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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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경제 정보[1]
인구
46,404,703명
2022년 추정, 세계 31위
경제 규모(명목 GDP)
6411억 달러
2023년,세계 23위
경제 규모(PPP)
1조 2740억 달러
2023년, 세계 30위
1인당 명목 GDP
1만 3709달러
2023년, 세계 65위
1인당 PPP
2만 7261달러
2023년, 세계 66위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빚)
89.4%
2019년[2]
무디스 국가 신용등급
Ca
2020년, 20등급[3]

1. 개요
2. 산업 구조
3. 쇠퇴 원인
3.1. 독재 정권이 망친 경제
3.2. 잘못된 경제 정책과 통화가치의 하락
3.3. 통계 조작
4. 그 외




1. 개요[편집]


There are four kinds of countries in the world: developed countries, undeveloped countries, Japan and Argentina.

세계에는 네 가지 종류의 국가들이 있다. 선진국, 후진국, 일본, 그리고 아르헨티나다.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z), 197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4]


If a guy has been hit by 700,000 bullets, it's hard to work out which one of them killed him.

만약 어떤 사람이 총알 70만 발을 맞고 맞고 죽었다면, 그것들 중 어떤 것이 그를 죽였는지 알기 힘들다.[5]

라파엘 디 텔라(Rafael di Tella), 하버드 경영대학 교수, 아르헨티나 출신 경제학자.


The World Cup is won, but the economy is out of the running.

월드컵은 우승했지만 경제는 예선탈락이다.

원래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시절에 우승한 스페인에게 쓰던 말이지만, 아르헨티나에게 훨씬 잘 어울리는 말이 됐다.[6]

[7]


아르헨티나는 과거엔 선진국이었지만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지속적으로 경제가 쇠퇴했다. 오늘날에는 여러모로 경제가 불안한 나라로 분류된다. 1900년대 무렵에는 미국보다 1인당 GDP가 높은 세계 5대 경제 부국이었고 유럽에서 선진부국 아르헨티나로 대거 이민 갔을 정도였다.[8] 특히 농업대국으로 엄청난 양의 쇠고기와 밀 등을 수출했다. 1차, 2차 세계대전기에도 중립을 지키며 안정적인 번영을 구가하며 교육이나 복지수준도 높은 선진부유국이었다. 하지만 목축업 등 농업에 치중하다보니 1960년대 이후 점차 선진공업국의 발전을 따라갈 수 없게 되었고[9] 정치적 혼란들이 몰락을 거들어 결국 오늘날의 중진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물론 아르헨티나가 주변 남아메리카 국가들 중에선 삶의 질이 높은 편이긴 하나 실제로는 내부 사정이 좋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요소들이 많다. 1970년대 이후 경제위기 조짐이 보일 때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개입을 했는데, IMF가 손을 대면 댈 때마다 오히려 경제가 망하거나, 단기적으로 괜찮아지더라도 시간이 조금이 지나면 더 크게 폭망해버렸다.[10] 지난 40년간 8차례 이상 국가부도를 경험했고, 2020년 들어서 9번째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흔히 한국 언론에서는 베네수엘라와 함께 복지 포퓰리즘으로 망해버린 나라로 인용되어 퍼주기식 복지의 폐해라는 식의 보도가 남발된다. 하지만 이것은 전후맥락과 복잡한 내부사정을 일체 고려하지 않은 원색적인 왜곡으로, 아르헤티나 경제위기의 가장 크고 근본적인 요인은 1차 산업 위주인 산업/수출구조와 20세기 중반의 정치혼란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2016년에도 가장 큰 수출 품목이 대두 부산물(16.75%)과 옥수수(7.11%), 콩기름(7.07%), 대두(5.73%) 순으로 농산물에 편중되었다. # 특히 20세기 중후반 정치혼란의 몫이 크다. 아르헨티나는 그나마 빈민율은 낮았으나, 아르헨티나 대통령 호르헤 비델라(1976-81 재임)가 경제정책을 막장으로 운영한 탓에 빈민율까지 치솟아 진짜로 깡통을 차는 지경까지 갔었다. 비델라는 1978년 월드컵을 유치하고 운영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탕진했다. 심판에게 용돈을 마구 쥐어주며 자국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유리하게 경기를 유도하여 꺼림칙한 우승을 거머쥐었다. 일각에서는 비델라가 월드컵 우승과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맞교환했다고 평한다. 설상가상으로 후임자 레오폴도 갈티에리(1981-82 재임)는 되도 않는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켜 막대한 비용손실과 더불어 패전하는 바람에 전쟁 배상금을 물어줘야 했다. 이렇게 두 독재자가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아주 철저하게 말아먹었다.

2000년대 중후반 경제회복 과정에서 쌓아올린 게 꽤 되기 때문에 2012년부터 경기침체가 장길 이어졌음에도 실질임금 수준은 남미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든다. 최저임금뿐만 아니라 실질임금도 남미에서 높은 축이라 임금수준이 낮은 볼리비아파라과이, 페루 등지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일하러 온다. 남미 경제 모범국이라고 칭송받는 칠레나[11] 남미에서 정치적으로 부정부패가 덜하고 가장 깨끗하기로 명성이 높은 우루과이 등 다른 남미의 주변국들보다도 최저임금이 높으며 OECD에 가입한 멕시코보다 최저임금이 약 5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빈부격차가 매우 크고 부패문제도 심각하며 인플레이션율이 상당하다. 게다가 2015년 정권교체 이후로 심각한 재정 적자를 해결하겠다고[12] 공공요금이 폭등하자 재정을 무리하게 확장함으로써 겨우 유지하다시피 한 구매력이 급속히 위축되는 상황에 처했다. 그 대신 달러화가 싸지기는 싸져서 외국으로 물건을 사려고 많이들 오간다. 아닌 게 아니라 칠레와 파라과이, 브라질에서 물건을 사면 훨씬 싸기에 쇼핑하러 많이 다닌다. 더군다나 정권 교체 이후로 각종 공공요금과 보험료, 약값 등이 엄청나게 폭증한 탓에 아르헨티나 물가는 선진국 수준으로 비싸졌다는 말이 나오는 판이다.[13]

2018년 6월 들어서 IMF 구제금융을 다시 신청하였다. 상술하였듯 2015년 정권교체 이후로 경기침체를 극복하겠다고 외국자본에 우호적인 정책을 많이 내놓았다. 그런데 주로 금융업에 집중투자되고 제조업이나 IT분야로는 별로 흘러들어오지 않아서 중소기업들은 울상이 되었다. 경상수지 적자폭이 대폭 확대되고 국가는 외채를 남발하는데 내수시장은 별로 살아나지 않아서 불안불안하다는 평이 안 그래도 많았다. 결국 미국이 금리인상을 단행하자 외국자본들이 대탈출하였고, 아르헨티나 당국은 버틸 수 없게 되어 결국 백기를 들었던 것. 아무튼 아르헨티나 경제는 격랑으로 접어들었다.

결국 8월 터키발 경제위기의 불똥이 튀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45% 초고금리를 책정하여 화폐 가치를 방어하였다. 2018년 8월 기준 아르헨티나 페소-달러의 가치는 연초 대비 38% 하락했으며 2018년 8월 말에 환율불안으로 화폐가치가 이틀에 걸쳐 대폭락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9년 물가 상승률이 54%에 육박했다고 집계됐다. 1991년 이후 최고치이다.# 그래도 2020년에 36.1%로 낮아졌다.#

IMF는 아르헨티나가 부채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2020년 8월에 650억 달러(약 78조 원) 규모 채무 재조정 협상에서 채권단과 합의점을 찾았다.#

2021년 6월 22일에 파리클럽과 채무조정에 합의했다.#

2022년 1월 13일에 아르헨티나 통계청은 2021년 12월 소비자 물가가 11월보다 3.8% 올랐으며, 2021년 연간 물가 상승률은 50.9%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022년 3월 25일. 국제통화기금(IMF)이 440억 달러(약 53조 7천억 원) 규모 부채에 대한 아르헨티나 정부와의 합의안을 최종 승인했다.#

2022년 후반기를 기준으로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기준금리는 75%로 올랐다. 미겔 페쉐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총재는 국회에서 2023년 예산안을 설명하면서 "올해(2022년) 물가상승률은 95%를 기록할 것이며 2023년도에는 60%를 전망한다."라고 밝혔다. 아르헨티나 국립통계청(INDEC)은 9월 공식 물가상승률을 14일께 발표할 예정인데 전문가들은 6.7%로 예상하고 있다. 10월 물가상승률은 7% 미만은 어려우리라 전망하였다. 수도세(10%), 전화·인터넷·유선방송(19.8%), 유류비(6%), 의료보험(11.53%) 등 각종 물가 인상이 예고되었고, 9월에 추진하려던 전기세와 가스세의 보조금 삭감이 10월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JP모건의 디에고 페레이라는 "2022년도 아르헨티나 물가상승률은 100%를 기록하고 2023년도에는 112%에 달할 것"이라고 현지 경제매체 암비토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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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산업 구조[편집]




3. 쇠퇴 원인[편집]



3.1. 독재 정권이 망친 경제[편집]


아르헨티나는 1966년까지만 해도 일본보다 잘사는 나라였고, 1988년까지도 대한민국보다 잘사는 나라였다. 비록 국민소득이 더디게 올라가긴 했어도 후안 페론이 빈민구제정책과 복지정책을 병행해 빈부격차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고도성장보다는 빈부격차 해소에 조금 더 무게중심을 둔 페론 정권 아래에서, 아르헨티나 경제는 성장률이 좀 낮고 물가상승률이 비교적 높긴 해도 비교적 무난하게 운영되었다. 그러나 1976년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가 주도하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후 비델라를 위시한 군부독재자들의 실정과 호세 마르티네즈 데 호즈(José Martínez de Hoz, 1963, 76-81 재임) 경제부 장관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실패함으로써 완전히 박살이 나고 말았다. 권력에 눈이 먼 몇몇 인사들 때문에 나라 전체가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걸음을 옮겨버린 것. 그 결과 국내의 산업기반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2020년대까지도 초인플레이션과 외환위기를 번갈아가면서 겪는 데다가 2022년 기준으로 물가상승률이 무려 73.5%에 달하는 파탄국가가 되고 말았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obreza_en_GBA_Argentina_1965-2005_%28PRN%29.png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적갈색의 PRN이라고 씐 군사집권기 때 빈민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더디게 성장하긴 했으나 이는 후안 페론이 빈민들부터 당장 구제하지 않으면 경제개발을 했을 때 빈부격차가 수습 불가능해진다고 결론을 냈기 때문이었다.[14] 그래서 후안 페론은 경제 개발을 하기 전에 빈민 구제 정책과 복지 정책을 먼저 시행했던 것이다.[15] 이런 상태를 호르헤 비델라가 한순간에 무너뜨려버린 것이다. 특히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를 유치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유치권을 따내고자 FIFA 직원들에게,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승리하게 만들려고 심판들에게 저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을 쥐어주느라 정부의 국고를 지나칠 정도로 탕진했음이 매우 큰 요인이었다.[16]

페론은 고생해가면서 자신이 집권할 때부터 빈곤율 10% 이하인 상태를 계속 유지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어 페론이 사망한 1974년에는 5.8%에 도달, '아르헨티나의 자랑거리'처럼 여겨질 정도로 빈곤율을 낮추어 놓았따. 그런데 비델라는 퇴임 1년 전인 1980년에는 당시까지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고 빈민율이던 무려 37.4%, 이전의 6배 이상으로 뻥튀기시켜 놓았다.

게다가 경제성장이라도 제대로 이루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비델라가 집권한 1976년부터 1981년까지 햇수로 6년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무려 3번이나 기록했으며, 시장개방을 목적으로 외채를 잔뜩 들여와 1979년에는 10.2%라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긴 했으나 그것이 1980년에는 1.5%로 폭락했다. 이로 인해 비델라 집권 1년 전인 1975년에 78억 달러 정도였던 외채가 군사정권이 완전히 붕괴한 1983년에는 무려 450억 달러로 늘면서 아르헨티나는 GDP 대비 외채 비율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최고치를 자랑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17]

심지어 쿠데타가 일어난 1976년부터 1982년까지 6년간 아르헨티나에서는 무려 40만 곳이 넘는 회사가 파산한 데다가 1980년에는 3월에 지역외환은행(BIR) 파산을 시작으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은행 4곳을 포함한[18] 금융기관 37개가 파산하고 은행 예금의 25%가 소멸했다. 아울러 실업률도 비델라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반 년 전인 1975년 10월에는 3.8% 정도였지만, 1982년에는 무려 18%까지 상승했다.

이렇게 경제를 말아먹자 당연히 군부독재 정권에 불만을 품고 반발하는 세력들이 늘어만 갔다. 그러자 호르헤 비델라의 2단계 후임 독재자인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이런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자 1982년 2분기에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는데, 그의 청사진과는 달리 안 그래도 상황이 심각한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더더욱 망쳐버렸다. 게다가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군영국군을 이겼다고 거짓보도하는 데 또 돈을 엄청 썼다. 물론 이 거짓보도는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에 다녀온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양심선언으로 들통나서 부질없는 짓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장성급 장교출신 독재자들이 아주 확실하게 밟아 놓았다.

그렇게 된 걸 라울 알폰신이 해결하려고 노력해서 좀 진정되나 싶었으나 또 재발해서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19] 후안 페론이 경제발전까지 희생해가며 얻어낸 귀한 금자탑을 호르헤 비델라와 레오폴도 갈티에리가 사리사욕만 챙기려고 무너뜨린 것이다.[20] 결국 호르헤 비델라를 포함한 군부 독재자들 때문에 후안 페론이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여 수습한 게 완전히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적어도 페론은 외세로부터 경제독립을 주장하면서 아르헨티나의 발목을 두고두고 잡고 있는 외채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줄이려고 노력했다.[21]

군부 세력이 워낙 경제를 크게 망쳐놓은지라 이후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정권이 퇴진한 후 문민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라울 알폰신 민선 대통령(1983-89 재임)이 아우스트랄 프로젝트 등 정말 별의별 짓거리를 다해도 경제가 전혀 회생하지 못했다. 위의 빈민률 그래프만 봐도 어떤 정권도 페론 축출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못했음을, 심지어 가장 낮았던, 그리고 다시 오르기 직전인 1994년만 해도 페론 정권 말기의 두 배에 달한다.

이런 짓이 1983년에 군부 독재정권이 물러나고 라울 알폰신이 문민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종결될 때까지 계속 이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터무니없이 심각하게 망가졌다. 라울 알폰신은 아우스트랄 정책까지 내놓으며 정말 별짓을 다해가며 눈물 겨운 노력을 해서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살리려 발악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라울 알폰신은 임기를 6개월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시리아계 출신인 카를로스 메넴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퇴진했다. 이후 카를로스 메넴, 페르난도 데 라 루아,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 에두아르도 두알데,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마우리시오 마크리 등 이후의 모든 아르헨티나 대통령들이 총력을 다해 경제를 되살리려 노력했지만, 비델라가 망친 경제상황은 이제 고질병이 되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조금 나아지나 싶으면 터지고 또 회복되는가 싶으면 재발하기를 반복하여 계속 발목을 붙잡는다. 아르헨티나의 경제에 이런 큰 고질병을 심어놓은 장본인이 바로 비델라이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도 경제가 파탄난 다른 나라들처럼 미국 달러를 자국의 공용화폐로 사용하며 한때 1미국 달러 = 1아르헨티나 페소[22] 고정환율까지 실시해봤지만 수출급감의 후유증을 낳는 등 여기를 해결하면 저기서 터지고 또 저기서 해결하면 거기가 터지는 등 마치 두더지게임식 돌려막기만 반복된다.

빈부 격차를 줄임 → 물가 인상 → 물가 안정 → 경상수지 적자 → 환율 고정 정책 → 자국 화폐가치 추락 → 물가 인상 → 물가 인상 억제 정책 → 수출경쟁력 하락 → 빈부 격차 커짐 → 빈부 격차를 줄임 이런 식의 무한반복이 되는 통에 경제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으며 다시 말하자면 이렇다.

  • 빈부격차를 줄이니 물가가 인상된다.
  • 물가를 안정하게 하니 환율이 깨져서 수출에 문제가 발생한다.
  • 환율을 고정하니 자국 화폐가 쓰레기가 된다.
  • 수출을 시키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커진다.

그러니까 물가, 빈부격차, 환율, 수출 등의 분야에서 하나 터지는 걸 메꾸면 그것 때문에 다른 게 터지는 일이 반복되어 경제 발전이 안되고 있다.[23]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아직도 1차 산업 위주의 산업/수출 구조이다. 2016년에도 가장 큰 수출품목이 대두 부산물(16.75%)과 옥수수(7.11%), 콩기름(7.07%), 대두(5.73%) 순으로 농산물에 편중되었다.# 수출 품목의 60%가 농업인데, 어차피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으로는 공산품 만들기도 힘든 거, 농산물 가공, 부산물 가공 등의 산업을 융성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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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잘못된 경제 정책과 통화가치의 하락[편집]


군사정권의 잘못된 정치로 인해 통화정책이 불안정했는데 1980년대에 외채문제로 인해 두차례 정도 경제가 폭망한 전적이 있었고 1990년대에 1달러 1페소 정책을 펼쳤다가 수출급감으로 다시 한번 말아먹은 전적이 있다.[24] 그렇지만 2000년대 중반에는 환율하락으로 수출이 늘면서 일단 경제가 그럭저럭 잘 굴러가고 있었는데 2010년대 들어서부터는 외환보유고가 줄기 시작하자 일반인들의 환전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버려, 아르헨티나 국민이 해외여행을 하려면 정부에 여행사유 등을 일일이 신고해야 한다. 정부는 환전 신청 중 약 80%를 거절하하고 달러가 아니라 여행지의 화폐로 환전받게 했으나, 2015년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가 대선에서 당선되자 환전규제를 해제하였다.

공개발표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중앙은행의 외환 보유고는 252억 7700만 달러로 잠정 집계되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며 대대적인 수입 규제도 도입했다. 아르헨티나에 물건을 수출하려면 건별로 사전에 신고해야 한다. 아르헨티나 내에서 단 하나라도 생산되는 물품이면 수입이 금지된다.[25] 또 외국기업이 아르헨티나에 물건을 팔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수출해야 한다. [26] 2022년 10월에는 국가보유액을 보존하기 위해 수입 허가에 대한 규정을 발표한 것이다.#

이러니 정부가 주장하는 공식 환율과 실제 환율(암시장 환율, 'Dolar Blue'라고 부름)이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아르헨티나 여행기 같은 걸 보면 꼭 등장하는 대목. 암달러 환율 파악은 여기서 할 수 있다.

결국 2015년 아르헨티나 정부가 환율 방어를 포기하였고, 2016년 현재는 공식 환율과 암환율간 괴리가 많이 줄어든 상태다. 다르게 말하면 페소화의 가치 폭락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아르헨티나의 통화 가치는 계속 폭락 중이며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보여왔다. 2019년 당시 500억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참고로 같은 시기는 아니지만 2020년 대한민국의 외환보유고는 4200억 달러 남짓하였다.[27]

통화가치가 폭락하자 수입물가가 급등하면서 더욱 문제가 심화되었는데, 아르헨티나는 자국의 공업기반이 사실상 시망 수준인지라 공산품을 거의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한다. 환율이 똥값이 되니 당연히 생활물가도 하늘을 모르고 솟구쳤다.

하지만 통계조작을 한다느니 해도 얄궂은 사실은 70년대 말-80대 초, 80년대 중후반,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보다는 확연히 낫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통계조작을 시작했다는 평을 듣는 네스토르 키르치네르는 평균 경제성장률 8%대를 기록한 현대 아르헨티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통계조작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일까? 고성장한 부작용으로 물가가 급상승하자 물가억제책을 마련하다 안 먹혀서였다고 한다. 같이 통계조작을 지시한 대통령으로 손 꼽히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도 현대 아르헨티나 기준으로 본다면 경제성적표로는 상위권이다.

일단 2008년과 2010-11년 사이에 고성장을 기록했고, 군부 독재정권 때처럼 외채를 수백억 달러씩 빌려오는 짓을 하지 않았고 리울 알폰신이나 카를로스 메넴처럼 재임 후반기에 죄다 까먹지는 않아서[28] 그렇다. 비 페론주의자 출신이자 전직 대통령인 마크리도 재임초반부터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2%로 까먹는 것에서 시작하고 있으며 2017년에도 이러한 사정이 변하지 않아서 오히려 환율이 내려가는데 반해서 물가는 그에 비례해서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물가수준이 낮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크게 높아졌다. 거기에다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페소화의 가치가 최저치를 나타내면서 아르헨티나에선 비상에 걸렸다.#


3.3. 통계 조작[편집]


통계조작도 일상이다. 사실상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물가상승율은 실제 상승률의 절반 정도라는 게 중론이다. 아르헨티나 자국 내의 민간연구소는 물론이거니와 국제기구에서도 믿을 수 없다며 무시당하고 비판받는다.

사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처럼 정부기관의 통계를 신뢰할 수 없는 국가의 생활수준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른 정상적인 나라의 경우 그냥 평균 임금과 명목환율, PPP환율 등 몇 가지 지표만 따져보면 대충 답이 나오지만, 이런 막장스러운 동네는 환율부터가 난장판이라 뭘 기준으로 해야될지도 알 수가 없다. 심지어 경제지표의 기본 중 기본인 물가상승률, 중요한 사회지표인 빈곤율까지 조작이 일상이라고 하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다만 아르헨티나는 군부독재 종식 이후 그래도 민주주의가 그럭저럭 굴러가는 나라이기 때문에 민간 기관에서 발표한 자료들이 있다. 이 기사를 보면 대학, 싱크 탱크, 노동조합 등에서 측정한 아르헨티나의 빈곤층은 30%에 이르는데, 정부는 4.7%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세계은행이 14년 9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국민의 33%는 하루 4∼10달러, 10.9%는 하루 4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나마 줄인 것이 이 정도인 수준. 하지만 다른 남미국가들의 사정이 이보다 별로 좋지 않아서[29] 볼리비아나 파라과이는 아르헨티나보다 경제적인 여건이 훨씬 좋지 않기 때문에 이들 나라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아르헨티나로 들어왔다. 사실 최저임금도 남미에서는 꽤 높은 편이었다. 2018년부터는 옛말이 되었으며 특히 볼리비아는 2000년대 후반까지 최저임금이 월 10만원도 안되던 동네라서 더더욱 아르헨티나로 몰려들었다. 물론 지금은 남미 국가들이 베네수엘라 같이 사실상 지옥도로 변한 나라를 제외하면 모두 어느 정도 경제성장을 하고 최저임금도 뒤따라 올라감으로써 큰 차이는 없게 되었다.

4. 그 외[편집]


일단 이래봬도 G20 회원국에 남미에서 브라질에 이어 2위의 경제대국이다. 다만 이것도 2002년에 저점을 찍고 크게 올라서 그렇지 2000년대 초반에 1인당 GDP가 2천달러대까지 떨어진 적이 있다. 근데 사실 이건 브라질이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우루과이도 다 마찬가지인데, 2000년대 중반에 중국과 인도의 경제가 크게 성장하면서 원자재 수요가 크게 늘어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였고 그 여파가 201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경제 정책과 관련 통계가 아무리 막장이라도 이 나라는 워낙 사기급으로 뛰어난 자연 환경을 타고난 덕에 주민들이 먹을 게 부족해서 굶어죽지는 않는다. 광활한 땅에서 각종 농산물, 쇠고기가 넘치도록 생산되기 때문에 먹거리만큼은 확실히 저렴하다. 수출도 많이 한다. 그러나 마크리 전 대통령의 우파 정책 이후론 옛말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 육우 국내 소비에 대해 공급이 부족한 실정이다. 육우 수출보다는 소의 부산물과 과거 70년 이상 소비하지 않던 생선, 해산물 등을 소비하기 시작했고 또 새로운 효자 수출상품으로 부각되었다. 소 육우를 수출에만 치중한 결과 생산량 부족으로 국내 소비량이 부족하여 어미소 도축도 하고 일부 물량은 이웃국가 우루과이 등지로 부터 수입도 하고 있다. 우유는 가격이 세계 순위권까지 폭등했다.

1970년대 초반의 아르헨티나는 선진국으로 가기 직전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사벨 페론의 실정 속에서 미국CIA의 지원을 받은 호르헤 비델라가 쿠데타로 집권함으로서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고친다면서 오히려 손을 안 대는 게 더 나았을 수준으로 망가뜨려서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학정도 학정이었으나 경제를 잘 운영해야 하는 가장 결정적인 시기에 빈민율을 뻥튀기해놓고 여기저기 돈을 필요 이상으로 빌려 막대한 빚을 지게 만든 것도 모자라, 자국의 은행이란 은행들을 죄다 파산시켜 버렸으니 매국노도 이런 매국노가 없는 셈이다.

현재 경제를 자유시장으로 풀어주고 있는데, 가정용 난방의 가스비 보조금을 줄여 400%을 인상하기로 했다. # 그렇지만 아르헨티나의 빈민들과 중소기업들 반발이 극심한데, 단순히 전기료와 가스비만이 아니라 전철비나 기차 삯, 비행기 삯 따위도 줄줄이 인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통제를 풀어주면서도 외화 유출을 막겠다며 수입사전허가제도를 법제화하는 바람에 이웃 나라에게 엄청나게 비난받는다.

2018년 10월 26일, IMF에서는 아르헨티나 정부에 64조원 규모의 조건부 구제금융 지원을 하기로 확정했다.# 단, 그 조건이라는 것은 재정 적자 0이다. 현재 아르헨티나는 국내총생산(GDP)의 2.7% 정도가 재정적자인데 이를 아예 없애는 조건으로 빌려오는 돈이니만큼 재정적자가 한 푼도 나오면 안되는 상황인데 이로 인해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전대통령은 골치를 썩었었다. 정권은 다시 페론주의 정당인 정의주의자당 소속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에게 인계되었고 2022년 2월 6일 중국과 일대일로서명한 상태이다. 이젠 IMF도 전면에 나서서 아르헨티나 경제를 살려보기 위해 나섰는데, 워낙 상태가 개판이다 보니 경제부흥에 성공한다면 문자 그대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으리란 말도 나온다.

정작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는 엄청난 실정을 했다. 그나마 라울 알폰신카를로스 메넴이 성공이야 못했지만 어떻게든 명줄만은 붙여놓았던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기어이 호르헤 비델라 시절로 되돌려버렸다. 코로나 19 사태를 해결한답시고 공공요금 동결, 무이자 할부 정책, 현금 지급, 세율 대폭 인하 등 무리한 정책으로 인해 아르헨티나 페소의 가치는 아예 땅으로 떨어져 버렸으며 설상가상으로 2023년 전세계적인 가뭄으로 인해 농업국가인 아르헨티나는 곡물 생산량이 대폭 감소해, 그나마 가난할지언정 밥은 안 굶는다는 말이 무색해졌으며 이제 10번째 국가부도 위기에 놓여 있다.

2022년 6월 기준, 물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 "오늘이 가장 싸다"고 할 정도로 매일 물가가 올라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월급을 받는 족족 물건을 사서 쟁여놓거나 브로커를 통해 달러로 바꿔 놓는다고 한다. 어느 아르헨티나 정육점 주인의 말에 따르면,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리에 쓰이는 소고기 부위도 많이 비싸져서 이제는 소 내장,간 등의 부속물과 닭고기도 섞어서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베네수엘라[30]처럼 식자재 마트 주변 쓰레기통에서 음식물을 주워 먹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2022년 8월 22일 아르헨티나와의 국경에 있는 파라과이의 한 마을 상점에 강도가 들었는데. 아르헨티나 페소의 가치가 워낙 낮다보니 직원이 강도에게 아르헨티나 페소를 건내자 강도가 가져가길 거부하고는(...) 자리를 뜬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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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en.wikipedia.org/wiki/Argentina[2] https://ko.tradingeconomics.com/argentina/government-debt-to-gdp[3] https://www.kcif.or.kr/front/data/interCredict.do[4]일본아르헨티나냐면, 일본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했기 때문이고 아르헨티나는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쿠즈네츠가 이 말을 한 1973년의 일본은 전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나라였다.[5] 아르헨티나 경제가 망한 이유가 너무 복잡하고 장황해서, 경제학자들조차 가늠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6] 정확한 시기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우승한 이후. 스페인의 월드컵 성적은 명성에 비해 상당히 초라한 편이라 더욱 그렇다.[7] 우승 횟수부터 스페인은 1회(2010), 아르헨티나는 3회(1978, 1986, 2022)로 큰 차이가 있고, 스페인은 명백한 선진국이라 경제가 제일 나쁠 때도 지금의 아르헨티나와는 비교도 안 되게 좋은 상태였다.[8] 대표적으로 엄마찾아 삼만리의 주인공 '마르코'가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으러 떠나는 이야기.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의 현실이었다. 또한, 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나치 독일의 주요 간부들이 수준 높은 삶을 보장해주면서도 신변을 보호해주는 아르헨티나로 망명해 정착했을 정도였다.[9] 너무 과거의 이야기긴 하지만,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GDP는 1962, 64, 65년에는 세계 9위였고 66년에는 10위였다. 1인당 GDP로 따져봐도, 62년에는 이탈리아보다 높았고(당시 아르헨티나는 1,230$, 이탈리아는 고작 890$였다.)64, 65년에도 이탈리아에게 밀리긴 했지만 거의 차이가 안 났으며, 66년 기준으로 봐도 일본과 스페인보다 위에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2020년에 브라질과 러시아를 제치고 역대 최고 순위의 GDP를 찍은 한국의 GDP 순위가 10위이다. 2020년 세계은행 통계 기준 30위 정도까지 추락한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알 수 있다.[10] 이때문에 진보/좌파 진영에선 미국과 IMF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워싱턴 컨센서스의의 폐해를 보여주는 사례로 아르헨티나 경제를 들곤 한다. 굳이 아르헨티나가 아니더라도 미국과 IMF의 요구에 따라서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대규모 구조조정(긴축재정, 고금리, 공기업민영화, 외환시장 전면 개방 등)을 단행한 개발도상국들은 대부분 경제위기가 반복되면서 중진국 함정에 갇히는 악순환에 빠졌다. 거의 유일한 예외가 대한민국.[11] 하지만 칠레도 자세히 보면 구리, 금, 석유 등 광업이나 축산업, 농업 등 1차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빈부격차가 심각하다.[12] 하지만 문제는 정작 재정적자는 별로 안 줄었다. 소비감소추세가 여전하여 세수가 생각보다 늘어나지 않은데다가, 기껏 세수를 확충한다 해놓고선 외채를 마구잡이로 남발하고 국채 이자율이 높기 때문에 국가재정의 상당수를 이자 지불에 쓰는 판국이기 때문이다.[13] 이게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는 오늘날의 베네수엘라가 있다. 베네수엘라는 2015년 이후 현재까지 경제가 완전히 파탄나서 물가가 폭등했고 물건도 수입감소로 크게 줄어들었다. 그나마도 값싸게 구하려면 몇 시간씩 줄 서서 기다림은 일상이다. 암시장에서 살 수도 있지만, 암시장 환율이 일반시장환율의 3-4배 이상씩 되기에 지독한 바가지를 감수해야 한다. 유가가 일정 수준으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은 바가지를 써야만 한다. 오히려 인접국인 콜롬비아나 브라질에서 구매하기가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에 너도나도 생필품 사려고 국경을 넘기가 일상이 되어버렸다.[14] 군사정권 시기에 빈민율이 너무 극심해서 상대적으로 묻혀 보이지만, 페론이 막 정권을 잡았을 때도 아르헨티나의 빈민율은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 페론이 빈민 구제가 우선이라고 판단한 데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15] 페론은 빈민 구제정책을 시행하면서도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전 국토에 걸쳐 공업화를 단행하는 등, 경제 개발을 위한 이런저런 밑밥을 다져놨다. 이때 페론이 다져놓은 기반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군사정권기에 경제가 파탄나고도 일단 경제가 완전히 붕괴하는 꼴만은 면할 수 있었다.[16] 참고로 2015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비델라 정권은 문자 그대로 자신들이 불법처형한 민주화 운동가들의 재산을 몰수하고는 돈세탁을 하여 해외 비자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자료[17] 1975년의 아르헨티나: GDP 524억 달러, 외채 78억 달러, GDP당 외채 비율 약 14.5% / 1983년의 아르헨티나: GDP 1040억 달러, GDP당 외채 450억 달러, 외채 비율 약 43.2%. 한마디로 8년 만에 순 외채도 아니고 GDP당 외채 비율3배나 뛰어올랐다.[18] 이는 쉽게 말해 한국으로 치면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이 같은 해에 한꺼번에 파산한 것 그 이상이다.[19] 보면 알겠지만 페론주의 정권 때에 경제가 안정되고, 반대파가 집권하면 경제가 다시 나락으로 가는 양상을 보인다.[20] 그렇다고 경제성장이라도 이룩했는가? 그렇지 않다. 페론은 경제성장과 빈민률 감소라는 두 마리 토끼 중 하나는 잡았는데 군사정권은 둘 다 놓친 것이다. 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란 불가능했다.[21] 더구나 페론은 그렇게 오래 집권하지도 못했다. 페론이 대통령 직을 맡은 기간은 귀국 이후 수행한 임기까지 합쳐도 10년밖에 안 된다. 그 중 제대로 일한 기간은 9년인데, 9년이라는 시간 안에 빈민 구제와 경제 개발을 동시에 한다는 건 당시 아르헨티나의 사정상 불가능했다.[22] 2022년 7월 현재 1미국 달러 = 300 아르헨티나 페소로 기록적인 최악의 격차가 벌어졌으며 사태가 더 악화될 여지를 열어 놓은 상태이다.[23] 불가능의 삼각정리 참조. 물가 안정, 환율 안정, 수출입 안정은 동시에 실현이 불가능하며, 때문에 세 가지를 불완전하게 실현되도록 조절하는 것이 이상적인 정책이다. 헌데 아무리 그래도 웬만한 선진국은 저 세 가지가 동시실현이 안 되더라도 경제가 막장까지 가지는 않음을 감안하면 아르헨티나가 얼마나 상황이 나쁜지 알 수 있다.[24] 멍청하다고 비웃을 일은 아니다. 아르헨티나같이 부채가 많은 나라는 화폐를 인위적으로 높여서 부채상환율을 낮추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25] 그러나 이는 눈 가리고 아웅이다. 농산품이면 몰라도 공산품은 고도로 분업화되어 있어서, 한 나라에서 원자재부터 완제품까지 다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26] BMW와 벤츠 아르헨티나 지사도 아르헨티나 농작물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27] 물론 한국의 명목상 경제규모가 아르헨티나의 3배가 넘고 실질적인 경제규모 차이는 더 크거니와, IMF라는 뼈 아픈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더욱 착실히 모으기도 했다.[28] 한마디로 아르헨티나는 외채를 빌려서 공업화를 완성하고 공업, 농업 그리고 서비스업의 균형있는 산업구조를 만들려고 했는데, 환율조작을 하다 보니 시장에서 가격적으로 메리트도 어정쩡할 뿐더러, 워낙 공업이 낙후되다 보니까 질까지 좋지 않아서 경쟁력이 없었다. 게다가 아르헨티나같은 경우 자원의 저주도 있다.[29] 칠레는 남미에서 잘사는 나라이지만 여기도 대학교육이나 의료비용은 비싸다는 문제점이 있고, 우루과이는 복지수준이나 경제력은 나쁘지 않지만 빈부격차는 아르헨티나보다 크다.[30] 한때 가장 친한 우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