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스노든

덤프버전 :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스노든의 폭로 관련 사건에 대한 내용은 NSA 기밀자료 폭로사건 문서
NSA 기밀자료 폭로사건번 문단을
NSA 기밀자료 폭로사건#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에드워드 조셉 스노든
Edward Joseph Snowden
Эдвард Джозеф Сноуден


파일:EdwardSnowden.jpg

출생
1983년 6월 21일 (40세)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노스캐롤라이나 주 엘리자베스시티
국적
[[러시아|
러시아
display: none; display: 러시아"
행정구
]]
|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거주지
[[러시아|
러시아
display: none; display: 러시아"
행정구
]]
모스크바 주
학력
앤 아룬델 커뮤니티 칼리지 중퇴
리버풀 대학교 중퇴
경력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 (그린베레)
CIA 시스템 엔지니어, 시스템 관리자, 수석 자문관, 솔루션 컨설턴트
NSA 기반시설 분석가
직업
프로그래머, 정보요원, 시스템 엔지니어, 보안 엔지니어, 해커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
2. 생애
2.1. 초기 인생
2.2. 미 육군 특수작전부대
2.3. CIA
2.4. NSA
2.4.1. Dell 하청
2.4.2. 부즈 앨런 해밀턴
2.5. 망명 및 이후의 행적
3. 러시아 귀화와 미국의 반응
4. 미국에서의 논란



1. 개요[편집]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은 NSA기밀자료를 폭로내부고발자이다.


2. 생애[편집]



2.1. 초기 인생[편집]


스노든은 1983년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태어났다. 스노든의 외할아버지는 미합중국 해군 제독(소장)이었고 아버지는 미합중국 해안경비대 장교였다. 어머니는 지방법원에서 일했고 누나는 워싱턴 D.C.에서 변호사가 되었다. 누나의 말에 따르면 스노든은 2번의 IQ 테스트에서 모두 145 이상을 기록했으며 집안에서 스노든이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스노든이 연방정부 공무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2001년에 스노든의 부모는 이혼했고 스노든은 어머니 쪽에 맡겨졌다. 그는 한국으로 따지면 고등학교 1학년인 10학년 때 단핵구증이라는 위험한 질병을 앓아 학교를 자퇴했고 학력대체시험으로 고졸 학위를 얻었다. 스노든은 커뮤니티 칼리지(전문대학)에 진학했으나 곧 대학교육에 흥미를 잃었고[1] 고졸 출신으로 컴퓨터를 연구하고 돈을 받는 컴퓨터 개발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스노든의 취미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상과 게임, 무술이었고 잠시동안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업하기도 했다. 외국어에도 뛰어나서 일본어중국어를 수준급으로 할 줄 알았다고 한다.


2.2. 미 육군 특수작전부대[편집]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후 이라크 전쟁이 격화되자 스노든은 2004년 5월 7일 그린베레에 자원입대하였고 병과는 정보병과였다. 그는 "사람들을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2]라는 뜻으로 입대했으나 미국이 내건 이라크 전쟁의 명분은 자유나 해방과 거리가 멀었고 민간인을 살해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그린베레의 잔혹함에 큰 거부감을 갖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사고가 발생해 양 다리에 골절상을 입어 훈련을 수료하지 못하고 2004년에 의병 제대했다.

18X 과정으로 입대했으므로 그린베레의 이등병 입대 과정이며 임관하기 전 의병 제대했기 때문에 군복무는 했으나 계급은 없다. 만약 제대로 수료했더라면 하사로 진급 이후에는 18F로 과정이 변경되었을 것이다.


2.3. CIA[편집]


제대를 했지만 국방부는 스노든의 우수한 가문[3]과 컴퓨터 개발 능력에 흥미가 있었고 2005년 그를 메릴랜드 대학교 고등 언어 연구센터(Center for Advanced Study of Language)의 경비원으로 채용시켰다. 이 센터는 기밀은 아니지만 NSA의 후원을 받는 데다 보안이 철저한 시설이었고 거짓말 탐지기를 포함한 강도 높은 심문을 받았다고 한다.

2006년 스노든은 명목상 취업박람회에 참석해 CIA에 취업하였다. 이미 CIA는 그의 컴퓨터 능력에 매우 큰 인상을 받았고 취업 후 버지니아주에 있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부서에 배치시켰다. 스노든은 이 시절에 대해 자기가 "컴퓨터 마법사" 였기 때문에 취업에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스노든은 6개월 간 CIA의 비밀 시설에 보내져 해킹, 사이버 보안 교육을 이수하였고 최고 수준의 정보보안전문가가 되었다.

2007년에 스노든은 UN 주재 미국 대표부의 컴퓨터 네트워크 보안을 책임지기 위한 외교 정보요원으로 발탁되었고 불체포 특권을 부여받았다. UN 본사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업무를 수행하였고 NATO에서 미국 대통령을 보조하기 위해 루마니아로 파견을 다녀오기도 했다. 해외업무를 수행하면서 스노든은 최상위관리자 권한을 받게 되었고 이때 NSA의 감시시스템인 PRISM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스노든은 해외업무를 수행하며 CIA에 대한 짙은 환멸감을 느꼈는데 요원들이 스위스의 은행가와 접촉해 술을 마시게 한 뒤 음주운전을 유도하고 협박을 해서 정보를 빼내는 등 윤리적이지 않은 공작활동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PRISM의 감시 규모와 범위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정도로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고 생각했고 요원들이 PRISM을 이용해 일반인의 "누드사진" 등을 보고 여흥거리로 삼는 등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을 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스노든은 공식적으로는 2009년 2월에 CIA를 사직하였다.


2.4. NSA[편집]



2.4.1. Dell 하청[편집]


스노든은 CIA를 사직한 2009년에 NSA와 계약을 맺은 Dell에 입사하였다. 이때 스노든은 명목상 Dell의 직원이었지만 사실상 직책은 NSA의 시스템 관리자였다. 그는 NSA의 모든 자료에 대한 접근 권한이 있었으며 여러 정부기관의 컴퓨터 데이터를 관리하였다. 또 스노든은 주일미군이 주둔해 있는 요코타 공군기지에 가서 고위 관리와 군 장교들에게 중국 해커들로부터 데이터를 지키는 방법을 교육하였다.

스노든은 Dell에서 4년간 NSA 컴퓨터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감독하였으며 이력서에 자신을 "사이버 방첩 전문가", "사이버 전략가"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후 2011년에 메릴랜드로 가서 델의 수석기술자 생활을 하면서 CIA 계정을 다뤘다. 이때 그는 CIA의 정보국장과 기술국장 등 CIA 내 최고위공직자들의 기술자문을 해 주는 등 입지전적한 위치에 올랐다.


2.4.2. 부즈 앨런 해밀턴[편집]


2013년에 스노든은 NSA, CIA, 미군 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방첩 컨설팅 업체 부즈 앨런 해밀턴에 취업하였다. 당시 스노든은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는데 국가정보장제임스 클래퍼가 상원 청문회에서 감시의 적법성과 관련해 위증하는 것을 보고[4][5] 실망을 금치 못했던 것이었다. 이때 스노든의 직업은 인프라 전문가로 사실상 전세계 전화와 인터넷에 침투하기 위한 새로운 해킹 방법을 구상하는 일을 했다.

전직 NSA 동료는 NSA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지만 스노든은 NSA에서 널리 사용된 백업시스템을 구축하고 시스템 보안 결함을 지적하는 등 천재 중의 천재라고 묘사했다. 그는 다년간의 업무경력과 컴퓨터 실력으로 삼엄한 NSA의 보안시스템의 취약점을 알고 있었고 기밀데이터를 복제했지만 동료 요원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한편 부즈 앨런 해밀턴의 담당자는 스노든의 이력서에서 결함이 있음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을 강행했는데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컴퓨터 수업을 들었다고 주장했지만 존스 홉킨스대의 담당자는 해당 학생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답변했으며 리버풀 대학교 석사학위라고 표기했지만 등록과 활동은 했으나 졸업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6]

당시 스노든은 20만 달러 이상의 높은 연봉을 받으며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부고발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2.4.3. 폭로[편집]


PRISM의 실체를 폭로하기로 결심한 스노든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3년의 기간 동안 NSA의 감시 시스템이 어떤 형태로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시스템 관리자였기 때문에 일반 NSA 직원보다 정보 접근 수준이 높았다고 한다.

"내가 당신 이메일이나, 당신 아내의 핸드폰을 보고 싶으면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그만이다. 당신의 이메일이며 비밀번호, 통화기록, 신용카드까지 알 수 있으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는 사회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처음 스노든은 프리즘 프로젝트와 업스트림 감시, 'XKEYSCORE'가 무작위 정보 수집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으며 수집 과정에서 개인정보 침해가 약간 일어날 수도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이 프로젝트가 사실상 빅 브라더[7]를 지향한다고 확신해 홍콩으로 망명하여 2013년 6월 10일 영국의 더 가디언 등 세계의 주요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폭로했다. NSA 기밀자료 폭로사건 항목 참조.


2.5. 망명 및 이후의 행적[편집]


2014년 미국의 비영리단체 Freedom of the Press Foundation(언론의 자유 재단)의 이사로 합류했으며 2016년 대표이사로 임명됐다. 해당 단체는 Tor를 사용한 익명 제보 플랫폼 SecureDrop의 개발, 미국 내 언론의 자유의 침범을 기록하는 US Press Freedom Tracker의 운영 등으로 언론매체와 내부고발자들을 전면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위 영상은 2014년 5월 캐나다의 국가 감시(State Surveillance)를 주제로 한 멍크 디베이트 프로그램에 보낸 것이다. 토론 내용은 '감시국가'라는 제목으로 한국에도 출판되었다. 이처럼 최초 폭로 이후에도 한동안 이와 관련하여 각종 언론 매체에 등장하였다.


러시아, 스노든 망명 허용…미국 '발끈' / YTN
결국 스노든의 이러한 폭로에 미국 정부가 그를 간첩죄 및 국가기밀유출 등으로 체포하기 위해 움직이자 스노든은 21개국에 망명을 요청했지만 당연히 미국의 압력 때문에 11개국이 망명 요청을 거절했고 2개국이 보류 신청을 내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미국의 압력이 어느 정도였냐면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전용기에 에드워드 스노든이 몰래 탔을 거라는 잘못된 첩보를 받은 미국이 프랑스, 포르투갈에 압력을 가해 이에 대한 영공통과 허가를 취소했을 정도다. 결국 볼리비아 대통령은 빈 공항에 착륙해 오스트리아 외무부에게 에드워드 스노든이 탑승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이건 볼리비아에 대한 명백한 주권침해였고 같이 동승했던 볼리비아 국방장관이 맹비난했다. 기사

당시 스노든은 홍콩에 피신해 있었는데 위와 같이 물불을 안 가리고 막 나가는 미국 정부의 요구에 중국 정부가 스노든을 인계할 기미를 보이자 크게 당황하였고 결국 잠재적 적성국인 러시아로 향하게 되었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 및 미국 의회의 반응이 걸작인데 민주당 상원의원 척 슈머는 홍콩 측에서 스노든을 연금하거나 미국에 인계하지 않고 출국하도록 용인, 방치하는 것이 미국과의 관계에 장애를 초래할 걸 알면서도 홍콩 당국이 도주를 허용했을 리는 없다고 판단하며 베이징이 배후에 있다고 비난했다. 도주하여 러시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 환승 구역에 발이 묶인 스노든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으나 러시아가 스노든의 임시 망명(1년)을 허용하면서 러시아 정부의 보호 아래 공항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스노든의 가족들은 망명 요청을 허락한 러시아 정부에 감사한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러시아 각계의 지식인과 재벌들은 스노든을 돕겠다고 나섰다.

이에 미국은 러시아를 맹비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 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G20 기간 동안 예정되었던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전부 백지화로 돌렸고 미러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사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정부는 처음엔 스노든의 망명 요청을 거절했으나 갑자기 푸틴 대통령이 더 이상의 정보를 폭로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그의 임시 망명을 허용한다고 입장을 바꾸면서 망명이 성사된 것이다.[8] 다만 러시아 정부는 2020년까지 망명을 허용했다.

2019년에 프랑스로 망명하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였다.# 하지만 미국의 보복이 가져올 두려움으로 인해 프랑스는 거부하였다.

이후 4월에 만료를 앞두고 3년 거주 연장을 신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의 입장을 뒤집고 사면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법무부 장관은 스노든의 사면을 반대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영주권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러시아 국적도 신청했다.# 러시아에 도착한 이후에 득남했다.#


3. 러시아 귀화와 미국의 반응[편집]


26일 오후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관련 브리핑에서 스노든 관련 질문에 “스노든의 시민권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며 “스노든에 대한 우리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스노든은 미국으로 돌아와 다른 미국 시민과 마찬가지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어 “어쩌면 유일하게 달라진 것은 러시아 시민권 부여로 이제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도록 징집될 수도 있겠다”고 비꼬았다. 이에 한 기자의 ‘스노든이 징집될 가능성에 기뻐하는 것 같다’는 지적에 “내 목소리에 감정을 담지 않았다. 난 그저 스노든이 러시아 시민으로서 러시아 법령을 적용받게 됐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당시 여러 국가들은 스노든을 잡아서 처벌해야겠다며 화를 내는 미국을 두려워하며 스노든의 망명을 받아주길 거부했는데 인도에서도 거부했으며# 브라질에서도 망명을 거부했고# 독일도 스노든의 망명 허용을 거부했으며# 프랑스도 스노든의 망명을 거부했다.#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스페인, 핀란드에서도 스노든의 망명을 받아주길 거부했고# 에콰도르도 스노든의 망명지로 잠시 거론됐다가 "그렇게 되면 양국 관계가 큰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를 들어야 했다.# 러시아조차도 미국이 스노든을 증오하며 길길이 날뛰며 분노하는 것을 보며 타국들과 마찬가지로 망명을 거부했다가 미국에 무릎을 꿇었냐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미국의 눈치를 보며 스노든에게 “만일 그가 러시아에 남고자 한다면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내 입에서 이런 말을 듣는 게 이상하겠지만, 우리의 미국 파트너들에게 해를 끼치는 데 초점을 맞춘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스노든보고 러시아로 망명간 것을 비난하며 징집을 운운하며 비꼬는 것은 스노든을 증오하는 미국의 감정섞인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한데 애초 스노든이 러시아로 가도록 몰아세운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미국이였다. 애초부터 스노든 본인은 딱히 러시아를 가고싶어한 것도 아니였다. 스노든이 다른 국가들에 망명을 신청하나 대부분 국가들이 망명을 받아주는 것에 대해 미국이 분노하고, 망명을 받아준 국가에 앙심을 품은 미국이 혹독한 보복조치를 취할 것을 우려해 스노든의 망명 신청을 받는 족족 죄다 거부해대는 이른바 국제적 미아가 된 처지였다. 에콰도르만해도 스노든 망명지로 잠시 거론됐다가 "그렇게 되면 양국 관계가 큰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를 들어야 했다.#

2022년 9월 26일 푸틴에 의해 러시아 시민권을 정식으로 취득하여 러시아 국적자가 되었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진행되는 와중에 우크라이나의 9월 공세에 따른 러시아 동원령이 내려진 지 5일 만에 스노든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자 러시아에서는 스노든도 징집 대상에 포함될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친푸틴 인사로 분류되는 러시아 국영 매체 RT의 편집장인 마르가리타 시모니안은 자신의 텔레그램에 “스노든도, 징집될까요?”라고 올렸다. 이에 스노든 측 변호인은 리아노보스티(RIA) 통신에 “스노든은 러시아 군대에 복무한 적이 없기 때문에 징집될 수 없다”라고 답변했다.

4. 미국에서의 논란[편집]


스노든의 내부고발은 미국에서도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전 CIA 국장인 제임스 로버트 울시 주니어는 그를 교수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많은 고위공직자들은 그가 한 행위가 반역 행위라며 강경한 태도를 나타냈다. 그러나 생각해야 할 점은 스노든의 폭로가 없었다면 PRISM과 Xkeyscore 같은 대규모 감시행위가 절대로 밝혀지지 못했을 것이며 NSA의 감시 프로그램이 매우 불법적인 업무였다는 것이다. 스노든의 행동들은 프라이버시를 위해 싸운 영웅이라는 주장과 반역자라는 비판 사이에서 현재에도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스노든의 기밀자료 수집과 폭로가 미국의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며 미국 정부의 입장에선 스노든을 범죄자로 규정하고 체포하려고 하는 것은 법리적으로는 맞는 수순이다.(물론 프리즘 프로젝트부터가 위헌인 것도 사실이다. 다만 애국자법이...) 다만 스노든의 폭로가 개인적인 이득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감시와 사찰을 알려서 민주주의 정신을 지키기 위한 공익적인 목적이란 것을 감안해서 범죄자보다는 내부고발자로 규정하는 것이 대체적으로 세계에서 바라보는 시선이다.

미국의 주류 언론은 스노든을 내부고발자(whistleblower)가 아닌 "유출자"(leaker)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미국 법률상 정식 정부 기관에 신고해야 내부고발자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즉 외부 언론 매체에 폭로해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스노든을 내부고발자라고 부를 경우 엄밀히 말하면 오보가 된다. 또한 사전적 의미의 내부고발은 불법행위나 비도덕적 행위를 명백히 밝혀야 하는데 스노든의 경우 여론이 갈리기 때문에 논란 자체를 피하는 방향으로 보도하는 것이다.AP통신 보도지침

하지만 이와는 상관없이 미국의 일부 언론이 스노든을 다루는 태도는 매국노, 반역자를 다루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며 이러한 태도는 그에 대한 인신공격성 보도로 이어졌다.

스노든이 러시아로 향하자 전직 CIA 요원인 스노든한테 미국에 관한 정보를 뜯어내기 위한 계획에 의한 것이라는 반응이 터져나왔으며 런던 소재 컨설팅업체 GPW의 파트너 필립 워먼은 스노든 임시망명 허용으로 러시아가 미국과의 갈등 상황을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보고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미국의 보수 언론들은 미국 정부가 전세계 각국을 압박해 스노든의 망명을 막아놨다는 것을 잊었는지 결국 중국 홍콩에 피신해 있다가 중국 정부가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고 스노든을 중국에서 쫓아낼 기미를 보이자 당황한 스노든이 러시아 모스크바로 피신한 것을 가지고 참 기막힌 칼럼을 썼다. 뉴스위크지의 "스노든은 독재자를 좋아해!" 기사, 내용 라는 칼럼이 대표적이다.

위와 같은 정치적인 공격 외에도 사회적으로 그를 매장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이며 스노든 개인의 신상에 대한 폄훼도 다반사로 이어졌다. 이 폭로 사건의 주인공인 에드워드 스노든은 오덕이다. 애니메이션 회사에서도 일한 경력도 있고 꽤나 일본 문화에 심취했던 걸로 보이는데 예전에 그가 작성한 프로필을 읽어 보면 스스로 싸움 스타일을 이천일류라고 하는 등 읽는 사람의 손발이 절로 오그라들게 만든다. # 그런데 이 프로필은 아무리 봐도 허세라기보다는 장난으로 작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싸움 스타일에 언급된 목록은 '이천일류, 무에타이, 브라질리언 유술, 계집애처럼 깨물고 할퀴기'(…)라고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은 이를 파헤쳐 자극적인 방식으로 공개했는데 이런 과거 전력을 파헤쳐 공개한 것은 "스노든은 만화나 보던 너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신뢰할 수 없다여론몰이하기 위한 '언론플레이'의 일환이다. 애초에 그런 만화나 보는 너드를 정보국 관리자로 고용했던 건 미합중국 정부다.

이런 행적이 있다쳐도 그는 명문대 박사 출신이 수두룩한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 NSA고졸로 취업해 시스템 관리자를 거쳐 컨설턴트 일까지 했던 엄청난 커리어의 실력자이다. 당시 미국 정부의 말대로 낮은 수준의 업무를 처리하던 요원이라거나 그 내용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하기엔 경력이 너무 화려하고 내부 사정도 훤히 알고 있었다. 과거 행적에서 뭐든 흠집을 찾아내려는 미국 언론과 기자들이 인신 공격을 위해 초등학교 동창들까지 찾아가서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윽박지른 걸 보면 치사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수십년 전의 초등학교 때의 일인 만큼 기억이 잘 안 나는건 당연한 것인데 기억이 안 나서 버벅대니까 "그를 보호해주려는 겁니까? 그의 행위에 찬성하는 겁니까?"라고 쉴 새 없이 질러댈 정도였다.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를 대상으로 윽박지르는 위의 답정너 방송 인터뷰와 비슷한 경우다. 언론의 자유는 뭐가 되려는지..

미국의 여론은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배신자라는 사람으로 확실히 나뉘었다.[9] 특히 미국은 테러로 인해서 "개인의 자유가 제일 중요하다" 와 "테러(등)를 막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감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스노든의 폭로는 어쨌든 간에 미국의 자국 보호라는 명분을 흐린 것이다. 반대로 그의 폭로는 대중들에게 미국 정부가 국민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경각심을 가지게 해 주었다. 이러니 찬반이 심하게 나뉘는 것.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9 02:46:54에 나무위키 에드워드 스노든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학업을 못 따라간 게 아니라, 그의 컴퓨터 능력을 봤을 때 본인 기준으로 시시해서 흥미를 잃었을 가능성이 높다.[2] 'De Oppresso Liber.' 그린베레의 모토이기도 하다.[3] 스노든 같은 특수정보요원의 경우 적국으로의 정보유출을 염려해 본인뿐만 아니라 부모 세대까지 철저한 신원 조사를 한다. 스노든은 완전히 미국 혈통 백인이었고 탄탄한 집안, 특히 외할아버지가 존경받는 해군 제독 출신이라는 점은 국방부와 정보기관 입장에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4] "NSA는 유형을 막론하고 수백만 명, 아니 수 억 명의 미국인들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합니까?" / "아니오. 수집하지 않습니다."[5] 훗날 스노든의 폭로 이후 클래퍼의 변명은 굉장히 궁색했는데 NSA도서관에 비유하며 "도서관에는 모든 책이 책장에 꼽혀 있지만 실제로 읽히는 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NSA가 안보를 지키고 시민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할 일은 도서관에 들어가서 실제 읽어야 할 책을 찾을 때 가능한 정확한 곳에 서있는 것이다"[6] 어째서 학력을 가짜로 적었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이런 회사들에 입사하는 건 그냥 명목상 취업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비밀요원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정보기관이 민간에 '꽂아놓아' 가짜 신분을 만드는 것이다. 아마 회사 내 다른 일반 직원들에게 고졸이라서 받을 주목을 피하려고 대충 적은 것으로 보인다.[7] 사상의 자유를 근본적인 부분에서 근절하려고 하는 목적[8] 이 때문에 스노든이 아직 폭로하지 않은 어떤 정보를 가지고 딜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기도 했다.[9] 보통 이런 경우는 각 개인의 정치 성향에 따라 찬반이 확실하게 나뉘어지는데 스노든의 경우는 상당히 특이하게도 정치 성향과 별도의 대립 그룹이 생겨났다. 일반적인 상식과 패턴으로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스노든을 같이 지지해야 하지만 오바마에 대한 스노든의 실망이 프리즘 폭로의 트리거가 되었고 오바마 행정부가 스노든을 버렸으며 특히 힐러리 클린턴은 스노든에 대해 상당히 적대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다 트럼프는 스노든 사면에 앞장서는 모습까지 보여 정치 진영 논리로 찬반을 나눌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