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적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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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bivalent sexism
1. 개요
2. 적대적 성차별주의과 온정적 성차별주의
3. 진화심리학의 설명
4. 여성의 사회 진출과 양가적 차별
5. 생각해 볼 점



1. 개요[편집]


대인관계에 있어서 전통적 성 역할에 충실하도록 적대적이면서 동시에 호의적인 방식으로 압력을 가하는 것을 칭하는 사회심리학 용어.

양가적 차별을 다루는 문헌들은 예시로서 종종 레이디 퍼스트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대개는 레이디 퍼스트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레이디 퍼스트가 "몹시 숭고한", "자기희생적인" 남성들의 덕목으로 추앙되고 있는 맥락을 지적하고 있다.


2. 적대적 성차별주의과 온정적 성차별주의[편집]


지난 2000년심리학계는 성차별 전문 심리학자 피터 글리크(P.Glick)와, 첫인상 관련 고정관념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수전 피스케(S.T.Fiske) 등의 석학들을 주축으로 하여 적대적 성차별주의(HS; hostile sexism)과 온정적 성차별주의(BS; benevolent sexism)을 구분하는 논문을 발표했다.[1] 이들은 성차별이라는 것이 무조건 억압과 증오, 적개심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무조건 남성들은 성차별을 옹호하고 여성들은 성차별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일반적인) 여성에 대한 폄하와 멸시에 더해 (어떤 여성들에 대한) 숭앙과 찬사가 교차하는 현상을 두고 통칭 양가적 성차별(ambivalent sexism)[2]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하의 모든 내용은 최근 논문이 아닌 1990년대 2000년대의 심리사회학 및 여성학 분야의 논문을 바탕으로 하므로 현대 사회의 모습과 거리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힌다.

사실 대놓고 난장판이 벌어지는 인터넷 환경이 아닌 한, 많은 인권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대에는 대놓고 적대적 성차별을 주장하는 사람은 드물다. 물론 이러한 적대적 성차별자들이 아예 그들이 하는 말처럼 "여성은 상종하지 못할 인간들"로 여기고 여성들과의 연을 끊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인류 고금을 통틀어서 아예 그런 식의 생각으로만 일관하면서 자손 번식에 성공했던 수컷은 거의 없다시피할 만큼 극소수였다. 이들은 성적 재생산을 위한 기본적 자원으로서의 여성의 최소한의 가치만을 인정할 따름이며, 그만큼 더욱 타자화된 여성의 몸 에 집착한다.

반면 온정적 성차별주의은 의외로 사회적 상황에서 대놓고 말하더라도 직접적으로 체면이 깎이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이상형을 형성하는 데 활용되고,[3] 일부는 예능 등에 나오더라도 사회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되곤 한다.

대부분의 적대적 성차별주의은 그 이면에 온정적 성차별주의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가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조금 광범위한 의미에서 김여사 논쟁을 살펴보면, 여성 운전자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쯧쯧, 집에 가서 애나 볼 것이지, 여자가 되어 가지고 어딜 밖에 함부로 차를 끌고 나와?" 라며 꼰대짓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식의 적대적 성차별주의의 주요 전제는, "여성은 집안일에 가장 능숙하며(+), 능숙하지 못한 나머지 활동들은(-) 남성에게 위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 온정적 성차별주의의 논리로 뒷받침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경계선이 희미하기 때문에 반대의 상황도 상상해볼 수 있다. 평소 적대적 성차별을 거부하면서 온정적 성차별에는 크게 문제삼지 않는 어떤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특정 경험이나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적대적 성차별자의 편을 들거나 해당 현상을 적극 옹호할 위험성이 있다.

관련 연구자들에 따르면 적대적 성차별주의에 더 많이 동의하는 쪽은 남성인 반면,[4] 온정적 성차별주의의 경우 남성들이 여전히 더 많이 동의하기는 해도 그 남녀 간의 차이는 확연히 작았다고 한다.[5] 또한 연구자들은 과열 경쟁노력드립을 맹종할수록 적대적 성차별주의에도 더 많이 동의하며,[6] 전통적 가치체계와 사회질서를 옹호하는 보수주의, 그리고 독실한 종교적 신앙심의 경우는 온정적 성차별주의을 예측할 수 있음을 보였다.[7]

온정적 성차별주의를 지지하는 여성들이 연애를 할 경우, 이들은 실제보다 훨씬 더 강한 전통적 여성성 및 의존성을 드러낸다. 문헌에 따르면 이들은 남친을 만나러 갈 때 다른 여성들보다 유독 더 두텁게 화장을 하며,[8] 남친에 대해 기사도(chivalrous)적인 가치를 중시할수록 교육이나 커리어패스에 대해 관심을 적게 보인다.[9]

비슷한 연구에 따르면, 온정적 성차별주의를 지지하는 여성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적대적 성차별주의에도 호의적이고 긍정적이게 되며,[10] 또한 혼전순결을 거부하거나 독신으로서 일에만 몰두하는 다른 여성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발견도 있고,[11] 심지어 현실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불평등]]에 대해서 그것을 애써 긍정하려는 심리가 나타나기도 한다.[12]

또한 온정적 성차별주의를 지지하는 남성들일수록 자신이 교제하는 여성의 순결 여부에 더욱 집착한다는 연구도 있다.[13] 심하게는, 온정적 성차별주의을 내재화한 여성들은 강간 사건이 벌어져도 피해자의 부정 또는 정숙하지 못한 태도를 먼저 비난하는 경우가 많으며,[14] 이는 피해자가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정조" 라는 도덕적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온정적 성차별주의가 오가는 커플은 가정폭력데이트 폭력에 그만큼 무기력해진다는 연구도 있다.[15]


3. 진화심리학의 설명[편집]


진화심리학자들은 짝 선호(mate preference)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여성의 의존성이 진화적으로 한때 적응적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남성은 자손 번식을 할 수 있도록 연상보다는 연하의 여성을 더 선호하는 반면, 여성들은 자녀 양육에 더 많은 안전과 도움을 확보할 수 있도록 많은 자원과 지위를 갖춘 남성을 선호한다는 것이다.[16] 여기에 양가적 차별이 상당한 설명력을 갖는데, 예컨대 여성을 "보호해주어야 할 존재" 로 생각하는 관점은 "요리를 잘 하는 어린 여성" 에 대한 남성들의 선호를 예측할 수 있었다는 보고가 있다.[17]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어떤 이론가들은 "진화적으로 보아 자원과 지위에 대한 극도의 경쟁성을 보이는 남성들에 대한 여성의 선호[18]가 적응적이기에, 이러한 선호로 인하여 원시적인 가부장제가 나타났다" 고 주장하기도 하였다.[19] 결국 그러한 남성들에게서 보호받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음으로써, 여성들은 더욱 안전하게 자녀 양육을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온정적 성차별주의에 대한 여성들의 지지에는 나름대로 진화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남성들에게도 "강한 남성" 이 되는 것이 매력적이게 만들어서 결국 피튀기는 경쟁과 혈투를 치르게 만들고, 여성들을 적대하는 심리가 방치되며, 그 결과 현대에 이르러서는 "내 먹잇감에 대한 경쟁자" 로 새롭게 떠오른 직장여성들에 대한 적개심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논자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마도 여군여경에게 남자보다 쉬운 업무만 하고 꿀만 빨고 산다면서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일 것이다.[20] 단, 이는 가부장적인 판단을 넘어 실제 사례들이 존재하며 언론에서 보도가 많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4. 여성의 사회 진출과 양가적 차별[편집]


문서 서두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사회심리학자 수전 피스케는 일찍이 고정관념 내용 모형(SCM; Stereotype Content Model)을 만들면서,[21] 남성에 대해서는 "유능하지만 냉담하다", 여성에 대해서는 "따뜻하지만 무능하다" 와 같은 고정관념을 쉽사리 형성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온정적 성차별은 은근슬쩍 그 웃고 있던 얼굴을 화난 얼굴로 바꾼다. 직장에서의 양가적 차별은 그 결과 후원적 차별(patronizing discrimination)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연구가 있다.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온정적 성차별, 소위 "기사도" 는 과잉도움(over-helping), 업무 대신해주기, 책임 대신해주기, 문서 대신 써주기와 같은 각종 불구화(handicapping)적인 행동을 일으킨다.[22] 이는 자신의 유능함을 제대로 증명해 보여야 하면서도 막상 유능함을 드러내면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초래할 수 있다.[23]

2005년 이전의 과거 문헌들에 따르면, 유능한 여성들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후원적 차별에 저항했을 때 직면하는 각종 불이익으로는 고용 차별, 가혹한 인사평가, 업무 방해, 그리고 성희롱 등이 포함된다.[24] 심지어 보다못한 남성 직원이 그 여성 직원의 편에 설 경우, 남성 직원마저도 사회적 고립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25] 이처럼 남성들에게 "공연히 여자들 치마폭에 싸이지 말고 싸나이답게 굴어라" 고 암묵적으로 요청하는 심리는 심지어 반동성애 심리와 같은 성 소수자 담론으로까지 확장될 수도 있다.[26] 워킹맘들은 어머니로서의 역할로 인해 그들의 업무적 유능함을 비하당했고, 직장여성이라는 역할로 인해 어머니로서의 따뜻함을 무시받았다고 한다.[27]

직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양가적 차별로서, 후원적 차별 외에 꼽아볼 만한 현상으로는[28] 더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일수록 일처리 능력은 떨어질 것이라는 가정이다. 겉으로는 여성의 미모와 외적 아름다움을 찬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직업적 성취에 걸맞은 대우와 인정을 해 주지 않기에 문제가 된다.[29]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 많은 여성들은 자신이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유능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30]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여성들 "나는 예쁘구나, (그래서) 나는 일을 잘 못 하겠구나" 와 같은 얼토당토않은 고정관념을 갖게 될 수 있며, 그 결과 업무에 대한 자신감을 일부 상실하게 되고 장기적으로도 성취가 저해될 수 있다.[31]


5. 생각해 볼 점[편집]


우선 염두에 둘 것은, 이 개념을 주장하는 이들이 하고자 하는 말은 모든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사회악이므로 반드시 뿌리뽑아야 한다는 논리가 아니다. 다만 그들은 "양가적 차별을 구성하는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여성에 대한 타자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으며,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쉽게, 훨씬 더 심하게 과격해질 수 있다. 따라서 성차별의 '양면적인 두 얼굴' 을 정확히 직시하고, 양가적 차별로 인해 여성 인권과 페미니즘이 수용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조심하고 잘 살펴야 한다" 를 주장할 뿐이다.

분명, 직장에서 좋은 의도로 슬쩍 꺼낸 어떤 말들은, 연애 중에 오가는 어떤 사랑의 속삭임들은 차별적인 전제를 깔고 있을 수 있다. 이것 하나하나를 까탈스럽게 문제삼자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속삭임들이 심리적인 수준에서 보면 여성에 대한 적개심과 압제, 학대라는 뜻밖의 심리로까지 "비탈길" 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온정적 성차별주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심지어 현직 학자들에게조차도) 여전히 생각해 볼 점으로 남아있다. 전통적으로 심리학계에서는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점차적으로 적대적 성차별주의로 이행하는 경향을 보인다" 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리고 그것이 온정적 성차별주의의 전부라면, 우리는 온정적 성차별주의 자체를 당장 뿌리뽑자고 나서야 하는 게 맞는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 보자. 만일 "적대적 성차별자들에게 인권교육을 시켰더니 점차적으로 온정적 성차별주의로 이행해 가다가 마침내 성평등의 논리를 수용하는 데까지 도달한다" 는 정반대의 시나리오는 불가능한가?

그럼 이 상황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가 있을지 궁금할 텐데, 적어도 학술세계에 유의미한 기여를 한 심리학 분야의 연구들 중에서는 아직도 없다.[32]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온정적 성차별주의에 대해서 당장에 덮어놓고 문제삼으면서 따박따박 따지고 드는 게 잠재적으로 위험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성평등으로 이행해 갈 수도 있다는 희망고문 가능성이 아직 학문적으로 배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뚜렷한 저명성이 없는 위키의 한낱 문서에서는(…) 온정적 성차별주의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뭐라고 확답을 할 수가 없는 상황. 적어도 확실한 것은, 상황에 따라 이게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그간의 연구비가 아깝지 않을 만큼 확실하게 밝혀져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바로 위에서 말한, 양가적 차별은 결국 적대적 차별로 가는 비탈길로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게다가 적대적 차별 → 양가적 차별 → 성평등 순의 이행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것이, 적대적 차별이 사라지고 양가적 차별만 남은 상황이 되었을 때 (그런 상황이 가능한지는 일단 제껴두고) 과연 여성들이 양가적 차별로 얻는 이익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33] 결국 위의 두 문단을 요약하면 "적대적 차별로 인한 불이익은 견딜 수 없지만, 양가적 차별로 인한 이익은 포기할 수 없다"가 되는 것이다.

또한, 양가적 차별의 희생자는 남성들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양가적 차별을 이루는 핵심 논리, "남녀는 각자의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며,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와 같은 매력적인(?) 설명에는 남성 역시 일정한 차별적 대우를 피할 수 없다는 전제도 깔려 있다. 게다가 직장여성이 사회로부터 받는 냉대만큼이나 전업주부 남성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냉대 역시 싸늘할 수 있다. 당장 "저는 제 아내의 경력관리를 위해서 제 일자리를 포기하고 애만 보기로 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남성에게 시댁이나 친정에서 어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지 상상해 보자. "그러고도 너가 집안의 가장이냐?" 소리가 안 나올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남성들은 자신의 삶과 사회생활에서 거대한 목표와 "내 여자를 지켜줄 수 있을만큼 능력있고 강한 든든한 남자"가 되기 위한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반드시 갖춰야하는 최소한의 미덕에 부합하기 위해서 강한 인내력과 행동력을 요구받으며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죽기보다 싫어할 정도로 남들 앞에서 자격지심과 수치심을 느끼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사나이로 태어났다면 오직 자존심 세우기 하나를 위해 목숨을 다해서 자신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강하게 지켜야만 한다. 이것은 부모님과 친구관계, 그리고 이성친구와 접하며 자연스럽게 사회화가 되는 과정에서 배우게 된다. 결국, 양가적 차별도 이에 따른 부작용인 것이다.

더욱 알기 쉬운 예를 들면, 옛날 성차별이 극심했던 시절의 타이타닉호의 생존자 통계에 따르면 남성의 생존률은 10%~20% 사이인데 반해 여성의 생존율은 70% 나 되는데, 바로 위에서 나온 바와 같이 "여자는 남자가 반드시 지켜줘야 한다.", 레이디 퍼스트 라는 인식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다.

또한 위험하고 궂은 일에 종사하다가 산업재해 등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매년 1800명씩 나오는데 그 중에서 무려 96%가 남성이다. 일례로 1945년부터 2016년까지 순직한 소방대원 359명 중에서 고작 3명만 여성이고 나머지는 남성이다. 그 3명의 여성마저도 정식 소방관이 아닌 의용소방대원이며 화재현장에서 인명을 구출하다가 사망한게 아닌 소방의 날 행사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양가적 차별을 비롯한 온정적 성차별주의로 인해서 여성에게 궂은 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며, 이렇게 붕 뜬 의무적인 관계가 결국 젊은 남성에게 온갖 궂은 일을 전담하도록 억지로 의무감을 자극하는 일로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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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lick et al., 2000.[2] 심리학에서 양가적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동시에 경험한다는 뜻이다.[3] 예컨대 마일드한 의미에서 "가정을 챙기고 집안일에 충실한" 여성을 최고의 신붓감으로 치는 남성들은 의외로 많다. 그리고 이런 남성들과 세계관과 인생관을 같이 하는 의외로 많은 보수적인 여성들이 이들과 결혼하곤 한다.[4] Kilianski & Rudman, 1998.[5] Glick & Fiske, 2001.[6] Christopher & Mull, 2006; Sibley, Wilson, & Duckitt, 2007. 단 이들의 문헌에서 노력드립 같은 표현이 그대로 적힌 건 아니다. 이들은 PWE, SDO 등의 몇몇 정치심리학적 변인들이 젠더 담론에 있어 고려될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7] Burn & Busso, 2005; Glick, Lameiras, & Castro, 2002.[8] Franzoi, 2001.[9] Rudman & Heppen, 2003; Viki, Abrams, & Hutchison, 2003.[10] Glick et al., 2000; Glick et al., 2004; Sibley, Overall, & Duckitt, 2007.[11] Sakalli-Ugurlu & Glick, 2003.[12] Jost & Kay, 2005.[13] Johannesen-Schmidt & Eagly, 2002.[14] Abrams, Viki, Masser, & Bohner, 2003; Viki & Abrams, 2002.[15] Moya et al., 2007.[16] Buss, 1989; Eagly & Wood, 1999.[17] Eastwick et al., 2005.[18] 간단히 말하자면, 스펙 경쟁이다.[19] Sidanius & Pratto, 1999; Trivers, 1972.[20] e.g. Cikara, Lee, Fiske, & Glick, 2009.[21] Fiske, Cuddy, Glick, & Xu, 2002.[22] Glick & Fiske, 2007; Rudman, Glick, & Phelan, 2007.[23] Glick, Zion, & Nelson, 1988; Rudman, 1988; Kaiser & Miller, 2001.[24] Heilman, Wallen, Fuchs, & Tamkins, 2004; Eagly, Makhijani, & Klonsky, 1992; Rudman & Fairchild, 2004; Fiske & Glick, 1995.[25] Glick & Fiske, 1999.[26] Stockdale, Visio, & Batra, 1999.[27] Cuddy, Fiske, & Glick, 2004. 이들은 특히 워킹맘들이 다른 직장여성들에 비해서도 덜 유능하다고 평가받는다고 보고하였다.[28] Gutek & Morasch, 1982.[29] Muehlenhard & MacNaughton, 1988.[30] Gutek, 1989.[31] Satterfield & Muehlenhard, 1997; Fredrickson, Roberts, Noll, Quinn, & Twenge, 1998.[32] 실제로 2017년에 국내 심리학회 연차학술대회에서 편견과 차별을 주제로 평생 연구해 오신 A대학교의 노 교수님의 은퇴발표 때 이런 질문이 나왔다. 그리고, 평생을 이 주제로 연구해 오셨던 그 노 교수님은 즉답을 못 하셨다. 아직도 학자들은 의외로 모르는 게 많다(…).[33] 논리뿐 아니라, 실제 페미니스트들이 현재 취하고 있는 입장과 행동이 정확히 그러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