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덤프버전 :



[ 펼치기 · 접기 ]

초대
신격호
(1948~2011)


제2대
신동빈
(2011~ )




신동빈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롯데 제2대 회장
신동빈
辛東彬 | Shin Dong-Bin

CBE

파일:신동빈 롯데그룹 회장.jpg

일본명
시게미츠 아키오
重光(しげみつ 昭夫(あきお | Akio Shigemitsu[1]
출생
1955년 2월 14일 (69세)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2]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3]
본관
영산 신씨[4]
직업
기업인
종교
개신교[5][6]
현직
롯데그룹 회장
롯데지주 대표이사 회장
일본롯데 회장
롯데웰푸드 대표이사 회장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회장
롯데칠성음료 대표이사 회장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
치바 롯데 마린즈 구단주
학력
쇼토 유치원 (수료)
아오야마가쿠인 초등부 (졸업)
아오야마가쿠인 중등부 (졸업)
아오야마가쿠인 고등부 (졸업)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경제학부 (경제학 / 학사[7])
컬럼비아 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 석사)
부모
아버지 신격호, 어머니 시게미츠 하츠코[8]
형제자매
이복누나 신영자
신동주
이복여동생 신유미
배우자
시게미츠 마나미[10]
자녀
장남 신유열
장녀 신규미
차녀 신승은
경력
노무라 증권 사원 (1980 ~ 1988)
일본 롯데상사 사원 (1988 ~ 1990)
호남석유화학 상무 (1990 ~ 1997)
롯데 부회장 (1997 ~ 2010)
대한스키협회 회장 (2014 ~ 2018)
신체
180cm
병역
전시근로역 (귀화)
1. 개요
2. 생애
2.1.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2.3. 법정 구속
2.4. 사면
3. 여담
4.1. 장남
5. 수상 경력



1. 개요[편집]


대한민국기업인. 롯데그룹 회장.


2. 생애[편집]


1955년 2월 14일 일본 도쿄도에서 한국인 아버지 신격호 롯데그룹 초대 회장과 일본인 어머니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1930. 8. 10 ~ ) 사이의 2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신격호 회장의 일본 저택이 위치한 부촌시부야구 쇼토의 쇼토 유치원[11]을 졸업했고, 이후 아오야마가쿠인 일관제 코스를 타서 초~고등부를 거쳐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으며,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12]

1981년 4월부터 1988년까지 일본 노무라 증권[13]에서 일했고, 대부분의 기간에 런던지점에서 일했다. 1988년 4월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했다. 1990년 호남석유화학의 상무로 취임하면서 대한민국 롯데에서 공식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14] 1997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 후 1999년 코리아세븐 대표이사, 2000년 롯데닷컴 대표이사, 2004년 호남석유화학 대표이사 및 롯데쇼핑 정책본부장을 각각 겸임했다. 2011년에 그룹 회장으로 취임하고 2014년부터 제20대 대한스키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신격호가 총괄회장으로 올라서면서 일본 롯데는 신동주가, 한국 롯데는 신동빈이 사실상 운영을 하는 모양새로 진행되었고, 2008년에는 신동빈의 한국 롯데의 지배력이 강화되었다. 롯데 자이언츠가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고 막대한 투자를 한 것도 신동빈의 롯데 계열사 다지기의 일환이라고 보는 시선이 강했다.


2.1.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롯데/경영권 분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5년 7월부터 형 신동주와 롯데그룹의 경영권 다툼을 하고 있는데, 판이 커져서 신격호 + 신동주 + 일부 친인척 vs 신동빈 구도로 흘러갔다.

2015년 8월 3일 오후 2시 30분에 귀국하여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부분의 질문에 밝힐 수 없다는 발언을 했으나, 롯데가 일본 기업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매출의 95%가 우리나라(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국 기업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 발언을 바로 일본 언론에서 가져가서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일본에서까지 국적 논란이 불거졌었다.

곧바로 신격호를 만났는데, 롯데그룹 측의 말에 따르면 분위기가 좋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반면, 신선호 산사스 사장이 밝힌 내용에 의하면 신동빈 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인사하자마자 "나가!"라는 소리를 듣고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한다. 신동주에 따르면 아버지에게 싸대기를 맞았다고 한다.

2015년 8월 11일 오전 11시에 또 다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여론의 악화와 정부의 개혁 압박에 대처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그런데 채널A가 그의 일본어투 한국어를 발음 그대로 자막으로 띄워주는 방송사고를 저질렀다. 당시 회견 마무리에 사과회견을 하면서 미안하다는 표현을 써서 약간의 논란이 되었다. 결국 해당 방송 프로그램은 중징계를 받게 되었다.

2015년 8월 17일 임시주주총회 결과 승리, 롯데그룹 회장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2015년 9월 17일 대한민국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서 롯데그룹의 현황, 지분구조 등에 대해 진술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한민국 10대 재벌 총수 중에서 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다고 한다. 기사1 기사2 기사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신동빈 출석을 강하게 요구한 야당과 그것에 미온적이었던 여당 사이에 고성이 오고가기도 했는데, 정작 국감 최대 거물이 출석을 하니 여야가 하나되어 덕담을 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2015년 10월 초, 광윤사의 주식 지분을 신동주가 차지하면서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롯데그룹에서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10월 16일에는 신격호 회장이 머무르는 롯데호텔 34층의 관할권 절반을 사실상 신동주에게 내주면서 양측이 공동관리했다.

2016년으로 넘어와 3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 주주총회에서 다시금 대결이 벌어졌는데, 신동주 측에서 상정한 안건이 모두 부결되면서 죄다 승리했다. 신동주 측이 광윤사 지분을 갖고 있어도 다른 주주들이 죄다 신동빈 우호지분인지라 승리할 껀덕지가 없었다. 특히 일본 경영진들과 종업원 지주회를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한 것이 신동주 측의 패배 요인이다.

신동빈이 이처럼 주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실적 때문이다. 신동빈이 롯데그룹 회장을 맡은 이후 롯데그룹의 매출이 20조원에서 80조원으로 4배에 달하는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보여준 실적이 매우 크기 때문에 주주들이 압도적으로 신동빈을 지지하는 것이다. 거기다 신격호의 건강에 대해서도 이상설이 꾸준히 돌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신격호의 뜻이다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신동주 측의 의견은 주주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그리고 2017년 6월 24일에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도 역시 신동주 측에서 상정한 안건들이 죄다 부결되고, 오히려 아버지 신격호의 이사직을 재선임하지 않는 인사안이 통과되면서 명실상부한 롯데그룹의 최고경영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로써 4차에 걸친 왕자의 난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번 일로 형제 간의 경영권 분쟁이 사실상 결판났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제는 창업주인 신격호를 회사 경영에서 배제시키는 안건이 통과될 정도로 확고하게 신동빈의 경영권을 인정해 준 셈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2.2. 롯데 비자금 조성 의혹[편집]






2.3. 법정 구속[편집]


개요 문단에도 나와있다시피 2018년 2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 재판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서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70억을 호텔롯데의 상장과 면세점 면허 재취득이라는 부정한 청탁을 목적으로 한 뇌물로 판단, 징역 2년 6개월, 추징금 70억을 선고하면서 법정 구속되었다. 신 회장이 구속되면서 롯데그룹은 창설 이후 첫 총수 부재의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피고인인 그와 검찰이 고등법원에 항소하면서 1심 재판부와 별개의 판단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를 기대하기도 힘든 것이 이미 신동빈은 국정농단 사건과는 별건으로 기소된 롯데그룹 경영비리사건과 관련하여 2017년 12월 22일 징역 1년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언도받은 상황이다. # 현재로서는 사건이 분리되어 있어 직접적인 영향이 없을지 몰라도 후일 항소심 재판부에서 사건병합을 결정한다면 원심판단 유지의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법정구속된 2018년 2월 13일을 기점으로 대법원에서 1심에서의 형이 확정되는 경우 그는 2020년 8월 13일까지 수감 생활을 지속해야 하는데 현정부 하에서 특별사면 등의 형태로 조기출소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점쳐진다. 일단 지난 박근혜 前 대통령 시절 최태원 SK회장 특별사면 이후 SK 측에서 최태원 회장의 남동생의 가석방을 대가로 대통령의 권한을 직접적으로 한 뇌물공여의 1심유죄가 이미 간접적으로 인정된 상황에다가 유죄판단의 근거였던 일명 "말씀자료"와 "현안전달" 등의 증거를 뒤집을만한 이슈가 발견되지 않았고, 또한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지속되고 있는 일명 적폐청산 구조 하에서 행해지고 있는 정책 등을 비추어보면 현정부가 사면권을 직접적으로 행사하기에는 여론상의 문제도 그렇고 매우 부담스러운 문제가 될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15]

그러나 그 예상과는 다르게 10월 5일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뇌물 공여는 맞지만 수뢰자의 강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법원에서 #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이 확정되어 본격적인 자유의 몸이 되었다.


2.4. 사면[편집]


2022년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강덕수 STX그룹 전 회장과 함께 이름이 올랐다. # 이후 완전히 사면되었다.


3. 여담[편집]


  • 조용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지만 신동주보다는 조금 더 활발한 편에 가깝다고 한다. 실제로 신동빈 회장을 가까이 보았던 롯데 출신 인사들의 말에 따르면 대외적으로 보이는 것과 같이 조용하고 나긋한 성격이라고 한다.

  • 이름만 들어서는 평산 신씨 35세손 항렬자(申東-)로 오인하기 쉽지만 롯데의 신씨영산 신씨이며, 평산 신씨와는 성씨 한자가 다르다.(申 ↔ 辛) 작은 아버지가 창업하고 사촌동생들이 경영하는 농심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라면 이름이 申라면이 아니라 辛라면임을 기억하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 2016년 8월 26일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두할 예정이었다가 최측근이자 롯데의 부회장인 이인원롯데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으로 인해 자살로 숨을 거두며 조문을 위해 빈소를 찾았다. 신동빈은 출근 직후 해당 내용을 보고 받자마자 말을 잇지 못하였다고 하며, 이 와중에 빈소를 찾은 기자들이 장례식장에 입장중인 신동빈에게 마이크를 들이밀고는 "이인원이 왜 죽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하는 추태를 부려 국민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미 신동빈은 이인원의 빈소에서 들어올기 이전부터 눈이 충혈될 정도로 비통해하는 상태였다. 조문 과정에서도 오열하며 슬픔을 감추지 못하였고 1시간이 넘도록 빈소에 머무르며 이인원의 죽음을 슬퍼하였으며# 다음날에는 비교적 담담해진 모습으로 빈소를 다시 찾아 이번엔 가족들을 위로했다.#[16] 최측근의 죽음에 슬퍼하는 신동빈에게 마이크를 들이밀며 인터뷰를 요구하는 기자들의 모습에 국민들이 실망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 형인 신동주가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여 경영권 분쟁 당시 극심한 여론의 비판을 받은 것과 다르게 신동빈은 형보다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하고 과외를 받으며 한국어를 학습한 사실도 알려지면서 여론이 그나마 호의적이다. 물론 일본어의 억양이 많이 남아서 한국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한국어의 발음이 미약한 것은 아니고 일본어로 발음하는데 한국어로 들리는 것에 가까워서 받침 발음을 어려워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하지만 재일교포 2세라는 사실과 50세를 앞둔 늦은 나이에 한국어를 학습한 점을 감안하면 신동빈은 교포 2~3세 중에서도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편이다. 일반적인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한 형에 비하면 아주 양호하지만 어휘 선택과 문장 구사력은 일반적인 한국인보다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2015년 8월 3일에 경영권 분쟁과 관련하여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이런 사태가 일어난 데 대해서 진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발언하였는데 대국민 사과임을 감안하면 적절한 어휘 선택은 아니다. 한국에서 성장한 기업인이라면 일반적으로 "국민 여러분께 이번 사태로 인해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하여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표현한다. 8월 11일에 공식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지만 많이 부족한 한국어 발음으로 한국인이 맞냐는 비판도 상당하였다.

  • 많은 국민들이 신동빈의 한국어 실력을 놓고 한국인이 맞냐는 식으로 비판하는데 그 비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살펴볼 부분도 존재한다. 이민자가 많은 미국에서는 이민자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 오히려 비판한 사람이 인종차별 주의자로 비판받는다. 신동빈은 신격호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사업을 시작하고 일본인과 결혼하여 태어난 자식이기 때문에 국적을 배제하고 보면 한일혼혈이다. 언어를 학습하기 적합한 연령대에 한국어를 학습한 것이 아니므로 발음이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은 감안해야 한다. 모국어인 일본어는 당연히 능숙하게 구사하고 미국에서의 유학 경험과 노무라 증권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영국으로 파견된 경험을 토대로 영어도 능숙하게 구사한다.

I love that country. We definitely want to continue our business in China.

나는 그 나라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중국에서 계속 사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


  • THAAD의 부지를 제공한 이후 중국에서의 사업이 어려움에 처하자 인터뷰에서 자신은 중국을 사랑하고 중국에서 사업을 지속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였다. 추가로 인터뷰 중에 조상들의 땅이 중국이라고 묘사하였다. 신동빈은 영산 신씨(靈山 辛氏)인데 고려 중기에 귀화하여 벼슬을 지낸 중국인 신경이 영산 신씨의 시조이다. 자신의 가문이 중국과 연관이 깊다는 점을 강조하여 중국을 포섭하려는 전략으로 보이는데 신경이 중국인인지 북방민족인지는 불확실하다.

  •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한국과 일본에 도입한 인물이 신동빈이다. 미국 유학 시절에 즐겨먹던 도넛이 생각나서 도입을 지시하는데 미스터 도넛이 간신히 몰락을 면하고 명맥만 잇는데 크리스피 크림 도넛은 던킨과 경쟁하며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신동빈 입장에서도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들여온 보람이 강한 것으로 보이는데 도입 초기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개점한 점포에 찾아갈 정도로 애착이 깊다. 크리스피 크림 도넛은 한국에 먼저 도입되어 롯데GRS가 운영하는 중이고 2년 후에 롯데지주가 크리스피 크림 도넛 재팬을 설립하면서 일본에도 도입이 시작되었다.

  • 인천광역시가 신동빈의 주주총회 승리 여부에 크게 관심을 기울였다. 롯데가 인천광역시에서 추진하는 사업이 많아서 그러한데 인천종합터미널의 부지를 롯데쇼핑에서 매입하였고 비슷한 시기에 롯데개발이라는 법인도 설립되었다.

  • 세계적인 투자은행에서 근무한 경험과 세대 차이로 인하여 아버지인 신격호와 경영 스타일이 상이하다. 신격호가 안정적인 자금력과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 비상장 고수 등 보수적인 재일교포식 경영을 추구하는 반면 신동빈은 비상장 계열사의 증시 상장이나 부동산 등의 고정자산을 매각한 후 다시 임대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확보하여 성장에 투자하는 서양식 스타일을 추구한다. 그래서 신격호의 경영 스타일을 보다가 신동빈의 경영 스타일을 보면 공격적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 대기업 회장이라면 당연히 많은 급여를 받지만 신동빈은 그 중에서도 급여가 많다. 롯데의 지주회사인 롯데지주를 비롯하여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물산, 롯데렌탈에게도 급여를 받기 때문이다. 많은 급여 덕분에 한국 기업인 중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기업인으로 언급되지만 최근에 엔씨소프트의 대표이사인 김택진이 184억원의 연봉을 받으면서 신동빈은 2위로 밀려난다. 신동빈이 많은 급여를 받는 이유는 롯데의 순환출자 고리를 정리하고 지주회사로 재편하는 과정이 용이하도록 많은 지분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 일본프로야구퍼시픽 리그에 소속된 치바 롯데 마린즈의 구단주이다. 롯데가 구단의 연고지를 가와사키 구장에서 ZOZO 마린 스타디움으로 변경하고 롯데 오리온즈를 치바 롯데 마린즈로 개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바비 발렌타인을 2차례나 감독으로 추대하여 2005년에 교류전, 퍼시픽 리그, 일본 시리즈, 아시아 시리즈, 이스턴 리그, 2군 일본 시리즈에 우승하여 6관왕을 달성하고 위상도 확고하게 다졌다. 2020년 3월 19일에 구단주 직책을 대행하던 신동빈이 대표이사와 구단주로 취임하면서 신격호에 이어서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프로야구단을 소유한 구단주가 되었다.

  • 8888577이라는 비밀번호를 사용하던 롯데 자이언츠에 가을야구를 선사한 제리 로이스터를 감독으로 추대한 인물이다. 신동주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신동인김시진이종운을 감독으로 선임하고 팀을 엉망으로 만든 기억이 강한 롯데 자이언츠의 팬들은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경영권 분쟁에서 신동빈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았다. 사실 신동인은 능력으로 검증된 인물이 아니라 평산 신씨 집안의 장손이라 중용된 인물이다. 오촌 당숙이 신격호라서 롯데의 경영에 참여한 것이므로 명백한 낙하산. 60세가 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신동인이 받은 자리가 롯데 자이언츠의 구단주 대행인데 신동빈이 롯데에서 입지가 강하다고 하더라도 9살 연상인 육촌형의 업무에 관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의 여파로 신동인은 2015년 8월 10일에 구단주 대행직을 사임한다고 선언하고 21일 후에 신동빈이 공식적으로 신동인을 해임한다. 신동인을 구단주 대행에서 해임한 신동빈은 앞으로 구단을 직접 관리한다고 선언하고 조원우를 감독으로 추대하지만 평판이 떨어진다. 하지만 2017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이대호를 복귀시키면서 팬들의 마음을 성공적으로 돌리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평가가 상승한다. 일부 팬들은 롯데리아에 가서 식사를 하며 야구를 관람하기도 하였다. 이후 2023년 10월에는 두산 베어스를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킨 김태형을 감독으로 추대했다.

  • 정수근박명환야구TV에서 술회하길 정수근이 롯데 자이언츠 선수 시절 사직 야구장에서 훈시를 하는 신동빈에게 많은 선수들이 금일봉을 기대하였는데 어떤 선물도 없었다. 선수들은 한국의 야구팀 회장 중에 돈도 주지 않고 떠난 사람은 신동빈 말고 없을 거라고 디스하였다. 참고로 한화의 회장인 김승연이나 삼성의 회장인 이재용은 선수들을 위해서 금일봉이나 전자제품(갤럭시탭)을 지급하는 등의 미담이 많지만 신동빈은 그러한 미담이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2022년에는 사직 야구장을 방문해 롯데 자이언츠의 임직원들에게 스마트 워치를 선물하였다. 임직원들은 Apple Watch Series 8갤럭시 워치5 중에서 원하는 제품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선수들을 위해 롯데호텔 부산에서 만든 고급 도시락을 경기 전 식사로 제공했다.[17]

  • 2022년 10월 8일에 이대호의 은퇴식이 열리는 사직 야구장에 방문하여 경기를 관람하고 종료 후에 열린 은퇴식에서 탄생석으로 만든 커플링을 이대호 부부에게 선물하였다. 신동빈은 커플링에 대한 답례로 이대호가 착용한 미트를 받았다.

  • 변희재가 옥중에서 작성한 수기에 의하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신동빈을 본 강호순이 옆방에 과자 한 봉지도 안 돌린다며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고 한다. 정수근의 일화에서도 그렇지만 신동빈이 금전과 관련한 부분을 최대한 아끼는 상황이 드러나는 부분.


4. 가족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범롯데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1. 장남[편집]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6012501086_0.jpg
신유열의 페이스북에 게시된 사진.

신동빈의 유일한 아들인 신유열도 세간의 관심을 받는 중이다. 국적이 일본이기 때문에 '시게미츠 사토시'가 법적인 이름이지만 통명을 허용하는 일본의 제도를 감안하면 신유열도 정식 이름이 맞다. 일본은 일본어로 발음하면 어감이 좋지 않거나 일본인이 알아듣고 말하기 힘든 발음의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통명을 허락한다. 신격호의 손자이자 신동빈의 장남인 신유열은 롯데가의 3세로 신동빈의 뒤를 이어 롯데의 경영권을 이어받을 유력한 인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아직 한국 국적은 보유하지 않은 상태. 게이오기주쿠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가 근무한 노무라 증권에 취직하여 근무한다. 영국으로 파견된 아버지와 달리 신유열은 싱가포르에 파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아버지가 다닌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MBA 과정을 밟는다..


파일:external/img.theqoo.net/RQc0PqW.jpg


파일:external/dimg.donga.com/77336639.2.jpg

신유열과 사토 아야.
키가 190cm로 큰데 가족들과 촬영된 사진을 보면 신유열의 키가 매우 큰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인 신동빈은 180cm이고 어머니인 시게미쓰 마나미는 170cm 이상이니 부모의 영향이 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노무라 증권에서 근무하던 시기에 만난 사토 아야와 결혼하는데 결혼식에는 아베 신조이재용이 참석하였다. 현재는 슬하에 1남을 둔 상태.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비행기에 탑승한 이재용은 수행원을 배제하고 혼자 이코노미석을 이용하였는데 신유열의 결혼식에 이재용이 참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롯데와 삼성의 빅딜이 성사되자 이재용의 결혼식 참석이 영향을 준 것 같다는 의견이 등장한다.

아버지는 혼혈이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물론 배우자도 일본인이라 한국인들은 신유열을 사실상 일본인으로 인식한다. 페이스북에 적은 이름도 신유열이 아닌 시게미츠 사토시인데다 한국 국적도 없고 한국에 입국하는 날도 거의 없다. 할아버지인 신격호는 태생부터 한국인이고 큰아버지인 신동주와 아버지인 신동빈도 엄연히 한국 국적이다. 하지만 한국과 관련된 활동이 아예 없고 국적도 일본인 신유열을 보는 한국인들은 한국어도 구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고도 롯데가 한국 기업이라 말할 수 있냐고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동빈이 이러한 선택을 한 어쩔 수 없는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만약 신유열이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면 군대를 가야 한다. 롯데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신유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함구하고 있지만 국적 논란이 심하고 일본보다 한국 시장을 더 중요시하는 신동빈과 롯데에서 신유열을 굳이 한국으로 귀화시키지 않는 데에는 이것만큼 치명적인 문제점은 없다고 보고 있는 편이다. 그렇기에 신유열이 군대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시기[18]에 한국으로 귀화할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신유열의 사촌동생인 신정훈은 일본계 미국인인데 큰어머니인 조은주가 한국계 미국인이라 엄밀하게 보면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를 통해서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2020년 8월에 황각규가 롯데 부회장에서 물러나자 신유열의 후계자 수업이 시작될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로 신유열은 2020년 하반기 채용을 거쳐서 롯데에 입사하는데 한국 계열사가 아닌 일본 계열사에 입사하여 근무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신유열의 행보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의견과 한국어로 소통하는 것이 가능한 아버지와 다르게 신유열은 한국어로 소통하기 어렵고 일본 국적만 보유한 상태이니 롯데의 업무에 빠르게 적응하고자 일본 계열사에서 경력을 쌓고 한국 계열사에 입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시간이 흘러 신유열은 롯데케미칼 일본지사에서 상무로 근무하고 신동빈을 따라 베트남 출장을 떠나서 공식석상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5. 수상 경력[편집]



[1] 현재 일본 국적을 포기한 상태라 본명은 아니다.[2] 자택이 거기에 있었고 일본 롯데 본사와 멀지 않았다.[3] 한국과 일본의 복수국적을 유지하다가 1996년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즉 한일혼혈이다.[4] 초당공파(草堂公派) 28세 동(東) 항렬.[5] # # # [6] 하지만 그와 별개로, 아버지인 신격호 전 회장은 불교를 믿었다.[7] 일본 위키에는 2부, 즉 야간 졸업으로 나와있다[8] 重光初子. 1930년 8월 10일 생이다.[9] 일본 5대 초대형 종합건설사인 슈퍼제네콘(スーパーゼネコン)의 일각.[10] 혼인 전 이름은 오고 마나미. 타이세이 건설[9] 부회장의 차녀.[11] 일본 3대 명문 유치원, 현재는 폐원.[12] 형인 신동주도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경영공학과를 졸업.[13] 노무라 증권은 한국으로 치면 삼성경제연구소같은 곳으로 '조사의 노무라, 정보의 노무라'라고 불렸다. 그래서 일본 내에서는 농담 삼아 일본 정부는 몰라도 노무라 증권의 경영실은 안다고 할 정도로 일본의 차기 총리는 누가 될 거라는 것과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한다는 것 등 풍부한 정보력 및 정확하고 민첩한 분석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노르마 증권'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신동빈 회장이 바로 그 노무라 증권 출신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신동빈 회장이 신격호 회장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고, 결국 예측대로 신동빈 회장이 후계자가 되었다.[14] 이후 롯데케미칼은 롯데그룹의 주력 회사가 된다.[15] 롯데그룹 경영비리사건과 관해서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자가 유예 기간 중 고의로 범한 죄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그 판결이 확정되는 때에 그 선고의 효력이 잃는다고 형법에 명시되어 있으므로 아직 형이 확정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그 형량이 합산되어 교도소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16] 이후 2019년 이인원 부회장의 부인이 사망하자 롯데 측과 신동빈 회장 모두 예를 갖춰 추모했다.#[17] 여담으로 선수단 뿐만이 아닌 응원단 측에도 제공되었다.[18] 병역법 제71조 1항에 의해 국적회복자는 38세부터 병역면제(전시근로역)로 처리된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5 18:51:42에 나무위키 신동빈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