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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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antegna,_Andrea_-_crucifixion_-_Louvre_from_Predella_San_Zeno_Altarpiece_Verona.jpg

The Crucifixion (Andrea Mantegnas, 1457–1459)

여기서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도 십자가에 달아 예수를 가운데로 하여 그 양쪽에 하나씩 세워 놓았다.

요한의 복음서 19장 18절


1. 개요
2. 역사
2.1. 예수의 십자가형
3. 과정
4. 논란
5. 기타
6. 현대의 십자가형
7. 관련 문서
8. 가상 매체에서의 십자가형
8.1. 십자가형을 당한 가상 캐릭터


1. 개요[편집]


십자가형(, crucifixion)은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형벌이다.

다른 이름은 책형(磔刑).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적 이미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로마 제국 시대까지 존재했던 악명 높은 법정 최고형으로, 그 끔찍하다는 거열형이나 팽형, 화형도 고통은 심하겠지만 그나마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따진다면 비교적[1] 금방 고통이 끝나지만 십자가형은 최대한 죽지 않게 인간의 정신적 한계를 체감시키고 숨을 끊는 가장 지독한 형벌.

이 십자가형의 자세한 과정을 소개한 NGC 다큐멘터리의 한 역사학자에 의하면, 십자가에 달린 죄수는 "죽음의 모든 차원" 을 경험한 후에야 죽는다. 사형의 역사를 모조리 뒤져도 이에 비견할 만한 형벌은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온몸을 회를 뜨는 능지형 정도밖에 없다.[2] 십자가형의 이름만 본다면 겨우 십자가에 매달리는 게 대체 왜? 싶겠지만 십자가에 매다는 것은 몇 단계에 거치는 과정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자세한 것은 후술.

2. 역사[편집]


십자가형은 이집트에서 유행한 처형법이었고, 이것이 그리스로마 제국으로 전파된 것이다. 스파르타레오니다스가 사후 크세르크세스에 의해 그 시체가 십자가에 매달렸고, 카르타고에서도 전쟁에서 패배한 총사령관은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티로스(현재 레바논 남서부의 티레)를 공략한 후 2,000명의 티로스 인들을 십자가형에 처하기도 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반항한 노예에서 시작해 국가 전복을 꾀한 반역자 등의 중죄인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형벌이었다. 반항한 노예의 경우 그냥 말 좀 안 들었다거나 도망친 정도가 아니라, 주인을 죽이거나 그에 버금갈 만한 위해를 끼친 경우를 말한다. 표적으로 스파르타쿠스를 따르던 노예들도[3] 십자가형으로 처형당했는데, 아피아 가도를 따라 6천 개의 십자가가 늘어섰다고 한다. 이 경우 로마법에서는 당사자 뿐 아니라 그 집안의 노예 전원을 십자가형에 처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러나 너무 잔혹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고 당시 귀족들의 재산인 노예가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하여 적어도 가담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 노예는 살려주는 식으로 법정이나 원로원 등에서 자비를 베풀기도 했다. 셴케비치의 소설《쿠오 바디스》에 그 유사한 사건이 언급된다.

십자가형에 대해 분위기가 저랬으니, 로마 사회에서 주인이 노예가 큰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제 멋대로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마리우스와 술라의 시대 기간 중 이 문제로 잔인함을 질타받은, 기원전 96년 법무관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사건을 들 수 있다. 폭군 네로의 직계 현조부인 그는 기원전 96년 법무관으로 시칠리아에서 근무할 당시, 자신의 노예가 사냥용 창으로 멧돼지를 죽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노예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다. 그것도 법무관 직권을 남용해 벌인 처벌이었는데, 이 사건이 잔인함을 넘은 사건이 된 이유는 아헤노바르부스가 노예를 죽였다는 점,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법무관 권한을 남용해 십자가에 매달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사건 직후부터 그는 그 잔인함으로 질타를 받았고, 가이우스 마리우스에게 잔인하게 살해될 때도 저주를 받았다고 조롱받았다고 한다.


2.1. 예수의 십자가형[편집]


그들이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을 만나자 그를 붙들어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그리고 골고타 곧 해골산이라는 데에 이르렀을 때에 그들은 예수께 쓸개를 탄 포도주를 마시라고 주었으나 예수께서는 맛만 보시고 마시려 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나서 주사위를 던져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갖고 거기 앉아 예수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의 머리 위에 죄목을 적어 붙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의 왕 예수" 라고 적혀 있었다.

마태오 복음서 27장 32-37절, 공동번역성서

예수의 경우 복음서에서 유대인들에 의해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죽었다고 전해진다. 신성모독 등 종교 관련의 범죄는 유다 지방의 산헤드린 관할인데, 이곳에서는 최악의 범죄자라 해도 사형을 선고할 권한이 없었다.[4] 그러자 사형을 시키기 위해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예수를 정치범으로 몰아, 총독인 본티오 빌라도의 법정으로 보낸 것이다. 하지만 빌라도는 예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예수를 죽이지 않기 위해 온갖 수작을 하였다고 한다. 유월절 전통에 따라[5] 강도(또는 유대 독립운동가) 바라바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재판장에 세웠는데, 민중들이 현실참여적인 바라바를 석방해달라고 요청하여, 그는 석방되고 예수는 회개한 도둑을 포함한 두 명과 같이 십자가형을 당했다고 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 죄목을 알리는 팻말에 라틴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3개 언어로 '나자렛 예수, 유대인의 왕[6]이라 쓰여 있었다고 한다. 덤으로 산헤드린에서는 그 문구를 불편하게 여겨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고쳐달라고 청원했으나 거절당했다.

이후 기독교로마에 공식으로 인정받아 국교가 되었다. 덕분에 예수가 죽은 십자가는 신성한 상징이 되었고, 형벌로서의 십자가형은 유럽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다만 십자가형이 없어진 거지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본보기형 사형은 그대로 존속, 아니 더 잔혹한 방향으로 적용되었다.


3. 과정[편집]


우선 사형수에게 기절할 정도로 모진 채찍질을 가한다. 다만 성경에서는 예수는 이런 채찍질을 당한 묘사가 있으나 다른 죄수들은 이런 묘사가 없다는 점을 들면[7] 일반적으로는 십자가형을 당할 죄수에게 굳이 채찍질을 가하지는 않는 것일수도 있다. 일단 십자가형이 공개처형이란 점을 생각해보면 죄수가 오랫동안 살아있어야 공개처형의 효과가 커지니까 굳이 시작부터 반 죽여놓고 하면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8]

당시 로마 제국에서 쓰던 채찍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노예들에게 작업을 강요하거나 군율을 위반한 병사에게 그 대가를 가르쳐줄 목적으로 때리는 채찍이고, 또 하나는 진짜로 때려죽일 생각으로 때리는 채찍이다. 십자가형에서 사용되는 채찍은 대부분 후자로, 벌이 목적이 아니라 사실상 사형이 목적인 도구였다. 이런 사형 집행용 채찍은 보통 39개의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당 채찍을 휘두르는 병사의 기분에 따라 훨씬 가닥 수가 많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 채찍은 땋은 가죽으로 되어 있었는데, 가죽끈을 꼴 때 곳곳에 쇠 구슬, 날카로운 뼛조각, 쇳조각, 가시[9] 등의 온갖 위협적인 흉기들을 박아 넣었다. 게다가 형을 집행하기 전 채찍을 하루 동안 물에 담궈 불려놓아 무게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때문에 단순히 피멍이 드는 정도는 약과고, 상처난 곳이 벌어지고, 살이 찢겨져 나갔다.

이런 채찍질을 사용해 거의 죽음의 문턱에 도달할 정도로 전신을 무자비하게 난타질한다. 이렇게 얻어터진 사형수의 피부는 모조리 뜯겨져 나오고 그 밑의 골격 근육은 대부분 쓸려져 내리는데, 3세기의 역사가 에우세비우스의 기록을 인용하면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 근골, 그리고 내장의 일부가 노출되었다'고.[10]

가장 유명한 희생자인 예수의 경우,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수준으로 망가져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구역질을 하며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고 한 성경 표현에 비유할 정도이니[11] 일반적인 채찍질과는 차원을 달리함을 짐작할 수 있다. 네로 황제가 폐위된 후 이 채찍형을 당할거란 말을 듣고 자살할 정도로 무서운 형벌이었다.[12]

이렇게 너덜너덜해진 사형수에게 자기가 직접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고 처형장까지 이동시킨다.[13] 십자가 형틀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가볍게 보는 학자들은 18kg에서 무겁게 보는 학자들은 50kg까지 다양하지만, 확실한 건 빈사상태인 사람이 쉽게 지고 이동할 만한 무게는 아니다.[14] 채찍질로 만신창이가 된 몸이 겪는 고통도 엄청난데, 이런 식으로 몸을 혹사당하면 그만큼 빨리 상처의 괴저가 일어나 전신이 불로 달구는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중도 사망하는 죄수도 많았는데, 이 때 사형수의 가족들은 채찍질하는 집행인에게 뇌물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채찍질을 살살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채찍질을 엄청 심하게 해서 가능하면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죽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15]

그렇게 사형수가 십자가를 들고 사형장으로 오면 십자가에 매달 준비를 한다. 우선 사형수의 속옷까지 모두 벗겨 나체로 만든다. 형의 집행에 남녀를 가리는 일은 없었다.[16] 이후 사형수를 십자가에 눕히고 손목과 발뒤꿈치[17]에 7인치에서 5인치 정도에 사람 몸무게를 지탱할 만한 초대형 대못을 박는다. 이 못의 크기 때문에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팔꿈치를 벽에 세게 부딪칠 때 혹은 척골신경[18]을 펜치로 잡고, 비틀어서, 뭉개는 듯한 심한 고통이다.

이걸 보고 몇몇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익히 알려진 손과 발등에 못을 박는 방식이라면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팔을 십자가에 묶는 식으로 그런 형태를 재현한다 해봤자 결국 별 차이는 없다. 일단 팔과 어깨에 가해지는 압박감이야 그대로이고, 손이란 부위 자체가 촉감이 가장 크게 발달한 곳이라 손바닥에 대못을 박으면 역시 상당한 고통이 따르고, 무게로 인해 상처가 점차 찢어져갈 테니 더욱 고통스럽다. 특히 발등의 경우 뼈가 밀집한 곳이라 여기에 대못을 박는 것 자체가 뼈를 상하게 만드는 탓에, 발목에 못을 박는 것에 상응하는 고통이 따르게 된다. 애초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부터가 이 전통적 인식의 십자가형에 기반한 것인데, 순화한 게 그만한 고어도를 선보였으니 말 다한 셈.[19] 위에 재현된 사진은 그나마 발을 올리는 받침대가 평평해서 그렇지 실제는 비스듬하거나 받침대가 없어 버틸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사형수가 박힌 십자가를 세워서 사형수가 죽을 때까지 방치한다. 얼핏 보면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 자체는 별로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지만 최악의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선 못박힌 상처에 몸무게와 같은 힘이 가해져 상술한 고통이 극대화되며, 못에 잔뜩 끼었을 이물질로 인한 감염 때문에 파상풍이 일어난다.[20] 여기에 못 박힌 팔이 몸무게 때문에 팔이 늘어나다 결국 양쪽 어깨가 탈골된다. 이를 시작으로 온 몸의 다른 관절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어그러진다. 거기다 양 팔이 대못에 고정되어 있어 가슴을 압박, 폐와 횡격막을 강제로 숨을 '들이쉬는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때문에 사형수는 생존본능상 몸을 올려서 숨을 내쉬려고 하는데, 몸을 세우려면 못박힌 손목과 발목에 힘을 줘서 몸을 들어올려야 하니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힘을 빼버리면 또 다시 숨을 못 쉬는 상태로 돌아온다. 결국 이 과정을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것이었다.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십자가형의 수형자들은 못박힌 상태에서 대략 1,000번 정도 기절했다가 깨었다를 반복하며, 이 과정은 그야말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상태라고. 그렇게 반복하다가 지치면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호흡 수가 줄어들면서 질식사하거나 혹은 호흡 산독증(酸毒症)[21]에 빠져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게 되면서 심장이 터지거나, 심정지로 사망한다. 후술할 십자가형 마지막에 다리를 부러뜨린 이유도 이제 그만 질식사해서 빨리 죽으라고 부러뜨린 것이다.[22]

이러한 육체적인 고통을 제외하더라도, 십자가형은 당시에 수치와 혐오의 상징과도 같은 형벌이었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백주대낮에 알몸으로 매달려 지나가는 행인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도 당연히 수치스럽지만,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면 더럽고 추한 몰골로 인간성을 잃은 채 죽기 때문이다. 우선 형 집행에 앞서 채찍질을 당한 경우, 난도질 당한 상처들이 세균 감염과 괴저 현상으로 인해 곪아터져 진물과 고름이 흐르고, 부족한 산소와 계속되는 출혈로 인해 상처투성이인 전신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한다. 이 때 풍기는 악취로 인해 주변의 벌레들까지 잔뜩 달라붙게 되니 사실상 매달린 시체나 다름없는 모습이 되어버린다.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지속되는 극악의 고통으로 인해, 몸 안에 있는 모든 체액이 빠져나온다. 단순히 피만 흘리면서 깔끔하게 죽는 게 아니라는 것. 신체에 남아있던 소변, 대변 등의 오물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모조리 빠져 나온다. 한마디로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은 온 몸에서 고름과 진물이 흐르고, 악취와 함께 전신이 산 채로 썩어들어가며, 통제를 잃은 신체에서 분비되는 자신의 배설물에 범벅이 되어 죽는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의 정치인이었던 키케로는 십자가형을 "가장 역겹고 구역질 나는 형벌"이라고 묘사하며 "로마 시민의 시야는 물론 생각에서조차 지워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십자가형이 단순히 고통스럽게 피만 흘리다 죽는 형벌이었다면 이러한 극단적인 평가를 내릴 이유가 없다.

이러한 혐오스러움으로 인해 로마 시민이나 시민권자가 아니라도 자유민으로 인정된 사람. 그리고 해방노예는 십자가형을 적용받지 않도록 규정되어 있었다.[23] 속주민은 적용이 가능했지만 자치가 인정되는 동방에서도 총독이 다른 사형으로 대체할 수 있었고 서방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주로 적용 가능한 사례는 반란을 일으키거나 주인을 살해 혹은 살해하려다가 실패한 노예들이었다. 노예가 아닌 자들은 정말 심각한 중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십자가에 달려 죽는 일이 드물었고, 자치가 어느 정도 인정되던 동방이 아닌, 적어도 로마법이 원칙대로 집행되던 서방 지역에서 노예가 아닌 자는 차라리 맹수의 먹이가 될지언정, 십자가형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24] 따라서 십자가형은 인간 사회의 가장 하찮은 자들 가운데서도 쓰레기들만 모아 처리하는 형벌로 인식되었고, 이 같은 관습은 형벌을 당할 때 수치스러움을 증가시켰는데 십자가에 매달린 시점에서 "나는 죄 지은 노예 아니면 가장 극악무도한 죄를 지은 범죄자입니다" 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외에도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는 이전에 당했던 채찍질과 못박힐 때의 출혈로 저혈량성 쇼크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상태가 되면 심장이 더 이상 피를 퍼올리지 않게 되고, 혈압이 떨어져서 정신이 몽롱해지거나 기절한다. 그리고 신장은 남아 있는 피의 양을 유지하기 위해 소변을 만드는 일을 중단하며, 몸은 흘린 피를 보충하기 위해 액체를 요구하게 되기 때문에 매우 목이 마르게 된다. 성서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도 로마 병사가 해면[25]에 신 포도주를 적셔서 주었다. 번역에 따라서는 그냥 식초라 하기도 하지만, 당시 로마군은 쉬어서 식초나 다름없게 된 포도주를 상한 물에 타 둘 다 마실 수 있게 만든 포스카(Posca)라는 음료를 주로 마셨으므로, 예수의 처지를 동정하여 포스카를 준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병사 이전에도 몰약이나 쓸개즙을 섞은 포도주를 주기도 했는데 이는 십자가에 매달리는 죄인의 고통을 덜기 위한 마취약이었다는 설이 있다. 예수는 이 몰약 섞은 포도주는 거절했지만 해면에 적신 신 포도주는 마셨다.

보통 십자가에 못박히면 하루 안에 사망한다고 하지만, 그 위에 매달린 죄수가 사흘간 생존했다는 기록도 일부 보이며, 사흘을 버티면 '너는 죄값을 다 치렀다'며 살려주었다고 한다.[26] 처형자가 오래 버티면 다리뼈를 부러뜨리기도 하는데, 이 경우 다리가 버티는 힘이 사라지면서 몸이 순간적으로 아래로 쳐져서 가슴을 더 압박한다. 숨을 쉬기 위해서는 발을 세워야 하는데 뼈가 부서졌으므로 몸을 들 수 없어 곧 질식사하게 된다. 어찌 보면 자비를 주는 것이다. 요한 복음서 19장 31절~36절에는 유대인이 안식일을 앞두고 시체를 십자가에 두지 않기 위해 예수와 두 도적을 처리해 달라고 본티오 빌라도에게 요청했고, 로마 병사들이 가서 두 도적은 다리를 꺾어 죽였는데 예수는 이미 죽었으므로 시체를 상하게 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말하자면 마지막 자비.[27] 이에 대해선 성흔 문서의 내용도 참고. 다만 이는 유대에만 국한되었으며, 로마 제국의 다른 지역에선 시체를 계속 매달아 썩게 했으며 장례가 허용되지 않았다. 십자가형의 또 다른 잔인함인데, 십자가에서 내려진 두 강도의 시체도 장례를 치르지 않고 그대로 버려졌다.[28] 장례를 치른 예수가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29]

이렇게 고통스러운 사형이라서 로마도 사형 중에서 능지형과 함께 최악의 사형으로 규정해 두었고,[30] 로마인들은 십자가에 못박힌 고통을 설명할 길이 없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했다. '말 못할 고통, 미칠 듯한 고통' 라는 뜻의 'excruciating'의 어원이 바로 이 십자가(cross)에서 왔으며, 문자적으로 excruciating은 '십자가로부터'라는 뜻이다. 그 외에도 옛 로마의 문인들은 십자가형을 차마 말할 수 없이 잔혹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라틴어 욕 중 "천벌 받아라"는 의미의 "아비 인 말람 끄루쳄/아비 인 말랑 크루켕[31](Abi in malam crucem)!"은 직역하면 "X랄 같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라"이다. 한국어로 의역하자면 "육시럴 놈"과 의미가 일치하는 것이다. 법에서도 로마 시민들은 십자가형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고, 그래서 로마 시민권자였던 바울로는 참수형을 받았지만 베드로는 시민권자가 아니었기에 십자가형을 당했다. 십자가형을 집행하고 죄수가 죽을 때까지 보초를 서는 병사들도 그 잔혹함과 죄수가 겪는 끔찍한 고통에 무심하지는 못했던지, 과다출혈이나 질식으로 죽더라도 고통을 덜 느끼고 죽게 하기 위해 죄수에게 마취제를 투여하기도 했다.


4. 논란[편집]


이 십자가형에 대해서는 그 집행을 두고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못을 박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고 여겨졌다.
  • 못은 안 박고 그냥 묶었으며, 예수유대인들의 요구로 특별히 못을 박았다는 설. 이것은 로마군이 유대 외에서도 못질을 했다는 증거들이 있어서 약간 불확실하다.
  • 위의 절충으로 손에 그냥 못질을 하는 것으로는 인간의 체중을 감당할 수 없으니 손목 쪽을 끈이나 밧줄 같은 걸로 묶어놓고 손에 못질을 했다는 설.
  • 손에 못질을 하는 것으로는 인간의 체중을 감당 못하므로 발에 받침목을 놓았다는 설.
  • 손과 발이 아니라 손목 뼈 사이와 정강이 뼈에 못을 박아 고정시켰다는 설. 고통이라는 목적과 체중 고정에서 최고로 효율적이겠지만, 잘못하면 동맥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에 못을 박기가 좀 힘들 듯.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이 십자가형을 당해 죽은 사람의 무덤을 발굴해 보니 손목 뼈에 못이 박혀 있었다.
  • 그냥 손바닥과 발등에 못을 박았다는 설. 이 경우는 죄인의 체중을 지지할 곳이 빈약하기 때문에 죄인의 체력으로 버텨야 한다. 어찌 보면 이게 제일 끔찍하다. 죄인이 버틸 힘을 잃고 조금이라도 힘을 빼면 손의 살가죽이 뼈를 따라 찢어지면서 십자가에서 떨어질 수 있다. 또한 죄인의 체중이 자신의 흉부와 기도를 압박하므로 질식사할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십자가에서 사흘을 버틴 사람도 있고 하니 신빙성에서 약간 논란이 있는 방법.

하지만 예수 사후 20년 후의 십자가형에 희생당한 사람의 못이 박힌 유골이 발견돼서 거의 종결되었다. 손목 부분은 논란일지 몰라도, 발목 부분은 양 발등을 포개어 하나의 못으로 십자가에 박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발을 자기 방향으로 벌려, 그 발의 발꿈치[32]에 못을 따로 박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못이 박힌 자리는 발꿈치로 혈관은 별로 없으나, 신경 섬유가 많은 부분으로 굉장한 고통을 주기 위한 의도였다는 것도 밝혀졌다. 즉, 피도 별로 나지 않으면서, 굉장한 고통을 줄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성흔의 이미지인 손발에 난 못자국은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알고 있는 예술작품 속 묘사된 이미지의 십자가형과도 상당히 다르다.

다만 이런 견해 차이들 때문에 특히 죄수들의 십자가형을 당하는 모습들이 다르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는 두 죄수는 두 손에만 못을 박히고, 다리는 밧줄로 묶어 고정시키는 정도였으나, 예수는 발에 버팀목을 대고 발까지도 못이 박혔다. 선 오브 갓에서는 죄수들도 예수와 똑같이 똑같이 발에도 못이 박혔다. 그렇지만 대개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예수는 무조건 손발 모두 못 박히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사도 토마스 앞에 나타난 예수가 손목을 내밀며 손과 발과 옆구리의 상처를 만져 보라고 했다는 성서의 기록[33]이 있는데, 고대 히브리어헬라어에서는 손목과 손을 딱히 따로 분류하지 않았으므로[34] 종교미술 등에서는 손바닥에 난 상처로 그리는 재현 오류가 나타났고, 이게 현대 가톨릭정교회 등 성상을 사용하는 기독교 교파들에서 그대로 내려져 온 것이다.[35]

또한 죄인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 십자가 전체를 그대로 지고 가게 했다. 그리고 집행장에 도착하면 거기서 십자가를 땅에 내려놓고 그 위에 죄인을 눕혀 손발에 못을 박은 뒤 십자가를 세웠다.
  • 십자가 중 횡에 해당하는 부분만 지고 가게 했고, 종에 해당하는 부분은 집행장에 미리 세워놨다. 그리고 횡목에 죄인의 양손을 못박아 종목에 올려 고정시킨 뒤 발에 못박았다.
그러나 위의 사례에서 못 끝이 굽어진 것을 보고, 사람을 십자가와 함께 바닥에 눕혀놓은 채로 못을 박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36]

십자가형과 관련해 당연하면서도 은근히 묻혀있는 사실이 있는데, 그건 바로 죄수를 십자가에 매달기 전 그가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긴다는 것이다. 즉 전라.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진 이미지를 보면 흔히 속옷 비슷한 건 입고 있는 걸로 정형화되어 있지만, 이것은 어느 정도의 검열을 위해 재현을 포기한 것이다. 실제 성경에서도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한 병사들이 그의 벗겨진 옷을 나눠 갖는데, 속옷은 통옷이라 제비뽑기로 누가 갖느냐를 정했다는 구절이 있다.[37]

또한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은데, 흔히 생각하는 형태(가운데가 위로 튀어니온 '+' 형태)가 아니고 단순한 T자(타우 십자가)였을 것이란 주장이 많다.


5. 기타[편집]


교수형을 당한 시체는 신경의 작용으로, 남자일 경우 잠시 발기하는 수가 있다. 중세 유럽인들은 교수형의 이미지를 십자가형에 투영하여, 십자가에서 예수가 정액을 흘려 약초가 되었다는 전설이 떠돌기도 하였다.

피를 흘리는 방식의 사형법을 불길하게 여겼던 고대 아테네에는 피를 흘리지 않는 십자가형이라는 바리에이션이 존재했다. 사형수의 손발을 십자가에 그냥 묶은 다음, 방치해두는 게 아니라 바로 쇠사슬 올가미를 목에 걸고 조여 죽이는 일종의 교수형이었는데, 로마식 십자가형보다는 훨씬 낫지만 이쪽이라고 편한 죽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테네식 십자가형도 노예나 흉악범에게 선고되는 극형이었기 때문에, 다행히(?) 소크라테스는 십자가형 대신 독배를 마시고 죽을 수 있었다. 독당근을 주로 넣었다고.

일본에서도 책형이라고 해서 비슷한 형벌이 있었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소설)> 등에서도 볼모로 잡힌 부녀자들을 이런 식으로 처형하는데, 요코야마 미츠테루만화판에서 의외로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즉 못을 박지 않고 묶은 다음 창에 찔러 죽이는 경우[38]가 대부분이다. 천주교 박해 때도 이용되었다. 남녀 불문하고 묶어버렸기 때문에 강간당하고 죽은 여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후에 가톨릭 신자들이 "아니! 내가 감히 주님과 똑같이 십자가 위에서 죽게 되다니 이 무슨 영광스런 일이냐? 이제 나는 순교자로 명예롭게 죽을 수 있고 하느님 나라로 갈 수 있어!" 라면서 역으로 십자가형을 선호[39]하게 되자, 이를 알게 된 막부는 십자가형보다 참수나 스페인식 목마타기[40]나 화형[41]을 주로 하게 되었다. 책형은 메이지 유신 때까지 존재해서 에도 막부 말년에 서양 선교사나 상인들의 기록 및 사진으로 남아 있기도 한다. 도둑들을 잡아서 책형에 처해서 거꾸로 달아져 있는 사진이 일본 형벌 고문사라는 책에 그대로 실려있다.

여담으로, 일본의 책형에서는 두 종류의 형틀을 사용했다. 남성은 가타가나의 'キ'자[42] 형태로 된 형틀에 묶었고, 흔히 알려진 열십자 모양의 십자가형 형틀은 여성들에게 사용되었다. 소설 군함도에서 이것이 잘 묘사되는데, 다만 여기서는 여자임에도 조선인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キ자 형틀에 묶였다.

십자가형이 본래는 매우 잔인한 형벌임에도 이후 십자가가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것에 대해, 코미디언이자 사회 비평가이었던 레니 브루스(Lenny Bruce)는 "예수가 20년 전에 죽었다면, 아마 신자들은 목에 자그마한 전기의자를 달고 다녔을 것이다"며 풍자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도 순교한 성인들을 나타낼 때 순교 당시의 도구들을 상징으로 쓰는 경우가 간혹 있다. 예를 들면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성녀의 상징으로는 항상 칼날이 박힌 수레바퀴가 그려진다. 그뿐만 아니라 사도들도 종종 자신들의 처형 방법이었던 역십자가(베드로), 칼(바울로, 대 야고보, 소 야고보), X자 십자가(안드레아), 톱(시몬), 몽둥이(마태오), 벗겨진 살가죽(바르톨로메오) 등을 들고 그려지는 경우가 있다.

예수의 으뜸가는 첫 번째 제자 사도 베드로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순교하였다는 전승이 전해진다. 그리고 사도 안드레아는 X자형 십자가에 매달렸다고 전해진다.

플라스틱 술통을 이어붙여 십자가를 만든 사례가 있다. 예수 역할을 맡은 남자가 이 십자가를 진 채 캔맥주를 마셨다. 한국 커뮤니티의 네티즌들은 이 상황을 보고 재미있는 댓글을 달았다. 이를테면 예수는 인간의 죄를 짊어졌는데, 이 죄가 술(酒)이었다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에 따라, 주(酒)님은 와인 디스펜서가 되어 물을 술로 바꾸고 안주를 복사할 수 있는 것 같다. 이어 롱기누스라는 이름의 병사가 창을 들어 예수를 찔러봤는데, 피 대신 맥주가 흘러 상황이 이상함을 느꼈다고 한다. 최후에 숙취로 3일간 고생하다 부활했다.


6. 현대의 십자가형[편집]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는 의미에서 십자가형을 재현하는 의식이 세계 여기저기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으나 진짜 처형은 아니다. 의식적 차원에서의 이미지 차원으로 존재하는 것. 그러나 실제로 손에 못을 박기도 하는 등 분명히 고통을 주기도 한다. 가끔씩 종교적 성향이 들어간 범죄 현장에서 진짜 의미로 재현되기도 한다.

법적인 차원의 집행은 고대 로마에만 있던 일인 줄 알았으나, 2014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에서 마이너 버전으로 당당히 실행되고 있는 중이다. 채찍질이나 못박는 거 없이 그냥 십자가에 묶는 식이다. 여기서는 어린이들을 상대로까지 십자가형을 거형한다.

파일:십자가형 재현2.jpg
파일:십자가형 재현3.jpg


문서 최상단 사진과 위 사진은 가톨릭 신자가 많은 필리핀에서 예수를 기념하는 성금요일 행사에서 십자가형을 재현한 것이다. 물론 실제로 사형 수준은 아니지만 손바닥에 못은 진짜로 박는다. # 실제로 못을 박는 것은 필리핀의 부활절 문화에서 이해해야 하는데, 필리핀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성금요일부터 부활 주일까지의 3일이 예수가 인류와 함께 하지 않는 공백의 3일이라 해서 외출을 삼가기도 하고, 진짜로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며 고난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십자가에 못박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원한 것. 종교적 의미에서 하기보다는 일년 정도의 생활비를 지급받는다고 한다. 실제로 이마저도 자리가 부족할 지경.[43] 다만 십자가에 못박히는 사람의 건강을 생각해서 뼈를 피해서 박고 있다. 골절상은 치료기간도 일반 부상을 훨씬 뛰어넘어 년도 단위가 되며 치료 비용도 최소 백만원 단위 이상이기 때문이다. 고통을 감내하는 사랑의 희생은 적절한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해야지, 이처럼 억지로 유별난 행동을 하는 것이 과연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을지 의문이다.

7. 관련 문서[편집]




8. 가상 매체에서의 십자가형[편집]


일반적으로는 기독교에서 알려진 형태의 손발에 못을 박는 이미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다루는 매채에서는 거의 반드시 등장하며, 일반적 이미지의 십자가형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보다 리얼한 형태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리얼하다고 해도 채찍질의 재현도 상승 및 못박히는 부위가 손에서 손목으로 옮겨가는 정도이고, 양 발을 포갠 뒤 발등에 못을 박는 방식은 거의 동일하다.

널리 알려진 이미지 때문에 가상 매체에서도 여러 캐릭터들을 괴롭히곤 한다. 다만 십자가에 끈으로 팔다리를 묶는 형태가 많으며, 진짜로 못을 박는 십자가형에 처해진 캐릭터는 비교적 적은 편.


8.1. 십자가형을 당한 가상 캐릭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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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루루가 만든 바이러스로 고생한 히나타 나츠미에게 함께 십자가형을 당한다.
예수 패러디로 못을 박고 가시관을 씌운 다음, 십자가에 로켓을 달고 그대로 우주로 날려 보낸다(...).
정확히는 변태 고문관에게 처음 고문받을 때 양 손바닥이 갈고리로 꿰뚫려 그대로 천장에 매달린 것이다. 시작부터 꽤나 하드한 전개. 결국 1년 뒤엔...
이쪽은 손에만 못이 박힌 케이스.
레이그란츠 본 하인베르그는 마리아의 손에 못을 박아 벽에 십자 형태로 매달아놓은 채 엘류어드를 배반하면 살려주겠다고 협박했다. 다행히 적시에 엘류어드 본 하인베르그 일행이 나타나 구해줘서 죽지는 않았다.
  • 얼음과 불의 노래 - 노예상의 만에서 반항하는 노예들을 처형하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미린에서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을 도발하기 위해 163명의 노예 자식들을 미린으로 가는 길에 진열에 놓았는데, 이에 빡친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은 미린을 정복한 뒤 163명의 귀족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처형한다.
  • 여전사 지나 - 제나, 가브리엘
  • 에빌리오스 시리즈 - 라이오우 즈베즈다
  • 엘든 링 - 림그레이브 서쪽 지역에서 접목의 고드릭에 의해 십자가에 매달린 이들이 즐비한다. 물론 그 중에 몇은 살아있으며 주인공이 지날 때마다 절규한다.
  • 울트라맨 에이스 - 에이스를 제외한 에이스의 형들[45]
이차원초인 야플의 가짜 울트라 사인으로 마이너스 우주의 고르고다 성에 집합해서 냉기 공격을 받게 되는데, 에이스는 지구에서 날뛰는 암살자초수 바라바와 싸우기 위해 형들로부터 에너지를 받고 지구로 돌아가서, 에이스의 형들이 십자가형을 받게 된다.
당연히 공식적으로 십자가형을 당한 건 아니고, 그냥 짓궂은 플레이어들이 저지르는 코로그 괴롭히기 장난의 일환이다. 왕눈에는 오브젝트를 조합하는 울트라핸드 기능과 특정 장소에 있는 친구에게 데려가 달라는 유형의 코로그가 추가되었는데, 이 코로그를 울트라핸드로 만든 십자가 형태의 구조물에 붙여서 끌고 다니는 고문 방식(?)이 가장 유명하다. 관련 페이지
십자가에 묶인 채 창에 찔려 죽었다. 이쪽은 일본식 책형에 가까운 형태.
게임이 시작되면, 사막에서 십자가에 달린 주인공을 코난이 구출하는 이벤트가 벌어진다. 당연히 주인공은 나체 상태로 플레이를 시작하게 된다.
버려진 랏소 베어가 마음에 든 쓰레기차 운전자가 집어서 트럭 범퍼에 대(大)자로 묶어놓았다. 거기에는 랏소 베어보다 먼저 묶여있던 넝마가 되어버린 장난감들이 있다.
우주 마왕의 부하들과 처음 만나는 에피소드. 여기서 프란치가 죽는다.
  • 페르소나 3 - 아라가키 신지로를 제외한 특별과외활동부 전체. 다만 못은 안 박혔고 아이기스에 의해 바로 풀렸다.
  • 프리스트 - 이반 아이작
  • 폴아웃: 뉴 베가스 - 카이사르의 군단에게 잡힌자들 대부분[46], 베니[47]
  • 환상수호전 - 천폭성 바르카스와 천곡성 시드니아는 제국군에 붙잡혀 십자가에 묶이지만, 해방군에 몸담은 주인공 일행에 구출된다.
  • X - 모노우 코토리
꿈 속에서 매달린 채로 여러 조각으로 절단. 이후 후마에게 죽을 때도 십자가에 걸려 칼에 찔린 후 와이어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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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디까지나 십자가형에 비해 비교적 죽음에 이르는 시간이 적을 뿐이지, 확실한 건 거열형이나 팽형, 화형 역시 심각한 고통을 동반하는 사형법들이다.[2] 사실 능지형도 FM대로 집행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 보통 죽이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고(이 경우는 육시다.), 아니라 해도 죄수한테 마취 목적으로 아편이라도 먹인다. 단, 이는 인도적인 이유라기보단 쇼크로 너무 일찍 죽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능지형은 시신의 훼손 정도는 십자가형보다 강해도 실제로 가해지는 고통은 FM대로 집행하든 AM대로 하든 십자가형보단 못하였다.[3] 스파르타쿠스는 전투 중에 전사했다.[4] 다른 건 몰라도 사형 선고만큼은 반드시 로마 행정관의 허가가 필요했다. 뒤집어 말하자면 사형 이외의 형벌은 로마인 행정관의 허가조차 필요 없었다는 뜻이 된다.[5] 유월절에는 죄수 한 명을 석방시켜 주는 것. 다만 해당 전통이 복음서외에서 발견된 적은 없기에, 현대 사학자들은 이 전통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본다.[6] IESVS NAZARENVS REX IVDAIORVM. 예수스 나자레누스 렉스 유다이오룸. 십자고상을 보면 명패에 INRI라는 약자로 적혀있다.[7] 특히 성경 관련 영화나 매체에서는 예수는 일단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서 못 박히는데 비해 다른 두 죄수들은 멀쩡한 상태에서 못 박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8] 성경에서도 누가복음 23장과 요한복음 18장~19장을 통해 보면 빌라도가 군중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예수에게 채찍질만 가한 후 풀어줄 생각이었으나, 그 후에도 백성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하자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9] 성경에서 보면 양 뼈 조각, 철조각 등 온갖 날카로운 것들은 다 갖다 붙여놨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10] 멜 깁슨 감독의 기독교 계에서 유명한 영화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이 장면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 본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채찍질의 상식을 뛰어넘는다.[11] 이사야서 52장 14절: "무리가 그를 보고 기막혀 했었지. 그의 몰골은 망가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인간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사람 비슷한 모습도 지니고 있지 않아서 보는 사람마다 질겁하며 고개를 돌렸다."[12] 참고로 이 채찍질은 십자가형만의 전매특허가 아니었으며, 로마 시민과 해방 노예를 대상으로 한 참수형에도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당시 기록에도 남아있다. 특히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10분의 1형에선 아예 죽을 때까지 후려쳤다고 한다.[13] 실제로 예수의 경우 골고타 언덕까지 십자가를 직접 짊어지고 올라갔다고 기록되어 있다.[14] 다만 예수는 빈사 상태에서 이동했고 대부분 죄수들은 채찍질을 맞지 않은 상태에서 지고 이동했다. 그렇다고 건강한 상태에서도 저 무게가 쉬운 무게는 절대 아니다.[15] 비슷한 사례로, 전근대 한국에서도 죄인의 가족 등이 참수형을 집행할 망나니에게 고통 없이 한 번에 편하게 보내 달라고 뇌물을 쥐어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정작 죄질이 극악할수록 오히려 채찍질을 안하고 집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집행인에게 채찍질을 심하게 당하면 얼마 가지 않아 숨을 거두기 때문에 그나마 고통이 덜해지지만, 채찍질을 당하지 않고 집행하면 오히려 고통이 며칠이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십자가를 지기 전 따로 채찍질을 당한 예수는 6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으나, 그렇지 않은 두 강도는 그 때까지도 살아 있었기 때문에 다리를 부러뜨려야 했다. 또한 크라수스가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봉기를 진압한 뒤 생포된 노예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할 때도 일부러 채찍질을 하지 않았는데, 반역자가 고통스럽게 죽는 광경을 다른 사람들이 며칠에 걸쳐 아피아 가도를 지나면서 봐야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만 두 강도는 채찍질을 당했다는 묘사가 거의 없다시피하고 예수만 채찍질을 모지게 당했다는 묘사가 있는데 십자가형에 처하는 이유가 오랫동안 죽음의 고통을 맛보게 하기 위함이라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채찍질을 안 해야 오래 살기 때문에 그렇다. 본티오 빌라도는 성서에 나오는 묘사로는 그저 예수를 채찍질만 하고 풀어주려는 생각이었으나 십자가형을 요구하는 군중들의 요구에 못 이겨 십자가형까지 선고해버려서 예수의 십자가형이 특히 잔혹해졌다는 평가다. 결국 예수는 두 강도보다 일찍 사망했고 두 강도는 십자가형이 끝나갈 때까지 죽지 않아서 병사들이 직접 다리를 부러뜨려 죽였다.[16] 다만, 여자의 십자가형이 미술에 묘사되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다 나오긴 하지만, 그것들도 거의 최근에 와서 예술로 그려진 것들이며, 보통 십자가하면 예수를 생각하기 마련이므로.[17] 성화상에는 예수의 손바닥에 못이 박혀 있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이다. 당시의 언어가 손바닥과 손목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고대 헬라어에서는 손목이 손바닥에 속했다)이다. 손목의 뼈 사이에 못을 박아야 몸이 단단하게 고정이 되며, 손바닥에 못이 박히면 몸무게 때문에 손바닥이 찢겨져 나가서 십자가에서 떨어져 버린다. 물론 팔을 밧줄로 묶어서 고정했다면 손바닥에 박는 게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18] 팔굽에 있고 때리면 짜릿하고 고통스러운 느낌이 나는 부분의 신경. 무릎을 벽에 세게 부딪혔을 때 느끼는 고통이나 정강이를 쪼인트까는 고통 정도.[19] 사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채찍질과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에서나 그나마 현실에 근접하는 고어도를 보인 정도이고, 막상 십자가가 세워진 다음 희생자가 겪는 끔찍한 고통에 대해선 그냥 대강 넘어갔다. 즉 현실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하면 절대 그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20]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도 묘사되지 않은 증상이지만,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못박힌 손목과 발목 모두 시간이 흐르면서 끔찍스럽게 부어올랐을 것이다.[21] 혈액 속 이산화 탄소탄산으로 분해되면서 혈액의 산성이 증가하는 것.[22] 사실 이 당시엔 최대한의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게 하는 사형방식이 유행이었는데, 앞서 설명한 방식대로 죄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둔 후 손발의 통증과 서서히 조여오는 숨통으로 인해 고통스러웠을 것이며 최대 3일까지 생존한 죄수도 있다고 한다. 성서에서 예수의 양옆에 못박힌 죄수들을 빨리 죽으라며 다리를 꺾었는데 이는 예수의 처형 다음날이 유대교의 명절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였다.[23] 이들에 대한 법정 최고형은 참수형이었다. 사도 바울로가 참수형으로 순교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24] 물론 네로처럼 대중에게 보여줄 겸 방화죄 씌울 겸 당시 로마에 살던 속주민 출신 기독교인들을 십자가형에 처한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네로 자체가 로마 역사상 극히 드문, 비정상적인 성향의 소유자였다는 걸 생각한다면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었다.[25] 고대 로마 시대에 해면의 용도는 휴지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를 두고 로마 병사의 행위는 모욕을 위한 것이었다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현대의 휴지가 화장실에서만 쓰이지는 않듯이, 이 당시의 해면도 볼일을 본 뒤 닦는 용도뿐만은 아니었다. 로마 군인들도 해면을 두 개 소지하고서는 작전 등으로 인해 주둔지 밖으로 나갈 경우 깨끗한 해면을 이용해 물을 마셨는데, 이는 해면은 압축해서 들고 다닐 수도 있기에 공간 차지가 적고, 컵과는 달리 깨질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26] 허나 살아났다 한들 채찍질 과정에서 등의 피부와 근육이 박살이 나고 십자가에 박히는 과정에서 손발목의 뼈와 힘줄에도 심한 타격이 갔을 것이고, 지저분한 못으로 인해 파상풍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또한 위생과 거리가 먼 시대고 십자가형을 당하는 사람이 재산이나 빽이 넉넉하지도 않을 테니 풀어줘도 세균 감염으로 얼마 못 가 죽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예가 있는데, 유대 전쟁 당시 요세푸스가 십자가에 처형된 유대 반란자들 중에서 지인 셋을 발견하고 티투스에게 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래서 티투스가 십자가에서 내려주었으나 그 중 한 사람만 살고, 나머지는 전부 사망했다.[27] 요한 복음서에서는 창으로 찔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유명한 롱기누스의 성창이 이때 쓰인 창이다.[28] 부활 영화에서 십자가에 매달아 놓은 시체들을 처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거의 버리다시피 하는데 시체를 처리하는 병사들이 시체의 썩는 냄새 때문인지 구역질을 해댄다.[29]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요구했을 때 빌라도가 흔쾌히 시체를 내어주었는데 본래 십자가형을 받는 사형수는 장례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빌라도는 죽이는 걸 반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있다. 그래서 빌라도는 어쩔 수 없이 죽인 예수의 시체를 도의적인 차원에서 예외로 장례를 허용해준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30] 로마 군법에는 더 상위의 처형이 하나 더 있었는데, 군단의 10% 인원을 무작위로 뽑으면 남은 동료들이 직접 때려죽이게 해서 집단 처형하는 1/10형(decimatio)이 그것이다. 워낙 악명높았기 때문에 학살을 의미하는 단어 'Decimate'의 유래가 됐다. 제노사이드보다 조금 더 광범위한 의미로 쓰인다.[31] 전자가 교회 라틴어, 후자는 로마 제국 당시 라틴어(즉 고전 라틴어) 발음.[32] 아킬레스건에 가까운 방향.[33] 요한 복음서 20장 27절.[34] 해당 언어들에서 손이라는 단어는 팔 전체를 가리키고, 발은 다리를 넘어 사타구니까지 포함한다.[35] 애시당초 개혁주의 개신교에서 성상을 꺼리는 이유에는 단순히 '비성경적이다', '우상숭배다' 외에 묘사된 성상들이 하나같이 재현 오류 투성이라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보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36] NGC 예수 이전 메시아의 부활.[37] 대부분 속옷 비슷한 걸 입힌 십자가상이나 그림이 많지만 반대로 현실대로 다 벗겨놓은 그림이나 십자가상도 있는 편이다. 구글에 검색하면 나온다. 물론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정말 그대로 다 벗겨서 처형하는 장면이 나오는 건 몬트리올 예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정도. 대부분 영화에서는 속옷 비슷한 걸 입고 있다. 이유는 알몸 표현이 예나 지금이나 많이 터부시되고 그림은 몰라도 영화 제작에서 이렇게 알몸 표현을 해야한다면 여러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기도 해서 편의상 입힌다고 보면 된다.[38] 정확히는 좌우 옆구리에서 창을 찔러넣어 어깨로 관통하게 찔렀다. 이 때문에 일본 책형의 경우 애초에 죄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이나 방식이 십자가형과는 전혀 다르므로 완전히 동일시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사실상 창을 이용한 자살(刺殺)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할 듯 하다.[39] 그 영향으로 오늘날 일본의 가톨릭 성당에 있는 십자고상 중에는 예수가 아니라 십자가형(책형)에 처해진 전근대 일본 가톨릭 신자의 모습을 한 게 많다. 그리고, 바울로는 십자가형이 아닌 참수형을 받게 되자 십자가형을 받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고 사도 베드로는 십자가형을 받는 것도 송구스러워하면서 역십자형으로 순교했다고 전승된다.[40] 여자의 하의를 벗긴 후에 등을 묶어 매달아서 삼각목마형 고문도구에 태우는 것이다. 문제는 목마의 안장이 그야말로 칼날 그 자체라는 것. 그걸로도 부족하면 발목에 무거운 추를 매단다. 스페인 마녀재판에 주로 사용되었고, 역시 에도 시대 천주교 박해 때도 이용되었다.[41] 잔 다르크가 당한 것 같은 방식과는 달랐다. 당시 일본의 화형은 여성과 남성을 불문하고 전라로 만들어 기름을 붓고 기름에 절은 도롱이까지 입혀서 광장에서 불을 붙이는 방식이었다.[42] 슬로바키아자유 프랑스 국기에 그려져 있는 로렌 십자와 비슷한 것.[43] 실제로 이 문화는 문경 십자가 시신 사건 발생되기 훨씬 이전에 한국에서 방영된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바가 있었다. 이에 해당 사건의 당사자가 이 방송을 보고 그대로 따라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필리핀 현지인들도 어떻게 혼자서 할 수 있냐는 등의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라고 한다.[44] 심지어 테마곡 또한 '산제물의 역책형'.[45] 조피, 울트라맨, 울트라 세븐, 울트라맨 잭.[46] 애초 로마가 모티브인 집단이다, 다만 존중받을 가치가 있을 만큼 강한 이들은 참수형으로 고통 없이 끝내준다.[47] 플레이어 선택에 따라 다르다.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