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다(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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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2.1. 작곡된 계기
2.2. 등장인물
3. 스토리



1. 개요[편집]


주세페 베르디의 그랜드 오페라. 이탈리아어 표기는 "Aida"이며, 내용은 총 4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개선행진곡으로 유명해진 오페라이지만, (듣기) 문제는 그 곡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오페라의 본래 내용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많다는 것. 그 개선행진곡을 롯데백화점이 한동안 광고 삽입곡과 개점시간 알림 음악으로 사용했었다. 이 개선행진곡 부분을 제대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인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실 이탈리아에서도 라 스칼라 가극장 등을 제외하면 개선행진곡 중간부분을 생략해서 간소하게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 무대[1]에서는 자주 올려진다. 특히 이집트는 해당 작품의 배경이라 이집트에서는 타 지역에서 하는 것과 달리 야외무대를 하는 편인데, 그 무대가 이집트의 유명한 유적지들이다. 특히, 작중 주 배경이 되는 카르낙과 아부심벨 신전의 공연은 전 세계 오페라 팬들이 꼭 가고 싶어하는 꿈의 무대라고 한다. 물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들이라서 공연은 유네스코에 허가를 받아야 성사되기 때문에 언제 할지는 알수가 없다. 위에서 언급한 카르낙의 경우 2001년 이후로 허가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2011년, 이집트에서 자스민 혁명이 일어나면서 더욱 볼 수 없는 공연이 되기도 했으나,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서 2019년 10월 말에 아이다의 공연이 확정되어 전세계 오페라 팬들을 설레게 했으며며, 이 공연의 아이다 배역은 베로나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한국인 최초로 아이다 역에 섭외되어 현재 유럽 무대에서 아이다, 나비부인 역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세계적인 리리코 스핀토 소프라노 임세경이 맡게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상술한 스팩타클한 연출을 표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지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마술피리, 피가로의 결혼, 사랑의 묘약, 세빌리아의 이발사, 카르멘에 비해 그 공연 횟수가 적다. 당연히 이 오페라를 모티브로 하는 뮤지컬 아이다가 더 자주 공연된다.

2003년 9월 KBS의 후원 아래 잠실 주 경기장에서 초대형 야외 오페라로 선보인 적이 있었다. 이 당시 출연진들은 전부 인건비를 받지 못 하고 어린 학생들을 이용해 병사 역할을 시켰으나 단 1원도 지급 받지 못 하고 다들 급하게 철수했다. 이건 진짜 한국의 수치다. [2]이후 그나마 한국 무대에서 아이다를 자주 공연해주는 곳은 서울의 예술의 전당 정도...또한 부산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마리아 귤레이나 주연으로 공연했다.


2. 배경[편집]


당시 이집트의 부왕 이스마엘 파샤가 수에즈 운하 개통을 기념하여 세워진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의 개관 공연을 위해 주세페 베르디에게 위촉한 작품이지만, 실제로 오페라 하우스가 개관할 때 열린 공연은 베르디의 리골레토 였으며 수에즈 운하는 이로부터 3주 후인 1869년 11월에 개통되었다. 아이다의 초연은 이로부터 한참 뒤인 1871년 12월 24일에 이루어졌다. 베르디는 두 달 뒤에 밀라노에서 열린 유럽 초연에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여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이후 이 오페라는 세계의 오페라 극장을 정복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의 대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아무튼 이스마엘 파샤는 베르디의 열렬한 찬미자였던지라, 이러한 역사적 순간을 베르디의 작품으로 경축하고 싶어했다. 그가 처음 베르디에게 의뢰한 작품은 오페라가 아니라 찬가였으나 들어오는 대본마다 모조리 거절하며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던 베르디는 이 요청도 단번에 거절했다.

이에 포기하지 않은 파샤는 베르디와 안면이 있었던 프랑스 오페라 코미코의 디렉터였던 카미유 뒤 로클을 통해 베르디를 설득하려 하였고, 이집트에 있던 고고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를 중개자로 세웠다. 마리에트는 뒤 로클에게 베르디가 수락하지 않는다면, 구노와 바그너에게 맡길 수도 있고, 특히 바그너에게 '웅장한 것'을 기대할 수 있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고 로클은 이 편지에 마리에트가 생각해낸 줄거리를 베르디에게 보냈다. 이 시나리오는 베르디를 단번에 사로잡아 계약을 체결토록 하였고, 이에 베르디는 15만 프랑이라는 거액의 금액을 받게 된다.

당시 오귀스트 마리에트의 시나리오를 베르디와 함께 작업했던 안토니오 기슬란초니가 다시 쓰고, 최고의 무대 효과를 위해 엄청난 재정이 뒷받침되었다.




2.1. 작곡된 계기[편집]


프리드리히 실러의 운문 사극을 바탕으로 작곡된 돈 카를로스는 프랑스에선 찬밥[3] 취급 당했지만, 런던 코벤트 가든 극장과 이탈리아 여러 극장에선 열렬한 환호를 받은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베르디는 불어로 된 돈 카를로스를 여러 판[4]으로 수정해서 내놓고, 운명의 힘 개정판을 만들어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5]에 올려서 대성공[6]을 거둔 후 돈 카를로스의 대본작가였던 뒤 로클과 다음 작품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다.[7]

어느 날, 뒤 로클이 네 쪽 분량의 짤막한 줄거리를 담은 고대 이집트 이야기를 베르디에게 보냈는데, 베르디는 그 소재에 대해 굉장히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주 맘에 들어해서 로클에게 "이 멋진 내용을 지은 작가가 대체 누구냐?"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2.2. 등장인물[편집]



  • 아이다: 암네리스의 여자 노예, 원래는 에티오피아의 공주

  • 라다메스: 이집트 군대의 젊은 장군

  • 암네리스: 라다메스를 사랑하는 이집트 공주


  • 람피스(Ramfis): 이집트의 제사장




3. 스토리[편집]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는 몰래 궁중을 빠져 나왔다가 이집트에 노예로 잡혀간다. 노예로 잡혀 가 이집트의 장군 라다메스의 비밀 연인이 되지만 라다메스를 짝사랑하는 이집트의 공주 암네리스는 그 사실을 직감으로 알아챈다. 아이다의 아버지 아모나스로가 이집트를 침공하자 신탁에 의해 라다메스가 이집트군 사령관으로서 파견되고 아이다는 아버지와 정인의 안전 사이에서 갈등하며 노래를 부른다. 이기고 돌아온 라다메스의 행렬에서 아이다는 자신의 아버지를 발견하고, 파라오는 라다메스에게 개선장군으로서의 소원을 묻는다. 라다메스는 에티오피아인 포로들을 풀어줄 것을 청하나 이집트 사제들의 반대로 목숨은 살려주되 노예로서 억류하게 된다. 한편 파라오는 라다메스에게 자신의 딸 암네리스와 결혼할 기회를 주고, 설레는 암네리스는 밤이 되자 결혼 전 신들에게 기도하기 위해 신전에 찾아간다. 문제는 이 신전 앞에서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밀회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라다메스를 기다리는 아이다 앞에 아모나스로가 나타나 에티오피아로 망명할 길을 찾기 위해 라다메스를 이용하라고 하고, 아버지의 말을 못 이겨 아이다는 라다메스에게 에티오피아로 도망가 살자고 부추긴다. 사랑때문에 동의해 버린 라다메스는 망명 경로를 아이다에게 말해주고 그 순간 숨어있던 아모나스로가 나타나 자신이 에티오피아의 왕이며 그 길로 사람을 보내겠다고 성급하게 말해 버린다. 기도하던 암네리스는 이 말을 듣고 라다메스를 배신자라고 외치며 아모나스로는 그녀를 죽이려 한다. 그 전에 병사들이 나타나 아모나스로와 아이다는 도망치고 라다메스는 억류되게 된다. 아직도 라다메스를 사랑하는 암네리스는 라다메스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지만 그는 아이다를 위해 입을 다물고 영묘(무덤) 석실에 산채로 갇히는 벌을 받아들인다. 암네리스는 사제들에게 애원해 보지만 소용이 없었고, 암네리스는 라다메스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건네며 아모나스로는 죽었으나 아이다는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 그러나 아이다는 도망치지 않고 라다메스의 소식을 듣고 영묘 석실에 몰래 숨어 들어와 있었고, 라다메스는 아이다가 자신의 죽음을 모른 채 잘 살길 원했지만 결국 컴컴한 석실 속에서 아이다를 만나 함께 죽음으로서 마지막 사랑을 완성하게 된다. 암네리스는 밖에서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저승에서 사랑을 완성하길 기도하며 노래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4. 뮤지컬[편집]


뮤지컬 라이온 킹을 만든 엘튼 존팀 라이스가 이 오페라를 모티브 삼아 뮤지컬을 제작했다. 2000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으며 한국에서도 여러번 공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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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히,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베로나의 아레나 극장(고대 로마 시대의 극장 유적을 보수해서 오페라 극장으로 사용한다. 바로 상위의 공연 사진의 장소), 미국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선 아이다를 자주 공연하는 편이다.[2] 같은 해 5월 장예모 감독의 연출 하에서 투란도트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SBS의 후원 아래 펼쳐진 적이 있은 후 국내에서 한때 야외 오페라 열풍이 분 적이 있었다.[3] 돈 카를로스 파리 초연 당시 프랑스 평론가들이 "바그너 방식에 물들어 베르디의 음악은 완전 타락의 길을 걸어갔다."라는 비난을 퍼부었다고 한다. 물론 이에 베르디는 분노했다고 한다.[4] 돈 카를로스는 5막으로 구성된 프랑스어 판, 4막의 이탈리아어 판, 5막으로 구성된 이탈리아어 판,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5] 초연판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황실 극장에서 열렸다.이 탓인지 당시 러시아의 황제였던 알렉산드르 2세가 20만 프랑을 베르디에게 지급했다고...[6] 초연판도 성공했지만, 당시 독일 음악을 열렬히 선봉하는 집단들이 베르디와 그의 음악을 마구 비웃어서 약간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한다.[7] 이 당시 베르디옹이 파리에 대해 아직도 열받았던 상태였는지 로클과 대화하는 도중 "다시는 파리에 내 작품 절대 안 올릴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