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 파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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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 파샤(Arabi Pasha, 1841년 4월 1일 ~ 1911년 9월 21일)는 이집트의 독립 운동가다.

자가지그 지역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오스만 투르크의 봉신국인 메흐메드 알리 왕조의 군인이 되었다. 1879년, 그는 '이집트인을 위한 이집트'라는 구호를 내걸고 오스만 투르크와 알바니아계 메흐메드 알리 왕조는 물론 수에즈 운하에 대한 권리를 바탕으로 이집트에 간섭하던 영국프랑스를 포함하는 모든 외세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반란인 아라비혁명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이 반란을 진압할 힘이 없던 메흐메드 알리 왕조의 헤디브(군주) 테우피크 파샤는 1882년 아라비 파샤를 군사 대신으로 임명하는 것으로 반란군과 타협했다. 군사 대신이 된 아라비 파샤는 영국의 군사 개입을 반대하는 데 앞장섰는데, 이 때 몇몇의 급진파가 알렉산드리아의 외국인에게 해를 끼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은 이 사건을 빌미로 파병하여 아라비 파샤를 체포하고 그 일파들을 진압했으며, 이후 이집트에 영국군을 주둔시킨 후 영국의 보호령으로 삼아버렸다. (영국 치하 이집트)

1882년 영국인들에게 사형 선고를 받고 영국령 실론(오늘날 스리랑카)로 유배당했으나 1901년 죄가 풀려 이집트로 돌아왔으며, 1911년 이집트에서 사망했다.

사후 '이집트 독립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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