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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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0.3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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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color=#FFD860,#785545> [[네 황제의 해]] ||<-3>[[갈바]] |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 [[비텔리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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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color=#FFD860,#785545><|2>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3>[[네르바]] | [[트라야누스]] | [[하드리아누스]] | [[안토니누스 피우스]] | 공동 즉위 [[루키우스 베루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콤모두스]] ||
||<-3>비정통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
||<bgcolor=#FFD860,#785545> [[다섯 황제의 해]] ||<-3>[[페르티낙스]] |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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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color=#FFD860,#785545> [[군인 황제 시대]] ||<-3>[[막시미누스 트라쿠스]] | 공동 즉위 [[고르디아누스 1세]] · [[고르디아누스 2세]] | 공동 즉위 [[푸피에누스|푸피에누스(막시무스)]] · [[발비누스]] | [[고르디아누스 3세]] | [[필리푸스 아라부스]] · [[필리푸스 2세]] | [[데키우스]] | 공동 통치 [[데키우스]] ·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 공동 즉위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 [[호스틸리아누스]] · [[볼루시아누스]] | [[아이밀리아누스]] | 공동 즉위 [[발레리아누스]] · [[갈리에누스]] |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 [[퀸틸루스]] | [[아우렐리아누스]] | [[타키투스(황제)|타키투스]] | [[플로리아누스]] | [[프로부스]] | [[카루스]] | 공동 즉위 [[누메리아누스]] · [[카리누스]] [br] 비정통 [[스폰시아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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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우스 1세]] |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 [[막센티우스]] | 2차 재위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누스 1세]] ||<width=22%><bgcolor=#FFD860,#785545> [[사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 [[갈레리우스]] | [[리키니우스]] | [[막시미누스 다이아]] | [[발레리우스 발렌스]] | [[마르티니아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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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통 [[에우게니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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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통 [[콘스탄티누스 3세]] · [[프리스쿠스 아탈루스]] · [[요안네스]] ||
||<bgcolor=#FFD860,#785545> 최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 [[아비투스(로마)|아비투스]] | [[마요리아누스]] | [[리비우스 세베루스]] | [[안테미우스]] | [[올리브리우스]] | [[글리케리우스]] | [[율리우스 네포스]]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bgcolor=#FFD860,#785545> 레오 왕조 ||[[레오 1세(황제)|레오 1세]] | [[레오 2세(황제)|레오 2세]] | [[제노(로마)|제노]] | [[바실리스쿠스]] · [[마르쿠스(바실리스쿠스의 아들)|마르쿠스]] | 2차 재위 [[제노(로마)|제노]] ||
||<-4><bgcolor=#EE9021,#B87A00> '''{{{#FFF 동방}}}''' ||
||<bgcolor=#FFD860,#785545> [[레오 왕조]] ||<-3>2차 재위 [[제노(로마)|제노]] | [[아나스타시우스 1세]] ||
||<bgcolor=#FFD860,#785545>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3>[[유스티누스 1세]] | [[유스티니아누스 1세]] | [[유스티누스 2세]] | [[티베리우스 2세]] | [[마우리키우스]] · [[테오도시우스(마우리키우스의 아들)|테오도시우스]] ||
||<bgcolor=#FFD860,#785545> - ||<-3>[[포카스]] ||
||<bgcolor=#FFD860,#785545> [[이라클리오스 왕조]] ||<-3>[[이라클리오스]] | 공동 즉위 [[콘스탄티노스 3세]] · [[이라클로나스]] · [[다비드 티베리오스]] | [[콘스탄스 2세]] · [[콘스탄티노스 4세]] · [[이라클리오스(콘스탄스 2세의 아들)|이라클리오스]] · [[티베리오스(콘스탄스 2세의 아들)|티베리오스]] | [[유스티니아노스 2세]] ||
||<bgcolor=#FFD860,#785545> [[20년간의 혼란]] ||<-3>[[레온티오스]] | [[티베리오스 3세]] | 2차 재위 [[유스티니아노스 2세]] | [[필리피코스]] | [[아나스타시오스 2세]] | [[테오도시오스 3세]] ||
||<bgcolor=#FFD860,#785545> [[이사브리아 왕조]] ||<-3>[[레온 3세]] | [[콘스탄티노스 5세]] | [[아르타바스도스]] · [[니키포로스(아르타바스도스의 아들)|니키포로스]] | 2차 재위 [[콘스탄티노스 5세]] | [[레온 4세]] | [[콘스탄티노스 6세]] | [[이리니]] ||
||<bgcolor=#FFD860,#785545> [[니키포로스 왕조]] ||<-3>[[니키포로스 1세]] | [[스타브라키오스]] | [[미하일 1세 랑가베스]] · [[테오필락토스(미하일 1세 랑가베스의 아들)|테오필락토스]] · [[스타브라키오스(미하일 1세 랑가베스의 아들)|스타브라키오스]] ||
||<bgcolor=#FFD860,#785545> - ||<-3>[[레온 5세]] · [[콘스탄티노스(레온 5세의 아들)|콘스탄티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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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color=#FFD860,#785545> [[마케도니아 왕조]] ||<-3>[[바실리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바실리오스 1세의 아들)|콘스탄티노스]] | [[레온 6세]] | [[알렉산드로스 2세]] | [[콘스탄티노스 7세]] | [[로마노스 1세]] · [[흐리스토포로스 레카피노스]] · [[스테파노스 레카피노스]] · [[콘스탄티노스 레카피노스]] | [[로마노스 2세]] | [[니키포로스 2세]] | [[요안니스 1세]] | [[바실리오스 2세]] | [[콘스탄티노스 8세]] | [[로마노스 3세]] | [[미하일 4세]] | [[미하일 5세]] | 공동 즉위 [[조이(로마)|조이]] · [[테오도라(11세기)|테오도라]] | [[콘스탄티노스 9세]] | 2차 재위 [[테오도라(11세기)|테오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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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color=#FFD860,#785545> [[팔레올로고스 왕조]] ||<-3>[[미하일 8세]] | [[안드로니코스 2세]] | [[미하일 9세]] | [[안드로니코스 3세]] |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요안니스 6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안드로니코스 4세]] · [[요안니스 7세]] | 3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7세]] · [[안드로니코스 5세]] | 4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마누일 2세]] | [[요안니스 8세]] | [[콘스탄티노스 1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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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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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AVGVSTVS


파일:아우구스투스 석상.jpg

이름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투리누스[1]
CAIVS OCTAVIVS THVRINVS[2]
출생
기원전 63년 9월 23일
로마 공화국 로마 시
사망
기원후 14년 8월 19일 (향년 76세)
로마 제국 이탈리아 속주 놀라[3]
재위 기간
로마 황제
기원전 27년 1월 16일 ~ 기원후 14년 8월 19일
(40년 7개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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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호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IMPERATOR CAESAR DIVI FILIVS AVGVSTVS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1]
Imperator Caesar Augustus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2]
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
신장
175cm[3]
가족
가이우스 옥타비우스(아버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양아버지[4])
아티아(어머니)
소 옥타비아(누이)
부인
클로디아 풀크라(첫째 부인)
스크리보니아(둘째 부인)
황후
리비아 드루실라
자식
대 율리아[5]
가이우스 카이사르(양아들)
루키우스 카이사르(양아들)[6]
티베리우스(양아들)
영묘
아우구스투스 영묘
종교
로마 다신교
왕조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1. 개요[편집]


Marmoream relinquo, quam latericiam accepi.

나는 벽돌로 지어진 로마를 발견해 대리석의 로마로 남겨 두었다.[4]

아우구스투스

로마 공화정의 마지막 프린켑스 세나투스(원로원 제1인자), 로마 제정의 초대 황제(임페라토르)이자 로마 제국의 첫 번째 왕조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The Julio-Claudian dynasty)"의 개창자이다.

본인 스스로는 한번도 황제, 왕을 자처하지 않았으나, 역대 로마의 프린켑스 중 "프린켑스 = 종신 임페라토르"라는 공식을 만들고 이를 아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자신의 혈육들에게 합법적으로 승계해 프린키파투스(원수정)[5]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후대 로마인과 역사가들에게 로마 최초의 황제, 유럽 최초의 황제로 평가받는다. 태어날 당시 이름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투리누스, 종신독재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 · 후계자로 지명 후 개명한 정식 이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기원전 40년 이후 새롭게 사용한 새로운 이름은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다.

카이사르의 누나 율리아의 외손자[6]로, 3월 15일(이두스 마르티아이)[7] 이후 카이사르 유언장에 따라 그의 양자이자 후계자가 되었다. 기원전 43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와 연합해 제2차 삼두정치 시대를 열었고, 이후 최후의 경쟁자였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의 오랜 내전은 기원전 31년 9월 2일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면서 사실상 끝나게 된다.

옥타비아누스는 이때 로마 세계의 권력을 거머쥐었는데, 안토니우스와 연합한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멸망시킨 뒤 이집트를 로마의 영토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공화정 로마는 사실상 제정으로 변하게 된다. 기원전 27년, 내전이 종결되었으므로 자신에게 위임된 비정규적 특권을 원로원과 로마 시민에게 반납한다고 선언하면서 로마를 형식상 공화정 체제로 되돌리는 선언을 했고, 이에 원로원은 그에게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는 존칭을 부여했다. 따라서 이때부터 옥타비아누스는 본명 대신 아우구스투스라고 불리게 된다.

서기 4세기까지 모든 로마 황제가 사용한 표준 제호의 기준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공식 직함에서 가이우스 율리우스를 공문서상 대체할 칭호로 '임페라토르 카이사르(IMPERATOR CAESAR)'의 표준 명칭을 처음 제시하면서, 원로원이 기원전 27년 1월 16일 준 존칭 아우구스투스(AVGVSTVS)까지 모두 로마 황제 칭호의 표준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살아있던 시절, 전임자였던 카이사르처럼 임페라토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보다는 자신을 단지 "제1의 시민(Princeps, 프린켑스)"[8][9]으로 자칭했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 27년부터 서기 14년까지이며, 외치에서는 히스파니아 북부, 이집트, 달마티아, 판노니아, 노리쿰, 라이티아를 합병하고 파르티아와의 교섭으로 카르헤 전투 때 빼앗긴 군단기를 찾아왔으며 내치에서는 조세 제도를 개편하고 속주와 이탈리아에 걸친 도로망을 구축했고, 상비군, 근위대, 경찰청, 소방청 등을 신설하고 군을 감축하고 대우를 개편했으며 여러 공공 시설을 확충하여 로마市의 많은 부분을 재개발했고 시민과 군에 수차례 세스테르케스를 기증하는 등 공인으로서도 숱한 업적을 세웠다. 죽기 한 달 전에는 업적록 저술을 마치고 죽은 뒤 원로원과 민회에 의해 신격화되었다. 이후 모든 로마 황제들은 황제명에 아우구스투스가 사용한 존칭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개인성씨 ‘카이사르’를 제호에 넣어 사용했다[10]. 또한 그를 기념하기 위해 기존의 "여섯 번째 달(Sextilis)"을 "아우구스투스"(Augustus: 존엄한 자)로 바꿔 불렀다.[11] 그의 뒤는 아내 리비아 드루실라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큰 아들이자 아우구스투스의 양자인 티베리우스가 물려받았다. 옥타비아누스의 친구이자 유능한 군사적 조력자였던 장군 아그리파도 유명하다. 군재는 아그리파에게 맡긴 만큼 부족했지만 집권 과정과 공공 사업은 모두 대성시킨 덕에 정치질에 있어서든 진짜 정치에 있어서든 서양사에서 손꼽히는 능력자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팍스 로마나 또한 그가 내전을 끝내고 개관했기 때문에 아우구스타로 불리기도 한다.


2.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아우구스투스/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단명한 후계자들[편집]


거의 반세기 동안 성공적으로 재위 기간을 지켰고, 성공했음에도 긴 재위 기간을 가져간 훌륭한 통치자들이 대개 그렇듯 후계자들이 단명했다. 특히, 그의 경우에는 자신이 직접 정한 친혈육과 양자까지 모조리 요절하면서 끝내 티베리우스에게 제위를 물려줬다고 평가받는다. 또 그가 살아생전 정한 후계자들은 양자 티베리우스 사후 제위를 약속받은 두 혈육까지 티베리우스 대에 모두 요절하는 비극을 경험했다.[12] 그래서 티베리우스 사후 아우구스투스의 친혈육 남성 중 모든 음모 끝에 생존한 사람은 겨우 3명이었다.[13]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는 외종조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유언장에 따라 양자가 됨으로써, 외할머니 가문인 율리우스 씨족 일원이자 유일무이한 후계자가 됐다. 하지만 4번의 결혼 생활 중 친아들은 얻지 못했고, 딸도 단 한 명뿐이었다. 이에 아우구스투스는 결혼과 입양을 통해 이런 약점을 보완코자 했다. 따라서 아내의 본가, 누나의 시댁, 두 양자의 본가인 클라우디우스 가문들과의 결합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가문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 즉 카이사르 가문을 완성했다. 아우구스투스 일가라고도 불린 이 가문은 마르켈루스와 네로 가문이라는 클라우디우스 씨족 내 유력 가문들, 10대부터 자신에게 모든 것을 바친 친구 빕사니우스 아그리파와 그 혈육이 율리우스 가문과 클라우디우스 가문의 결합으로 완성된 황실을 형성해 직계를 이었는데, 그 직계는 브리타니쿠스네로[14]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마저도 로마인들에게 아우구스투스 부부의 직계손이라고 불린 이는 브리타니쿠스가 마지막이었다.



  • 대 드루수스(아내 리비아 드루실라의 차남, 아우구스투스의 양자, 누나의 사위)[15] : 기원전 9년 게르마니아 전쟁 개선식을 앞두고 낙마사고 후유증으로 요절[16]



  • 티베리우스(아내 리비아 드루실라의 장남, 아우구스투스의 양자): 로마제국 2대 황제(서기14년 ~ 37년)

  • 아그리파 포스투무스(외손자, 양자) : 아우구스투스의 명으로 파양된 이후 유배지에서 티베리우스 즉위 직후 살해

  • 게르마니쿠스(누나의 외손자, 드루수스의 아들) : 19년 안티오키아에서 요절

  •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양자 티베리우스의 아들, 누나의 외손녀 사위, 아내의 친손자) : 23년 자택에서 갑자기 요절[17]


4. 평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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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중 문화에서[편집]



5.1. 드라마[편집]



5.1.1. 로마[편집]


파일:ROME.Season 1.Octavian.jpg
파일:Rome.Octavian.jpg
시즌 1의 맥스 퍼킨스
시즌 2의 사이먼 우즈
시즌 1의 배우와 성우는 맥스 퍼킨스[18]김영선. 시즌 2의 배우와 성우는 사이먼 우즈와 김일.[19]

HBO의 드라마 ROME에서 주요 등장인물로 묘사된다. 어린 나이에 권모술수를 부릴 줄 알고 타고난 두뇌와 비범한 명석함의 소유자이다. 그 덕분에 작중에서 이루어지는 계략이나 정치인들의 속셈을 해설하는 역을 맡기도 한다. 하지만 결벽증과 지나친 냉혹함 같은 인성적 결함도 지니고 있다.[20]

유년 시절이 매우 불행했던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늘 어머니인 아티아에게 모지리 취급을 당했기 때문이다. 옥타비아누스도 그래서 가족에 대한 정이 없고, 어머니에 대한 원한이 깊다.[21] 드라마에서 악독했던 아티아가 더 악독하고 냉혈한이 된 옥타비아누스의 황제 개선식에서 기죽은 표정을 짓는 마지막화의 모습이 백미. 훌륭한 로마인이길 원하는 어머니의 등쌀에 떠밀려서 본인이 제일 하기 싫다는 검술훈련을 하고[22] 강제로 전쟁에 나가게 된다. 그러나 이 시절에도 확실히 비범한 모습도 보이는데 티투스 풀로가 루키우스 보레누스의 아내 니오베의 불륜 사실을 조사할 때에 동행하여 불륜 상대남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귀신처럼 꿰뚫어보았고 고문 지시도 아무렇지도 않게 내린다.[23] 이 사실은 자신들이 묻은 것으로 루키우스가 이 사실을 영원히 알지 못하게 하라는 등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줬다. 또 똑같이 어머니 때문에 늘상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누나 옥타비아의 멘토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다 근친상간까지 했다는 것은 잊자 그냥 이 때는 똑똑하지만 덜 성숙하고 인간적인 어린 시절의 옥타비아누스를 표현했다고 보면 되겠다.

시즌 2에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하면서 자신을 후계자로 세운다는 유언장을 확인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 아티아 때문에 바지사장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다 결국 어머니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모욕하고 한바탕 싸움질을 벌인 끝에[24] 집을 뛰쳐나온다. 그리고선 돌아올 땐 강력한 군대와 유능한 친구들을 끌고,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냉혈한에 새디즘, 마조히즘[25]까지 있는 카리스마형 캐릭터로 재등장.

시즌 2에서 어머니 아티아와 누이 소 옥타비아를 꾸짖을 때와[26] 악티움 해전에서의 대패로 몰락을 눈앞에 둔 클레오파트라에게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생사 상관없이 데려오면 클레오파트라와 그녀의 자식들은 물론, 휘하의 이집트 왕국과 백성들도 살려주겠다는 편지를 보냄으로서 클레오파트라가 어쩔 수 없이 본인의 손으로 직접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자살하게 만드는[27] 모습에서 이 캐릭터가 얼마나 냉철한 인간인지 보여준다. 특히나 안토니우스가 사망한 뒤 대면한 클레오파트라의 맞장구를 쳐주면서도, 결국 자신의 의지[28]를 끝까지 관철시키고 강요하는 모습은 일부 시청자들조차 소름이 돋을 정도다.[29][30]

다만 시즌 2라고 마냥 유능하게만 나온건 아니고 오히려 실제 역사보다 너프된 편이다. 약을 팔아 키케로에게서 집정관 자리를 얻었지만 섣불리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했다 가진 병력이 적어 위기를 맞았고, 삼두정치 때는 전쟁을 노리고 노골적으로 곡물 수출을 거부하는 안토니우스 때문에 또 한번 위기를 맞기도 했다. 둘다 결정적인 한 방으로 위기를 타개하는데는 성공하지만,[31] 스스로의 힘이라기보다는 조력자의 역할이 컸음을 생각하면 실제 역사만큼의 유능함은 보여주지 못한 셈.

내전 중에서 유일하게 전투 장면이 구현된 필리피 전투에서는 마치 신병처럼 안토니우스에게 줄곧 어린애 취급을 당하고 안토니우스가 돌격을 할 때 아그리파만 뒤따라 보내고 자신은 줄곧 본진에 남아있는 모습을 연출한다. 공화파쪽 진영에서도 카시우스만 전투에 나섰을 뿐 브루투스는 계속 본진에 남았기에 역사상 두 사람의 대결은 연출되지 못하고 덕분에 브루투스에게 깨지는 모습은 생략되었다.


5.1.2. 임페리움 시리즈[편집]


2003년에 제작된, 로마사를 주제로 한 임페리움 시리즈의 <임페리움: 아우구스투스>에서 주인공으로 나온다. 젊은 날의 활약(?)을 회상하는 노년의 아우구스투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보통의 매체에서는 잘 드러내지 않는 아우구스투스의 불행한 가족사를 주제로 하고 있다. 즉, 로마를 위해서 딸의 인생을 망칠 수 밖에 없는[32] 아버지의 고뇌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최종 보스는 아우구스투스를 암살해서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는 율리우스 안토니우스. 마지막에 임종 장면에서 부인 리비아 드루실라, 후계자 티베리우스[33]와 신하들 사이에서 유배지를 탈출한 율리아가 나타나서 화해를 하는 장면은 명장면. 피터 오툴이 아우구스투스 역을 맡았다.


5.2. 영화[편집]



5.2.1.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옥타비우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3. 소설[편집]



5.3.1.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편집]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소설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에서는 3번째 아내이자 초대 황후인 리비아에게 쉽게 조종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리비아가 자신을 독살할 것을 두려워해 음식을 거절하고 직접 딴 무화과로 연명하나 리비아가 그 무화과에 독을 발라두어 결국 독살당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5.4. 만화 및 애니메이션[편집]



5.4.1. 권투암흑전 세스타스[편집]


파일:세스타스-아우구스투스.png

고대 로마를 다룬 권투암흑전 세스타스에서도 당연히 언급되었다. 작중 배경은 네로의 시대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등장은 없지만, 역사대로 뛰어난 명군이자 불세출의 정치가로 언급된다. 네로를 제외한 나머지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황족들[34]은 다 하나 같이 얼간이들로 연출되었기 때문에 아우구스투스가 더 돋보인다. 아우구스투스 말고 정상적으로 나온 황족은 게르마니쿠스 뿐이다.


5.4.2. 샌드맨 시리즈[편집]


말년의 모습으로 등장. 16세 때, 종조부에게 강간당한 뒤에 후계자로 낙점되었고 로마의 미래를 위한 모든 예언과 계획들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카이사르의 뒤를 이어서 로마의 지배자가 된 후에는 다른 계획을 품게 되고, 종조부를 포함한 로마의 신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킬 것을 두려워하다가 영원 일족이 들려준 충고를 받아들여서[35] 하루 동안 거지로 분장하고 거리로 나가서 자신의 계획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다. 그의 사후, 계획대로 로마의 정복은 정체되고 우리가 아는 역사대로의 길을 걷게 된다.


5.5. 게임[편집]



5.5.1.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편집]


문명 4문명 5에서 로마 문명의 지도자로 나온다. 문명 4에서는 양아버지 카이사르와 같이 나왔고, 5에서는 단독 출연. 문명 6에서는 트라야누스가 새로 등장했다.


5.5.2. 토탈 워: 로마 2[편집]


역사적 전투에서 목소리로만 출연한다.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 나오는데, 이때 대사는 그 유명한 "바루스, 내 군단을 돌려다오!" 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토탈 워: 로마 2에 드디어 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캠페인인 황제 아우구스투스에서 등장한다. 이때는 시대가 BCE 41년도라서 아직 황제는 아니고 레피두스와 안토니우스와 대립 구도로 나온다.


5.5.3. 스타크래프트2[편집]


코랄 행성에 수도가 아우구스투스를 패러디한 아우구스트그라드 이다. 이아우구스트그라드에 이름을 따서 만든 자치령 근위대의 전함 아우구스트그라드의 자랑이 있다


5.5.4. 도미네이션즈[편집]


동상 흉갑이 전설 유물로 등장한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전설 유물/아우구스투스 동상 흉갑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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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흔히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로 알려진 이 사람의 본래 이름이다.[2] 라틴어식 표기이며, 영어식 표기로는 Gaius Octavius Thurinus.[3] 나폴리 광역시에 속한 시이다.[4] 영어로는 "I found Rome a City of bricks and left it a City of marble". 세간에는 "나는 진흙으로 된 로마를 발견해, 대리석의 로마로 남겨 두었다"는 식으로 벽돌이 아닌 진흙으로 번역되는 경우도 있는데, 로마 시대에도 벽돌은 진흙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나온 오역으로 보인다.[5] 아우렐리아누스가 청사진을 그리고 디오클레티아누스콘스탄티누스 1세가 완성한 도미나투스(전제정) 아래에서 로마 황제는 아우구스투스와 달리, 로마 원로원의 원수(프린켑스)에 취임하지 않거나 올라도 특수한 정치적 상황 아래에서만 잠시 취임했다. 왜냐하면 하드리아누스 이래로 모든 국정은 황제자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는데다, 세베루스 왕조의 개혁 이후에는 프라이토리아니를 통솔하는 근위대장의 보좌 아래 내각정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6] 외할아버지가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고종사촌동생이므로, 폼페이우스와도 혈연상 친척이었다.[7]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날이다.[8] 본래 '프린켑스'는 로마 공화정 당시 원로원으로부터 큰 공적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쓰이던 명예로운 호칭이며,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 체제를 상징하는 원로원 수장 같은 지위다. 아우구스투스는 키케로 이후 정식으로 이 직위에 올랐는데, 내전 기간 내내 실질적인 프린켑스라서 우리가 제정의 시작이라고 부른 기원전 27년 전부터 자신을 프린켑스라고 칭했다. 이는 그가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선례를 알고 있어 군림하는 자로 여겨지기를 경계해, 비교적 겸양의 표현으로 '프린켑스'를 칭했다고 해석된다. '아우구스투스' 역시 '존엄한 자'의 의미이긴 하지만, 프린켑스보다는 높은 어감을 지녔기 때문이다.[9] 프린켑스는 기원전 28년 1차 조정헌법 체제(로마 제정) 아래에서 로마 황제의 전유물이었다. 다만, 군인황제시대로 부른 서기 235년 이후, 서기 275년 타키투스 황제가 제위에 오르기 전까지 약40년 정도 원로원이 프린켑스 세나투스 직을 돌려가며 맡은 시절이 원수정(프린키파투스) 아래에서 있긴 했다. 서기 238년 폼포니우스 바수스가 프린켑스 세나투스에 취임한 사건이 그것인데, 이는 막시미누스 트라쿠스가 국가의 적이 되고, 고르디아누스 1세, 고르디아누스 2세, 푸피에누스, 발비누스, 고르디아누스 3세가 같은 해에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직에 오른 특수한 사정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이 역시 그 권한은 황제가 관습상 이유로 모두 행사했고, 폼포니우스 바수스 같이 돌아가며 오른 의원들은 외적과의 전쟁으로 바쁜 황제를 대신해 회의 사회자 역할 정도만 맡았다고 한다. 허나 이런 모습도 디오클레티아누스 아래에서 도미나투스(전제정)로 로마 국제가 바뀌면서 달라져, 후기 로마 황제들은 발렌티니아누스 1세처럼 원로원과 힘싸움을 벌일 때만 잠시 취임할 뿐 이 직책에 무조건 오르지 않았다.[10] 단, 티베리우스, 가이우스(통칭: 칼리굴라)는 개인성씨가 카이사르이므로, 제호에 굳이 넣어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두 사람에게 카이사르라는 이름 자체는 원로원에서 개인 성씨로 사용된 것일 뿐, 황제 제호에 넣어 사용한 황제 명사형 칭호가 아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의 친혈육 클라우디우스 1세는 아우구스투스 생전,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문에 입양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개인 성씨는 '클라우디우스'였다. 따라서 그는 아우구스투스 이래로 같은 카이사르 가문 사람임에도, 즉위 후 정통성을 위한 이름으로 '카이사르'를 제호로 취했다. [11] 로마력 기준으로 6번째 달이다. 카이사르의 율리우스력 기준으로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8월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8월을 의미하는 영단어 August의 어원이 된다.[12] 본래 티베리우스 입양당시, 아우구스투스는 포스투무스, 게르마니쿠스, 소 드루수스에게 모두 제위를 약속했고 그에 따라 입양 절차를 완성했다. 하지만 외손자 포스투무스는 학습 부진과 난폭성으로 외할아버지에게 직접 이 문제가 원로원에 상정돼 파양되고 추방됐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 임종 직전까지 그의 지시와 교육 아래 제왕 교육을 공식적으로 받은 이는 게르마니쿠스와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소 드루수스) 둘 뿐이었다.[13] 클라우디우스(누나 소 옥타비아의 딸인 소 안토니아의 아들), 칼리굴라(누나 소 옥타비아의 딸인 소 안토니아의 아들인 게르마니쿠스의 아들), 그리고 티베리우스 게멜루스(누나 소 옥타비아의 딸인 소 안토니아의 딸인 리빌라의 아들)였다. 다행이라면 양할아버지이자 외종조부인 아우구스투스는 살아생전 클라우디우스가 가진 비범함과 휼륭한 인성을 알고, 일찍부터 그에게 로마귀족이자 자신의 직계혈육으로서 필요한 모든 교육을 시켰다. 여기에는 아우구스투스가 직접 담당한 품성교육, 식사예절과 원로원을 다루는 대화법, 웅변술부터 각계 최고 명사와 역사가들이 직접 담당한 학문 수업도 포함됐다. 따라서 일찌감치 현실적인 한계로 제위계승에서 배제됨에도 클라우디우스는 약관의 나이부터 알아주는 역사가가 됐는데, 이때 아우구스투스는 정치활동을 만류하면서도 자신의 보좌사제는 반드시 맡게 했다. 또 사후 발표될 유언장에 "내 친혈육이자 손자인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에게 재산을 남긴다"고 명시해 만일의 사태까지 대비했다.[14] 의외일 수 있는데 네로는 입양관계로 직계 남자황족이 된, '타 가문 출신의 먼친척'이자 '입양자'였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로마 귀족들이 말하는, "가문 번영과 안녕을 위해 데리고 온 자식"이었던 셈. 당장 양부가 된 외종조부 클라우디우스에게 그는 입양 전 이름인 아헤노바르부스로만 불렸고, 그의 즉위는 궁중 쿠테타였다. 여기에 더해 네로는 그의 외삼촌으로 아우구스투스 일가의 가부장이었던 3대 황제 가이우스(칼리굴라) 살아생전, 아우구스투스 일가의 피를 이었다고 해도 직계 남자황족에서 사실상 배제된 까닭에 그 정통성이 없었다. 이는 칼리굴라가 중병에서 회복한 직후 결정내린 후계구도와 연관된 정치적 결정 때문인데, 그는 자신의 둘째 여동생 율리아 드루실라와 그의 남편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와 이들 부부의 후손들, 숙부 클라우디우스와 자신이 중매하여 결혼시킨 메살리나 부부와 그 후손들 외에는 상속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로마 귀족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문 당주에게 네로는 아우구스투스 일가의 피만 흐른 방계 친척로 공인된 셈이다. 이런 이유로 네로와 그의 어머니 소 아그리피나는 칼리굴라 생전부터 소 아그리피나의 재혼 전까지 철저히 로마 사회에서 잊혀진 존재가 됐다.[15] 아우구스투스가 리비아와 재혼할 당시,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고 태어난 이후에도 걸음마를 뗄 때까지 아우구스투스가 친아들로 여겨 키우면서 친부의 집에 돌려보내지 않았다. 따라서 풍자작가들이 불륜으로 태어난 자식이라고 조롱하고, 세간에서도 안 좋게 보자 돌려보낸 일화가 있다.[16] 정황상 개선식 이후 정식양자로 삼아 외손자들이 장성할때까지 제위를 맡기고, 누나의 외손자들인 드루수스의 아이들을 손이 많지 않은 율리우스 가의 자녀들로 받아들일 준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아우구스투스는 개선식 통과 직전부터 측근들과 원로원에게 "내가 죽으면 내 후계자는 드루수스", "두 외손자 못지 않게 드루수스를 진지하게 후계자로 생각한다"고 떡밥을 던졌다.[17] 세야누스와 공모한 아내에게 독살당한 것으로 밝혀짐.[18] 마스터 앤드 커맨더에서 영국 해병 생도 블랭크니 역을 맡았다.[19] 공교롭게도 맥스 퍼킨스와 사이먼 우즈 모두 이튼 스쿨을 졸업한 엘리트이며 2020년대에는 배우 일을 그만둔 상태다.[20] 자신과 살짝 몸이 닿은 여노예의 따귀를 찰지게 때린다던지, 말 위에서 졸고있는 자신을 깨우는 노예에게 '절대 허락없이 내 몸에 손대지 마라'고 쏘아붙인다던가 등등......[21] 단, 이는 실제 역사와는 판이한 드라마의 창작이다. 사료에서 아티아는 그라쿠스 형제의 어머니인 코르넬리아, 카이사르의 어머니인 아우렐리아와 함께 로마사의 대표적인 현모양처로 기록되어 있다. 아우구스투스도 카이사르의 아내 칼푸르니아가 사망하자 자신의 친모 아티아를 현숙한 어머니의 상으로 선전했다.[22] 이 때 불러들인 무술사범이 티투스 풀로이다.[23] 덤으로 너는 어차피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는 없으니, 고통스럽지 않게 죽고 싶다면 사실을 고하라는 협박을 한다. 그리고 한참 고문하고는 '곧 플루토를 만날텐데 거짓말을 하는건 현명치 못하지'라며 악마처럼 꼬드긴다.(...)[24] 물론 안토니우스에게 일방적으로 맞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반항했지만.[25] 리비아 드루실라를 아내로 맞아들일 때 리비아에게 자신은 성적 쾌락을 위해 상대방을 때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해서 S임을 인정했고, 리비아는 옥타비아누스가 실제로는 M 취향임을 알고 관계 중에 옥타비아누스의 뺨을 때리고 질식시키기도 한다.[26] 그리고 어머니와 누이의 입장도 1부와는 확연히 달라진다. 아티아세르빌리아가 죽으면서 한 저주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의 결별로 야망이 흐트러지면서 1부에서의 독함도 사라졌고, 옥타비아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정략결혼하면서 안토니우스의 입장을 어느 정도 대변하게 된데다 어린 시절의 비교적 순수했던 동생이 냉혹함만 남은 인간으로 돌아오자 크게 실망해 돌아선 상태.[27] 옥타비아누스가 알렉산드리아에 당도하기 전날 밤 함께 자살하기로 약속했지만 다음날 아침 자신이 먼저 죽었다는 편지를 보냈고, 클레오파트라가 죽었다고 철석같이 믿고 절망한 안토니우스는 루키우스 보레누스에게 부탁하여 그의 칼에 찔려 자살한다. 당연히 편지부터가 거짓말이었고 클레오파트라는 멀쩡히 살아서 안토니우스의 시신과 대면했고 이를 본 루키우스도 어이없어 한다.[28] 승리를 과시하기 위해 클레오파트라와 그녀의 자식들을 로마에 끌고 가는 것.[29] 클레오파트라가 로마로 끌려가지 않도록 이런저런 핑계를 대 보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그 핑계를 가볍게 논파하고 클레오파트라를 굴복시키는 무지막지한 카리스마를 과시한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할 것을 정확하게 예상한 아그리파와는 달리 그럴 리 없다며 오판하기도 했다. 여기서 자신의 냉혈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옥타비아누스에게 팩폭을 날리는 아그리파와 마이케나스가 은근 개그 포인트.[30] 대면한 옥타비아누스에게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를 잔혹한 괴물이라고 했지만 자기 눈에 선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보인다며, 어떻게든 비위를 맞추려던 클레오파트라마저 자신과 아이들을 로마에 전리품으로 데려가려는 옥타비아누스의 진위를 깨닫고 절망한다. 결국 모든 희망을 잃은 클레오파트라는 혼자 있게 되자마자 안토니우스의 시신에게로 달려가, 당신을 배신하면서까지 살고 싶었는데 옥타비아누스는 날 조리돌림시키려는 속셈이고 이제 다 끝났다며 처절하게 절규한다. 이후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의 시신 곁에서 독사에 물려 자살하고, 왕궁에 들이닥친 옥타비아누스에게 "네 놈의 영혼은 이미 부패했어"라고 악에 받친 유언을 남긴 뒤 사망한다.[31] 브루투스와의 싸움은 안토니우스와의 동맹으로, 안토니우스와의 싸움은 포스카가 유언장을 빼돌린 덕이 컸다.[32] 작중 율리아의 실제 대사이기도 하다.[33] 실제로 아우구스투스의 강요로 진심으로 사랑했던 본처 빕사니아와 이혼한 것 때문에 분노했고, 그 분노를 표출코자 새로 결혼한 율리아를 강간하는 장면이 나온다.[34] 네로,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35] 이때 꿈은 경계/한계의 신 터미누스(Terminus)의 부탁으로 아우구스트의 꿈에 나타나 충고를 했다. 로마가 전세계를 정복하게 되면 국경, 즉 경계가 없어지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