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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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시선
Si seon Shim | 이름의 다른 표기 2

본명
심시선
출생
1942년 8월 D일 (2024세)
출생지
사망
2010년 8월 D일 (향년 79세)[1]
부암동의 집[2]
국적
[[틀:국기|

국가

행정구
]]

본관
신체
NNNcm, NNkg, 혈액형
가족
요제프 리(남편), 홍낙환(남편), 이명혜(장녀), 박태호(사위), 심명은(차녀), 이명준(아들), 김난정(며느리), 홍경아(의붓딸), 정보근(의붓사위), 박화수, 박지수, 이우윤, 정규림, 정해림(손주)
학력
대학원 (학과명 / 졸업)[3]
종교
불교[4][5]
직업
화가, 작가
소속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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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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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활동
3.1. 작품 활동
3.2. 기타 활동
4. 어록
5. 논란 및 사건사고
5.1. 마티아스 마우어와의 스캔들
6. 문학사적 의의
7. 일화
8. 여담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3. 활동[편집]



3.1. 작품 활동[편집]


제목
년도
연재 잡지
출판사
월간 불교 XX
1978


원예와 XX
1984


잊은 것에 대해 묻지 마시오
1988


심시선이 읽어주는 하와이 신화
1989


이제는 지나온 갈림길
1991


잃은 것과 얻은 것들
1993


나의 말은 그렇게 돌아왔고
1997


나의 사랑, 나의 동료 홍낙환의 3주기를 기리며
1998


사랑은 아무 관련이 없었다
2000


여성 XX
2001


어쩌다 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
2002




3.2. 기타 활동[편집]


강연
  • 한국XXXX부모연합 초청 강연, 1984년[6]
  • XX예술대학 특별 초청 강연, 1996년[7]
  • 여성XX 주최 다과회 강연, 2003년[8]

TV 및 라디오 출연
  •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의 밤> 출연, 1981년[9]
  • TV토론 <21세기를 예상하다> 출연, 1999년[10]
  • 라디오 <작가가 보내온 엽서> 출연, 2004년[11]
  • <명사와 함께하는 저녁> 출연, 2005년[12]

기타
  • <부암동, 문화지식인들의 숨은 이야기> 기념 행사 참가, 2003년, 서울역사박물관[13]
  • <마이 스몰 퍼키 하와이안 티츠> 복원, 2009년[14]


4. 어록[편집]


질문자 문장의 아취가 비슷한 작가 없이 독특하신 것 같아요. 그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심시선 아마도 바닥에 떨어진 그릇처럼 깨져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한국어, 어릴 때 배웠던 일본어, 영어, 독일어가 머릿속에서 다 섞였는데 조화롭게 섞이지 못하고 여기저기 골이 있습니다. 골과 절벽에 제 나름대로 흔들다리 같은 것을 걸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균열에 땜질해서 쓰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독특하게 보일 뿐일 겁니다. 그럴 수 있지요. 사람들은 의외로 흠 없는 것만큼이나 완전히 파괴되었다 다시 이어붙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니까요.

―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의 밤> (1981)[15]


창작의 욕구와 자기 파괴의 욕구가 다른 이름을 가진 하나라는 것이 언제나 나를 슬프게 했습니다. 20세기는 끔찍한 세기였고, 끔찍한 걸 지나치게 많이 목도한 이들은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자살률이 높다지요? 한국 예술가들의 자살률은 아마 그보다 더 높을 겁니다. 언니들, 친구들, 동생들…… 거의 격년으로 한 사람씩을 잃었습니다. 예민해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는 건 압니다. 파들파들한 신경으로만 포착해낼 수 있는 진실들도 있겠지요. 단단하게 존재하는 세상을 향해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행위는 사실 자살을 닮았을 테고요. 그래도 너무 많이 잃었습니다. 다 포기하고 싶은 날들이 내게도 있습니다. 아무것에도 애착을 가질 수 없는 날들이.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내 안의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구부러진 스프링을 어떻게든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 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 XX예술대학 특별 초청 강연 (1996)[16]


심시선 셋째요……? 걔? 걔한테 무슨. 나 죽고 나서 모든 대소사는 큰딸이 알아서 잘할 겁니다.
김행래 몹쓸 언행은 아주 골라서 다 하시는군요.
심시선 선생 생각이랑 내 생각이랑 어느 쪽이 더 오래갈 생각인지는 나중 사람들이 판단하겠지요.

― TV토론 <21세기를 예상하다> (1999)[17]


질문자 그럼 질문을 좀 바꾸겠습니다. 성공적인 결혼의 필수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심시선 폭력성이나 비틀린 구석이 없는 상대와 좋은 섹스.
(좌중 웃음과 웅성거림)
심시선 왜요? 할머니가 섹스라고 말하면 웃긴가?
질문자 선생님도 참, (웃음) 폭력성과 비틀린 구석이 없다는 건 너무 베이직 아닌가요?
심시선 베이직을 갖춘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고 봅니다. 안쪽에 찌그러지고 뾰족한 철사가 있는 사람들, 배우자로든 비즈니스 파트너로든 아무데도 못 갖다 써요. 꼭 누군가를 해치니까.
질문자 그런데 그런 상대를 어렵게 만나…… 섹스를 한다고요? 흥미로운 대화나 서로에 대한 이해 같은 건요?
심시선 아이, 남편들이랑 무슨 대화를 해요? 그네들은 렌즈가 하나 빠졌어. 세상을 우리처럼 못 봐요. 나를 해칠까 불안하지 않은 상대화 하는 안전한 섹스, 점점 좋아지는 섹스 정도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자 렌즈요?
심시선 아무리 똑똑해서 날고 긴다 해도, 다정하고 사려 깊은 성품을 타고났다 해도 우리가 보는 것을 못 봐요. 대화는 친구들이랑 합니다. 이해도 친구들이랑 합니다.
질문자 그렇지만 그건…… 그럼 육체적인 것만이……
심시선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구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간절히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아주 낮지 않을까요? 그리고 규칙적인 근사한 섹스의 가치를 너무 박하게 평가하지 마세요. 스트레스 핸들링에 그만큼 도움되는 것도 잘 없습니다. 제법 괜찮은 섹스는 감은 눈에 존재하지 않는 색깔이 떠오르게 하니, 그림일기를 쓰고 싶어질지 몰라요.
질문자 육체적 관계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은요?
심시선 사흘에 한 번씩 섹스를 하고 싶은 사람들 말고는 결혼을 안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 여성XX 주최 다과회 (2003)[18]



5.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5.1. 마티아스 마우어와의 스캔들[편집]


독일의 화가 마티아스 마우어와의 스캔들로, 흔히 심시선 누드화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마티아스 마우어의 미공개작 여덟 점이 독일 뒤셀도르프 코넬리우스 슈트라세의 한 건물 증축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화가가 미주 여행시에 작업한 걸로 보이는 스케치 작품과 미완성 유화 풍경화들이 다수다. 완성작으로는 뒷면에 제목이 적혀 있던 <마이 스몰 퍼키 하와이안 티츠> 가 있었다. 미주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여정중에 만나 동행하였던 심시선을 그린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 작품들과 함께 복원 과정을 거쳐 K20에 특별 전시될 예정이다. [19]




6. 문학사적 의의[편집]


마티아스 마우어의 제자로도, 한국의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준 인물로도 심시선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심시선은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낸 사람이자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며,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으로 역할하고 있다. [20]


7. 일화[편집]


* 나이를 가리지 않고 동료 예술가들과 고루 교류하며, 어려움에 처한 이들은 적극 지원했다. 부암동 경사 끄트머리의 집에는 심시선의 친구 화가, 조각가, 사진가, 클래식 연주자, 심지어는 판소리 고수까지도 어울려 드나들었다.[21] 전시회 팸플릿이나 도록에 실릴 평을 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작가와 꾸준히 교류하며 성실히 작성해 주었다고 한다. 책 화가 황민하가 기억하는 심시선에서 볼 수 있다.

화가로서 경력이 끊길 뻔하다가 팔 년? 아니, 구 년만에 개인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면 다시 안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심시선 선생에게 팸플릿과 도록에 실릴 평을 부탁했고, 선생은 전시회 전에 몇 번이나 작업 진척을 보러 오셨습니다. 완성되어가는 과정 자체를 보고 싶으셨던 걸까요? 두번째인가 세번째 오셨을 때 망설이더니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아름다워요. 무언가 엎드려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름다워요. 그런데...... 이것과 똑같은 것을 한 네 배 크기로 그려볼 생각은 없어요?"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크기만 키워도 느낌이 또 다를 것 같아서."
그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 제 안쪽의 어딘가를 건드렸습니다.
(중략)
"여자도 남의 눈치 보지 말고 큰 거 해야 해요. 좁으면 남들보고 비키라지. 공간을 크게 크게 쓰고 누가 뭐라든 해결하는 건 남들한테 맡겨버려요. 문제 해결이 직업인 사람들이 따로 있잖습니까? 뻔뻔스럽게, 배려해주지 말고 일을 키우세요. 아주 좋다, 좋아. 좋을 줄 알았어요."
전시회에서 그렇게 흡족해하시던 심시선 선생이 가끔 뵙고 싶습니다.

― 책 그때 나를 구한 한마디, <화가 황민하가 기억하는 심시선>[22]



8. 여담[편집]





[1] 책 시선으로부터 p.26[2] 책 시선으로부터 p.26[3] 책 시선으로부터 p.103[4] 차녀 명은에 따르면, 불교 신자라기보단 오래된 텍스트를 좋아해서 불경을 특히 많이 읽었다고 한다.[5] 책 시선으로부터 p.62[6] 책 시선으로부터 p.188[7] 책 시선으로부터 p.25[8] 책 시선으로부터 p.18[9] 책 시선으로부터 p.143[10] 책 시선으로부터 p.7[11] 책 시선으로부터 p.238[12] 책 시선으로부터 p.278[13] 책 시선으로부터 p.218[14] 책 시선으로부터 p.48[15] 책 시선으로부터 p.143[16] 책 시선으로부터 p.25[17] 책 시선으로부터 p.7[18] 책 시선으로부터 p.16[19] 책 시선으로부터 p.48[20] 책 시선으로부터 p.282[21] 책 시선으로부터 p.52[22] 책 시선으로부터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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