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슐리 콜

덤프버전 :


애슐리 콜의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베스트팀
파일:유럽 축구 연맹 로고.svg

2004 · 2010
파일:PFA_UK_logo.png

2002-03 · 2003-04 · 2004-05 · 2010-11


애슐리 콜의 기타 정보

[ 펼치기 · 접기 ]







England National U-21 Football Team

이름
애슐리 콜
Ashley Cole
출생
1980년 12월 20일 (43세)
영국 잉글랜드 런던 타워햄리츠 스테프니
국적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 [[바베이도스|

바베이도스
display: none; display: 바베이도스"
행정구
]]

신체
176cm, 66kg
주발
왼발
직업
축구 선수 (레프트백 / 은퇴)
축구 코치
소속
<colbgcolor#e31e31> 선수
아스날 FC (1998~2006)
크리스탈 팰리스 FC (1999~2000 / 임대)
첼시 FC (2006~2014)
AS 로마 (2014~2016)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2016~2018)
더비 카운티 FC (2019)
코치
첼시 FC U-15 (2019~2022)
잉글랜드 U-21 대표팀 (2021~ / 수석 코치)
에버튼 FC (2022~2023)
첼시 FC (2023)
버밍엄 시티 FC (2023~ )
국가대표
107경기 (잉글랜드 / 2001~2014)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지도자 경력
5. 플레이 스타일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7. 애슐리 콜에 대한 헌사
8. 기타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잉글랜드 국적의 축구 선수 출신 코치. 선수 시절 포지션은 레프트백이며 전성기 시절 소속 구단은 물론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부동의 주전 레프트백이었다.


2. 클럽 경력[편집]



2.1. 아스날 FC[편집]


아스날 FC 유스 출신으로 1998년 아스날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프리미어 리그 데뷔는 2000년 5월 14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였다.

아스널의 선수진에 완전히 녹아들기 전에 크리스탈 팰리스 FC에 임대되어 선수생활을 하기도 했다. 거기서 그는, 14번의 리그 매치에 출장하였으며, 한 골을 기록했는데, 그 골은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에서의 먼 거리에서의 발리-슛이었다. 2000년 가을, 아스널의 왼쪽 풀백으로서 맹활약을 했던 브라질 출신의 선수 시우비뉴가 부상을 당하자, 애슐리 콜은 그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아스널로 돌아왔다. 시우비뉴가 부상을 회복한 뒤에도 애슐리 콜이 주전으로 뛰었다.

콜이 아스날에서 주전으로 뛰었던 2000~2006년은 가히 '아스날 영광의 시대'였고[1], 잉글랜드 선수 더구나 유스 출신으로서 이 시대를 함께 한 콜에게 팬들은 각별한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아스날 유스 출신에 실력도 월드클래스이기 때문에 차기 주장감으로 얘기될 정도였다. 애슐리 콜은 아스널에서 228차례 경기를 뛰면서, 9골을 기록했다


2.2. 첼시 FC[편집]


주급 인상 문제로 불화를 겪고 결국 2006년 8월 31일에 윌리엄 갈라스에 현금을 더한 트레이드로 첼시로 이적했다. 공교롭게도 국가대표팀 경쟁자인 웨인 브리지와 클럽에서도 같이 경쟁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첼시와 불법접촉 논란까지 일었고, 실제로 청문회를 통해 불법접촉한게 밝혀졌다. 게다가 당시 콜은 아스날과 재계약을 맺은 지 얼마 안된 상황이었다. 거기에 첼시로 이적한 뒤 자서전에서 아스날 디스까지 해댔으니.. 당연히 아스날 선수와 팬들이 이를 갈 만 하다. 이후 아스날 팬들은 그를 돈슐리 콜(Cashley Cole)란 멸칭을 붙였고, 첼시와 아스날의 경기가 있을때 콜이 공만 잡으면 엄청난 야유를 쏟아냈다.

그러던 2007년 1월 31일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열린 프리미어 리그, 3-0으로 승리한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에서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했다. 정밀 검사 결과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지는 않았기에, 2006-07 시즌이 끝나기 전에 복귀할 것으로 예상됐다. 콜은 그 말대로 시즌이 끝날 때 가까스로 돌아왔는데, 그는 웸블리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2007년 FA컵 결승 경기에 출장했다. 주제 무리뉴 감독이 그를 결승전 선수 명단에서 뺄 것이라고 처음에는 예상됐지만 첼시에서의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이후 선더랜드와의 2008-09 시즌 프리미어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첼시는 콜의 골로 3-2로 승리하였다. 다음 시즌 콜은 초반 6경기에 연속 출장했으며, 번리, 토트넘 홋스퍼, 선더랜드와의 경기에서 각각 그의 3, 4, 5번째 득점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2009년 9월 2일, 첼시와의 4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런데 2010년 여름 또 이적 문제가 불거졌다. 무리뉴가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설이 터진 것. 물론 첼시는 부인했다. 사실 이 이적 문제는 돈 문제와 함께 이혼으로 인한 잉글랜드 타블로이드지들의 집착취재에 질린 나머지 스페인으로 떠나려 한 측면도 있었다. 무리뉴가 지속적으로 구애를 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적이 꽤 유력해 보였으나 안첼로티 감독의 설득으로 일단은 첼시에 잔류했다. 그렇게 잔류한 콜은 2010-11 시즌에도 리그에서 38경기에 출장했으며, 첼시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파일:20210112_211816.jpg}}}
2011-12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발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첼시는 이 시즌 감독 경질로 시끄러웠는데 16강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특히 존 테리가 빠진채 참여한 결승전에서는 페트르 체흐프랭크 램파드, 다비드 루이스, 게리 케이힐라이언 버트란드등의 선수들과 함께 조제 보싱와 을 충실히 보필했다. 4강전 바르셀로나전 수비에서 방패 역할을 충실히 실행했고 골라인에서 가까스로 걷어내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결승전에선 특히 마리오 고메스를 충실히 틀어막아 분데스리가 득점순위 2위인 고메스가 한 골도 넣지 못하게 막았고 가장 중요한 로베리 라인을 첼시 선수들과 잘 막았으나 후반 83분 토마스 뮐러 마킹에 실패하면서 뮌헨에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으나 드록바가 동점골을 집어넣으며 연장으로 이끌었고 연장전에선 체흐의 골키퍼 원맨쇼로 승부차기 끝에 챔스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12-13 시즌에도 주전으로 활약하였고, 2012년 12월 1일, 콜은 본인의 리그 350번째 경기에 출장하였다. 2013년 1월 22일에는 첼시와의 1년 재계약 연장에 합의하였다. 또한 이 시즌에 첼시는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하면서 2 시즌 연속으로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3-14 시즌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와 함께 첼시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노장(?)이지만[2] 셋 중 가장 입지가 위태로운 상태다. 본인의 폼이 떨어진 것도 있고 부상당한 동안 라이트백인 세자르 아스필리쿠에타가 급성장하여 레프트백 주전을 꿰찼기 때문에 경기에 나오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 그래서인지 재계약 협상이 지지부진하고 있고 이적설이 간간히 돌고 있는 상태다. 소속팀에서의 입지와 함께 부동의 자리로 여겨졌던 국가대표에서의 입지 역시 심각히 악화된 상태로 레이턴 베인스에게 주전 자리를 사실상 넘긴 상태. 문제는 백업 자리마저도 신예 루크 쇼의 등장으로 불투명해지면서 월드컵에서 애쉴리 콜을 볼 수 없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 결국 베인스와 쇼에게 밀려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탈락했고,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택했다.

2014년 7월 1일 첼시와의 계약이 만료되어 8시즌간의 첼시에서의 생활을 마감했다. 자유계약이 된 콜은 AS 로마와 계약을 맺었다.


2.3. AS 로마[편집]


이로서 AS 로마 좌측 풀백 애쉴리 콜, 우측 풀백 마이콘이라는 레전드 풀백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들이 4년만 젊었어도 엄청난 공포의 조합이었을 듯. 애쉴리 콜은 로마에서 활약하게 된 것을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2014-15 UEFA 챔피언스 리그 바이에른 뮌헨과의 홈경기에서 아르연 로번에게 영혼까지 털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량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 결과 현재 조기 방출설까지 돌고있는 상황이다. 아 옛날이여.

15-16 시즌 AS로마 스쿼드에서 아예 잊혀졌다. 리그와 챔스 전부 소집되지 않으며, 구단측에서 아예 사용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또한 이 사실을 콜 본인도 잘 알고있으나 잉글랜드로 돌아가는것을 끔찍이 싫어해서 주급만 타먹으면서 1월까지 버틸 예정이며, 시즌 도중 퍼거슨 VS 베컴의 올스타 자선경기에 출전하여 나쁘지 않은 몸상태를 보여주었다. 한편 AS 로마 선수단 단체 사진 촬영 당시의 포즈가 화제가 되었다. #


2.4. LA 갤럭시[편집]


2016년 1월 27일에 스티븐 제라드의 권유로 LA 갤럭시와 계약을 맺으며 미국 프로 축구 리그에 뛰게 되었다.

2018년 3월 31일 있었던 LAFC와의 더비 경기에서 91분에 즐라탄의 데뷔 경기 두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면서 경기를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2018년 11월 27일 재계약을 맺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2019년 1월, 뜬금없이 잉글랜드 챔피언쉽의 더비 카운티와의 링크가 뜨고 있다.

BBC, 존 퍼시(텔레그래프)에서 기사가 나왔고, 램파드도 관심을 인정하며 실제로 입단할 것으로 보인다.


2.5. 더비 카운티 FC[편집]


결국 1월 21일, 6개월 단기 계약으로 더비 카운티에 합류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한다고 밝혔다.

2월 16일 브라이튼과의 FA컵16강 원정경기에서 0-2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상대 실수를 틈타 헤딩골을 넣었다. 하지만 팀은 1-2로 패배, 결국 더비의 조기 FA컵탈락이 확정되었다.

더비의 레프트백이 대부분 부상당한 상태에서 팀에 합류한 이후 주전으로 뛰었고, 스콧 말론이 복귀한 이후에도 번갈아 출장하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3]

그리고 2019년 8월 18일,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20년의 프로 생활을 그만두고 은퇴함을 밝혔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2001년 3월 28일 알바니아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2013년 2월 6일 브라질 전에서 100번째 경기를 치르면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2014년 5월 11일,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였다.


4. 지도자 경력[편집]


첼시 FC는 2019년 10월 17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콜이 U-15 팀 코치로 합류하게 되었음을 발표했다.

현지 시각 2021년 7월 27일, 잉글랜드 U-21 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부임했다.#

현지 시각 2022년 2월 3일, 에버튼 FC의 1군 코치로 합류했다. 2023년 1월 24일, 프랭크 램파드가 경질되면서 에버튼을 떠나게 되었다.

2023년 4월 6일, 프랭크 램파드첼시 FC에 임시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코칭 스태프 일원으로 크리스 존스, 조 에드워즈와 함께 합류하게 되었다. 램파드가 떠난 이후에도 콜은 첼시 구단에 잔류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 레프트백으로도 스텝업에 도전하는 리바이 콜윌의 패스와 크로스 관련으로 개인 레슨을 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2023년 10월 11일, 버밍엄 시티 FC의 코치로 부임했다. 잉글랜드 U-21 대표팀 코치직은 유지한다고 한다.#


5. 플레이 스타일[편집]


}}}
2000년대 이후 영연방 통틀어 최고의 왼쪽 풀백이자 완성형 풀백, 때로는 잉글랜드 역대 최고의 레프트백[4]으로도 평가 받고 있다. 공격력과 수비력, 체력 등 모든 부분에서 결점이 없었다. 특히 애슐리 콜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수비력이다. 일단 상대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잘 읽기 때문에, 상대 팀의 역습을 차단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특히 역대급으로 빠른 반응속도를 기반으로 한 대인 수비 능력은 당대의 모든 축구선수 중에서 가장 좋은 수준이었다. 일단 자신이 마크한 선수에게 틈을 보이지 않아 아무리 빠른 윙어들이라도 콜 앞에서는 항상 쩔쩔맸다. 또한 거칠면서도 영리한 플레이로 상대 팀 윙어들을 괴롭혔다. 지저분하면서도 영리해서 카드 받을 반칙만 요리조리 피해가는 사악한 수비 스타일 때문에 상대팀 팬들에게는 더티 플레이어로 비난받기 일쑤였다. 그만큼 영악한 수비를 펼쳤다.

또한 콜의 슬라이딩 태클은 엄청난 스피드와 정확성을 자랑했다. 뒤에서 속도를 맞추어 따라가다가 공격수가 안쪽으로 접어들어가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슬라이딩해서 끊어냈다. 슈팅 블로킹 능력이 탁월했으며, 골대로 들어가는 공을 걷어내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수비 시 적극성이 아주 뛰어난 선수였고, 존 테리, 카르발류 등의 수비수들과 함께 "2000년대 첼시 수비 = 걸레 수비"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주력과 스태미너는 비할 데 없이 훌륭했으며, 쉴새없이 공수를 오가며 활약했다. 특히 민첩성이 굉장히 좋아서 이를 수비 시에 잘 활용했다. 위에 언급한 대인 수비 능력은 뛰어난 주력, 민첩성, 반응 속도에 기반한다.

공격력 역시 좋았다. 아스널 시절에는 수비보다는 공격적인 면에서 훨씬 두드러지는 레프트백이었고 그의 롤모델은 호베르투 카를루스였다. 아르센 벵거도 카를루스의 뒤를 이을 월드클래스 레프트백이라며 콜의 공격력을 매우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오버래핑 타이밍을 잘 잡았으며, 주변 선수들과의 연계도 우수했다. 현란한 스텝 오버 등 깔끔한 개인 기술로 상대 수비진을 돌파한 후, 컷백 후 크로스를 올리는 것이 주특기이다. 주로 앙리가 왼쪽 측면으로 쳐졌을 때 왼쪽 미드필더인 로베르 피레스가 중앙으로 들어가면, 애슐리 콜이 치고 올라와 삼각형 플레이를 하는 것이 아스날의 주 공격 루트 중 하나였다.

첼시 시절에는 아스날 때처럼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지는 않았다. 콜이 뛰던 첼시는 감독이 누구이든간에 대체로 4-3-3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했는데, 그랬기 때문에 왼쪽 공간을 계속해서 파고드는 역할은 레프트 윙어에게 맡기고 자신은 수비 지향적인 플레이를 기반으로 간헐적으로만 오버래핑하여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려주는 역할을 주로 했다. 이런 스타일 변화를 볼 때, 콜의 전술적 이해도는 참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공격 지원이 훌륭하면서도 수비 전환시 백코트도 굉장히 부지런한 선수였으며 수비 스킬이 매우 절륜하였기 때문에 애슐리 콜이 출전하게 되면 팀의 경기력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6. 기록[편집]



6.1. 대회 기록[편집]





6.2. 개인 수상[편집]


  • UEFA 올해의 팀: 2004, 2010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2004
  • 프리미어 리그 20시즌 베스트 XI (1992-93~2011-12)
  • PFA 올해의 팀: 2002-03, 2003-04, 2004-05, 2010-11
  • FA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09
  • 잉글랜드 올해의 선수: 2010
  • 첼시 선수단 선정 올해의 선수: 2008-09, 2010-11
  • 첼시 올해의 골: 2009-10
  • IFFHS 올타임 잉글랜드 드림팀: 2021


7. 애슐리 콜에 대한 헌사[편집]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수비수는 애슐리 콜이다. 우린 리그에서 자주 맞붙었고 훌륭한 대결을 펼쳤다. 과거 몇 년간 콜을 상대했는데 그는 숨 쉴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아주 끈기가 있는 선수다. 콜이 수비수로 있다면 결코 쉬운 경기를 할 수 없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콜 같이 정말 훌륭하고 위대한 선수와 비교된 일은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이러한 발언은 나에게 많은 신념과 자신감을 가져다줬으며 내가 지금보다도 더 최선을 다하게끔 만들었다. 나는 콜을 보고 자랐다. 그는 내가 정말로 존경했던 선수이다.

라이언 세세뇽, 주제 무리뉴가 자신을 영입하고 '콜처럼 플레이할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하자 보인 반응


레프트백으로 성장하면서 그를 많이 봤고, 지향점으로 삼았다. 내겐 그가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이다. 애슐리 콜의 플레이를 많이 봤고, 그같은 선수가 되고 싶었다. 대표팀 캠프에서 그와 함께 뛰어봤으니 나는 행운아다. 어린 시절 늘 보던 우상과 같은 선수가 주위에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루크 쇼 출처



8. 기타[편집]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천적으로도 유명하다. 위 영상을 보면, 첼시 3번 애슐리 콜과 맨유 7번 호날두의 불꽃 튀는 대결을 볼 수 있다. 이 당시 호날두와 애슐리 콜의 대결은 상당히 흥미진진하였다. 호날두는 당시 오른쪽 윙어로 출장했고 애슐리 콜은 레프트백이었으니 포지션상 자주 충돌했는데, 호날두의 고속 돌파를 애슐리 콜이 빠른 발을 이용해 번번이 차단하는 모습은 가히 일품. 호날두는 여태껏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수비수가 애슐리 콜이었다고 밝혔다.[5]

  • 2010년 2월, 불륜 스캔들이 터졌다.[6] 덕분에 존 테리, 웨인 루니와 함께 EPL 불륜 삼인방 이라 불리며 까이고 있다.[7] 그나마 앞의 두 사람 만큼 파급효과는 없어서 잘 언급은 되지 않지만, 지금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까인다. 그것도 For Him Magazine 선정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으로 뽑힌 아내를 두고도 불륜을 저질렀다.
파일:external/www.hellomagazine.com/5505-cheryl-cole.jpg
애슐리 콜의 전 부인이자, 모델 겸 가수 셰릴.

  • 2011년에 들어서는 실수로 구단 스탭을 공기 총으로 쏘는 바람에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다. 스티븐 제라드가 '한 번 거너는 영원한 거너'라고 깐건 보너스다. 거너는 아스날의 애칭이다.

  • 축구선수임에도 흡연자다. 말보로 라이트를 주로 피우는 모양이다. 파파라치에게 흡연하는 사진을 자주 찍혀서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현대축구에서 체력 소모가 가장 심한 포지션인 풀백이 흡연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탄산 음료도 좋아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폼이 10년 이상 꾸준한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그럴 만도 한게 프랭크 램파드의 증언에 따르면 항상 훈련장에 가장 먼저 와서 가장 마지막에 나갔다고 한다. 그만큼 축구만 놓고 보면 매우 성실하고 자기 관리도 잘하는 모범적인 선수였다.

  • 현역 시절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선수로 리오넬 메시를 꼽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애슐리 콜은 현역에서 메시를 상대로 득점을 내준 적이 없다.

  • 과거 인터뷰에서 더 이상 축구가 즐겁지 않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열정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더 이상 그 일을 좋아할 수 없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렇게나 축구를 좋아해서 선수까지 된 것인데 막상 선수가 된 뒤로는 승패에 따른 압박감을 가지게 되면서 더 이상은 축구를 즐길 수만은 없게 되었다는 취지의 인터뷰였다.

  • 바베이도스계 흑인 아버지인 론 칼렌더와 백인 어머니 수 콜[8]에게서 태어났다.

9. 둘러보기[편집]


파일:첼시 FC 로고.svg
첼시 FC 2023-24 시즌 스태프

[ 펼치기 · 접기 ]
첼시 FC 2023-24 시즌 스태프
직위
국적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비고
감독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Mauricio Pochettino
[1]
수석 코치
파일:스페인 국기.svg
헤수스 페레스
Jesus Perez
[2]
코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미겔 디아고스티노
Miguel d'Agostino
[3]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세바스티아노 포체티노
Sebastiano Pochettino
보조 코치
파일:스페인 국기.svg
브루노 살토르
Bruno Saltor
[4]
골키퍼 코치
파일:스페인 국기.svg
토니 히메네스
Toni Jiménez
[5]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엔히크 일라리우
Henrique Hilário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벤 로버츠
Ben Roberts
골키퍼 보조 코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제임스 러셀
James Russell
[6]
임대 선수 코치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를로 쿠디치니
Carlo Cudicini
[7]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앤디 마이어스
Andy Myers
기술 멘토
파일:프랑스 국기.svg
클로드 마켈렐레
Claude Makélélé
[8]
구단 정보
출처: 첼시 공식 웹사이트 / 마지막 수정 일자: 2023년 8월 17일
[1] Head Coach[2] Assistant Head Coach[3] Coach. 1군의 일반적인 기술 및 전술 코치다.[4] Assistant Coach. 1군 코치의 지원 코치 역할이다.[5] Goalkeeper Coach. 일반적인 골키퍼 코치다.[6] Assistant Goalkeeper Coach. 골키퍼 코치의 지원 코치 역할이다.[7] Loan Player Technical Coach. 임대 선수들의 기술 코칭 및 매니징 역할이다.[8] Technical Mentor. 주로 아카데미 및 임대 선수들의 기술 성과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역할이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8 08:42:09에 나무위키 애슐리 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EPL 우승 2회(심지어 그 중 하나는 전설의 무패 우승, FA컵 우승 3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1회[2] 슈왈쳐 골키퍼는 1년 단기계약이니 제외.[3] 말론이 부상 복귀 이후 폼이 떨어졌기 때문. 사실 더비가 콜을 영입한 이유는 말론의 부상으로 임대복귀시킨 맥스 로우가 부진했기 때문이었는데, 말론의 부상 복귀 이후에도 말론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콜은 팬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4] 콜과 비슷한 위상을 가진 잉글랜드의 레프트백은 에디 햅굿, 케니 샌섬, 스튜어트 피어스가 있다.[5] 호날두는 리그에서는 첼시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다가, 콜이 은퇴하고도 한참 뒤인 21-22시즌에서야 첼시를 상대로 첫 리그 득점을 기록하였다.[6] 사실 이 스캔들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 동안은 비교적 조용히 넘어갔었다.[7] 물론 이 셋을 아득히 초월하는 불륜 원톱 라이언 긱스에 비하면 명함도 못내밀 수준이지만...[8] 가수 마리아 캐리의 사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