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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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F/판타지 덕후
2. 보컬 능력에 대한 자평
3. 배우로서의 신해철
4. 신해철과 정석원 & 015B
5. 걸그룹 사랑
6. 연예인들을 보는 시각에 대한 입장
6.1. 사람 신해철
7. 맥심 편집장 취임 취소건


1. SF/판타지 덕후[편집]


SF/판타지 장르에 엄청난 애정을 지니고 있다.

'하드SF'계열도 읽기는 하지만 주로 '사이파이(Sci-fi)' 혹은 '스페이스 오페라'로 불리는 장르에 꽂혀 있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앨범의 컨셉들도 사실상 SF/판타지 소설을 탐닉하면서 받아들인 세계관들에 근거한 경우가 많으며, 일반적으로 단순히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 정도로만 알려진 N.EX.T의 4집 앨범 스페이스 록 오페라(Space Rock Opera)는 그런 성향과 그동안 익혀왔던 음향기술을 집대성한 완성체이다. 팬들조차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앨범은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OST이기도한 것이지, 엄연히 N.EX.T의 정규앨범이며 동시에 컨셉앨범이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서" 해산을 선언했던 당시 N.EX.T가 해산선언 직전에 남긴 앨범이라는 것을 상기해보면, 이 앨범의 의의가 결코 N.EX.T의 2, 3집에 비해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 SF/판타지 번역본 출간사정 자체가 좋지않은 편이기 때문에, 어떤 작품이든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출간되면 무조건 산다" 주의이다.[1] 그러다가 을 밟은적도 있다고 한다. 읽고나서는 엄청나게 욕을 하고 구석에 처박아둔 뒤 오랜 시간이 흘러, 신작SF영화가 나왔다길래 무조건 달려가서 보기 시작했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가 나오더란다. 바로 그 '똥'의 영화판.

로저 젤라즈니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공공연히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고스트스테이션에서 '로저 젤라즈니'가 답인 퀴즈를 낸 적이 있을 정도.

SF/판타지 장르에 있어서는 무조건적인 애정을 보낸다. 영혼기병 라젠카의 음악을 맡았던 것도 단지 '로봇'이 나온다는 이유이고[2], 심형래디 워의 헌정곡인 'The Virgin Flight (Theme Of Imoogi)'를 만든 것도 단지 '용'이 나온다는 이유에서였다.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해서 저그 헌정곡을 만들기도 했고, N.EX.T시절 앨범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워로드2에 빠졌던 것도, 게임을 좋아하기 이전에 SF/판타지에 환장하는 성향이 컸던 것. 하지만 은 그냥 까였다. 까이고 또 까였다. '응원'해줄 구석조차 없었나보다.

단, 안면인식장애와 더불어 제목인식장애도 앓고 있는 탓에, 팬이라고 자처하는 작품들의 제목조차 잘못 말하기도 한다. 1990년도 후반 솔로시절 인터뷰 영상을 보면 'The Lord of the Rings'를 계속 'The Ring of the Lord'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제목을 잘못 말한 경우도 많아서, 고스트스테이션에서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근미래 SF영화를 한 편 추천하면서 제목을 틀리게 이야기해서 청취자들이 알아서 제목을 유추한 후 영화를 찾은 뒤 게시판을 통해 바로잡아 주기도 했다. 설마 이것도 그래서 기록이 없던건가?

고스트스테이션에서 폴 앤더슨의 SF소설 '타임 패트롤'을 음성 특수효과를 곁들여서 1인 라디오 드라마화 한 적도 있다. 여성의 음성도 본인이 직접 냈는데 결국 힘들다고 2회만에 때려치웠다.

2. 보컬 능력에 대한 자평[편집]


20장 이상의 음반을 발매한 뮤지션치고는 보컬리스트로서의 자신에 대한 엄살이 심하다.

고스트스테이션으로 팬들과 좀더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인은 노래를 못하는 편이라고 계속 주장해왔고, 아무도 보컬을 안하려 해서 본인이 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보컬로써의 능력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일단 음반 기준으로만 F1[3]의 극저음에서 G5[4]의 극고음이라는 엄청난 음역을 보유하고 있으며, 또한 앨범에서 뿐만 아니라 라이브에서도 중후한 중저음에서 날카로운 고음까지 소화할 수 있다. 다만 컨디션에 크게 좌우되는 모습을 보인다. 베이스로 타고난 걸 억지로 고음역대를 소화하면서 두통이나 안압상승 등의 여러가지 지병을 얻었다고 하는데, 헤비메탈키드로서 본인은 어느 정도 만족스런 성과인듯 하다. N.EX.T. 해체 이후에는 극저음역(대표적으로 일상으로의 초대)을 시도하기도 했다.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다한증이 무척 심해서 기타, 키보드(신디사이저), 베이스 기타 등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데에 애로사항이 있다고 한다. 본인 왈, 3살 때 녹용을 잘못 먹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조건 악기 연주를 피하는 것은 아니고 앨범 레코딩 시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직접 연주한 경우도 많다. 참고로 김세황이 신해철의 기타 실력에 대해 증언하길, 수준급의 스쿨 밴드 수준이라고 한다(…). 신해철은 이 말에 대해 <진중권의 문화다방>에서 스스로 인정했다…[5]

대외적인 엄살이 심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2000년대에 들어 보컬스타일을 메탈리카제임스 헷필드처럼 중저음의 흉성을 강조하는 형태로 바꾸면서 보컬에 대한 자신감이 좀 더 붙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면서 아내와 오붓하게 지낼 때 사용할 자신의 앨범이 한장도 없더라는 핑계를 대이야기를 하며 재즈 앨범도 1장 발매한다. 심지어 녹음도 1곡당 한 번에 녹음. 보컬 사운드 면에서도 훌륭한 앨범이지만 한국어 가사가 유난히 느끼하게 들려서 팬들도 자주 듣지는 않는 앨범이다. 흑역사까지는 아니다 애초에 프로모션 의도로 만든게 아니다보니 대중적으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때의 사진이 잘 나왔는지, 일단 항목 맨 위의 사진도 그렇고 영정 사진도 이 때의 사진을 걸어놨었다.

본인 스스로도 못 한다고 이야기 하면서 인터넷에서 보컬들 레벨 매기는 사람들 중엔 '정말로 아마추어 보다 노래를 못 부르는 줄 아는' 사람들도 늘어난 탓인지, 2011년경부터는 이런 식의 보컬과 관련한 엄살을 자제하는 편이다. 오냐오냐 했더니 수염까지 잡아당기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그렇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들을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보컬트레이너의 입장이기도 하기 때문에 자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해철은 인터넷에 떠도는 자신의 보컬과 관련한 평가를 잘 알고있다. 이에 직접적으로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방송 중 보컬들의 발성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면서 센가성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에 대해 슬며시 언급하고 지나간 적이 있다.

변성기 시절 무리하게 목을 혹사한 원인으로 목소리의 저/고음역대의 파형 자체가 일반적인 경우에 비해 특이한 편이라고 한다. 영국의 엔지니어들로부터 들은 평가라고 한다. 일반인들이 파형분석을 해볼 수는 없겠지만, 실제로 신해철의 고음을 직접 들어보면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그런 센가성과는 많이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컨디션에 따라 음정이 들쑥날쑥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목소리로 세 시간 내내 공연하는 하드한 스케줄을 생각해본다면 소위 말하는 불량발성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고스트네이션에서 전인권이 게스트로 출연했을당시 자신이 노래를 못부른다며 내내 얘기했었지만 전인권은 "잘 부르는데 왜 그러냐"고 말했었는데 이 때 신해철이 굉장히 쑥쓰러워하는 걸 들을 수 있다.[6]

3. 배우로서의 신해철[편집]


의외일것 같지만... 실제로 드라마에 몇번 출연한적이 있었다. 신해철은 안녕, 프란체스카에 앙드레 대교주로 캐스팅되었다. 원래 신해철이 앙드레 대교주 역을 맡게 될 당시 앙드레의 캐릭터는 말 그대로 대교주다운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이었지만 신해철 본인이 '내 인생이 지겹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로 오히려 제작진을 만류, 그 결과 모두가 다 아는 실속없는 캐릭터로 탄생했다. 그럼에도 강인한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아치와 씨팍에서 보자기갱단의 보자기 킹을 연기하였다 더빙연기가 매우 좋은작품이다

4. 신해철과 정석원 & 015B[편집]


당시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무한궤도 멤버들에 더하여 무한궤도 앨범 녹음을 위해서 영입한 제3의 키보디스트가 바로 훗날 015B의 정석원이다. 사실상 그를 음악계로 데뷔시킨 것은 바로 신해철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신해철이 2000년 즈음에 인터넷상으로 연재한 본인의 자서전 격이라 할 수 있는 연작글(에세이)을 보면 고교 동창들이 만든 밴드인 "아기천사"의 땜빵 멤버로 참가한 강변가요제 예선을 나갔던 사실이 나와 있고, 대학가요제 예선 때 서울대 "실험실" 멤버였던 정석원의 피아노 연주를 보게 되었다고 썼으나, 정석원이 쓴 "공일오비 스토리"에 따르면 그는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적이 없으며 강변가요제 출전 시 1차 예선에서 탈락했다. 이전 항목에서는 3차 예선에서 탈락했다고 적혀 있었는데 3차 예선에서 탈락한 팀은 신해철이 있던 밴드 '아기천사'였다. 출처는 공일오비 스토리. 신해철이 잘못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이렇게 1차 예선에서 탈락했을 때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보고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는 가운데 한 남자만 일어서서 갈채를 보냈고, 후에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음악을 하자고 제의했는데 그가 바로 "아기천사"의 멤버 신해철이었다고 했다. 이후 신해철이 무한궤도의 앨범 작업을 진행하면서 직접 영입 제안이 왔다고 한다.

신해철의 에세이 원문에서 인용.

서울대에서 왔다는 괴상한 3인조는 째즈도 아닌 가요도 아닌 골 때리는 곡을 연주했는데 밴드 이름이 실험실이었으며, 바벨 2세에 나오는 요미와 흡사한 키보디스트가 피아노 연주로 관객들을 으악 죽이고 있었다.[7]

[8]


무한궤도 앨범 녹음은 신해철이 기타를 맡았지만 방송 출연시 보컬과 기타를 병행할 수 없었기에 객원으로 영입된 기타리스트는 바로 정석원의 친형인 정기원이었다. 이후 밴드가 사실상 해체된 이후 무한궤도는 신해철 개인의 솔로활동 및 키보디스트 정석원, 베이시스트 조형곤, 객원 기타리스트였던 그 정기원이 결성한 015B로 나뉘어서 90년대 대중음악의 한 축을 이룬다. 그 정기원? 그가 바로 015B의 간판 장호일이다.

비록 별개의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동일한 음반사에 소속된 음악적 동료로서 무한궤도 해체 직후 때만 해도 서로를 존중하며 꽤 절친한 듯이 보였던 신해철과 정석원이었다. 신해철은 015B 1집에 수록된 '난 그대만을'이란 곡을 작사 작곡하고 직접 보컬까지 맡았으며[9], 015B 2집 수록곡인 불후의 명곡 '이젠 안녕'에서 집단 보컬 중 1인을 맡는 등[10] 한동안 정석원과 상당히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다.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신해철의 솔로 데뷔 앨범에도 정석원의 곡인 'P.M. 7:20', '함께 가요', '인생이라는 이름의 꿈'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로 정석원이 '실험실'이란 밴드로 강변가요제 예선 출전시 연주했던 노래도 'P.M. 7:20'이란 노래인데, 신해철 1집에 수록된 곡은 정석원이 기존에 작곡했던 동명의 곡에 신해철이 별도로 작사한 곡이므로 강변가요제 출전 곡과는 완전히 다른 노래다.

정석원과는 본래 무한궤도에서 함께하던 시절부터 서로 추구하는 음악 장르 및 지향점의 차이가 있었음을 일찍부터 서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석원이 그러한 부분을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는 015B 자서전의 내용과 무한궤도의 마지막 방송 출연이었던 라디오 공개 방송에서 신해철이 무한궤도가 공식적으로 해체하게 될 것이며, 이후 신해철 자신과 정석원을 중심으로 새롭게 결성된 밴드로 나뉘게 될 것임을 밝히면서도 특별히 아쉬운 감정을 드러내거나 그러한 의미를 담은 어휘를 선택하지 않은 채 가볍게 언급하는 점을 감안해 보아도 그렇다.

실제로 90년대 초반 아이돌 스타로서 압도적인 인기와 지명도를 얻었던 신해철의 인기와 앨범 판매량은 N.EX.T를 결성한 다음부터 본인이 추구해왔던 음악세계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의도적으로 대중의 취향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며 "인형의 기사 Part 2"와 "도시인"이 히트한 1집과 "날아라 병아리"가 히트한 2집 앨범을 제외하고 음악적인 성과와 비평과는 별개로 판매량은 완연한 감소세가 분명했다. 물론 대마초 사건도 한 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편 동일한 시점에서 정석원이 이끈 015B는 POP계에서 등장한 최신의 장르를 재빠르게 받아들인 다음, 한국적 감성에 바탕을 둔 대중적 취향을 솜씨 좋게 결합해내면서 음악적 실험성과 대중성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는 데 성공했고 ,015B는 3집부터는 판매량 밀리언 셀러 기록 및 가요차트까지 완전히 석권하는 속칭 대박을 친다. 여전히 같은 음반사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부터는 신해철과 정석원의 작품 속에서는 양자의 음악적 교류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화룡점정으로 015B 5집 앨범 부클릿에 적힌 글 중 '친분 있는 평론가들의 찬사 일색의 평론을 자기 앨범 속지에 자랑스럽게 써두는 몰지각한 음악인' 운운하며 N.EX.T를 디스하는 구절이 있다. 이것이 그야말로 신해철과 정석원의 관계에 종언을 알렸던 듯.

과거 무한궤도 및 넥스트 멤버와의 재결합 가능성을 묻는 2008년의 인터뷰에서 정석원과의 재결합에 대해서는 단칼에 고사하며 "정석원이랑은 절대 안하죠", "재수 없으니까요, 그대로 쓰셔도 돼요"라면서 거침없이 대놓고 디스하는 언행을 보였다.

정석원 스스로 '공일오비 스토리'에서 데뷔 당시에 몸담았던 밴드 무한궤도를 그 당시 정석원 자신보다 상당히 앞서가는 음악성을 지닌 밴드로 평가하였고, 015B 1~2집 활동 때에는 신해철 솔로 앨범의 인기와 평가 면에서 완전히 밀린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015B라는 그룹명 자체를 무한궤도에서 차용한[11] 것을 보면 적어도 데뷔 초기까지의 정석원은 당시 동갑내기이면서도 평단의 주목이나 인기도 측면에서 상당히 앞서가는 위치를 선점하고 있던 신해철에게 일종의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신해철 또한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은 N.EX.T 1집 'HOME' 앨범으로 단 한 번밖에 기록해보지 못한 밀리언 셀러를 세 번 씩이나 기록하며, 1990년대 신세대의 대변자로서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게 된 015B에 대해서 역시 그리 편한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신해철과 정석원 양자의 이러한 관계는 2014년 10월, 신해철의 빈소에 다른 015B의 멤버들과 함께 정석원이 찾기 전까지 결국 계속되었다. 생전에 두 사람이 화해했는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긴 하나, 어쨌든 젊은 시절 같은 팀이기도 했고 상당 기간 음악적으로도 교류했던 정석원에게 신해철의 사망은 정석원이 가지고 있던 앙금을 희석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2015년 10월 27일, 신해철 사망 1주기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윤종신이 '월간 윤종신 Special'이라는 타이틀로 신해철의 1집 수록곡 '고백'을 리메이크하여 발표했는데, 이 곡의 편곡을 정석원이 맡았다. 윤종신은 보도자료를 통해 "신해철의 초창기 음악을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으면서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뮤지션인 정석원과의 작업이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 곡의 수익금은 모두 신해철의 유족에게 돌아갈 예정이라고 한다.

5. 걸그룹 사랑[편집]


아이돌 가수를 까지 말라는 주장을 많이 하곤 하고 본인도 S.E.S.의 열혈 팬이었다. 한때 소녀시대를 좋아했으나 카덕으로 개종(?)했다. 그것도 아예 방송상에서 인증해버렸다.개종선언 이후 구하라가 신해철에게 카라가 종착역이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는 바람에 완전히 침몰했다. 사실 이 발언이 없었다면 티아라로 옮겨갔을 거라고. 팬들이 구하라의 사진 조공을 바치다가 저작권 관련 문제는 어떻게 하냐고 글을 올리자, 비장한 말투로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며 올리라고 대답해줬다(...) 그런데 레인보우로 갈아탔다! 역시 70C의 위엄 나중에는 또 나인뮤지스라고... 그리고 원더걸스로 갈아타셨다....[12]

하지만 아이돌 가수의 팬덤에까지 무한한 애정을 표하는 것은 아니어서 2008년 6월에 있었던 드림콘서트에서의 이른바 소녀시대 침묵사건에 대해서 '그냥 저질 삼류관객 나부랭이 무리'라고 가차없이 까버렸다. 이에 발끈한 해당 팬클럽 쪽에서는 신해철의 사과를 요구하며 촛불시위를 벌이겠다고 했지만 결국 별일 일어나지 않았다.

신해철이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이돌'이나 '립싱크'가 아닌 '라이브 환경'의 문제다. [13]

고스트 스테이션에서는 '방송사 음악(순위) 프로그램들은 자신들은 라이브 방송을 한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차라리 라이브보다 립싱크를 하는게 낫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방송사 음악순위 프로그램들이 라이브를 고집한다고 하지만 막상 음향환경은 라이브 무대를 위한 세팅이 돼있지않고, 그저 예산을 아끼기위해 생방송만 하는 상황을 비판하는 것이다. 행사무대나 다름없는 생방무대에서 실수하면 전후 세팅 상황과 관계없이 무대에 선 가수가 모든 화살을 감내하게 되기때문. 때문에 좋은 라이브 무대를 위해서는 가수들 개개인을 위한 세팅이 따로 되어 있어야 하지만 순위 프로그램들은 그런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젊은 멤버들로 꾸린 넥스트 5기 시기부터 젊은 새 멤버들의 프로모션의 일환이자 아이돌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한 조롱의 의미로, 자신은 아이돌 가수라는 식의 어필을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넥스트 5기의 첫 대형공연인 2003년 겨울 장충체육관 콘서트에서는 '넥스트는 이제 댄스가수'라며 도시인에 맞춰 립싱크로 댄스공연을 했던 적이 있다. 처음 넥스트 다섯 명이 한 안무 부분에서는 모두가 열광했으나 솔로 댄스에서는 서툰 실력으로 폭소를 터뜨렸다. 이후 5집이 나오고 나서는 공중파 무대에서 대놓고 화려한 손싱크를 펼치며 넥스트 팬들을 웃겨서 뒤집어지게 만들었다.

걸그룹이 사람이니까 연애를 할 수 있지만 팬들에게는 그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출처 필요. 때문에 본인이 좋아하던 걸그룹이 연애를 할 때마다 신인 걸그룹으로 갈아탄다고[14]

6. 연예인들을 보는 시각에 대한 입장[편집]


'대중은 당연히 연예인들의 우위에 서있는 사람'이라는 시각에 거부감을 표한다. 때문에 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호기심으로 팬을 자처하며 사인이나 사진 혹은 연예인이 곤란해할 법한 행동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일례로, 한 대학의 특강에서 한 학생이 팬이라며 사인을 요청하자, '앨범을 사고 가수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줘야 진정한 팬이다. 음악을 계속 듣고 싶다면 앨범을 사라. 불법 복제한 음악을 들으면서 팬이라고 하는 것은 팬이라고 할 수 없다.' 라고 말하며 불법 복제를 까기도 했다.

또 다른 예로, 데뷔한지 얼마 안된 시절, 신해철이 버스를 타고 가는데 웬 여학생들이 수군수군대며 웃는 것을 보고 기분이 나빠서 그래서 그 학생들에게 다가가 '한번만 더 웃으면 입 찢어버린다'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단지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쉽게 대할 수 있고 생각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연예인을 특별히 깔보는 인식을 싫어하는 것은 사실이나, 당시엔 데뷔한지 얼마 안 돼 신해철 스스로 유명 연예인이라는 인식이 없던 시절이라 있을 수 있었던 상황이다. 때문에 적당한 예시가 아니다.

사실 위의 사례는 라디오 방송에서 연예인 공인론을 부정하며 했던 말이다. 심지어는 연예인이 공인으로 여겨지는 각종의 사례들을 열거하며, 대중매체가 사인인 연예인의 지극히 사적인 부분까지 파고 들어도 이것이 정당하다는 근거로 삼기 위해 연예인을 공인에 준하는 존재로 만들었다며 주장했었다. 이런 식으로 공인의 책임을 덧씌울거라면 "차라리 연금이라도 주든가"라고 말을 했었다. 이는 자연스레 대중이 연예인에 대해 가지는 상반된 시각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실제로 대중은 연예인들을 '광대' 내지는 '딴따라' 정도로 인식하여 하대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음에도[15], 유달리 도덕적인 면모나 정치적인 행보 등에서는 정치인보다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기 때문.

사실 진짜 문제는 연예인의 유명세를 이용하는 현실임에도, 지금도 대중들 중 일부에게선 "딴따라 주제에 사람들을 가르치려 든다"는 말이 나온다는 점이다.


6.1. 사람 신해철[편집]


여자친구를 '영숙이'라 칭했다고 한다. 마지막 영숙이가 바로 현재 아내. 실제로 그랬을 가능성도 있으나 가족들의 언론노출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신해철의 성향상으로 볼 때, 팬들에게 써먹을 만한 대외적인 호칭으로서 개발한 측면이 큰 듯하다. 밑도끝도 없이 자기 이름 대신 다른 이름을 부르는 남친을 허용하는 여자는 드물 것이다.

아내 윤원희는 9살 연하의 미스코리아 뉴욕 진 출신 재원이다. 신해철이 미국에서 비트겐슈타인 작업을 할 때 만난 사이로, 일본 골드만삭스에서 일하다 결혼을 위해 사직하였다. 주변에서 부부의 나이차를 두고 놀리면 난 누구누구처럼 띠동갑은 아니니까 괜찮지 않냐며 대응한다나. 게다가 6촌 동생은 더하다. 누구나 아는 정현철

결혼 전 시기로 해서 아내의 암이 발견되었다. 본래 결혼이라는 제도에 거부감이 깊던 신해철은 이 때 아내를 옆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결혼시기에 대해 고민하던 중, 오히려 그의 어머니가 아내가 힘든 이런 시기일 때야말로 빨리 결혼을 해야 그쪽 부모님들이 편안해 할 거라며 결혼을 재촉했다고 한다. 결국 결혼과 함께 아내는 수술을 받았고 현재는 완치된 상태. 그 때 신해철도 골다공증으로 고생하면서 부부가 사이좋게(?) 병원에 다녔다고 한다.

암이 완치된 이후 신해철 부부는 딸과 아들을 얻었다. 어떤 악플러가 신해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공개된 딸의 사진을 보고 악플을 쓰자, 신해철 본인이 그 악플러의 미니홈피를 찾아가 방명록에 욕설로 대응해서 그 악플러를 겁먹게 했다. 이에 사람들은 '역시 마왕'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것보다는 역시 아버지. 사실상 불임부부가 고생 끝에 아기를 가질 수 있었던 상황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신해철의 과민반응이 이해가 갈만한 상황이었다. 다만 평소 워낙 독설가로 알려져 있다보니 욕설 대응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을 뿐이다.

서태지와는 외가 쪽 6촌 사이다. 진짜로 서태지와 친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 서태지가 TV에 나온걸 집에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신해철의 어머니가 "어머 저거 현철이[16] 아니야?"하며 알아보았다고 한다. 서태지와 신해철이 처음 만났을 땐 서로 친척인지 몰랐다고. 그래서 신해철에 대한 이런 저런 소문과 그가 직접 PD와 싸우는 모습을 보기도 했던 서태지는 2집을 준비하면서 당시 신해철이 가지고 있던 AKAI s2000과 샘플러에 대해 배우기 위해 후배뮤지션으로서 그에게 방문했을 때 무서운 형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음악을 배우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곧 알게 되었지만. 2002년 일본에서 가족 정도만 모여 치룬 신해철의 결혼식에도 서태지가 참석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관련 에피소드로, 서태지가 신해철을 강제로 설득해서 신해철과 김종서, 서태지가 같이 스키장을 갔었는데 신해철이 크게 넘어져서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생겼었다. 당연히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어머 저 사람 신해철 아냐?" 라고 하며 신해철에 대한 온갖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서태지는 고글과 비니로 얼굴을 완전히 감싸고서는 사람들 틈에 섞여서 신해철을 배웅했다고 한다. 신해철은 깊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구급차에 실려갔다. 그 모습이 너무 밉상이었던지 신해철은 아직도 그때 혼신의 힘을 쥐어짜내서 "저 새끼 서태지다!" 라고 소리치지 못한 게 한스럽다고 한다.

김구라의 진실게임에 친분 관계가 언급되어 있다 9분 58초 쯤에 나온다. 링크

이처럼 서태지는 비록 신해철과 타이업 활동을 하는 등의 공식적 접점은 없었지만 사적으로는 데뷔 이래 계속 친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그룹 해체 이후 서태지는 미국으로 칩거하게 되고, 그가 보유하고 있던 악기들 대부분은 신해철을 통해 처분되었다. 또한 2000년 이후 상호간의 활동기간과 휴식기간이 거의 겹친다. 서태지가 2000년 태지로 은퇴번복 후 컴백했을 때 신해철은 신생밴드 비트겐을 이끌고 있었으며 2004년 7th Issue 때는 신해철이 넥스트를 재결성하여 개한민국을 발표하였다. 2008년에도 Atomos와 신해철 20주년 컴백+넥스트 6집 활동기가 맞물렸으며[17] 2014-2015년에도 서태지가 9집을 냈을 시점 신해철이 솔로 6집의 활동을 막바지에 두고 원대한 프로젝트인 N.EX.T Utd.의 첫 발을 떼고 있던 타이밍이었다.
또한 서태지 본인의 언급에 따르면 신해철 사망 전 이승환, 싸이, 김종서 등과 함께 모종의 합동공연 비슷한 기획 이야기가 오고갔던 것으로 보이지만 신해철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무산되었다고 한다. 단 완성된 것이 딱 하나 있긴 있다. 4인의 90's Icon 프로젝트. 2011년부터 신해철-이승환-서태지 삼자 팬 사이에 돌던 공동 퍼포먼스에 나머지 셋과 절친한 편에 서태지와 타이업 활동을 Free Style로 한 적 있던 김종서까지 끌어들여, 2014년 서태지 버전의 90's Icon을 9집을 통해 공개하고, 이후 4인 프로젝트의 작업을 완료해 공개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4인 합동공연 정도가 아닌 합동 싱글 공개와 장기 활동까지 하려고 한 듯 하지만…이 녹음 얼마 후 넷이서 얘기하던 중 신해철은 배가 좀 아프네…하고 병원으로 달려갔고[18] 그게 세 사람이 본 살아있는 신해철의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신해철의 사망 직전 이 프로젝트의 녹음까지는 완벽하게 끝났고, 후반 작업을 논의하며 웃음꽃을 피우면서 이야기하던 상황이라 완성에는 문제가 없었고, 실제로 이미 완성되었지만, 남아있는 세 명은 서로의 가슴 속에 이 음원을 묻기로 하고 현재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마왕이나 독설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사석에서는 후배에겐 친절하고 격의 없이 대하면서 선배에겐 깍듯한 사람이기도 했다. 배철수는 마왕이라는 이미지로 이런 신해철의 인간적인 면을 대중이 알아주지 않는 데 대해 몇 차례 안타까움을 표하며 "사석에서는 어리광을 피우기도 하는 귀여운 후배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까마득한 후배 인디뮤지션들과도 음악적으로 교류하며 사적으로도 친해 이런 저런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20] 신해철이 인디씬 전체에 대해 꾸준히 보인 관심과 후배 뮤지션들에 대한 애정에 대해선 더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 그런 반면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을 지키는 것도 중요해서 잠시 일했던 라디오 작가가 그만둘 때까지 반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밝히기도 했다. 신해철의 사망 이후 그에 대한 이런 이미지가 잘 녹아 있는 신해철의 '몰래 카메라' 출연분이 오랜 시간 인기검색어에 올라 있었다.

2007년에는 MBC의 쇼바이벌에서 심사위원으로 나왔는데, 그 때 일반인 출연자로 나온 은가은은 이후 신해철의 도움을 받아 가수로 데뷔하게 됐다. 은가은 본인에게는 신해철이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고.

TOP밴드 출연 당시 코치했던 서울 직장인밴드 S1 16강 탈락 판정에 불복하며 " 앞으로 지속적으로 S1의 코치로 계속 음악을 하면서 이 팀이 진짜로 음반을 내고 활동을 하고 잠실 주경기장에서 S1이 콘서트를 하는 걸 봐야겠다는 것이 나에게는 불복이다 " 라는 인터뷰를 진행 했다. [21][22] 해당 발언 이후 나온 기사들을 보면 립서비스 난무하는 방송계에서 유달리 남다른 인간적인 면모가 보인다. S1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듯 한데 Dancing Queen 음원은 신해철이 직접 편집, 마스터링하였고 신해철의 목소리도 들어가 있다고 밝혔다. [23] 인터뷰

여담으로 국카스텐을 칭찬하면서 앨범좀 빨리내달라고 독촉하는 인터뷰를 했다. "넥스트가 아닌,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스타가 나와 구멍을 뚫어주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러니까 빨리좀 앨범좀 내라 이새끼들아. 너희가 멈춰있으면 후배들이 기회를 잃는다" 인터뷰를 보아하니, 꽤나 국카스텐을 아끼는듯 하다. 2집의 '감염'이 선공개 되었으나 2집이 채 나오기도 전에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심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24]

7. 맥심 편집장 취임 취소건[편집]


군대 간 남성들 최고의 구독서 중 하나인 잡지 맥심의 편집장으로 이미 취임했다 한다. 28일 맥심 신입사원 면접 현장에 참석도 했다니 이야기 끝. 맥심은 2010년 한국 라이센스가 종료돼 잡지 재창간을 준비하고 있다. 한때 사실무근으로 알려졌으나 2010년 03월 17일 텐아시아 인터뷰로 확인사살 인증. 앞으로의 맥심이 기대된다... 지만 결국 하지 않았다. 이건 구 맥심인 줄 알았더니 신 맥심(새로 라이센스 받은 출판사)이었다는 점이 강하게 작용한 듯. 신 맥심은 과거 기자들을 쓰지 못하여 퀄이 구맥심보다 떨어진다는 평이 초기에 많기도 했다. 구 맥심은 2010년 10월 소송에서 패해 잡지 접었다.
이러한 이유도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이 편집장을 맡고 허지웅이 부편집장 자리에 앉는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신해철에게 일종의 항명이 있었고(결코 예의바른 '의견제시'의 형태는 아니었던 듯하다) 결국 신해철을 얼굴마담으로써 쓸 거였다는 것을 알고 신해철이 분개하며 맥심을 그만두고, 소송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1] 실제 국내 SF팬덤에선 '나오면 무조건 사라'는 말이 진리로 통한다. 보통 초판 이후에 바로 품절(혹은 절판)되고, 그러면 언제 다시 구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수많은 SF덕후들이 전국의 중고책방을 뒤지고 다닌다. [2] 단, 실제 음악감독은 따로 있었다. 신해철이 애니메이션 라젠카의 음악을 맡은 것처럼 알려져있지만, 실제로는 원본소스만 제공한 수준인 것. 그런데도 망했다. 직접 음악감독을 안 해도 OST에 손대면 망해버리는 신해철의 저주[3] 서울역[4] 세계의 문 Part 2.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5] 하지만 신해철이 1991년도 별밤 잼콘서트에서 퍼스트 기타(리드 기타)를 맡았다는 것을 보면 기타 연주 실력이 평균 이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냥 김세황의 실력이 너무 넘사벽이라 김세황의 시선에서 그렇게 느껴진다고 봐야할 듯. 그리고 신해철이 자신의 실력에 대해 겸손하다는 것도[6] 참고로 본 방송 내용은 유튜브에도 올려져 있기에 쉽게 찾아서 들어볼 수 있다.[7] 그의 이름은 정석원이었다. 훗날 그의 별명은 요미가 된다...[8] 인터넷으로 원문이 아닌 편집글이 계속 돌아다니고 있다. 이 구절이 원문.[9] 그런데 이것은 대영AV 측에서 "015B라고 하면 아무도 모르니까 신해철이 노래라도 하나 넣어라" 해서 반강제로 수록했다는 말도 있다. 진실은 본인들만이 알겠지만, 당사자인 신해철이 사망한 상황이라 진실은 미궁 속으로...[10] 2절에서 '시간은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주겠지 우리 그때까지 아쉽지만 기다려봐요' 부분. 1절에서 같은 부분은 무한궤도의 드러머이기도 했던 015B의 드러머 조현찬이 불렀다.[11] 무(無)=0 한=1 궤도(Orbit)=5B. 다만 정석원은 훗날 인터뷰에서 이 설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2집 앨범의 자켓이 그 증거. 015B를 '空一烏飛(공중에 한 마리의 까마귀가 난다)'라고 적어놨다.[12] 여담으로 걸그룹을 떠나 여자 연예인에 대한 애정도 시시각각 바뀌는 편이었다. 한떈 송선미에서 시간을 거쳐 홍수아로 변한 적이 있었을 정도. 하지만 그 기질 어디 안간다고 요즘은 홍수아라고 말한 걸로 보아 언제라도 갈아탈 여지는 남겨뒀었다.[13] 지금에 와선 모두 농담으로 받아들이지만 신해철은 정말로 '아이돌'이었다. 무한궤도 시절과 솔로 시절, 넥스트 시절을 통틀어 1990년대의 신해철은, 한번도 자칭 정통파를 주창하는 락팬들에게 '진짜 밴드'로 인정받은 적이 없었다. 메이저 활동도 문제였지만 하는 음악 자체가 흔히들 생각하는 하드록이나 헤비메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데뷔 초 뜨는 데에 학력을 이용했다는 '오해'도 큰 몫을 했다. 요즘이야 서울대 나온 인디뮤지션이 더 뜬다 [14] 그런데 이렇게 말해 두는 것이 해당 걸그룹의 신상에 이롭기는 하다. 일반인이 연예인에 대한 팬심을 드러내는 것과는 달리, 엉뚱한 열애설이 터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전혀 엮일 일이 없는 연예인임에도 불구하고 인스타그램 맞팔이고 같은 관심사를 공유한다는 이유로 의심을 받는 사례도 있었다.게다가 연예인들이 팬으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사례 또한 없진 않았다.[15] 실례로, 친숙함의 표현이라지만 지나가는 연예인의 연령을 불문하고 반말부터 꺼내는 건 분명한 실례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분명 없을 텐데 존댓말이 나오지 않는건, 일반 대중들이 평소 연예인에 대한 잠재적인 인식 탓이 크다.[16] 서태지의 본명은 정현철이다.[17] 서로의 Part2 앨범이 나왔어야 하는 2009년의 경우 신해철의 노무현 대통령 자살 사태 이후의 칩거로 인해 활동기간을 맞추지 못한 듯하다.[18] 달려간 병원 중에는 2~3차기관도 있었지만 줄이 너무 길어 서울스카이병원(현 서울삼성병원)에 가게 되고 거기서 위에서 언급한 희대의 미친짓을 당하고 얼마 안 가 심정지로 의식을 잃는다. 아산병원에서의 긴급 수술 후 아주 잠깐 의식이 있었다가, 바로 의식이 없어진 후 몸 상태가 호전되던 중 결국...[19] av배우 하세가와 이즈미, 아키라 와타세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뭐 고스트스테이션 같은 곳에서도 공공연히 언급이 나왔기에...[20] 당장 위에서도 소개되었듯 까마득한 선배 신해철의 컴퓨터를 뒤진 후 "하세가와 이즈미 좋아하세요?"라고 말했을 정도다.[19][21] S1은 예선 1등으로 올라온 팀 답지 않게 16강전의 공연에서 한계점을 보였으며 판정단의 결과도 어느정도 수긍할만 하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신해철은 아마추어 밴드 경연이라는 프로그램의 모토와 평가위원단의 프로의 잣대를 내미는 평가 기준사이속에 있는 이중적 잣대에 반감을 가진 듯 하다. [22] 이후 실제로 S1과 친하게 지낸것으로 보인다. S1은 2011년 N.EX.T 크리스마스 공연 오프닝 밴드로 초청됐다.[23] SBS 좋은아침 4475회 中 [24] 그래서 하현우는 이후 복면가왕에서나 마리텔에서나, 라디오방송에서나 가끔씩 신해철 관련 에피소드를 꺼내는 것으로 유명, 특히 복면가왕에서의 신해철 곡들의 선곡은 "감사의 의미"를 담아서 했다고 언급한 부분에서 확인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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