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슈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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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래리 페이지
(1998~2001)


제2대
에릭 슈밋
(2001~2011)


제3대
래리 페이지
(2011~2015)


제4대
선다 피차이
(2015~ )



파일:구글 로고.svg CEO
에릭 슈밋
Eric Schmidt


파일:external/www.sitepronews.com/EricSchmidt008.jpg

본명
에릭 에머슨 슈밋
Eric Emerson Schmidt
출생
1955년 4월 27일 (68세)
미국 버지니아주 폴스처치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 [[키프로스|

키프로스
display: none; display: 키프로스"
행정구
]]
[1]
현직
슈미트 퓨처 (책임자 / 2017년~ )
SCSP (이사회 의장 / 2021년~ )
경력
썬마이크로시스템즈 (CTO)
노벨 (CEO / 1997~2001년)
구글 (CEO / 2001~2011년)
구글 (이사회 의장 / 2011~2015년)
알파벳 (이사회 의장 / 2015~2017년)
알파벳 (기술고문 / 2017~2020년)
학력
요크타운 고등학교 (졸업, 1968-72)
프린스턴 대학교 (B.S, 1972-76)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M.S, -1979)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Ph.D, -1982)
재산
202억 달러[2] (2023년 9월 / 포브스)
정당


배우자
웬디 보일 (1980년 결혼)
자녀
2명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
2. 생애
3. 논란



1. 개요[편집]


미국사업가. Google의 2대 CEO였다.


2. 생애[편집]


프린스턴 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대학교 UC 버클리에서 컴퓨터과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애플의 이사회와 프린스턴 대학교 이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구글과 애플의 사업 분야가 겹친다는 이유로 애플의 이사회에서 사퇴하였다.

슈밋은 제록스 PARC(Xerox Palo Alto Research Center)의 컴퓨터 과학 연구소, 벨 연구소, 질록 등을 거쳐 1983년 선마이크로시스템즈로 이직한다. 이곳에서 최고 기술 책임자로서 플랫폼에 구애받지 않는(OS에 관계없는) 프로그래밍 기술인 '자바'의 개발을 주도하게 된다. 이후 노벨 CEO로 활약하다 구글로 영입됐다.

슈밋 회장은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반 마이크로소프트(MS) 진영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인물이다. 선마이크로시스템즈 CTO 시절, 자바 개발에 관여했으며 이후에는 리눅스 업체인 노벨에서 대표를 맡았다. 구글 핵심 전략이 반 MS적이라는 점은 어쩌면 IT 역사를 다시 쓰는 차세대 혁명 기업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MS체제를 허물지 않고는 변화가 없다는 주장을 슈밋 회장은 수차례 언급했다.

에릭 슈밋이 구글에 합류한 시점은 2001년, 당시 노벨 CEO였던 슈밋은 벤처캐피탈 클라이너 퍼킨스의 존 도어의 강권에 못 이겨 CEO 인터뷰에 나섰지만, 구글에 합류할 생각이 크게 없었다. 닷컴버블이 꺼진데다 신생업체인 구글 역시 적자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을 바꾼 것은 구글의 젊은 창업자 래리 페이지세르게이 브린이었다. 그들의 발칙한 사고와 통찰력에 감탄한 그는 구글에 합류, 두 창업자와 성공 스토리를 써나간다. 슈밋 회장은 사업가 및 최고 기술 개발자로서 20여년의 풍부한 경험을 구글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의 노하우는 독특한 기업 문화를 바탕으로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는 구글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2006년 슈밋 회장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검색엔진 기업인 구글의 전략 개발을 담당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공학 학회원으로 선출됐다.

2013년 1월 부터 파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는데, 미국 기업인으로는 최초로 뉴멕시코주 전 주지사와 함께 북한을 방문 하였다. 방문 목적은 북한의 인터넷 이용실태 및, 확대를 위한 것이다.[3] 김정은과의 만남은 이뤄지지않았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하는 편으로, 덕분에 이후 구글 지도에서도 북한이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방북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입장을 밝혔는데, 북한의 주민통치와 그들의 주체사상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는지 "북한은 '가장 괴상한 곳'이며, 주민 통제 수준은 놀랍고 충격적이었다.고 솔직한 감상을 내놓았다.

2013년에 한 심포지엄에서 안드로이드iOS보다 보안상 안전하다고 발언했다가 참석한 관객들이 박장대소 하는 일이 있어서 기사화되기도 했다.

2016년,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로 화제를 모은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는 아이폰 6s를 사용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2017년 알파벳 이사회 의장 직책을 존 헤네시에게 넘겨준 뒤 사임했다.

2019년 6월 알파벳 이사회에서 사임했다.

2020년 알파벳 기술고문 직책을 사임하면서 공식적인 알파벳과의 관계가 끝났다.

2023년 6월, 무스타파 슐레이만리드 호프먼이 세운 Inflection AI에 투자했다. 이 기업은 창업 1년만에 무려 13억 달러 투자를 유치하며 40억 달러 기업가치를 인정 받았다고 한다.


3. 논란[편집]


  • 사용자들의 사생활에 대해 매우 심하게 위험한 생각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발언을 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발언했는데, 이 사고관이 구글의 위험한 행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누구도 모르게 하고 싶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아마도 처음부터 그런 걸 안 하는 게 좋을 겁니다.
If you have something that you don't want anyone to know, maybe you shouldn't be doing it in the first place.
이 발언은 상당한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데, 결국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모든 비밀은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비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잠재적으로 부도덕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바꿔 말하면, 네가 떳떳하다면 비밀로 해서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라는 망언이다. 개개인에게는 자유가 있는데 자기가 뭐라고 된 것마냥 남을 함부로 평가하는 위험하고 시건방지기 이를데 없는 발상이다.관련 기사 이런 발언을 한 사람이 북한의 정치적 환경에 대해서는 충격적이었다는 이중잣대적인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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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수국적이며, 2020년 11월에 투자이민으로 키프로스 국적을 취득하였다고한다. #[2] 알파벳 지분 0.05% 수준인 8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개인투자자 중에는 공동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에 이어서 세 번째로 지분이 많다.[3] 중국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구글이 공산주의 국가에서의 모험적인 사업을 시작할 거라는 의견들이 많다. 중국과의 견제를 이용하는 측면도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