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브족이여
덤프버전 :
<^|1><height=34><bgcolor=#ffffff,#1f2023>
[ 펼치기 · 접기 ]
}}}
1. 개요[편집]
〈슬라브족이여〉는 과거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국가이다.
선율이 현대 폴란드 국가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후렴부와 느린 박자와 음정을 약간 조절한 것을 제외하면 두 노래의 선율은 아예 동일하다. 이렇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애초에 이 노래가 폴란드 국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유고슬라비아와 폴란드가 축구를 비롯한 국가대항전 체육경기를 열 때마다 관중들이 서로의 국가를 혼동하기도 했다.
2. 역사[편집]
1834년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일부였던 슬로바키아[1] 의 시인인 사모 토마시크(Samo Tomášik, 1813–1887)가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 프라하를 방문하였다. 이때 토마시크는 체코어보다 독일어가 훨씬 많이 들리는 프라하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2] 그 순간 토마시크의 머리 속에서 폴란드 노래(이자 훗날 폴란드의 국가가 되는)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가 떠올랐고 강한 영감이 떠오른 토마시크는 바로 노래의 가사를 자신의 민족인 슬로바키아인으로 바꾼 내용으로 개사했다. 이것이 나중에 슬로바키아인뿐만 아니라 슬라브족 전체를 가리키는 내용으로 바뀌면서 지금의 노래가 만들어졌다. 그 후 이 노래는 오스트리아 지배 하의 서슬라브 및 남슬라브 민족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다.
3. 사용 국가[편집]
시가 처음 쓰인 곳인 슬로바키아에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타트라 산 위에 번개가 쳐도〉가 공식 국가로 되었을 때에도[3] 많이 불렸으며 나치 독일의 괴뢰국 시절에 해당되는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때에도 여당에서 많이 불렸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에서는 유고슬라비아 민주 연방 시절인 1943년에 채택되어 사용되었으며[4] 1948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인민공화국[5] 당시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으로 취임 후 이 노래를 민족주의의 산물이라며 당장 교체하려 했으나 과거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출신 사람들의 반발과 마땅히 교체할 노래가 없어 계속 사용했다고 정해진다. 그 이후 신유고 연방 시기에도 새로 국가를 지정하려 했으나, 이렇다할 지지를 받은 새로운 국가 후보가 없어서 이 곡을 사용했다. 이후 2006년 몬테네그로가 분리독립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이 노래는 유고슬라비아만의 노래가 아닌 슬라브권 국가들의 범슬라브주의적인 노래로 해석되고 있다. 때문에 유고슬라비아 구성국의 언어뿐만 아닌 이 노래의 원본급으로 평가되는 폴란드, 이 노래가 만들어진 슬로바키아, 그뿐만이 아닌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 여러 버전이 있다. 사실상 모든 슬라브어파 언어로 번역이 된 노래이며, 유튜브 등지에 올라가 있는 노래 영상[6] 을 보면 서로 죽도록 치고받는 슬라브족 국가들이 일심단결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또한 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아에서는 유고슬라비아 관련 행사를 할 때 많이 애창되는 노래이다. 주위 사람들도 이에 맞춰서 자리에 일어나 예를 갖춘다.
4. 가사[편집]
4.1. 세르보크로아트어[편집]
4.2. 슬로베니아어[편집]
4.3. 마케도니아어[편집]
4.4. 슬로바키아어[편집]
5. 영상[편집]
[1] 엄밀히 말하면 슬로바키아는 헝가리 왕국의 일부였다. 그 헝가리 왕국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통치하고 있어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 헝가리의 지배를 받는 슬로바키아라는 3중 지배 형태였다.[2] 보헤미아 왕국이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로 편입된 이후 독일 본토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독일인이 체코 영내로 이주했다. 이후 보헤미아는 주요 민족인 체코인 뿐만 아니라 프라하 등 대도시와 수데티를 중심으로 독일인 역시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프라하는 30년 전쟁 이후 독일인의 이주가 가속화되면서 오히려 19세기 중반까지 독일인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지역이었다. 프라하가 다시 체코인 다수지역이 된 것은 1848년 혁명 이후 체코 민족주의의 등장과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체코인이 프라하로 대거 이주해 온 19세기 후반부터였다. 즉 이 당시에는 프라하에서 독일어가 더 많이 들리는 게 자연스러웠다.[3] 당시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시절이었으니 체코 국가인 〈나의 조국은 어디에?〉와 함께 연주되었다.[4] 나치 독일 침략 이전에 있었던 왕정 시절의 국가는 현 세르비아 국가와 현 크로아티아 국가, 구 슬로베니아 국가 선율이 합쳐져 있는 국가였다.[5] 과거 유고슬라비아의 국호였으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과 이름만 다르고 같은 국가였다.[6] 대부분이 세르보크로아티아어 버전이나 가끔씩 기타 슬라브어로 된 영상이 보인다.[7] 크로아티아어 기준으로 적힌 것이라, 키릴 문자로 기준으로 적힌 세르비아어와는 일부 단어 표기와 문장 부호의 사용 여부가 조금 다르다. 세르보크로아트어라는 큰 언어의 종류이기 때문에, 맞춤법 정도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8] 아드리아해 연안에서 부는 활강바람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5 06:47:39에 나무위키 슬라브족이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