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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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width=26%><tablebgcolor=#FFF,#191919><bgcolor=#423f3f> U-23
2015~2016
|| 전체 (20152016) ||
||<bgcolor=#423f3f> U-20
2016~2017
|| 전체 ||
||<|2><bgcolor=#423f3f> 성인
2017~2018
|| 20172018 ||
|| 2017 E-1 챔피언십 (일본전)2018 러시아 월드컵 (스웨덴전 · 멕시코전 · 독일전) ||
||<-2><bgcolor=#b71d27> ||






파일:신태용호 러시아 월드컵.jpg

제72대 감독
신태용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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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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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 제72대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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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그란데 (수석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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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준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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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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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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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운 (GK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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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 미냐노 (피지컬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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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 (피지컬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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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시아 에르난데스 (전력분석관)
계약기간
2017년 7월 4일 ~ 2018년 7월 31일
(1년 1개월 / 393일)[1]
계약 종료 (계약기간 만료)
연봉
5억 6000만 원 (감독 / 추정치) #
전술 스타일
4-4-2 두줄 수비 전술 중심의 선수비 후역습
성적
A매치 21전 7승 6무 8패 (승률 33%)
2017 EAFF E-1 챔피언십 (우승)[2]
2018 FIFA 월드컵 (19위 / 조별리그)[3]
1. 개요
2. 선임 과정
3. 코칭스태프 명단
4. 활동
5. 계약 종료
7. 전망
7.1. 선전
7.2. 축구팬들이 바라는 점
7.3. K리그 인기에 영향
8. 평가
8.1.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 성공
8.2. 대표팀 체질 개선을 위한 끊임없는 시도
8.3. 한국 축구 부흥의 계기 마련
8.4. 축구팬들의 의식 변화
8.5. 짧은 기간동안 과정은 불안했으나 마지막에 거둔 한국축구의 전환점
8.6. 대한축구협회의 평가
9. 경기 결과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제72대 감독 신태용의 A 대표팀에 대해 다룬 문서.

전임 울리 슈틸리케가 성적부진[4]과 구설수 등의 이유로 계약기간 도중 하차하자, 2017년 7월 4일 슈틸리케호 초반 수석코치를 맡았던 신태용이 그 후임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슈틸리케호의 온갖 폐단으로 인해 시작부터 쉽지 않았는데, 히딩크 논란으로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었고 월드컵 직전 주전들 줄부상과 '트릭축구' 등 감독의 구설수까지 겹치면서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진출하는 기간 내내 온 국민들로부터 질타받았던 불운한 대표팀이었다.

하지만 그 후 콜롬비아, 세르비아, 폴란드 등 강호 이상의 팀들을 상대로 선전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2017일본동아시안컵 도쿄에서 알제리 쇼크 감독의 일본을 4:1로 격파 우승하고[5], 2018년 6월 27일 본선 조별리그 F조 마지막 경기에서 요아힘 뢰프 감독이 이끄는 당시 FIFA 랭킹 1위이자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상대로 2-0으로 완승하며 전세계를 충격으로 내몰았고, 비록 16강 진출은 무산되었지만 승점 3점 1승 2패 대회 19위를 기록했다. 신태용은 계약종료일이었던 2018년 7월 31일에 임기를 마치며 하차했다. 그로부터 보름여 뒤인 2018년 8월 17일에 후임감독 파울루 벤투(벤투호)가 선임되었다.

2. 선임 과정[편집]


우리 시간으로 2017년 6월 14일 새벽 펼쳐진 카타르전의 패배로 인해 대표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이 애매해졌다. 그로 인해 기술위원회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을 결정함에 따라 슈틸리케호는 2년 9개월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차기 감독의 후보는 다섯 사람 정도로 압축되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신태용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2020 도쿄 올림픽을 준비해야 하니 다른 사람을 찾자고 주장했다. 신태용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2017 FIFA U-20 월드컵의 마무리가 괜찮았다면 연령별 대표팀 감독보다 차기 A대표팀 감독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감독 커리어가 훨씬 짧고 심지어 자격 논란까지 있던 전전임자 홍명보도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반박불가의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A대표팀 직행에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신태용은 두 대회 모두 영 좋지 못한 마무리로 토너먼트 광탈을 당했기 때문에 바로 A대표팀 감독으로 거론되지 못했다.

하지만 A대표팀 코치 출신이라 선수단 파악을 빨리 할 수 있고, 울리 슈틸리케의 감독 취임 이전 감독 대행 때 펼쳤던 두 경기들 모두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연령대 감독 시절 독일,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축구 강국들을 상대로 승점을 땄기 때문에 신태용을 새로운 A대표팀 감독에 앉혀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찮게 일어나 신태용은 한국 축구의 소중한 자산이고 경험도 연령대 감독직만 했기 때문에 일단 올림픽 감독으로 임명하고 이후 상황을 봐야 한다는 여론이 대립했다.

유력한 감독 후보군 중 하나였던 김호곤은 기술위원장으로 선임되었고, 허정무는 여론이 상당히 나쁜 관계로 사실상 신태용을 제외하면 마땅한 감독감도 없는지라[6] 당초 한 시간의 회의보다 더 길어진 5시간의 격렬한(?) 토론 끝에 결국 신태용 감독이 슈틸리케 감독 이후의 새로운 A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로서 신태용은 세 번째로 대표팀 소방수를 맡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홍명보처럼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 어불성설이다. 일단 홍명보의 자질이 너무 모자랐을 뿐더러 홍명보는 축협이 떠민 감독이 아니라 축협에서 처음부터 지도자감으로 육성한 감독이다. 그리고 단순히 성적이 나쁘기만 해서 여론에 집중포화를 받았던 것이 아니다. 이미 브라질에 가기 전부터 본선 조별리그 3경기에서 뭔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터져버릴 폭탄을 스스로 안고 갔던 것이다. 의리축구 논란, K리그 폄하 발언, 회식 사건, 부동산 관련 구설수까지 각종 문제들에 큰소리치며 모든 비난을 월드컵 때까지 묵살하기에 급급하다가 뻥 터진 것. 무엇보다 신태용도 축협이 작정하고 키워준 감독이다. 국가대표 경력이 일천해 은퇴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자격도 없는 상태에서 코치직을 시작한 홍명보 수준의 관리를 받진 못했지만, 연령별 대표팀 감독에 선임해 올림픽, U-20 대회 등에 지속적으로 출전시켜 경력 관리를 해 주며 미래의 감독감으로 육성하고 있었고, 슈틸리케호 침몰 이후 축협 기술위원장으로 올라선 김호곤은 이용수가 염두에 두고 있던 허정무 재신임을 백지화시키고 신태용을 밀어줬다.

신태용이 연령대 대표팀에서 거둔 성과는 홍명보보다 적었으며, 도하 참사, U-20 월드컵에서 똑같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무너졌기에 진작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상당했다. 당장 토너먼트에서 로테이션 등을 체력 관리를 전혀 해 주지도 않고 끝까지 공격 일변도로만 나갔다가 체력이 딸려 스스로 무너지면서 개최국에는 어울리지 않는 16강 10위라는 너무 낮은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다만 U-20 팀은 아시아 예선 조별리그 탈락팀이었음에도 본선에서 U-20 최다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격파하며 16강 10위로 마쳤고, U-23 팀은 본인의 색을 입히기에는 너무 적은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대회 은메달팀 독일, 금메달 디펜딩 챔피언 멕시코 같은 강호들을 제치고 조 1위 8강 5위로 마쳤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선임 후 인터뷰

7월 5일, 결국 전임 기술위원장이 임명한 정해성 수석코치는 신태용 감독 부임 후 자진사퇴하였다. # 그리고 U-23 감독은 아직도 결정하지 못한 것[7]으로 볼 때 이용수는 A대표팀은 허정무+정해성에 U-23은 신태용을 염두에 뒀었고, 김호곤이 이를 백지화하고 신태용을 밀어준 것으로 추정된다.

7월 6일 신태용 감독은 취임일성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축구 철학을 밝히기도 했다. # 해외파라고 무조건 뽑지 않겠으며 경기에 못 나서더라도 자신의 축구 철학과 맞으면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전임자들과 달리 신태용은 이 원칙을 계속 지켰다.

참고로 신태용은 박종환 이후 국내 감독으로서는 오랜만에 선수 시절에 FIFA 월드컵 출전 경력이 없는 감독이다. 차범근허정무, 조광래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 출전했고, 최강희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 출전했다. 홍명보는 무려 4차례나 월드컵에 출전했었다. 외국인 감독 중에서는 아나톨리 비쇼베츠1970 FIFA 월드컵 멕시코에, 울리 슈틸리케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에 출전한 바 있다.[8] 후임자 파울루 벤투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로 출전했고, 그 뒤를 이은 위르겐 클린스만은 독일 대표로 무려 세 차례나 월드컵에 출전했다. 반면 신태용은 현역 시절 월드컵에는 한 번도 나서지 못했고, AFC 아시안컵 출전 경력 역시 1996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단 하나 뿐이다.


3. 코칭스태프 명단[편집]



감독
수석 코치
코치
코치

파일:신태용호 신태용.jpg


파일:신태용호 토니 그란데.jpg


파일:신태용호 전경준.jpg


파일:신태용호 김남일.jpg

신태용
토니 그란데
전경준
김남일
코치
GK 코치
피지컬 코치
피지컬 코치

파일:신태용호 차두리.jpg


파일:신태용호 김해운.jpg


파일:신태용호 하비에르 미냐노.jpg


파일:신태용호 이재홍.jpg

차두리
김해운
하비에르
미냐노

이재홍
직책
이름
국적
생년월일
감독
신태용

Shin Tae-Yo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9년 5월 26일 (49세)
수석 코치
토니 그란데

Toni Grande

파일:스페인 국기.svg
1947년 9월 17일 (70세)
코치
전경준

Jeon Kyung-Ju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3년 9월 10일 (44세)
코치
김남일

Kim Nam-Il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7년 3월 14일 (41세)
코치
차두리

Cha Du-Ri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0년 7월 25일 (38세)
골키퍼 코치
김해운

Kim Hae-Woo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3년 12월 25일 (44세)
피지컬 코치
하비에르 미냐노

Javier Miñano

파일:스페인 국기.svg
1967년 10월 24일 (50세)
피지컬 코치
이재홍

Lee Jae-Ho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년 3월 23일 (35세)
전력 분석관
가르시아 에르난데스

García Hernández

파일:스페인 국기.svg
1954년 7월 8일 (64세)
계약 기간 만료 당시 (2018년 7월 31일) 기준


2017년 7월 12일 코칭스태프진이 확정되었다. 수석코치로는 U-23 대표팀부터 지속적으로 신태용 감독과 함께 해오던 전경준 코치가 선임되었으며, 다른 코치로는 장수 쑤닝에서 최용수 감독 아래서 코치직을 수행하고 있던 김남일, 슈틸리케 호에 전력분석관으로 있었던 차두리가 선임되었다. GK코치로는 U-20 대표팀에서 같이 해오던 김해운 코치가 선임되었고, 피지컬 코치로는 대한축구협회 피지컬 지도자 출신의 이재홍을 선임했다. #

초창기, 좀 더 정확하게는 스페인 출신 코치들 영입 이전 코치진은 전반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검증되지 않은 이들이 많았다. 김남일, 차두리 코치는 지도자 경험이 부족하여, 전술, 훈련 역할보다는 선수들 멘탈 관리, 선수시절 경험 전수 등을 위해 선임된 것으로 보는 의견이 다수이다. 전경준 수석코치는 신태용 감독 밑에서 연령별 대표팀 수석코치를 역임하였고, 김해운 GK코치는 선수시절 성남 일화 팀 동료로 각각 신태용감독과 친분이 있다는 점 외에 국가대표 코치를 맡아 수행할 경험, 역량 측면에서 의문점이 제기된다. 아무리 지도자 라이선스 과정이 도입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력 갖춘 지도자가 모자란다지만 동네 축구부도 아니고 지도자 역량을 기대할 수 없는 생초보코치 2명에 감독 인맥으로 데려온 검증 안된 코치 2명이다. 축협이 얼마나 정신 못차리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 그리고 이 코치진으로 2무 2패를 했다.

10월 평가전 2연전 전패로 카운터를 맞은 데다 불안한 점을 이제야 의식했는지 2017년 11월 3일에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과 함께 스페인의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UEFA 유로 2012의 우승을 이끈 토니 그란데, 하비에르 미냐노가 각각 수석코치와 피지컬 코치로 선임되었다. 반응은 감독보다도 커리어가 화려하니 그냥 감독 해달라는 비아냥이 많다. 둘다 스페인 티키타카 전성기에 코치직을 역임한 사람들이라 한국 축구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인 점유율 축구에 대한 집착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인선이라며 탄식하는 의견도 있는데 중요한건 그런게 아니다.[9] 주어진 기간이 극히 짧은데 외국인 코치를 선임했다는 점이다. 외국인 감독도 팀 파악하는데 1년에서 1년 반 정도 걸리고 그 사이에는 수석코치 권한이 커져서 반쯤 감독노릇 한다. 이게 신태용이 슈틸리케호 몰락에 책임이 있다고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10] 따라서 월드컵 1년도 안남긴 2017년 11월에 피지컬 코치라면 몰라도 수석코치 자리에 한국과 전혀 인연 없던 외국인을 선임한게 팀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가 미지수라는 의견이 있다.

그리고 외국인 코치 부임 후 첫 친선경기인 2017년 11월 10일 콜롬비아전에서 2:1로 신태용호 첫 승을 신고하며 외국인 코치 기용이 나름 성공적이라는 것을 증명해가고 있다. 여담으로 토니 그란데 수석코치는 콜롬비아전 시작 전에 2:1이라는 스코어를 예측했다고... #

2018년 3월 18일, 가르시아 에르난데스 코치가 전력분석관으로 정식 부임했다. 에르난데스 코치는 그란데 코치와 미냐노 코치와 마찬가지로 레알 마드리드 및 스페인 대표팀의 코치진으로 활동했으며, 두 코치가 페르난도 이에로 스페인 축구협회 디렉터에게 전력분석관을 추천해달라 요청, 18년 초 유럽 전지훈련 당시에는 인턴 개념으로 합류했다가 이번에 정식으로 합류했다. 또한 러시아 월드컵부터는 팀마다 헤드셋&무전기&태블릿 PC가 지급되며, 이를 이용한 실시간 전력분석이 가능한데, 에르난데스 코치가 그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한다.


4. 활동[편집]



4.1. 2017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태용호/2017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태용호/2017년/EAFF E-1 챔피언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2018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태용호/2018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태용호/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계약 종료[편집]


2018년 7월 13일 계약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신태용은 별다른 환송행사 없이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위원장 김판곤)에서는 신태용을 차기 대표팀 감독 후보에 올려 경쟁시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8월 17일 감독선임위는 신태용호에 대해 라인업-전술-교체와 파워 트레이닝 논란, 잦은 명단 변화, 나쁜 언론 대응 등을 언급하며 신태용을 최종 후보에서 배제했다. 그러나 신태용 감독은 처음부터 외국인감독으로 임명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로 갑작스럽게 월드컵까지 계약된 임시 소방수 감독이었고 김판곤은 신태용에 대해서 "위기 상황에 한국축구를 이끌고, 특히 독일전에서의 승리를 일궈낸 점에 대해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면서 감독선임이 지연되어 불편함을 준 점에 대해 사과한 뒤 신태용과 코칭스태프들의 행운을 기원한다는 인사말을 남겼다. 그리고 포르투갈 출신 파울루 벤투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독일전 전까지 한국축구의 암흑기 불신으로 쏟아진 지나친 인신공격 등으로 상처를 많이 받아 K리그 감독직은 생각하지 않고 해외에서 일하기로 마음 먹었고 결국 중국 클럽팀과 인도네시아 국대 오퍼를 두고 고심 끝에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6.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17년 히딩크 감독 선임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전망[편집]



7.1. 선전[편집]


러시아 월드컵 본선 F조 편성을 보면 대한민국이 1승만 거둬도 충분히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을 상황이었지만, 이미 2002년 4강 진출이라는 기적을 맛본 축구팬들에게 어지간한 성적은 성에 차지도 못하는 것이 어느 정도 현실이었고, 앞으로 있을 평가전이나 친선경기 역시 괄목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이겼어도 이기지 못한 경기나 다름없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사실 2017년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면 그다지 선전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나마 2017 동아시안컵 도쿄에서 알제리 쇼크 감독의 일본을 4:1로 압도적으로 이겼다는 점과 이전에 치뤘던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승리했다는 점에서 한동안 신태용을 향했던 비난이 잠시 사그라든 것.

하지만 신태용호가 최소 1승이라도 거둔다면, 1승을 넘어서 16강 진출이라는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급의 돌풍을 일으킨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만에 하나 평가전이나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상상도 못했던 이변을 만들어낸다면 외신들의 평가가 일순간에 호평으로 바뀌게 되는것은 자명한 일이며, 신태용 감독의 입지와 평가가 일순간 반전될 가능성이 무엇보다 높다. 더구나 이전 홍명보호의 막장 행각으로 인해 떨어진 한국축구의 위신을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게 될 것이다. 설령 16강 진출이나 승리를 따내는 데 실패하더라도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독일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무승부나 승리 등으로 선전하거나 진정한 투혼을 보여준다면 그 동안의 졸전과 끝없는 추락으로 인해 한국 축구에서 등을 돌렸던 국민들도 다시 한국 축구에 호응해 줄 것이다.

그런데 피파 랭킹 1위 & 디펜딩 챔피언 요아힘 뢰프 감독의 독일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무승부도 아닌 2-0 승리를 얻으면서 앞선 경기들에서 크게 전술적 실패와 졸전을 단숨에 무마시켰다,

7.2. 축구팬들이 바라는 점[편집]


이런 여러가지 전망들을 읽어 보면, 9회 연속 본선 진출이 확정되기 전 이 문서와 여러 기사와 커뮤니티에서 단골로 나왔던 "만약 한국 축구가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 못한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예측과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는 한국 축구가 더 이상 월드컵 진출만으로는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신태용 감독을 비롯하여 김호곤 기술위원장, 정몽규 축구협회장 등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공통적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했는데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정서가 두드러진다.

즉, 한국 축구의 수뇌부의 인식 자체가 그 동안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당연하다시피 생각하면서 본선 진출만 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바로 월드컵에 직행되자마자 축승회를 개최하려다가 여론의 눈총에 못 이겨 취소했다는 것,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할 경우 곧바로 신태용과의 감독직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는 것이 이들의 의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시 강조하지만, 신태용 감독이나 축구협회의 생각과 달리 2017년 9월 이후 신태용호에 걸린 국민들의 기대와 축구 팬들이 비판하는 내용의 요지는 16강 진출이나 몇 승 같은 거창한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최소한 본선 진출국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경기력[11]과 함께 한국 축구가 다시 회생할 가능성을 보여달라는 것에 가깝다. 방법론의 차이일 뿐이지 이는 대표팀의 경기력과 조편성 결과가 좋지 않아도 경기는 해 봐야 안다며 열심히 준비하고 응원해주자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3패 탈락이 확실하다며 기대 자체를 접고 지역예선에서부터 탈락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근본적인 생각은 일치한다.

조광래호부터 최강희호, 홍명보호를 거치며 슈틸리케호까지 이어진 한국 축구의 끝없는 추락과 슈틸리케 시절 2015 AFC 아시안컵 호주 준우승 등 일시 반등 후 최종예선에서 주저앉으며 올라가지 못한 성적을 보면서 한국 축구에 대한 기대치가 굉장히 줄어들었다. 슈틸리케의 성적이 한국 국대의 심리적 상한선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신태용호마저 실패하면 그 여파는 한국 축구 전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프로축구로까지 확장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월드컵과 축구 국가대표팀은 국민적으로 관심을 받는 축구 행사인데, 지속적인 실패로 이마저도 관심을 받기 어려워지고 있고, 국민들이 한국 축구에 대해 느끼는 불신과 분노가 극심해진 상황이다. "차라리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는 것으로 전부 정신 차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몇 차례나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다가 겨우 월드컵 본선 복귀하는 나라들도 있고 아예 월드컵 본선과 인연이 없다가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 진출한 국가들도 있는데[12] 월드컵 지역예선 탈락 후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면 한국 축구는 망하는 게 답이다.", "이제 더 이상은 관심 갖기도 지겨워 죽겠다." 등의 여러 부정적 여론들이 나온 것부터가 과거와 달라진 것을 보여준다.

반대로 같은 국가대표팀이지만 남자 국대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우가 열악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세계 최강 미국에 패배했을 때,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대회 4강에 진출한 정현이 역시 세계 최강 로저 페더러에 패배했을 때에도 비난보다는 '수고했다', '잘 싸웠다' 등의 반응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그런 논리대로라면 여자 대표팀과 테니스는 이들이 말하는 내셔널리즘의 대상이 아니란 말인가? 정작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냄비로 치부받은 라이트팬들이 떨어져나가고 있는 2017년 가을, 국가대표는 그 라이트팬들의 관심에 기반한 각종 후원도 함께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 여타 비인기 종목들은 그야말로 올림픽 메달이라도 따지 않으면 관심도 받기 힘든데, 월드컵 본선은 고사하고 단순한 평가전만으로도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이렇게 전 국민이 관심을 보여주는 종목이 대한민국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2002년에는 월드컵 선전과 스타 선수들의 활약으로 국민적 관심이 증대되었고, 이 관심이 프로축구로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효과를 보였고,[13] 프로축구에 대한 관심은 덜했을지라도 1승 1무 1패 월드컵 17위로 아쉽게 16강은 진출에 실패했지만 원정 첫 승과 준우승팀 프랑스전 1:1 무승부 승점 1점 원정 4점을 거두었던 2006년이나, 득실차 등의 운이 작용하긴 했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 원정 16강(15위)을 달성했던 2010년 대회 때도 최소한 국가대표에 대한 관심은 결코 덜하지 않았다.

7.3. K리그 인기에 영향[편집]


과거에는 황선홍, 유상철, 안정환, 박지성, 이영표 등 국민들이 이름을 댈 수 있는 스타 선수가 있었는데, 지금 대표팀에는 해외파 손흥민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댈 수 있는 인지도를 가진 선수가 많지 않다.[14] 해외파도 이른바 중국화 논란을 부르고 있는 상황에서 김영권은 명색이 주장이라는 선수가 응원이 시끄러워서 경기에 집중이 안 됐다는 식의 망언으로 국민적 분노까지 불러일으키며 아예 축구선수들의 자질 및 인격 논란까지 생길 판이다.[15]

여기에 신태용은 "평소에 K리그 축구장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 월드컵 때면 3000만명이 다 감독이 돼서 죽여라 살려라 하는 게 아이러니하다."는 팩트가 가득 담긴 발언을 하며 국내 축구 팬들의 시원한 부분을 긁어주었다.

카잔의 기적이라는 엄청난 이변과 골키퍼 조현우의 활약으로 월드컵 브레이크 이후 K리그의 관중들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투혼을 발휘하며 대형사고를 친 덕분에 2002 월드컵 이후 보였던 흥행이 다시 돌아올 조짐도 보인다. 실제로 월드컵 대표 선수들이 뛰는 팀들의 관중은 급증했고, 인터넷 중계 접속률도 월드컵 이전보다 많이 올랐다. 구단 프런트들도 물들어올 때 노 저은 결과 2019 시즌, 전반적으로 K리그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는다.

8. 평가[편집]



파일:SSI_20180628035630_V.jpg

한국 축구의 전환점

2010년대 이후 한국 축구 최악의 암흑기[16]에 빠진 한국 축구를 벤투호와 함께 탈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17] 슈틸리케호의 최악의 경기력과 그로 인해 혼란에 빠진 팀, 짧았던 준비 기간 또 극성 팬들의 수 많은 비난,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전들의 월드컵 직전 줄부상을 감안하면 본선에서 보여준 내용은 선전 그 이상이라고 봐야 한다.
신태용이 4년동안 감독으로 존재했다면, 장현수가 여러 실점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면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 16강에 진출했을수도 있었다.

월드컵 직전, 더 나아가서 멕시코전 이후까지만 해도 신태용호에 대한 여론은 결과에 맞게 굉장히 안 좋았으나[18], 독일전의 기적 같은 승리로 인해 비난 여론은 사그라 들고 트릭 재평가론이 드립으로 한동안 유행했다. 이때 비난 여론이 사그라들면서 이전에 묻혀있던 이성적인 분석들이 올라오면서 신태용 감독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우세해졌다.

다만, 이전에 홍명보 카드를 너무 일찍 썼다고 평가가 이어져왔는데 신태용 카드마저 너무 일찍 쓰고 끝났다는 평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출신 감독이 큰 성공을 거두려면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적극적인 협조와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장래가 유망한 젊은 감독을 소방수로 쓰고 끝내 버렸다는 것. 하지만 유종의 미를 제대로 거두었기에 다른 감독들과 달리 신태용 감독을 훗날 국가대표팀 감독을 허정무호 처럼 재신임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19]

8.1.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 성공[편집]


신태용이 부임할 당시 대표팀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전임 감독이 반드시 잡아야 했던 중국과 카타르에게 패하면서 승점 6점을 날려버렸고, 이로써 우즈벡과 시리아의 추격을 허용하게 되었다. 당시 아시아 예선 A조는 이란이 압도적 1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한국, 우즈벡, 시리아가 2위를 두고 다투고 있었는데, 한국은 이 두 팀과의 승점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2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거기다 그 2경기의 상대는 한국이 앞선 4경기에서 이겨보기는 커녕 골도 못넣던 난적 이란과 벼랑 끝에 몰려 사력을 다해 덤비는 우즈벡이었다. 우즈벡도 타슈켄트 원정 전적만큼은 한국을 상대로 호각세를 보이고 있었다. 즉, 신태용은 부임하자마자 최종예선에서 가장 강한 두 팀을 상대해야 했던 것이다. 다만 우즈벡은 슈틸리케호가 이미 이겼던 팀이며 이란은 이미 본선진출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져도 아무상관 없는 팀이었다. 결과는 2경기 모두 무승부로, 승점 2점을 추가해 턱걸이로 32개국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진출 직후 겨우 승점 2점을 추가하는데 그쳤다며 이란과 중국이 각각 시리아와 우즈벡에게 고추가루를 뿌려준 덕에 월드컵에 진출당했다는 표현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당시 상황은 최악이었다. 조 하위권인 중국, 카타르에게 연패하며 거의 붕괴된 팀을 이끌고 남은 경기에서 어떻게든 승점을 확보해야 했으며, 때문에 K리그에 조기소집을 요청해야 할 정도였다. 신태용이 슈틸리케호의 수석코치였고, 나름 권한이 컸다고는 해도 한동안 팀을 떠나 있었고, 그 사이 팀은 망가져 있었다. 또한 본선 진출여부가 달린 두 경기였던 만큼 심적인 부담도 상당했을 터인데, 이러한 악조건들을 이겨내고 난적들을 맞아 승점 2점을 확보하고 본선행을 이끈 것은 분명 신태용의 업적이다.

결과적으로는 이란이 시리아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어준 덕분에 간신히 진출한 것이지만, 애초에 신태용이 승점 2점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이란의 조력을 받을 수도 없이 바로 탈락이었다. 때문에 신태용은 어쨌든 본선 진출이라는 결과를 달성함으로써 소방수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20]


8.2. 대표팀 체질 개선을 위한 끊임없는 시도[편집]


전임 감독이었던 홍명보슈틸리케의 경우 뚜렷한 팀 컬러 없이 그저 주야장천 4-2-3-1만 고집했으며, 외신 기자들도 곧바로 예상할 법한 단조로운 운용을 보여주었다. 또한 팀의 핵심인 손흥민과 기성용 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의미없는 점유율 축구였다. 이렇게 고정된 전술 하에 제한된 선수들만 활용하다 보니 새로운 자원들을 발굴하지도 못했다. 때문에 이들이 감독이었던 동안 대표팀은 발전은 커녕 항상 제자리 걸음이었다.

반면 신태용은 부임 직후부터 4-2-3-1, 4-4-2, 3-5-2 등 다양한 전술을 실험하며 대표팀에 최적화된 전술을 찾고자 노력했으며, 최소한 어떻게 팀을 운영하겠다는 지향점은 보였다.

다만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던 건 사실이다. 처음부터 대표팀 감독이었으면 몰라도 급하게 소방수로 투입된만큼 전술적인 실험을 계속 하는 게 맞느냐는 여론의 비판이 컸다.

이런 다양한 전술 실험에는 다양한 선수기용도 있었다. 황의조, 남태희, 지동원 등 신태용호 이후 벤투호에서 터진 자원들도 데려다가 써 봤었고, 짧은 기간에 국내파, 해외파 중에 써볼만한 자원들은 거의 한번씩은 기회가 돌아갔다. 특히 신인 김민재를 과감하게 주전 센터백으로 기용하여 수비 불안 문제를 해결했다. 김민재는 데뷔전이 신태용 감독의 첫번째 경기인 월드컵 최종예선 9차전 이란전이었다. 말 그대로 신인을 데리고 도박을 해서 대박을 친 것.[21][22] 특히 신태용이 처음 기용한 조현우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거기다 문선민 등 새로운 자원들도 발굴해냈다.[23] 슈틸리케가 3년간 팀을 이끌고도 남긴 것이 이정협(...) 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천지차이. 심지어 이정협도 2014년 말에 처음 국대에 승선했던 점, 슈틸리케가 K리그에서 폼이 좋은 선수를 뽑지 않는 모습을 보인 점을 감안했을 때 당시 수석코치였던 신태용이든 다른 코치나 축협의 추천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있다.

본선에는 비록 1승 2패 19위로 아쉽게 탈락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피파랭킹 1위, 디펜딩 챔피언 요아힘 뢰브 감독의 독일을 2:0으로 잡아내며, 점유율 축구의 허상에서 탈피해 체력과 피지컬을 앞세워 스피드, 활동량, 압박으로 승부하는 전통의 팀컬러가 한국 축구의 지향점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물론 이건 신태용 감독의 의도라고 보긴 힘들다. 당장 성적이 잘 나오는 4-4-2 대신 4-2-3-1, 3-5-2 같은 전술을 줄곧 실험했던 것도 쉽고 단순한 축구만으론 금방 한계가 드러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는데, 결국 먹히지 않았고, 막판에 4-4-2로 돌아서면서 경기력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신태용은 과정에서 생겼던 갖가지 비판과는 별개로 그저 쉽고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하던 것만 고집했던 전임 감독들과 달리 대표팀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시도는 했다는 점은 고평가할 만하다. 실험을 너무 많이 해서 본선 첫 경기조차 실험적인 전술로 나온 부분은 아쉽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해서 무력한 것보단 뭐라도 해서 무력한 게 피드백 할 거리도 많아지고 발전을 위해선 훨씬 낫다.[24]

8.3. 한국 축구 부흥의 계기 마련[편집]


한국은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조광래호, 최강희호, 홍명보호, 슈틸리케호를 거치면서 약 7년간의 허송세월을 보내며 피파랭킹도 69위로 추락하고 중국과 카타르에게 패해 탈락위기로 퇴보하고 있었다. 조광래 감독은 한국 축구의 현실과 맞지도 않는 티키타카를 따라한다고 부상으로 소속팀에서 뛰지도 못하는 이청용을 억지로 선발하기도 했으며, 해외파를 소집한 레바논 원정에서 레바논 쇼크로 월드컵 예선탈락위기로 몰았다. 이어 최강희 감독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반강제로 대표팀을 맡았고, 그 결과 예선은 최강희, 본선은 홍명보라는 희대의 막장행정이 나왔다. 최강희 감독은 목표였던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마지막 이란과의 홈 경기에서 패배하고 이란 케이로스 감독에게 주먹 감자 조롱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최강희 이후 급하게 바통을 넘겨받은 홍명보는 2012올림픽 동메달 이후로 감독경험과 선수파악이 전혀 없었고 감독으로서의 기초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고, 그 결과 대표팀 감독 역사상 최악의 승률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알제리 쇼크를 당하고 처참한 성적만을 남긴 채 물러나야 했다. 뒤를 이어 부임한 울리 슈틸리케는 초반에는 아시아의 약팀들을 때려잡으며 성적을 내는 듯했으나 점차 밑천이 드러나 러시아 월드컵 본선 탈락위기를 자초하여 경질되었다.

이렇듯 축협의 막장행정[25][26]과 감독들 개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줄곧 답답한 모습을 보여왔던 것이 2010년대 한국 대표팀의 현실이었다. 그 결과 대표팀에 대한 축구팬들의 신뢰와 기대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신태용호가 임기 내내 응원보다 질타를 받았던 것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태용은 위의 셋과는 다르게 대표팀에 변화를 많이 시도했으며, 2017 도쿄대첩세계 1위 챔피언 격파 카잔의 기적이라는 드라마틱한 승리로 1승 2패 러시아월드컵 19위로 그 끝을 마무리했다. 즉,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으나 비정상이었던 팀을 그나마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셈이다.

월드컵 종료 후 이를 바탕으로 김학범호2018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얻고, 벤투호다음 월드컵 에서 상당한 선전을 넘어 12년 만의 16강(16위) 까지 진출한 것이 한국 축구 부흥의 씨앗이 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7]

8.4. 축구팬들의 의식 변화[편집]


후임인 파울루 벤투가 아시안컵에서 보여줬던 혹사와 외길 고집은 수년전도 아닌 고작 1년전이라 해도 축구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샀을만 한 실책이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와 논란거리, 국민들까지 적이되어 아무도 응원하지않고 승점자판기 취급받은 수모를 뚫고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쇼크를 전세계에 선사한 신태용호는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슈틸리케호와 정반대의 의미로 축구팬들에게 보여줬다. 또한 무엇이라도 결실을 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것도. 신태용호가 보여준 최후의 순간 극적인 선전은 진짜로 축구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대다수 축구팬들에게 각성시키는 계기가 됐으며 축구팬들은 단 한경기의 승패에 대해서는 그 순간은 불탈지언정 도를 넘는 비난이나 과도한 몰아세우기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그저 싸우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나,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열고 겉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이러한 축구팬들의 변화는 과거라면 역시나 비난 세례를 쏟아낼만한 상황에서도 다음을 기약하면서 축구팀의 장기적 체질개선을 가능하게 만들수 있다.

결국 후임인 파울루 벤투는 일본에 연속 0:3참패로 FC 코리아로부터 받은 여러 비난과 경질 요구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더 줘야 한다는 압도적 여론의 보호로 4년의 임기를 이렇다할 여론 위기 없이 끝마쳤고, 16강 진출(16위) + 호날두의 포르투갈 격파라는 좋은 결과에 더해 결과를 배제하더라도 성공적으로 빌드업 기초를 안착시키는데 성공했다.

8.5. 짧은 기간동안 과정은 불안했으나 마지막에 거둔 한국축구의 전환점[편집]


슈틸리케 경질로 인해서 급하게 임명된 신태용호가 나아가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않았다.

외적인 악재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전문가들이 계속 강조했던 실리축구를 하지 않고 3백 등 단기간에 숙련도를 올리기 어려운 전술을 줄곧 고집했다.

3백에 잘 맞는 선수, 4백에 맞는 선수가 다 다른데 본선 첫 경기를 하기 전까지 정확한 방향성을 정하지 못해 선발 라인업에 잦은 변화가 있었다.

신태용이 추구한 3백은 계속해서 4백과 섞어 쓰다보니 끝끝내 경기력이 나오지 않았고 필살기로 준비한 4-3-3은 대표팀과 어울리지도 않지만 그간 연습한 전술과도 동떨어져있어 허무한 패배를 기록하고 말았다.

사실 이러한 전술시도 문제들은 현 벤투호를 비롯해서 히딩크호 시절에도 4백과 3백 문제로 마찰이 있었다. 결국 히딩크는 4백을 내려놓고 홍명보를 다시 불러서 본선에는 3백으로 하였으며, 후에 핌 베어백이 대표팀 감독이 되어서 4백을 강화하게 되었다.

하지만 막판에 4-4-2로 돌아서면서 피파랭킹 1위, 디펜딩챔피언 독일을 2:0으로 잡는 쾌거를 이뤄 악평일색이던 여론에 반전에 성공한다.


8.6. 대한축구협회의 평가[편집]


신태용 감독의 계약기간은 러시아 월드컵까지였다. 월드컵 직후 축협에서는 대표팀의 차기 사령탑을 정하기 위해 감독 후보군을 추렸는데, 당초 외국인 감독을 선임할 계획이었지만, 신태용은 그 동안의 공을 인정하여 재계약도 진지하게 고려하였다. 그러면서 기술위원회를 열어 여러 부문에서 신태용호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였으며, 김판곤 감독선임위원장이 직접 결과를 발표하였다. # 사실상 신태용호에 대한 대한축구협회의 공식 입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먼저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소방수로 나서 대표팀을 위기에서 구해낸 것을 높이 평가하였다. 슈틸리케가 싼 똥들을 다 치우고 과감한 김민재 기용으로 팀을 기어코 월드컵에 보냈고, 모로코전 참패로 인한 경기력 논란이나 거스 히딩크 부임설 등 온갖 외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선수들을 결속시키며 알제리쇼크 감독의 일본전 4:1 대승(2017 도쿄대첩)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리고 본선에서도 독일을 침몰시키며 한국 축구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도 언급하였다.[28]

그러나 상대를 분석한 뒤 그에 맞는 대응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쉽다고 하였는데, 구체적으로는 스웨덴[29]한테 너무 수비적으로 했다가 아쉽게 패한 것을 꼽았다.[30] 그리고 파워 트레이닝[31], 잦은 실험[32][33], 보안을 위한 언론 대응[34] 등은 이해는 되지만 결과적으로 팬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해서[35] 팀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평했다.

대체적으로 팬들보다는 평가가 다소 짠 편이다. 트릭 발언 등 대부분의 논란은 축알못들이 쓸데없이 설친 게 작용했기 때문에 본인에게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협회에서는 다음 월드컵을 준비하고 슈틸리케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외국인 감독을 통한 장기적인 쇄신[36]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후임으로는 포르투갈 출신의 파울루 벤투 감독이 부임하였다.

한편 벤투 감독은 러시아 월드컵의 한국팀에 대해 전술이 매 경기마다 바뀌었다고 운을 떼면서, 상대에 맞춰서 전술을 바꾸는 것은 좋으나 팀 컬러가 일정하지 않았다고 평하였다. 팀에 맞는 철학을 세우고 그 틀 안에서 대응을 해야 선수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9. 경기 결과[편집]


경기수



득점
실점
승률[37]
21
7
6
8
26
27
33%

일시 / 장소
상대팀
결과
대회
득점
비고
2017년
2017년 8월 31일
(서울)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0:0

2018년 FIFA 월드컵 러시아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
2017년 9월 5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우즈베키스탄

0:0


[38]
2017년 10월 7일
(러시아, 모스크바)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2:4

평가전
권경원, 지동원
[a][39]
2017년 10월 10일
(스위스, 빌/비엔느)
파일:모로코 국기.svg
모로코

1:3

손흥민(PK)
[a]
2017년 11월 10일
(수원)
파일:콜롬비아 국기.svg
콜롬비아

2:1

손흥민(2골)
[a][40]
2017년 11월 14일
(울산)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세르비아

1:1

구자철(PK)
[a]
2017년 12월 9일
(일본, 도쿄)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2:2

EAFF E-1 챔피언십 2017
김신욱, 이재성

2017년 12월 12일
(일본, 도쿄)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1:0

리영철(OG)

2017년 12월 16일
(일본, 도쿄)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41]
4:1

김신욱(2골),
정우영, 염기훈
[a][42]
2018년
2018년 1월 27일
(터키, 안탈리아)
파일:몰도바 국기.svg
몰도바

1:0

평가전
김신욱

2018년 1월 30일
(터키, 안탈리아)
파일:자메이카 국기.svg
자메이카

2:2

김신욱(2골)

2018년 2월 3일
(터키, 안탈리아)
파일:라트비아 국기.svg
라트비아

1:0

김신욱

2018년 3월 24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
북아일랜드

1:2

권창훈

2018년 3월 27일
(폴란드, 호주프)
파일:폴란드 국기.svg
폴란드

2:3

이창민, 황희찬
[a]
2018년 5월 28일
(대구)
파일:온두라스 국기.svg
온두라스

2:0

손흥민, 문선민

2018년 6월 1일
(전주)
파일: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svg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1:3

이재성

2018년 6월 7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파일:볼리비아 국기.svg
볼리비아

0:0



2018년 6월 11일
(오스트리아, 그로딕)
파일:세네갈 국기.svg
세네갈

0:2


[a]비공개
평가전

2018년 6월 18일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0:1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a]
2018년 6월 23일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

1:2

손흥민
[a]
2018년 6월 27일
(러시아, 카잔)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2:0

김영권, 손흥민
[a][43]

출발은 4경기 2무 2패의 성적으로 영 좋지 않았다. 특히 러시아, 모로코전 패배로 인해 10월 16일 FIFA 랭킹은 중국보다도 낮아졌다. 그러다 FIFA랭킹 13위였던 콜롬비아와 역시 FIFA 랭킹 38위로 한국보다 높았던 세르비아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였고, 2017일본동아시안컵 도쿄에서 알제리쇼크 감독의 일본을 4:1로 격파하며, 2006독일월드컵 우승 리피 감독의 중국을 제치고 우승을 거두며 분위기를 반전시켰지만, 2018년 평가전 들어 다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본선에서 2연패를 하여 다소 암울해졌지만 다음 경기에서 피파랭킹 1위 & 전 월드컵에서 브라질,아르헨티나,프랑스,포르투갈 등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독일을 상대로 2:0 승리를 하는 기적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비록 스웨덴이 멕시코를 이기는 바람에 16강은 무산되어 1승 2패 월드컵 19위를 기록하여 어느 정도 희망은 남기는 데 성공했다. 결국 신태용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한국축구에게 알맞는 길은 2002히딩크호처럼 역시 스피드, 활동량, 압박이라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신태용호는 아시아팀을 상대로 패한 적이 없다. 물론 팀을 지휘한 기간이 짧은 탓도 있지만 전임인 슈틸리케와는 비교되는 부분.

또한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최근 월드컵 대표팀 감독들 중에서 딕 아드보카트와 더불어 3점차 패배가 없으며, 또 유일하게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감독이기도 하다.
[1] 계약만료일 기준[2] 2017일본동아시안컵 도쿄에서 알제리쇼크 감독의 일본을 4:1로 격파하며, 2006월드컵 우승 리피 감독의 중국까지 제치고 우승하였다.(리피의 중국과 2:2무승부)[3] 32개 진출팀 중 19위 기록. 계약기간 내내 축구팬들로부터 불신을 받았지만, 월드컵 본선 F조 조별리그 3차전이었던 독일전에서 당시 FIFA 랭킹 1위이자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월드컵 우승 감독 요아힘 뢰프 감독의 독일 대표팀을 2-0으로 격파하여 전세계로부터 찬사를 받았고, 승점 3점 1승 2패 대회 19위를 기록했다.[4] 중국, 카타르에게 패배하며 월드컵 탈락위기에 봉착[5] 당시 일본은 2018월드컵 아시아 예선 2위(승점 20점 B조 1위)로 통과했다.(1위는 이란(승점 22점, A조 1위))[6] 일설에 의하면 슈틸리케가 짤리자마자 거스 히딩크가 감독을 맡고 싶다고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2017년 히딩크 감독 선임 논란 문서 참조. 물론 실제로는 거론되지도 않았으며, 게다가 후에 공식 직책도 거절하면서 일부 지지자들의 설레발로 끝났다.[7] 당분간은 U-18 감독을 맡고 있는 정정용 대행 체제로 가기로 결정했다.[8] 비쇼베츠는 소련 대표, 슈틸리케는 서독 대표로 출전.[9] 한국 대표팀의 문제점은 맞지도 않는 점유율 축구를 하겠다고 날뛴 것 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지향점도 없이 성적 내겠다는 공허한 말만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되던 안되던 지향점이 있어야 거기서 맞춰 훈련을 시키고 팀을 꾸려나갈것 아닌가. 뭐가 되었든 뚜렷한 목표의식이 존재하는 집단과 아예 없는 집단은 차이가 극명하다.[10] 다만 신태용은 얼마안가 연령별 대표팀 감독으로 차출되면서 책임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이 논리대로라면 아시안컵 준우승 같은 공을 평가받아야 마땅하다.[11] 단적으로 무승으로 탈락한 대회였어도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유럽팀 불가리아에게 최초 승점 1점 획득,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스페인에 2:2 승점 1점 등 강팀들을 상대로도 비교적 선전했으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2패로 탈락이 확정되었어도 마지막 벨기에를 무승부 탈락시켰다. 참고로 이 벨기에전은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상 상대팀을 탈락시킨 첫 경기이기도 하다.[12] 심지어 북중미 소속인 파나마는 사상 첫 본선 진출을 이뤄내어 대통령이 휴일로 지정했을 만큼 경사였다. 유럽은 UEFA 유로 2016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아이슬란드가 다시 한 번 놀라운 모습을 보이며 본선에 진출했다.[13] 저 당시에는 농구도 마찬가지였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기도 했고, 국내 신인 선수로는 김승현이 충격적인 등장을 하게 되며 당시 서장훈을 주축으로 한 서울 SK 나이츠와 피터지게 싸운 끝에 만년 꼴찌였던 대구 오리온스를 우승으로 이끄는 등의 스토리텔링이 많았던 해이기도 하다. 반면 이 시기에는 야구는 큰 암흑기였다. 그나마 이승엽의 홈런 기록 경신이 주된 담론이었고, 여기에다가 2004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까지 터지면서 망하기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로이스터 매직,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다시 전성기를 맞게 된다. 즉, 스포츠는 선수들의 활약에 따라 흥망성쇠가 갈린다는 이야기.[14] 그렇지만 예전에도 있었던 얘기이다.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권창훈 등은 엄연히 K리그 출신 해외파들이다.[15] 그나마 김영권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멸망 수준의 포백라인에서 그나마 분전하였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3차전에서 득점을 하는 등 눈부신 활약들로 어느 정도 크게 재평가되었다.[16] 과장이 아니다. 2000년대 대표팀은 전설의 한일 월드컵부터 남아공 월드컵에 이르기까지 뚜렷한 팀 컬러가 존재했으며 월드컵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2010년대 조광래호부터 시작하여 그 팀 컬러는 조금씩 사라졌고 슈틸리케호에 이르러서는 아시아 최종예선 원정 무승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내며 자멸하는 수순이었다. 스페인전 1:6 대패 등 강호들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17] 벤투호가 한국 축구를 암흑기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했다면, 신태용호는 한국 축구를 암흑기에서 나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18] 사실 이 점도 FC 코리아들의 과도한 성토였으며, 축구 오래 본 골수팬들은 최소한 2017년 11월에 펼쳐진 두 평가전 경기 이후로 신태용 감독을 묵묵히 지지하고 있었다. 눈에 띄게 달라진 경기력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팀 컬러,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는 와중에도 정리되고 있는 베스트 일레븐 등 슈틸리케호 시절과 다른 행보를 보여주었기 때문.[19] 다만 신태용이 국대 감독에 어울리는 감독임과는 별개로 한국 축구는 국대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특수성과 세계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슈틸리케 사태를 반복하지 않고, 보다 검증된 수준 높은 외국 감독이 필요한 현실 때문에 시운이 맞아야하고 감독으로서 더욱 성장해야 한다. 특히 국대 감독은 그냥 잘해서는 안 되고 매우 잘 해야한다. 그게 꼭 성적이 아니라도 해당 감독을 선임하여 뚜렷하게 발전이 보여야하고 그것이 세계 트렌드에 부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적만 외국인인 감독이 아니라 분명한 축구철학과 세계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은 전술적으로 해박한 감독이어야 한다. 즉 이정도 눈높이에서는 현 시점에서 국내 감독은 없고 이러한 논리로 편의상 외국인 감독이라고 하는 것이다. 국적만 외국인인 무능한 감독들을 거친 한국 대표팀이다보니 그럴바엔 국내 감독이 못 할 게 뭐냐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한국축구는 여전히 축구 변방국이며, 정상적으로 봐서는 제대로 된 감독이라면 아직까지는 국내 감독이 할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남기고 배울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20] 다만 당시 나빠진 여론이 이러한 업적을 챙겨주지를 못했다. 우즈벡, 이란과 비겨 어쨌든 진출했으니 칭찬해주는 것은 마땅했다. 하지만 단순히 진출만이 아니라 팀은 여전히 개판이었고 월드컵이 얼마남지 않은 시점에서 단순 진출이 아닌 본선에서의 경쟁력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시점에서 월드컵에 진출했다고 축배를 든다? 이런 관점이었던 것이다. 신태용 개인에게는 축하해야할 일이지만 국대 차원에서는 더 나은 선택지는 없었나 고민하고 비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뭣도 아니었던 전임 감독은 뭘해도 칭찬만 받으며 시작했으나 본인은 뭘해도 욕만 먹었으니 억울한 측면도 있었겠으나 이는 국내 감독 차별보다는 당시 상황이 그랬다.[21] 참고로 신태용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부터 이미 김민재를 눈여겨보고 예비명단에 넣은 적이 있었다.[22] 조현우, 문선민, 고요한 등 신태용호에서 A매치 데뷔전을 가진 사람은 많으나, 이들은 전임 감독 시절이나 하위 연령 대표팀에서 소집이라도 된 경험이 있는 반면, 김민재는 프로 데뷔 이래 A매치 데뷔전이 곧 국가대표 데뷔전이었다. 그야말로 아직 국가대표에 검증조차 되지 않은 신인 중의 신인이었던 셈. 이는 신태용의 자원 발굴 능력이 고평가 받는 대표적인 예시로 증명되고 있다.[23] 여기서 신태용이 얼마나 불운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 문선민과 이승우는 월드컵 최종 명단 발표 전후로 빠져버린 이근호와 권창훈의 대체자였다. 그나마 여기에 염기훈까지도 빠져 버렸으니 정말로 있는 자원 없는 자원 다 털어가면서 겨우겨우 발탁 한 두 선수가 문선민과 이승우였다. 특히 이승우는 도저히 쓸만한 자원을 찾을 수가 없다보니까 신태용 본인이 그나마 하위 연령에서 잘 써 본 선수가 이승우였기에 데려간 것이다.[24] 벤투도 이 부분을 지적했으나, 월드컵 직전에 부임해서 3팀이 우리보다 강팀인 경우 내릴 선택지로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원칙주의자 벤투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였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은 신태용도 알았을 것이다. 소방수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25] 이것이 2010년대 암흑기의 주범이라 할 수 있다. 2010년 월드컵 16강 15위 성적에 안주하여 이정도면 아시아 감독으로 충분하다는 착각으로 적당히 국내 감독들로 돌려막다가 외국감독 구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무능한 인간을 그냥 선임해서 국내 감독을 선임한 못한 결과를 얻기도 했다. 한국 축구는 여전히 축구에서 변방이고 배울점은 차고 넘친다. 국대 감독을 유능한 외국인을 선임하는 것은 필수적이며 국대가 국내 축구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경제적 관점만 고려해도 직접적으로 돈을 투자하여 결과를 낼 때 가장 가시적이고 싸게 먹힌다고 할 수 있다.[26] 연 수십억 정도를 들여서 한국 축구를 위해 쓴다면 당장 표가 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국대 감독을 제대로 된 사람을 데려오면 리그가 그걸 보고 배우고 연령별 대표팀이 배우고 축구팬들이 보면서 배운다. 풀뿌리 축구가 중요하다지만 그 풀뿌리 축구가 우리나라 현실상 국대에 영향을 많이 받다보니 가장 필요한 부분이다. 결국에는 16강 15위 성적에 도취되어 그냥 국내 감독들로 땜빵하다 벌어진 사태라고 볼 수 있다. 조광래 선임은 결국 그 첫 단추였다. 조광래의 경질은 최강희 선임을 낳았고 최강희가 물러나자 홍명보를 내세웠으며 그 후 슈틸리케로 어물쩡 넘어가려 했다. 밀실행정이나 감독 권한에 관여하는 구시대적인 행정 뿐만아니라 우리가 외국 축구보다 못 할 게 뭐냐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출발한 오만함에 대한 대가다. 슈틸리케 선임은 현실이라는 좋은 명분으로 자신들의 오만함을 감추기 위한 핑계였고 결국 탄로났다. 결국 세계와 격차가 벌어진 것으로 증명되었고 무능한 외국인 감독을 데려와 은근슬쩍 자신들의 열등감을 감추려고 시도하다 시원하게 말아먹었다.[27] 그리고 월드컵 2회 연속으로 최종순위에서 무려 독일과 이탈리아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하였다. (2018년 대한민국 19위 독일 22위. 2022년 대한민국 16위(16강) 독일 17위, 이탈리아는 2회 연속으로 유럽예선에서 탈락)[28] 실제로 16강 진출이 무산되며 마쳤음에도 축구의 인기는 더 높아졌고, 이는 멕시코전 투혼과 독일전 승리가 99%의 지분을 차지한다.[29] 이 대회 브라질과 공동 8강팀.[30] 세 경기 중 제일 열심히 준비했으나 라인업, 전술, 선수 교체 등이 전부 빗나갔다고 언급. 장현수의 킬패스로 박주호가 조기에 교체아웃되는 불운이 있었으나, 공격에서 계속 템포가 끊겨 스웨덴이 반코트 게임을 했고, 실점 이후에도 맹공으로 나가지 않고 준비한 대로만 운영했다.[31] 이 부분은 이미 많은 지적이 있었다. 리우 올림픽 때도 선수단의 체력을 고려하지 않고 파워 트레이닝을 시켰다가 온두라스에게 패해 8강에서 탈락하였다.[32] 권창훈, 김민재 등 부상자가 속출해 플랜이 엄청 꼬여버렸다. 슈틸리케의 악영향이 워낙 심해 묻히긴 했지만, 이 때 부상빈도는 그 어떤 팀이어도 기존 플랜에 엄청난 타격이 올 정도로 심했다. 소속팀에서 다친 거라 신태용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한 부분.[33] 그러나 부상자가 속출했던 월드컵 결선을 제외하더라도 평가전 운용 단계에서부터 3백성애자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부임 후 첫 평가전이던 모로코전, 러시아전부터 3백을 실험하다 2연패 했다. 이후 슈틸리케 때부터 써왔던 4-4-2로 전환한 후 콜롬비아, 세르비아 2연전에서 1승 1무를 거두며 4백이 가장 숙련된 전술임을 보인다. 그러나 이후로도 3백/4백을 오가며 수비전술에서 안정감이 크게 떨어졌고 2018년 3월, 월드컵 엔트리 선정 전 마지막 평가전이던 유럽 원정 2연전에서도 약체 북아일랜드전에서 4백을, 당시 강호이던 폴란드전에서 본인의 3백을 실험하다 2연패. 대개 강팀과의 평가전에서 플랜A 다지기를, 약팀과의 평가전에서 실험을 하는게 일반적인데 반해 평가전을 통해 자신감 획득도, 전술 실험도 달성하지 못했다.[34] 그 유명한 트릭 발언.[35] 애초에 칭찬받기 힘든 상황에 부임해서 사생아 취급받으며 시작하여 기분이 언짢았던 측면도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표팀 감독이라면 어느 정도는 아무렇게나 배설하는 여론을 일일이 상대하지 말고 덤덤하게 앞으로 나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억울하지만 본인이 모든 당시 모든 불만을 잠재울 만한 커리어나 실력을 갖고 있던 감독은 아니었음을 쿨하게 인정하고 할 일을 덤덤히 했어야 했다.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못한 여론과 맞선 순간 월드컵이 개막할 때까지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한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개인에게는 축하할 일이지만 당시에는 월드컵 진출만으로 샴페인을 터트릴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음에도 언론에 대놓고 월드컵 진출에도 차가운 반응에 서운함을 표시한 것이나 평소에 K리그 안보러 오고 국대경기와 월드컵만 되면 전국민이 다 감독이 된다는 발언 등 아쉬운 부분으로 꼽힌다. 결국 이런 발언들이 당시 혼란했던 상황에서 모두를 입 닫게 만들어버릴 감독을 갈구했던 상황에 맞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효과를 낳게 되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36] 향후 최소 10년 간은 외국 감독에게 배우며 로컬 지도자 양성에 힘써야 한다. 당연히 벤투 후임도 벤투 급의 외국인 감독이 와서 벤투와는 또 강조하는 부분이 다른 감독에게 지도를 받으며 배울 필요가 있다.[37] 축구야구와 달리 무승부를 분모에 산입 계산해서, 승률상 무승부는 승리로 취급되지 않는다. 물론 상대팀의 승률도 하락시킨다. 자세한 내용은 승률 문서 참조 바람.[a] A B C D E F G H I J K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32개국 본선 진출국[38]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 성공[39] 김주영 자책골 2골 기록[40] 신태용호의 첫 승리[41] 지난 2014브라질월드컵 알제리 쇼크를 안긴 할릴호지치 일본 감독에게 승리[42] 도쿄 대첩(2017) 2승 1무 우승[43] 카잔 대첩, 1승 2패 월드컵 19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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