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타 악티카

최근 편집일시 :

1. 소개
2. 커리어
3. 라이브
3.1. 연주력에 대한 고찰
4. 다른 밴드와의 관계
5. 구성원
6. 디스코그라피
7. 기타


파일:Sonata Arctica 2018.jpg
Sonata Arctica
결성
핀란드, Kemi, 1995년 12월
출신지
핀란드 파일:핀란드 국기.svg
장르
파워 메탈, 프로그레시브 메탈, 멜로딕 헤비 락[1]
활동 기간
1995년 ~ 1997년 (Tricky Beans)
1997년 ~ 1999년 (Tricky Means)
1999년 ~ 현재 (소나타 악티카[2])
구성원
토니 카코 (보컬, 키보드, 1995~)
토미 포르티모 (드럼, 1995~)
헨릭 클링엔베리 (키보드, 2002~)
엘리아스 빌야넨 (기타, 2007~)
파시 카우피넨 (베이스, 2013~)
레이블
Nuclear Blast 파일:독일 국기.svg
Avalon Label(アヴァロン・レーベル, 아발론 레이블) 파일:일본 국기.svg

1. 소개[편집]


핀란드파워 메탈 밴드. 1995년 겨울에 핀란드 북부의 도시 케미에서 결성되었다. 본래는 트리키 빈스(Treaky Beans)[3]라는 이름으로 결성했으나 이 때의 장르는 하드 록이었다. 1998년 스트라토바리우스의 영향을 받아 파워 메탈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면서 밴드의 이름도 레이블의 제안을 받아 소나타 악티카(Sonata Arctica)로 바꾸고 데뷔했다. 데뷔 당시 토니 카코를 제외한 모든 멤버들이 10대라는 점이 인상적이며, 혜성 같은 신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데뷔했다.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라 이들의 곡 중에서 Silence 앨범 수록곡 Black Sheep이 한때 리듬게임 기타프릭스&드럼매니아 시리즈에 판권곡으로 수록되기도 했다. 라이브 앨범 3장 중 2장(Songs Of Silence, For The Sake Of Revenge)이 일본에서 한 라이브를 담은 앨범일 정도.

2010년 1월 12일 멜론 악스에서 공연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취소된 흑역사가 있다.메탈의 불모지 한국


2. 커리어[편집]


초기 작품에선 스트라토바리우스식 멜로딕 파워 메탈이 두드러지며, 헬로윈의 계보를 잇는 모던 멜로딕 파워 메탈 계에서 프로그레시브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밴드로서 당시 등장했던 수많은 양산형 프록-파워 계의 원조가 되는 밴드. 파워 메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앨범은 1~4집이며 5집부터 프로그레시브적인 경향이 많이 들어간다[4]. 이들의 데뷔 앨범 Eclpitica는 스트라토바리우스를 연상케 하는 화려함과 쏜살 같은 스피드, 그리고 청량감으로 파워 메탈씬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마침 이들의 전성기인 2000년대 초반부는 그들의 롤 모델인 스트라토바리우스가 쇠퇴할 즈음이라 소나타 악티카는 크게 인기를 얻게 된다.

초기 작품에 대하여서는 음악성이 단조롭다든지 깊이가 없다든지 하는 비판이 있어왔고, 이러한 비판들에 따라 2000년대 후반부터 점차 프로그레시브적인 요소를 많이 도입하였다[소나타악티카의입장]. 이런 변화가 데뷔 때의 전형적 파워 메탈의 쾌감을 버리는 데 일조해서 많은 구 팬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5집 Unia까지만 해도 달리던 거 멈추고 미들 템포 위주로 편성한 정도였는데, 다음 작품인 The Day of Grays에서는 키보드의 비중이 증가하고 서정성 위주로 음악성이 선회하면서 이전의 박력이 줄어들었고, 7집인 Stones Grow Her Name에서도 그 경향은 이어졌다.

8집 Pariah's Child에서는 1, 2집과 7집의 감성을 융합하는 음악을 보여줬는데 팬들 사이에서는 크리스마스 노래를 연상시키는 지나치게 밝은 분위기와 밋밋하고 락적인 믹싱으로 호불호가 갈렸다. 이는 2010년대에 발매된 이들 앨범에 공통적으로 제기된 문제.

Pariah's Child 발표 후 몇달이 지나지 않아 갑자기 뜬금없이 1집 Ecliptica를 현재의 라인업으로 재녹음하여 밴드 15주년 기념으로 10월 24일에 발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팬들은 충분히 예전 버젼도 좋은데 굳이 재녹음을 해야하냐는 의문을 표하고 있고, 차라리 새로운 곡을 작곡해서 새 앨범을 내는거 더 낫겠다는 둥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결국 2014년 10월에 나온 Ecliptica 재녹음 앨범은 팬들에게 욕만 얻어먹었다[5]

2016년 10월 7일에 9집 앨범 The Ninth Hour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을 끝으로 국내에는 더 이상 라이센스반이 나오지 않고 있다.

2019년 9월 6일에 10집 Talviyö가 발매되었다. 메탈의 색채가 거의 소멸되어 락의 색채만이 남았으며, 토니 카코의 보컬도 쇠락한 상태[6]. 팬들 사이에서는 이제 파워 메탈이라는 딱지를 떼고 들어야 겨우 들을 만하다고 할 정도로 평가가 소나타 악티카 사상 최악을 찍고 있으며, 6집 The Day of Grays부터 이어진 키보드의 비중 증가와 그 외 나머지 악기의 믹싱이 메탈에서 락으로 변해가는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하고 있다.

국내 노래방에 있는 곡으로는 TJ미디어에 Blank File(20050)과 Full Moon(20742)이 수록되어 있으며, 금영엔터테인먼트에는 Blank File(60432), Full Moon(60934), San Sebastian(60850), Weballergy(60710)이 수록되어 있다. 부르다 목나가는건 일상다반사

3. 라이브[편집]


라이브 실력이 상당히 좋지 않아서 이걸로 욕도 많이 먹었다. 대부분의 욕은 보컬인 토니 카코의 약한 목에서 비롯된다. EP앨범인 Successor에 수록되어 있는 Fullmoon 라이브의 삑사리라든가. 라이브 앨범인 Songs Of Silence에서도 안 좋은데 보컬인 토니 카꼬가 도쿄 라이브 당시 몸상태가 안 좋았다고 인터뷰서 밝혔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는 보컬이 연주 전체의 속도감을 줄일 정도는 아니었는데 2001년부터 보컬 컨디션이 독감 때문에[7] 전체적으로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2003년부터 밴드가 일부 곡의 보컬 음역대를 낮추어 속도감을 줄이는 고육지책을 택할 정도였다. 2004년에는 보컬이 음원과 동일한 라이브를 선보일 정도로 역량이 성장하였으나 어려운 초고음 곡을 줄인 라이브 공연 자료만 남아 있어 정확한 판단이 힘들며, 2005년부터 파워메탈에 흥미를 잃어 락 음악으로 노선을 전환하기로 결심한 나머지 음역을 일부러 낮춤으로서 토니 카코가 2016년까지 전성기 시절 곡을 오랫동안 원숙히 부를 수 있는 역량을 가졌는지 혹은 유지하였는지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그놈의 독감만 아니었어도...

두 번째 라이브 앨범이었던 For The Sake Of Revenge에서는 많이 나아진 모습을 선보였다. 곡 본래의 키까지는 아니었지만. 이후 연륜이 쌓이면서 과거와 같은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세 번째 라이브 앨범 Live In Finland에선 역대급 라이브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대신 믹싱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러나 2016년부터 토니 카코의 역량이 쇠퇴하는 것을 나머지 멤버들이 보조하기 부쳐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전체적으로 밴드의 연주력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주력은 쇠퇴하지 않은 편이지만 관중들을 끌어모으는 날렵함을 잃은 상태가 되었다.

3.1. 연주력에 대한 고찰[편집]


앞서 언급하였듯 보컬을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의 연주력은 쇠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인을 추측하자면, 평소 인터뷰할 때의 목소리를 들으면 중저음인데, 앙그라의 에두처럼 본래 중저음 보컬에 능숙한데 억지로 고음역을 만든 경우로 추정된다. 또한 주요 창법이 고음의 메탈보다는 중저음의 메탈 파워 보컬 및 발라드에 특화되어 있는데, 파워풀한 창법을 억지로 만든 고음역에서 지속하려니 목에 무리가 쉽게 가는 것으로 추정된다[8]. 특히 소나타 악티카의 전성기 시절에는 두성, 샤우팅만이 아닌 휘슬 레지스터와 비슷한 창법[9]까지 동원하여 음역이 테너에 조금 못 미치는 바리톤의 성대가 감당하기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는 방식으로 노래해야 했다.

다만 쇠퇴하였다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파워메탈이 기준이 되어버린 전성기의 그림자에 의해서고, 소나타 악티카 본인들이 진정 바라는 멜로딕 헤비 락 기준에서는 준수하다.

4. 다른 밴드와의 관계[편집]


상술한 것 같이, 같은 나라 출신 밴드인 스트라토바리우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인 토니 카코는 스트라토바리우스의 음악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스트라토바리우스 커버도 꽤 한듯.본인들의 노래 뒷부분에 스트라토바리우스 노래를 잇는다든지... [라이브] 스트라토바리우스, 랩소디와 함께한 투어에서 Black Diamond를 스트라토바리우스 티를 입고 부른다든가... 밴드 초기 라이브에서 UnOpened의 인트로를 스트라토바리우스의 Years Go By와 믹스한 적도 있다. 이외에도 많은 밴드의 곡들을 커버했다. 2000년에는 스트라토바리우스 라이브 투어의 서포트 밴드가 되어 동행하기도 했으며, 스트라토바리우스의 보컬 티모 코티펠토가 2집 Silence에 보컬로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스트라토바리우스의 앨범 Destiny의 보너스 트랙인 Cold winter night에는 소나타 악티카의 기타리스트가 참여 하기도 했다. 또한 소나타 악티카 3집앨범 Winterheart's Guild에는 스트라토바리우스의 키보디스트 옌스 요한슨이 참여한다. 이후 야니가 소나타 악티카를 나간 뒤 스트라토바리우스의 멤버들과 Cain's Offering으로 함께 협업하게 된다.

나이트위시와도 꽤 친한듯. 토니 카코가 나이트위시의 리더 투오마스 홀로파이넨과의 관계가 친밀하여 한 때 투오마스가 밴드의 방향성 문제로 고민할 때 함께 여행을 하면서 고민을 나누기도 했으며[10], 2004년과 2005년에는 같이 라이브 투어도 다니고 Symphony Of Angels란 이름의 한정판 라이브 앨범도 냈다.베이시스트/보컬인 마르코 히에탈라와는 Northern King라는 4인조 보컬 유닛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북유럽 메탈의 슈퍼스타 유닛이라는 명칭답게 상당히 고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토니 카코는 에게도 큰 영향을 받았다고 인터뷰 한 적이 있다.


5. 구성원[편집]


  • 현재 멤버
    • 토니 카코(Tony Kakko) - 리더, 보컬, 키보드 (1995~) : 밴드의 거의 모든 곡을 작곡 및 작사하고 있는 소나타 악티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Flamenco라는 무명의 밴드[11]에서 마르코 파시코스키와 인연을 맺었으며 이후 소나타 악티카의 전신인 트리키 빈스에 합류했다. 음악적으로는 데빈 타운센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8집 시절 출간된 책에서 언급된 것에 따르면 마르코가 처음에 스트라토바리우스의 "Episode"를 들려줬을 때 도저히 못 들어주겠다며 극혐했다고(...) 한다. 그래도 "Visions"는 좋아했다는 듯. 토니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다 해 본 결과물이 Unia라는 것과 어떤 앨범이든 프로그레시브적인 요소만큼은 반드시 들어가있다는 것[12], 그리고 음악적으로 어디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는가를 생각해 보면 원래 취향이 파워 메탈보단 프로그레시브 록에 가까운 듯하다.
    • 토미 포르티모(Tommy Portimo) - 드럼 (1995~)
    • 헨릭 클링엔베리(Henrik Klingenberg) - 키보드 (2002~)
    • 엘리아스 빌야넨(Elias Viljanen) - 기타 (2007~)
    • 파시 카우피넨(Pasi Kauppinen) - 베이스 (2013~)

  • 이전 멤버
    • 야니 리마타이넨(Jani Liimatainen) - 기타, 백킹 보컬 (1995-2007) : 초기 소나타 악티카의 사운드를 대변하는 기타리스트이다. 소나타 악티카 재직 시절 야니가 작곡 및 작사한 유일한 곡으로 4집의 My Selene이 있다. 징병 문제로 5집 이후 소나타 악티카를 탈퇴한 뒤, 여러 뮤지션과의 협업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프로젝트 그룹 Altaria에도 참여했고, 이후 선배인 스트라토바리우스의 보컬 티모 코티펠토와 함께 Cain's Offering에서 활약하고 스트라토바리우스의 후반기 작품들의 작곡에 참여하였으며, 2017년부터는 나이트위시의 전 보컬 아네트 올즌과 함께 The Dark Element로 활동 중이며, 2019년에는 Insomnium에 합류했다. 2022년에는 솔로 앨범 My Father's Son을 발매했다.
    • 마르코 파시코스키(Marko Paasikoski) - 기타(1995-1997), 베이스(1997-1998, 2000-2013) : 펜티 페우라와 함께 소나타 악티카의 전신인 트리키 빈스를 창립한 멤버이다. Flamenco라는 무명의 밴드에서 처음으로 토니를 만났다. 7집 이후 투어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밴드를 탈퇴했다.
    • 펜티 페우라(Pentti Peura) - 베이스(1995-1997) : 마르코 파시코스키와 함께 트리키 빈스를 창립한 베이시스트이다. 1997년 리허설에 참여하지 않는 등 밴드 활동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밴드에서 쫓겨났다. 소나타 악티카 책에 수록된 야니의 회상에 따르면 음악가로서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빌리 시언이 할 법한 온갖 멋져보이는 트릭은 다 연습하면서 기본기에는 크게 신경을 안 썼다고.
    • 얀네 키빌라티(Janne Kivilahti) - 베이스, 백킹 보컬 (1998-2000)
    • 미코 하르킨(Mikko Härkin) - 키보드 (2000-2002)


6. 디스코그라피[편집]


  • 1집 - Ecliptica (1999년 11월 22일)
    • 대표곡 Fullmoon / Replica / Blank File

  • 2집 - Silence (2001년 6월 21일)
    • 대표곡 Weballergy / Black Sheep / San Sebastian / Wolf and Raven

  • 3집 - Winterheart's Guild (2003년 2월 21일)
    • 대표곡 Abandoned, Pleased, Brainwashed, Exploited / The Cage / Victoria's Secret
이 앨범부터 프로그레시브적 성향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 4집 - Reckoning Night (2004년 9월 22일)
    • 대표곡 Don't Say A Word / My Selene / White Pearl, Black Oceans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요소와 파워 메탈의 요소가 가장 적당한 비율로 잘 어우러졌던 앨범.

  • 5집 - Unia (2007년 5월 25일)
    • 대표곡 Paid In Full / Caleb / The Vice[13]
앨범명인 Unia는 핀란드어로 '꿈들(Dreams)'이라는 뜻이며, 우니아라고 읽는다. Unia는 토니 카코가 당시에 품고 있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부으면서 하고 싶었던 모든 걸 시도해 본 앨범으로, 다른 앨범들에 비해 굉장히 여유로운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이 앨범은 앨범명에 걸맞게 몽환적인 감성을 보이는 한편 이전에 비해 노골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띈다. 3집과 4집에서 보여준 프로그레시브적 경향이 이 앨범에서 더욱 짙어졌으며,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앨범은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리는 편이다. 이 앨범이 야니가 참여한 마지막 앨범이지만, 야니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이 앨범을 좋아하지 않으며 여기에 자신이 기여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 6집 - The Days of Grays (2009년 9월 16일)
    • 대표곡 Deathaura / The Last Amazing Grays / Flag In The Ground / Juliet
5집에 비해 심포닉해졌고 키보드의 비중이 늘어났다. 굉장히 여유롭게 만들었던 Unia에 비해 데드라인에 쫓기면서 급하게 만든 것으로 알려진 앨범이다. 그래서인지 후반부는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지만, 전반부 트랙만큼은 (4집 이후의 소나타도 좋아하는 팬들 기준으로) 역대 최고로 뽑히곤 한다. 보너스 트랙 중 Nothing More는 토니가 작곡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곡 중 하나로, 키보디스트 헨릭이 작곡했다.

  • 7집 - Stones Grow Her Name (2012년 5월 18일)
    • 대표곡 Somewhere Close To You[14]/ I Have A Right[15]
6집까지의 프로그레시브적 노선에서 다시 한 번 방향을 틀어 단순한 락 음악을 지향한 앨범.

  • 8집 - Pariah's Child (2014년 3월 28일)
    • 대표곡 - The Wolves Die Young / Cloud Factory
본 앨범은 멤버들이 초창기의 파워 메탈 음악으로 회귀하겠다고 밝힌 앨범으로 밴드의 로고도 다시 예전 로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대체적으로 좋은 편으로, 혈기 넘치던 1, 2집 시절의 곡이 아닌 5~7집을 통한 여러 실험적인 음악 사운드를 적절하게 녹여내어 성숙미가 느껴지는 앨범이다. 전반적으로 5~6집의 어둡고 헤비한 감성은 잘 느껴지지 않으며 7집을 파워 메탈에 가깝게 바꾼 느낌이 강하다.

  • 9집 - The Ninth Hour (2016년 10월 7일)
    • 대표곡 - Life / Till Death's Done Us Apart / White Pearl, Black Oceans II
8집보다 믹싱이 따뜻해졌고나쁘게 말하면 둔하게 들린다, 발라드 곡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곡의 퀄리티 자체는 8집보다 높으나 밋밋한 믹싱이 모든 걸 망쳐버린 앨범이라는 평이 종종 들리는 앨범이다. 이 앨범의 일본반 보너스 트랙인 "The Elephant"는 토니가 20분만에 만든 곡이다.

  • 10집 - Talviyö (2019년 9월 6일)
    • 대표곡 - Whirlwind / Storm The Armada / The Raven Still Flies With You[16]
앨범명인 Talviyö는 핀란드어로 '겨울밤'이라는 뜻이며, 탈비위외에 가깝게 발음된다. 엘리아스가 발음하는 걸 직접 들어보자. The Ninth Hour 투어 후반부터 본격화된 토니의 보컬 문제와 고질적인 믹싱 문제가 맞물려 탄생한 괴작이다. 과거의 소나타 같은 느낌을 주는 곡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전반적으로 소리가 매우 탁하다.

  • 11집 - Clear Cold Beyond (2024년 3월 8일)
8집에 이어 또 한 번 이번엔 정말로 파워 메탈로 회귀하겠다고 선언한 앨범으로 이 앨범만의 특이사항으로는 1집부터 7집까지의 믹싱을 맡았던팬들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미코 카밀라(Mikko Karmila)가 다시 믹싱 엔지니어로 돌아왔다는 것이 있겠다. 공개된 디지털 싱글들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나 사전 리뷰어들의 평가는 이전에 비해 매우 긍정적이며, 토니의 목소리도 10집 시절에 비하면 많이 회복되었다[17].

라이브 앨범
  • Songs Of Silence - Live In Tokyo (2002년 11월 20일)
  • For The Sake Of Revenge (2006년 5월 31일)
  • Live In Finland (2011년 11월 11일)

어쿠스틱 앨범
  • Acoustic Adventures Volume One (2022년 1월 21일)
  • Acoustic Adventures Volume Two (2022년 9월 30일)


7. 기타[편집]


  • 컨셉 앨범은 없지만 곡들 간 스토리가 이어지거나 똑같은 테마를 공유하는 곡들이 있다. 전자는 White Pearl, Black Oceans(4집) - White Pearl, Black Oceans II(9집)가 대표적이며, 후자는 2집의 'The End of This Chapter'부터 시작된 케일럽(Caleb) 사가[18]가 있다.

  • 소나타 악티카의 4집까지를 좋아하는 팬들은 5집 이후로 파워 메탈의 색채를 잃고 있다고 불만을 품었고 10집에 와선 완전히 무너져버린 모습에 실망하고 있다. 밴드의 작곡/작사 담당인 토니 카코가 파워 메탈은 작곡하기가 너무 쉬워서 흥미가 떨어지기에 방향성을 바꾸고 싶다는 입장이다보니 앞으로도 파워 메탈 밴드로 돌아올 가능성은 상당히 요원해 보인다. 그나마 8집부터 초창기로 회귀할 움직임을 조금씩 보이고 있지만, 4집 정도는 몰라도 1~2집과 같은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 듯하다.

  • 아이러니하게도 소나타 악티카가 강조하는 것은 그들의 선배 밴드 모터헤드, 특히 선배 메탈 음악인 레미 킬미스터의 입장과 비슷한데, 정작 레미와 모터헤드가 초지일관 전설이 된 반면 토니와 소나타 악티카가 파워메탈에서 힘 빠진 말랑말랑한 락으로 팬들의 혹평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묘한 기분이 드는 관계다.
[1] 7집 시절 토니 카코의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이 정할 수 있다면 밴드의 장르를 멜로딕 헤비 락이라고 하고 싶다고 한다. 정확히는 해당 발언은 자신들을 파워 메탈 밴드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로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전형적인) 파워 메탈을 좋아하며 파워 메탈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명백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우릴 싫어하고, 파워 메탈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매력을 느끼고 우리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걸 알고 나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멜로딕 헤비 락'이라고 하면 우리가 하는 음악이 가장 잘 설명되지 않을까 싶다. 나도 잘 모르겠다. 여러 장르가 혼합되어서 한 가지로 분류할 수 없는 느낌이다. 그러니 그냥 멜로딕하고 헤비한 락 밴드라고 하자."라고 답한 거다.[2] 국내 라이센스반에는 '소나타 아티카'로 표기되어있다.[3] 8집 시절에 출간된 책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토니의 유두(...)에서 유래한 이름이다.[4] 다만 소나타 악티카는 자신들의 장르 정체성을 파워 메탈이 아닌 멜로딕 헤비 락이라고 생각하였듯, 편곡의 중심을 멜로딕 헤비 락으로 맞춘 다음 진행의 중심만 파워 메탈에서 프로그레시브 메탈로, 프로그레시브 메탈에서 멜로딕 헤비 락으로 바꿔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트리키 빈스 시절 곡을 들어보면 토니가 노래를 못한다는 걸 빼면 지금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즉 진행법이 달라졌을 뿐 실질적인 편곡은 어디까지나 한결같았던 것인데, 하필 전성기때 파워 메탈로 유명해지는 바람에 자신들의 원했던 방향의 연주가 전성기만큼 약발이 들어가질 않아서(...) 빛이 바랜 감이 있을 뿐이었던 것.근데 11집 발매를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토니는 자기들은 한결같이 파워 메탈의 요소를 넣고 있었다고 말했다(...)[소나타악티카의입장] 토니 카코의 인터뷰에 따르면 본인들이 30줄일 당시 4집 Reckoning Night 투어 이후로 모든 힘을 다 써버린 것처럼 느껴져 더 이상 20대처럼 젊었을 때 체력을 갖고 미친 듯이 노래할 수 없겠다고 느껴 음역을 낮췄다고 한다. 7집 시절인 2012년에는 똑같은 음악을 계속 하는 것을 지긋지긋하게 느끼기 때문에 파워 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메탈 둘 다를 버리고 락으로 방향성을 선회했다는 걸 간접적으로 밝혔고 9집 시절의 인터뷰에선 자신들만의 음악을 하는 대신 스트라토바리우스를 따라하려고 한 게 후회스럽다는 걸 암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당시엔 그렇게 '뇌를 빼놓은 것 같은 빠른 파워 메탈'을 작곡하는 게 재미있었다는 듯.[5] 다만 소나타 악티카 본인들에게는 정말 억울한 비판인데, 자기들과 계약한 일본 쪽 레이블 'アヴァロン・レーベル(아발론 레이블, Avalon Label)'이 원곡들과 똑같은 연주를 해서 리메이크한 곡을 재발매하라고 강권에서 밴드에서 재해석할 권한도 없이 발매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80년 이후 쇠퇴해서 유럽에서조차 부업을 해야 밥벌이를 해먹고 살 정도의 밴드가 대부분이 되어버린 메탈 음악 시장의 음악인들이 일거리를 거절할 여지가 부족한 환경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6] 사실 보컬 역량은 2016년부터 눈에 띄게 쇠퇴하여 나머지 멤버들의 연주력으로도 보충하기 벅찰 정도가 되었는데, 2019년 10집 Talviyö를 내기 전까지만 해도 수면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다.[7] 우습게 보면 안 되는 것이, 독감은 일반 감기와 달리 호흡기에 지대한 손상을 입히며, 위산 역류, 구토, 호흡기 질환 등의 몸이나 목이 아픈 것은 성대에 무리가 가게 하는 치명적인 질환이 된다. 당장 독감, 성대, 보컬에 대한 단어를 영어로 연관지어 검색하면 독감, 위산 역류, 구토가 치명적이라고 수도 없이 강조하는 자료가 대부분이다.[8] 다만 소나타 악티카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스트라토바리우스의 보컬 티모 코티펠토가 본래 음역이 테너고 창법에 스크래치를 잘 넣지 않는 편이고 관리를 잘한 편에 속하긴 하지만, 토니 카코의 음역이 코티펠토보다 살짝 낮은 바리톤과 테너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정도고, 에두의 경우 전성기 당시 소속사의 혹사에 시달려 목에 무리가 가는 바람에 전성기를 일찍 잃어버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 두 보컬과의 비교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9] 정확히는 휘슬 레지스터라기보다 가성과 휘슬 사이에 있는 특이한 창법인데, 이 창법이 사용된 곡은 소나타 악티카의 전성기 곡에서도 매우 한정되어 있다.[라이브] 앨범 Songs Of Silence의 False News Travels Fast다.[10] 이 때 투오마스는 기타리스트 엠푸의 불만과 베이시스트 사미 반스카의 성실성 문제로 인해 밴드 활동을 힘들어했으며 Wishmaster 투어를 마치고 나이트위시를 해체할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토니 카코와 여행을 다녀온 뒤 밴드 활동을 계속하기로 다짐하여 베이시스트를 마르코 히에탈라로 교체하고 보다 헤비한 사운드로 Century Child를 발매하여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11] 토니 자신의 말에 따르면 이때부터 노래다운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고 작곡가로서의 자신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여기서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는 듯.[12] 1집의 "Destruction Preventer", 2집의 "The Power Of One", 3집의 "The Ruins Of My Life", 4집의 "The Boy Who Wanted To Be A Real Puppet", "Wildfire", "White Pearl, Black Oceans", 5집 및 6집에 수록된 많은 곡들, 7집의 "Wildfire, Part: II" 및 "Wildfire, Part: III", 8집의 "Larger Than Life", 9집의 "Till Death's Done Us Apart", "White Pearl, Black Oceans, Pt II", 10집의 "The Raven Still Flies With You", 11집의 "Dark Empath" 등.[13] 8집 시절 출간된 소나타 악티카 책에 담긴 토니의 말에 따르면 Unia 당시 자신이 원했던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하는 독특한 사운드의 곡이다. 토니가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지만, 라이브 공연에서 연주된 적은 한 번도 없다.[14] 8집의 'Take One Breath'와 더불어 원래는 토니의 솔로 앨범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었다.[15] 처음에는 보너스 트랙일 예정이었으며 빠른 속도의 파워 메탈 곡이었으나 나중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꿨다고 한다.[16] 유튜브 등에는 'With You'가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음반과 공식 홈페이지의 디스코그래피에는 'With You'가 적혀있다.[17] 11집 발매를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Talviyö 녹음 당시 보컬에 많은 문제를 겪고 있었다는 걸 밝혔는데, 성대 결절 같은 질병이 있었던 건 아니고 혀의 긴장도가 너무 높아 문제가 생긴 거였다고 한다.[18] The End of This Chapter(2집), Don't Say a Word(4집), Caleb(5집), Juliet(6집), Till Death's Done Us Apart(9집), The Last of the Lambs(10집), Dark Empath(11집)가 여기에 속한다. 케일럽 사가는 인터뷰에서 토니가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처럼 옴니버스물에 가깝다고 밝힌 적이 있으며 11집의 싱글 중 하나인 "Dark Empath" 공개 당시에도 사건 발생순으로 이어지는 연대기가 아니라 똑같은 스토커 테마를 공유하는 곡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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