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데우스(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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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스 포먼 감독 장편 연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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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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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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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 작품상
제56회
(1984년)


제57회
(1985년)


제58회
(1986년)

애정의 조건

아마데우스

아웃 오브 아프리카


역대 세자르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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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상
제9회
(1984년)


제10회
(1985년)


제11회
(1986년)

화니와 알렉산더

아마데우스

카이로의 붉은 장미


역대 일본 아카데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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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 외국작품상
제8회
(1985년)


제9회
(1986년)


제10회
(1987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아마데우스

백 투 더 퓨처



아마데우스 (1984)
Amadeus

파일:아마데우스 재개봉 포스터.jpg
장르
드라마, 음악, 전기, 시대극
감독
밀로스 포먼
출연
F. 머레이 에이브러햄
톰 헐스
엘리자베스 베리지
각본
피터 셰퍼
원작
피터 셰퍼 - 희곡 《아마데우스
제작
사울 자엔츠
촬영
미로사보츠 온드리세크
편집
마이클 챈들러
니나 다네빅
T.M.크리스토프[1]
제작사
파일:미국 국기.svg 사울 자엔츠 컴퍼니[2]
배급사
파일:미국 국기.svg 오라이언 픽처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시네마 뉴원
개봉일
파일:미국 국기.svg 1984년 9월 19일
파일:미국 국기.svg 2002년 4월 5일[감독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년 11월 23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5년 10월 9일[재개봉]
촬영기간
1983년 1월 31일 ~ 1983년 7월 20일
화면비
2.39 : 1
상영 시간
161분, 180분[감독판]
상영 등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영등위_12세이상_2021.svg 12세 이상 관람가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R등급 로고.svg

1. 개요
2. 예고편
3. 시놉시스
4. 특징
5. 줄거리
6. 등장인물
7. 평가
7.1. 단평
8. 실제와 영화의 차이
9. 감독판
10. 대중매체에서
11. 명대사
12. 기타
13.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삶을 다루는 1984년에 제작된 밀로스 포먼 감독의 사극 영화. 음악 영화계의 대표적인 걸작이자 영화사에 남을 사극 작품 중 한 편으로 그 해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주연상 수상작이다.


2. 예고편[편집]




▲ 예고편
▲ 재개봉 예고편


3. 시놉시스[편집]


천재를 시기한 평범한 궁정음악가의

질투에서 시작된 광기에 찬 파멸의 서곡!

비엔나 왕실의 궁정음악가 살리에리(F.머레이 아브라함)는 새롭게 떠오르는 천재 작곡가 모짜르트(톰 헐스)의 소문을 듣고 그의 천재성을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방탕하고 오만한 모짜르트의 행동과 모습들에 상처와 충격을 받은 살리에리는 모짜르트의 천재성을 시기하게 되고 자신에게 재능을 주지 않은 신에게 분노하며 자유분방한 모짜르트를 파멸시킬 음모를 준비하는데…



4. 특징[편집]


제57회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이자 음악 영화계의 걸작이다. 배급은 오라이언 픽처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사망한 1790년대부터 널리 퍼졌던 소문[3]을 토대로 쓰여진 피터 셰퍼의 동명의 희곡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5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포함한 8개 상을 수상했다.[4] 흥행도 성공하여 제작비 1,800만 달러로 북미에서만 5,23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한국에서는 1985년 11월 23일에 개봉하여 서울관객 47만 6천명을 기록하며 당시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5] 비디오로는 금성비디오(LG전자)에서 출시하고 MBCKBS 지상파에서 여러번 더빙 방영했다. 화질과 음질, 그리고 연출과 편집 기술 모두 뛰어나서 1980년대 작품이라는 것을 모르고 보면 최근에 개봉한 영화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모차르트의 죽음 이후 죄책감을 느끼며 수차례의 자살시도 끝에 정신병원에 수감된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그를 찾아 온 고해신부에게 자신의 음악가로서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내용이다.[6]

(고해신부에게) 나의 소망은 음악으로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이었소. 그런데 하느님께선 내게 찬송의 열망을 심으시면서... 날 벙어리로 창조해버렸어. 어째서요? 말해 보시오! 하느님께서 내가 음악으로 당신께 찬송드리길 원치 않으셨다면, 왜 내 몸을 좀먹는 그런 열망을 심으신거요?...그러면서 도대체 왜 재능은 안주신거요?


난 세상의 모든 범재들을 대표한다오. 내가 그들의 대언자이지. 난 그들의 수호성인이야. 세상의 범재들아! 내가 너희 죄를 사하노라. 내가 너희 죄를 사하노라. 내가 너희 죄를 사하노라. 내가 너희 죄를 사하노라. 내가 너희 모두의 죄를 사하노라.


언뜻 보면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조명하고 그의 비극적인 최후를 추적하는 영화로 보이나 점점 깊게 파고들어가면 아무리 몸이 부서져라 노력해도 절대 천재를 따라잡을 수 없는 범재의 고뇌와 좌절을 그려낸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살리에리가 주인공이다. 영화 크레딧에도 살리에리 이름이 가장 위에 올라와 있고 1985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건 살리에리 역할을 맡은 F. 머레이 에이브러햄이었다. 남우조연상이 아니다.


5. 줄거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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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7][8]
1823년 눈보라치는 밤,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여 정신병원에 수감된 한 노인이 그를 찾아온 신부에게 자신의 죄를 고해한다. 그는 요제프 2세의 궁정 음악장인 살리에리.

신부가 찾아갔을 때 살리에리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신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자신이 작곡한 곡들을 들려준다. 하지만 신부는 그 곡들의 작곡자는 커녕 곡 자체도 몰랐고, 살리에리는 마지막으로 한 곡을 연주한다. 잠깐만 쳤는데도 신부는 흥분해서 멜로디를 입으로 부르며 단박에 알아맞추고, "제가 무척 좋아하는 곡인데, 선생님이 이 곡을 작곡하셨는지는 미처 몰랐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곡[9]은 살리에리가 아닌 모차르트의 곡이었고,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그야 내가 작곡한 것이 아니니까요"라고 말한다.[10]

살리에리는 이탈리아 상인의 아들로 어릴때부터 아름다운 음악의 세계에 매료됐었다. 자기보다 더 어린 모차르트의 소문을 듣고 그가 부러웠고 음악을 배우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음악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오스트리아로 유학 할 수 있었고[11]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으로 교회 지휘자 자리를 거쳐 궁정악장의 자리까지 올랐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모차르트의 공연을 보고 그의 천재성에 감탄한다.

살리에리가 미리 짜여 있는 형식을 준수하고 음악에 관한 주제도 하느님을 찬양하는 전통적인 교회 중심의 대세에 따르는 음악가였다면, 모차르트는 신들린 연주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편곡 능력, 그리고 시대의 감성을 뛰어넘는 작곡 실력까지 갖춘 천재적 음악가였다. 하루하루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불굴의 의지로 자신을 채찍질 하는 수도자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살리에리에게, 모차르트란 존재는 경이롭고도 부러운 존재로 다가온다.[12]

그런데 모차르트는 음악적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은 폐인에 가까울 만큼 방탕한 삶의 연속이었다. 버는 돈이 적은 편이 아니지만 버는 족족 결혼한 아내에게 선물 사주랴, 최신 유행에 맞추어 옷 사랴, 밤마다 화려한 파티를 벌이랴 모두 탕진해버렸다. 게다가 워낙 기분파라서 한번 시작한 파티는 모두에게 꼭 ‘쏴야’ 직성이 풀리는 그였다.

그렇게 방탕한 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가 만들어내는 작품들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유명인사가 된 모차르트의 명성은 살리에리를 궁정음악가로 고용하고 있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까지 소문이 들어간다. 그는 황제에게 국립극장에서 상영 할 오페라를 지어달라는 발주를 받아[13] 작곡한 <후궁으로의 도피>를 독일어로 선보이는가 하면,[14][15] 오페라를 늘어지게 한다는 이유로 황제가 금지한 발레를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삽입하는 등,[16] 이탈리아인들이 많았던 음악계의 높으신 분들의 미움을 살 짓만 골라서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황제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발레 금지령도 모차르트의 작품을 보고 철폐하였다.[17]

음악을 너무도 사랑하지만 재능에 한계를 느낀 살리에리는 그러한 모차르트를 가까이 혹은 멀리서 지켜보며, 하나하나 작품이 나올 때마다 그의 작품에 대하여 경배를 하면서도, 그러한 위대한 작품들이 모차르트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을 저주한다. 게다가 평소 살리에리가 사모하던 오페라 배우가 모차르트에게 마음을 돌리자, 살리에리는 이제 모차르트에게 재능을 부여한 하느님마저 저주하기에 이른다. 살리에리는 "자신에게 음악적인 재능만 주지 않은" 신을 모욕하기 위해, 모차르트의 집에 하녀로 위장한 심복을 보내고 모차르트의 사생활을 캐며 모차르트를 죽일 음모를 꾸민다.

마침 모차르트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생기를 잃고, 거기에 폐렴과 각종 합병증으로 폐인의 신세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을 살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을 즈음, 살리에리는 시종을 시켜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가면파티에서 입었던 가면으로 분장을 하고 나타나 장송곡을 지어달라고 의뢰한다.[18] 모차르트는 아버지가 죽은 이후 자금 부족에 시달리며 돈 조반니마술피리, 그리고 레퀴엠까지 완성하려 하는 강행군을 펼치다, 그만 마술피리에서 파파게노의 종소리를 묘사하는 건반형 글로켄슈필을 연주하다 과로로 혼절해 버린다.[19]

모차르트의 모든 오페라를 은밀하게 관람해왔던 살리에리 역시 그 자리에 있었고, 살리에리 또한 화들짝 놀라며 모차르트를 본인의 마차로 모차르트의 자택에 실어가게끔 한다. 자택에서 깨어난 모차르트는 자신에게 호의를 보인 살리에리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 순간, 모차르트 자택의 문이 두들겨진다. 모차르트는 레퀴엠을 의뢰하러 온 수수께끼의 검은 가면의 남자 인줄 알고, "모차르트는 여기 없으며 아직 작곡이 끝나지 않았으니 돌아가라" 고 살리에리에게 대신 말하길 원한다. 하지만 문을 두들긴 사람들은 마술 피리를 공연하던 파파게노 역의 시카네더[20]와 기타 스태프, 배우들이 모차르트를 걱정해 온 것이었고, 살리에리는 이들을 잘 타일러 보내고는 이를 알 리 없이 "뭐라고 말하덥니까?" 라고 묻는 모차르트에게, 배우들이 모차르트 분의 몫으로 준 금화를 던져 주며 "이걸 전해 주라고 하더군. 그리고 오늘 밤까지 (레퀴엠을) 완성하면, 100 두카트를 더 주겠노라고 했네." 라고 한다. 모차르트는 오늘 밤까지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살리에리가 도와 주겠다고 하자 마지못해 레퀴엠을 작성해가기 시작한다.


[21]

이윽고 날이 밝아 동틀녘이 되자 모차르트는 쉬고 싶지 않냐며, 본인의 작품을 밤새 완성하도록 노력해 준 살리에리에게 감사를 표하고, 본인이 부끄럽다고 고한다.[22]

모차르트: "쉬고 싶지 않나요?"

살리에리: "아니, 전혀! 전혀 피곤하지 않네."

모차르트: "잠깐 멈추고 쉬다 라크리모사를 완성하죠."

살리에리: "아냐, 됐어! 난 계속 할 수 있네."

모차르트: "제가 잠시 자고 있는 동안 옆에 계셔 주시겠어요?"

살리에리: "떠나지 않겠네."

모차르트: "....부끄럽군요!"

살리에리: "뭐가?"

모차르트: "제가 어리석었어요! 전 당신이 저를 별 볼일 없게 여기는 줄 알았죠. 용서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




잠시 눈을 붙이던 도중 잠시 모차르트의 자택을 떠나 요양하러 갔던 아내 콘스탄체가 돌아와 살리에리에게 어색한 인사를 건넨다.[23] 잔뜩 흩뿌려진 레퀴엠 악보를 본 콘스탄체는 이런 작품은 두 번 다시 쓰지 않을 것이라며, 이것 때문에 모차르트의 병이 난 것이라고 하곤 악보를 진열장에 넣고 잠가 버린다. 통탄해 하는 살리에리를 뒤로 하고 모차르트의 안부를 살피지만...모차르트는 이미 절명한 뒤였다.




모차르트의 장례식과 함께 라크리모사가 울려퍼지고, 라크리모사가 끝난 뒤 시간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늙은 살리에리의 고해를 듣는 신부의 시점이 되어 있다.[24] 신부는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그런 신부를 차갑게 비웃는 살리에리는, "그대의 자비로운 신은 이 범재에게는 작은 영광 하나조차 나눠줄 수 없었는지 차라리 자신의 자식들을 모두 파멸시켰소. 신은 모차르트를 죽여버리고는 지난 32년간, 무려 32년간 동안 나로 하여금 죽은 모차르트의 음악은 점점 인기를 얻고 살아있는 나의 음악은 아무도 모르는 퇴물이 되어가는 꼴을 지켜보게 하는 고문을 해왔단 말이오." 이라고 대꾸하며, 정신병원 도우미의 인솔을 받아 나가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보통 사람들의 대변자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대변자지. 난 그 평범한 사람들 중 최고요! 그들의 수호자이기도 하고!"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여...."

"너의 죄를 사하노라."

"너의 죄를 사하노라."

"너의 죄를 사하노라."

"너의 죄를 사하노라."

"너의 모든 죄를 사하노라."


후련해진 모습으로 웃으며 정신병자들 사이를 지나가는 살리에리를 비추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모차르트의 웃음소리와 함께.


6. 등장인물[편집]


대한민국판 영화 더빙작들 중에는 잘 된 작품으로 손에 꼽힌다.

일본 테레비 아사히판은 개봉 1년 후인 1986년에 TV에서 극장공개판을 무삭제로 더빙해서 방영하였다. 영화의 더빙이 TV판밖에 없어서 더빙팬들로부터 환상의 더빙판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첫 방송 30주년 기념으로 일본 워너브라더스의 더빙판 복각 프로젝트인 더빙의 힘에서 최초로 TV판 더빙음원을 수록하였고, 동시에 감독판의 내용을 당시의 성우진이 추가녹음한 감독판 블루레이를 출시하였다. , 링크 미츠야 유지, 쿠사카 타케시, 미야자키 요시코 등이 참여했다.

순서는 배우, 국내 성우(KBS1판[25]/MBC판[26]), 일본 성우(테레비 아사히판)순.

  • 안토니오 살리에리 - F. 머레이 에이브러햄 (이완호, 양지운[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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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톰 헐스 (배한성[28], 미츠야 유지)

  • 콘스탄체 베버(콘스탄체 모차르트) - 엘리자베스 베리지 (서혜정, 송도영)

  • 에마누엘 쉬카네더 - 사이먼 캘로 (장광)



  • 고트프리트 판 슈비텐 남작 - 조나단 무어 (김규식)
궁정 도서관장으로, 요제프 2세에게 모차르트를 천거해 올린 인물이다.[29]

  • 폰 슈트라흐 백작 - 로더릭 쿡 (유민석)

  • 주세페 보노 - 패트릭 하인스 (이종구)
궁정 작곡가(카펠마이스터)로 이탈리아인이다. 궁정 등장인물들 가운데 최고령이다.

  • 보글러 신부 - 리처드 프랭크 (장광)

  • 모차르트의 하녀 - 신시아 닉슨[30] (문선희)

  • 잘츠부르크의 대주교 히에로니무스 폰 콜로레도 백작 - 니콜라스 케프로스 (유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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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오는데, 음악을 즐기는 소탈한 계몽군주라는 면이 부각되어 점잖은 모습을 보인다. 인간불신이 심했던 냉철한 면모보다는, 친절하고 사람좋은 높으신 분이라는 이미지로 나왔다.[31] 지루한 음악을 들을 때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하품을 하기도...,[32] 역사에 따르면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고 전해지지만, 영화 속 살리에리의 평에 따르자면 사실상 황제에게 음악적 재능은 없었다고 고백한다. 살리에리가 작곡한 모차르트 환영 행진곡을 연주할 때도 살리에리가 옆에서 계속 고쳐주는것으로 묘사되었다.

  • 오르시니-로젠베르크 백작 - 찰스 케이 (남궁윤)
궁정 오페라 감독. 시종일관 모차르트를 싫어하고 경계했다. "음표가 너무 많다"(Too many notes)라는 식으로.[33]

  • 마이클 슈럼베르크 - 케네스 맥밀란


  • 카를 토마스 모차르트[34]

  • 지휘자 - 존 스트라우스

  • 가발상인 - 카를-하인즈 토이버 (김익태)

  • 슈럼베르크 부인 - 리타 조하르

  • 그 외


7. 평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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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XX-XX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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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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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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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QE|

MRQ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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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없음 / 100





음악 영화를 대표하는 걸작 중 하나다. 밀로스 포먼에게는, 아카데미상 그랜드슬램에 빛나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함께,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대표작이다. 1985년 제57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무려 8개의 아카데미상을 쓸어담았고 이 중에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까지 포함되었다. 그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영화로 배우들의 뛰어난 열연, 모차르트 생전의 의 아름다운 모습과 엄청난 수의 가발, 화려한 의상, 오페라 공연 장면까지 1980년대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화려한 영상미로 유명하다.

음악 영화답게 모차르트가 남긴 교향곡, 실내악, 협주곡, 오페라, 레퀴엠이 작품의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영상과 어우러지며 형용키 어려운 감흥을 전한다. 음악평론가 진회숙은 영화 아마데우스의 음악에 대해 “모차르트는 평생 600곡 정도를 썼는데, 그 많은 곡 중에서 어떻게 장면에 어울리는 곡을 그렇게 잘 골라냈는지 놀라울 정도”라고 평가했다. 이를 증명하듯 영화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사운드 트랙은 빌보드 클래식 앨범 순위 1위는 물론 650만 장 앨범 판매라는 대단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영화 후반부 파국으로 치닫는 모차르트의 모습은 장엄한 음악과 함께 매우 강렬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가면을 쓴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사용된 곡은 모차르트의 작품 중에서 드물게 단조로 작곡된 ‘피아노 협주곡 20번’ 1악장이다. 또한 실존 음악가를 다루면서 이렇게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좋은 평을 받았다.


7.1. 단평[편집]


A lavish, entertaining, powerful film about the life and influence, both positive and negative, of one of Western culture's great artists

서양 문화의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삶과 영향에 대한 호화롭고 재미있고 강력한 영화.

로튼 토마토 평론가 총평


이 영화는 틀림없이 창조 과정과 창작자에 대해 만들어진 최고의 영화다. 그러나, 포만이 참여한 모든 프로젝트들 중, "아마데우스"만큼 노력하거나 성취한 것은 없다. 그가 아무리 명작을 더 만들어도 이번 작품을 뛰어넘을 것 같지는 않다.

― 제임스 바라디넬리 (영화 비평가)#


흥미로운 각본, 우아한 연출, 좋은 연기를 모두 갖춘 음악영화의 품격.

이동진 (★★★★☆)


음악영화의 영원한 클래식

예전 버전이든, 이번에 상영되는 20분 추가 버전이든 상관없이, 영원히 회자될 음악영화의 고전. '천재' 모차르트에 대한 살리에리의 시기와 질투와 절망도, 인류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지속될 콤플렉스다. 클래식 입문자부터 영화 팬까지 두루 즐길 수 있는, 대중적 걸작. 31년 전 영화지만, 결코 그 영화적 쾌감을 녹슬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이 영화는 궁전, 의상, 가발, 잔치, 개막식 밤, 샴페인, 산더미 같은 빚의 시각적 향연이다.

로저 이버트[35]


이 영화는 30년차에 접어들었지만, 경외심에 힘을 잃지 않았다.

엠파이어


웅장한 영화 오락

타임 매거진



8. 실제와 영화의 차이[편집]


  • 실제 인물 살리에리는 영화 속에서처럼 컴플렉스에 찌들 사람이 아니었다. 모차르트와 경쟁관계에 있었다고 하나 모차르트보다 나이가 많은 만큼 이미 그 명성이 전 유럽에 떨쳤고 음악가로서 지위도 확실했다. 3개 국어를 배워 오페라를 쓸 정도로 전 유럽에 인기가 있었다. 물론 사후에는 빠르게 잊혀져서 수백 년씩 기억되는 모차르트와 비견할 바는 못 되지만[36], 작곡 능력으로서는 당대 기준으로는 무시당할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가 작곡한 곡을 들어 보자.[37]

  • 늘그막에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제자 모셀레스에게 밝힌 살리에리의 말에 의하면 "모차르트와 꽤 사이가 나쁜 건 사실이지만, 그를 죽게 하는 일에 끼어든 적은 없다"고 털어놓는데, 모차르트와 사이가 나쁜 건 비단 살리에리 뿐만이 아니었다. 모차르트와 동시대의 음악가들 중에서 그와 사이가 좋았던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모차르트의 성격은 너무나도 괴팍했다. 사교적인 측면에서 살리에리가 다양한 음악가들와 두루두루 어울리며 덕망을 쌓은 반면에 모차르트는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인정해주고 이를 서포트해줄 수 있는 사람들만을 자신의 곁에 두었다. 모차르트에 묻혀진 편이지만 그래도 살리에리보단 지금도 많이 알려진 대선배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는 모차르트에 대하여 "비록 음악의 천재이지만, 나머진 천하에 둘도 없는 둔재"라고 깠을 정도[38]. 도리어 살리에리는 궁정 음악가였던 당시에 후배 음악가들을 위해 자선 연주회를 열어주고, 그들을 후원하는 등 훌륭한 선배 음악가였다. 돈 욕심도 별로 없어서 루트비히 판 베토벤프란츠 리스트, 프란츠 슈베르트 등 수많은 유명 음악가들을 무료로 가르친 대인배였고, 심지어 모차르트의 아들인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조차도 살리에리에게 음악을 배웠을 정도였다. 이러다보니 성격이 괴팍한 베토벤도 살리에리를 존경했고, 그의 늘그막 시절 모차르트를 죽게 했다는 소문에 대하여 강력하게 부정했으며, "그래도 책임은 있는 거 같다"는 그의 비서-쉰들러의 말에 "경거망동하지 말라"며 "그분은 그런 짓할 분이 아니라고 난 굳게 믿는다"고 자신의 뜻을 밝혔을 정도였다.

  • 더불어 영화는 살리에리가 자살을 기도하고 정신병원에서 폐인이 되어 죽어가는 걸로 나오는데, 이 또한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살리에리는 죽기 직전까지 궁정악장을 지내면서 윤택한 삶을 누렸다.[39] 비록 늘그막에는 잊혀진 감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상당한 명성을 누렸던 것을 생각해보면 영화에 묘사된 살리에리의 말년은 그저 명예훼손픽션에 불과하다. 생을 마감할 당시에도 외동딸 입회 아래에서 당시로선 엄청나게 오래 산 나이인 75살로 편히 눈감았다. 다만 정신병원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노인이 앓게되는 질병인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갔던 것은 사실이고, 또한 이때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고백을 몇 번 하기도 했다. 치매 노인이 한 말이니 깊이 분석할 필요는 없겠지만 모차르트 사후, 워낙 젊은 나이에 요절했고, 사체에 붓기가 있었기 때문에 살리에리에 의한 독살이 아니냐는 루머가 계속해서 돌았고 그에 의한 피로로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다. 숨을 거둘 때는 다행히 정신이 온전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러한 독살설을 부정했었다.

  • 다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불화 및 모차르트의 요절 등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게 만들었다는 루머로 번져나갔고, 세월이 지나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희곡(1830년) 및 러시아 음악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오페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Mozart et Salieri)〉(1898)에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인 것으로 설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또한 피터 셰퍼의 희곡 〈아마데우스〉(1979)가 영화화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그런 루머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정작 살리에리 본인은 늘그막에도 모차르트나 그의 유족들에게 사죄한 적은 절대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으며,[40] 모셀레스에게 털어놓은 말을 봐도 생전에 모차르트를 죽게 한 범인으로서 뒤집어 쓴 누명을 참으로 억울해했다.

  •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부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수입도 위치도 불안정했던 모차르트가 궁정 음악가라는 안정적인 위치에 있었으면서 부와 명예를 동시에 누렸던 살리에리를 부러워 했을 것이라는 게 중론. 자신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성 때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으니 더 그랬을지도 가족관계에서도, 영화에서는 살리에리가 평생 독신인듯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살리에리는 결혼도 일찍했고, 자식들도 8명이나 되었다. 정말로 모짜르트에게 꿀릴게 전혀없는 삶을 산게 살리에리다.

  • 영화 속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대해서도 과장된 면이 있다. 그는 즉흥적으로 음악을 작곡해나가는 스타일이었다기보단, 오히려 분석적이고 신중하고 노력하는 면이 돋보이는 음악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KBS 스펀지 등에서 주사위를 던져 작곡했다느니 하는 등의 얘기로 인해 더 왜곡된 이미지가 퍼져버렸다. 물론 주사위를 던져 작곡했다는 에피소드 자체는 '음악의 주사위 놀이(Musikalisches Würfelspiel KV 516f)'에 관련된 실화. 자세한 건 음악의 주사위 놀이 문서 참조. 또 사실 작중에서도 모차르트는 단순히 천재일 뿐 아니라 노력도 굉장히 많이 한다는 점도 부각된다.[41]



9. 감독판[편집]




영화가 개봉되고 약 20년 후에 DVD로 발매될 때 감독판이 나왔다. 극장판과 길이도 제법 차이가 난다. 주로 극장판에 나오지 않는 성적인 장면이 추가된 것이 특징이며, 특히 모차르트 아내의 상반신 전라가 노출된 장면이 포함된 것이 유명하다. 예전에 아마데우스를 극장이나 TV에서 보고 나중에 인터넷에서 다시 아마데우스를 봤을 때 예전에 본 기억이 없는 노출신이 나와 당황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만 해도 이 영화 개봉당시 연소자 관람가. 즉 전연령 관람가였으며 금성비디오에서 2개로 낸 비디오 역시 연소자 관람가 등급이다.

이 영화의 진정한 백미는 과감하고 거침없는 성적 묘사다(...).[42] 영화 초반부에 자살시도를 한 후 정신병원으로 실려간 살리에리를 만나러 간 신부가 정신병원 복도를 지나가는데, 그 때 한 남자가 하반신을 노출한 것이 5초 정도 나온다. 그리고 특히 밀로스 포먼 감독이 편집한 감독판에서는 영화 초반부부터 콜로레도 대주교의 연회에서 처음 만난 콘스탄체 베버를 모차르트가 "똥이나 먹어라" 등의 흠좀무한 대사를 거침없이 날리며 콘스탄체의 가슴을 애무(...)하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 오리지널판에는 이런 씬이 없기 때문에 전체관람가 등급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중반부로 들어가면 더 심해져서 살리에리남편의 악보를 보여주러 온 콘스탄체에게 다과를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다과의 이름이 '비너스의 젖꼭지'(Téton de Vénus)이다. 하얀 설탕을 뿌린 동그란 과자 위에 빨간 산딸기를 올린 간식. 영화에서는 로마산 과 설탕으로 만든, 욕망을 자극하는 간식이라고 설명하는데, 문제는 영화를 찍을 때 쓴 소품이 맛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초보 배우였던 엘리자베스 베리지는 맛이 없었지만 촬영 뒤 뱉어도 되는지 모르고 억지로 꾸역꾸역 먹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렇게 맛있는 과자는 아니다.

이야기가 끝난 후 남편을 잘 봐달라는 콘스탄체에게 살리에리가 "오늘 밤 다시 와요." "왜요?" "어떤 서비스엔 그 대가가 필요하죠. 아니오?" "무슨 뜻이죠?" "뻔하지 않소?" "하지만 저는 유부녀인 걸요." "그러면 오지 마요. 당신의 선택이오." "애매모호하게 하진 않겠소. 그게 대가가 맞아요."란 문답이 오간 뒤에 그녀가 괴로운 표정을 짓다가[43] 그날 밤 다시 살리에리의 집을 찾는데, 막상 그녀가 옷을 벗자 살리에리는 시종을 불러 옷을 벗고 있는 콘스탄체 앞에서 (마치 그녀가 창부인 양) "이 여자를 내보내도록"이라고 차갑게 말하고 나간다. 이후 그녀는 모멸감에 절규하고 모차르트가 올 때까지 오열하고 있다가 그를 보자 "사랑한다"고 반복해 말한다.[44] 감독판 이전 초기 개봉 편집본에서는 이 장면이 통째로 삭제되었다.[45] 그래서 그 이후에 모멸감에 혼자 울고 있는 콘스탄체를 이유로 모른 채 달래주는 모차르트가 나오는 모습을 학생관객들 역시 이유도 모른 채 감상했다.

극장판은 감독판이 아닌 일반판을 만들기 위한 편집 과정에서 통편집 당했지만 시중에 돌아다니는 아마데우스 영상물은 거의 99.99%가 감독판이다. 즉 수위있는 씬들이 그대로 나온다는 소리.[46] 미국에서는 R등급을 받았는데 17세 미만의 경우 부모의 동반이 필수이다. 한국에서는 개봉된 지 약 20년 후 DVD로 재발매될 때 감독판에 포함되면서 공식적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상기된 감독판 설명에 약간의 오류가 있는데, 콘스탄체의 상의 노출을 제외한 다른 내용들은 감독판이 아니라 초기 상영본에 다 포함되었던 장면이다. 정신병원에서 남자 성기가 화면 구석에 노출되는 것도, 모차르트가 콘스탄체와 화장실 유머 후 가슴을 입으로 애무하는 장면도, 비너스의 젖꼭지 과자 등장도 전부 일반판은 물론 한국 극장에서의 편집본에서조차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방영되었다. 감독판에 추가된 장면은 콘스탄체의 노출을 제외하면 성적인 요소들은 별로 없고, 모차르트가 돈이 필요해 고용된 어느 귀족 가정에 들어가 모욕만 당하고 나오는 장면이 가장 길고 나머지는 기타 조금씩 큰 의미 없는 작은 씬들이다.


10. 대중매체에서[편집]


  • 의외로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주요한 소재로 쓰였는데, 6화인 살리에리의 슬픔이다. 영화 자체는 에피소드 하나를 차지했고, 안정훈이 담당한 젊은 교수의 웃음소리 역시 아마데우스의 그것. 카이스트 에피소드 중에서도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라서 검색만 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는 안나의 자작곡을 피아노로 치며 조롱하는 것이나, 침대에 누운 베토벤이 안나에게 곡을 받아 적게 하며 작곡하는 것은 이 영화를 강하게 오마주한 티가 난다. 감독도 DVD 코멘터리에서 다른 음악 영화를 참고한 부분이 있다며 간접적으로 인정하였다.


  • 파일:external/img.imbc.com/tv0000000058024_small.png
개그야에서 동명의 코너를 한 적이 있다. 이 영화의 복장을 한 (사진 왼쪽부터) 고명환, 김완기, 전환규가 등장해서 클래식 음악을 입 모양으로 립싱크하는 코너인데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악기 소리를 립싱크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 90년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영화를 패러디하여 만든 시네마 천국에선 이경규가 살리에리를 맡았는데 제법 늙은 분장을 잘 했다. 살리에리가 마지막에 모차르트가 마지막까지 작곡하던 그 곡이 바로 이 곡이라는데 당시 MBC 로고송이었다(...). 그것도 아마데우스 오페라 해외공연 씬에 립싱크하며 맞춘 장면이라 더 골때리게 만들었다. 더불어 손창민이 모차르트로 나왔는데 영화 마지막에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미치도록 웃는게 명연기. 우습게도 손창민은 나중에 신돈(드라마)에서 신돈으로 나왔는데 밈으로 나온 언제까지 그따위로 살텐가?를 보면 이게 떠오른다.



11. 명대사[편집]


나는 세상의 모든 평범한 이들을 대변하오. 나는 그들의 챔피언이자 수호성인이지.[47]

영화 결말부에서 살리에리가 자신의 증언을 끝내고서, 그것을 계속 듣던 신부에게 남긴 말. '천재를 질투한 평범한 사람'으로서, 살리에리의 극중 캐릭터를 요약하고 있다.


용서해 주십시오, 폐하. 저는 천박한 놈이 맞습니다. 하지만 제 음악은 그렇지 않아요.[48]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 작곡을 허락받기 위해 프란츠 황제, 선배 궁정 음악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상스러운 단어, 표현을 써서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사과하면서 한 말. 자기 분야에서는 천재적이었지만, 개인으로서는 부족한 면이 적지 않았던 모차르트의 인간적 특징을 보여준다.[49]



12. 기타[편집]


  •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한 내용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영화에서는 살리에리가 이미 신체적으로 병약해진 모차르트에게 정신적 부담을 가중시켜 건강을 악화시키고, 결국 죽음에 이르도록 한 것으로 묘사된다. 살리에리의 행동을 독으로 해석한다면 정신적 독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 영화 상에서 모차르트는 죽을때 살리에르에게 매우 고마워하며 죽었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압도적인 천재성에 대한 자신감이 도가 지나쳐 살리에르를 포함한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들, 그리고 다른 모든 이들을 무시했다. ("또 이탈리아인들, 항상 이탈리아인들이죠. 그 놈들은 음악적으론 머저리들이란 말입니다!") 하지만 본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발레가 송두리째 삭제되어 오페라가 엉망이 될 것을 우려하자 그나마 같은 작곡가인 살리에르에게 찾아가 호소를 했고 (심지어 발레가 잘려나간 것도 살리에르가 부추긴 일), 살리에르는 황제께 직접 부탁드리겠다며 그를 안심시키지만, 당연히 안 했다. 그러나 우연히도 황제가 진짜로 오페라 리허설을 보러왔고, 발레 파트에선 음악이 멈추고 무음 속에 춤을 추는 괴상한 장면을 본 황제는 이를 시정하도록 명령한다. 이때 보면 모차르트가 살리에르를 보며 기쁨을 애써 감추면서 눈짓으로 감사하고, 그는 어색한 표정으로 이를 받는다.[50] 또한 모차르트의 임종 직전 그의 오페라를 보던 살리에르가 그를 데려가 돌봐주며, 힘이 다한 모차르트 대신 악보에 장송곡을 받아적어준다. 즉, 모차르트가 이해하기로는 살리에르는 (본인과 앙숙임에도) 자신의 오페라를 살려준 은인이자, 알고 보니 자신의 오페라를 인정해 매번 관람하다, 결국 자신이 쓰러졌을 때 구해다 병수발도 해주고, 작업도 도와준 특대인배인 것이다. 이 때문에 모차르트는 죽기 직전 허탈하게 웃으며 (자신에 대한 경멸로 보인다) "제가 당신을 오해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용서해주세요..."라고 진심으로 뉘우친다.
물론 이상은 전부 영화 상의 창작. 현실의 살리에르는 항목에도 나와있다시피 재능도 인성도 명망도 모두 훌륭한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으며, 그가 모차르트를 시기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 있던 것뿐..

  • 실제 야외 촬영은 주로 체코 프라하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자유화가 이루어지기 전으로 18세기 유럽의 도시의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있던 도시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에서 드러나듯 그냥 길거리에 사람들이 18세기 복장만 하고 나왔는데도 전혀 위화감없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당시 공산권 국가였던 체코는 어렵게 촬영허가를 내주긴 했지만 비밀요원들을 통해 촬영팀을 감시했다고 한다. 감독인 밀로쉬 포르만부터 체코 시절 공산당을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었고, 아예 프라하의 봄 때 미국으로 망명했다. 아마데우스의 군중으로 출연하는 엑스트라들 가운데도 당시 비밀요원들이 있다고 한다. 실제 당시 빈은 영화에 나온 프라하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랫동안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빈은 프라하보다 화려한 궁궐, 성당, 극장들을 갖추고 있었다. 어쨌든 간에 완성도로 보나 영상미로 보나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 영화에서 묘사한 오페라는 <후궁으로부터의 도피>,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돈 조반니>이다. 단, 영화상이므로 중요한 클라이막스 장면만 보여주는데[51] 이미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수준이다.

본 영화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는 주연배우 톰 헐스의 웃음연기 모음 영상.

  • 영화의 주연인 F. 머레이 에이브러햄톰 헐스의 연기는 실로 대단했다. 둘 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었고[52], 살리에리 역의 F. 머레이 에이브러햄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보통 유튜브 아카데미 채널의 댓글란을 보면 각 해의 시상 부문마다 누가 받았어야 했다, 잘못된 선택이다 등 이견을 가진 댓글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57회 남우주연상 부문은 사실상 대동단결 분위기다. 댓글의 톰 헐스와 공동수상 드립도 태클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두 배우의 연기는 엄청났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F. 머레이 에이브러햄은 수상 소감으로 "오늘 수상에 부족한 게 하나 있다면 톰 헐스가 제 옆에서 영광을 함께 나누지 못한 거다."라고 밝혔다.

  • 하지만 둘 다 이 영화에서의 이미지가 너무나 강했던 탓인지, 후속 영화에서는 크게 성공하진 못했다. 게다가 둘 다 연기 활동 초기에 맡으면서 이미지가 그 쪽으로 고정되기도 했고. 이 때문에 F. 머레이 에이브러햄은 훗날 나온 라스트 액션 히어로에서 모차르트를 죽인 놈이라고 배우개그를 친다.

  • 영화 중에서 직접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몇 번 나오지만 톰 헐스는 원래 피아노를 전혀 치지 못했다고 한다. 영화에 캐스팅되고 나서 몇 개월 동안 연습한 실력이었고, 촬영 기간 중에도 내내 피아노를 연습해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피아노를 전혀 치지 못했던 사람치고는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 감독이 놀랐다고 한다.


  • 콘스탄체 모차르트 역은 원래 중국계 미국인 배우인 맥 틸리[53]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촬영 전날 축구를 하다가 인대[54]를 다쳐 정작 촬영하진 못하고 미국에서 급하게 캐스팅 된 배우가 바로 엘리자베스 베리지이다. 그래도 결국엔 밀로스 포먼 감독의 다음 작품인 <발몽>(Valmont, 1989)에서 여주인공을 맡게 되었다. 링크 맥 틸리는 콜린 퍼스의 옛 연인이었으며 발몽을 촬영하던 도중 교제하면서 아들도 하나 낳았다. 하지만 5년 만에 결별했다.

  • 모차르트가 활동했던 시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로코코 시대의 의상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의상 관련 리포트를 쓴 사람들이 좀 있다.

  • 작중 등장인물들이 음식을 먹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특히 디저트나 다과가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보다보면 뭔가를 먹고 싶을 생각이 들 정도.[55]

  • 2015년 10월 29일 감독판으로 재개봉되었다. 링크

  • || 파일:amadeus directors cut.jpg ||
    피터 시스(Peter Sís)가 디자인한 포스터가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유명하다.

    • 2016년 10월 16일 영국 런던 로열 알버트 홀에서 <아마데우스>를 상영했으며 100여 명의 오케스트라, 합창단의 라이브 연주가 함께 하는, 아마데우스 라이브가 처음으로 공연되었고, 2016년 12월 16일에 한국에 초연되었다.



    13. 외부 링크[편집]



    [1] 2002년 편집[2] 제작자와 제작사 이름(정확히는 제작사 이름은 사울 자엔츠 컴퍼니)이 같다. 사울 자엔츠(1921~2014) 프로듀서는 제작자로서 1개도 받기 어려운 아카데미 작품상을 무려 3개나 받았다. 나머지 2개는 밀로스 포먼 감독의 75년 작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안서니 밍겔라의 96년 작인 <잉글리쉬 페이션트>. 여담으로 마지막으로 제작자에 참여한 영화도 밀로스 포먼 감독의 2005년 작인 <고야의 유령>이다. 보통 솔 제인츠라는 영어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밀로스 포먼과 마찬가지로 유태인이다.[감독판] A B [재개봉] [3]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시기한 나머지 그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는 것.[4] 각색상,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굵직한 부문을 휩쓸었다. 그 외 미술, 의상, 분장, 음향효과상 등[5] 서울에서는 강북의 명보극장과 강남의 씨네하우스에서 상영했는데 당시 개관한지 얼마 되지않았던 씨네하우스가 음향 시설이 좋아서 아마데우스 감상에 적합하다는 소문과 함께 단숨에 유명해지기도 했다.[6] 전형적인 액자식 구성이라 할 수 있다.[7] 오프닝 시퀀스에서 사용된 음악은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1악장이다.[8] 정신병원 직원으로 나온 배우 중에서 슈크림에 빵을 찍어먹는 직원으로 나온 배우는 빈센트 스치아벨리(1948~2005). 사랑과 영혼에서 지하철 유령으로 나온 바 있으며, 맥가이버,엑스파일 같은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나왔고 007 네버 다이에서 악역인 카우프만,배트맨 2에서 펭귄의 부하인 오르간으로 나온 바 있다.[9]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의 1악장을 피아노로 간소화한 버전이다.[10] 극중에서는 고해 신부에게 하는 이야기이지만, 결국에는 이 영화를 보는 오늘날의 관객에게 하고싶은 하소연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살리에리의 음악은 거의 모르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점은 극중 신부나 무려 200년이나 지나서 제작된 이 영화의 관객들이나 다를바 없으니. [11] 살리에리의 아버지 프란체스코는 돈만 밝히고 예술에 대해선 1도 모르는 천박한 인물로 아들에게 기억되고 있었는데, 살리에리는 신에게 내 앞길을 가로막는 아버지 좀 데려가달라고 기도했고, 얼마 지나지않아 프란체스코가 식사 중 음식이 목에 걸려 급사했고, 그 때부터 살리에리는 자신을 신의 사도라 생각하게 되었다.[12]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처음 보는 신에서 그는 그 유명한 모차르트가 온다는 말에 기대를 품고 어떤 인물일까 상상하면서 기다리다가, 한 젊은 남녀가 테이블 밑에서 연애질을 하며 낄낄거리는 것을 우연히 본다. 그런데 갑자기 그 중 남자가 밖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듣고 "내 곡이야"라고 허겁지겁 나가는 모습을 보고 그가 모차르트란 걸 알아챈다. 이후 그의 악보를 보며 경이로워하다가 독백으로 "대체 왜? 왜 신께서 자신의 악기로 이런 음란한 아이를 택하셨을까. 믿을 수 없어! 이 곡은 우연일거야. 그래야만 해!"라고 한다.[13] 모차르트가 황제를 방문할 때 살리에리는 짧은 환영행진곡을 준비했고, 이 곡의 악보를 본 황제가 모차르트 입장시 직접 피아노로 연주한 후 모차르트에게 기념으로 악보를 갖고 가라고 하자, 모차르트는 악보는 필요없다고 하면서 이미 머리속에 다 들어왔다고 말한다. 이에 황제가 설마하는 표정으로 모차르트에게 직접 연주해 보라고 하였고, 모차르는 곧바로 너무나도 쉽게 이 곡을 암보로 연주하면서 더 나아가 즉석에서 훨씬 뇌리에 남는 멜로디로 변주를 한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를 바라보며 왜 애초에 이렇게 작곡하지 않았는지를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물으면서 특유의 웃음을 터뜨린다.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최선을 다해 한땀한땀 작곡한 곡이 이렇게 손쉽게 모차르트에 의해 자신이 느끼기에도 더 좋은 곡으로 바뀌는 것을 지켜보는 살리에리의 당혹한 표정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없이 자신의 음악에 대한 천재성을 거침없이 표출하는 모차르트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향후 두 사람의 관계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해주는 명장면 중의 하나.[14] 당시 성악계에서는 이탈리아어만 사용했으며, 천한 독일어로 오페라로 부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다. 독일어 오페라가 고전이 된 현대 기준으로도 본작에서처럼 미국영어로 오페라를 부르는데 대한 반감이 큰 것과 비슷하다.[15] 단 이 경우는 황제 본인이 현지화를 추구하는 개혁주의자라 독일어로 오페라를 써야한다는 주장에 공감을 하고 있어서 궁정 소속의 고위 음악인들 역시 떨떠름해도 대놓고 반대는 못했기에 어느 정도 넘길 수 있었다.[16] 사실 오페라의 원본 희곡조차 황제가 금지시킨 작품이었다. 이유는 희곡의 내용이 신분제를 부정하기 때문. 작품이 나온 프랑스에서도 골치를 썩히고 있다는 언급이 나온다. [17] 살리에리는 분통을 터뜨리는 모차르트와 대화하던 도중 "황제께 직접 말씀드리면 되지 않겠나"하고 자기가 대신 부탁을 하겠다는 언질을 주지만, 당연히 황제에게 고하진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도 살리에리가 연습을 보는 도중에 진짜로 황제가 행차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발레가 금지되었기에) 오페라 도중 음악이 갑자기 멈추고 무반주로 안무가들이 춤을 추는 괴악한 모습을 바라보던 황제가 당장 발레 금지령을 철폐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살리에리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는 모차르트는 이를 두고 살리에리에게 눈빛으로 감사하고, 살리에리가 떨떠름하게 받는 장면이 나온다.[18] 감독인 밀로스 포먼 감독과 원작자인 피터 셰퍼의 코멘터리에 따르면, 가면속의 남자가 시종인 것을 암시하기 위해 분장을 하는 사람이 손에 하얀 장갑을 끼고 있는 것이 보이도록 연출했는데, 사람들은 모두 이 남자가 살리에리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사실 당연한 게 상식적으로 시종이 물건을 샀으면 주인이 쓰려고 시종을 시켜서 산 거라고 생각하지, 시종이 직접 쓰려고 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영화 비중 상으로도 단역에 불과한 시종에게 그런 역이 할당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더빙판에서는 살리에리의 목소리로 나온다.[19] 이전 파트인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지휘할 때도 표정이 좋지가 않았다. 지휘하는 것도 이전과 달리 다급하고 힘도 없어보이는데다 겨우겨우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20] 모차르트에게 마술피리의 대본을 구해줬던 인물로 실존 인물이다. 자세한 것은 마술피리 참조.[21] 작곡장면. 모차르트의 작곡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여 화를 내며 소리를 치지만, 동시에 그 실력에 감탄하여 자신도 열중하고 마는 살리에리의 모습이 명장면이다. 동시에 모차르트의 작곡 의도를 금세 파악하고 악보를 작성하는 모습에서 사실은 그도 상당한 능력가요, 재능이 있었다는 부분을 엿볼 수 있다.[22] 모차르트 입장에선 살리에리의 흉계를 알리가 없고, 오히려 자신을 위해 황제에게 부탁을 해주거나 탈진한 자신을 진심으로 도와주는 은인인 셈이다. 반면 모차르트는 파티에서 살리에리를 흉내내는 등 자신보다 재능이 떨어지면서 높은 직위에 있는 그를 비웃어왔기에 죄책감을 느끼며 용서를 구한 것. 관객들 입장에선 아이러니한 장면이다.[23] 모차르트가 본인의 능력을 과신하여 스스로 프리랜서 음악가로 전업을 하자 생계를 걱정한 콘스탄체가 살리에르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이때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에 대한 질투로 인하여 콘스탄체에게 밤에 몰래 성상납을 요구하는 듯한 뉘앙스로 자신에게 다시 찾아 올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콘스탄체가 다시 밤에 찾아오자 그저 모차르트를 모욕하고 하고 싶었을 뿐이었던 살리에르는 콘스탄체가 알몸이 된 순간 바로 종을 울려 하인에게 나체가 된 콘스탄체를 보이게 한뒤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이런 모욕을 당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콘스탄체가 살리에르를 좋아하지 않고 있었다.[24] 그리고 이 라크리모사는 모차르트가 완성하지 못한 레퀴엠의 일부다. 극 중 나오는 라크리모사는 그런 모차르트의 미완성 부분과 제자 쥐스마이어가 뒤이어 완성시킨 부분들이다.[25] KBS 1TV에서 1995년 1월 29일 명화극장에서 첫 방영했다. 1997년 6월 14일 토요명화에서 재방영한 후 2011년 9월 10일 추석특선영화로 삼방영했다.[26] 1989년 12월 2일 MBC 창사특집 영화로 방영했었다. KBS1판보다는 6년 앞서 방영한 셈.[27] 둘 다 역시 명연기를 보여주었다. 양지운의 경우 자신의 저서 <당신의 감춰진 매력, 목소리로 업그레이드하자>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배역 중 하나였다고 언급했을 정도. 물론 배한성의 모차르트 역에도 높은 평가를 내렸다.[28] KBS1, MBC 양쪽 모두에서 더빙. 초월더빙이라 평가받는다. 더빙 당시 톰 헐스의 그 기괴한 웃음소리를 도저히 흉내낼 수 없을거라 판단한 PD가 웃음소리만큼은 원음 그대로 가자고 했지만 배한성 본인이 그렇게 하면 의미가 없다고 하며 설득해 관철시켰다고 한다. 실은 예전에 극장에서 아마데우스를 보고서 그 웃음소리를 연습했다고. 그래서 나온 것이 지금의 충격과 공포의 웃음소리. 배한성과 양지운 둘 다 공감토크쇼 놀러와의 성우 특집인 '신의 목소리'에서 게스트로 참여해서 이 영화의 바로 그 웃음연기를, 양지운은 살리에리의 목소리를 살짝 재현했다.[29] 나중에 베토벤의 초기 후원자가 되어서 교향곡 제1번이 이 사람에게 헌정되었다.[30] 섹스 앤 더 시티의 미란다 홉스.[31] 감독판 코멘터리는 황제가 모든 사람들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그의 대사를 중의적 표현이나 간접적 의사표현으로 연출했다고 밝혔다.[32] 그러나 살리에리에 따르면 이 사람의 하품 횟수로 오페라의 평판과 운명이 판가름났다고 한다. 그래도 황제가 하품을 한 번만 했다면 조금 타격은 입어도 음악 일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지만, 두 번하면 길어야 일주일이고 세 번하면 그날로 끝이었다고.[33]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초연을 들은 직후의 요제프 2세 황제도 이 말을 써먹었다.[34] 영화에서는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차남인 프란츠 크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는 이 당시에 나이가 6~7개월 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추정한다.[35] 이버트는 이 영화를 위대한 영화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36] 근데 이게 일반인이나 통용되는 거지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살리에리는 대부분 안다. 아니,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유별나게 유명한거지 거장으로 불리는 음악가 중 일반인에겐 비교적 생소한(예: 부조니, 사티, 바르톡, 쇤베르크)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둘도 음악이 자주 쓰여서 부분부분과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이지. 그러니까 살리에리도 현재까지 대우받는 음악가다.[37] 살리에리가 궁중음악가여서 대중의 명성이 적었다는 것은 오류다. 바로크는 엄연히 한 시대를 풍미한 클래식의 한 장르이며 헨델도 궁중음악가였는데 유명하지 않은가.[38] 모차르트가 오스트리아 황실 궁내상서에게까지 글루크는 2000 굴덴을 받는데 난 600 굴덴밖에 못 받는다고 징징거리다가 욕을 거하게 쳐먹은 적도 있다. 글루크는 당대 유명 음악가에 모차르트보다 무려 42살이나 나이가 많은 대선배고, 오스트리아 황실에서 25년 넘게 일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당시 20대의 애송이에, 황궁 음악가로 갓 들어온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받은 연봉 600굴덴도 웬만한 고위 공직자 수준이다.[39] 영화에서도 살리에리가 궁핍하게 사는 것으로 묘사되진 않는다. 호화로운 저택에 하인들도 있고, 하인들이 당시로썬 귀했을 크림과 빵을 간식으로 대령한다. 정신병원에서도 다소 깨끗한 독방을 쓰는 등 잊혀졌지만 부는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40] 영화에서는 부각되지 않았지만, 원작인 희곡을 보면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 탓에 자책하고 자살 시도를 한 것이 아니다. 극 중 평생 명성을 갈구한 살리에리가 죽어서도 '모차르트의 살해자'라는 '명성'을 얻고자 한 일이었다.[41] 묘사가 어물쩡하게 나와서 그렇지, 사실 모차르트의 아내가 살리에리에게 모차르트가 밤낮으로 쉴세없이 악보를 쓰며 일한다고 하소연하는 장면이나 살리에리에게 고용된 하녀가 모차르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리에리에게 보고할때도 저녁때 까지는 꼼짝않고 악보를 쓰고만 있다는것으로 이를 짐작할 수 있다.[42] 실제로도 모차르트는 다소 드러운 변태적인 성취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43] 누가 봐도 살리에리의 요구는 성상납이다.[44] 원작에서는 모차르트가 자신이 가르치던 카테리나 카발리에리와 잤다고 여긴 살리에리가 복수하자고 공주의 음악교사 채용을 빌미로 콘스탄체를 유혹하는데 이를 눈치챈 콘스탄체는 화를 내고 돌아갔다. 그 뒤론 찾아오지 않고 이후 모차르트가 살리에리한테 이유는 모르지만 콘스탄체가 살리에리를 껄끄러워 하는 거 같다고 언급된다.[45] 삭제된 이유는 해당 장면에서 콘스탄체가 옷을 벗을 때 가슴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등급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사춘기 아이들에게는 이 유두 노출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뇌리에 박힐 정도이다.[46] 이 영화가 음악 영화 중에서는 거의 교과서 취급을 받는 작품인지라 학교 음악시간 때 높은 확률로 틀어주는데 이 부분에서 학생들은 말그대로 뒤집어진다. 노출 정도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심한 파리넬리는 애시당초부터 19세 관람가지만 이 영화는 감독판이 12세 이용가임에도 불구하고 수위가 높다. 덕분에 이 노출 장면에서 상당히 당황한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당장 네이버에 '아마데우스'라고 검색하면 이 작품의 노출 장면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할 정도니...... 그러나 자체 검열하는 학교도 있는 듯. 실제로, 어느 남고에서는 콘스탄체의 특정 부분에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영상과 음악 선생의 녹음된 찰진 욕설을 조그맣게 끼워 맞춰 그 부분만 검열한 채 틀어줬다. 다만 이 선생은 2015년 1학기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임했으므로 앞으로 후배들이 이 버전의 영상을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다른 남고에서는 그 부분을 완전히 삭제한 채로 틀어준다. 하지만 모 여고에서는 음악시간에 그대로 틀어줬다. 예외가 있듯이 예술은 예술자체로만 받아들여야 한다며 있는 그대로를 틀어주시는 선생들도 있다. 사실 초반부의 애무 장면은 그렇다쳐도 중반부 살리에리와 콘스탄체의 끈적한 씬에선 남학생들도 워낙 분위기에 눌려 별 반응이 없다.[47] 원 대사는 다음과 같다. "I speak for all mediocrities in the world. I am their champion. I am their patron saint."[48] 원 대사는 다음과 같다. "Forgive me, Your Majesty. I am a vulgar man. But I can assure you that my music is not."[49] 어떤 면에서는 극중에서 모차르트에 대한 살리에리의 태도를 나타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 인간으로서의 모차르트에게는 지독한 질투심을 가졌지만, 모차르트가 작곡한 곡들의 가치는 누구보다도 높게 인정했기 때문이다.[50] 그러나 초연 때 황제가 하품을 한번 하면서 피가로의 결혼은 9번만 공연하고 끝나버린다.[51] 이 때문에 작중에 나온 살리에리의 오페라도 피날레만 보여줬다.[52]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정치력이 성과만큼이나 중요해진 현재는 스튜디오에서 애초에 같은 영화에서 똑같은 부문에 복수의 후보를 내보내지 않는다. 팀킬을 막고 수상확률을 높이기 위해 비중과 무관하게 주연급 배우를 조연상후보로 내보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점에서 F. 머레이 에이브러햄의 수상은 더욱더 값진것.[53] 1960년생 배우로 임신한 수녀에 대한 영화 신의 아그네스에서 임신한 수녀 아그네스로 나온 배우.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언니 제니퍼 틸리도 배우이며, 둘 다 핏줄만 중국계지 외모는 동양인 느낌이 살짝 나긴 하지만 거의 백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54] 5개월을 기다렸어야 할 정도의 큰 부상이었다.[55] 오프닝부터 방 안에 쳐박힌 살리에르를 그의 지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방문을 열라고 협박하다가 그를 달래기 위한 간식을 하나 집어먹으면서 "음~ 제가 먹어본 것 중 제일 맛있네요. 선생님 당장 문 안 여시면 이 간식을 제가 전부 먹어치워버리겠습니다"고 협박하고, 옆에서 하인이 또 몰래 훔쳐먹는다. 위에 언급된 '비너스의 젖꼭지'도 살리에리의 묘사나 눈치보며 계속 집어먹는 콘스탄체가 정말 맛깔스럽게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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