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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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존스의 수상 이력




에드워드 찰스 존스
Edward Charles Jones

출생
1971년 10월 20일 (52세)
플로리다주 폼파노비치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출신학교
템플 대학교
신장
198cm (6' 6")
체중
91kg (200 lbs)
윙스팬
205cm (6' 9")
포지션
슈팅 가드 / 스몰 포워드
드래프트
1994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0순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지명

소속 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94~1999)
샬럿 호네츠 (1999~2000)
마이애미 히트 (2000~2005)
멤피스 그리즐리스 (2005~2007)
마이애미 히트 (2007)
댈러스 매버릭스 (2007~2008)
등번호
25번 - 레이커스
6번 - 레이커스 / 샬럿 / 마이애미 / 멤피스 / 댈러스

1. 개요
2. 생애
2.1. 대학 시절
2.2. NBA 커리어



1. 개요[편집]


E.J.
미국의 전 농구선수. 슈팅 가드 이외에 스몰 포워드도 소화했으며, 디펜팀급 수비 실력과 공격에서도 돌파와 외곽슛으로 공헌한 공수겸장 스윙맨. 그러나 파이널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한 비운의 선수였다. 매직 존슨의 은퇴 이후 90년대 중반 닉 반 엑셀, 세드릭 세바요스, 엘든 캠벨, 블라디 디박 등과 함께 LA 레이커스의 재건에 앞장섰으며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2. 생애[편집]



2.1. 대학 시절[편집]


파일:템플 대학교 시절의 에디 존스.jpg
템플 대학교 시절 마지막 학년 때 평균 19.2득점을 기록하였고 NCAA 토너먼트 8강 진출에 기여하기도 했다.


2.2. NBA 커리어[편집]


전체 10순위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지명된 이후, 신인 시절부터 64경기 중 58경기를 주전으로 출전해 평균 14득점, 2스틸 등을 기록하였으며, 올스타전 루키 챌린지에 참가해 커리어 하이 25득점을 올리며 MVP 수상과 올-루키 퍼스트 팀에 발탁되었다.

다음 시즌인 1995-96 시즌, 1991년 HIV 감염으로 은퇴했다가 시즌 도중에 복귀한 매직 존슨과 함께 팀의 성적을 향상시켜 나가며 70경기 중 66경기를 주전으로 뛰며 평균 12.8득점, 3.3리바운드, 3.5어시스트, 1.8스틸을 기록하였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 17.3득점을 기록했다.

1996-97 시즌에는 줄리어스 어빙을 존경한다는 이유로 등번호를 6번[1]으로 바꾸었고, 괴물 센터 샤킬 오닐과 드래프트에서 샬럿 호네츠에 지명된 이후 블라디 디박과 맞트레이드로 입단한 고졸 신인 코비 브라이언트과 함께 득점원으로 활약해 서부 컨퍼런스 강호 팀의 입지를 되찾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80경기를 모두 선발로 출전하며 평균 17.2득점, 4.1리바운드, 3.4어시스트, 2.4스틸을 기록하였고, 생애 처음으로 NBA 올스타에 출전하며 17분을 소화해 10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1997-98 시즌에는 레이커스가 61승 2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우승도 충분히 노릴 수 있었지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유타 재즈에게 패하며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다. 하지만 다음 시즌 가파르게 성장한 코비 브라이언트와 포지션이 겹쳐져 버리면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서[2] 시즌 중반에 샬럿 호네츠로 이적하였다.[3]

샬럿에서의 2년차에 들어서 20.1득점, 4.8리바운드, 4.2어시스트, 2.7스틸로 기록하며 스틸왕을 수상하였고, 올스타 출전과 처음으로 올-NBA 서드 팀에 발탁되기도 했다.[4]

시즌 종료 후, FA를 얻은 에디 존스는 시카고 불스올랜도 매직으로부터 온 영입을 거절하고 9명의 선수가 포함된 초대형 트레이드 성사로 인해 자신의 가족들이 있는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하였다.[5] 하지만 시즌 개막 전 알론조 모닝의 신장병으로 무기한 결장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평균 17.4득점을 기록하는 등의 스코어러로 활약했다. 2001-02 시즌에는 모든 경기를 주전으로 뛰면서 평균 18.3득점을 기록하였고, 모닝의 1차 은퇴 이후인 2002-03 시즌에는 18.5득점을 기록하였으나 부상으로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자 결국 팻 라일리가 감독직을 그만두고 그 팀의 사장을 맡으면서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스탠 반 건디가 후임 감독으로 취임한 2003-04 시즌에는 개막 이후 7연패가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드웨인 웨이드와 함께 균형잡힌 공격으로 평균 17.3득점을 기록하며 정규 시즌 4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라마 오돔, 카론 버틀러, 브라이언 그랜트를 샤킬 오닐과 맞트레이드로 영입시킨 2004-05 시즌에는 드웨인 웨이드과 포지션이 중복되어 스몰 포워드로 전향하면서 결정적인 3점 슛 등으로 동부 컨퍼런스의 강호 팀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시즌 종료 뒤 보강에 착수한 히트는 5팀과 13명의 선수가 묶여진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하였으며 그 결과 에디 존스는 제임스 포지, 제이슨 윌리엄스와 맞교환되어 멤피스 그리즐리스로 이적하게 되었다.[6]

멤피스에서는 1년차 때 75경기를 주전으로 뛰며 평균 11.8득점, 1.7스틸을 기록하였고, 2년차 때 평균 두 자릿수를 기록하였다가 시즌 도중에 방출당한 뒤 미니멈 계약으로 친정팀 마이애미 히트에 복귀해 부상당한 샤킬 오닐과 드웨인 웨이드의 공백을 메우기도 했었다. 그 후 댈러스 매버릭스와 계약을 맺고 선수생활을 접었다.

두 번이나 우승 직전에 트레이드를 당한 불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1999년 단축시즌 중간에 레이커스에서 샬럿으로 트레이드를 당했는데 레이커스는 이듬해인 99-00시즌에 우승을 했고, 04-05시즌 종료 직후에 마이애미 히트에서 멤피스로 트레이드를 당했는데 마이애미 역시 그 다음해에 우승을 했다. 본인의 의지로 나간 거라면 억울할 것도 없겠지만 두 경우 모두 트레이드 요청도 없었는데 구단의 의지에 의해 트레이드되었고, 두 경우 모두 팀에서 주전가드였다. 실력이나 인성, 동료들과 상성이나 팀워크 면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포지션에 역대급 재능이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두 번이나 버림받은 선수.

공통점은 같은 포지션에 훗날 역대급 선수로 성장할 선수가 있어 그 자리를 비워주기 위해 팀에서 버림받았다는 것이다. 레이커스는 식스맨이었으나 타고난 재능이 워낙 뛰어난 코비 브라이언트를 위해 존스를 버리고 슈터 글렌 라이스를 데려왔고, 히트는 드웨인 웨이드를 주전 슈팅가드로 출전시키기 위해 존스를 스몰포워드로 옮겼으나, 체격이 갸냘픈 존스를 계속 3번으로 기용하기엔 한계가 있었기에 멤피스로 보내고, 존스보다 종합적인 실력은 떨어지지만 궂은일을 잘하는 마당쇠 스타일인 제임스 포지를 주전으로 세운 것.

사실 에디 존스는 성품도 무난했고 플레이스타일도 이기적인 스타일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어떤 에이스와 뛰어도 특급롤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지만, 포지션 소화범위가 좁았기 때문에 같은 포지션에 더 뛰어난 재능이 오자 공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에디 존스는 다소 갸냘픈 체격이었고 파워도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에 스몰포워드를 볼 수준은 되지 못했다.[7] 실제로 스몰포워드를 봤던 샬럿 트래이드 직전과, 웨이드와 함께 뛰었던 04-05시즌에 이전 시즌에 비해 생산성이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고 PG를 볼 능력은 없었으니 코비나 웨이드와는 공존이 불가능했었던 것. 또한 슈터보다는 슬래셔 타입이었고 캐치앤슈터보단 온볼플레이어에 가까웠기 때문에 볼소유시간이 긴 선수들과 궁합도 안 좋았다. 저 둘이 아닌 다른 포지션, 예를 들어 코비와 비슷한 연배이면서 볼소유가 그렇게까지 길진 않은 케빈 가넷이나 팀 던컨같은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면 조력자 역할을 훌륭히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1] 레이커스가 11월 20일에 게일 긋리치의 25번을 영구결번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었다.[2] 1997-98시즌 당시 레이커스의 주전가드라인은 닉 반 엑셀과 에디 존스였다. 그러나 전 시즌에 무섭게 실력이 성장한 코비 브라이언트를 주전으로 세우기 위해 레이커스는 스몰포워드 릭 폭스를 벤치로 내리고 브라이언트를 주전 스몰포워드로 올렸다. 그러나 코비와 존스 둘 다 체격이 갸냘픈 편이었고 온볼성향이 강한데다 슬래셔 타입이었기에 둘은 조합이 안 좋았다.(폭스는 키는 비슷하지만 체격이 단단하고 힘이 좋아 큰 선수들을 잘 막았고, 캐치앤 슛과 궂은 일을 잘하는 타입이었다) 생애 첫 주전이 되어 물만난 듯 자신있게 공격하는 코비와 달리 존스는 부진에 시달렸고, 결국 존스를 트래이드하고 샬럿의 슈팅력이 뛰어난 스몰포워드 글렌 라이스를 데려온 것.[3] 샬럿 호네츠 get: 에디 존스, 엘든 캠벨 ↔ LA 레이커스 get: 글렌 라이스, J.R. 리드, B.J. 암스트롱[4] 이때 올스타전에서 코비와 동서부 주전 슈팅가드로서 매치업을 하기도 했는데, 코비는 올NBA 세컨팀, 존스는 서드팀, 디펜스 팀에선 코비가 퍼스트팀, 존스가 세컨팀에 오름으로서 둘 다 리그 내 손꼽히는 슈팅가드로 자리잡은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이때가 최전성기였던 존스와 달리 7살이나 어린 코비는 이때 이후로도 쭉쭉 성장했다는 차이점은 있다.[5] 마이애미 히트 get: 에디 존스, 앤서니 메이슨, 리키 데이비스, 데일 엘리스 ↔ 샬럿 호네츠 get: 자말 매쉬번, P.J. 브라운, 오티스 소프, 로드니 뷰포드, 팀 제임스[6] 하지만 에디 존스가 떠난 히트는 다음 시즌 파이널에서 댈러스 매버릭스를 꺾고 창단 처음으로 우승을 하였다.[7] 같은 키였던 마이클 조던은 외곽선수들 중에서 파워 자체가 최상위권이었기 때문에 스몰포워드치곤 좀 작은 키였음에도 워싱턴 시절에 무난히 풀타임 3번을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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