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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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 체류중인 아제르바이잔인 유학생들
전통의상을 입은 아제르바이잔인
1. 개요
2. 상세
3. 문화
4. 세속주의
5. 언어
6. 기원
7. 해외 분포
8. 창작물에서


1. 개요[편집]


【언어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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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어
Azərbaycanlılar /آذربایجانلیلار / Азәрбајҹанлылар[1]
튀르키예어
Azeriler[2]
페르시아어
مردم آذری (Mardom-e Âzari)[3]
러시아어
Азербайджа́нцы (Azerbajdžáncy)[4]
아르메니아어
Ադրբեջանցիներ (Adrbeǰancʿiner)[5]
조지아어
აზერბაიჯანელები (Azerbaiǯanelebi)[6]
영어
Azerbaijanis[7]

아제르바이잔인은 카스피해 서부 연안인 이란령 아제르바이잔캅카스 3국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 거주하는 튀르크계 민족이다. 약칭인 '아제리인'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해당 표현을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다만 아제르바이잔인과 이야기할 때에는 아제리인이라고 지칭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제르바이잔인 가운데 특히 민족주의 성향의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아제리인이라는 표현을 마치 고대 페르시아계 조로아스터교도들과 같은 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언짢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민족주의 성향의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자신들을 아제르바이잔 튀르크인(Azərbaycan türkü)이라고 지칭한다. 튀르키예와 혈맹관계로 우호적인 아제르바이잔인들도 튀르키예인들이 자신들을 아제리인이라고 부르면 정색하며 정정하려 한다.


2. 상세[편집]


아제르바이잔 본국보다 이란에서의 인구가 훨씬 많다. 또한 이란의 역사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카자르 왕조가 바로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세운 왕조이며, 알리 하메네이도 아제리인일 정도이다. 러시아에도 거주하는데 다게스탄 등 아제르바이잔과 접한 지역에 주로 많이 거주하며, 그 외 튀르키예, 조지아에도 거주한다. 소련 시기에는 강제이주로 아제리인 일부가 각각 러시아 서부 지방들(러시아의 유럽지역),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및 서시베리아 지역, 러시아 극동 지방으로도 이주되기도 했다. 아르메니아에도 아제리인들이 주거하고 있었지만, 1990년대 나고르노 카라바흐 영토 분쟁으로 인해 추방되거나 거의 도망쳐서 아제르바이잔에 거주하며, 아르메니아의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소수인 데다 아르메니아인에 동화되어 아르메니아인이 되었다.[1]

튀르키예인과 많이 비슷한데 언어 역시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한다. 튀르키예어아제르바이잔어 모두 오구즈어파에 속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다수는 알아들을 수 있지만 어감의 차이 때문에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그 외 이란 남서부에 거주하는 카슈카이족과도 연관이 있는데, 이들의 언어인 카슈카이어는 아제르바이잔어에서 갈라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어가 서오구즈어파에 속하는데 비해 카슈카이어는 남오구즈어파에 속한다는 차이점도 보인다. 다만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언급하였듯이 카슈카이족들이 아제르바이잔에서 갈라졌기 때문인지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카슈카이어를 아제르바이잔어의 한 방언으로 여긴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이란 북동부(호라산), 이란 남동부(키르만)에도 아제르바이잔인에서 갈라진 튀르크계 제족 중 하나인 아프샤르족들의 아프샤르어도 카슈카이족처럼 아제르바이잔과 연관있고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아프샤르족들도 아제르바이잔인으로 본다.[2] 이들은 나디르 샤아프샤르 왕조를 세우기도 했다. 다만 카슈카이족과 아프샤르족, 아이날루족은 아제르바이잔인에서 갈라진 민족이되 아제르바이잔인들과 동족이라 보긴 어렵다.


3. 문화[편집]


종교는 대부분 시아파·12이맘파 이슬람교를 믿으며 수니파는 소수이다.[3] 아제르바이잔 영내의 무슬림들은 구소련 시절의 영향으로 문화적으로만 무슬림이고, 일상생활에서는 세속적인 성향이 강하다. 오랜기간 페르시아의 한 영역이었던 만큼 페르시아어 문학과 함께 민족의 기원이 되는 오구즈족의 민족설화가 공존하고 있다. 또한 근현대에는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기도 해서 러시아식의 인명체계('이름-부칭-성')와 러시아어 차용어휘를 사용하고 있다. 그 외 여러 북캅카스 제민족들의 의복 문화가 유입되기도 했다.

탈리시인, 아바르인과 문화가 흡사하며 레즈긴인으로부터 레즈긴카 무용과 융단 직조 문화를 흡수하였다.

아제르바이잔식 요리로는 볶음밥의 일종인 플로브(Plov)가 유명한데, 무려 40여개 이상의 플로브가 발달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다른 요리들도 많이 발달되어 있다.


4. 세속주의[편집]


비교하자면 같은 아제르바이잔 국적 아제르바이잔인들의 경우 구소련권 출신 중앙아시아순니파 튀르크계 민족들(우즈베크, 키르기스, 투르크멘 등등)에 비해서 훨씬 더 세속적인 편이다. 이슬람과거 중요한 민족문화의 한 갈래 정도로 생각하지 라마단 기간 때도 대놓고 맥주를 마시는 등[4] 서유럽인들의 개신교 관련한 관점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는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이란과 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종파를 믿는 이란의 경우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로 독립 이후 아제르바이잔인들에게 이슬람 근본주의화의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다른 한편 아제르바이잔과 형제의 나라인 튀르키예의 경우 주로 순니파로 종파가 다르지만, 튀르키예와의 우호적인 국민 감정 등을 이유로 순니파에 대해 증오감을 자제하고 온건한 관점을 견지한다. 튀르키예인들과의 연대 감정 및 이슬람주의 성향 에르도안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당시 도움을 준 이유 등으로,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이슬람에 대해서 "무신론자 입장에서 무시한다."까지는 아니고 민족 정체성의 한 요소로 생각하는 편이다.


5. 언어[편집]


아제르바이잔어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구소련의 영향으로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러시아어를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소련 해체이후에는 러시아어 화자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이란쪽에서는 페르시아어를 쓰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6. 기원[편집]


오늘날의 아제르바이잔과 남아제르바이잔에 정착한 오구즈 튀르크 부족들이 사파비야 수피 교단의 영향으로 시아파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수니파를 믿는) 서쪽의 튀르키예인, 동쪽의 투르크멘인들과 분화된 것을 직계 기원으로 본다.

근세 기록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인들을 다른 오구즈 튀르크인들과 구분 없이 다 같이 투르코만인으로 기록하는 편이었다. 투르코만은 원래 아랍권, 페르시아권에서 오구즈 튀르크어를 사용하던 여러 민족들을 지칭하던 어휘이다. 이후 아제르바이잔의 오구즈 튀르크인들은 다른 튀르크인들과 다르게 시아파를 믿으면서 다른 오스만 제국 및 중앙아시아에서는 이들을 아제리인 혹은 키질바시라고 구분해서 부르기 시작했다.[5]

사파비야 수피 교단으로 개종한 아제르바이잔의 튀르크인들은 키질바시라는 기마 전사 집단에 소속되어 사파비 제국의 창건에 기여했는데, 이 때문에 근세에는 아제르바이잔인들을 아예 키질바시라고 부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파비 제국이 과격 성향의 키질바시 수피 교단 대신 좀 더 온건한 12이맘파 자파리파 법학파를 국교화하면서, 아제르바이잔인 사회 내에서도 사파비야 수피 교단이 힘을 잃었고, 종파 차이가 사라지면서[6] 이란인들도 이들을 아제리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오구즈인들이 이 지역에 대거 정착하기 이전 아제르바이잔 일대에는 탈리시인타트인, 페르시아인, 쿠르드인 등등 여러 캅카스계, 이란계 민족들이 거주하였으나,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략 당시 주민 상당수가 튀르크계로 교체되었으며 이후 사파비 왕조가 발흥하여 아제르바이잔을 장악한 이후 근세, 근현대를 거치며 대다수가 아제르바이잔인으로 서서히 동화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타트인의 경우 원래 아제르바이잔 일대의 주류 민족이었으나 오늘날 극소수만 남아있다.[7]

근현대에도 아제르바이잔 내 여러 소수민족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대부분 해당 소수민족 상당수가 아제르바이잔어를 사용하며 아제르바이잔인에 동화된 것에 기인한다.


7. 해외 분포[편집]


상술한데로 아제르바이잔과 이란을 중심으로 거주하지만,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러시아령 자치공화국인 다게스탄 공화국 등지에도 전통적으로 상당수의 아제리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웃나라 튀르키예와 조지아에도 수십만여 명의 아제리인들이 거주한다.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의 구시가지에는 아제리인 구역(시아파 무슬림 구역)이 따로 존재할 정도였다. 아르메니아에 거주하던 아제리인들은 전쟁 와중에 거의 다 추방, 학살되어 공식적인 통계로는 잡히지 않는다.

러시아 제국이 오늘날의 아제르바이잔 일대를 접수하고 이를 계승한 소련 시절에는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소련 각지로 이주되었는데, 카자흐스탄에 8만여 명,2009년 기준 우크라이나에 4만 2천여 명, 2001년 기준 벨라루스에 5,500여 명,2009년 기준 라트비아에 1600여 명,2001년 기준 에스토니아에 900여 명2011년 기준 정도가 거주한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에는 각각 4만여 명 정도의 아제르바이잔인들이 거주했으나 소련 해체 이후 상당수가 아제르바이잔으로 다시 이주하였다 한다.

오늘날에는 미국이나 서유럽, 북유럽으로 이주하는 아제리인들이 증가하는 추세이나, 이들 상당수는 아제르바이잔 국민보다는 아제리계 이란인이 많다고 한다.


8. 창작물에서[편집]


신부 이야기 7권의 배경은 카자르 왕조 시기의 페르시아이다. 다만 아제르바이잔인들이 나온 건 아니었다. 다만 타브리즈에서 온 알리는 아제르바이잔인일 확률이 높다. 아제르바이잔 지역의 옛 중심지가 타브리즈였기 때문이다.

체코인 작가 밀로시 우르반(Miloš Urban)의 소설 《일곱 성당 이야기(Sedmikostelí)》에서 아제르바이잔인이 등장한다.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는 인물로 서아시아계 외양에 무슬림인 줄 몰랐는데 알고보니 독실하고 완고한 무슬림이었다는 묘사가 나온다.

[1] 영토분쟁 중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제외하면, 아제르바이잔 영내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아르메니아로 도망치거나 추방되어 거의 없다.[2] 그래도 아제르바이잔인과는 아제르바이잔에서 갈라진 다른 민족으로 보기도 하는 카슈카이족과는 달리 아프샤르족들은 아제르바이잔인의 일부로 보는 인식도 적지 않다. 카슈카이어를 남오구즈어파로 보는 것과 달리 아프샤르어 역시 해외에서는 서오구즈어파에 속한 거의 아제르바이잔어의 방언으로도 본다. 다만 아프샤르어 역시 남오구즈어파에 속하며, 아제르바이잔어와는 조금 다르다고 한다.[3] 러시아 연방 북캅카스 연방관구 다게스탄 공화국과 인접한 아제르바이잔 북부의 소수민족인 레즈긴인·아바르인들이 아제르바이잔 영내의 주요 수니파 무슬림들이다.[4] 웬만큼 세속적인 무슬림들도 라마단 기간에는 다른 사람들 눈치 때문에 음주를 자제하는 편이다.[5] 튀르크인 대다수가 순니파 그 중에서도 하나피파·마투리디파에 속한다.[6] 사파비 제국의 통치가 안정되면서 이란 내 순니파 대부분이 시아파 12이맘파로 개종하였고 아제르바이잔의 사파비야 수피 신도들도 12이맘파로 옮겨갔다.[7] 아제르바이잔 내 거주하는 유대인 및 일부 아르메니아인들도 타트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과거 아제르바이잔 지역의 주 언어가 타트어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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