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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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실제 역사의 사례
4. 가상의 사례
5. 정치권에서 쓰는 은어
5.1. 대표적인 예시
5.1.1. 국내 사례
5.1.1.1. 대선
5.1.1.2. 지선
5.1.2. 총선
5.1.3. 국외 사례
6. 기타



1. 개요[편집]


고사성어




고기잡을
지아비
어조사
이로울

어부[1]의 이득이라는 뜻으로, 쌍방이 다투는 사이에 제3자가 힘도 들이지 않고 이득을 챙긴다는 뜻의 사자성어. 같은 뜻의 고사성어로는 견토지쟁방휼지쟁이 있다.

2. 상세[편집]


전국시대 제(齊)나라에 많은 군사를 파병한 연(燕)나라에 기근이 들자, 이웃 조(趙)나라의 혜문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침략 준비를 서둘렀다. 그래서 연나라 소왕은 소진의 동생 소대(蘇代)에게 혜문왕을 설득해 주도록 부탁했다. 이때, 소대가 혜문왕을 설득하기 위해 이야기했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 귀국에 돌아오는 길에 역수(연, 조의 국경)를 지나다가 문득 강변을 바라보니 조개가 조가비를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도요새가 날아와 뾰족한 부리로 조갯살을 쪼았습니다. 깜짝 놀란 조개는 화가 나서 조가비를 굳게 닫고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도요새가 '이대로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죽고 말 것이다'라고 하자, 조개도 지지 않고 '네가 오늘도 내일도 놓아주지 않으면 너야말로 굶어 죽고 말 것이다'하고 맞받았습니다. 이렇게 쌍방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이곳을 지나가던 어부에게 그만 둘 다 잡혀 버리고 말았사옵니다.
전하께서는 지금 연나라를 치려고 하십니다만, 연나라가 조개라면 조나라는 도요새이옵니다. 연과 조 두 나라가 공연히 싸워 백성들을 피폐하게 한다면, 귀국과 접해 있는 저 강대한 진(秦)나라가 어부가 되어 맛있는 국물을 다 마셔 버리고 말 것이옵니다."
"과연 옳은 말이오."
이리하여 혜문왕은 당장 침공 계획을 철회했다.출전(出典)
이 고사에서 나오는 도요새와 방합의 싸움에서 '방휼지쟁(蚌鷸之爭)'이라는 고사성어도 나왔다. 직역하면 방(蚌;조개)과 휼(鷸;도요새)의 싸움, 어부지리는 이 싸움을 거저 먹는 어부의 이득이라는 뜻인데, 실제 뜻은 동의어로 쓰인다.[2]

이와 정반대의 결과를 의미하는 속담인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와는 주어진 상황이 같으면서 정말 백지 한 장 차이의 처신으로 구별된다.


3. 실제 역사의 사례[편집]


  • 펠로폰네소스 전쟁: 우선 아테네는 제국이라 불릴 정도로 강한 세력을 자랑했지만 연이은 개삽질로 나라가 꼴딱 망해버렸다.[3] 그리고 나중에 마케도니아 왕국에 무릎을 꿇는다. 스파르타는 전쟁은 승리했지만 애시당초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포함된 그리스 연합이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상황에서 적국인 페르시아를 끌어들인 바람에 대의명분과 지지를 잃고, 스파르타 자체도 제국을 이끌기에는 마땅치 않는 정치체제라 오히려 부작용이 많았다. 페르시아도 이오니아를 되찾았지만 크세르크세스 1세 사후에 일어난 정치적 혼란에 휩싸인 탓에 그다지 이득은 없었고 끝내 이들 모두가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밀렸다.[4]

  • 디아도코이: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에 일어난 내전으로 인해 헬레니즘 제국마케도니아 본토[5], 아시아셀레우코스 제국, 이집트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 나뉘었는데, 셋은 이후에도 동지중해의 패권을 겨루었지만, 셋다 로마에게 정복당했다.


  • 위진남북조시대
    • 삼국시대: 263년촉한조위에게 항복했지만 이미 조위 역시 황실인 조(曹)씨 가문이 사마(司馬)씨 가문에 의해 기울어져 있었고 결국 2년 뒤에 사마염이 세운 서진에게 굴복했다. 그리고 서진은 15년 뒤에 동오마저 접수함으로써 천하 통일의 목표를 이루었지만 이러한 영광도 막장스러운 팔왕의 난영가의 난에다가 중원의 한족들이 만만해졌다고 꿰뚫어 본 이민족들이 중원에 쳐들어와서 오호십육국시대가 펼쳐진다.
      • 이릉대전: 유비의 촉한과 손권의 동오가 서로 치고받고 싸운 사이 조비의 조위는 더욱 성장하여 격차를 더욱 벌려놓았다. 그러나 정작 조비 본인이 촉과 오 어느 쪽도 확실히 무너트리거나 집어삼키지 못하고 원정을 말아먹어서 삼국시대는 수십년 더 이어진다.
    • 비수대전: 무리하게 백만 대군을 출병시킨 전진은 그마저도 동진에게 약점이 잡혀 패하면서 결국 이민족들의 반란으로 무너져 버렸으며, 동진 역시 전투에서 이긴 기세를 몰아 잠깐이나마 영토를 넓혔지만 이쪽도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 혼란을 거듭한 끝에 유유송나라에게 무릎 꿇는다.

  • 불가리아 제2제국의 3분할: 14세기 말 불가리아 제2제국의 중흥을 이끈 차르 이반 알렉산더르 사후, 그의 두 아들 이반 시슈만이반 스라치미르가 서로 차르를 칭하면서 내전을 벌이고, 지방 귀족이 도브루자 전제군주국[6]을 세워서, 불가리아는 셋으로 나뉘었다. 이 중에서 어느쪽도 승자가 되지 못하고, 셋다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하면서, 불가리아는 19세기까지 외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 장쩌민상하이방후진타오공청단: 이 두 파벌은 서로 권력 암투를 벌일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후진타오의 후계자로 제3의 세력인 태자당 출신의 시진핑을 내세워 뒤에서 조종하려 들었다. 하지만 권력 다툼으로 인해 두 세력이 약해져 있는 틈을 타 시진핑의 태자당이 이 둘을 제압하였고, 결국 시진핑이 장기 집권을 할 길을 열어주고 말았다.

  • 두 번의 세계 대전
    • 제1차 세계 대전: 유럽대륙이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을 때 미국은 군수물자를 팔아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면서 세계 경제 패권국의 지위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고, 러시아 제국에서는 블라디미르 레닌볼셰비키가 황실과 임시 정부 세력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한다. 물론 미국도 나중에 먼로 독트린의 원칙을 깨고 1917년 참전하긴 했지만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인 만큼 미국 본토는 피해가 없었다.
    •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유럽 국가들이 전쟁 후유증에 걸려 있던 상황에서 미국소련이 세계 패권국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두 나라는 이번에도 이득을 봤다.




  •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이 문서로 들어가서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사례야말로 어부지리라는 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경우다.

  • 6.25 전쟁: 해당 전쟁의 영향으로 장제스중국 국민당이 살아남았으며, 일본 역시 전쟁특수로 수혜를 받게 되었다. 비록 한반도에는 피해가 컸지만 이승만김일성 역시 나름대로 명분을 잡아 정권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박정희전두환 같은 군부 세력들 역시 이때를 통해 훗날 쿠데타와 독재를 굳힐 계기가 생겼다.


  • 대만: 원래 대만을 잘 가지 않았던 한국인들이 한일 무역 분쟁으로 인한 일본 불매운동, 중국의 한한령으로 생긴 반중 감정, 홍콩의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정국 불안정성 때문에 요즘 대만으로 몰리고 있다. 그 외에도 홍콩 시위 전까지만 해도 차이잉원 지지율은 낮았는데 2019년에 들어서는 대만인들 사이에도 반중 감정이 격해져서 차이잉원을 지지하고 있다.

  • 문화대혁명: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으로 인문학도들이 거의 몰살되면서 정치를 담당할 사람이 없어졌고, 그에 따라 이공계 출신 인사들이 정계의 자리를 메웠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이공계에 대한 대우가 상당히 좋다. 비록, 문화는 쇠퇴했지만 이공계 한정으로 리즈 시절이 열린 셈.

  •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과 함께 중국을 수십 년 동안 후퇴시킨 사건이지만 일본과 한국은 서양 선진국들로부터 투자를 많이 받아 급성장하여 혼란기의 수혜자가 되었다. 문화대혁명과 대약진운동으로 중국은 덩샤오핑이 집권하고 시장경제 도입과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면서 1980년대가 되어서야 경제발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만약 그때 마오쩌둥 정권이 삽질을 하지 않았다면 투자금이 중국으로 몰리면서 일본과 한국은 경제발전을 못할 수도 있었다.

  • 테러와의 전쟁: 9.11 테러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력이 테러와의 전쟁을 하느라 국력을 낭비하는 동안 중국러시아가 신흥 강대국으로 대두되었고,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의 반서방 세력도 이전과는 다르게 제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 대형마트 규제 논란: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싸우는 동안, 인터넷 쇼핑몰과 SSM, 편의점, 식자재마트가 이득을 봤다.


  •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금메달리스트 스티븐 브래드버리(호주)
    • 준준결승: 4명 중 3위로 완주하여 원래는 탈락이었어야 했는데 앞에서 1명이 실격당해서 2위로 통과.
    • 준결승: 5명 중 5위로 달리다 마지막 바퀴에서 선수 3명이 넘어져서 2위로 완주. 1위가 실격당하면서 1위로 통과.
    • 결승: 5명 중 5위로 달리다 앞선수 4명[7]이 마지막 바퀴에서 죄다 넘어져서 금메달.


  • 모리 모토나리 - 쥬고쿠의 양대 패자였던 오우치 가문과 아마고 가문이 서로 간의 싸움으로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자신의 모략을 이용해 두 가문을 멸망시키고 쥬고쿠 지방을 평정하게 되었다.

  • 밤토끼 구속사건 - 밤토끼 운영자가 경찰에게 잡힌 뒤에 호두코믹스가 반사이익을 얻어 여기에 몰렸다. 사실 밤토끼가 더 치밀했다면 호두코믹스가 오히려 밤토끼에게 빨려서 망했을 것이다.[8]





  • SBS 8 뉴스 -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SBS는 지상파 뉴스 축에도 끼지 못했다. SBS가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KBSMBC가 막장화된 이후이다.


4. 가상의 사례[편집]








오시아와 에루지아가 앵커헤드 만에서 치고받는 동안 핵무기를 가지고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니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은 옛날이여. 고래 싸움에 새우가 먹잘게 풍년이여.
9번째 편인 '일용할 양식' 편에 확장개업한 김포 슈퍼와 형제 슈퍼가 가격 경쟁을 하면서 원미동 사람들이 이익을 챙기는 모습이 나온다. 이 두 슈퍼의 외적 갈등, 원미동 사람들의 두 슈퍼 사이에서의 내적 갈등, 절정 부분에서는 두 슈퍼 vs 싱싱청과물의 외적 갈등이 이 소설의 주된 갈등 양상이다.

  • 이솝 우화의 이야기들
    • 사자이 먹이를 두고 다투는 중 꾀 많은 여우가 먹이를 가져가버리며 둘은 여우 좋은 일 시켰다고 한탄했다.
    • 어느 더운 여름날 사자와 멧돼지가 앞에서 먼저 을 마시겠다고 다투는 중 주변에 독수리들과 까마귀들이 날아들자 독수리들과 까마귀들의 속셈을 알아챈 둘은 함께 사이좋게 물을 마시고 독수리들과 까마귀들은 아쉬워하며 날아갔다.


5. 정치권에서 쓰는 은어[편집]


어부지리의 본 뜻대로 상대 진영에서 내분이 일어나서 당선되는 경우에 주로 쓰인다. 즉 보수 정당 혹은 그 내부 진영 간의 내분으로 민주당계나 진보정당 후보가 당선될 때나, 거꾸로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 정당 혹은 그 내부 진영 간의 내분으로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를 말한다.

대한민국인 경우는 대체로 양당제가 강하게 작용하는 특성상, 승리한 후보는 신승을 할 경우가 많으며, 만약 표를 잠식한 후보가 아주 영향력이 강한 경우는 때때로 낙승을 거둘 때가 있다. 그리고 이때 표를 잠식한 후보는 대체로 그 진영 내부에서 역적 취급을 받을 때가 많다.

보수정당 간의 분열로 상대 진영이 당선된 대표적인 예시로는 제15대 대통령 선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구미시장 선거가 있다. 참고로 아이러니하게도 두 선거 모두 여파가 컸었는데, 첫 번째 예시는 알다시피 민주당계 정당이 집권하는 첫 정권교체 사건이고, 두번째는 무려 20년만에 민주당계 후보가 깃발을 꽂는 사례다.

비록 보수정당은 한개거나 여러개라도 메이저급 정당 + 군소정당 여러개인 경우라도 내부의 정파간의 갈등으로 인해 어부지리로 당선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사하구 을 선거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사천시 선거가 있다. 전자인 경우는 노무현 탄핵 소추과 한나라당계 무소속 후보의 독자 출마로 조경태가 당선되었고,이로 인해 본격적으로 부산광역시 내부에서 민주당계 당선인이 생기기 시작했고, 후자인 경우는 특히 이 당시 친이의 친박 공천학살로 친박이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를 도와주면서 서부경남에 처음으로 진보정당이 깃발을 꼽는 결과를 냈다.

반대로 진보정당 혹은 진보정당과 민주당계 정당, 혹은 민주당계 정당 간의 분열로 상대 진영이 당선된 경우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의 창원시 성산구 선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부평구 갑, 안산시 단원구 갑, 안산시 단원구 을 선거[9],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울산 북구청장, 울산 동구청장 선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의 울산 동구 선거가 바로 그것이다.

진보정당 혹은 민주당계 정당 내부 정파간의 갈등으로 상대진영이 당선된 경우는 대표적으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은평구 을, 인천 남구 갑이 있다.


5.1. 대표적인 예시[편집]



5.1.1. 국내 사례[편집]



5.1.1.1. 대선[편집]

  • 제13대 대통령 선거: 6월 항쟁으로 그토록 원하던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나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양김이 서로 분열하면서 결국 신군부 핵심인사였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참고로 득표율은 고작 36.64%였다.

  •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이에 불복하고 탈당하여 출마한 이인제 후보에 두 사람에 의해서 영남권의 표심이 둘로 갈라지면서 이회창 후보에게 근소한 표차이로 앞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10]

5.1.1.2. 지선[편집]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일부 지역의 교육감 선거
      • 서울특별시: 처음에는 현역인 문용린변호사 출신인 고승덕, 두 보수계열 후보의 양강체제였다. 그런데 선거막판 고승덕의 딸이 자신의 아버지는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글을 SNS에 올렸는데 고승덕은 이에 대해 해명을 하면서 문용린 배후설을 제기했고 문용린은 반박하며 허위사실 공표로 고승덕을 고발했다.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대체로 단일 후보를 낸 진보진영과는 달리 보수진영은 후보가 난립했고 세월호 참사로 보수계열 교육인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면서 선거판세 자체가 보수진영에 유리하지 않았다.[11] 이런 상황에서 상호비방이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자 문용린, 고승덕 두 후보의 이미지는 상당한 손상을 입었고 결국 부동표와 두 후보의 이탈표가 3위를 달리던 진보계열의 사회학자 조희연에게 쏠리면서 서울교육감은 당초 예측을 뒤엎고 조희연 후보가 당선되었다.
      • 부산광역시: 초반에는 현역 교육감인 보수성향의 임혜경 후보가 유력 후보로써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부산 교육감 후보로 보수 성향 후보들이 난립하여 서로 양보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서로간의 흑색 선전까지 난무했던 반면, 진보성향 후보들은 금방 단일화에 성공하였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 시기에 브니엘 예술고등학교 재단 비리 사태가 절묘하게 터져버려서 한동안 지역 신문을 장식한데다가, 일부에서는 현역 교육감인 임혜경 후보가 해당 사립학교 재단과 연루되었다는 의혹 까지 제기되면서# 임혜경 후보는 막판에 제대로 헤드샷을 맞아버렸고, 그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이례적이게도 진보성향의 단일 후보인 김석준이 승리했다.
      • 경상남도: 경남 역시도 보수진영에서는 전현직 교육감인 권정호, 고영진 교육감이 나란히 출마하여 보수표가 분산되었지만 초반 여론조사에는 현직인 고영진 후보가 앞서면서 권정호, 박종훈 후보가 추격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고영진 후보의 관건선거 의혹과 권정호 후보의 은닉재산 의혹 등으로 서로 고소고발 전을 벌이게 되면서 실제 개표에서는 진보진영의 박종훈 후보가 당선되었다.
    •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 울산광역시 동구청장, 북구청장 선거 - 노동당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표 잠식으로 어부지리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참고로 이 때 동구청장으로 당선된 사람 중 한 명인 권명호는 6년 후 같은 상황으로 어부지리를 또 누리게 된다.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 경기 여주시장 선거 - 현역시장인 자유한국당 소속 원경희를 공천탈락시키고, 이충우 후보를 공천했는데, 원경희 시장이 공천불복하며, 무소속 출마강행으로 보수표분산으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항진 후보가 387표차(0.57%차)로 당선되었다.
      • 경북 구미시장 선거 - 보수표가 무려 3갈래[12] 갈리는 행운 속에서 더불어민주당 장세용 후보가 당선되었다. 거기에 민주당계 후보로서 최초로 박정희의 고향인 구미에서 깃발을 꽂은 사례이다.
    • 교육감 선거
      • 인천교육감 선거 - 아래의 대구교육감 선거와 반대버전인데, 여기는 보수성향후보 고승의와 최순자 후보의 표분산으로 진보성향후보 도성훈이 40%를 조금넘긴 43.8%으로 당선되었다.
      • 대구교육감 선거 - 당시 진보권 후보였던 김사열와 홍덕률 후보간의 단일화가 결렬되어서 보수권 후보였던 강은희가 단 불과 2.64%p(30,061표차) 차이로 신승하였다.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 경기도지사 선거: 사상 최초로 여성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국민의힘 김은혜와 무소속으로 출마한 강용석 후보의 0.95%라는 표 잠식으로 더불어민주당 김동연불과 0.15%p(8,913표차) 차이로 매우 아슬아슬하게 이겼다.[13]
    •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 강원 춘천시장: 국민의힘 최성현 후보와 공천에서 컷오프 되어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광준 후보의 9.53%라는 표를 잠식하여 더불어민주당 육동한 후보가 불과 0.78%(1,049표차) 차이로 신승하였다.
      • 경기 안산시장: 더불어민주당 제종길 후보와 현직 시장인 윤화섭 후보도 공천에서 컷오프되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여 6.57%라는 표를 잠식하여 국민의힘 이민근 후보가 불과 0.07%(181표차) 차이로 매우 아슬아슬하게 당선되었다.
      • 서울 마포구청장 선거: 현직 구청장으로 재선 도전한 유동균 후보와 정의당 조성주 후보의 단일화 실패로 국민의힘 박강수 후보가 불과 1.96%(3,397표차) 차이로 당선되었다.
    • 교육감 선거

5.1.2. 총선[편집]


  • 제5대 국회의원 선거
    • 4.19 혁명의 영향으로 민주당이 도시, 농촌을 가리지 않고 총선에서 승리했다.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 경남 창원시 을[14] -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와 새천년민주당 차정인 후보의 표분산으로 한나라당 이주영 후보가 44.13%로 권영길 후보를 약 5%차로 신승하였다.[15]
    • 울산 북구 - 역시 위에 상술된 창원시 을 선거구와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민주노동당최용규 후보와 새천년민주당 이상헌 후보의 표분산으로 한나라당 윤두환 후보가 간신히 2%차 초접전 끝에 당선되었다.[16]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부산 사하구 을 - 당시 노무현 탄핵 역풍으로 인해 한나라당계 무소속 후보의 표를 잠식하여 열린우리당 조경태가 당선되었다.[17]
    • 경남 거제시 - 열린우리당 장상훈 후보와 민주노동당의 나양주 후보의 표분산으로 당시 현역의원인 한나라당 김기춘 후보가 40% 조금넘긴 43.50%으로 3선에 성공하였다.[1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 서울 노원구 병 - 당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와 통합민주당 김성환 후보의 진보표분산으로 한나라당 소속 홍정욱 후보가 3%이내 초접전끝에 노회찬 후보를 꺾고 신승하였다.
    • 경기 용인시 처인구[19] - 당시 열린우리당 출신인 한나라당 이우현이 공천에 탈락하고[20], 여유현 후보를 공천하자, 이에 불복하며 친박연대로 당적이동해 공천받아 출마를 강행하는 바람에 보수표 분산으로 당시 이지역 현역의원인 통합민주당 우제창 후보가 40%가 안되는 39.08% 득표율로 연임에 성공하였다.
    • 경남 사천시[21] - 친박과 친이간의 공천 학살로 서부경남에서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인 강기갑이 당선되었다.
    • 제주 제주시 갑 - 여기도 친이 친박간의 갈등으로 통합민주당 소속 강창일이 당선되었다.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정통민주당에서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단일후보의 표를 잠식해서 새누리당에 의석을 갖다바쳤다.[22] 물론 보수 정당에서도 보수계 무소속이 표를 잠식해서 민주당계 후보가 당선된 경우도 많았다. 공천 갈등이 얼마나 참극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선거라 보면 된다.
  •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 서울 동작구 을 - 정의당노회찬 후보와 노동당김종철 후보의[23] 진보표분산으로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가 과반수 조금 모자르는 49.90%:48.69%으로 간신히 1.21%차로 신승하였다.
  •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위와 마찬가지로 어부지리가 많았던 총선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의 분열로 인해 새누리당에서 당선되었을 때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서울특별시 중구·성동구 을, 강북구 갑, 도봉구 을, 동작구 을, 양천구 을, 서초구 을, 관악구 을, 송파구 갑, 강서구 을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당사 지역인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갑, 안산시 단원구 을시흥시 갑, 의정부시 을, 성남시 중원구, 평택시 을, 용인시 갑, 용인시 병, 남양주시 병, 김포시 을과 인천광역시 부평구 갑, 남구 갑, 연수구 을, 서구 갑[31]대전/충청권에는 대전 동구, 대전 중구, 대전 대덕구[32], 공주시·부여군·청양군, 증평군·진천군·음성군 PK 지역에는 부산 북구·강서구 을,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산시 갑 그리고 호남 지역에는 순천시, 전주시 을[33] 등이 있다.
    • 경기 안양시 동안구 을 - 참고로 여기도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야권인 국민의당이 아닌 정의당정진후 후보가 19%를 받으며 표를 잠식하여 심재철이 5선에 성공하였다. 이 당시는 정진후 후보의 개인적 인기가 컸기에 오히려 심재철에게 4번을 낙선했던 민주당 이정국 후보가 정진후 후보에게 단일화 하라는 말까지 나온 바가 있었는데 이로 인한 영향이 컸다.[24]
    • 경기 파주시 을 - 여기는 위의 상술된 새누리당 어부지리 당선 지역구가 워낙 임펙트가 커서 가려졌지만, 반대로 새누리당성향 보수표 분산으로 더불어민주당이 득을 본 지역인데, 당시 새누리당 경선에서 민선 3-4기 파주시장을 역임한 류화선 전 경인교대 총장이 여성 당직자가 전화 통화가 끊긴줄 알고 막말을 내뱉은 사건이 터지자 당시 현역의원이자 당 사무총장인 황진하가 공천이 확정되자, 류 전 시장은 이에 불복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바람에 양강구도에서 3파전으로 상황이 바뀌었고, 결국 4년전에 매치를 벌였던 더불어민주당의 박정 후보에게 약 7%차로 밀리며 4선[25]에 실패하였다. 여담으로 황진하는 이방호, 권영세를 이어 당 사무총장 잔혹사를 이어갔다.[26]
    • 경기 성남시 분당구 을 - 여기도 위에 상술된 파주시 을 지역과 마찬가지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득을 봤는데, 이 지역은 친이-친박 갈등이 있었다. 현역의원인 친박계인 새누리당 전하진 후보가 친이계이자 전하진 전임으로 해당지역에서 내리 3선 국회의원을 한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을 꺾고 공천을 받자, 임태희 전 의원은 공천불복하며 무소속으로 출마강행을 하면서 보수텃밭지역에서 상황이 변화했는데, 임태희가 3선 국회의원을 하면서 지역기반이 탄탄했는지 20% 육박하는 득표율로 선전하자, 더불어민주당의 김병욱 후보가 40% 조금 모자르는 39.85%로 어부지리로 당선된거에 가까웠고, 동시에 선거사상 최초로 보수텃밭인 분당구 지역구 2개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모두 싹슬이 해버렸다.[27][28]
    • 전북 남원시·임실군·순창군 - 여기도 마찬가지로 새누리당 어부지리 당선은 아니지만 비슷한데 당시 더불어민주당 현역의원이었던 강동원을 탈락시키고, 정치신인인 박희승 후보를 공천했고, 강동원 의원은 공천불복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해 국민의당 이용호 후보가 40%가 조금 안되는 39.12% 득표해 어부지리로 당선된거에 가까웠다.[29][30]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 경남 창원시 성산구 - 더불어민주당 이흥석과 정의당 여영국의 단일화 실패로 미래통합당 강기윤이 당선되었다.[34]
    • 강원 홍천군·횡성군·영월군·평창군 - 전략공천에 반발한 조일현의 더불어민주당 탈당 후 무소속 출마로 인해 표가 갈려서 미래통합당 유상범이 당선됐다.
    • 경기 평택시 을 -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가 단일화에 실패한 가운데 유의동이 당선됐다.[35]
    • 울산 동구 - 여기도 더불어민주당과 민중당 김종훈 후보의 단일화 실패로 미래통합당 권명호가 당선됐다. 이 사례는 다른 사례와 다르게 더불어민주당 측이 24%를 먹으며 표를 잠식해 민중당 후보가 낙선했다. 이 당시 국민의힘 권명호 후보는 38%로 전국 최저 득표율이었다. 말 그대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동구청장 선거의 재림이다.[36]
    • 서울 용산구 - 더불어민주당 강태웅 후보와 정의당 정연욱 후보 간의 표가 분열되어 미래통합당의 권영세가 당선되었다.
    • 충남 천안시 갑 - 우리공화당친박신당이 미래통합당에게 갈 표를 갈라먹어[37] 더불어민주당의 문진석이 당선됐다.
    • 충남 당진시 - 미래통합당의 김동완과 무소속의 정용선과의 표가 분열되어, 더불어민주당의 어기구가 당선되었다.


5.1.3. 국외 사례[편집]





6. 기타[편집]


현대중국어에서는 쓰이지 않는 표현이며 어옹지리(渔翁之利), 어옹득리(渔翁得利), 좌수어리(坐收渔利)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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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보'(漁父)라고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고사성어에 등장하는 인물은 전문적으로 고기를 잡는 통상적인 어부보다는 취미로 고기를 잡는 노인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렇게 읽는다면 '어보지리'가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어부지리'가 표준어이다.[2] 상황에 따라 어부지리의 새가 도요새가 아닌 두루미, 황새로 바뀌기도 하는데. 아마도 훨씬 더 흔한 새여서 그런 듯하다. 물론 일부 교과서나 동화책에서는 두루미, 황새로 전달하기도 하는데, 아무 문제 없다.[3] 나중에 나름대로 부활했지만 전성기에 비하면…[4] 아이러니하게도 알렉산드로스 3세가 건국한 헬레니즘 제국도 후에 구심점을 상실하여 디아도코이들의 권력다툼으로 셀레우코스 제국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같이 서로 쪼개져서 내전으로 국력을 소모하다가 바로 옆동네에서 힘을 키우던 로마에게 정복되고 말았다.[5] 초기에는 안티파트로스 왕조, 후기에는 안티고노스 왕조[6] 동로마 황족 및 고위 귀족의 작위인 데스포티스를 칭했다.[7] 안현수, 리자쥔, 아폴로 안톤 오노, 마티외 튀르코트[8] 밤토끼가 호두코믹스 거를 가져가고 있었다.[9] 여담으로 4년뒤에 치뤄진 21대 총선때는 4년전인 20대 총선과 달리 국민의당 같은 후보가 없었고 민주당표 결집으로 상술한 선거구 3개 모두 다 더불어민주당이 탈환했다.[10] DJP연합도 있었다. 이 중에 어느 하나라도 없었으면 정권교체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다만 3년 뒤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과의 연합공천이 실패하면서 단일화가 무산되었고, 단일화 실패로 인해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로 25석을 추가로 확보하면서 원내1당을 지킬 수 있었다는 점은 매우 아이러니하다.[11] 광역단체장이 야당 9명, 여당 8명으로 팽팽했던 것과 달리 교육감은 13명을 당선시킨 진보계열의 압승이었다. 세월호 참사로 입시 위주의 교육에 대한 회의감이 반영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실제로 이 세월호 사건은 한국 학부모들의 학교 교육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고, 이는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 속에서 학부모들이 9월 학기제 즉각 도입을 주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12] 자유한국당 이양호 후보 + 바른미래당 유능종 후보 + 무소속 김봉재 후보[13] 그것도 김동연이 개표율 96.6% 시점인 새벽 5시 32분부터 처음으로 역전하였다.[14]창원시 성산구 선거구[15] 여담으로 4년뒤 리턴매치에서 그때도 열린우리당 후보가 10% 조금넘게 분산되긴 했지만, 탄핵역풍과 권영길 후보의 2년전 대통령선거 토론회에서 눈도장을 찍으면서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동정여론이 생기며 이주영 후보를 10% 넘는 격차로 국회입성에 성공하였고, 그 다음 총선때도 지역구를 잘 닦아 기반이 탄탄해 역시 통합민주당 후보가 표분산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경남도의원 출신인 한나라당 강기윤 후보를 여유롭게 누르고 연임에 성공하였다.[16] 여담으로 당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이상헌 후보는 2018년 재보궐선거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해당지역에서 연임에 성공해 민주당계 정당 최초 울산광역시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17] 여담으로 4년뒤에도 조경태 의원은 한나라당 최거훈 후보와 리턴매치에서도 친박연대등 보수성향 후보들이 대거 난립으로 또다시 득을 보며 재선에 성공하였다.[18] 당시 탄핵정국 이었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주역 중 한명인 김기춘 의원이 민심이 안좋았는데, 만약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 후보 중 한 사람만 없었으면 낙선은 물론이고 정치생명이 끝장날 뻔 했던 상황이었다. 구 장승포시 지역은 장상훈 후보는 물론이고 나양주 후보에게도 뒤진 3위를 기록하였고, 구 거제군에서 50% 육박하는 득표를 해 구 장승포시 지역에 부진한 득표를 간신히 상쇄시킬 수 있었다.[19]용인시 갑 선거구[20] 당시 이우현은 친이계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다가, 공천탈락으로 친박계로 전향하였다.[21] 19대 총선 당시 사천시 선거구와 남해군·하동군 선거구하고 통합되 현재는 사천시·남해군·하동군 선거구이다.[22] 은평구 을, 서대문구 을, 의정부시 을, 평택시 을, 광주시, 안산시 단원구 갑 이다.[23] 당시 노회찬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기동민 후보와 단일화했고, 김종철 후보는 통합진보당 후보와 각각 단일화한 상태였다.[24] 결국 4년 뒤 21대 총선에서는 심재철에게 4번을 낙선한 이정국은 결국 공천에서 탈락하고, 현역 비례대표 국회의원 이재정을 공천, 정의당 측에서는 이재정과 똑같이 현역 비례대표 국회의원인 추혜선 후보를 공천했다. 다만 추혜선 후보 개인의 지역구 관리 부실 및 이재정의 개인기와 심재철 후보에 대한 비토, 민주당으로의 표 결집 등 여러 영향으로 표가 이재정에게 결집되면서, 심재철의 6선 도전을 압도적으로 저지시켰다.[25] 초선시절은 비례대표고, 지역구로 한정하면 3선 도전이다.[26] 다만 4년뒤에 치뤄진 총선에서는 당시 당 사무총장이었던 박완수는 살아남으면서 잔혹사는 깨졌다.[27] 물론 무소속으로 출마한 임태희 뿐만 아니라, 당시 국민의당 후보, 민중연합당 후보가 대거 난립했기 때문에, 사실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28] 4년뒤에는 반대로 이 지역 현역인 김병욱 의원이 좀 불리한 상황에서 치뤄졌는데, 같은당 현역시의원인 이나영이 공천에 탈락해 시의원직을 사퇴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4% 가까이 분산이 됐음에도 김병욱이 4년동안 갈구어 닦은 지역기반 덕분에 미래통합당김민수 후보를 약 2%차이로 진땀승을 거두었다.[29] 여담으로 이용호는 국민의당 소속 호남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자 중 최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국민의당 소속 비호남권 지역구 당선자까지 넓혀보면 이용호가 두번째 최저 득표율이고, 첫번째는 관악구 갑 지역에 38.43%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한 김성식이다.)[30] 어부지리는 아니지만 더불어민주당에는 4년뒤에도 공천갈등을 잘 극복하지 못하고, 4년전에 공천받은 박희승이 아닌, 과거 이 지역에서 내리 3선한 이강래를 공천했는데, 문제는 이강래가 이 지역에 3선 국회의원을 하면서 본인 고향인 남원시를 홀대한 악행이 있었기 때문에, 마침 더불어민주당에 복당에 불허된 현역의원인 이용호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였고, 이용호가 4년전처럼 상대당 공천갈등때문에 또다시 득을보며 재선에 성공하였고, 호남지역 유일 무소속 국회의원 당선자가 되었다.[31] 상술한 인천의 4개 선거구 모두 4년뒤에 치뤄진 21대 총선에는 중구·강화군·옹진군, 동구·미추홀구 을 지역을 제외하고, 모두 싹쓸이했다.(이때는 남구 갑 선거구가 선거구 조정으로 동구·미추홀구 갑 지역이 되었다.)[32] 인천지역과 똑같이 4년뒤에는 국민의당 같은 후보가 없었고, 공천갈등을 잘 극복했는지 상술된 대전의 3개 지역구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싹슬이 해 대전 7석 모두 올킬에 성공하였다.[33] 역시 여기도 4년뒤에 더불어민주당이 상술된 2개 지역구 모두 다 가져갔다.(순천시는 광양시·곡성군·구례군 선거구와 통합되 순천시·광양시·곡성군·구례군 갑, 순천시·광양시·곡성군·구례군 을로 분구되었다.)물론 당시 현역의원이었던 이정현, 정운천이 개인기도 있었지만, 원래 호남지역이 민주당 오랜텃밭이기 때문에 반은 개인기도 있었지만 반은 국민의당 후보의 난립으로 민주당 오랜텃밭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된 것도 있었다.[34] 여담으로 강기윤 의원은 8년전인 2012년 19대 총선때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와 단일화한 통합진보당손석형 후보가 나왔는데, 최종적으로 진보신당 후보하고 단일화가 불발되, 강기윤이 과반수가 조금 모자르는 49.04% 득표율로 당선되었다.[35] 여담으로 유의동 의원은 4년전에도 국민의당 후보의 난립으로 득을 봤는데, 이번에도 더불어민주당 출신 무소속 후보의 난립으로 또다시 득을 봤다.[36] 노동당과 민주당계 정당의 표 잠식으로 진보정당 후보가 석패했고, 이로 인해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심지어 당선자는 권명호고 낙선자는 김종훈인 것과 2년 뒤의 선거에서 김종훈 후보가 다른 자리에서 당선된 것도 데쟈뷰 그 자체다.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37] 문진석과 신범철의 표차보다 저 두 당이 가져간 표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