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근(농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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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동현
코치
수석 코치
양동근 ·
코치
김도수 · 맥클린 · >

D리그 감독 겸 스카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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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
전력 분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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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 트레이너 정태중 ·

수석 트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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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너
이재빈 · 한동우 ·

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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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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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장두수
가드
3 박재한 · 5 김지완 · 7 서명진 파일:부상 아이콘.svg · 8 박무빈 · 9 김현수 · 21 김태완 · # 옥존
포워드
2 신민석 파일:부상 아이콘.svg· 4 알루마 · 11 이우석 · 12 함지훈 [[주장|

C
]] · 17 전준우 · 20 박준은 · 23 최진수 · 24 김영훈 · 25 박상우 · 30 김국찬
센터
1 김준일 · 13 김현민 · 31 장재석 · 44 프림
군 입대
2023년 입대}}} 김동준 파일:국군체육부대 부대마크.svg · 조한진 파일:국군체육부대 부대마크.svg
타 한국프로농구 구단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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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근의 수상 및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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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07
2010
2013
2014
2015
2019

























2009-10 시즌 KBL 베스트 5
가드
포워드
센터
양동근
(울산 모비스)
전태풍
(전주 KCC)
함지훈
(울산 모비스)
문태영
(창원 LG)
하승진
(전주 KCC)

2010-11 시즌 KBL 베스트 5
가드
포워드
센터
양동근
(울산 모비스)
조성민
(부산 kt)
박상오
(부산 kt)
문태종
(인천 전자랜드)
하승진
(전주 KCC)

2011-12 시즌 KBL 베스트 5
가드
포워드
센터
양동근
(울산 모비스)
김태술
(안양 KGC)
김주성
(원주 동부)
윤호영
(원주 동부)
오세근
(안양 KGC)


2013-14 시즌 KBL 베스트 5
가드
포워드
센터
양동근
(울산 모비스)
조성민
(부산 kt)
문태종
(창원 LG)
문태영
(울산 모비스)
데이본 제퍼슨
(창원 LG)



2004-05 시즌 KBL 수비 5걸상
가드
포워드
센터
양동근
(울산 모비스)
강혁
(서울 삼성)
추승균
(전주 KCC)
이병석
(울산 모비스)
크리스 랭
(서울 SK)

2014-15 시즌 KBL 수비 5걸상
가드
포워드
센터
양동근
(울산 모비스)
신명호
(전주 KCC)
양희종
(안양 KGC)
김주성
(원주 동부)
리카르도 라틀리프
(울산 모비스)

2015-16 시즌 KBL 수비 5걸상
가드
포워드
센터
양동근
(울산 모비스)
신명호
(전주 KCC)
이승현
(고양 오리온)
양희종
(안양 KGC)
리카르도 라틀리프
(서울 삼성)


파일:201711_YDG.jpg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No. 6
이름
양동근 (梁東根[1] / Dong-Gun Yang)
생년월일
1981년 9월 14일 (42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학교
대방초 - 삼선중 - 용산고 - 한양대
포지션
포인트 가드
신장
180cm
체중
83kg
프로입단
2004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KCC)[2]
소속팀
울산 모비스-현대모비스 피버스 (2004~)
등번호
6
응원곡
양동근 - 골목길
가족
배우자 김정미
아들 양진서
딸 양지원
국가대표
아시안 게임 3회 (2006, 2010, 2014)
FIBA 아시아 선수권 5회 (2007~2015)
FIBA 농구 월드컵 1회 (2014)
수상내역[3]
KBL 정규리그 MVP 4회 (2006, 2007, 2015, 2016)
KBL 플레이오프 MVP[4] 3회 (2007, 2013, 2015)
농구대잔치 MVP 1회 (2008)
KBL 최우수 신인 (2005)
KBL 베스트 5 9회 (2006, 2007, 2010-2016)
KBL 최우수 수비상 2회 (2013, 2015)
KBL 수비 5걸상 3회 (2005, 2015, 2016)
KBL 모범선수상 2회 (2007, 2019)
KBL 정규리그 우승 5회 (2006, 2007, 2010, 2015, 2019)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 (2007, 2010, 2013-2015, 2019)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
FIBA 아시아 선수권 3위 3회 (2007, 2011, 2013)

1. 개요
2. 기록
3. 선수 경력
3.1. 프로 입문과 신인상
3.2. 두 번의 MVP의 영광 (2005~2007)
3.3. 상무 (2007~2009)
3.4. 전역 이후 (2009~2012)
3.5. 모비스 왕조의 주역 (2012~2016)
3.6. 무너진 명가를 재건하라 (2016~2018)
3.7. KBL 리빙 레전드 (2019~현재)
4. 플레이 스타일
5. 여담


1. 개요[편집]


KBL에서 뛰고 있는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 자타공인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KBL을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5][6]이며, 기아자동차 농구단과의 연결 고리가 사실상 끊어진 현대모비스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기도 하다.


2. 기록[편집]




3. 선수 경력[편집]



3.1. 프로 입문과 신인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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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중 졸업 후 연계 학교인 경복고가 아닌 용산고를 택했고 졸업 후 한양대학교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팀을 진두지휘하면서 한동안 약세를 면치 못하던 한양대 농구부의 돌풍을 주도했다.

2012년에 작고한 신임 한양대 김춘수 감독[7]은 당시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양동근[8]을 잠재력 하나만 보고 과감히 발탁하여, 그를 중심으로 팀을 짰다. 그리고 전통의 2빅맨 시스템 대신 1빅맨 3포워드 1가드 시스템의 토털농구로 팀을 쇄신한다.

이후 김성현, 김승민, 강은식, 서동용, 조성민 등을 영입하고, 2년간 담금질을 한다. 이 개혁이 대성공한 한양대는 양동근이 3학년이 되는 시점부터 대학농구 정상의 자리를 노리게 된다. 팀 성적과 함께 개인 성적도 좋아져, 3~4학년 때는 2년 연속 농구대잔치 어시스트상을 수상하여 대학농구 최고의 포인트 가드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 당시엔 대학농구리그가 출범전이라 농구대잔치가 최고 권위의 대회였다.

농구대잔치에서 3학년때는 당시 대학농구 최강 연세대에게 석패했지만, 4학년때는 하승진, 김태술, 이광재, 양희종, 방성윤, 이정석, 전정규가 포진한 연세대를 격파하는 대이변을 연출한다. 이 게임을 앞두고 김춘수 감독은 강은식에게 미드레인지 슛을 연습시켜 하승진을 끌어내고 양동근이 이정석, 김태술을 융단폭격하는 전술을 써서 대박을 냈다. 물론 조성민, 김성현, 김승민, 서동용 등 김춘수가 키워낸 포워드진이 로테이션을 돌며 공격을 성공한 점도 컸다.

이처럼 한양대의 리더로 일찍부터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선발된 경력에 농구대잔치에서 2년 연속 어시스트상을 수상한 양동근은 자연스레 2004년 드래프트 최대어로 손꼽히게 되었다.

파일:양동근&신산.jpg
이때부터 믿고 쓰는 한양대 가드라는 말이 생겼다.

2004년 드래프트에서 전주 KCC 이지스에게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KCC는 2003-04 시즌 도중 모비스의 센터 R.F. 바셋을 임대 영입하는 과정[9]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모비스에게 양도했고, 그 결과 형식상으로는 전주 KCC가 가진 지명권이었지만 모비스가 실질적으로 지명권을 행사해 1순위로 양동근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10]

이로써 양동근은 연세대, 고려대, 중앙대 등 당시 빅3 이외의 대학을 나온 최초의 1픽 선수가 되는 기염을 토한다.

마침 모비스는 팀 재건을 위해 한 때 좋지 않게 헤어졌던 유재학을 파격적인 금액으로 전자랜드에서 불러 모셔오는데 성공했고,[11] 유재학 감독의 합류와 그의 지도 아래 양동근은 프로에서도 한양대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며 팀을 지휘한다. 비록 5할 승률에 미치지 못한 성적이었지만, 신인 첫 해 평균 11.5점 6.1어시스트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을 내며 신인상을 타는데 성공.


3.2. 두 번의 MVP의 영광 (2005~2007)[편집]


박수교, 최희암, 장일의 시대를 거쳐 팀의 전설들도 다 떠나고 막장으로 치달았던 모비스는 유재학 감독의 취임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 일선에는 양동근이 있었다. 그리고 모비스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 크리스 윌리엄스까지 가세하면서 모비스는 하위권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돌풍을 일으키며 일약 2005-06 시즌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사상 최고의 이변을 연출한다. 외국인 선수에게 따로 MVP를 주기 때문에 국내 선수 중에서 MVP 선정을 해야 하는데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한 서울 삼성 썬더스서장훈과 치열한 경합을 거친 끝에 결국 KBL 최초로 둘 다 MVP를 받았다.

하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두 선수 모두 주역이 되지 못했다. 일단 양동근은 챔프전에서 평균 15.5득점 7.1어시스트로 분전하기는 했지만, 삼성과 치열한 접전 끝에 4전 4패로 우승에 실패했다. 높이에서 우세한 삼성이 예상과는 다르게 강혁과 네이트 존슨의 픽 & 롤을 들고 나오면서 모비스가 완전히 말린 것. 그 결과 정규시즌과 다르게 서장훈도 조연에 그쳤다.[12] 최종 스코어만 보면 경기 내용도 일방적일 거라고 오해하기 쉽겠지만 경기 내용은 그리 일방적이지 않았다. 마지막에 승리를 거둔 건 삼성이었지만...

그러나 양동근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2006-07 시즌에 다시 팀의 정규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한다. 전 시즌에 비해 훨씬 향상된 성적을 거두며, 전년도에 팀빨로 수상했다는 비평을 말끔히 씻어낸 것. 평균 15.7득점, 5.9 어시스트, 1.9스틸로 더 향상된 기량을 선보이며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여기에 굴하지 않고, 부산 KTF 매직윙스와의 7차전까지 가는 챔프전 접전에서 평균 19.1점 7.3어시스트 3.4리바운드 평균 39분을 뛰는 맹활약으로 팀의 두 번째 우승의 주역이 되었고, 기자단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KBL 챔피언결정전 MVP에 올랐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에는 대학 시절 만난 연인과 결혼까지 골인한다. 그야말로 최고의 시간을 보낸 양동근에게 찾아온 것은 바로 입대 영장이었다.(...)


3.3. 상무 (2007~2009)[편집]


병역 특례의 유일한 기회였던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8강에도 못 들면서 탈락해 버렸고, 자연히 신체 건강한 양동근은 신혼의 달콤한 꿈도 뒤로 하고 꼼짝없이 상무에 입대하게 되었다.[13]

그리고 상무에서 2007년 12월 오른쪽 발목 연골 재생수술을 받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재활에 쓰게 된다. 기사 이 수술 이후로는 농구화 깔창을 특수 제작해서 사용한다. 재활 후, 농구대잔치에서 우승을 하고 무사히 전역했다.


3.4. 전역 이후 (2009~2012)[편집]


복귀 첫 시즌에는 신인 시절과 같은 성적을 냈다. 이 때 팀의 주축은 어차피 함지훈 위주로 돌아가던 시절이었고, 모비스는 어쨌거나 두 시즌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2008-09 시즌과 달리 2009-10 시즌에는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모두 우승에 성공했다.

그리고 2010-11 시즌. 양동근은 예년 MVP 시즌 때의 모습을 되찾았다. KBL 무대에서 양동근의 돌파와 패스는 잘 먹혀 들어갔다. 생애 최다인 16.5득점을 기록하며 맹활약. 다만 모비스는 함지훈의 입대 공백을 메우지 못했고, 얇은 선수층의 한계도 극복하지 못했다. 덕분에 양동근 혼자 죽어라 뛰고 달리는 지경이었고, 팀 성적도 하위권에 머물렀다.

2011-12 시즌도 마찬가지로 가드진의 지원이 미비한 상황에서 양동근 혼자 죽어라 슛 쏘고 패스하면서 혼자 백코트진을 책임졌다. 외국인 선수 테렌스 레더와 상무에서 제대하고 시즌 후반 합류한 함지훈의 활약을 바탕으로 플레이오프 4강까지는 올랐지만 당시 극강이던 산성을 넘지 못하고 3:1로 패배. 그래도 양동근은 유재학 감독이 정말 고생했다고 미안해하고, 안티가 없는 선수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3.5. 모비스 왕조의 주역 (2012~2016)[편집]


2012-13 시즌에는 혼혈 귀화선수 문태영과 신인 드래프트 1순위 김시래의 합류로 모비스 공격의 롤은 예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덕분에 데뷔 이후 가장 낮은 스탯을 기록 중이지만, 팀에서의 중심점 역할과 상대 가드진을 봉쇄하는 앞선 수비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평. 정규시즌 2위에 이어 서울 SK 나이츠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1차전 역전 3점포 및 4차전 28득점의 신들린 활약으로 본인 선수 인생의 두번째 만장일치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하였다.

2013 FIBA 아시아 남자농구 선수권에서는 수비에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 특히 3/4위전에서는 다시 한번 뛰어난 수비력을 발휘해 한국이 2014 FIBA 농구 월드컵으로 나가는데 큰 공을 세웠다. 뒤이어 열린 아시안 게임 이란과의 결승에서도 패색이 짙어지던 4쿼터 중후반, 추격의 3점슛과 수비, 김종규가 성공시킨 결정적인 앤드원을 어시스트하며 마무리했다.

2014-15 시즌 초반에는 아시안 게임 등 비시즌 강행군 여파 때문인지 양동근의 농구인생 중 가장 부진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1라운드 3점슛 성공률이 14%에 머무르는 충격적인 수치를 보여주며 그동안 두 자리수를 사수하던 평균 득점도 한 자리수로 추락했다. 1라운드는 역대 최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국 양동근도 노쇠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라운드부터 갑자기 슛 성공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며 2라운드 9경기 만에 3점슛 성공률을 40%까지 끌어올리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시간을 거스르는 자 시즌 도중 문태영이 부상으로 몇 경기 결장하고, 지난 챔피언결정전에서 발목 부상을 당한 함지훈이 좀처럼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비에 치중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득점 본능을 뽐내며 팀원의 공백을 메웠고, 그 결과 11월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 후로도 득점과 어시스트에서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11월에 이어 12월에도 SK의 박상오와 공동으로 12월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정규리그 우승에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던 6라운드 SK-동부전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올 시즌 유독 중요한 경기와 클러치 상황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 11월, 12월에 이어 2월에도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는 등 외국인 선수상이 재설되는 올해 가장 유력한 정규리그 MVP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결국 2007년 이후로 8시즌만에 세번째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다. 자기보다 체력적으로 더 유리한 젊은 선수들도 아시안 게임의 여파로 이번 시즌 아쉬운 성적을 낸 것을 감안하면 더욱 더 값진 MVP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통산 어시스트 2,208개를 기록중이던 강혁 전 선수의 기록을 넘어서며 역대 어시스트 5위로 올라서는 기록도 수립하였다.

2014-15 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서 창원 LG 세이커스를 상대로 양우섭의 뛰어난 맨마킹 수비를 극복하고 5경기 평균 18득점의 활약으로 승리를 이끌었고, 결승에서는 정규리그 2위였던 원주 동부 프로미를 맞아 4경기 평균 20득점 4.8리바운드 4.8어시스트로 모비스의 4:0 완승을 지휘하였다. 그리고 기자단 투표에서 64표 중 60표를 받아 챔피언결정전 MVP로 선정되었다. 이로써 정규리그 우승 4회, 정규리그 MVP 3회, 플레이오프 우승 5회, 챔피언결정전 MVP 3회 등 KBL 출범 이래 가장 뛰어난 커리어를 보유한 리빙 레전드로 등극했다.

2015 FIBA 아시아 남자농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좋은 모습을 보였다. 특히 레바논과의 경기에서 후반전에 완전히 폭발하여 18득점 6리바운드 8어시스트 8스틸로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박찬희가 부상으로 출전을 못하고 김태술이 극도의 부진을 보인 탓에 출전 시간 관리를 받지 못했고 결국 조대결에서 중국에게 패배, 8강에서 이란과 맞붙어 패배하며 당초 목적이던 4위권 진입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 대회를 통해 양동근은 농구팬들로부터 재조명 받게 된다. 그동안 국제대회서 비교적 준수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성적에 묻혀 국내용이라고 까였던 양동근이었지만, 이번 대회서만큼은 홀로 빛났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양동근은 평균득점 12.7점 어시스트 4.7개 리바운드 3.6개 스틸 2.4개를 기록하며 전방위적인 활약을 하였다.[14] 효율성 지수를 나타내는 PER 역시 17.4를 기록하며 전체 대회 7위 가드 1위에 올랐고 대한민국 팀내에서도 1위를 기록하였다. 한국 나이 35세의 선수가 사실상 팀의 에이스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그동안 국내용이라고 비난했던 안티들도 이번 대회 퍼포먼스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외신들이나 타국가 선수들도 양동근을 주목하는 등 양동근으로서는 전성기가 꺾이는 시점에 화려한 불꽃을 태운 대회가 되었다.

비시즌 동안의 강행군으로 인해 2015-16 시즌 초반에는 낮은 슛 성공률을 보여주었다. 대신 함지훈이 리그 어시스트 1위를 달릴 정도로 훌륭한 플레이 메이킹 솜씨를 보여주고 있고 기량이 눈에 띄게 발전한 전준범아이라 클라크, 커스버트 빅터 두 외국인 선수가 득점을 해주면서 모비스는 '리빌딩하는 팀'이라는 주장이 무색하게 훌륭한 성적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시즌 중후반부로 오면서 역시 그 실력은 어디 안 가는지 양동근은 시간이 지날수록 슛감이 올라오면서 훌륭한 득점력을 보여주기 시작, 팀은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고[15] 이로 인해 또다시 MVP 후보에 오르게 됐다. 팀 동료 함지훈이 양동근 못지 않게 좋은 활약을 했으나, 보여준 MVP 포스가 무색하게 시즌 후반부터 경기력이 좋지 않아 양동근 아니면 KCC의 전태풍이 MVP를 수상하지 않을까 의견이 많았는데, 시상식 당일 전태풍을 1표차로 제치며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다![16]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원주 동부를 3대0으로 꺾고 올라온 고양 오리온과 경기를 했는데, 애런 헤인즈와 김동욱, 이승현, 최진수 등 장신 포워드들이 골고루 활약을 해준 오리온을 상대로 팀의 스윕패를 막지는 못 했다. 그래도 지난 시즌에 비해 약해진 전력이라 평가받는 모비스를 1위팀과 승차 없는 정규시즌 2위로 이끌고 본인은 백투백 MVP까지 받았으니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


3.6. 무너진 명가를 재건하라 (2016~2018)[편집]


2015-16 시즌후 FA 자격을 얻었으나 원소속팀인 모비스와 보수총액 7억 5천만원(연봉 5억 5천, 인센티브 2억)에 3년간 재계약에 사인한다.

2016-17 시즌 전자랜드와의 개막전에서 커리어 사상 최악의 부상을 당한다.[17] 결국 일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들것에 실려 바로 병원행. 진단 결과는 손목 복합 골절로 재활에만 최소 3~4개월 이상이 걸리는 중상이었다. 10년이 훌쩍 넘는 커리어 동안 10경기 이상 결장한 적이 없는 KBL 대표 철인이 쓰러지는 순간이었다. 일부 전문가들과 팬들은 아예 시즌 아웃까지 점칠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대들보가 쓰러진 모비스는 개막 후 4연패에 빠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전준범이 리그 최강의 3점 슈터로 거듭났고 중간에 일시 대체로 합류한 마커스 블레이클리와 시즌 초반 골칫거리였던 찰스 로드의 호흡이 잘 맞으면서 조금씩 승률을 올리며 5할 성적을 유지했다. 그러나 블레이클리는 KBL 계약 조건에 불만을 품고 잠적해버렸고, 이후에는 다시 네이트 밀러가 뛰게 되었다. 기복 심한 활약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스틸은 1위이며 시즌 초와 비교하면 폭발적인 모습을 꽤 많이 보이고 있다.

2017년 1월 7일 서울 삼성전에서 약 80일만에 복귀하여 13득점 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다. 그러나 부상 여파와 나이 탓인지 예년 만큼의 폼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다소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단 사이드 스텝이 느려졌고, 슈팅 역시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준다. 본래 나이가 먹으면 기복이 심해지기 마련인데다가 양동근의 출전시간 관리를 안 하기로 유명한 유재학 감독이 상당히 굴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7-18 시즌 1라운드 초반 부진을 보이며 노쇠화에 확인도장을 찍는가 했지만, 점차 회복해서 2라운드 초반까지 쾌조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다. 스탯은 커리어 평균과 차이가 없으며 1라운드 마지막 경기 삼성전에서는 상대선수 4명을 제치며 종료 0.8초전 멋진 위닝 레이업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영상 일부에서는 37살 가드가 맞냐? 국대에 가드 부상이 많아 다시 차출해야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여전히 평균 33분을 출전하며 구르는 중이지만 박형철, 박경상이 영입됨에 따라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2월 17일 전준범 데이에 30점을 기록하는 대활약을 펼치며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이 형 나이 거꾸로 드시는게 확실하다 그야말로 양동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몸소 확인시켜 주며, 해설진과 팬들을 놀라게 했다.

2018년 1월 1일. kt와의 원정 경기에서도 고참의 품격과 해결사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 날 경기에서 kt의 외인 맥키네스와 모비스의 외인 레이션 테리가 득점대결을 벌이며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는데, 승부의 마침표를 찍는 위닝샷으로 팀의 10연승을 이끌었다. 영상

2018년 1월 17일. 전자랜드와의 4라운드 홈 경기에서 KBL 통산 11번째 7,000득점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정확히 6,999점인 상황에서 자유투 2구 중 1개가 적중하여 정확히 7,000득점에 성공한다. 포인트 가드 포지션 중에서는 주희정에 이어 최다 득점 역대 2위의 대기록이다.

정규시즌 최종전인 3월 13일 전자랜드 원정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추가하며 KBL 통산 5번째 3,000어시스트 고지를 달성했다. 양동근 이전에 주희정, 이상민, 김승현, 신기성이 3,000어시스트 기록을 달성한 적이 있다.

하지만 세월 앞엔 장사 없다고, 시즌 후반 그리고 플레이오프를 보면 확실히 나이를 먹었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슛 기복이 심해지고 있는데다 수비에서의 사이드 스텝도 확실히 느려진게 보일정도. 물론 여전히 나이에 비해 좋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지만, 젊은 가드들인 피터슨이나 이재도를 상대로도 버거운 모습이다. 그래도 G리그에서 돌아온 이대성과 각성한 박경상이 있기에 예전처럼 혼자 팀의 가드 포지션을 먹여살려야 하는 정도는 아니기에 확실히 부담을 덜었다.

2018-19 시즌 현대모비스가 FA로 오용준문태종을 영입하면서 강제로 젊어졌다.(...) 게다가 시즌 도중 아이라 클라크까지 합류하면서 나이 서열이 4위까지 떨어졌다.(...)[18] 불혹이 얼마 안 남았지만 3점슛 성공률이 40% 이상에 어지간한 국내 가드들과의 매치업에서도 밀리지 않으면서 클래스는 여전하다는 걸 본인이 경기에서 증명하고 있다. 소속팀 현대모비스 역시 2018-19 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였다.

이어지는 4강 플레이오프 및 챔피언결정전에서 위기때마다 팀을 구하는 3점슛으로 대범함과 관록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18-19 시즌 팀의 통합우승의 중심에 서서 6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추승균 前 KCC 감독을 제치고 KBL 역대 최다 우승 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이후 FA로 풀렸고 5월 15일 원 팀 계약협상기간 1시간을 남겨두고 1년 보수 4억원에 재계약을 맺었다.


3.7. KBL 리빙 레전드 (2019~현재)[편집]


2019-20시즌에도 국내 탑 가드의 면모를 보이며, 여전히 떨어질 줄 모르는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던 중 2019년 11월 11일에 터진 역대급 트레이드로 인해 자신과 함께 현대모비스 주축 가드로 활약했던 이대성을 적으로 만나 상대하게 되는 진풍경을 보였다. 사실상 팀의 리빌딩 시즌을 맞아 함지훈과 함께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 언제는 안 그랬냐만은... 하지만 후배들에게 기회를 준답시고 벤치에만 있기에는 아직 그 기량이 녹슬지 않아서 여전히 30분 이상 출전하며, 팀을 먹여살리고 있다. 2019년 마지막 경기인 29일 군산에서 치룬 KCC와의 경기에서 3점슛 6개를 포함한 26득점을 올리며 노장의 품격을 드높였다. 2020년 새해가 밝으면서 마지막 30대를 보내게 되었다. 팀 내 진짜 40대 선수가 있어서 말도 못한다더라... 하지만 양동근 없는 현대모비스는 아직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린 선수들이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도우면서 팀의 승리에도 이바지하고 있는 셈. 유재학 감독은 리빌딩하면서 양동근이 잘해주고 있는 건 좋은데, 양동근을 계속 쓰자니 그가 힘들어 하고, 안 쓰자니 경기가 안 풀리니 출전시간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실제로 양동근이 빠지면 팀의 경기력이 심하게 차이나는 모습이 어렷 포착되면서 양동근의 충전시간 조절이 좀처럼 해결되지 못하다가 새해들어서야 30분 미만으로 내려왔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뛰어난 수비력까지 갖춘 KBL 최고의 듀얼 가드.[19] 뛰어난 공격력을 갖춘 포인트 가드이지만 동시에 최고의 수비력까지 갖추었다. 양동근의 진정 무서운 점은 역대 포인트 가드 중 최상급의 공격력은 물론이거니와 수비에서도 상대 에이스 가드를 막는 스토퍼로서 공수에 동일한 에너지를 쏟는게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양동근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적인 슈팅이다. 주 공격 옵션은 용병 선수나 국내선수의 스크린을 타고 쏘는 점퍼나 3점슛이다. 돌파력도 준수한 편이지만 양동근 공격의 7~80%는 이 루트이다. 스크린을 이용한 풀업점퍼는 거의 오픈이나 다름이 없고 모비스의 움직임이 워낙 조직적이어서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게다가 바디밸런스가 상당히 좋아 슈팅 자세나 릴리즈가 안정적인 것 또한 강점이다.

사실 이 슈팅 능력이 중요한 것이, 작은 키의 가드 중에서도 활동량과 수비 면에서 뛰어난 선수는 꽤 많은 편이다. 대표적인 수비형 가드인 신명호라든지, 젊은 선수 중에서는 최원혁이라든지... 그러나 양동근이 식스맨인 이들과 달리 KBL의 리빙 레전드로 불리는 이유는 이 어마어마한 슈팅 능력 덕분이다. 단순히 오픈 찬스에서 던지는 슛이 아니라, 본인이 스크린을 타고 들어가 던지는 풀업 점퍼의 체감 성공률은 거의 80%이상인 수준. 클러치 상황에서 강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2대2 플레이를 하는 가드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 바로 슈팅이다. 전통적으로 픽앤롤 플레이에서 최고의 효율을 내는 플레이는 핸들러의 슈팅 마무리로서, 흔히들 픽앤롤의 달인 스티브 내쉬의 최대 장점이 패싱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쉬는 40%를 상회하는 3점슛 능력과 90%에 육박하는 자유투 능력을 가진 고감도 슈터이기도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어쨌든 양동근은 김승현처럼 미친 듯한 패스를 건네는 가드는 아니지만, 가드 올타임급의 공격력을 보유함으로써 상대 수비를 끌어들이고, 그로 인해 생긴 공간에 패스를 찔러넣는 능력이 탁월한 선수이다.

또 하나의 장점이라면 역시 체력과 부상당하지 않는 신체. 체력이 받쳐주다보니 공격과 동시에 수비에서도 계속해서 상대를 따라다니게 되고, 상대선수가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전에도 비교적 멀쩡하여 득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즉 본인은 15점을 내고 상대는 5점으로 막는 선수. 또한 부상이 거의 없어[20] 나이를 먹고도 꾸준한 기량을 낼 수 있다는 점이 이 선수를 더욱 무섭게 만든다. 다만 2015-16 시즌부터는 나이 때문인지 시즌 내내 30분 이상 경기를 줄기차게 소화하면서 스탯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지만 출장시간이 줄어들 기미가 없어 반대급부로 감독인 유재학이 까이기 시작하고 있다.

한편 가장 많이 언급되는 약점이 바로 경기를 지휘하는 포인트 가드임에도 불구하고 드리블이나 패스가 좋지 못하고 시야가 떨어진다는 것. 이점에 대해 여러번 지적을 받아왔고 시야가 부족한 것은 본인도 인정한 사실이다. 다만 그 비교 대상이 드리블이나 기술과 같은 경우는 NCAA의 ACC 컨퍼런스 조지아 공과대학교의 주전 포인트 가드였던 전태풍이며, 패스의 경우는 역대 최고의 시야를 지녔던 이상민이나 김승현, 강모씨와 같은 위대한 포인트 가드들이라서 유달리 과소평가받는 점도 있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며 선수생활 말년에 이르면서 리그 현역 가드 중에서도 그보다 리딩이 좋다고 꼽을 만한 가드는 극히 몇 안 된다.[21]

사실 패스나 시야를 중요시하는 정통 포인트 가드 옹호론자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저평가를 받는 선수 중 하나이다. 오히려 이 선수가 2004년이 아니라 지금처럼 듀얼 가드가 대세가 된 시기에 뛰기 시작했더라면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정통 포인트 가드라는게 그냥 스타일이 다른거 뿐이지 콤보 가드보다 더 좋은 포인트 가드라고 하는건 개소리라고 보면 된다. 오히려 템포가 빨라진 현대 농구에선 림어택을 직접 잘하는 포인트 가드들의 가치가 더 높은게 사실이다. 안타깝지만 이런 말들이 2010년대 이후로도 자주 나온다는 것 자체가 아직 대한민국 농구계가 세계적인 추세로부터 뒤쳐져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슛 없는 포인트 가드가 KBL에서도 통하기 힘들다는 것을 2년간의 플레이오프와 챔프전에서도 증명되었으니 아마시절 퓨어 포인트 가드를 맡았던 선수들도 줄기차게 듀얼 가드로의 스타일 변화를 시도하는 중이다.[22]

한편 양동근은 정통 포인트 가드의 마인드를 가진 선수라는 평가도 있다. 어시스트 기준이 박한 대학시절 3학년, 4학년 연속으로 어시스트 1위를 기록하였고, 프로 데뷔 시즌에도 리그 최하 수준의 용병 둘을 데리고 평균 6.1어시스트를 찍었다.

2011-12 시즌 플레이오프 4강에서 당시 역대 최고 승률을 찍은 동부와 맞붙게 되었는데, 동부 감독 강동희는 12년 오프시즌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양동근을 평하길 "4강을 앞두고 비디오 분석을 해봤는데 양동근은 패스와 자신의 슈팅 중 패스를 선택하는 스타일이다. 높은 평득에 속지마라. 적은 슈팅 시도에 높은 공격 성공률로 저만한 득점을 찍는거다. 나나 상민이처럼 볼소유를 적게 하면서도 팀을 이끄는 스타일이다." 라고 평가했다. 즉 볼소유시간을 길게 하면서 어시스트를 만들기 위한 라스트 패스에 집착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본인의 공격을 우선시하지도 않지만, 공격력도 강한 선수라는 의미인데 이는 자신이나 이상민처럼 정통 포인트 가드라는 평가인 것이다.


5. 여담[편집]


  • 사촌 형이 前 농구선수이자 천하의 개쌍놈인 양경민이라 드래프트 당시에 화제가 되었었는데, 사이는 좋지 않은 듯하다. 사이가 좋을 리가 있나... 양경민의 존재 자체가 KBL흑역사이기도 해서 그런지 언급 자체가 터부시되는 느낌.[23] 일요신문과의 인터뷰 때, "경민이 형과 내가 연관되는 게 부담스럽다"며 "경민이 형 이야기는 꺼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 바 있다.

  • KIA 타이거즈꽃범호 이범호와 절친이다. 이범호가 한화 이글스에서 뛰던 시절 초등학교 친구인 당시 KIA에서 활약하던 이영수가 앙동근을 연결해 줘서 절친이 됐다. 이후 이범호가 2009년 WBC 때 등번호를 6번으로 달았고, 양동근은 반대로 이범호의 등번호인 7번을 국가대표팀에서 달고 뛰기도 했다. 또한, 모 스포츠신문에서 야구선수의 절친에게 편지를 쓰고 거기에 답장을 받는 꼭지[24]에서도 이범호와 양동근이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NC 다이노스손시헌, 이종욱과도 친분이 있다.

  • 야구도 좋아해서 농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야구를 했을 거라고도 한다. 상무에서도 3번 타자 겸 유격수를 했다고 한다.[25] 비시즌이 되면 거의 매해 야구장 목격담이 들려오기도 한다.


  • 얼굴이 둥글고 작아서 귀가 꽤 커보인다. ??? 그래서 별명이 구리구리 동동

[1] 동명이인의 배우 양동근과 한자까지 동일하다.[2] R.F. 바셋 <-> 무스타파 호프 트레이드때 KCC(1순위)와 모비스(7순위)의 1라운드 지명권이 맞교환되어 모비스로 1순위 지명권 양도. KCC는 모비스의 7순위 지명권으로 최승태를 뽑았다.[3] 진한 표시는 역대 최다 수상을 가리킨다.[4] 2011-12 시즌부터 기존의 KBL 챔피언결정전 MVP가 플레이오프 MVP로 바뀌었다. 관련기사[5] 5번의 정규리그 우승과 6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달성하면서 양동근의 팬이 아닌 사람들도 그가 포인트 가드 포지션은 물론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도 KBL 최고의 업적을 이루어낸 선수라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6] 같은 포지션의 전설들과 비교해볼 때, 수상 경력만 놓고 봐도 최다 MVP 및 우승, 그리고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김승현같은 경우에는 임팩트는 역대 최고였지만 전성기가 짧았고, 이상민은 수상내역에서 양동근에게 밀린다. 여러모로 흠잡을 데 없는 선수 시절을 보냈던 강동희의 경우 프로에 진출했을 때, 이미 전성기가 지난 30대였던데다 훗날 승부조작으로 농구계에서 제명된 터라 이런 논의 자체에 끼어들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대세가 된 듀얼 가드가 아닌 클래식한 포인트 가드를 여전히 선호하는 대한민국 풍토상 한국 역사상 최고의 가드가 누구냐는 질문에 여러 답이 나올 수 있다. 유재학 감독 같은 경우에는 강동희, 이상민은 모두 유명하지만 본인은 신동찬을 뽑았다.[7] 1999년경에 김용근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 2008년 농구대잔치에 고려대에게 패하자, 이상영 코치와 함께 선수 2명을 폭행하는 바람에 경질되고 말았다.[8] 고교때까지 수비용 식스맨인 양동근을 불러주는 대학팀은 없었다. 고교 특급 선수는 이르면 고등학교 1학년, 보통 2학년에는 입학할 대학교가 정해지는데, 양동근은 3학년이 지나도록 오라는 곳이 없어서 농구를 관둬야 하나 생각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용산고 입학 시절 키가 168cm 밖에 되지 않아 짬이 차는 고학년이 될 때까지는 주로 벤치를 지키는 수비용 식스맨이었다. 그에 반해 1년 후배 이정석은 1학년 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찼다.[9] KCC get: R.F. 바셋, 2004년 신인드래프트 7순위 지명권 / 모비스 get: 무스타파 호프, 2004년 신인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10] 1순위 경쟁자는 용산고 1년 후배인 이정석. 둘 다 실력 차이가 거의 없고 고만고만하다는 평이었으나, 모비스 구단은 당시 KCC 감독이었던 신선우의 강력 추천과, 양동근의 외모가 조금 더 나아서 스타성이 있다는 이유로 양동근을 1순위로 뽑게 된다. 당시 기사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전자랜드 감독이었던 유재학은 전자랜드가 1순위에 걸릴 경우, 이정석을 뽑으려고 했다. 이정석은 양동근에 이어 2순위로 안양 SBS의 지명을 받았다. 이로부터 13년이 지난 2017년. 1순위를 다투던 두 선수는 모비스에서 함께 뛰게 되었다.[11] 유재학은 부상으로 인해 기아자동차에서 조기 은퇴하는데, 그가 부상 재활을 포기하고 은퇴한데는 기아가 중앙대 위주로 굴러간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고 한다.[12] 심지어 제대로 경기에 나오지도 못했던 서장훈은 결국 1년 후 KCC로 팀을 옮기게 된다.[13] 결국 양동근의 공백과 용병 농사 실패가 겹치면서 2007-08 시즌 모비스는 11연패를 두 차례나 하는 등 14승 40패라는 구단 사상 최악의 성적을 내게 된다. 다만 김승현의 부상과 심용섭 단장의 막장 운영으로 같이 꼴찌 싸움을 하던 오리온스가 10위를 하면서 최하위는 면했다.[14] 심지어 비교적 약체와의 경기는 거의 뛰지 않고 만든 기록이다.[15] 1위 전주 KCC와 승수는 같다.[16] 역대 최소 득표차 수상이며, 기존 기록은 2001-02 시즌 MVP 투표 당시 2표차(김승현 39표, 서장훈 37표).[17] 이 날 경기가 자신의 500번째 출장 경기라서 더욱 안타깝다.[18] 문태종과 클라크가 75년생(클라크가 6개월 빠르다.), 오용준이 80년생, 본인은 81년생이다. 참고로 문태종+클라크+오용준+양동근+함지훈까지 5명이 코트에 나서면 나이 합이 200을 넘는다.(...)[19] 전성기 시절.[20] 상무시절 오른쪽 발목 연골 재생술을 받았지만 상무 기간 재활에 성공. 그 이후로 잔 부상을 당한 경험이야 있지만 선수 생명을 갉아먹거나 능력에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경험은 없다. 오세근 같은 경우는 족저근막염으로 계속 고생중인데다가 경기를 계속 뛰면서 무리하는 바람에 무릎에도 이상이 생겼고, 전태풍의 경우는 하글런디시병으로 완치 불가 판정을 받았다.[21] 사실 리딩이라는 카테고리도 한국 외에는 잘 쓰지 않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리딩의 경우에는 팀 전술이나 팀원들의 움직임에 따라 언제든지 변하는 요소이다. 그 예로 2010년대 최고의 리딩을 갖춘 가드는 김태술이라 했는데, KCC에서는 그야말로 막장 경기력을 보여줬다가 삼성에 가서 그나마 회복하고 있다.[22] 대표적인 선수가 전창진 사단의 작품인 이재도, 김기윤, 박재한이다.[23] 양경민은 자신의 팬클럽 회장에게 자기가 출전하는 플레이오프 경기의 토토 대리구매를 시켜 이걸로 36경기 출전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프로선수의 복권 구입(토토 등)은 전적으로 금지된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덤으로 그 팬클럽 회장은 미성년자였고, 그 회장을 강간했다는 혐의까지 붙었다. 강간은 무혐의로 처리됐지만 미성년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혐의가 인정되어 민사소송에서 패해 6천만원을 배상했다. 토토 대리구매에 미성년자와 성관계까지 프로선수로서는 절대로 용서 받지 못할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KBL은 양경민에게 고작 36경기 출장정지 처분만을 내렸고, 이마저도 얼마 뒤에는 21경기로 슬그머니 처벌을 완화하는 답이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양경민을 KBL의 최초의 영구제명자로 알고 있는데 KBL에서는 양경민에게 영구제명 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 이로 인해 양경민은 양토토, 양토간이라는 당연하지만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었다. 양경민은 2008년 은퇴 후 스카우터로 일하다가 그만 두고 원주 시내의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를 하기도 했었는데, 2013년 9월경 찜질방을 돌면서 상습절도 행위를 한 혐의로 구속되었다.[24] 여담으로 이 꼭지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로 우규민이 초등학교 때 동창이었던 배우 윤은혜에게 편지를 썼으나 답장을 못 받은 일화가 있다. 이택근현대 유니콘스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FA 이적한 박진만에게 보낸 편지도 유명.[25] 당시 1선발은 노경석, 2선발은 한정원, 이시준조성민도 수준급의 야구 실력을 갖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