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교

덤프버전 :



파일:external/www.daejeon.go.kr/20151116100534566.jpg

수운교 水雲敎
로고
[1]
파일:external/www.newscj.com/26068_24246_5512.jpg
설립년도
1923년
분류
한국민족종교협의회, 동학 계통의 종교
신앙 대상
옥황상제 하날님
창교주
이상룡(이최출룡자)
총무원장[2]
김영대
본부



공식 사이트
http://www.suwoongyo.or.kr/
신자 숫자


1. 개요
2. 역사
2.1. 창교주 이최출룡자 이상룡
2.2. 수운교 창교와 본당 건립
2.3. 군사 정권 시절의 위기와 근황
3. 신앙 대상과 교리
4. 문화재 지정 현황
5. 참고사항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수운교는 이상룡(李象龍, 1824년? ~ 1938년)이 서울에서 창교한 동학 계열 종교로, 현재 본부는 대전 유성구 추목동에 있다. 참고


2. 역사[편집]



2.1. 창교주 이최출룡자 이상룡[편집]


동학의 창시자이자 천도교의 교조인 최제우는 1864년 대구에서 처형당했다. 수운교의 교리에 따르면 이때 최제우가 신통력을 부려[3][4] 가짜 육신이 죽은 듯 보였을 뿐, 진짜 육신은 살아남아 금강산 비로봉 도솔암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도솔암에서 천일 기도를 마친 뒤 성을 이최李崔로 고치고 출룡자出龍子라는 호를 지어 전국을 떠돌며 수도를 했다.

이상룡이 정말 자기 주장대로 최제우라면 1822년에 태어나[5] 1938년에 사망했으니 117세까지 산 셈이다.


2.2. 수운교 창교와 본당 건립[편집]


이상룡은 1923년 서울에서 천황교라는 교명으로 창교하려 했으나 일제가 허용하지 않아 수운교라는 교명으로 창교했다. 이상룡은 자신이 최제우의 후신이라 선전하며 포교 활동을 전개했고, 동학계 종파들인 천도교ㆍ시천교ㆍ상제교 신자들이 다수 모여들었다. 그러나 이들 종교들로부터 최제우를 사칭한다는 논란과 시비가 일어나자 1925년에 교단 본부를 충남 대덕군 탄동면 추목리(현재 대전 광역시 유성구 추목동) 금병산 기슭으로 이전 했다.

1929년에는 조선 시대 건축술을 잘 보여주는 수운교 도솔천을 건립했다. 수운교 도솔천은 이상룡이 직접 설계하고 (경복궁과 보천교 본당 십일전을 지은) 도편수 최원식이 건축한 걸작이다.[6] 이후 사람들을 상대로 포교하여 인근에 수운교 신앙촌을 형성했다. 1933년부터는 천단 내에 금강탑ㆍ미륵탑ㆍ무량수탑을 건립하였다.

1937년 일제의 식민 통치가 본격적으로 민족 말살기에 접어들면서 문화 탄압이 거세지자 종교 생명의 연명책으로 1938년에 일본의 진종불교(眞宗佛敎)와 야합하여 불당을 짓고 아미타불을 안치, 흥룡사(興龍寺)란 간판을 걸고 활동하였으나, 광복 이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2.3. 군사 정권 시절의 위기와 근황[편집]


5공 시절 군사 정부는 수운교 본부 인근을 군사 시설 보호 구역으로 지정하고 다른 곳으로 쫓아내려고 했다. 수운교 신앙촌은 군사 정부에 의해 사라졌고 자운대가 들어섰다. 수운교는 법정 소송을 통해 현 위치에서 자기네 종교 시설을 지켜 현재에 이른다.


3. 신앙 대상과 교리[편집]


동학의 종파답게 신앙 대상은 ‘한울님’이다.[7]

기본 교리는 유교, 불교, 도교의 원리를 합일하여 포덕천하(布德天下)·광제창생(廣濟蒼生)·보국안민(輔國安民)함으로써 동서양이 합덕되는 용화세계, 지상천국을 건설하자는 불천심일원(佛天心一圓)을 종지로 한다.[8]

사람이 곧 하늘이기 때문에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 하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수심정기(守心正氣)로 성경신(誠敬信)을 잘 실천하면, 죄악으로부터 구제되어 지상천국에서 살게 된다고 한다. 종교의례로는 조례식ㆍ석례식ㆍ법일예식이 있으며, 이런저런 기념일들이 있다.

수운교 교훈
1. 우리는 제세주 수운천사님을 모앙한다.
2. 우리는 유불선 합일의 대도를 천하에 전도한다.
3. 우리는 포덕천하 · 광제창생 · 보국안민의 삼대원을 성취한다.
4. 우리는 사람섬김을 하늘님 공경하듯이 한다.
5. 우리는 정성과 공경과 믿음으로 지상천국을 건설한다.


4. 문화재 지정 현황[편집]


수운교 도솔천은 대전 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다.

다른 시설들도 대한민국의 등록 문화재 제331호 ~ 335호로 지정되었다.

제331호 대전 수운교 봉령각
제332호 대전 수운교 용호당
제333호 대전 수운교 본부 법회당
제334호 대전 수운교 본부 사무실
제335호 대전 수운교 종각 및 범종

이외에 수운교석종(水雲敎石鐘)이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


5. 참고사항[편집]


자운대 인근에[9] 자리 잡았으므로 한때 수운교에 출입하려면 군 부대 출입하듯 신분증 검사까지 했다고 한다. 또한 뒷산 금병산은 입산이 금지되었으나 현재는 가능하다.

참고 기사1
참고 기사2
참고 기사3
참고 기사4

6.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4 10:36:51에 나무위키 수운교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색을 바꾸고 가운데 점을 찍으면 천도교 로고와 같다.[2] 이최출룡자가 1938년에 사망한 이후 단일 후계자는 없고 협회식으로 교단을 유지한다.[3] 하늘님(혹은 한울님)의 보호라는 설명도 있다.[4] 동학 문헌에는 최수운이 처형당할 때 폭풍이 부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수운교 공식 홈피에는 최수운이 몸을 피해 이상룡으로 위장했다고 주장한다. 네이버 백과에는 수운의 혼이 강림했다고 주장한다고 나온다.[5] 역사학계에서는 최제우의 출생년도가 1824년이라고 보지만, 수운교는 1822년이라고 주장한다.[6] 그래서 세 건물의 외형이 매우 비슷하다.[7] 그 밖에도 천존 옥황상제ㆍ일월ㆍ칠성 등 많은 신앙 대상들을 함께 받든다.[8] 불천심일원이란, 하늘의 마음은 곧 하나이면서 원만구족한 무극대도임을 나타내는 뜻이라고 한다.[9] 912번 버스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