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니콜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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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니콜 스미스
Anna Nicole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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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Vickie Lynn Hogan
비키 린 호건
출생
1967년 11월 28일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
사망
2007년 2월 8일 (향년 39세)
미국 플로리다 주 할리우드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직업
모델
신체
180cm, 80kg[1]
배우자
빌리 스미스(1985년~1993년 이혼)
J. 하워드 마샬(1994년~1995년 사별)
자녀
아들 다니엘 웨인 스미스(1986년~2006년)
딸 다니엘린 버크헤드(2006년생)
데뷔
1992년 플레이보이 모델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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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2.1. 석유 갑부와의 결혼상속 전쟁
2.2. 사망, 그 이후
3. 주요 활동
3.1. 모델
3.2. TV
3.3. 영화
4. 여담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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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리즈시절, 게스 모델로 활동하던 모습
미국의 모델. 글래머한 몸매와, 큰 키, 상당한 미모를 가진 모델이다.


2. 생애[편집]


가난한 가정에서 ‘비키 린 호건(Vickie Lynn Hoga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녀가 겨우 걸음마를 떼고 달리기를 시작할 때 부모의 사이는 점점 악화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한다. 이후 편모 가정에서 살다가 어머니의 재혼으로 이름을 바꾸고 이모집에서 살게 된다. 이 때 이복 남매들이 5명이나 되는 등 불행한 환경에서 거의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다.

15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평범한 레스토랑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식당에서 일하던 남자와 눈이 맞아 덜컥 임신을 하게 되면서 결혼과 출산, 이별을 겪은 후 어린 싱글맘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미국 10대 엄마들의 뻔한 삶을 살다 과감한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이란 게 바로 남들에게 좀 쪽팔리더라도 돈이라도 상당히 벌어보자는 심정에서 스트리퍼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스트리퍼 일로 큰 돈을 번 후 그 비용으로 가슴성형을 하는데, 그 전까지는 그냥 키 크고, 기골이 장대하고 늘씬한 여성이었는데 가슴성형한 뒤로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래서 좀 더 몸값이 높은 고급 스트리퍼 클럽에 고용되고, 이 시기에 플레이보이 모델을 지원해서 신인으로선 파격적인 표지 모델 및 센터 폴더 모델의 기회를 얻는다.


2.1. 석유 갑부와의 결혼상속 전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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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만난 사람 중 한 명인 63살 연상의 석유 갑부 J. 하워드 마셜과 정식교제를 하고, 그동안 별거 중이던 첫 남편과 이혼이 마무리가 된 1994년, 어마어마한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한다. 사후에 나온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두 사람은 정말로 사랑하던 사이였으며 심지어 하워드는 안나의 아들까지 입양하고자 했다고 한다.

이때까지 안나는 굉장히 밝고 대중의 관심을 즐기는 사람이었으나, 친부를 만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친부는 자신의 처제를 강간했다는 것을 친아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정도로 인간말종이었으며 안나를 추행했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이후 안나는 약물 중독에 빠졌으며 성격도 변해갔다. 그러던 중 하워드 마셜이 건강이 악화되며 안나의 인생은 위기에 봉착한다.

결국 결혼한지 1년 2개월 만에 하워드 마셜이 확실한 유언도 안 남긴 채 사망하면서, 남겨진 어린 신부와 그녀의 아버지뻘 되는 의붓아들 E. 피어스 마셜 간의 추한 재산 상속 전쟁이 시작된다. 도대체 누구에게 갈지 법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재산이 무려 16억 달러였다. 안나는 하워드 재산의 절반이 자기에게 돌아온다고 주장했고, 아들은 안나가 부동산 일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법정 전쟁이 12년 이상이나 질질 끌린다. 각 지방법원들이 전혀 다른 판결을 내고 연방법원이 중재에 나서지만 뭐 미국 지방자치체제에서 누구의 말을 들을지는 뻔했다.

어쨌든 이 법정분쟁은 아들 피어스가 2006년 죽음으로써 일단락되는 듯 싶더니, 뜬금없이 하워드의 유산에 대해 안나가 권리주장을 못 한다는 법률해석이 튀어나오다가, 어째 안나에게 16억 달러에 비하면 푼돈이지만 그나마 8500만 달러 정도 떨어지는 걸로 마무리되나 싶었지만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2.2. 사망, 그 이후[편집]


안나의 아들 다니엘[2]이 자신의 여동생의 탄생을 보러 병원에 들렀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이후 부검결과에서 그는 메타돈, 졸로푸트, 렉사프로의 과다복용에 따른 부작용이 사인으로 밝혀졌다.[3] 특히 메타돈의 경우, 어머니 안나가 처방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4]# 그로 인해 안나는 큰 상실감과 슬픔에 빠졌으며[5] 직후 본인도 약물과용으로 급사했다. 하지만 여기서 재산을 둘러싼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하워드 마셜의 아들과 법정공방 끝에 16억 달러는 아니더라도 8,500만 달러의 유산을 상속받았고 안나가 연예계에 재기하면서[6] 남긴 재산이 제법되는 상황에서, 안나와 아들 다니엘이 죽고 갓 태어난 안나의 딸만 덩그러니 남게 된 것이다. 문제는 친모인 안나가 갓난아기인 이 딸의 생부가 과연 누구인지, 누가 그 딸의 아버지 역할을 할지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채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생물학적 부모라고 해도 무조건 아이의 친권 및 양육권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생부와 별개로 당시 안나는 하워드 마셜 사후 재산 분쟁 때문에 고용했던 변호사 하워드 K. 스턴과 사이가 깊어져 혼인신고만 하지 않았다 뿐, 이미 식도 올리고 사실혼 관계로 동거하던 상황이었다. 또한 아이의 양육권을 주장하는 남자들의 면모를 보면 대체로 상태가 영 아닌 케이스가 많은지라 과연 법원이 누구에게 양육권을 맡길지 예측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남겨진 재산은 안나의 딸 다니엘린에게 자동으로 상속되었는데, 미국 법으로는 이런 경우 아이를 양육하는 사람이 양육 기간 동안 매년 일정 금액을 받을 수 있게 되어있다. 안나의 재산이 한 1000억 쯤 되다 보니 양육비로 받는 돈도 연간 억 단위가 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세금도 안 뗀다. 즉 실소득이 연봉 수십만 달러가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딸 다니엘린의 소유로 되어있는 재산은 다니엘린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손을 못 대며 저 양육비 역시 다니엘린이 만 20살이 되면 끊긴다.

살인사건 소송으로 쫄딱 망한 O. J. 심슨[7], 배우 자자 가보[8]의 남편이기도 한 안할트 공자, 보디가드, 사진작가, 변호사 등등, 다 자기가 그 여자아이의 아버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이 생겼다. 보통 아이의 아버지가 의심스러울 때 남자들은 서로 아니라고 도망을 치는데 이번에는 정반대의 일이 생긴 것이다. 당연히 이들의 목적은 다니엘린에게 상속된 안나의 재산.

물론 대부분의 생부 후보들은 일찌감치 생부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두 후보는 전 남자친구였던 사진기사 래리 버크헤드(Larry Birkhead)와 안나 사망 시점까지 사실혼 관계였던 하워드 K. 스턴(Howard Kevin Stern)으로 압축되었다. 다행히 아버지 후보들 중 안나가 생전에 정신이 제일 정상적으로 박혀있고 책임감이 있다고 평한 사진작가 래리 버크헤드가 2007년 2월에 생부로 판명되었고[9] 법원은 래리에게 양육권을 넘긴다.[10] 래리 버크헤드는 이후에도 가급적 언론은 피하고 책임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얼마 전엔 딸 다니엘린이 게스의 아동복 모델로 나왔는데 이에 대해서도 아이가 원한 것이고, 향후 연예계 데뷔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모델 데뷔 후에도 뉴욕이나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켄터키 교외로 이주해서[11] 조용히 살고있다. 실제로 2019년 간만에 데일리 메일과 인터뷰에 응했을 때도 다니엘린은 셀러브레티랑 거리가 먼 평범한 10대처럼 등장했다. 집 안에는 다니엘린이 어머니를 추억할 수 있도록 생전에 입던 드레스같은 유품들을 보관하고 있는 모양. 안나의 유해를 뿌린 바하마에 종종 방문한다고 한다. *

참 팔자도 기구한 이 여성의 죽고 나서도 머리 아픈 가족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복 형제자매라는 인간들[12]이 안나의 이름을 팔아 여기저기 싸구려 미디어로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한편 바하마[13] 영주권을 얻기 위해 바하마 유력 정치인에게 몸로비를 했다는 루머도 공개된다. 그 뒤엔 몸로비로 바하마에서 쉽게 마약을 구했다는 루머도 있다.


파일:Anna-Nicole-Smith-Dannielynn.jpg

2018년 딸 다니엘린은 10살이 넘었는데 얼굴 이목구비를 보면 눈만 래리 버크헤드를 쏙 빼닮았고 그 나머지는 안나 니콜 스미스를 닮았다. 자라면서 점점 더 엄마를 닮아가는 중.

2022년 11월 29일, 래리 버크헤드가 안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포스팅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버크헤드는 안나 사후에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다니엘린을 키우고 있다. 심지어 다른 여성과 교제한다는 소식조차 없다. 다니엘린과 함께 자넷 잭슨의 공연을 보러 가거나, 할로윈에 엑소시스트분장을 하고 노는 등 '친구같은 아빠'로 지내는 모양. 미디어가 '안나 니콜 스미스' 라는 여성을 난도질하며 만든 '왜곡된 이미지'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녀의 모습을 조명할 수 있도록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넷플릭스에서 《애나 니콜 스미스: 유 돈 노 미》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다.


3. 주요 활동[편집]



3.1. 모델[편집]


  • 플레이보이: 당시 마릴린 먼로 이후 거의 끊어졌던 볼륨감 있는 금발 백치미로 인기를 모았다. 화려한 큰 체형의 미인에게 목말라 있던 사람들에게는 여신의 등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마리끌레르나 코스모폴리탄 등 여성잡지 모델로도 활동했다.

  • 게스걸: 이 때가 그녀의 리즈 시절이다. 하워드 마셜과 엮어져 골드 디거 뚱땡이 소리를 듣기 전,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된 케이스.

  • 트림스파 모델: 급격한 체중 감소 이후 트림스파라는 다이어트 약 모델이 된다. 당시 미국에 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어딜 가나 이 다이어트 제품광고 투성이였다고 하며, 당시 반응도 '저거 정말로 효과가 있나?'하고 혹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제품은 훗날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고 회수조치된다.

  • 플러스 사이즈 모델: 레인 브라이언트라는 플러스 사이즈 여성복 전속모델. 지면광고와 런웨이 모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특히 플레이보이 섹시 스타 출신다운 과감하고 당당한 워킹과 포즈로 플러스 사이즈 모델계에선 모범사례로 꼽힌다.


3.2. TV[편집]





한참 살 쪘을 때, 안나 니콜 쇼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내용은 말그대로 자신의 사생활이나 병원 시술하는 것 등의 프로그램. 진행 실력도 엉망이었던 탓에 욕도 얻어 먹었지만, 화제성은 있어서 3시즌까지 만들어졌다.


3.3. 영화[편집]



파일:총알탄 사나이 안나 니콜 스미스.jpg

《총알탄 사나이 3》 등에서 특유의 몸매를 강조한 조연으로 등장. 주연인 레슬리 닐슨을 유혹해 잠자리를 가지려던 트렌스젠더 역할, 극중에서 닐슨옹이 파트너의 거물을 보고 쓰러진다.


4.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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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우한 아동기 시절로 인한 우울증 때문인지 체중 변화가 심했다.[14] 보통 모델들의 허리사이즈가 24, 25인치 정도이고, 육감적인 스타일의 모델들이 26인치라고 할 때, 그녀의 리즈시절 공식 사이즈가 28인치였다. 그 때 체형이 브룩 호건[15] 정도였다는 얘기가 된다. 그녀가 마르지않은 몸에도 불구하고 모델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휴 헤프너가 매의 눈으로 일종의 니치마켓에 대한 수요를 공략해 만든 성공작이기 때문이다.


  • 외모는 물론이고 사실 인생 자체가 마릴린 먼로와 겹치는 면이 많다. 특히 약물로 인해 사망했다는 점도 둘의 공통점으로 알려져 있다.

  • 사후 일기장이 공개되었다. 남편이었던 하워드 마셜에 대한 언급도 있는데 그는 너무 약해서 건드리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다. 만약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를 정말 사랑하고, 그가 아플 때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를 안아주면서 내가 얼마나 마음 쓰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다라고 적혀 있었다. 링크

  • 니키 미나즈가 피쳐링을 가사에 'R.I.P. Anna Nicole Smith' 라든가 Nicole 이라든지 자주 등장한다.[16]

  • 위의 결혼 사진은 이질감 때문인지, 영미측에서 많은 밈에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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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후 부검 당시 키는 180.3 몸무게는 81이라고 했다.[2] 안나가 10대 때 낳았던 그 아들. 유명인 부모를 둔 여타 할리우드 아이들과 달리 겸손하고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어른들에게도 잘해서 평이 좋았다.[3] 전자는 모르핀과 같은 마약성 진통제, 후자들은 항우울제이다.[4] 여담이지만 사후에 시신의 사진이 찍히기도 했는데 하나는 포토샵인게 판명났고 다른 거는 진짜였다고 한다.[5] 제대로 된 남편없이 파란만장했던 안나의 삶에서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들 다니엘뿐이었다. 평소에도 그녀는 다니엘을 매우 아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안나는 생전 자신의 재산을 상속받을 유일한 피상속인으로 아들 다니엘을 지명했다.[6] 다이어트 실패와 재성공을 반복하면서 이름은 계속 날렸으며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의 진출도 성공적이었고 최악이라는 악평을 들었던 안나 니콜쇼도 화제는 계속 뿌리고 다녔다. 욕을 먹긴 했어도 그 대가로 연예계에서 생존은 할 수 있었던 것이다.[7] 아이의 외모는 아주 흰 피부에 금발벽안으로 도저히 심슨의 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심슨은 자신의 정자가 느려서 어쩌고 했는데, 진짜 양육권보다는 살인사건 소송비용으로 쫄딱 망한 후, 벌어들이는 돈이 쫙쫙 전처 가족에게 민사배상으로 가는 상황에서, 일종의 화제를 뿌려 돈 좀 벌까하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8] 안나 니콜 스미스를 포함한 이 세 사람은 레슬리 닐슨 주연의 코미디 영화 총알탄 사나이에 출연한 적이 있다. 안나 니콜 스미스는 3편에, OJ 심슨은 1~3편에서 주조연으로 출연, 자자 가보는 2편 오프닝에서 아주 잠깐 나온다.[9] 판결 후 법원을 나서면서 "I told you so!"(내가 말했잖소!) 멘트가 유명하다.[10] 다행히 생부가 아닌 것으로 판명난 스턴 쪽도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다 모인 아버지 후보들 중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이라 법원의 판결 결과에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다니엘린의 인생을 위해 버크헤드가 단독 양육자가 되는 것에 도움을 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버크헤드는 이후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오해와는 정반대로, 몇 달 동안 아이의 아버지로서 다니엘린을 양육한 경험이 있는 스턴의 도움 덕에 성공적으로 다니엘린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며 우호적으로 표현했다.[11] 공식적으로 얼굴을 보이는게 경마 행사인 켄터키 더비 관람이라고 한다. 래리랑 안나가 처음 만난 곳이라고.[12] 그 중에는 같은 업종의 스트리퍼 출신도 있다.[13] 바하마 영주권 소지자로 바하마에서 출산을 했다.심지어 사후 생전에 바하마에 묻히고 싶었다는 얘기를 해서 바하마애서 매장 허가 및 장지를 구해느라 시간이 거의 한달 걸려서 그녀의 시신은 부검 후 한달 가까이 영안실 냉동고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이때 몇몇 무개념 황색언론 기레기들이 돈으로 영안실 직원을 매수한 뒤 시신의 얼굴을 찍었다고 한다… [14] 사후 검시 때 키는 180이었지만 그 키에 비해 과체중인 81kg가 나왔다. 세간에 알려졌돈 몸무게 보다 무거웠다고.[15] 그 유명한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의 친딸이다.[16] 참고로 니키는 니콜의 애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