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베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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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베베른
Anton Webern


파일:Anton_Webern.jpg

본명
안톤 폰 베베른
Anton von Webern
출생
1883년 12월 3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망
1945년 9월 15일 (향년 61세)
오스트리아 미테르칠
국적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display: none; display: 오스트리아"
행정구
]]

직업
작곡가

1. 개요
2. 생애
3. 작품 및 작곡 특징
4. 주요 작품
4.1. 관현악
4.2. 실내악
4.2.1. 현악 4중주
4.2.2. 첼로&피아노
4.2.3. 현악 3중주
4.2.4. 기타
4.3. 피아노
4.4. 가곡
4.5. 합창



1. 개요[편집]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와 2차 빈악파를 주도했다.


2. 생애[편집]


1883년 빈에서 남 부럽지 않은 명문가에서 출생, 5살 때 피아노와 첼로를 배우고, 14살에는 오케스트라의 첼로 단원으로 있으면서 관현악곡을 익혀갔다. 대학 입학 전에는 라틴어, 그리스어, 문학, 수학, 철학 등을 공부하였고, 16살때는 합창단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기도 하는 등 젊었을 적부터 천재성을 보여주었다.

이후, 대학에서 음악이론을 공부하면서 구스타프 말러의 지휘와 음악에 큰 감명을 받았고,[1] 이때부터 쇤베르크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쇤베르크와는 계속 친분을 가지게 된다. 이때 그가 처음으로 작품번호를 붙인 '파사칼리아'는 쇤베르크의 영향을 충분히 받은 작품으로, 이후 그의 특징인 엄격한 음렬의 준수, 내면적 침잠 등을 보이는 작품이다.

이후, 그는 계속해서 작곡등의 음악활동을 꾸준히 해나가지만, 1939년 오스트리아에도 나치가 집권하면서 그의 음악은 '퇴폐 음악'으로 낙인찍히게 된다.[2] 나치 집권 동안 공적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악보 교정 작업이나 개인 레슨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갔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그의 활동이 재개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를 점령하고 있던 미군 병사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온 그를 오인사격.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베베른의 사위가 잘츠부르크 암시장에서 군수품을 암거래하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그날 밤 미군 두어 명이 암거래상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곳에 잠복하고 있었다. 잠복한 미군은 어떤 남자가 집에서 밖으로 나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쏘는 것 같다고 판단해 그 자리에서 소총으로 마구 갈겼고, 라이터를 꺼냈을 뿐인 베베른은 머리와 배에 총알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만 61세였다.[3]

쇤베르크 이상으로 엄격한 음렬 기법을 구사한 것이 모범적인 선례로 여겨졌기 때문에, 사후에 젊은 작곡가들에게 신화적인 위치에 오르며 '성 안톤'이라 불리는 등 엄청난 고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대중적 인기와는 거리가 멀다.


3. 작품 및 작곡 특징[편집]


  • 매우 응축된 형태로 작곡했다. 전집 악보는 얇은 책으로 4권 안에 정리되고, 연주 시간은 4시간을 넘지 않는다. 짧은 길이를 높은 음악적 밀도로 채우는 것이 베베른 작품의 특징이자 매력.
  • 성악 작품이 많다. 작품번호가 붙은 31개의 작품 중 17개가 성악곡이다.
  • 본인의 작품 악보에 연주 시간을 명시했는데, 대부분 실제 길이에 비해 길게 잡고 있다.


4. 주요 작품[편집]



4.1. 관현악[편집]



  • 교향시 여름 바람 속에서(1904)
  • 파사칼리아 D단조 Op.1(1908)
  • 관현악을 위한 6개의 소품 Op.6(1909~10, 1928년에 개정함)
  • 관현악을 위한 5개의 소품 Op.10(1911~3, 1913년에 개정함)
  • 교향곡 Op.21(1928)
  • 관현악 변주곡 Op.30(1940)


4.2. 실내악[편집]



4.2.1. 현악 4중주[편집]



  • 느린 악장(1905)
  • 론도(1906)
  • 5개의 악장 Op.5(1909)
  • 6개의 바가텔 Op.9(1913)
  • 현악 4중주 Op.28(1928)


4.2.2. 첼로&피아노[편집]


  • 2개의 소품(1899)
  • 3개의 작은 소품 Op.11(1914)
  • 첼로소나타(1914)


4.2.3. 현악 3중주[편집]


  • 현악 3중주를 위한 소품(1925)
  • 현악 3중주 Op.20(1927)


4.2.4. 기타[편집]


  • 피아노 5중주(1907)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소품 Op.7(1910)
  • 4중주 Op.22(1930)
  • 9개의 악기를 위한 협주곡 Op.24(1934)


4.3. 피아노[편집]



  • 론도(1906)
  • 피아노 소품(1924)
  • 어린이 소품(1925)
  • 피아노 변주곡 Op.27(1936)


4.4. 가곡[편집]


  • 3개의 시(1899~1902)
  • 8개의 초기 노래(1901~3)
  • 3개의 노래(1903~4)
  • 4개의 노래 Op.3(1907~8)
  • 4개의 노래 Op.4(1908~9)
  • 스테판 게오르크에 의한 4개의 노래(1908~9)
  • 2개의 노래 Op.8(1910)
  • 3개의 시(1913~4)
  • 4개의 노래 Op.12(1915~7)
  • 4개의 노래 Op.13(1914~8)
  • 3개의 노래 Op.18(1925)
  • 3개의 노래 Op.23(1934)
  • 3개의 노래 Op.25(1934~5)


4.5. 합창[편집]


  • 2개의 노래 Op.19(1926)
  • 칸타타 1번 Op.29(1938~9)
  • 칸타타 2번 Op.31(19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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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때문에 작곡 초기의 작품들에 말러의 영향이 감지된다. 이는 쇤베르크와 비슷하다.[2] 정작 아이러니하게도 베베른은 골수 나치 지지자였다고 한다.(...) 참고로 쇤베르크와 달리 베르크와 베베른은 유대인이 아니었다.[3] 단지 담배를 피려고만 했던 예순의 일반 시민을 오해로 총살한 취사병 레이몬드 노우드 벨(Raymond Norwood Bell, 1914~1955) 일병은 죄책감에 술만 마시다가 알콜 중독으로 1955년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