이콘은 유니클로 콜라보로 한정 판매되었다.
- 소설 경계선상의 호라이즌에서 셰익스피어를 습명한 인물인 토마스 셰익스피어가 있다.
- 꼭두각시 서커스의 등장인물인 기이 크리스토퍼 래쉬는 셰익스피어의 명대사를 줄줄이 꿰고있는 셰익스피어 덕후로 나온다.
- 대역전재판 시리즈에서는 윌리엄 페텐시와 나츠메 소세키가 셰익스피어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한 번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하는 토론에서 결판이 안 나서 각각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코스프레를 하고 대결을 했다(?). 이들이 메인 인물인 대역전재판 2-2는 작중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의 대사가 자주 언급된다. 특히나 윌리엄 페텐시는 툭하면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내뱉을 정도. 그 유명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도 나온다.
- 로보텍스의 오미크론이 가장 좋아한다. 작중에서도 셰익스피어 작품의 구절을 말한다.
- 리그오브레전드의 신지드 또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구절을 패러디하여 말한다.
- 드라마 닥터후에서도 등장. 클래식 시즌 에피소드
에서 언급되는데, 닥터가 햄릿을 읽다가 '이 부분 이렇게 쓰지 말라니까!'라면서 그의 문장력을 비난한다. 뉴 시즌 3 'The Shakespeare Code'에서도 등장하는데, 실재하는 그의 희곡 사랑의 헛수고(Love's Labour's Lost)의 실전된 속편, 사랑의 수고의 결실(Love's Labour's Won)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로, 셰익스피어는 딘 레녹스 켈리(Dean Lennox Kelly)가 연기했다. 더빙판 성우는 양석정. 닥터는 엄청 기대했지만 그는 닥터가 생각한 것과는 좀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34] 그래도 닥터가 인정할 정도로 천재였는데, 그 특유의 문장력은 여전했고, 마사와 닥터의 정체를 눈치만으로 정확히 알아챘다. 거기다 닥터의 사이킥 페이퍼가 통하지 않았었다.[35] - 마비노기의 등장인물 셰익스피어(마비노기)
- 게임 백일몽의 청사진에서 case - 2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 블리치의 주인공인 쿠로사키 이치고가 존경하는 인물이다.
- 서뱀프에서 로우레스가 말이나 상황을 셰익스피어 작품의 대사에 빗대어 표현하곤 한다.
- 셰익스피어 아저씨네 문구점이란 책에서도 가상인물로 출현한다.
-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조지프 파인스가 연기했다.
- 위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 등장하며 한국 초연에서 김성철, 이상이, 정문성이 연기했다.
- 심슨 가족에서 난데없이 좀비로 등장한다. 애완동물 공동묘지를 패러디한 에피소드인데 왜 영국에 묻혀져야 할 그가 미국까지 왔는지 불명. 좀비로 나오는 아인슈타인과 같이 나오다가 호머 심슨에게 헤드샷으로 죽는다.
- 뮤지컬 썸씽 로튼에서는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의 록스타와 같은 인물로 등장한다. 주인공인 닉 바텀의 질시를 사지만[36] 그의 동생 나이젤은 오히려 셰익스피어를 동경한다.
-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에서 셰익스피어 배역이 등장한다. 지침서에 따라 등장 인물을 설정하는데, 로미오와 줄리엣 및 햄릿의 원고가 섞여 시공의 폭풍이 열리고 만다.
- 엘러리 퀸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은퇴한 연극 배우이자 탐정인 드루리 레인이 셰익스피어 작품의 명배우였다. 작품 속에서도 셰익스피어 작품의 구절을 가끔 말한다.
- 만화 BECK으로 유명한 해럴드 사쿠이시의 만화 7인의 셰익스피어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위의 셰익스피어 가상 인물설을 소재로 사용해, 동거인들의 재능을 빌려 극본을 써나가는 전개가 특징이다.
- 팀 포트리스 2에서는 헤라클레스랑 융합되어서 셰익스페라클레스라는 정체 불명의 인물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힘이 센 극작가라고 하며, 2층 건물, 극장 연극, 아메리카 대륙, 로켓 런처를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계단은 못 만들었다. 2010년의 '전쟁이다!' 업데이트 소개에서만 언급. 실제 초상화를 적당히 합성해 만든 초상화가 매우 엽기적이다.
9. 관련 문서[편집]
10. 외부 링크[편집]
- 영어 위키백과: 그에 대한 정보가 방대하게 정리되어 있다. 영어를 잘한다면 참고해보자.
- Shakespeare's Words: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모두 정리되어 있는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