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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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라드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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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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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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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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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EE2D22; font-size: 0.9em"
알 에티파크
-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리오 퍼디난드
(2010~2011)

스티븐 제라드
(2011~2014)


웨인 루니
(2014~2017)


리버풀 FC 주장

사미 히피아
(2001~2003)

스티븐 제라드
(2003~2015)


조던 헨더슨
(2015~2023)


스티븐 제라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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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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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 · 2005-06 · 2006-07 ·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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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트로피.png

파일:PFA_UK_logo.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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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4 PL 도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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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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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 2008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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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 2006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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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1 · 2003-04 · 2004-05 · 2005-06 · 2006-07 · 2007-08 · 2008-09 · 2013-14
파일:European_Sports_Media_logo.png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1868d6; font-size: 0.9em"
2008-09 ESM 올해의 팀




2005 Ballond'or
수상
호나우지뉴
2위
프랭크 램파드
3위
스티븐 제라드
2005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호나우지뉴
스티븐 제라드
티에리 앙리
파일:World Soccer.png
Player of the Year 2005
수상
호나우지뉴
2위
스티븐 제라드
3위
프랭크 램파드


스티븐 제라드의 기타 정보






알 에티파크 FC
نادي الاتفاق لكرة القدم

파일:제라드 알 에티파크.jpg

스티븐 제라드
Steven Gerrard

본명
스티븐 조지 제라드, MBE
Steven George Gerrard, MBE
출생
1980년 5월 30일 (43세)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국적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
신체
183cm / 체중 83kg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1][2] / 은퇴)
축구 감독
주발
오른발
소속
유스
리버풀 FC (1987~1998)
프로
리버풀 FC (1998~2015)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2015~2016)
코치
리버풀 FC 아카데미 (2017)
감독
리버풀 FC U-18 (2017~2018)
레인저스 FC (2018~2021)
아스톤 빌라 FC (2021~2022)
알 에티파크 FC (2023~ )
국가대표
114경기[3] 21골 (잉글랜드 / 2000~2014)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역대 등번호
리버풀 FC - 8번, 17번, 28번
LA 갤럭시 - 8번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 4번[1]
종교
가톨릭
가족
아내 앨릭스 커런 (Alex Curran)
자녀 1남 3녀


1. 개요
2. 선수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2.3. 플레이 스타일
2.3.1. 제2의 전성기
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
4.1.2. 개인 수상
4.1.3. 출전 기록
4.2. 감독
4.2.1. 대회 기록
4.2.2. 개인 수상
4.2.3. 통산 기록
4.3. 수훈
6. 논란 및 비판
6.2. 구타 사건 및 기타 스캔들
7. 제라드에 대한 말, 말, 말
7.1. 헌정사
8. 여담
8.2. 풋볼(리버풀) 드립(13년 9월~20년 기준)
8.3. 기타



1. 개요[편집]


잉글랜드 국적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현재 알 에티파크 FC 감독직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미드필더였다.

유스 시절부터 줄곧 28년 동안 리버풀에서 활약하며 11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은퇴를 눈앞에 둔 말년까지도 여러 빅리그 팀들의 구애가 있었으나, 끝내 다른 빅리그 팀에는 이적하지 않고 미국 LA 갤럭시에서 은퇴하였다.

개인 커리어로는 FIFA FIFPro 월드 XIUEFA 올해의 팀에 3번씩 선정되었으며,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와 PFA 올해의 선수, FWA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고 2005년 발롱도르 3위에 이름을 올렸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스티븐 제라드/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 FIFA 월드컵: 12경기 3골 1도움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 9경기 1골 3도움

2000년대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제라드와 램파드의 중앙 미드필더 조합은 서로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동선이 겹치는 바람에 영 신통치 않아서 딱히 좋은 맛은 못 봤다.[4] 잉글랜드 중원은 1 + 1 = 0이라는 농담이 여기서 나왔다.[5]

UEFA 유로 2004에서는 조별리그 프랑스전에서 경기 막판 어이없는 패스 미스로 PK 빌미를 제공했고, 2-1 역전패의 원흉이 되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는 제라드 - 램파드 - 베컴 - 조 콜로 이어지는 막강한 미드필드진을 앞세워 유력한 우승후보로 점쳐졌으나... 정작 본선에서는 베컴의 발끝에만 의존하는 무딘 공격력으로 꾸역꾸역 승리를 챙겼고 결국 8강에서 탈락한다. 그래도 제라드는 부진했던 램파드에 비해 확실히 뛰어난 활약을 하며 트리니다드 토바고전과 스웨덴전에서 2골을 뽑아내며 체면치레는 했다.

UEFA 유로 2008에서는 지역예선 탈락하여 유로 본선 대회를 못 나갔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존 테리의 삽질로 당시 대표팀 주장이었던 리오 퍼디난드가 부상으로 이탈함에 따라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했다.

조별리그 첫 경기 미국전에서 선제골을 넣었다. 하지만 대표팀에서 제라드와 램파드의 조화를 이뤄 낼 중요한 카드였던 가레스 배리가 부상 후유증으로 폼이 완전히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램파드와의 조합은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슬로베니아와의 3차전에서는 램파드에게 볼 배급을 맡기고 본인은 측면에서 경기를 풀어 나가면서 둘의 조화가 제법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는 결국 상대적 약팀을 상대로 조화로움을 보여 준 것뿐이었다. 독일과의 16강 경기에서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나와 프리킥 상황에서 매튜 업슨에게 귀신 같은 크로스를 올려 1어시를 했다. 그대로 잘하는가 싶더니 램파드의 골이 오심으로 취소된 후부터 그야말로 탈탈 털리며 1-4로 참패하여 탈락하고 만다.[6]

UEFA 유로 2012 본선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했다. 제라드는 3도움으로 도움왕에 올랐지만 잉글랜드는 8강에서 이탈리아에 승부차기 패하며 탈락하였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도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했다. 하지만 좋은 경기력을 보여 주지 못하면서 이탈리아에게 패배했고, 우루과이전에서는 팀 동료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전혀 위화감 없는 킬패스를 찔러 주는 뼈아픈 실책으로 패배에 일조하였다. 결국 잉글랜드는 조별리그 2패로 조기 탈락이 확정되었다. 최종 성적은 1무 2패 골득실 -2.

2014년 7월 21일,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였다. 최종적인 국가대표 기록은 114경기 21골. 제라드의 국가대표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은 8강[7]으로 남았다. 팀 동료이자 국대 동료이기도 한 조던 헨더슨은 그에 대해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리더이자 선수였다며 극찬했다.


2.3. 플레이 스타일[편집]



그야말로 축구기계 그 자체. 슛, 패스, 크로스, 피지컬, 활동량, 유틸리티 능력이 모두 뛰어났다.[8] 다만 플레이 메이커로서의 창조성은 전성기 시절에는 다소 아쉬운 부분.[9]이러한 다재다능함이 있기에 팀의 암흑기에서 여기저기 부족한 부분을 매꾸며 고군분투하기도 하였다.

선수 시절 제라드가 고평가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다재다능함. 전술이해도, 지구력, 주력[10], 패싱, 수비, 활동량, 슈팅, 프리킥, 피지컬, 헤더, 볼 터치, 빌드업 능력에 오프 더 볼까지 축구선수에게 요구되는 능력들을 거의 다 A급 이상으로 갖추고 있는 꽉 찬 육각형 미드필더였다. 때문에 골키퍼나 전문 수비수를 제외하고, 그 어떤 포지션에 세워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해주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11] 데뷔 초창기엔 전투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다가 이후 공격적인 재능을 살려 박스 투 박스 중앙 미드필더부터 정발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국가대표에서는 반댓발 윙어까지 뛰기도 하며 미드필드 전 지역에서 활약했다. 물론 제라드 스스로도 말했듯 본인의 최적 포지션은 박스 투 박스 '중앙 미드필더'이다.[12]


중거리 슈팅 하면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선수이기도 하다. 킥력이 축구사를 통틀어 역대 최고 수준인 선수 중 하나로, 근 20년 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미하엘 발락, 폴 스콜스, 프랭크 램파드, 디디에 드록바, 아드리아누, 로빈 반 페르시 등 내로라하는 중거리 슈터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중거리 슛'으로 가장 명성을 떨친 선수는 다름 아닌 제라드이다.[13] 발목 힘이 정말 강해서, 강력한 슛을 날릴 수 있었는데 그 슛이 정확도마저 좋았다. 중거리 슛 득점이 매우 많고[14] 단순히 정면에서 차는 일반적인 중거리 슛 뿐 아니라, 어려운 위치나 상황에서의 중거리 슛도 여러 번 성공시킨 선수이다. 세트 피스 키커도 은퇴 때까지 본인이 전담.[15] 2000년대 중·후반에는, 프리킥 상황에서 직접 슈팅을 하기보다는 동료가 공을 밀어주고 바로 강슛을 날리는 것이 특기였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슛은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와 묵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전처럼 강하게 차기보다는 예리하게 감기는 킥으로 득점을 노렸는데, 말년까지 EPL 최고의 프리키커 중 한 명이었다.

패스 능력도 뛰어났다. 그중에서도 롱 패스가 일품[16]으로, 대단한 킥력과 시야로 정확히 볼을 배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완급 조절력이 뛰어나 엄청난 거리를 날아가면서도 마치 킬러 패스처럼 보일 만큼 빠른 스피드로 낮게 뻗어가는 비상식적인 궤적의 롱 패스도 잘 구사했다. 또한 중앙선 부근에서 한번에 기회를 창조하는, 엄청난 스피드와 정확도의 킬러 패스[17] 역시 중거리 슛과 함께 그의 유명한 장기였으며 이 패스로 여러 차례 도움을 기록했다. 리버풀의 중원을 제라드가 책임지던 시절, 그와 함께 뛰었던 공격수는 모두 침투에 능했기에[18] 활용도가 매우 높았다. 게다가 제자리에서 도움닫기 없이 하는 고난도의 아웃프런트 패스를 매우 능하게 사용하기도 했는데, 일반적 인사이드 패스와 경로가 완전히 반대였으므로 본인의 선택지를 크게 늘릴 수 있었다.[19] 그리고 주 포지션이 중앙 미드필더임에도 크로스가 매우 뛰어나 얼리 크로스 어시스트가 상당히 많으며, 코너킥과 간접 프리킥도 거의 본인이 책임지다시피 했다.[20]

또한, 장점인 롱패스에서 피를로, 알론소, 스콜스, 크로스 등 롱패스로 정평난 다른 선수들과 차별화된 강점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공이 공중에 떠서 패스 받는 선수에게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롱패스가 아닌, 가장 빠르고 정확한 롱패스를 구사하며, 또한, 가만히 있는 선수에게 롱패스를 전달하기 보다는, 패스받는 선수의 침투경로를 정확히 계산해서 침투하는 선수가 속력이 죽지 않고 패스를 받을 수 있게끔 롱패스를 구사하는 능력이다. 이는 크로스, 스콜스, 알론소와 구별된다. 현역 중에서는 케빈 더 브라위너, 폴 포그바의 패스 속도가 가장 빠른데, 이 둘보다도 빠른 패스 속도를 구사하는 선수가 제라드였다.

득점력도 뛰어났다. 프리미어 리그의 역대 중앙 미드필더 중 미들라이커로 불릴 만한 선수는 프랭크 램파드, 폴 스콜스, 야야 투레 정도가 있다. 이 중 스콜스는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 변경을 한 후엔 득점 수가 현저히 줄었고, 투레는 13-14 시즌을 반짝 빛낸 후 빠르게 저물었다.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꾸준히 많은 득점을 올린 중앙 미드필더는 램파드, 제라드뿐이다. 전성기 시절에는 제라드 역시 '미들라이커'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 선수였다. 램파드만큼의 골 수는 아니지만, 리버풀에서만 186골, 클럽 통산 191골이라는 수치는 어지간한 공격수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 득점수이며 EPL 통산 기록을 봐도 램파드에 이어 미드필더 역대 득점 2위이다. 기본적인 오프 더 볼이 훌륭했으며 볼이 없을때 동료의 패스를 적재적소로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수시로 만들었다. 때때로 공격수들이 상대 수비수들의 어그로를 끌면 페널티 박스 안을 침투하는 움직임을 가져갔으며 1:1 상황에서의 결정력이 상당히 우수하며, 각도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정확한 슈팅을 한다. 앞서 말한 중거리 슈팅 능력이 득점력에 지대한 영향을 준 건 물론이다. 왼발 슈팅도 준수하다. 중앙 미드필더 중에서는 주력이 매우 빠른 편이면서 뛰어난 침투능력과 박스 안에서 센터백과의 경합을 두려워하지 않는 저돌성까지 보유한 덕에 1:1 찬스를 많이 만들어 냈다. 박스 앞에서의 2:1 패스를 자주 시도하며, 이것으로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헤더 골도 꽤 된다.[21]

이렇게 중거리 슛, 거리와 방향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킬러 패스와 롱패스, 얼리 크로스 모두 월드 클래스 수준으로 갖췄기에, 공을 잡으면 한 번의 킥으로 큰 기회를 만들어 줄 것 같다는 팬들의 기대감이 특히나 높기도 한 선수였다.

게다가 한창 날아다니던 시절에는 상황에 따른 빠른 플레이 선택과 뛰어난 순간 판단력까지 갖춰서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제라드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빌드업 상황에서 빠른 반응속도와 정확한 터치로 단 한번의 정확한 퍼스트 터치 후, 아니면 논스탑으로 주저하지 않고 바로 패스, 직접 돌파, 슈팅 등으로 이어나가는 점도 부각되었으며, 빌드업 템포가 빠른 리버풀에서 특히 그러한 능력이 부각되어 그리 유연하지는 않은 턴 동작과 아주 세밀하지는 못한 볼 키핑에도 불구하고 볼을 잘 뺏기지 않고 중원 장악력이 뛰어나기도 했다.[22] 현대축구에서 제라드와 플레이 스타일이 유사하다고 평가받는 케빈 더 브라위너 역시[23] 매우 빠르고 합리적인 판단력과 본인이 선택한 플레이를 전개할 수 있는 능력으로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에 다이나믹함을 가미하고 있다.

수비력 역시 육각형 미드필더 답게 뛰어나다고 평가받았다. 대인 수비 능력이 우수하고, 경기의 모든 상황에 적극적인 모습으로 임한다. 거친 플레이도 불사하는 투지와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피치 이곳저곳을 종횡무진 누비는 활동량은 신인 시절이나 말년이나 변함이 없었고, 피지컬적으로도 매우 강인했다. 거친 플레이가 잦아 카드도 많이 받는 편이지만, 기본적으로 태클 성공률이 굉장히 높다. 슬라이딩 태클도 거침없이 하곤 했다. 피지컬이 우월한 편이기에 수비를 안정적으로 잘 한다. 승부욕이 강해 경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 덕에 공중볼을 따내는 비율이 높다. 또한, 제라드의 스태미너는 최고 수준이었으며, 몸의 내구성이 굉장히 좋아서 말년을 제외하면 잔부상 따위로 팀에 해를 끼친 일이 없다.

다만 수비적 역할이 많이 가중되는 위치의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될 경우 수비적인 장단점이 다소 명확해지는 편이다. 뛰어난 태클 능력, 강력한 저돌성과 투지, 공중볼 탈취 능력 등으로 수비 능력 자체는 뛰어나긴 한데, 그 플레이 스타일상 수비적으로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지키기보다 끝까지 쫓아가 슬라이딩 태클을 하는 등[24] 포지션의 이탈이 잦았고 본인의 공격 가담률마저 매우 높아 특히 수비 시 포메이션이 붕괴되는 경우가 있는 등 '안정성'이 다소 아쉬운 면이 있었고 4-4-2에서 한 자리를 맡기에는 장점은 장점대로 많았지만 저런 위험이라 할 부분도 있었다. 오죽하면 한창 젊은 제라드를 소개하는 국내 기사에서 '활동량이 지나치게 많아 포지션 이탈이 잦다는 점은 단점이다' 라고 언급될 정도. 베니테즈 역시 이런 부분을 언급했고 마스체라노, 알론소 앞에 제라드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두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공격 시 본 위치를 이탈해 박스 침투, 측면 침투 등 가담률이 매우 높으며 수비적으로도 위치 이탈이 잦다는 것은 그만큼 공에 가까운 위치에서 팀 동료에게 선택지를 많이 주고 전체적인 공헌도도 높다는 큰 장점이 있으나 반대로 특히 역습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라도 오면 아무리 스태미너가 우월해도 몸을 나눌 수 있는게 아닌 이상 한 자리는 비게 된다는 큰 부담이기도 하다.

완벽해보이는 제라드에게도 단점이 있으니, 드리블이 투박하다는 점이다. 제라드는 공격시 폭발적인 스피드와 우월한 피지컬로 위협적인 돌파를 하지만, 기본적으로 드리블이 길고 투박한 편이다. 이러한 단점으로 인해 부드럽게 압박을 피하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고 때문에 방향을 많이 전환하고 상대의 수비를 피해다니며 찬스를 기다려 패스를 찔러주는, 그러니까 '보편적인 플레이메이커' 타입의 선수들이 하는 플레이를 하기 힘들다. 주력이 평범한 램파드가 제라드보다 좀 더 우위인 부분이 바로 이러한 부분. 지공 상황에서 천천히 확실한 찬스가 날 때 까지 공을 주고 받으며 템포가 몹시 느린 축구[25]를 하는 경우에는 제라드 본인의 직선적인 움직임과 앞서 언급한 탈압박 등의 문제로 위협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제라드의 공격성이 가장 부각되는 상황은 팀의 공격 템포가 빠른 경우이다. 즉 역습 상황에서 공간이 많이 날 때 본인의 질주 후 최고 장기인 중거리슛을 하거나, 먼 거리의 쇄도하는 동료에게 파괴적인 킬러 패스를 하기도 하고, 피지컬과 스피드로 측면을 돌파해 크로스를 올리는 등의 장점들이 부각된다. 패스, 슈팅, 기동력이라는 최고의 장점들 뿐 아니라, 특히 젊은 시절의 제라드는 역습 상황의 빠른 템포에서 정확하고 효율적인 퍼스트 터치를 한 뒤 최소한의 움직임 후 빠르게 패스나 슈팅을 할 수 있는 순간적인 판단력에서도 출중함을 보였으므로 특히 템포를 살리는 축구에서 크게 활약할 수 있었다. 즉 볼 키핑이나 방향 전환이 잦을 수 밖에 없는 지공 상황에서보다는, 한번의 역습 찬스에서 빠른 판단으로 순식간에 공격을 해결 지어버리는 능력이 탁월하다.[26]

다만 드리블의 투박함과는 별개로 볼 터치 자체는 뛰어났다. 특히 언급한대로 퍼스트 터치가 매우 좋았다. 터치가 짧고 안정적이며, 상대 수비의 압박이 심한 공격 진영에서의 퍼스트 터치도 한방의 기발한 터치로 수비를 벗겨내 순식간에 결정적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 흑역사인 뎀바 바에게 볼을 뺏긴 실책 상황도 터치가 문제인게 아니고 바가 근처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점이 원인. 매우 빠른 판단력과 신체적 능력을 가진 전성기 기준으로는 상대방 선수의 압박을 순간적인 페인팅 동작, 공간을 잘 활용하는 효율적인 퍼스트 터치, 갑작스러운 턴 동작 등을 이용해서 한두명의 압박은 매우 쉽게 벗겨낼 수 있었고 그 빠른 판단력과 육체적 민첩함 덕분에 패스 미스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공을 뺏기는 일이 잘 없었다. 탈압박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상대 선수와 어깨 싸움을 하며 경합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순간 스피드와 피지컬의 결합이 우월한 수준이기 때문에 공을 거의 지켜낸다.

중요한 경기에서 이따금씩 큰 실수를 범하는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 이것에 대해서는 아래의 '흑역사' 문단에서 자세히 다룬다.

이런 다이나믹한 플레이 스타일로 선수 생활 초기부터 리버풀의 로컬 보이로써 상당한 주목을 받았고, 그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히피아에게 완장을 물려 받은 후인 04-05 시즌에는 드라마틱하게 이스탄불의 기적을 이뤄내며 발롱도르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신체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절정에 올랐다 할 수 있는 2000년대 중·후반에는 토레스와 함께 제라인을 구성하며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로 평가받았다. 월드베스트 3연속 수상과 같은 개인 수상도 굉장히 많았다.


2.3.1. 제2의 전성기[편집]



제라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이언 긱스처럼, 신체능력이 저하된 후에 포지션과 역할을 변경해서 성공한 대표적 사례이다. 기존의 폭발적 플레이 스타일이 누적되면서 2000년대 후반에 완전히 만성화된 사타구니 부상 문제는 2010년을 기점으로 제라드를 전성기에서 내려오게 만들었다. 일단 폭발적이던 활동량이 줄어든 만큼 강력한 중거리 슛을 거의 시도하지 않게 됐다. 또 나이가 듦에 따라 속도가 느려진 부분도 있지만, 전력 질주도 잘 시도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8년 연속으로 리그에서만 최소 30경기 이상 뛰던 엄청난 내구성의 선수가 사타구니 부상이 갑자기 자주 재발하기 시작한 후 10-11 시즌 21경기, 11-12 시즌 18경기 밖에 뛰지 못할 정도였다. 나이가 들며 반응 속도도 많이 떨어지고 패스 타이밍이 현저하게 떨어져 전성기에 볼 수 있던 강력한 킬패스도 거의 볼 수 없게 되는 등 에너지 넘치던 플레이 스타일이 노화와 부상으로 정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렇게 선수 생활의 중요한 기로에 놓인 제라드가 세월의 흐름을 견디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이다. 체력 소모가 적은 편인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로 와서 샤비 알론소가 몇 년 전 담당하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역할을 맡았다. 이 포지션 변경은 대성공하여, 전성기만큼의 활약은 아니지만 상당히 잘 적응한,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좋은 위치 선정으로 포백을 보호했으며, 타고난 수비 능력으로 홀딩 역할도 잘 해주었다. 특히,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필수 기술인 롱패스는 원래부터 제라드의 장기였던 만큼 대단한 수준이었다. 실제로 12-13 시즌부터 두 시즌 동안 EPL 롱 패스 성공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훌륭한 리더십은 덤이었다. 거기에 전성기 시절에는 크게 돋보이지 않았던 조율 능력이 크게 좋아져서 리버풀의 빌드업을 지휘하면서 지공 상황에서도 존재감을 크게 발휘하기도 했다. 말년에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서 리버풀에서 얼마나 중요한 선수로 자리잡았는 지는 아래의 통계를 보자.

  • 2012-13 시즌 관련 통계

2,000분 이상 뛴 필드 플레이어 중, 90분당 롱패스 성공 8.5회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으며, Whoscored 평점 7.54로 EPL 중앙미드필더 평점 3위를 기록했다. 게다가 롱패스 성공률은 더 말이 안된다. 경기당 롱패스를 11번 시도하면서 77%의 성공률을 기록했다.[27] 중앙 미드필더 평점 1위였던 산티 카솔라는 당시 29살이었고, 2위였던 마루앙 펠라이니는 26살인 것을 감안하면, 33살의 제라드가 이 평점을 받은것은 언터쳐블한 결과이다.

파일:스티븐제라드1.jpg
당시 제라드의 위엄을 보여주는 사진. 제라드와 롱패스 기록이 비슷한 선수들이 전부 골키퍼이다. 이처럼 제라드가 리그에서 달성한 303개의 롱패스 기록은 골키퍼처럼 롱패스를 많이 시도할수 있던 포지션에서나 기록할 수 있던 수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캡션



  • 2013-14 시즌 관련 통계

34살의 나이로 PFA 올해의 팀에 수상되었으며, Whoscored 평점 7.77점으로 미드필더 중 1위, 전체 2위[28] 세부기록도 전부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다. 90분당 롱패스 성공 8회[29], 90분당 키패스 2.1회, 90분당 태클성공 3회로, 34살의 노장 미드필더가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과 플레이메이킹을 전부 담당했다. 리버풀이 당시 리그 우승만 했다면 포지션 변경 및 성공 회춘 사례의 대표격으로 뽑혔을 엄청난 퍼포먼스였다.


3.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스티븐 제라드/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기록[편집]



4.1. 선수[편집]



4.1.1. 대회 기록[편집]




4.1.2. 개인 수상[편집]




4.1.3. 출전 기록[편집]


시즌
클럽
리그
FA 컵
리그 컵
대륙 대회[30]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8-99
리버풀
프리미어 리그
12
0
0
0
0
0
1
0
1999-00
29
1
2
0
0
0
-
-
2000-01
33
7
4
1
4
0
9
2
2001-02
28
3
2
0
0
0
15
1
2002-03
34
5
2
0
6
0
11
2
2003-04
34
4
3
0
2
0
8
2
2004-05
30
7
0
0
3
2
10
4
2005-06
32
10
6
4
1
1
12
7
2006-07
36
7
1
0
1
1
12
3
2007-08
34
11
3
3
2
1
13
6
2008-09
31
16
3
1
0
0
10
7
2009-10
33
10
2
1
1
0
13
2
2010-11
21
4
1
0
0
0
2
4
2011-12
18
5
6
2
4
2
-
-
2012-13
36
9
1
0
1
0
8
1
2013-14
34
13
3
1
2
0
-
-
2014-15
29
9
3
2
3
0
6
2
2015
LA 갤럭시
메이저 리그 사커
13
2
1
0
-
-
0
0
2016
21
3
0
0
-
-
2
0
19시즌
통산


4.2. 감독[편집]



4.2.1. 대회 기록[편집]


  • 레인저스 FC (2018~2021)
    •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2020-21[31]


4.2.2. 개인 수상[편집]



4.2.3. 통산 기록[편집]


구단
연도
경기



승률
레인저스 FC
2018.06.01 ~ 2021.11.11
193
125
42
26
64.8%
아스톤 빌라 FC
2021.11.11 ~ 2022.10.20
40
13
8
19
32.5%
통산
233
138
50
45
59.2%


4.3. 수훈[편집]




5. 특징[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스티븐 제라드/특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논란 및 비판[편집]



6.1. 다이빙할리우드 액션[편집]


파일:external/i290.photobucket.com/Gerrard-dive-comp.gif
어쨌든 제라드는 국내에도 굉장히 팬층이 두터운 선수이지만 2009년 연이은 스캔들로 그 위상이 많이 실추되었다. 평소의 모범적인 이미지와 상반되는 양면성이 드러났기 때문인데, 그는 시뮬레이션 액션 및 그런 행위를 일삼는 선수를 향해 일관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2006년 데일리 메일과 가진 인터뷰에서 "상대 선수가 근처에 있지도 않았는데 시뮬레이션 액션을 하는 것 만큼 나쁜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축구를 망치는 길이죠. 만약 제 팀 동료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 전 그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할 겁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특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히카르두 카르발류직접적으로 축구를 망치는 존재로 거론할 만큼 시뮬레이션 액션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본인이 그렇게 함으로써 비판을 받았다. 참고

특히 움짤에도 있는 08-09 시즌 11월 4일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AT 마드리드와의 홈경기에서 논란이 심한 헐리웃 액션을 보여주면서 그 비판이 절정에 달했고, 결국 위선자라고 무진장 까였다.


6.2. 구타 사건 및 기타 스캔들[편집]


술집에서 싸움을 벌여 시민을 구타해서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같이 싸움 벌인 사람들은 대부분 유죄 판결났는데, 혼자 무죄 판결나서 뭔가 의혹이 생기는 중이다.[32] 2010년 3월에는 위건에게 리버풀이 패배한 경기에서 심판에게 V사인[33]을 보였고, 다음 경기인 포츠머스 FC와의 경기에서 상대편 주장 마이클 브라운에게 팔꿈치를 날렸지만, 두 사건에 대해 징계는 받지 않았다.[34]

파일:attachment/uploadfile/chadobox.jpg

덕분에 요새(08년도 기준)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들이 잔뜩 생겨났다. 스티붕 구라드, 스티븐 구타드, 스티범 죄라드 등.

평소에는 별로 말이 없지만, 다혈질인 성격으로 알려져있다. 비슷한 성격인 가레스 배리와는 둘도 없는 절친이다. 배리를 리버풀로 꼬셔 보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맨체스터 시티의 쇼미더머니에 버로우 당했다.[35] 그리고 배리가 빠꾸 먹인 09년 후반부터 리버풀의 악몽이 시작됐다.

다만 악동 이미지를 달고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던 예전에 비하면 요새는 나이도 그렇고 성격이 많이 죽은 듯 하다. 실제로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사진이나 인터뷰에서 웃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이런 걸 보면 여전한 거 같기도 하다.[36]


7. 제라드에 대한 말, 말, 말[편집]


파일:external/static.guim.co.uk/Steven-Gerrard-002.jpg

월드클래스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램파드, 파브레가스, 이니에스타다. 제라드는 이 범주에서도 원 오브 더 베스트에 들어간다.

카를로 안첼로티[37]


영리한 선수는 그 역할에 잘 적응할 수 있는데 제라드는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 그는 훌륭한 패서이고 영리한 축구 지능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는 위대한 비전이 있다.

AC밀란 시절 안첼로티는 내게 제라드와 함께 뛰는게 어떻냐고 물어봤고 나는 망설임없이 “그를 데려오자.”고 답했다. 전성기의 그는 유럽에서 가장 완벽한 미드필더였고 당연히 나는 그와 함께 뛰고 싶었다. 몇주 뒤 안첼로티에게 영입이 어떻게 돼가고있냐고 물어보니 “제라드는 AC밀란의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했고 리버풀과의 강한 유대감을 도저히 깰수가 없다.”고 답했다.

안드레아 피를로


(리피 감독이 데 로시에게 제라드와 비슷한 선수라고 하자)로마와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발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리피 감독의 칭찬이 매우 기쁘다. 제라드와 같은 대단한 선수와 비교되는 것은 당연히 기쁜 일이다.

다니엘레 데 로시[38]


델피에로는 언제나 나의 우상이었다. 그는 전설이다. 그치만 나의 포지션에서는 제라드에 닮기를 열중했다. 그만큼 완벽한 미드필더를 본 적이 없다. 나는 유벤투스의 제라드가 되고싶다.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39]


나는 제라드를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로 꼽을 것이다. 물론 잉글랜드가 아닌 전 세계에서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제라드는 경기를 결정 짓는 선수였다. 더불어 그는 아직도 리버풀을 위해 헌신한다. 제라드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는 전설 그 자체이다.

프란체스코 토티


제라드는 내가 같이 뛰었던 이중 가장 위대한 선수중 하나였다. 그가 그곳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주었다는 것은 숨길 일이 아니다. 그는 챔피언이었다.

알베르토 아퀼라니


제라드 같은 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나도 오늘날 이런 감독이 될 수가 있었다.나는 내 선수들뿐만이 아니라 상대팀 선수 중 최고의 선수들을 통해서도 많은 걸 배운다. 그들은 항상 내게 풀어야 할 문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제라드는 나를 생각하게 하고 철저히 분석하게 한 대표적인 선수이다. 내가 최고가 된 건 최고의 적인 제라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어느 감독이 그를 영입하길 싫어하겠는가. 제라드를 데려오고 싶다.

주제 무리뉴[40]


제라드는 리버풀의 영혼이다. 제라드는 환상적인 선수다. 또 세계 최고 선수 중 하나다. 그는 너무나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팀 동료들을 돕고 이끌지도 잘 알고 있다. 제라드가 곧 리버풀이다.

라울 곤살레스


2010 남아공 월드컵 기간에 토레스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토레스는 리버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고, 리버풀을 사랑한다. 리버풀에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 토레스는 자신의 스트라이커 파트너로 제라드를 생각하고 있다. 그는 최고의 스트라이커 파트너는 제라드라고 나에게 말했다. 스페인 대표팀 다비드 비야보다도 훨씬 더 잘 맞는다고 했다. 토레스가 올시즌 리버풀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 기대하는 것 역시 제라드가 있기 때문이다. 리버풀의 감독이 공격수 조합에 토레스와 제라드를 다시 생각하기를 바란다. 만약 실제로 그 조합이 이뤄진다면 성공적인 시즌이 될 것이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제라드는 내가 너무 사랑하는 선수야. 스티븐 제라드! 그에 대해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나는 그의 이름에 r이 한 개 들어가는지 2개 들어가는지 모르겠거든.[41]

그래도, 그의 모든 것들과 그의 플레이를 나는 사랑해. 그는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리더야. 골을 넣고, 좋은 패스를 보내며, 파워풀하게 뛰어다니지. 그의 태클까지...모든게 훌륭해. 실로 완벽한 선수지.

다비드 비야


제라드는 메시호날두만큼의 주목을 받진 못하지만 그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팀의 엔진과 같은 존재인 제라드는 팀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레알은 클로드 마켈렐레의 도움이 없이는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 제라드도 마켈렐레와 마찬가지로 팀에 중요한 선수다. 그는 패스, 득점, 태클 모두에 능하며 무엇보다도 자신감을 갖고 주위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십을 갖췄다. 이러한 재능은 배울 수도 없이 그저 타고나야 하는 것이다. 월드 베스트(Best)는 호날두도, 메시도 아닌 제라드다. 제라드가 World Best다.

퍼거슨 감독이 세계 최정상급 반열에 있었던 감독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제라드를 비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퍼거슨의 이번 지적은 틀렸다.[42]

지네딘 지단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축구 선수는 제라드.

알렉스 퍼거슨[43]


제라드는 나의 롤 모델이다. 그는 수년간 리버풀의 심장 역할을 해왔다. 또한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그는 매우 모범적인 선수다. 나 역시 그처럼 되길 원한다. 제라드는 위대한 선수다. 물론 나와는 조금 다른 스타일이다. 그의 롱패스가 나보다 더 정확하다. 제라드가 리버풀에서 그랬듯이 나도 아스날의 승리를 이끌고 싶다.

잭 윌셔


제라드는 환상적인 선수다. 제라드는 충성심이 강하며 리버풀을 이끌고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제라드는 부상이 없을 때 항상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함께 뛰고 싶은 선수다. 또한 제라드는 기술이 뛰어나고, 경기에서 정교한 볼 터치를 보여준다. 난 그런 제라드를 존경한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스티븐 제라드가 되고싶다.

코케


내가 함께 뛰어본 선수 중 최고는 제라드이다.

제라드는 내가 추구하는 축구를 완성시키는 선수이다.

페르난도 토레스


나는 항상 제라드에게 존경심을 품어왔다. 그는 다른 선수들을 돋보이게 한다.

프랭크 램파드


세계 최고선수 3명을 꼽자면 메시,호날두 그리고 제라드이다. 메시와 호날두는 빠른 스피드와 기술, 재능 등을 가졌지만 현대축구의 관점에서 제라드는 완벽한 선수이다. 나는 스티븐 제라드의 엄청난 팬이다. 그는 사자의 심장을 가지고 있으며 공수에 능한 현대 축구 선수의 아이콘이다.

카카


가장 소중한 자원은 잉글랜드 대표팀의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전 세계 선수들 중 한 명만 데려올 수 있다면 제라드를 데려오고 싶다.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Q) 제라드와 함께 하고 싶은가? (A) 정말, 정말, 너무나 하고 싶다. 제라드는 너무나 고무적인 선수다. 그는 하고자 하는 일을 이뤄내는 선수다. 제라드는 말 한 마디 없이 리버풀에 힘을 실어 준다.(2009년)

우리는 서로 많은 경기에서 상대했었고 난 늘 그에게 가서 말했다. ★너와 함께 뛸 수만 있다면 영광일거다★라고. 제라드는 모든 공격수들의 꿈이다. 그와 함께 뛰어본 모든 공격수들에게 물어보라. 페르난도 토레스, 루이스 수아레스 등등. 그는 여전히 그런 존재다. 그가 보내는 모든 패스는 공격수들에게는 정말 꿈만 같은 패스다. (2015년)

티에리 앙리


제라드와 같은 전설과 함께 뛸 수 있어 너무나 자랑스럽다. 그와 함께 뛴 건 내 축구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그가 리버풀에서 이룩한 모든 것에 존경을 표한다. 나의 친구. 무엇을 하든지 잘 되길. (2015년 리버풀에서의 고별경기를 앞두고)

루이스 수아레스


지구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축구선수임을 느끼기 위해선 가장 중요한 트로피를 들어 올리거나 스티븐 제라드와 함께 경기를 뛰어야 한다.

알바로 아르벨로아


그는 세계 어느 팀을 가더라도 잘 할 것이다. 스티비는 잉글랜드의 빠른 템포에서도 뛸 수 있으며 기술적으로도 뛰어나다. 그는 분명 역사에 위대한 선수로 남을 것이다. 내게 있어, 그는 이미 위대하다.

샤비 알론소


제라드와 같이 못 뛴 건 유감이다. 모두 그와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길 원했기 때문이다. 제라드는 선수 시절 그의 포지션에서 세계 최고 선수 중 하나였다. 레알에 오지 못한 건 아쉽지만, 리버풀로서 행운이다. 그는 많은 재능과 실력을 안필드에서 보여줬다.

루이스 피구


내 말이 좀 편파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리스트[44]

에 이름을 올린 선수 중 제라드가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을 가진 선수는 없다.

대니 머피


나는 제라드를 최고의 미드필더로 꼽고 싶다. 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도 그를 높이 평가한다. 나는 그가 여전히 최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패트릭 비에이라


제라드는 내가 기술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기억하는 유일한 선수이다.

사비 에르난데스[45]


제라드는 내가 함께 했던, 내가 상대했던 선수들 중 최고였다. 그리고 내가 본 최고의 선수들 중 하나였다.

웨인 루니


스티비는 내가 지금껏 함께 뛰어본 선수 중 최고 중 한 명이다. 그와 함께 뛴 몇 년은 내게 행운이었다.

데이비드 베컴


그는 피지컬적으로 (상대하기)가장 힘들었다. 박스투박스 미드필더라 오른쪽, 왼쪽을 가리지 않고 중거리 슈팅을 날렸다. 기계와 같았다.

세스크 파브레가스


제라드는 득점과 패스, 수비, 태클, 헤딩 등 뭐든지 할 수 있는 선수다.

브라이언 롭슨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와 관련해 제라드의 경기를 봤다. 그는 모든 걸 갖췄다. 그는 끈적한 태클을 구사하였으며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리더십, 득점 능력을 모두 갖추었으며 감정적인 선수였다. 그냥 믿을 수 없는 선수였다. 그는 이미 가장 위대한 선수로 인정받지만 직접 그의 경기를 보기 전까지는 아마 진가를 모를 것이다. 볼 운반 능력과 매끄러운 플레이, 상대 선수의 저지 타이밍 등을 연구하기 위해 야야 투레파트릭 비에이라와 같은 선수들의 영상도 봤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봤을 때 내가 지향해야 될 선수는 제라드였다.

데클란 라이스[46]


최근 지네딘 지단의 경기를 많이 보고 있다. 그는 스티븐 제라드와 더불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드필더들이다.[47]

Q. 전, 현직 선수들을 통틀어 유니폼 교환을 하고 싶은 선수는 누구이며 이유는?

A. 음, 스티븐 제라드입니다. 또한 웨인 루니도 생각이 나네요. 하지만 제라드로 갈 것 같습니다. 등번호 8번 포지션이 저와 비슷하니까 제라드와 유니폼 교환을 할 것 같아요.[48]

Q. 롤모델이 제라드 맞나요?

A. 저 지금 긴장하고 있어요.[49]

네, 당연하죠. 팀내에서 스티비가 해냈던 것들, 그러니까 팀을 캐리했던 모습들, 혼자 힘으로도 팀을 승리로 이끌었던 모습들을 보면, 스티비는 미드필더로서 모든 걸 할 수 있는 선수였습니다. 그동안 여러번 말해왔지만 전 선배님 그리고 선배님의 플레이를 우러러봐왔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 이렇게 서있는게 정말 기쁘네요.[50]

주드 벨링엄


제라드, 램파드, 스콜스 중 최고는 제라드다. 심지어 나머지 둘은 제라드 레벨에 다가서지도 못했다. 그들과 제라드를 비교하는 것은 제라드에게 실례다.[51]

마크 노블



7.1. 헌정사[편집]


제라드의 안필드 마지막 고별경기가 있던 날 전, 수많은 현직 유럽축구 슈퍼스타들과 감독들, 유명인사들이 SNS를 통해서 제라드에게 헌정사를 남겼다.

스티븐 제라드를 향한 60명의 SNS 헌정사

위 헌정사를 올렸던 선수들의 면면이 그야말로 지구방위대급이다. 현재 리버풀 소속인 선수들을 제외하면 아래와 같다.

<전 리버풀 소속 선수>

루이스 수아레스, 닐 멜러, 디트마어 하만, 루이스 가르시아, 디르크 카윗, 다니엘 아게르, 페르난도 토레스, 에밀 헤스키, 피터 크라우치, 필 톰슨, 알베르트 리에라, 앤디 캐롤, 막시 로드리게스, 요시 베나윤, 라이언 바벨, 이안 러시, 로이 에반스, 베가드 헤겜, 하울 메이렐레스, 욘 아르네 리세, 티티 카마라, 알바로 아르벨로아

<리버풀 소속이 아니었던 축구선수 또는 감독(대표 소속팀)>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유벤투스 FC), 티에리 앙리(아스날 FC), 조이 바튼(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아르다 투란(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스테반 그라네로(레알 소시에다드), 주니뉴 페르남부카누(올림피크 리옹), 알레산드로 네스타(AC 밀란), 안드레아 피를로(AC 밀란, 유벤투스 FC), 카카(AC 밀란), 엠마누엘 아데바요르(아스날 FC), 안드리 셰브첸코(AC 밀란), 세스크 파브레가스(아스날 FC, FC 바르셀로나, 첼시 FC), 아스미르 베고비치(스토크 시티 FC), 앨런 시어러(뉴캐슬 유나이티드 FC), 팀 케이힐(에버턴 FC),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데이비드 베컴(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레알 마드리드 CF), 파올로 말디니(AC 밀란), 프란체스코 토티(AS 로마), 루디 가르시아(AS 로마 감독), 게리 리네커(FC 바르셀로나, 토트넘 홋스퍼 FC)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동영상으로 헌사를 하였다. 밑으로 내리면 유튜브 동영상이 있다.

지네딘 지단도 제라드의 마지막 홈경기가 끝난 뒤에 헌사를 했다.

<축구선수가 아닌 유명인사>
캐롤린 워즈니아키[52]

이쯤되면 스티븐 제라드가 동시대를 뛰었던 선수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충분히 설명이 되리라 본다.


8. 여담[편집]


파일:시대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jpg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5인을 선정했는데, 2000년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2위에 이름을 올렸다.

  • 현역 시절 게리 네빌이 제라드에게 슬쩍 말해주길, 사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맨유로 영입을 원하던 선수였다고 한다. 다만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실제로 영입제의를 하진 않은 모양. 제라드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학을 뗐다. 라이벌 팀이라는 것만 빼고 생각하면 기쁘게 생각할 수 있을 만한 일이다. 주제 무리뉴의 첼시 1기 시절과 레알 마드리드 당시의 영입 제의는 퍼거슨의 건과는 달리 생각할 여지 정도는 있었다고 한다. 맨유와는 달리 딱히 라이벌팀이 아니었던 것도 있지만, 당시 우승경쟁을 포기한 듯한 리버풀의 구단 사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도 있었던 모양. 결국 거절했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 밖에도 여러 빅클럽에서 러브콜은 현역시절 내내 있었다고 한다.[53]

  • 몬톨리보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제라드라 하였고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탈리아 vs 잉글랜드 전에서 라치오의 미드필더 파롤로까지 제라드가 아이돌이라 밝혔다. 경기 후 제라드에게 유니폼을 요구했었는데 이미 다른 선수들과의 선약때문에 유니폼 교환을 못했다고 한다.[54]

  • 피오렌티나의 마누엘 파스쿠알이 제라드의 광팬이다. 아퀼라니를 통해 제라드의 주장완장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후 주장으로 출전하는 경기에는 반드시 그 암밴드를 차고 나온다고. 교체되어 들어갈 때에는 그후 주장을 맡을 선수에게 제라드의 암밴드를 넘겨주는 건 물론 아니고 교체 선수가 다른 주장완장을 배달해준다. 누가 봐도 EPL 주장 완장이다.

  • 지네딘 지단은 선수 시절에도 제라드에 대해 극찬을 많이 하였다. 제라드가 리버풀 나가길 결심하고 또다른 도전을 한다고 하자, 덕담을 하면서 선수시절 레알 회장에게 제라드와 같이 뛰고 싶다고제라드 영입을 요구했다고 한다.

  • 그외 제라드에 대한 지단 발언들.
지단 "제라드의 대표팀 은퇴, 리버풀엔 호재"
'레전드' 지단이 꼽은 최고 MF

  • 델리 알리롤모델이자 히어로.직접 발언[55]


  • 리버풀 동료들과 함께 두바이로 휴가를 떠났을 때, 다같이 몸을 숙이고 "콜로, 콜로 콜로, 콜로 콜로, 콜로 콜로 투레" 거리다 다같이 몸을 들고 "야야, 야야 야야, 야야 야야, 야야 야야 투레!"하고 외치는 일명 "투레 송"을 부르는 것이 유튜브에 올라와 화제가 되었고, 이는 후에 잉글랜드 여자 국가대표팀이 패러디하며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링크 카메라를 들고가다 직원에게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마마두 사코의 모습이 압권.


파일:JBM_GRAPHIC-Uefa-All-Time-XI-v2.jpg
  • UEFA 궁극의 팀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다.[56] 당연히 공격수에는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선정되었고 제라드는 차비 에르난데스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중원을 형성하고 있다. 관련 기사

  • 2014년 8월에 42골의 얀 묄뷔를 제치고 현재까지 47골로 리버풀 FC 역대 최다 페널티 킥 득점자로 등극하였다.


8.1. vs 프랭크 램파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스티븐 제라드 vs 프랭크 램파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2. 풋볼(리버풀) 드립(13년 9월~20년 기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리버풀 드립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3. 기타[편집]


아디다스 CF에선 출연하지도 않았는데 데이비드 베컴관광보냈다.


베컴: 좋아하는 축구 선수가 누구니?

소년: 제라드요.


소년의 무심한듯 시크한 대답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을 때 대충 고자되기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57]

리버풀이 한창 굴곡진 팀생을 보냈던 시기와 제라드가 선수로서 늙어가는 시기가 겹쳤던지라 제라드가 꼬꼬마 시절일 때부터 봐온 올드팬들은 내가 악동이 성자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며 감격인지 한탄인지 모를 하소연을 한다 카더라. 현재는 수아레스마저 팀을 떠나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라 팀의 순위와 더불어 고통의 아이콘이 되었다. 수아레스마저 떠날까 봐 밤에 잠을 설쳤다고 한다.

# 수아레스를 붙잡기 위해 자신도 작년에 챔스를 나가는 팀에게 제의가 들어왔지만 거절했다고 밝혔는데, 수많은 영국 언론들이 이 클럽을 뮌헨으로 추측했다.만약 성사되었다면 슈슈-하비-제라드 조합을 뮌헨에서 볼 수 있었을 것.

1분 54초부터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한 바 있다. 2008-09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마르세유 원정 때 페널티킥을 넣는 장면으로, 지학사의 수학 적분과 통계 익힘책에서 등장했다. 정확히는 빨간 유니폼의 선수들과 하늘색 유니폼의 골키퍼가 나오는데 스폰서 칼스버그 마크가 없어도 그 경기와 이 교과서를 모두 본 리버풀 팬들은 기억이 떠오르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 경기가 치뤄진 시기는 이 개정 교육과정의 첫 세대인 1993년생들이 중학교 3학년일 때였다. 또한 이 경기에서 제라드는 페널티 킥으로만 두 골을 넣었다. 페널티 킥이 삽화로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등장한 위치는 확률 쪽 단원.

최근 자서전에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았는데, 선수로서의 일 외에 선수 영입 관련 업무도 수행했다고 한다. 지금은 첼시의 선수인 윌리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의중을 묻기도 했다고. 물론 리버풀의 성적이 하향세를 그리며, 그리고 리버풀이라는 몰락 탄광 도시를 홈으로 삼고 있는 것 때문에 거절도 많이 당했지만 그에 대해서 이해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구단의 역사나 비전은 선수가 이적할 때 주로 고려되는 사항이지만, 클럽이 위치한 연고지의 치안이나 거주 문제도 중요시된다. 리버풀은 잉글랜드에서도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이 나 있어서, 외국 선수가 쉽게 터를 잡기엔 리스크가 있는 것. 선수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안전도 중요한 문제다. 스티븐 제라드 본인도 이것을 알고, 런던을 연고지로 하는 첼시로의 이적에 대해 이해한다는 식의 글을 자서전에 수록했다.

가장 충격적인 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브랜든 로저스 리버풀 감독의 요청을 따라 토니 크로스에게 리버풀 행을 권유한 것이다. 제라드는 로저스와 달리 현실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2014년 월드컵 우승팀의 주축을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인 레알 마드리드가 노리고 있는데 이건 미친 짓이다' 라며 만류했지만 로저스는 그냥 미소만 지어댔다고 한다. 당연히 크로스는 레알 마드리드로 가버렸고, 그나마 다행히 크로스는 제라드를 바보 취급 안 하고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한 모양. 제라드는 자서전에서 '크로스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지 않도록 나를 배려해 주었다.' 라면서 그가 훌륭한 인격자라며 감사를 표했다.

훔바훔바라는 멸칭이 있는데 일베저장소/축구 게시판에서 누군가가 "제라드는 이름빨로 뜬거지 이름이 스티븐 훔바훔바였다면 필시 듣보잡이었을것"이라는 발언이 유래다. 그때까지만 해도 디씨/일베의 리버풀까 일부를 제외하면 크게 주목받는 밈은 아니었지만 13/14 시즌의 실책때문에 해당 멸칭이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당연히 리버풀 팬 입장에선 금지어. 급기야 이를 기리는 시까지 등장했다.

자서전에 따르면 어린 시절 축구를 하다가 날카로운 철제 공구 같은 것에 발등을 완전히 관통당한 적이 있다. 공이 덤불로 들어갔고, 손은 안 닿여서 발로 공을 꺼내려고 시도하다가, 그 뾰족하고 거대한 기구를 발등으로 차버린 것. 난리가 나서 병원에 실려갔고 병원에서도 결과를 장담하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수술 결과도 좋고 잘 회복이 되었다.



2017년 3월 25일에 안필드에서 열렸던 리버풀과 레알 마드리드 레전드간의 친선경기에서 혼자서 1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리버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스코어도 스코어지만 경기 내용이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마이클 오언의 첫 번째 골에서는 우측면 돌파에 이은 머리만 대면 골로 이어지는 크로스 배달, 존 알드리지의 두 번째 골에서는 페널티 박스 밖에서부터 시작된 절묘한 뒷공간 침투에 이은 발만 대면 골로 이어지는 땅볼 크로스 배달, 로비 파울러의 세 번째 페널티 킥 골의 유도 과정에서는 루이스 가르시아, 로비 파울러와의 계속되는 패스워크를 통한 전형적인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침투, 그리고 절묘한 라인브레이킹으로 최후방 수비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돌파하면서 골키퍼[58]와의 1:1 찬스를 PK로 유도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쐐기골은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를 퍼스트 터치만으로 정면의 수비수를 벗겨냄과 동시에 논스톱 발리슛으로 득점하였다.[59]

득점과 어시스트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골대를 강타했던 페널티 박스 밖에서의 호쾌한 중거리 슛, 그리고 13/14 시즌을 연상시켰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전형적인 역할인 대지를 가르는 롱패스, 16/17 시즌 아담 랄라나가 생각나는 피치 곳곳을 활동량으로 커버하는 등 전성기 시절 하이라이트를 한 경기에 모여서 보여주는 듯한 미친 활약을 보여줬다.

그야말로 트레콰르티스타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가 보여줄 수 있는 교과서적인 플레이를 단 한 경기로 거진 다 보여주었다.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팬투표로 결정되었던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된 것은 덤이다.

16/17 시즌 종료 후 치러진 시드니 FC와의 친선경기에 제이미 캐러거, 다니엘 아게르, 스티브 맥마나만 등 과거 동료들과 함께 출전했다. 상대가 호주리그이긴 하지만 프로팀인데도 이를 상대로 은퇴전의 모습처럼 정밀한 장거리 롱패스와 좋은 움직임을 수차례 보여주었다.

파일:Jan2018GERRARD8fromLFCmegastore.png
15년 여름을 끝으로 리버풀을 떠났음에도 리버풀 FC 온라인 스토어에서는 자체 GERRARD 8 마킹[60]을 다른 현역 스쿼드와 동등하게 제공하고 있다. 아니, 동등한 수준이 아니라 '최우선'이라 해도 될 정도다. 10번이 빠진 것을 보면 알겠지만 원래 선수 이적이 결정되면 공식 스토어에서도 마킹 서비스를 중단하게 마련이나, 리버풀 FC 공식 스토어에서는 떠난 지 3년이 되어가는 선수의 마킹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도 현역 선수단과 감독보다도 높은 위치에서 가장 먼저 보여줄 정도. 물론 이것은 U-19 유소년 감독으로 여전히 리버풀의 일원으로 함께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17년 여름까지는 제라드의 은퇴 시점까지 쓰이던 프리미어리그 공식 프린팅까지 제공되어 15/16, 16/17 시즌 유니폼에 GERRARD 붙어다니는 광경이 목격되었으나, 17/18 시즌부터 프리미어리그 프린팅 도안이 바뀌어서인지 프리미어리그 프린팅은 제공되지 않는 중. 리버풀의 팬들에게 제라드가 얼마나 소중하고 잊을 수 없으며 대신할 수 없는 존재였는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둘째 딸인 렉시 제라드는 모델로 데뷔했다. 참고로 매우 미인이다.

게임 피파 시리즈에서 대단한 스탯을 자랑한다. 특히 최전성기였던 피파 2009~2010 시절 근처에는 총 스탯 합계가 전체 선수 중 압도적으로 1위일 정도로 육각형 선수로서 게임에 구현되었다. 또한 역대급 중거리 슈터라는 명성 다운 스탯을 갖고 있는데, 중거리슛 스탯이 전체 게임 선수 중 1위인 시리즈가 피파 07, 08, 09, 10이며, 슈팅력이 1위인 시리즈는 피파 10, 11, 12, 13이다.[61] 게임에서도 오랜 기간 압도적인 중거리슛 능력을 인정받았다. 절정은 중거리슛 96, 슈팅력 95의 피파 2009와 중거리슛 95, 슈팅력 95의 피파 10이다. 30대가 되고 중거리슛이 갑자기 적어지며 피파 11부터 중거리슛 스탯도 최상위권이긴 하나 상당히 떨어졌다.

국내에서는 리그 우승 및 국가대표 성과가 없고 결정적인 실수들을 이유로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하며 그의 실력과 명성이 과대평가 되었다는 얘기까지 안티들 사이에서 나올 정도지만 사실 이는 근거가 희박하다. 다른 건 다 필요없고 제라드가 만약 과대평가 되었다면 왜 주제 무리뉴가 첼시,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에서 그에게 엄청나게 구애를 했으며, 왜 황금기 시절 AC 밀란이 피를로 - 가투소 - 세도르프 - 카카로 이어지는 황금 중원에 제라드를 영입해 주전 미드필더로 활용하려 했으며, 왜 제라드의 전성기가 사실상 지난 2012년에 21세기 구단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하인케스의 바이에른 뮌헨이 그를 영입하려 들었겠는가? 제라드는 명백히 자신이 뛰던 시기에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였으며, 개인 수상 면에서도 역대에서 그를 앞서는 미드필더들은 몇 없다.

선수 시절,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과 사제지간으로 호흡을 맞춘 적은 없지만, 제라드는 클롭의 조언이 지도자로 성장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으며 클롭에 대해 큰 신뢰와 지지를 여러차례 표한 바 있다. 일례로, 제라드가 코치 라이센스 과정 일환으로 클롭에게 면담 15분을 요청했는데, 클롭은 무려 90분이나 면담에 응했다고 한다. 이에 제라드는 "내가 클롭을 만날 때마다 느낀 건 그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요청할 때마다 그 이상을 줬다"며 극찬하였다. 또 레인저스 FC 감독 부임 이후로도 고충이 있을 때마다 클롭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을 다 물어본다고 밝혔으며, 늘 최고의 조언을 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로 부족하다고 하였다.#1#2#3 이후 2023년에도 클롭에 대한 본인의 심경을 냈었는데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4/15시즌, 구단의 계약 연장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클롭의 지도 아래 6개월의 시간을 더 가질수 있었을 것이며 미국행도 없었을 것이라는 소회를 밝혔다.#4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리버풀 vs 바르셀로나 2차전 경기를 직관했으나, 리버풀이 이날 4-0으로 승부를 뒤집은 경기를 너무 떨려서 차마 다 보지 못하고 다음날 딸을 학교에 데려다줘야 한다며 일찍 자리를 떴다. 떨린 이유가 자신이 보기에도 메시, 수아레스 등 바르샤 공격진의 플레이가 너무 뛰어났기 때문이란다.[62] 이후 토트넘과의 결승전을 보러 에스타디오 메트로폴리타노를 직접 찾아갔다. 리버풀의 6번째 챔스 우승이 확정되자 기쁨의 박수를 쳤다.

[1]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2] 4-2-3-1 포메이션에서 원톱 페르난도 토레스와 함께 제토라인을 구축해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3]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출장 4위[4] 사실 잉글랜드의 무전술이 두 선수를 활용 못 하기도 했었다. 수비진에서 롱볼로 넘기거나 베컴한테 몰아 주거나 아니면 조 콜 혼자서 했으니... 중원에 베컴이랑 조 콜 빼고는 죄다 매크로에, 전문적인 수미 하나 없었다. 베컴과 램파드가 수비를 지원해 주고 제라드가 수비적인 역할을 맡는다 해도 확실히 포백 보호를 수행할 수 있는 미드필더가 없다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결국 활로는 베컴의 택배 크로스밖에 없을 정도로 답이 없었다.[5] 이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 멤버들은 개개인의 네임밸류만 보면 단연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였다. 월드클래스 미드필더 데이비드 베컴과 제라드, 램파드가 중원을 구성했고 조 콜이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공격진에는 마이클 오언도 아직 건재하던 시기였고, 웨인 루니가 신성으로 떠올랐다. 수비진은 리오 퍼디난드존 테리가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당시 잉글랜드는 큰 대회에서의 활약이 떨어지는 전통을 넘어서지 못했고, 중원에서 제라드-램파드 조합의 부조화와 뻥축구로 대표되는 무전술로 국제 대회에서는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 줬다. 오히려 네임밸류 면에서는 떨어지는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되었지만 팀워크는 좋은 현재 대표팀이 월드컵 4위를 기록하며 선배들보다 잘 나간다.[6] 이 경기에서 잉글랜드는 하필 4231을 선택한 독일을 상대로 442로 나와 루니가 강제로 미드필드 라인으로 내려오고 데포는 실종되며 포돌스키가 제임스 밀너ㆍ글렌 존슨의 오른쪽을 털어버리는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7] 유로 2004, 2006 월드컵, 유로 2012[8] 주 포지션인 중앙 미드필더는 포메이션 가리지 않고 잘 뛰었고 공격형/수비형 미드필더, 4-4-2 포메이션의 양쪽 윙은 물론 윙백에 풀백까지 전문 골게터와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 있어 탑급의 능력치를 장착하였다. 제라드가 라이벌인 램파드를 비롯 타 레전드들과 비교할 때도 다재다능한 부분에서는 늘 점수를 더 받아가는 편이다. 이를 반영하듯, 피파온라인이나 FM 등 대부분의 축구 게임에서도 제라드는 거의 모든 포지션에서 높은 능력치가 산정된다.[9] 하지만 13-14 시즌 들어 딥-라잉 플레이 메이커로 전향한 제라드는 결국 창조성까지 월클을 찍었다.[10] 제라르 울리에 리버풀 前 감독의 회상에 따르면, 마이클 오언과 스피드 테스트 결과가 같았다고 한다.[11] 실제로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연장전 라이트백으로 뛰기도 했다.[12] 리버풀은 2000년대 확실히 스쿼드의 레벨도, 두께도 다른 빅4에 비해 약한 팀이었고 베스트 11에 해당하는 선수의 변경도 잦았다. 최적 위치는 중앙 미드필더지만, 다른 자리에서도 최고 수준의 기량을 보여주는 제라드였기에 특히 베니테스 시절에는 포메이션 상 가장 마땅한 선수가 없는 위치에 제라드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팀 전체 레벨을 올리는 일이 많았다. 이는 제라드가 그저 땜빵 수준이 아니라 미드필드 그 어떤 포지션에 뛰어도 팀의 전술을 본인이 이끄는 에이스 급 활약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오죽하면 08-09 시즌 이전까지 '제라드 원맨팀'이라는 수식어가 리버풀에 상당히 자주 따라다녔을 정도.[13] '블리처리포트'에서는 EPL 역대 중거리 슈터 1위로 제라드를 뽑았다. 10위부터 1위까지 투가이, 히츨스페러거, 스콜스, 판페르시, 리세, 드록바, 로랑 로베르, 호날두, 램파드, 제라드 순이다.[14] 박스 밖에서 득점한 골이 통산 212골 중 52골이나 된다(페널티 박스 라인과 겹치는 몇 골 포함). 직접 프리킥 득점 8개까지 더하면 무려 60골이다.[15] 다만 근거리 직접 프리킥은 루이스 수아레스가 있을 때는 수아레스가 좀 더 많이 맡았다.[16] 스콜스, 알론소와 함께 EPL 역대 최고의 롱 패서 중 한명으로 유명하다.[17] '킬패스'는 콩글리시. '킬러 패스'가 옳은 단어이다. 횡패스로 주로 기회를 창출하는 타 미드필더와 달리 제라드의 경우 특히 종적으로 찔러주는 킬러 패스가 발군이다.[18]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 라인브레이킹의 대가 루이스 수아레스, 침투의 달인 페르난도 토레스 등.[19] 전성기였던 2000년대 중~후반 패스 성공률은 대략 70% 후반대~80% 초반대 정도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닌데 박스 투 박스 플레이어인데다가 공격을 빠르게 진행하는 특성상 특히 동료들과 큰 의미없는 패스를 주고받는 횟수가 적어 경기당 패스 수 자체가 많지 않은데다가 위험한 패스를 시도하는 비율마저 아주 높아 최고 수준이라 불릴 정도의 패싱 레벨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수치이다.[20] 제라드의 기회 창출 능력이 실로 대단한 게, 2007년 12월 한 달간 PL 기회 창출 26회로, 이 수치는 단일 월간 기회 창출 PL 역대 Top 5에 들며, 2000년대 후반에는 시즌 100회가 넘는 기회 창출을 하기도 했는데, 19-20 시즌 케빈 더 브라위너의 기회 창출 횟수와 거의 동일한 수치이다. 찬스 메이킹에 특화된 롤이 아니며 박스 침투 횟수와 포지션 이탈이 매우 잦고, 플레이 스타일과 팀 전술 상 패스 수도 중앙 미드필더 치고는 상당히 적은 편인걸 감안하면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21] 212골 중 18골로 중앙 미드필더 치고는 상당히 많은 헤더 골이다. 참고로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골도 이스탄불 기적 당시 헤더 골.[22] 안첼로티 역시 그의 전술노트에서 제라드를 당시 세계 no.1 중앙 미드필더로 뽑은 이유 중 하나로, 다른 최고 수준의 미드필더와 차별화되는 능력 중 특히 플레이 선택 판단력과 타이밍의 감각을 뽑기도 했다.[23] 다만 제라드는 좀 더 투박한 대신 특유의 역동성에 좀 더 우월함을 가지고 있고, 더브라위너는 제라드보다 조율과 기술적인 부분이 좀 더 뛰어나다.[24] 이런 플레이도 뛰어난 슬라이딩 태클과 집중력으로 성공률이 높긴 했으나 혹시 실수라도 하게 되면 바로 중원의 한 자리가 비게 된다.[25] 예: 점유율 축구, 티키 타카를 시전하는 팀들. 이러한 지공 위주의 팀에서 뛸 경우 제라드가 가진 최고의 장점들(중거리 슛, 빠른 템포의 역습 주도, 압박이 적은 틈에 순식간에 전방으로 찔러주는 킬러 패스, 매우 뛰어난 퀄리티의 롱 패스)을 활용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제라드랑 정 반대 타입의 월드 클래스 미드필더로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다비드 실바를 꼽을 수 있다.[26] 베니테스 역시 전술노트에서 제라드를 직선적이며 매우 빠른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선수로 평하며 완급 조절 능력이 부족해 사비, 리켈메와는 달리 지공에 적합하지 않다고 평했다. 또한 빠르고 파괴적인 양상으로 경기가 흐를 때 빛을 가장 발했다고, 위의 서술과 일맥상통하는 언급을 했다.[27] 이게 얼마나 미친 기록이냐면 19-20 시즌 케빈 더 브라위너의 롱패스 성공률 73%, 18-19 시즌 페르난지뉴의 롱패스 성공률 59%, 17-18 시즌 데 브라이너의 롱패스 성공률 66%, 16-17 시즌 폴 포그바의 롱패스 성공률 68%, 15-16 시즌 산티 카솔라의 롱패스 성공률 66%, 14-15 시즌 파브레가스의 롱패스 성공률 66%를 전부 뛰어넘는 압도적인 기록이며 이들보다 시도횟수도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비교대상이 포그바와 카솔라를 제외하면 모두 그들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다.[28] 예상을 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 시즌의 EPL 후스코어드 평점 1위는 루이스 수아레스다. 2013-14시즌, 루이스 수아레스는 EPL 득점랭킹 1위(33경기 31골), 어시스트 2위(33경기 17어시스트)라는, 그야말로 EPL 역사에 길이 남을 48개의 압도적인 공격포인트로 경기당 1.45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더군다나 이 기록은 시즌 초반 4경기를 징계로 인해 날려먹은 상태에서 패널티킥 득점이 하나도 없는, 모든 골이 필드골로만 이루어진 기록이었다. 참고로 4년 뒤 EPL 역대 단일시즌 득점기록을 갈아치워 버린 모하메드 살라의 2017-18시즌 EPL 기록이 36경기 32득점 11어시스트 43공격포인트로 경기당 공격포인트가 1.19였다. [29] 리그 2위[30]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31] 무패 우승[32] 리버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해서 시끌시끌했었다. 처음에 폭행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던 것이 CCTV 증거물에 찍힌 동영상으로 자기의 주장이 완전 거짓으로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배심원제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33] 두 손가락으로 V자 모양을 만들어 손등을 상대에게 보이는 것으로, 영국에서는 중지를 올리는 것과 비슷한 용도다.[34] 사실 포츠머스전에서의 사건은 잉글랜드 축협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축협 규정에는, 심판이 직접 보고 나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상황에 대해서는 축협이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사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시, 주심은 그 사건을 눈앞에서 봤지만 구두경고로 끝났다. 그리고 그 직후, 라파 베니테즈 감독은 제라드를 교체했다.[35] 베리는 그 뒤에 시티에서 12-13 시즌까지 활약한 뒤에 이적했는데 하필 그 팀이 에버튼이다.[36] 상대적으로 아스날 주장에 비해서 하는 행동과 제라드의 표정 때문에 안 좋게 보일 수 있는 건 맞지만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원래 표정이 저렇다. 거기다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 저 던진 걸 가지고 가는 사람한테 주는 거다. 우리나라에선 던진다는 것 자체가 버릇이 안 좋게 보일 수도 있으나 서양에선 해당이 안 된다. 거기다 다른 팀 주장들도 다 저렇게 한다고 한다.[37] 희한하게 이탈리아 미드필더들이 제라드를 엄청 좋아한다. 선수 시절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안첼로티 감독은 자신의 자서전에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는 제라드라며 칭찬하였고, 실제로 밀란 시절에 영입하려 했다고 밝혔다. 여담으로, 안첼로티는 밀란 시절에 피를로가 같은 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드필더의 정점을 제라드로 잡고 그 바로 다음이 피를로라고 평했다. 그 다음으론 데 로시. 하지만 안첼로티의 전술노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안첼로티가 이탈리아인이라서인것과는 별 관련이 없는 듯 하다. 그 당시 여러 최고 수준의 미드필더에 대해 자세한 평가를 했고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서 '형용사 없는 일반적 중앙 미드필더''로 제라드를 No.1으로 꼽았다.[38] 또한 제라드가 자신의 우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39] 이탈리아와의 월드컵 경기에선 전반전이 끝나곤 마르키시오와, 후반전이 끝나곤 피를로와 유니폼을 교환하였다.[40] 무리뉴도 제라드에 아주 목말라있는것도 유명하다. 예전 첼시 시절 2번, 레알 마드리드 시절 1번. 총 세 번이나 제라드를 영입하려 했다고 한다.[41] 3개 들어간다.[42] 퍼거슨의 자서전에 제라드는 탑플레이어는 아니다 라는 언급이 논란이었는데 그에 대한 대답이다.[43] 퍼거슨 자서전 사건이 나기 수년전의 발언이다. 한술 더 떠서 여러번 영입 시도까지 하였다.[44]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후보 목록. 제라드를 비롯하여 킨, 램파드, 비에라, 롭슨, 알론소 등이 이름을 올렸다.[45] 여러 선수들을 설명했지만 유일한 선수라는 언급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 볼수 있다.[46] 영국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47] 출처[48] 출처[49] 경기 끝난 후 인터뷰인데 제라드가 패널로써 바로 앞에 있었다.[50] 직접 앞에서 대놓고 팬심을 드러냈으며, 제라드도 벨링엄에 대해 덕담을 하였다. 후에 영광이었던지 본인 인스타에 제라드와 포옹하는 사진을 올렸다.[51] 출처[52] 2020년 6월 시점 여자 세계 랭킹 2위인 덴마크의 테니스 선수다.[53] 나중에 제라드와 같이 토크쇼에 나온 무리뉴가 밝히길, 첼시 시절 제라드를 정말 원했었다고 한다.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제의를 고민해본 이유도 제라드와 램파드를 같이 쓸 수 있다는 점이 컸다고. 자신의 머릿 속에는 제라드와 램파드를 조합해서 쓸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둘을 공존 시키지 못한 역대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54] 전반 끝나곤 마르키시오와, 후반 끝나곤 피를로와 교환하였다.[55] 2:19대[56] 따로 투표를 한 것은 아니고 UEFA 올해의 팀 선정 횟수에 따라 기계적으로 나열한 것이다.[57] 사실 소년이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이 리버풀을 상징하는 빨간색이다. 맨유도 빨간색이다 결국 리버풀의 팬이라서 제라드를 좋아한다는 대답이 나올 것이 뻔하다. 그래서 처음부터 베컴은 본인을 좋아한다는 대답을 들을 수가 없는 상태에서 그냥 빈말로 물어본 것이다. 게다가 맨유와 리버풀이 사이가 극도로 안 좋다는 것을 생각하면 몰랐을리도 없다.[58] 여담으로 이 때 제라드를 상대한 키퍼는 예지 두덱. 이날 경기에서 스티브 맥마나만예지 두덱은 양 팀 모두의 레전드였던 관계로 전반에는 리버풀, 후반에는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뛰었다.[59] 이날 리버풀의 세 번째 골이 터진 이후부터 제라드가 공을 잡기만 하면 관중들의 야유같은 소리가 이어졌었다. 사실은 야유가 아니라 'Shooooooot', 즉 제라드보고 골 넣으라고 슛하라는 말을 하는 것. 결국 골대를 한 차례 강타하고 난 뒤 제라드는 득점까지 성공하게 된다.[60] 유럽대회나 리그컵, FA컵, 기타 친선 경기 등에서 쓰이는 프린팅이다. 프리미어리그 프린팅은 리그 공통 도안이 지정되어 있다. [61] 물론 이 이전 몇 시리즈에서도 제라드를 초과하는 슈팅력 스탯을 가진 선수는 많아야 1~3명 정도였다.[62] 그러나 이날 바르샤 공격진들은 리버풀 홈의 야유 때문인지 골로 이어지는 찬스를 좀처럼 성공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통한의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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