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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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주요 수훈 및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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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칸 영화제
파일:칸 영화제 로고.svg
각본상
제26회
(1973년)


제27회
(1974년)


제28회
(1975년)

수상자 없음

스티븐 스필버그, 할 바우드, 매튜 로빈스
(슈가랜드 특급)


수상자 없음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oscar_logo.svg
어빙 G. 텔버그 기념상
제59회
(1987년)

스티븐 스필버그
작품상
제65회
(1993년)


제66회
(1994년)


제67회
(1995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용서받지 못한 자)

스티븐 스필버그
제랄드 R. 몰렌
브랑코 러스틱
(쉰들러 리스트)

웬디 피너먼
스티브 티쉬
스티브 스타키
(포레스트 검프)
감독상
제65회
(1993년)


제66회
(1994년)


제67회
(1995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용서받지 못한 자)

스티븐 스필버그
(쉰들러 리스트)

로버트 저메키스
(포레스트 검프)

제70회
(1998년)


제71회
(1999년)


제72회
(2000년)

제임스 카메론
(타이타닉)

스티븐 스필버그
(라이언 일병 구하기)

샘 멘데스
(아메리칸 뷰티)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파일:goldenglobe.png
감독상
제50회
(1993년)


제51회
(1994년)


제52회
(1995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용서받지 못한 자)

스티븐 스필버그
(쉰들러 리스트)


로버트 저메키스
(포레스트 검프)

제55회
(1998년)


제56회
(1999년)


제57회
(2000년)

제임스 카메론
(타이타닉)

스티븐 스필버그
(라이언 일병 구하기)


샘 멘데스
(아메리칸 뷰티)

제79회
(2022년)


제80회
(2023년)


제81회
(2024년)

제인 캠피온
(파워 오브 도그)

스티븐 스필버그
(파벨만스)





역대 새턴 시상식
파일:saturn-award.png
영화 감독상
제4회
(1976년)


제5회
(1977년)


제6회
(1978년)

댄 커터스
(마리안의 욕망)

스티븐 스필버그
(미지와의 조우)
조지 루카스
(스타워즈)


필립 카우프만
(우주의 침입자)

제8회
(1980년)


제9회
(1981년)


제10회
(1982년)

어빈 커슈너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

스티븐 스필버그
(레이더스)


니콜라스 메이어
(스타트렉 II: 칸의 분노)

제19회
(1992년)


제20회
(1993년)


제21회
(1994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스티븐 스필버그
(쥬라기 공원)


제임스 카메론
(트루 라이즈)

제28회
(2001년)


제29회
(2002년)


제30회
(2003년)

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스티븐 스필버그
(마이너리티 리포트)


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스티븐 스필버그
Steven Spielberg
KBE, OMRI


파일:스티븐 스필버그.jpg

본명
스티븐 앨런 스필버그
Steven Allan Spielberg
출생
1946년 12월 18일 (77세)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직업
영화 감독
활동
1959년 – 현재
학력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롱비치캠퍼스 (영화학, 전자예술학 / 학사)[1][2]
서명
파일:스티븐 스필버그 서명.svg
링크
파일:IMDb 로고.svg/ 파일:기네스 세계기록 로고.svg[3]
[ 펼치기 · 접기 ]
거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신체
170cm, A형
부모
父 아놀드 스필버그[1]
(1917년 2월 6일 - 2020년 8월 26일) 향년 103세
母 레아 프란시스 스필버그[2]
(1920년 1월 12일 - 2017년 2월 21일) 향년 97세
배우자
에이미 어빙 (1985년 - 1989년)
케이트 캡쇼[3] (1991년 - 현재)
자녀
제시카 캡쇼[4](1976년 8월 9일생)
아들 맥스 스필버그[5](1985년생)
아들 티오 스필버그[6](1988년생)
사샤 레베카 스필버그(1990년생)
아들 소여 에이버리 스필버그(1992년생)
마이켈라 조지 스필버그[7](1996년 2월 28일생)
데스트리 알린 스필버그(1996년 12월 1일생)
종교
유대교
재산
37억 달러 (한화 약 4조 1,000억 원)[8][9]

1. 개요
2.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감독
2.1. 왕성한 제작자
2.2. 21세기 이후
3. 연출 스타일
4. 필모그래피
5. 무고한 논란
6. 기타
7.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미국영화 감독.


2.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감독[편집]


현존하는 수많은 감독들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감독으로, 그의 손에서 죠스, 레이더스, E.T.,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 쉰들러 리스트, 쥬라기 공원 시리즈, 라이언 일병 구하기, A.I., 우주전쟁,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파벨만스 등 영화사에 남을 수많은 명작들이 탄생했다.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영화 감독 중 한 명이며,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들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 가정에 태어나 어릴 적부터 영화를 너무나도 좋아하여 영화를 만들었고 13살 나이에 영화를 감독하여 식구들이 배우로 나온 적도 있다.[4] 17살 때는 500달러를 들여 만든 영화 〈불꽃〉을 감독, 각본, 촬영까지 하면서 만들어 동네 극장에 개봉한 적도 있는데, 극장주는 이 아이는 커서 영화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감탄했다. 딱 1개 동네 극장에서 별다른 홍보도 없이 사흘 동안 상영했던 이 영화는 501달러[5]의 수익을 거두었다고 한다.

1968년 스필버그 자신이 각본・감독・편집을 맡은 단편 'Amblin[6]'을 눈여겨 본 당시 유니버설 픽처스 산하 '유니버설 텔레비전' 제작 부사장이었던 시드 셰인버그[7]에게 발탁되어 7년 계약을 맺어 방송국에서 TV 영화, 드라마를 연출하며 커리어를 시작하는데, 당시 방송국 감독들 중 가장 어렸다고 한다. 당시 관례상 동료 감독이나 스태프들은 영화계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스필버그 부모님들 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이 태반이었다고(...).

첫 연출작은 조운 크로퍼드 주연의 TV 시리즈 '나이트 갤러리'의 한 에피소드를 연출한 것이었다.같은 연출부 소속 팀원들 나이가 죄다 스필버그 보다 20살은 가볍게 넘는다(...).

첫 단독 연출작은 1971년작 TV 영화 〈듀얼(Duel)〉. 도로상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정체불명의 트럭에 쫓기는 운전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리차드 매드슨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무서운 점은 '정체불명의 트럭에 쫓긴다'라는 한 줄로 설명이 가능한 스토리로 74분 짜리 스릴러를 만들어냈다는 것으로, 저예산 TV 영화라 지극히 단순한 소재와 배경만 가지고 요즘 봐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것을 보면 스필버그의 연출력에 정말 감탄하게 된다. 영화 제작자들은 듀얼을 보고 이거라면 극장 영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고 놀라워하며 추가적으로 장면들을 촬영해 넣어 90분으로 늘린 뒤 해외 극장에서 개봉하였다![8] 참고로 촬영에는 13일, 편집에 10일이 걸렸다고 하는데 스필버그를 천재라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만들면서 한 번도 정식으로 영화를 배운 적이 없다는 점이다.

데뷔작 '듀얼'의 성공으로 스필버그는 극장판 영화를 만들 기회를 얻게 되고, 골디 혼, 벤 존슨 주연의 <슈가랜드 특급>[9]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각본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커리어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칸 영화제 출품 당시 수많은 취재진들이 당시 톱스타였던 벤 존슨을 인터뷰하려 하자 존슨이 "(기자) 당신들 나 말고 저 감독(스필버그)을 인터뷰하시오."라고 스필버그의 천재성을 인정한 일화가 유명하다.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영화는 모두가 알다시피 식인 상어와 같은 상어를 소재로 한 소설 죠스를 영화화한 죠스이다.[10] 1975년 당시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북미 흥행 2억 달러를 넘어서는 엄청난 흥행을 거두어 본격적인 블록버스터라는 장르의 영화 시장을 개척하였고, 그 이후로도 여러 흥행작을 줄줄이 뽑아내면서 스필버그는 베이비붐 세대의 이상과 현실을 영상으로 옮긴 대표 주자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1993년에는 쥬라기 공원으로 본인의 영화였던 E.T.의 세계 흥행기록을 경신한 데 이어, 그 해 겨울에는 쉰들러 리스트오스카상 트로피까지 거머쥐며 흥행, 작품성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아 최고의 영화감독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다졌다. 그 이후로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마이너리티 리포트,〈우주전쟁〉, 〈레디 플레이어 원〉 등 다른 감독 같으면 평생 한 번 만들어 보기도 힘든 작품들을 장르와 내용을 넘나들면서 활발하고 왕성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그에게도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필모중에 흥행 실패작도 엄연히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엄청난 제작비에 견주면 기대 이하 흥행을 거둔 첫 흥행 참패작인 〈1941〉이라든지, 흑인 영화인들의 반발로 당시 말이 많았던 〈아미스타드〉 같은 영화들은 지독하게 망한 바 있다.

상업영화로 유명해서 잘 알려지지 않지만 사실 그는 뉴 할리우드의 끝자락에 등장해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를 이끌어갈 것이란 기대를 한몸에 받던 감독다. 그리고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열어젖힌 영화로 평가받는 〈죠스〉를 통해 뉴 할리우드 시대를 끝장낸 감독이기도 하다(...).[11][12] 뉴 할리우드 시대에 활동했던 감독들이 1980년대 들어서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13] 스필버그는 꾸준한 흥행과 평가로 영화의 역사를 쓰는 업적을 만들었다. 또, 신인 배우들과 후배 감독들의 발굴에 힘쓴 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안목 또한 좋은 편이다.

할리우드 내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개념을 만든 최초의 인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나 대표작이자 최다 참여 시리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부터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쉰들러 리스트, 쥬라기 공원, 죠스 등의 작품들로 대중들에게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 제작사 앰블린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앰블린 파트너스드림웍스의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특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본인의 대표 시리즈 중 하나로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겸비해 아카데미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고 그 해 월드와이드 전체 1위를 거머쥐며 작품성과 흥행성 두 마리 토끼를 전부 잡았다. 애착도 상당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4편까지 전부 본인이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2018년, 레디 플레이어 원의 흥행으로 지금껏 감독한 영화들의 박스오피스 총수익이 100억 달러[14]를 넘긴 최초의 영화감독이 되었다. #

한편 명감독답게 영화를 보는 안목도 탁월하다. 그의 절친인 조지 루카스스타워즈를 시사회에서 상영했을때 다른 영화 감독들과 관계자는 모두 비웃었지만, 스필버그만큼은 이 영화가 성공할 것이라고 여기고 존 윌리엄스를 소개시켜주기도 했다. 그 외에도 트랜스포머에 제작 및 기획으로 참여하거나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를 보고 흥행 대박을 짐작하고 판권을 샀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완전판 복원에 결정적인 기여[15]를 하기도 했다.



2.1. 왕성한 제작자[편집]


스필버그는 뛰어난 감독일 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자로서도 대단히 성공적이다. 이미 20대 초반부터 TV 시리즈 제작에 손을 대기 시작하여 그 당시 최고의 인기드라마였던 〈형사 콜롬보〉 같은 추리 드라마 제작에도 참여한 바 있으며, 〈구니스〉나 〈그렘린〉 같은 대중 상업영화들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스필버그가 제작에 참여하여 가장 좋은 결과를 거둔 영화는 누가 뭐래도 〈백 투 더 퓨처〉. 로버트 저메키스를 발굴한 게 젊은 시절의 스필버그다. 〈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도 스필버그 제작. 이런 안목 때문인지 1990년대 초반 미국 버라이어티 지가 선정한 각 분야 최고 부자에서 영화감독 및 제작자로 1위가 스필버그였다.[16]

1990년대에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도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했다. 타이니 툰[17]이나 애니매니악스 등의 굵직굵직한 워너브라더스 애니메이션이 전부 스필버그의 투자와 지도로 만들어진 시리즈들이다. 조지 루카스 휘하 루카스아츠에서 만든 1996년 어드벤처 게임 『디그』도 스필버그가 제작한 게임이었다. 이후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를 이어받은 EA LA 스튜디오가 원래 드림웍스 인터렉티브 스튜디오였다. 이 회사에서 스필버그의 감독 하에 만들어진 대형 프랜차이즈가 다름아닌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설트'부터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는 다르게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처음 두 작품이 나왔다. 이후에도 2000년대 후반 들어서 EA LA와 협력해서 몇몇 게임들을 내놓으려고 했는데 이때는 잘 안 됐다고 한다. 그래도 MS의 E3 콘퍼런스에서 키넥트를 밀어주러 나오는 등 여전히 게임에 관심은 많은 모양이라 2013년 엑스박스 원의 독점 콘텐츠인 헤일로 시리즈 TV 드라마를 제작하기도 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맨 인 블랙 실사영화 시리즈를 성공시켰고, 2000년대 들어와서 〈트랜스포머〉 영화들을 터트렸다. 제리 브룩하이머와 갈라서고 마이클 베이와 손을 잡고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린 것. 다만 이 작품들을 스필버그의 업적이라 보기에 힘들단 시각도 있다. 트랜스포머 영화에서 스필버그의 직책은 총괄 제작자(Executive Producer)다. 이게 드라마에서는 중요한 직책인데 영화에서는 장식으로 걸어놓는 칭호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기껏해야 돈을 대 주는 정도고 무슨 영화를 만드는지에 대해서 크게 관여를 하지는 않는다는 뜻.

하지만 스필버그가 제작자로서 직접 관여한 영화들도 있다. 이런 영화들은 스필버그가 정말로 대본에 직접 관여하고 그날 그날의 촬영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등 영화의 모든 부분들에 관여하기 때문에 제작자로서의 그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가 이렇게 만든 영화들은 구니스그렘린 같이 준수한 가족영화 및 아동 모험물이 대부분인데, 가장 최근의 이런 경우는 J.J. 에이브럼스의 〈슈퍼 에이트〉로, 가장 스필버그와 유사한 최근의 상업영화 감독이 진짜로 스필버그하고 손잡고 만든 스필버그 오마주 영화이다. 두 사람은 아주 오래전부터 연이 있는데 스필버그는 젊은 시절에 자기 이름을 걸고 8mm 영화 컨테스트를 한 적이 있고 여기 대상 수상자가 에이브럼스와 그 친구들이었다. 이게 인연이 되어서 한동안 스필버그 영화를 편집하는 걸 도와준 적도 있다.

2015년에 개봉한 그의 명작 중 하나인 쥬라기 공원의 속편 쥬라기 월드에서는 총제작자를 맡았다. 여기서도 위의 슈퍼 에이트처럼 제작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였다.[18]

할리우드 6대 메이저 배급사와 모두 꾸준히 협업을 하지만 그 중에서 유니버설 픽처스와는 1975년 죠스[19]를 통해 40년 이상 유지하고 있다. 스필버그 제작사 앰블린 파트너스의 주주 중에는 유니버설 픽처스가 있을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니버설 픽처스의 역사에서도 스티븐 스필버그가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스필버그 자신의 자전적 영화 파벨만스 배급도 유니버설이 맡았다.

이밖에도 그 유명한 드림웍스 픽처스의 창립자 중 한명으로서 단독 배급을 통해 할리우드 6대 메이저의 독과점을 깨뜨리려는 노력을 하였다.


2.2. 21세기 이후[편집]


1993년에 발표하여 아카데미 작품상을 석권한 쉰들러 리스트 이후 작품의 세계관이 상당히 바뀌게 된다. 가족주의적이고 모험적 요소가 강했던 이전 시대의 영화들과 다르게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의 영화가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쥬라기 공원, E.T.,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마이너리티 리포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우주전쟁, 뮌헨 등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연출보다는 제작으로 참여하는 비중이 늘어나서 국내나 해외나 스필버그가 한물 간 감독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러나, 확실히 예전처럼 '가볍게 볼 수 있는' 오락 영화를 만들어내던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오히려 그렇게 바뀌었기 때문에 비평계에서 스필버그의 입지는 더욱 높아졌다. 스파이 브릿지, 더 포스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의 작가주의 영화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면서 이제 스티븐 스필버그는 모든 장르에서 뛰어난 작품을 만드는 최고의 영화감독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사실, 20세기 시절의 스필버그 감성은 21세기 관객들에게 잘 통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영화감독이 시대와 트렌드의 변화에 맞춰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예전 감성으로 만든 터미널이나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마이 리틀 자이언트 등은 오히려 흥행이 썩 좋지 않았다. 〈우주전쟁〉과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9.11 테러 이후 만연해 있던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감과, 테러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애국자법으로 민주주의 보호냐 민주주의 훼손이냐 논란이 일어나던 미국 사회의 모습을 잘 반영했기 때문이다.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다 하더라도, 어쨌든 스필버그는 현역으로 잘 나가고 있다. 뭘 만들어도 평타 이상은 치는 감독인 만큼 개런티도 현역 감독들 중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로 연출 스타일이 다소 시니컬해지긴 했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영화들을 보면 블록버스터 영화 쪽도 여전히 감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수 있다. 이 영화가 개봉되던 2018년 당시 스필버그의 나이가 71세였는데, 지금 이 정도 나이대의 감독들은 블록버스터는 고사하고 영화 속 소재인 가상현실이나 비디오 게임 같은 건 제대로 다루지도 못한다. 이처럼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수많은 관객들에게 문화적, 예술적 강렬함을 선사할 수 있는 영화감독은 아마 앞으로도 나타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3. 연출 스타일[편집]




워낙에 전설적인 블록버스터들을 많이 만들어왔기에 스필버그를 그저 돈 때려붓는 오락용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스필버그는 사실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능력들이 뛰어난 올라운더 먼치킨이다. 오히려 이런 다 때려부수는 블록버스터 영화감독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과소평가된 감독이라 할수 있을 정도. 스토리텔링, 시각화, 리듬감, 대중들을 휘어잡는 코드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까지 다 갖춘 사기캐 같은 감독. 특히 위의 영상에도 제시된 테크닉 중엔 롱테이크가 있는데, 각 영화마다 정해지지 않은 다양한 방식을 다양하게 상황에 쓰는 것뿐만 아니라, 한 롱테이크를 통해 다양한 장면들을 한 장면 안에 넣는 기발한 방식을 볼 수 있다. 물론 더 파고 들어가자면 그의 가장 뛰어난 능력은 무엇보다도 서스펜스를 창조하는 능력으로, 그의 작품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간단한 상황과 인물 설정, 그리고 적절한 편집으로 극한의 긴장감을 뽑아내는 데 세계 최고의 능력을 갖고 있다.[20]

그의 예술가적 의식이 드러나는 소규모 작품들에서조차 블록버스터 뺨치는 압도적인 긴장감을 확인할 수 있다. 대중 친화적 이미지 때문에 정의롭고 보수적인 영화를 많이 뽑아낸다는 편견이 많지만 "폭력"과 "심리적 스릴러"를 다루는 데에도 상당한 일가견이 있다. 또한 그의 작품들에는 메시지적으로 "휴머니티"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스필버그는 대중적 블록버스터와 작가주의적 커리어를 번갈아가며 꾸준히 연출해오고 있는데, 대중적 블록버스터 한 편을 마치고 나면 자신의 연출력을 확인하기 위해 콘티 없이 게릴라 촬영으로 촬영하곤 한다.

쉰들러 리스트부터 야누스 카민스키 촬영감독을 페르소나로 쓰고 있으며, 롱테이크 기법이 호평받고 있다.

제임스 카메론이 타이타닉, 아바타로 역대 흥행 1위 기록을 자기 영화로 연속 경신하는 능력을 보여준 이후로 가끔씩 스필버그와 비교되기도 한다. 스필버그가 죠스, 쥬라기 공원 등 블록버스터 영화로 많은 제작비를 쓰기는 했지만, 제임스 카메론은 어비스, 타이타닉, 아바타 등으로 그야말로 역대 최대 제작비를 경신해온 감독이다. 제작비를 워낙 어마어마하게 쓰기 때문에 제작비 대비 흥행기록은 스필버그가 월등하다. 스필버그가 초기에 감독한 죠스, 미지와의 조우 등이 당초 정해진 제작비와 제작시간을 초과하자, 절치부심하여 딱 정해진 스케쥴과 예산으로 만들어낸 레이더스로 흥행에 성공했으며 이후 당시 최고 흥행기록을 경신한 E.T.는 그야말로 소품 수준의 제작비였다.

제임스 카메론이 무지막지한 제작비를 쓰는 이유 중 하나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신기술을 도입해서 완벽하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어비스와 터미네이터 2는 CG 기술을 진일보시켰고, 스필버그는 터미네이터 2를 본 뒤 제작 준비 중이던 쥬라기 공원에서 스톱 애니메이션 대신 CG로 공룡을 묘사하기로[21] 결정했다. 이후에도 21세기에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로 3D 기술을 영화에 대거 도입했고, 몇 년 후 한동안 상업 영화를 안 찍던 스필버그가 레디 플레이어 원을 3D로 찍었다. 재미있게도 레디 플레이어 원을 찍을 때 스필버그는 3D 작업을 위해 제임스 카메론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종합적으로 비교하자면 제임스 카메론은 감독료를 포기하기도 할 정도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영화를 만드는 완벽주의자적인 스타일이고, 스필버그는 딱 주어진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최상의 작품을 뽑아내는 스타일이다.

이외에 스필버그는 총상을 입은 사람을 가장 정확하게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총상을 입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경찰 바디캠 영상[22]에서 간접적으로 체험 해볼 수 있다. 과거 영화들의 총상 표현 방법은

1. 뭔가 커다란 쇠공에 맞은것처럼 허우적 거리며 날아가기[23], 2. 엄청난 속도로 팔을 휘적거리며 어깨를 들썩 거리기, 3. 슬로우모션으로 무릎을 꿇으며 천천히 쓰러지기, 4. 꺄악 거리며 만세 자세로 뒤로 넘어지는 1960년대 이전 스타일,

등 온갖 형태의 연기가 있었다. 그나마 푹 쓰러지더라도 순간 난데없이 한쪽 다리를 뒤로 쏙 접으며 부자연스럽게 옆으로 쓰러진다. 이는 배우들의 안전을 위함이기에 어쩔 수 없다. 뛰다 살짝 넘어지는 장면을 촬영 하더라도 다칠까봐 매트리스를 구비하는게 할리우드이다.

어쨌든 실제로 총에 맞으면 그 즉시 전원이 꺼진 로봇처럼 주저 앉거나 통나무마냥 앞이나 뒤로 고꾸라진다. 예외는 소구경탄에 급소를 피하고 '경찰에 의한 자살'[24]로 죽기를 각오하고 더 쏴보라고 움직이는 사람 정도 뿐이다. 스필버그는 이런 연출을 소름 끼치리만큼 지키는데,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죽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식으로 픽픽픽 쓰러지며 쉰들러 리스트의 학살 장면에서도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4. 필모그래피[편집]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장편 연출 작품
,(TV영화 제외),




기타 TV 시리즈[25]와 비디오 게임[26]을 포함한 모든 작품 내역을 보고 싶다면 이 문서를 참고.

연도
제목
역할
비고
연출
각본
제작
기타
1964
불꽃 Fire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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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작곡
[27]
1968
앰블린 Amb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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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듀얼 D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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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1973
창공의 에이스 엘리 Ace Eli and Rodger of the Sk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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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슈가랜드 특급 The Sugarland Ex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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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1975
죠스 Ja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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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1]
1977
미지와의 조우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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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1979
194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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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컨티넨틀 디바이드 Continental Div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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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스 Raiders of the Lost 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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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1982
E.T. E.T. the Extra-Terrest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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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5]
폴터가이스트 Polterg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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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환상특급 Twilight Zone: Th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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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그렘린 Greml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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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와 마궁의 사원
Indiana Jones and the Temple of D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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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백 투 더 퓨처 Back to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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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컬러 퍼플 The Color Pur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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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니스 The Goon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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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의 공포 Young Sherlock Hol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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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피블의 모험 An American T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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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핏 The Money P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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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8번가의 기적 Batteries Not Inclu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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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제국 Empire of the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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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스페이스 Inner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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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
Who Framed Roger 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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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공룡시대 The Land Befor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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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영혼은 그대 곁에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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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퓨처 2 Back to the Future Part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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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mmy Trou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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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황혼 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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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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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아라크네의 비밀 Arachnopho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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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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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퓨처 3 Back to the Future Part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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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er Coaster 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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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렘린 2 - 뉴욕 대소동 Gremlins 2: The New B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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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행크스의 볼케이노 Joe Versus the Volc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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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1991
피블의 모험 2 An American Tail: Fievel Goes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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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 H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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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트레일 믹스-업 Trail Mix-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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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공원 Jurassic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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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공룡 대행진 We're Back! A Dinosaur'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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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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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40]
1997
잃어버린 세계: 쥬라기 공원
The Lost World: Jurassic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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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인 블랙 Men in 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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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스타드 Amist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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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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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The Last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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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오브 조로 The Mask of Zor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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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임팩트 Deep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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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Shooting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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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A.I. A.I. Artificial Intellig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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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공원 3 Jurassic Park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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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마이너리티 리포트 Minority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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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인 블랙 2 Men in Black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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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미 이프 유 캔 Catch Me If You 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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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터미널 The Term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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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우주전쟁 War of the Wor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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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오브 조로 The Legend of Zor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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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의 추억 Memoirs of a Gei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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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Mun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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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아버지의 깃발 Flags of Our Fa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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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Letters from Iwo J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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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하우스 Monster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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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트랜스포머 Transform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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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Indiana Jones and the Kingdom of the Crystal Sk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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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아이 Eagle 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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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Transformers: Revenge of the F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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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본즈 The Lovely B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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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히어애프터 Here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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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브레이브 True G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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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슈퍼 에이트 Super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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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3 Transformers: Dark of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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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 & 에이리언 Cowboys & Ali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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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스틸 Real St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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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The Adventures of Tin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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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호스 War Ho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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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맨 인 블랙 3 Men in Black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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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Linco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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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Transformers: Age of Extin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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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레시피 The Hundred-Foot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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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쥬라기 월드 Jurassic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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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브릿지 Bridge of Sp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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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마이 리틀 자이언트 The B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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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Transformers: The Last 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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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포스트 The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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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레디 플레이어 원 Ready Player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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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Jurassic World: Fallen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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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맨
First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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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블비
Bumble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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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Men in Black: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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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츠
C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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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더 터닝
The Tu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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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West Sid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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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Indiana Jon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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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Jurassic World: Dom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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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벨만스
The Fabelm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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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터 크롱카이트 - 전기 영화 (미정)
  • 몬테주마 - 사극 (미정)
  • 에드가르도 모르타라의 유괴 (미정)[42]
  • 블랙 호크 (미정)[43]
  • 숲속의 첨탑
  • 더 우먼스 아워 (미정)[44]
  • 블리트 리메이크 (미정)[45]


5. 무고한 논란[편집]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잊을 만하면 가해지는 비난이 바로 '시오니스트'이다. 그렇지 않아도 영화를 비롯한 미국 예술계에서 유대인들의 영향력은 매우 큰 데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스필버그의 영향력은 막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필버그의 작품 중 홀로코스트를 직접 다룬 쉰들러 리스트가 있다 보니 그의 시오니즘 성향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반유대주의자들의 미국 문화계에 대한 음모론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명단이 스티븐 스필버그일 지경.

일단 스필버그가 유대계와 이스라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무작정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찬양하고 팔레스타인이나 독일 등을 비하하려 든다는 것은 편견에 가깝다. 쉰들러 리스트에서도 영화의 중점은 쉰들러의 선행과 나치의 악행에 초점을 맞추었지, 유대인들의 피해의식을 과장해서 나타내지 않고 있다.

특히 뮌헨 참사 이후 이스라엘의 보복 작전을 다룬 에릭 바나 주연의 뮌헨을 보면 보복 작전을 사실상 '뻘짓'으로 표현하는 등 전혀 시오니즘 성향이 있다고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스필버그는 이스라엘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이스라엘인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반대로 팔레스타인에서도 혹평을 받았는데 그만큼 중립적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또한 시오니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고,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자각도 없다고 하며 절친했던 스탠리 큐브릭이 미국 내 유대인 단체들에게 비난받을 때 스필버그가 그를 열심히 옹호해 준 적이 있다.

우습게도 유대인 영화감독으로서 국제적 인지도가 가장 많다보니, 스티븐 힐렌버그,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스티븐 소더버그 같이 같은 이름인 스티븐에 성에 버그가 붙은 이 사람들도 유대인으로 많이 아는 경우가 있는데 셋 모두 유대인이랑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다. 다만 스필버그(슈필베르크, Spielberg)가 유대계 성씨인 것은 사실이다. 체코 브르노의 슈필베르크(Špilberk) 성을 독일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15세기에 유대인들이 이 곳에서 추방되면서 고향의 이름을 성씨로 삼았다고 한다. '-berg'나 '-burg'는 게르만계 지명이나 이름에 흔하게 들어가는 접미어라서 유대인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46]


6. 기타[편집]


파일:external/static3.businessinsider.com/how-steven-spielberg-made-millions-off-star-wars-after-a-1977-bet-with-george-lucas.jpg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코세이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브라이언 드 팔마, 이렇게 5명은 20대 시절부터 우정을 나눠온 영화계의 절친들이다. 특히 루카스와는 사업상 협력도 많이 했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에 자주 참여하는 존 윌리엄스를 루카스에게 소개시켜준 것도 스필버그 본인이고,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경우에는 스필버그의 제안+루카스의 시나리오로 만들어졌다. 제다이의 귀환의 감독을 원래 스필버그가 맡으려고 했으나 인디아나 존스 때문에 맡지 못했었고, 시스의 복수 제작 당시 루카스가 스필버그에게 감독 자리를 제안했다는 후문이 있다. 이때는 우주전쟁 때문에 못 했다고 한다. 다만 브라이언 드 팔마는 스필버그의 첫 번째 아내 에이미 어빙을 소개해 줄 정도로 절친이었지만 이후 스필버그가 에이미 어빙과 이혼한 후론 사이가 많이 소원해졌다.

  • 위의 친구들의 우정을 보여주는 일화. 2007년에 마틴 스코세이지가 〈디파티드〉로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을 탔을 때의 일인데, 시상자로 스필버그, 루카스, 코폴라가 올라왔다. 이 정도면 이미 스코세이지 수상 확인사살 수준. 올라와서 이들이 서로 만담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전에 아카데미 감독상 받아봐서 아는데 정말 대단한 겁니다.' '감독상을 탄다는 건 정말 엄청난 영예죠.'[47] '...야, 난 못 받았잖아.'





  • 1남 3녀의 장남인데,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3명의 여동생[48]들과 우애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여동생들은 원래 각자 회계사 같은 자신들만의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일반인들이었는데 오빠 스필버그의 영화 일을 도와주다가 현재는 Sue Spielberg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동생들은 오빠의 영화 일을 가업처럼 도와주는 영화산업 종사자들로 직업을 바꿨다.

  • 존 윌리엄스, 마이클 칸[49], 야누스 카민스키와 매우 자주 협업한다.

  • 영국 극장들의 수입을 두 배로 늘려준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 매번 자신의 영화 촬영 첫날과 마지막 날에 스태프들과 배우 전원을 모아 함께 샴페인을 들면서 영화 촬영[50]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게 기원하는 행사를 가진다.

  • 자전적 영화 파벨만스의 주인공 이름 새미(Sammy)는 실제 스필버그의 애칭 중 하나다. 부모님을 비롯한 그의 최측근들이 스필버그를 부르는 애칭은 루이(Louis)다. 영화산업 종사자들 사이에선 스필버그를 루이(Louis)라고 불러도 되는 사이인지 아닌지로 스필버그와의 친한 정도를 파악한다고 한다.


  • 쉰들러 리스트로 벌어들인 수입은 한 푼도 없다. 관련 수익 전부 기부해버렸다고.#

  • 쉰들러 리스트를 제작할 당시 스필버그는 이전까지 홀로코스트에 대해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홀로코스트가 얼마나 심각한 내용인지를 깨닫고 심리적으로 크게 고생했다. 촬영장에서 가족들이 항상 참여해서 그를 달래줘야 했으며 심지어는 유대교 랍비도 올 때가 있었다. 친구인 로빈 윌리엄스에게 날마다 전화로 '제발 날 좀 즐겁게 해줘!'라며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고.


  • 역대 흥행 1위 기록을 3번이나 갈아치운 무시무시한 기록의 보유자다. 자신이 세운 역대 흥행 1위 기록을 자신이 2번이나 갈아치웠다. 이는 현시대 '흥행의 마술사' 또는 '흥행의 제왕'이라 불리는 제임스 카메론도 아직 1번 밖에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이다. 죠스로 아예 블록버스터라는 장르를 스필버그 자신이 직접 만들어서 기존의 모든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뒤 흥행 족보는 이렇다.[51]

죠스 (1975) → 스타워즈 4 (1977) → E.T. (1982) → 쥬라기 공원 (1993) → 타이타닉 (1997) → 아바타 (2009) → 어벤져스: 엔드게임 (2019) → 아바타 (2009)

그래서 80년대~90년대 일본과 한국 한정으로 스필버그는 '흥행의 귀재'란 별명으로 불렸다. E.T.의 성공 이후 일본에서 먼저 '흥행의 귀재'란 표현을 썼고 그 후 구니스 때부터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썼다.



  • 스티븐 스필버그 자신은 애니메이션 감독 척 존스에 대해 한 도서에서 "월트 디즈니가 내게 꿈꾸는 법을 알려준 최초의 애니메이터였다면, 척 존스는 그 꿈을 비웃게 만들어준 최초의 애니메이터"라 적으며 호의적인 평가를 나타냈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서도 존경하는 감독이라 말하며 특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경우 아마 그 어떤 디즈니 애니메이션보다 나을 거라고 극찬하기도 하였다.

  •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다 보면 한 해에 영화 두 편을 연출하는 경우가 많아 다작하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다작하는 이유는 이런 방식으로 다작을 했던 선배 감독들 존 포드, 하워드 혹스, 마이클 커티즈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서라고 한다. 여름 시즌에 규모가 큰 블록버스터 영화를 내놓고 아카데미 시상식이 임박한 겨울에는 시상식 시즌에 맞게 무게감 있고 작가주의적인 영화를 한 해에 동시에 내놓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기사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53]

  • 최근에는 2013년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링컨〉으로 7년만에 감독상 후보로 오르면서 3번째 수상을 노렸지만 이안이 2번째 감독상을 수상했다.


  •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스필버그가 현장감각을 살리기 위해 스토리보드 없이 촬영한 영화다. 전문적인 감독이더라도 어려운 일이다.

  • 죠스의 성공 이후 007 시리즈 영화를 감독하고 싶었지만 007 제작진에게 거절당했다.[54] 그래서 조지 루카스와 합작해 미국판 제임스 본드를 만들어보자고 만든 작품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이다. 원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도 007처럼 2대 제임스 본드 3대 제임스 본드 같이 배우를 교체하는 연작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해리슨 포드인디아나 존스 배역을 너무 완벽하게 소화해버리기도 했고, 오랜 친구 해리슨 포드가 인디아나 존스란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하기도 해서[55] 포기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를 보면 스필버그의 007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 가능하다. 또 대니얼 크레이그가 6대 제임스 본드에 발탁되었다는 영화계 내의 발 빠른 소문을 듣자마자 바로 자신의 영화 <뮌헨>에 모사드 요원으로 자신이 직접 캐스팅하기도 했다. 007 감독직을 거절당한 것이 꽤나 분했는지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엔 의도적으로 인디아나 존스의 아버지 헨리 존스 역할로 1대 제임스 본드숀 코너리를 캐스팅해서 007 권총 발터 PPK에 맞는 장면을 넣었다. 여기에 질세라 숀 코너리인디아나 존스의 롤 모델인 영국 작가 H. 라이더 해거드의 소설 《솔로몬 왕의 보물》, 《동굴의 여왕》 등등 시리즈의 주인공 앨런 쿼터메인을 연기한 젠틀맨 리그에서 인디아나 존스의 권총 웨블리 리볼버를 들고 활약한다.

  • 배우들의 연기력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뽑아낼지를 아는 감독이다. 그래서 스필버그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평균 이상은 하는데, 평소엔 연기력이 딸린다고 평가를 받은 배우들도 그렇다. 일례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촬영 때 라이언을 구하러 가는 부대원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전원 미국 해병대 신병훈련소에 보내 굴리면서 라이언 역을 맡은 맷 데이먼은 훈련에 참가 시키지 않고 구르던 다른 배우들을 참관하게 했다. 극 중 부대원들이 라이언에게 빡친 감정은 진짜였다(...). 또 <링컨> 촬영 중 다니엘 데이루이스에이브러햄 링컨이 시간을 굉장히 중요시했던 위인임을 강조하며 링컨의 시계와 똑같은 시계를 제작해 줄 것을 요구하자 박물관에 전시돼있는 링컨의 시계(지금도 작동 중이다.)의 시계 소리를 녹음해서 만든 시계를 구해 준 사례도 있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끝없이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고 파고드는 연기파 배우들을 선호하게 되고 그래서 스필버그 자신은 열렬한 007 시리즈 팬임에도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배우 중 숀 코너리대니얼 크레이그와만 협업하게 됐다. 로저 무어는 "내 연기의 범위요? 왼쪽 눈썹을 치켜올리고 오른쪽 눈썹을 치켜올리는 거죠."란 말을 남기며 자신의 연기력의 한계를 인정했고, 조지 라젠비도 애초에 모델 출신이었기에 연기력에 한계가 있었다. 피어스 브로스넌은 <맘마 미아!>에서 뮤지컬 장르에 도전하며 혼신의 열연을 펼쳤지만 골든 라즈베리 상을 수상했고, <맘마 미아! 2>에는 단독으로 노래 부르는 장면이 없다… 반면 숀 코너리는 앨프리드 히치콕 영화에도 출연했고, 대니얼 크레이그는 스티븐 소더버그의 작품에도 출연하는 등 끊임없이 연기 변신을 꾀하는 배우들이다. 티모시 달튼은 영화에 출연하기 전에 무대 배우로 뛴 경력도 있어서 진작에 연기력을 인정받았지만 주로 영국에서 활동해왔고, 007에서 하차한 뒤에도 TV나 영국 영화계에서 활동하면서 할리우드와 거리를 둬서 할리우드의 캐스팅 콜이 줄어들었기에 스필버그 영화에 출연할 기회가 없었다.

  • 해리 포터 시리즈의 감독 후보로서 거론된 적이 있었으나, 스필버그는 영국 배우를 고집하던 원작자 조앤 롤링 여사에게 미국 배우와 미국식 영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여 서로 대립했다.[56] 게다가 스필버그는 지나치게 영국 중심적인 점을 껄끄럽게 여겨 다국적 인물들을 새로 넣자고 했으나 영국이 모델이고 영국풍 분위기가 큰 소설에서 안 맞다는 원작팬들의 반발도 있다보니 결국 이 시리즈에서 물러났다.

  • 의외로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전통적인 영화 시장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텔레비전핸드폰을 비롯한 작은 스크린이 영화관의 큰 스크린을 대체할 것이라든지[57], 기존의 블록버스터 중심의 영화시장이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든지, 여러가지 측면에서 영화 산업의 종말을 고하는 발언을 꽤 많이 해 왔다. 다만 그런 발언을 언제나 함께 해 왔던 조지 루카스와 비교했을 때 실제 표현과 행동의 방향은 상당히 다르다. 루카스의 경우 이러한 태도가 옛 영화에 대한 강박적인 기술 업데이트라는 영 좋지 않은 방향으로 드러난 것과 달리, 스필버그는 최신 유행과 새 미디어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으로 영화의 종말에 대처해 왔다. 특히 그가 오래된 하드코어 게이머이며, 1980년대 후반부터 게임 개발에 관심을 보여왔다는 것은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쥬라기 공원을 촬영할 당시에는 라이선스를 취득한 개발사였던 오션 소프트웨어를 찾아와 열성적으로 게임판의 개발에 관여했고,[58] E3에선 미야모토 시게루와 같이 Wii 스포츠를 플레이한 적도 있다.

  •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해 서부극처럼 몰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 이 발언에 대해 여러가지 논란이 많았는데, 원문을 읽어보면 스필버그는 슈퍼히어로 영화 자체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르든 시간이 흘러 유행이 지나면 쇠퇴하기 마련이고, 슈퍼히어로 장르 또한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지극히 일반론적인 말을 한 것이다.
전통 서부극이 주류이던 시절이 짧아도 30년부터 50년은 갔고, 스파게티 웨스턴과 수정주의 서부극이 1970년대까지 버티다가 1980년대 이후 액션 영화에 밀렸다. 그 와중에도 양산형은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나왔고, 웨스턴의 최후를 장식했다는 용서받지 못한 자가 1993년에 나왔다.
이와는 별개로 리처드 도너슈퍼맨다크 나이트, 아이언맨, 그리고 특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좋아한다고.[59] 게다가 DC 코믹스의 히어로 영화인 “블랙호크"를 스필버그가 감독하게 되었다는 것을 워너브라더스 측에서 공식 발표했다.[60]

  • 많은 유명인이 그렇듯 스필버그도 스토커들에게 시달렸다. 1998년에는 동성애자 성향의 보디빌더였던 조나던 노먼(Jonathan Norman)이 스필버그를 집요하게 스토킹하다가 결국 체포당했는데,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강간하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 일로 징역 25년형에 처해졌다.

  •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7인의 사무라이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자신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스시와 장어구이를 좋아하고 자기 집의 문에는 일본어로 자기 이름이 새겨진 나무 문패가 걸려있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일본의 캐릭터는 만화 AKIRA에서 주인공이 타고 다니는 바이크라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또한 일부 영화에도 일본색이 꽤나 자주 들어가는 편.

  • 게임 매니아로 유명한 그이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의 일본 내 홍보차 이뤄진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VR 게임을 해본 적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슈퍼 마리오를 해봤어요. 처음 플레이했을 때 정말 고글을 벗고 싶지 않았어요." 라는 다소 황당한 대답[61]을 한 적이 있다. 이 인터뷰 자체가 스필버그가 말한 말을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기 그 과정에서 오역이 되었을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단순히 게임시장의 구조에 대한 무지가 이유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플랫폼 홀더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 하면 저 위의 대답이 왜 말이 안 되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 여기에 레디 플레이어 원의 결말에 대한 논란을 보듯이 게임과 이를 즐기는 팬덤에 대한 포용성을 보여주지 못한, 전형적인 옛날 시선으로 다룸으로써 게이머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는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2022년에 제작, 방영된 헤일로의 드라마판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지만, 실제로 나온 결과는 처참하여 영화 평론가들 조차 비디오 게임의 영혼이 담기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등, 게임계 쪽에서는 좋은 평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그를 싫어하는 게이머들이 적지 않고 아예 일부 헤일로 팬들은 스필버그를 원수 취급한다.

  • 1930~40년대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단절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스필버그와 같은 세대들은 1930, 40, 50년대 영화들을 보고 배웠으며 1970년대 영화만 공부하면 복제품만을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필버그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흑백 영화를 보여주면 일단 반감을 보이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고 했지만 일단 보기 시작하면 컬러인지 흑백인지 화면 비가 1.66:1인지 2.35:1인지 잊은 채 몰입하게 된다고 한다. #

파일:+봉준호 스티븐 스필버그.jpg

  • 첫째딸과 둘째딸은 영화배우이며 셋째딸은 수양딸인데 포르노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밝혔을 때 스필버그의 반응은 '흥미롭다' 라고 밝혔다.


  • 2022년 한 대담에서 오징어 게임에 대해 말하며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캐스팅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평해 논란이 되었다. 이정재, 박해수 등은 한국에서 이미 유명 배우였는데 서양에서 안 알려졌다고 해서 무명 배우라고 단정지어버린 게 아니냐는 것. 다만 전체 맥락을 들어보면 "(서양에)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캐스팅해도 (서양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사람들이 앞뒤를 잘라먹고 곡해한 것이다.

  • 애니메이션 감독 토미노 요시유키조지 루카스 같은 할리우드의 SF 영화 감독들을 가상 라이벌로 생각하고 그들을 능가하고자 노력을 했는데 조지 루카스는 이겼다고 생각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기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보다 후배지만 결국 능가하지 못했고 그는 위대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

  • 최근 인터뷰에서 오래전에 영화를 만든 선배 감독들보다 오늘날 젊은 영화 감독들에게 더 많은 걸 배운다고 언급했다. 특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언급하며 천재적인 젊은 감독들을 칭찬했다.

  • 스티븐 스필버그와 그의 아내 케이트 캡쇼가 아카데미 시상식 위원회에 희귀 애니메이션 셀 컬렉션 157점을 기부했다. 기부 목록 중에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 피노키오(1940), 고전 루니툰 셀이 있었다.#


7.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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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3번 지원했다 떨어지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 진학하고 휴학한 후, 시간이 흐른 후 2002년에야 학위를 받았다. 졸업식 현장 12분 가량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 졸업과제였는데, 쉰들러 리스트를 제출하고 바로 통과한 에피소드가 있다. #[2] 모교보다 USC에 대한 애정이 깊게 남았는지, 1994년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후 이사진으로서 대학 안에 재단(USC Shoah Foundation)을 설립하고 1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하고 있다.[3] 보유 기네스 기록들.[4] 이때가 1958 ~ 1959년 쯤인데, 공교롭게도 그 해들은 현기증, 뜨거운 것이 좋아, 벤허 같은 영화사의 걸작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5] 스필버그는 500명의 관람객이 왔는데 한 명이 2달러를 내는 바람에 1달러 수익을 올렸다고 회고했다. 필름은 유실된 상태다. 스필버그가 처음 감독 일을 구할 때 자기소개용으로 필름을 줬던 제작자가 사라졌고, 현재는 3분 가량의 소개용 영상(footage)만 남아 있다.[6] 앰블린 엔터테인먼트의 앰블린이 여기서 왔다.[7] 시드 셰인버그 이 사람 자체도 불과 만 33세의 나이로 '유니버설 텔레비전' 제작 부사장까지 올라간 비범한 인물로 당시 불과 22살의 젊은 감독과 전속 계약을 맺는 도박을 하며 "a lot of people will stick with you in success; I'll stick with you in failure.(많은 사람들이 성공할 때만 붙어있지. 난 자네가 실패할 때만 붙어있을 거네.)"란 말을 남기며 스필버그를 독려했다고 한다. 스필버그에겐 평생 은인인 사람으로 2019년 시드 셰인버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스필버그는 “I Have No Concept About How To Accept That Sid Is Gone(난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안 되어있습니다)”란 말을 남기며 그를 추모했다.[8]죠죠의 기묘한 모험〉 3부의 휠 오브 포츈전은 이 영화를 거의 그대로 베껴 만든 내용.[9]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를 대표하는 걸작 중 하나로 반드시 언급되는 작품이다.[10] 스필버그 본인에겐 엄청난 부와 명예를 안겨준 작품이지만, 스필버그 본인은 이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백상아리에게 안 좋은 선입견을 심어줬다는 죄책감(스필버그 자신이 원래 의도한 바는 식인상어의 등장보단 대처 과정에서 인간들의 탐욕으로 인한 인재와 군상극이었다.), 또 당시 촬영장에서의 스태프들과의 불화(스태프들이 스필버그가 식인상어에게 잡아먹히길 바랄 정도였다고.(...)), 이후 자신의 뜻과는 별개로 진행된 속편들은 스필버그 본인뿐 아니라 스필버그 팬덤에서도 언급조차 꺼리는 일종의 금기사항이라 한다(...).[11] 다만 이는 스필버그 본인 의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처음 스필버그를 발탁한 시드 셰인버그가 스필버그를 발탁한 이유가 바로 '기발함과 참신함'일 정도로 스필버그는 끝없이 기존에 없던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을 뿐인데 단지 그 시기가 '뉴 할리우드'와 겹쳤던 것뿐이다.(...)[12] 근데 따지고 보면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란 흐름 자체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류이다. '뉴 할리우드' VS '블록버스터'의 우열을 가리는 건 무의미하다. 대표적으로 제임스 카메론은 에이리언 2, 터미네이터 2로 '속편의 제왕'으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에게 오스카를 안겨준 건 '뉴 할리우드' 마저도 거스르는 '고전 할리우드' 스타일의 영화 타이타닉이었다.[13] 예외적으로 그의 친구로 알려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992)를 통해 부활할 듯 했으나 다시 쇠락의 길에 빠진다.[14] 한화로 약 11조원[15] 1989년 27년 전 개봉 당시 삭제된 35분 분량을 복원하면서 화질 보정까지 하도록 마틴 스코세이지와 같이 컬럼비아 영화사에 복원과 보정을 하지 않으면 앞으론 이 영화사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협박한 끝에 이뤄냈다고 한다.[16] 1992년 영화지 로드쇼 참고. 참고로 만화가 1위는 바로 〈피너츠〉로 유명한 찰스 M. 슐츠였으며 방송인 1위는 오프라 윈프리였었다. 다만 여기서 선정한 영화 감독 및 제작자 1위는 그 영화 수익으로 선정했으며 영화 캐릭터 및 2차 판권 수익으로 1위는 바로 조지 루카스.[17] 우리나라에선 1990년 초반에 MBC에서 〈말괄량이 뱁스〉란 제목으로 방영했고 투니버스카툰네트워크에서 원제로 방영했다. 이 애니메이션에선 스필버그가 애니메이션으로 아주 잠깐 나오기도 한다.[18] 한 예로 작중 나오는 구체 탑승물 자이로스피어는 스필버그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19] 사실 이미 듀얼을 통해 유니버설 텔레비전이 배급한 바 있다.[20] 이는 공포 분위기가 주를 이루는 쥬라기 공원과 우주전쟁, 죠스는 물론, 서스펜스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가족영화인 E.T.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등에서도 특정 장면에 있어서는 웬만한 스릴러 영화 못지 않은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다.[21] 다만 CG에만 의존한 건 아니고 정교한 애니매트로닉스 기술도 활용했는데 이는 터미네이터 2도 마찬가지이다.[22] 주로 미국 경찰이나 또는 카르텔 교전 영상[23] 손을 쏘면 손만 날아가고 가슴을 쏘면 구멍만 남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의 99%의 영화가 스턴트맨의 허우적 거리기가 대부분이다.[24] suicide by cop이라고 하며, 사살 당할 목적으로 경찰에게 달려들어 사살당하는 것을 의미한다.[25] 타이니 툰, 애니매니악스, 밴드 오브 브라더스[26] 대표적으로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27] 만 17세 때 만든 140분 상영시간의 8mm 독립영화로 400~500달러 예산으로 제작해서 극장상영으로 약간의 수익까지 남겼다.[28] 낡은 승용차 한대와 트럭 한대로 쫄깃한 90분을 만든 신기한 TV영화. 스필버그의 첫 상업 영화이다. [29] 그 해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30] 세계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 당시 2억 달러 흥행을 넘기며 스필버그의 명성을 널리 알린 출세작이다.[31] 2001년 National Film Registry 등재작.[32] 2007년 National Film Registry 등재작.[33] 1999년 National Film Registry 등재작.[34] 인플레이션 적용기준 스필버그 최고 흥행작(2위는 죠스, 3위는 쥬라기 공원)[35] 1994년 National Film Registry 등재작.[36] 2007년 National Film Registry 등재작.[37] 2016년 National Film Registry 등재작.[38] 흥행은 실패했다. 주말의 명화에서 1993년 10월 23일 더빙 방영한 바 있다.[39] 2018년 National Film Registry 등재작.[40] 2004년 National Film Registry 등재작.[41] 2014년 National Film Registry 등재작.[42] 1997년 데이빗 커쳐가 발표해 퓰리처상을 받은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1858년 이탈리아의 유태인 소년인 에드가르도 모르타라가 종교 재판소의 명령에 의해 부모와 격리돼 크리스천으로 길러지게 되는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는 소년의 부모가 자식을 구출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출연은 페르소나로 떠오른 마크 라일런스가 비오 9세 역을 맡으며 오스카 아이작이 출연할려고 했는데 하차했다. 레디 플레이어 원 촬영을 마친 이후 내년 1/4분기 중 촬영을 진행할려고 했는데 와인스틴 컴퍼니가 배급에 들어갈려고 했지만, 협상이 제대로 안 돼서, 스필버그와 와인스틴 컴퍼니는 같은 내용으로 서로 다른 영화를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 때문에...[43] DC의 히어로 영화.[44] 원작은 일레인 웨이스의 ,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책임프로듀서를 맡는다.[45] 2024년 촬영을 시작한다는 루머가 있다.[46] 서게르만어군에 속하는 영어에도 berg나 bergh같은 형태소는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 Iceberg.[47] 코폴라는 대부2로 감독상 수상, 스필버그는 쉰들러 리스트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수상[48] Anne Spielberg(1949.12.25), Sue Spielberg(1953.11.03), Nancy Spielberg(1956.06.07)[49] <레이더스>,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아카데미 편집상 3회 수상자.[50] 영화 촬영을 항상 위대한 여정(great journey)이라 표현한다고.[51] 역대 흥행 1위 갈아치울 때마다 상대 감독에게 축전 날리는 전통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52] 둘 다 겨울에 나와서 별 의미는 없지만 정작 수입은 워 호스가 더 잘 벌었다.[53] 그가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 이유는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시시하다면 시시한데,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촬영 후반에 작업이 장기화되면서 그 기간 동안 후처리만 잡고 있으려면 지치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아래 사례들 대부분에서 대규모 영화가 먼저 촬영을 시작했고, 작은 영화는 대규모 영화의 CG 및 편집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만들어졌다. 후처리 기간 내내 영화에 매달리는 대부분의 감독들에게는 혀를 내두를 만한 이유일 텐데, 아무래도 같은 편집자, 같은 음악감독, 거의 같은 프로듀서 등을 고수하여 늘 한결같이 영화를 만드는 스필버그 특성상 오랜 동료들에게 믿고 영화를 맡길 수 있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해 볼 수 있겠다.[54] 죠스를 찍은 직후 007 영화를 감독하고 싶어했지만 007 시리즈 제작자 앨버트 R. 브로콜리가 "꼴랑 죠스 한 편 성공한 걸로는 007 시리즈 감독하기엔 역부족이다"라고 퇴짜를 놓았다. 이후 스필버그가 기라성 같은 필모를 쌓은 다음 007 뷰 투 어 킬 때 감독 자리에 재도전하니깐 "당신은 007 시리즈를 감독하기엔 너무 유명하다"라고 또 거절했다. 재밌게도 모두 로저 무어007일 때의 일화다.[55] 해리슨 포드는 릭 데커드, 잭 라이언 캐릭터들도 무척 아끼는 반면 한 솔로는 그저 그렇게 생각한다.[56] 결국 해리 포터 시리즈에는 대부분 영국배우들이 출연했고 극히 예외를 꼽자고 해봐야 아일랜드 배우 정도다.[57] 2010년대 후반 현재의 상황을 보면, 완전히 대체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실현된 말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서비스 시장 [58] 오션 소프트웨어의 전직원들에 따르면 스필버그는 쥬라기 공원 게임도 영화만큼 혁신적(Ground-breaking)이기를 바란다고 의견을 강하게 표력했으며, 회의 때도 마치 게임광(Games geek)과 함께하는 분위기였고 때로는 유치하게 굴기도 했던 열성적인 창작자의 모습이었다고 한다.66쪽 참조[59]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감독인 제임스 건은 이 소식을 듣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블랙 팬서의 경우 지난 10년간 가장 문화적 영향력이 거대한 영화라고 평하기도 하였다.[60] 본래 블랙호크라는 히어로는 스필버그가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내놓기 이전부터 관심깊게 보던 캐릭터이기도 하다. 즉, 그가 말한 히어로물의 몰락은 그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쇠퇴할 것이라는 의미일 뿐, 자신이 싫어한다는 뜻이 절대 아닌 거다.[61] 마리오가 등장하는 VR 게임은 아케이드판으로 나온 마리오 카트 아케이드 그랑프리 VR닌텐도 라보 VR이 적용된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가 전부이다. 애초에 슈퍼 마리오 시리즈는 플레이스테이션으로 플레이할 수 없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