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노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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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고고학, 역사고고학
언어인류학
응용인류학
의료인류학, 영상인류학
방법론
현지조사, 민족지연구, 골학, 계보학, 통계학, 인터뷰
1. 소개
2. 특징
2.1. 문화란 무엇인가: 중층기술법의 탄생
2.2. 자료수집과 정보제공자
2.3. 사회적 드라마
3. 파생 방법론
3.1. 자문화기술지
3.2. 인터넷 에스노그라피
3.3. 민속방법론
3.4. 에스노그라피 수용자 연구


1. 소개[편집]


Ethnography[2]

질적 연구방법의 하나로, 어떤 하나의 문화를 기준으로 묶일 수 있는 민족집단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이 경험하는 일상의 의미를 생생하게 해석하는 연구방법이다. 김영천(2013)의 문헌에 따르면,[3] "사회 집단과 공동체들의 일상적 세계들을 이해하고 기술하는 연구방법"(김영천, 2013; p.1)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질적연구의 가장 유서깊고 전통적인 논리이기 때문에, 해당 문헌에서도 1장에서부터 최우선적으로 에스노그라피를 소개했을 정도이다. 심지어는 때때로 질적연구가 곧 그 자체로 에스노그라피라는 식의 개념적 혼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연구방법의 개념적인 기준에 대하여 나미수(2005)는[4] 자료수집의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구의 목적이 '그 현지에 참여하는 생생한 경험' 을 통찰하고자 할 때 그것이 바로 에스노그라피라고 말했다. 하지만 질적 연구가 곧 그 자체로 에스노그라피가 되는 건 아니다. 예컨대 에스노그라피는 기호 분석이나 내용 분석, 담론 분석과 같은 텍스트 분석들과 대척점에 있다.

에스노그라피는 굉장히 다양한 이명(異名)들을 갖고 있어서 국내에서 번역상의 어려움이 있다. 에스노그라피는 문화기술지, 민속지학, 민족지학, 심지어는 아예 뭉뚱그려서 참여관찰법과 동의어로 쓰기도 한다. 이 중에서 문화기술지의 경우 그다지 좋지 않은 번역어인데, 왜냐하면 이미 지(誌)가 '기록하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앞의 '기술' 이라는 단어와 의미의 중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자 문화권 전반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한국에서 에스노그라피가 민속지(民俗誌)와 민족지(民族誌) 양쪽 모두 번역이 가능한 반면, 일본이나 중국 학계에서는 후자의 번역만이 가능하며, 특히 일본에서는 민속지와 민족지의 의미를 서로 달리하기 때문이라고... 영어권에서도 이름에 대한 논쟁이 존재하는데, 이 이름 때문에 인류학이 어떤 학문이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대한 오해만 유발된다는 것. #

아무튼 이처럼 복잡한 속사정이 있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이름을 붙이는 것은 어렵다. 일단은 나무위키의 본 문서 한정으로 '에스노그라피' 라고 음차하기로 하되, 접두어 'ethno-' 에 한해서만 '민속-' 으로 번역하기로 한다. 하단에 소개되겠지만 자문화기술지의 경우 자민속지학(?), 자민족지학(??) 같은 번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경우에는 그대로 자문화기술지로 번역하겠다.

분류상으로 보더라도 에스노그라피는 인류학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특히 인류학적 전통에 강하게 의지하는 연구자들은 에스노그라피의 핵심이 현지 문화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강변하며, 과거에는 부족사회를 주로 탐구했지만 현대에는 그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으로부터 연구주제를 찾는 편이고, 심지어는 '위를 향한 인류학' 이라 하여 인간사회 권력의 중심부를 또 다른 '현지' 로 이해하여 에스노그라피를 진행할 것을 독려하고 있는 추세이다. 사실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항상 '미개인', '오지', '비문명' 에만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편견 및 고정관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김영천(2013)의 문헌에 따르면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에스노그라피의 연구 철학을 빌려서 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국제관계학, 국제개발, 의료, 관광, 마케팅, 교육학, 노인 연구, 식품영양학 등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고. 따로 언급은 없으나 여성학 역시 1970년대부터 '페미니스트 에스노그라피' 같은 별도의 흐름을 만들 정도로 에스노그라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단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커뮤니케이션학 역시 수용자 연구(audience research)에 있어 에스노그라피를 접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한편 국내에는 미번역된 톰 뵐스토르프(T. Boellstorff)의 문헌에 따르면[5] 사회학 역시 에스노그라피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경우 시카고 학파의 로버트 파크(R.E.Park)와 어니스트 버기스(E.W.Burgess) 등이 주축이 되었다고 하니 참고.

뵐스토르프는 자신의 책에서 에스노그라피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에스노그라피에 대한 원시적인 관심은 '우리와는 다른 문화를 가진 그 사람들' 에 대해 인식하면서 출발했다. 이렇게 본다면 에스노그라피는 이미 호머의 《오딧세이》 와 헤로도투스의 《역사》 에서부터 예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저서들은 사실 자문화중심주의의 기원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점에서 보면 결국 인류는 '다른 문화' 에 대해서 처음부터 관용적이지는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후 에스노그라피 용어 자체는 1767년에 독일 낭만주의를 논하던 요한 쇠페를린(J.F.Schoepperlin)의 글에서 처음 나타났고, 학술적 의미로 활용된 것은 계몽주의 시대에 "지식을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에 대해 실증적으로 기술해야 한다던 백과전서파(Encyclopédie)에게 반대하던 사람들을 지칭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연구방법론으로서의 본격적인 시작은 역시나 식민주의 시대부터이다. 오세아니아를 중심으로 서구 선교사들과 탐험가들이 활동하면서 현지인과 현지 문화에 대해 다양한 글을 남겼는데, 이 당시에 태동하던 초기 인류학자들은 이런 문헌만 가지고 현지 문화에 대해 평가하는 바람에 소위 "안락의자 학자들"(armchair scholars), 즉 필드워크는 한 번도 하지 않으면서 방구석에서 만 푸는 주제에 지들이 학문이라고 주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무튼 이처럼 방법론적인 한계를 드러내긴 했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프랭크 쿠싱(F.H.Cushing), 제임스 프레이저(J.G.Frazer) 등이 남긴 《황금가지》 같은 문헌들은 당대 지성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다가 비로소 제대로 체계화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B.Malinowski)의 파푸아뉴기니 연구이다. 말리노프스키는 호주에 살고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성국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트로브리안드 섬으로 사실상의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오랫동안 그 섬에서 현지 주민들을 참여관찰하게 되었다. 이것이 모태가 되어 현지에서 직접 참여관찰하는 인류학적 방법론으로서의 에스노그라피가 성립된 것이다. 일종의 전화위복(?). 뵐스토르프는 이를 두고 현장 활동가(fieldworker)와 이론가(theorist)의 두 역할이 문화기술자(ethnographer)로 비로소 통합되었다고 평가한다. 그 이후에는 하단에 다시 소개하겠지만 "문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에 대해서 클리포드 기어츠(C.Geertz)가 나타나서 큰 방법론적 공헌을 했으며, 현대의 에스노그라피 연구자들은 좋든 싫든 기어츠의 해석인류학적 관점에 영향을 받고 있다.

이렇다 보니 에스노그라피는 항상 연구윤리의 문제가 굉장히 강조되는 질적 연구방법이기도 하다. 질적 연구에서 연구윤리에 관련된 중요한 이슈들 중 상당수는 전부 초기 인류학자들과 에스노그라피의 시행착오로부터 나타났다(…). 김영찬(2015)은[6] 이에 대해서 문화적 민감성(cultural sensibility)이라고 부른다. 연구자는 연구대상과 그 문화를 존중하는가? 연구자는 그 문화에 충분히 동화되었는가, 아니면 거리를 두고 방관하고 있는가? 옛날 말리노프스키가 그랬듯이, 연구의 대상이 되는 집단에 대해 연구노트에 악담을 쏟아놓는 등의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는가? 내가 이들을 왜 연구하는지에 대해 성찰하고 있는가? 연구 결과가 특정 세력에 의해 악용될 위험은 없는가? 연구대상자와 참여하던 중에 그가 범죄를 저지르는 걸 목격하면 계속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막아설 것인가? 이를 요약하자면, 흔히 말하는 "저놈들 정말 연구대상이야"(…) 같은 관용적 표현들은 거꾸로 에스노그라피에서 극혐하는 연구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연구대상을 존중하는 기본 자세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에스노그라피가 굉장히 체계화되고 엄격한 학문적 가이드라인과 규율을 형성했기 때문에, 뵐스토르프가 소개하는 고전적인 류의 비판들, 즉 "비과학적이고 주관적이다, 단지 경험이나 일화일 뿐이다" 같은 비판들은 거의 극복한 상태이다. 뵐스토르프의 반론을 요약하자면, 에스노그라피는 갈수록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막대하게 수집하고, 그 분석과 해석을 엄격하게(rigorously) 적용하며, 장기간에 걸친 참여를 점점 더 많이 강조하고, 해석 결과의 타당화를 위해서 (즉 주관성이 결과 해석에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에는 소위 계산적 에스노그라피(computational ethnography)라고 하여 에스노그라피의 연구투명성재현성을 제고하기 위해 질적 분석 소프트웨어(CAQDAS), 사회 네트워크 분석(SNA), 빅 데이터, 텍스트 마이닝 등을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7] 여기서는 민족배열(ethnoarray)이라고 이름붙은 자료 시각화 방식을 제안하는데, 이는 어떤 주제나 개념별로 2차원에서 시각화를 시도하는 히트맵(heatmap)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이와 같은 "여러분도 데이터과학 츄라이 츄라이"(…) 움직임이 어디까지 수용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지만, 중요한 것은 질적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연구결과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꾸준히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 외에 에스노그라피에 대해 존재하는 해묵은 편견 중 하나로 "외로운 문화기술자"(lone ethnographer)라는 것이 있다. 질적연구 이론가인 노먼 덴진(N.K.Denzin)과 이본나 링컨(Y.S.Lincoln)에 따르면,[8] 이는 현지 문화권에서 함께 생활하는 에스노그라피 연구자가 대개 한 명에 지나지 않던 전통적 에스노그라피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김영찬(2015)은 현대에는 어디나 협업이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 자신의 연구를 혼자 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이 맥락에서 그는 내향적인 성격의 연구자일지라도 사교적인 사람과 협업한다면 얼마든지 에스노그라피를 수행할 수 있다고 격려하며, 사교적인 쪽이 필드워크를 맡고, 내향적인 쪽이 문헌검토를 맡으면 된다고 하였다.

에스노그라피에도 방법론적 한계는 당연히 존재한다. 가장 흔히 지적되는 것은 에스노그라피가 '지금 여기' 의 문화를 분석하는 데에는 좋지만 과거 역사 속에 있었던 문화나 사건에 대해서는 분석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국가적인 수준의 대규모 문화연구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9] 하지만 김영찬(2015)이 반론하듯이, 에스노그라피 속에 포함되는 면접법이 그에 대한 부분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면접의 진행을 구술사연구 내지 생애사연구의 방법론적 논리로 보완한다면, 과거 사건에 대해서도 에스노그라피를 통해 담아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2. 특징[편집]



2.1. 문화란 무엇인가: 중층기술법의 탄생[편집]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사실 이에 대한 답은 명확하지 않다. 문화인류학자들 본인부터가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을 대략 두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는 있다. 김영천(2013)은 양쪽을 각각 '총체적 접근' 과 '해석적 접근' 이라고 말했는데, 시기상 총체적 접근은 상당히 초창기의 관점이라면, 해석적 접근은 그것을 비판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총체적 접근
이 관점에서는 문화를 집단 내에서 공유된 삶의 방식 및 사고방식의 총체로 정의한다. 한 집단이 공유하면서 대대로 전수하는 인식과 라이프스타일이 바로 문화라는 것이다. 이 관점은 문화 그 자체에만 관심이 있으며, 문화가 인간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상정한다. 즉, 문화적 현상에 초점을 맞출 뿐, 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주요 연구자로는 프란츠 보아스(F.Boas), 루스 베네딕트(R.Benedict), 마거릿 미드(M.Mead), 마빈 해리스(M.Harris) 등이 꼽힌다고 한다.

  • 해석적 접근
이 관점에서는 문화를 집단 내에서 공유된 상징과 의미의 해석 체계로 정의한다. 즉, 무엇이 각 사람들에게 이해되고, 의미가 부여되고, 해석되는 과정이 바로 문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관점은 문화만큼이나 그 문화를 실천하는 인간에게도 관심이 있으며, 인간 없이 진공 속에서 홀로 존재하는 문화는 없다고 상정한다. 즉, 그 문화 속에서 문화를 누리고 표현하는 개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주요 연구자로는 위에서 소개했던 클리포드 기어츠, 빅터 터너(V.Turner), 메리 더글러스(M.Douglas) 등이 꼽힌다고 한다. 특히 기어츠는 문화와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막스 베버에게서 빌려온 거미거미줄의 비유를 드는데, 문화가 거미줄이라고 한다면, 인간은 바로 그 거미줄을 뿜어냈으되 그 속에서 살아가는 거미와 같다고 하였다.

여기서 에스노그라피는 총체적 접근보다는 해석적 접근을 취하여 문화를 분석한다. 에스노그라피는 문화가 다양한 의미들을 내포한 상징적 행위이며, 인간은 그 다양한 의미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규정해야만 하고, 바로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의미망(web of meaning)인데, 이 의미망을 문화가 함께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즉, 문화는 어떤 행위를 표현하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행위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의미망도 함께 공유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해독 코드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암호문을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기어츠는 윙크가 갖는 상징적 행위들을 생각해 보라고 제안한다. 윙크는 상대방의 흉내일 수도 있고, 단순히 운동일 수도 있고,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도발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그 조롱을 연습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윙크는 그 자체로 진공 속에서 '한쪽 눈 근육의 경련'(…)으로서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윙크가 있다면, 반드시 그걸 해석할 의미망을 갖춘 인간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 의미망을 공유하지 않는, 외부의 다른 문화권에서 온 연구자가 보기에는 상당히 문제거리다. 해독 코드가 없는데 어떻게 암호문을 해독한단 말인가? 윙크가 존재하지 않는 문화에서 온 사람이 있다면, 윙크를 보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연구자가 그냥 보이는 대로 이것저것 끄적여 놓은 서술만을 보았을 때, 우리가 그 문화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했다' 고 말할 수 있을까? 바로 이런 문제점에 머리를 쥐어뜯었던 인물이 바로 클리포드 기어츠였고, 이 문제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 책이 바로 저 유명한 《문화의 해석》(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이다. 이 책 15장에 나오는 에세이 "Deep Play: Notes on the Balinese Cockfight" 에는 발리 사람들이 즐기는 닭싸움이 해석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기어츠는 위에서 제기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층기술법(thick description) 또는 "두꺼운 기술", "풍부한 기술" 이라 불리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중층기술법은 낯선 문화를 현지인처럼 이해할 수 없는 처지인 연구자들이, 최대한 현지인의 의미망을 갖추고 복합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방법론적인 시도이다. 이 용어는 본래 길버트 라일(G.Ryle)이 처음 만들었다고 하지만, 기어츠가 방법론적인 개념화를 완성하자 그 이후의 문화 연구는 중층기술법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김영찬(2015)은 중층기술법이 텍스트, 역사적 서사, 1인칭 서술, 스틸사진, 생애사 등의 각종 자료들을 전방위적으로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는 너네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 해석방식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어"(…)에 가깝다. 즉 단순히 '양적으로 많은' 기술을 해서가 아니라, 그 기술 속에 인간 행위를 복합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해독 코드, 즉 의미망이 담겨 있기 때문에 중층기술인 것이다. 윙크를 묘사하면서 그것이 갖는 흉내의 의미, 조롱의 의미, 연습의 의미, 운동의 의미까지 적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자들이 내부자 관점(emic perspective)을 취하여 문화에 접근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기어츠는 연구자가 그 문화의 행위자를 지향하는 관점을 취하여, 행위자의 느낌과 사고, 관심, 인식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구자들은 어떤 행위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할 것이 아니라 그 현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천(2013)은 이를 에스노그라피의 3가지 특징 중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물론 항상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에 김영찬(2015)은 연구자의 성찰성(reflexivity)의 주요 기준이 된다고 하였다. 즉 연구대상의 문화를 배워서 그들과 같은 시각으로 연구문제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에스노그라피 이론가인 제임스 스프래들리(J.P.Spradley)가 자신의 저서에서 정리한 내용을 언급할 만하다.[10] 가장 표준적인 문화기술지는 외부자 관점과 내부자 관점이 그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 50:50 비율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초기의 선교사들이나 탐험가들, 안락의자 학자들이 철저히 외부자 관점에만 의존하는 자문화중심주의를 드러냈다는 데 있었다. 이때의 문헌들은 현지인들의 행동거지를 그 사람들의 의미망으로 파악하려 하지 않고 그저 유럽인의 시각에서 '게으르다', '더럽다', '무식하다', '원시적이다', '이상하다', '무지하다' 같은 식으로 비난했던 것이다. 스프래들리는 내부자 관점을 확보하기 위하여 현지인의 언어를 수단으로 활용할 것을 권고한다. 즉, 먼저 현지인의 언어로 에스노그라피를 한 차례 작성한 다음, 그 언어의 의미가 명확히 파악됐다고 생각하면 그때 영어나 연구자 자신의 모국어로 한번 더 번역해서 발표하라는 것이다.


2.2. 자료수집과 정보제공자[편집]


"우리가 민속지학이라고 부르는 질적 연구 방법은 참여관찰과 한 몸이며, 참여관찰은 또 심층 인터뷰와 한 몸이기에, 이 셋은 정확한 경계 구분 없이 서로가 서로를 함축하며 맞물려 돌아간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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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찬(2015), p.60


"...이것이 문화기술학의 본질이다. 사람들에 대하여 자료를 수집하는 대신에 문화기술학자는 그들이 가르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중략) ...다른 삶의 방법의 숨은 원리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연구자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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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radley(1979), p.4


에스노그라피에 있어서 자료의 수집은 크게 두 가지, 즉 참여관찰법심층면접법(IDI; in-depth interview)로 대표될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심지어 김영찬(2015)에 따르면 "질적연구 또는 민속지학의 원투펀치"(p.59)라고까지 표현될 정도로 중요하다. 참여관찰법이 인류학의 필드워크 개념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연구방법론의 터줏대감이라면, 심층면접법은 구술사연구 내지 생애사연구와 조합하여 참여관찰법만으로는 알 수 없는 측면을 보완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대니 요르겐센(D.L.Jorgensen)은 자신의 문헌에서[11] 참여관찰법의 7가지 특징을 정리하기도 했는데, 이는 각각 내부자 관점, 지금 여기의 연구주제, 이론화, 열린 마음, 사례위주 접근, 라포(rapport)의 형성, 그리고 다양한 자료의 수집이다. 요컨대 연구자는 연구현장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몰입하며, 최대한 방대한 자료수집을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것.

스프래들리는 한때 현지인(native)이라고만 불렸던 사람들, 즉 정보제공자(informant)들에 대해 논의한다. 정보제공자들이란 연구자가 필요로 하는 자료를 제공하는 평범한 지식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로, 사실상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좋은 질문이 주어진다면) 정보제공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는 다른 학문분야에서 언급되곤 하는 피험자(subject)나 응답자(respondent), 행위자(actor)와는 다르다. 에스노그라피에서 연구자는 상대방의 '문화' 를 이해하는 데 관심이 있고, 정보제공자는 문화에 대한 관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행위로 그 문화를 '표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분야에서 연구자와 연구참가자 간에 존재하는 관계와는 사뭇 다른 점이다. 뵐스토르프는 협업자(collaborator)라는 개념도 소개하지만, 에스노그라피 연구에서 흔히 상정되는 정보제공자의 역할보다는 더 좁은 개념이라고 하였다. 협업자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협동하지만, 모든 에스노그라피의 정보제공자가 연구자와 동일한 목표를 공유하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에스노그라피에서 연구자와 정보제공자는 반드시 신뢰를 형성해야 하는 관계에 있다. 인류학적 부족사회의 경우 선교사, 무역업자, 관료로 오해받을 수 있으며, 치료소나 복지센터 등에서는 경찰, FBI(…) 등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남들은 궁금하지도 않는 사소한 것까지 꼬치꼬치 캐묻게 되기 때문에, 그런 특수한 시설에서는 무슨 수사라도 진행 중인가 하고 오해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꼭 그런 극단적인 환경이 아니더라도, 연구자가 그들의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깨닫기 전까지, 정보제공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프래들리는 종종 에스노그라피를 배우는 학부생들이나 대학원생들이 쉬운 길을 찾다가 도리어 곤경에 빠지는 일이 많다고 말한다. 정보제공자가 연구자와 기존에 안면이 있다면 쉬울 것 같지만 도리어 더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은 오히려 낯선 관계의 정보제공자가 더 가치 있는 정보들을 많이 제공한다는 사실을 놓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미 안면이 있거나 친밀한 정보제공자는 기존의 관계와 연구 중의 관계에서 혼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예를 들어, 미국인 대학원생 '제임스' 가 미식축구 팬덤에 대한 에스노그라피를 준비할 때, 그의 룸메이트 '피터' 로서는 팬덤 문화에 대해 답변하기 난감할 수 있다. 오히려 일본에서 유학 온 중년의 대학원생 '스즈키' 씨가 미식축구가 뭐냐는 질문을 할 때에야, '피터' 는 비로소 가치 있는 정보들을 내놓기 시작한다는 것.


2.3. 사회적 드라마[편집]


에스노그라피에 대한 설명 중에, 김영천(2013)은 함께 공부할 만한 내용으로서 빅터 터너가 주창했던[12] 사회적 드라마(social drama) 개념도 함께 소개한다. 이것은 어떤 문화집단에 존재하는 의례(ritual)의 동적인 과정을 강조하기 위하여 창안된 개념이다. 터너에 따르면, 의례는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는 사회적 드라마인데,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하여 어디서나 인류는 갈등이 존재할 때 드라마적으로 대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드라마적' 이라는 이야기는, 하나의 서사구조를 갖춘 이야기에 가까우며, 그 시작과 끝이 있다는 얘기다. 터너는 모든 종류의 사회적 갈등들이 위반(breach) → 위기(crisis) → 교정(redression) → 재통합(reintegration) 또는 분리(separation)의 기승전결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천(2013)은 여기서 조금 더 깊게 들어가서, 임계성(liminality) 혹은 음차하여 리미널리티, 그리고 공동체성(communitas) 혹은 음차하여 코뮤니타스의 두 개념을 소개한다. 위의 갈등이 전개되는 동적인 도식을 보면, '위기' 가 '교정' 되는 드라마적 단계에서 굉장히 특이한 국면이 발생한다고 한다. 터너에 따르면, 이 국면에서는 일체의 질서와 계급, 지위가 사라지고 사회구조가 느슨해지게 되는데, 이때 사람들이 보여주는 두 가지의 특이한 상호작용의 패턴이 바로 임계성과 공동체성이다.

먼저 임계성이란, 심각한 갈등을 겪음으로 인하여 그 사회가 일상에서 벗어나 이도저도 아니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 통상 사람들은 사회구조적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지만, 이때만큼은 그런 구조적인 압력을 느끼지 않고, (굳이 표현하자면) 일종의 문화적인 무질서 혹은 무정부 상태를 경험한다. 이는 인간의 삶에서 통과의례가 갖는 성격과 비슷하다고도 비유할 수 있다. 많은 문화권에서는 이런 모호하고 불확실한 임계성의 상태를 묘사하는 표현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전환기" 이다. 흔히 말하는 '한반도의 전환기', '역사적 전환기' 같은 표현들을 떠올려 볼 수 있겠다.

다음으로 공동체성이란, 바로 이 임계성의 국면에 처한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이 맺는 인간관계를 의미한다. 통상 사람들은 기존의 사회구조적 영향으로 인하여 각자의 지위나 계급, 신분, 속성을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단서들을 갖고서 교류한다. 그 사회의 구조가 견고하고 확고할수록, 개인 간의 위계적 관계를 암시하는 표지(marker)가 많다. 당장 인류학적 부족사회조차 높으신 분들은 특별한 장신구를 달거나 깃털을 두르거나 몸에 특수한 색칠을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전환기' 를 지나가는 사회에서는 이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사람들의 지위고하 여부로 해석될 수 있는 단서들이 전부 의미가 없어졌으니, 모든 사람들은 이제 완전한 평등의 상태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서로의 정체는 애매해지고, 익명성이 발생하며, 위아래를 위치짓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3. 파생 방법론[편집]


워낙에 역사 깊고 전통적인 질적 연구방법이다 보니, 에스노그라피는 매우 다양한 파생형을 낳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분파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파생된 방법론들은 저마다 '그런 특수한 방법론이 꼭 필요한가?', '원조 에스노그라피의 하위호환은 아닌가?', '쉽게 연구하려는 건 아닌가?', '원조 에스노그라피와 대체 뭐가 다르다는 것인가?' 와 같은 학계의 파상공세를 마주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와 같은 비판에 맞서서 방법론적 정당화가 나름대로 시도되고 있는 몇몇 아종들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3.1. 자문화기술지[편집]


Auto-Ethnography

자문화기술지는 자료수집에 있어서 연구자 본인이 느낀 생각과 경험을 활용하는 에스노그라피이다. 박순용 등(2010)에 따르면[13] 자문화기술지를 통해 연구자는 자기(self)의 경험과 사회구조적 맥락을 연결시키고 문화적인 성찰을 도모할 수 있다. 김영천(2013)은 문화에 대한 관점은 원조 에스노그라피와 같지만 자아를 노출시켜서 그 문화로 자아를 이해하고, 결과적으로 문화와 연구자 사이의 경계를 희석시킨다고 하였다.

김영천(2013)은 자문화기술지라는 개념이 1975년의 카를 하이더(K.Heider)로부터 기원한다는 설, 1979년의 데이비드 하야노(D.Hayano)로부터 기원한다는 설의 두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더불어, 김영천(2013)은 자문화기술지의 철학적 전제 4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주관성은 개인이 외부의 세계 및 사회와 소통한 산물이다. 둘째, 연구자는 개인의 삶의 경험을 연구대상으로 삼아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를 논의할 수 있다. 이에 아주 잘 맞는 연구주제가 바로 연구자가 경험했던 거식증 같은 경우다. 셋째, 자문화기술지는 개인의 삶을 검토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변화의 동력을 이끌 수 있다. 넷째, 연구자는 객관적이고자 하지 않으며, 연구대상이 되는 세계와 타자에 자아를 포함시킨다.

드보라 리드-대나헤이(D.Reed-Danahay)의 문헌에 따르면[14] 자문화기술지에는 세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 현지/소수자(native/minority) 유형
이는 연구자 본인이 사회적 소수자에 속해 있을 때 자신이 속한 문화권에 대해 에스노그라피를 진행하는 경우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어떤 연구자가 북미 원주민 출신일 때, 미국인들의 인종차별적인 문화에 대해서 자신이 차별을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하는 것이 있다.
  • 성찰적(reflective) 유형
이는 연구자가 다른 문화권에서 필드워크를 진행하기는 하되, 그 연구 동안에 자기 자신이 느끼고 생각했던 바를 연구주제로 삼는 것이다. 즉, 연구자 개인의 자기반성적인 측면이 강하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연구자가 현지 생활을 하는 동안에 원주민들과 교류하는 데에 있어서 뜻밖의 어려움이나 난감했던 점을 진술하는 것이 있다. 이는 본인에게도 자기성찰의 계기가 되지만, 유사한 연구를 준비중인 동료 연구자들에게도 좋은 학문적 참고가 될 수 있다.
  • 자서전적(autobiographic) 유형
일반적으로 자문화기술지라고 하면 이 유형이 가장 흔하다. 이는 연구자 자신만이 갖고 있는 개인적인 삶의 경험을 거시세계의 문화적 맥락과 연결하여 논의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거식증이 대표적인 연구 주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예를 들면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등을 들 수 있다. 즉, 연구자가 과거 그런 경험을 겪은 적이 있었다면, 자신의 경험을 되새기면서 그것을 가부장제와 연결하여 연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문화기술지는 자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몇 가지 자료수집에 있어서의 특수성이 존재하게 된다. 박순용 등(2010)에 따르면, 자신의 기억을 회상(recall)함으로써 자료가 수집된다는 것, 연구노트다이어리 등이 모두 또 다른 자료가 된다는 것, 자신이 타인과 함께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끊임없이 관찰해야 한다는 것 등이 특수한 점이다. 자문화기술지의 경우 면접법 역시 약간 달라진다. 이때의 면접대상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가까운 사람들이 되며, 면접내용은 연구자 본인을 주제로 하게 된다. 즉, 형제 자매나 절친, 애인 등을 대상으로 해서 연구자 자신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자문화기술지는 자칫 '꼼수 에스노그라피' 처럼 수행될 위험이 있다. 낯선 현지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요, 낯선 사람을 어렵사리 섭외하여 질문하는 것도 아니요, 그저 가만히 책상머리에 앉아서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만 해도 그게 연구가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연구를 빙자하여 절친들을 모아서 부어라 마셔라(…) 하며 놀게 될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지적을 학자들이 안 했던 것이 아니다. 뵐스토르프 또한 자문화기술지가 비체계적이고 엄격하지 못한 연구방법론에 대한 정당화 및 핑계로 사용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all too often)고 자신의 저서 44페이지에서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원조 에스노그라피에 비해 자문화기술지는 학계 동료들의 의심스러운 시선들을 받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문화기술지가 넘어야 할 산은 그뿐만이 아니다. 흔히 가해지는 다른 비판으로는 자기노출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자문화기술지를 수행하려는 연구자는 뜻밖의 난관에 부딪히는데, 학계 동료들에게 자신의 사생활과 솔직한 심경, 내면의 고민들을 가감없이 털어놓아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래서 박순용 등(2010)은 "한국의 전통적, 민족적 특성을 고려할 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자기 개방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는 자문화기술지를 연구의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p.73)이라고 말한다. 연구결과를 심사하고 읽어야 할 동료 학자들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김영천(2013)은 자기노출에 대해 세 가지 정도의 비판을 제기한다. 연구에 대한 공적인 비판이 마치 연구자 개인의 생각과 느낌에 대한 사적인 인신공격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 연구자가 미성숙하고 어른스럽지 못한 이미지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 연구자의 경험에 대한 해석을 관철시키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데 님들이 뭘 안다고 시비임?" 김영찬(2015) 역시 자문화기술지가 나르시시즘적인 방법론이라고 비판했다.

원조 에스노그라피의 아종인 만큼, 이것이 에스노그라피보다 좋은 점이 있는지,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등의 방법론적 경계짓기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김영천(2013)은 유사 방법론들과의 차이점을 정리한다. 에스노그라피와 비교할 때, 에스노그라피는 어떤 낯선 집단이나 문화를 주제로 삼아 연구함으로써, 자신이 친숙하게 느끼던 것을 낯설게 보는 활동이다. 하지만 자문화기술지는 이미 연구자에게 친숙하고 친밀한 삶의 경험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그 친숙함을 유지하면서 통찰을 얻는다. 다음으로 생애사연구와 비교하자면, 그쪽은 1인칭 주인공 시점 또는 3인칭 주인공 시점을 따르는 반면, 자문화기술지는 1인칭 주인공 시점 또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을 따른다는 차이가 있다. 마지막으로 전기연구와 비교할 경우, 전기연구는 연구대상의 역사적 일대기를 3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술하기 때문에 역시 시점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 외에도 박순용 등(2010)은 자문화기술지의 장점과 단점을 정리하고 있다. 먼저 방법론적 장점으로서, 시간과 장소와 금전에 구애받지 않으며 거의 모든 자료에 접근 및 수집이 가능하다는 점, 연구윤리에 구애받지 않고 각종 심도있는 자료를 손쉽게 획득할 수 있다는 점, 연구자 자신에게 좋은 깨달음의 계기가 되고 독자들도 함께 성찰의 기회를 갖는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방법론적 단점들도 존재한다. 자기 이야기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쉽다는 것은 곧 그런 자료들만 넘쳐나게 만들어서 자료의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그것을 사회적 맥락에 연결하는 노력 또한 약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연구윤리에서 자유롭다고는 해도, 자기 이야기에 섞여드는 타인의 개인적 이야기들은 엄연히 연구윤리의 심사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3.2. 인터넷 에스노그라피[편집]


Internet Ethnography

인터넷 에스노그라피는 인터넷과 같은 온라인 환경을 대상으로 하여 에스노그라피를 수행하는 질적 연구이다. 조영한(2015)은 353페이지에서 "다양한 질적 연구 방법을 활용하여 인터넷 공간 속의 문화 실천 양식에 대한 두꺼운 묘사, 상호주관적 이해, 그리고 상황적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 이라고 에스노그라피를 정의하였다. 다른 이름으로는 사이버 에스노그라피(cyber-ethnography), 가상 에스노그라피(virtual ethnography), 네트노그라피(netnography) 등이 있다.

연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당초 이 연구는 (당연하게도) 온라인 환경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하고 난 이후에야 시작되었지만, 의외로 뵐스토르프는 마이클 로젠버그(M.S.Rosenberg)의 1992년 문헌 《Virtual Reality》 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였다. 이 문헌은 WolfMOO라는 사이트를 주제로 실시한 에스노그라피인데, 이 사이트는 '과장 없는 1인칭 여행 가이드' 를 표방하는 여행 전문 사이트로서 현대에는 폐쇄된 상태이다. 그러다가 크리스틴 하인(C.Hine)이 2000년에 방법론으로서의 첫 시작을 알렸으며,[15] 그 이후 인터넷 공간 역시 비로소 하나의 확립된 에스노그라피 연구분야가 되었다. 국내의 경우 2007년MLB파크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조영한(2012)[16]이 처음으로 인터넷 에스노그라피를 수입해 온 것이 연구의 출발이다.

오영범과 김영천(2013)에 따르면[17] 인터넷 에스노그라피는 몇 종류의 고유한 방법론적 특징들을 갖는다. 첫째, 참여관찰의 신뢰성에 우선순위가 존재한다. 즉 면접법을 병행한 결과 연구자가 인터넷 활동에 참여했던 경험과 상충되는 증언이 나올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지 어려울 수 있다. 둘째, 인터넷 자체의 특수성이 있다. 즉 덧글이 수정되거나 삭제될 수도 있고, 이용자층이 변화할 수도 있으며, 이 이용자가 과거의 그 이용자인지 알기 어렵고, 뜻밖의 사건사고가 터질 수도 있다. 셋째, 비언어적 요소가 부족하다. 많은 인터넷 환경은 텍스트 소통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중층기술법을 적용할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 예컨대 Hine(2000)의 경우 웹 디자인까지 전부 묘사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더불어 조영한(2012)은 또 다른 특징으로 상황적이고 유동적인 연구 진행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인터넷 속의 세계를 현실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영한(2015)은[18] 연구대상과 연구시점을 정할 때 유의할 점들을 설명한다. 대개 연구대상은 연구자에게 이미 친숙한 인터넷 사이트를 대상으로 하는데, 이 경우 친숙한 공간의 연구객체화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물론, 연구자에게 낯선 사이트를 활용할 수도 있다. 예컨대 어떤 페미니스트 연구자가 일베저장소를 대상으로 에스노그라피를 활용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또 인터넷 에스노그라피는 현재의 사건뿐만 아니라 과거의 사건까지도 전부 연구의 시점에 포함할 수 있는데, 조영한(2012; 2015)에 따르면 이것은 원조 에스노그라피보다 우월한 점이 되기도 하지만, 이를 위해 "과거의 사건은 현재에도 작용하는 문화적 행위" 라는 새로운 철학적 전제가 요구된다고 하였다.

조영한(2012; 2015)은 인터넷 에스노그라피의 연구설계 과정들어가기 → 참여하기 → 기록하기 → 나가기의 4단계로 설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구대상 사이트가 낯선 곳일수록 선행이용 연습기간을 늘려서 미리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참여기간은 유동적이지만 가능한 한 오래, 되도록이면 오프모임, 정모, 번개 등에도 함께 참여하라는 것, 조회수와 덧글수는 참고만 하되 해석상의 가치는 부여하지 말라는 것, 인터넷 에스노그라피는 연구종료 이후에도 계속 '현지' 에 접속할 수 있기에, 연구가 끝나면 인위적으로 연구대상과 자신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 등이 있다.

유의할 점으로서, 조영한(2015)은 어쨌든 참여관찰법을 따르기 때문에 인터넷 에스노그라피에서도 '현지인' 들에게 연구의 진행을 알리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때 연구자가 자신의 신분과 목적을 공개하는 글을 쓸 때에는 사람들이 그 글을 확실히 읽었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연구윤리 상 문제가 없으며, 따라서 어느 정도 유명세를 얻은 후에 자기공개를 하라고 조언하였다. 또한 연구윤리에 관련하여 모든 연구노트의 기록사항에는 URL 주소를 함께 첨부해야 한다고도 하였다. 더불어, 논문으로 연구결과를 보고할 때에는 '참여' 와 '관찰' 의 정의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도 하였다. 즉, "참여했다" 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게시물을 조회하는 것인가? 모든 채팅에 참여하는 것인가? 혹은 평균 이용시간이 몇 시간 이상일 때인가? 연구자는 이런 부분을 확실히 정의해야 다른 학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조영한(2015)은 항상 눈팅(lurking)하는 이용자들을 연구에 반영하라고 조언한다. 물론 때로는 연구자가 눈팅을 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본질적으로 관찰법이며 참여적 성격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정보제공자들이 눈팅을 할 때인데, 그의 박사논문 경험에 따르면 어떤 사이트 전체 이용자 중의 95% 가량은 눈팅족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한다. 20명을 인터뷰했는데 그 중의 19명이 아무런 게시물이나 덧글을 남긴 경험이 없었다고(…). 그렇다면, 인터넷 에스노그라피는 일부 열성 업로더의 자료만 가지고 진행했다가는 일반화에 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조영한(2015)은 인터넷 에스노그라피에서 면접법을 병행할 때에야 눈팅 이용자들까지 포괄하는 문화 경험을 수집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역시 원조 에스노그라피의 파생형인 만큼 방법론적 정당화에서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김영천(2013)의 경우 인터넷 에스노그라피가 간헐적 참여와 소수 연구인원이라는 한계를 가지며, 특히 커뮤니케이션학 분야에서는 '쉬운 길', '치고 빠지기 버전' 의 연구 취급을 받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조영한(2015)은 꼭 물리적으로 현지로 이주해 가서 살아야만 연구가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하였으며, Hine(2000) 역시 자신의 저서에서 깊은 이해와 풍부한 묘사를 통해 이 비판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영천(2013)은 초기에 학계가 담론 분석에 익숙하다 보니 인터넷 덧글이나 게시물들을 텍스트 분석하여 그 결과물을 에스노그라피로 홍보하는 바람에 논란이 많았다고 하면서, 현대의 에스노그라피는 그 논리 상 텍스트 분석이 본질적으로 불필요하기에 텍스트의 수집은 지양하고 있다고도 하였다.


3.3. 민속방법론[편집]


Ethnomethodology

정재철(1997)에 따르면,[19] 민속방법론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동원하는 일상적 상식들이 어떻게 소통되는지를 탐구하는 방법론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의 문헌에서는 10번 각주에서 세 가지 핵심 개념을 정리한다. 첫째, 설명(account)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보고(see) 묘사하고(describe) 설명하는(explain), 안정되고 질서 잡힌 형태로 관찰 가능하게 나타나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감각을 말한다. 둘째, 지표성(indexicality)이란 그 모든 '설명' 행위가 일상생활 속에서 갖는 의미들이다. 셋째, 성찰성(reflexivity)이란 그 '지표성' 에 대한 해석의 타당성을 가리킨다.

민속방법론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멜빈 폴너(M.Pollner)와 로버트 에머슨(R.M.Emerson)의 문헌을 참고할 수 있으며,[20] 이 문헌을 인용하여 뵐스토르프는 민속방법론이 원조 에스노그라피와는 공통점이 많지 않다고 말한다. 그나마 있는 공통점이라고 해 봐야,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연구대상으로 삼는다는 특징이 전부라는 것이다. 그 이외에는 이름만 유사할 뿐 서로 사뭇 다른 논리를 따른다는 것.

뵐스토르프에 따르면, 민속방법론에서 말하는 '방법'(method)이라는 것은 때로 미시실천(micropractices)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사람들이 평소의 사회적 삶을 조리 있게 수행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민속방법론에서 초점을 맞추는 연구주제가 바로 이 과정을 검토하는 것이다. 당초 민속방법론은 사람들이 일상적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기 힘들다는 학계의 지적에 대응하여 생겨났기 때문에, 처음부터 상식적 지식(commonsense knowledge)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결과적으로 민속방법론은 전화통화를 하는 것과 같은 평범하고 사소한 활동에까지 관심을 가지며, 그것이 거시세계의 사회적 질서(social order) 속에서 어떤 의미와 역할을 갖는지를 탐구한다. 이렇다 보니 민속방법론은 "낯선 문화 속에 참여한다" 는 인류학적 참여관찰법의 흐름보다는 "그 문화적 규범이 갖는 사회적 역할을 입증한다" 는 사회과학실험법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 에스노그라피와는 이름만 비슷할 뿐인 것이다. 예를 들어, 연구자는 그 일상적 활동이 어떤 규범을 갖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내 벽만 보고 서 있는다거나, 지하철에서 이상한 행동을 한다거나 하는 몰래카메라(…)스러운 사회적 실험을 서슴지 않는다. 게다가 이 방법론에서는 성공적인 실험을 위해서 때때로 정보제공자를 기만(deception)하는 것까지 허용하여 연구윤리적인 논란의 소지를 만들기도 한다.


3.4. 에스노그라피 수용자 연구[편집]


Ethnographic Audience Research

이 방법론은 에스노그라피를 커뮤니케이션학 연구자들이 미디어 비평을 위해서 특수한 용도로 도입한 결과 나타났다.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미디어를 연구할 때 그 생산자를 연구할 수도 있고 수용자를 연구할 수도 있는데, 에스노그라피에 관심을 가졌던 연구자들은 그 중에서도 언론매체와 문화의 수용자들의 경험에 대해 에스노그라피를 적용하고자 하였다. 즉, K팝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청자들 또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경험을 '낯선 문화' 로 간주하고 그들과 함께 참여하며 그들의 경험을 생생하게 담아내자는 것이었다.

방법론으로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수용자 연구 자체는 문화매체 그 자체를 '해석'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수용자들에게 어떻게 '해독'(decode)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스튜어트 홀(S.Hall)의 제안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정재철(1997)은 영국 버밍엄 현대문화연구소가 이러한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면서, 이들이 매체 수용의 역동성을 사회적 권력관계 속에서 분석하고자 했다고 하였다. 나미수(2005)에 따르면,[21] 이처럼 수용자 연구를 진행하는 사람들 중에 양적 연구보다는 질적 연구에 더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이 에스노그라피 수용자 연구를 크게 받아들였다고 하였다.

에스노그라피 수용자 연구 역시 그 방법론적 정당화에 있어서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정재철(1997)은 기존의 에스노그라피 수용자 연구들이 과연 얼마나 수용자들의 문화에 '참여' 했는지, 아니 참여가 아니라 '설명' 이라도 했는지, 아니 설명조차도 아니라 '접촉' 을 하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라는 비판을 제시했다. 또한 나미수(2005)도 방법론적 엄격성이 부족하다는 유사한 비판을 소개했다. 현지조사에도 소홀했고, 참여하기보다는 수수방관했고, 중층기술법도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미수(2005)는 이에 대해, 방법론적인 엄격성은 인류학의 관점에서는 부족해 보일 수 있어도, 연구목적이 다르다는 학문적 차이로 인해 부족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변호하였다. 예를 들어 에스노그라피 수용자 연구는 참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이미 연구자가 자문화기술지적인 참여를 하고 있기에 문제없다는 것이다.

에스노그라피 수용자 연구의 국내의 현황은 앞서 소개한 정재철(1997)과 나미수(2005)가 이미 동향분석을 잘 실시한 바 있다. 정재철(1997)은 국내의 에스노그라피 수용자 연구가 서구의 연구 특성과 대동소이하며, 수용자들의 삶의 경험을 거시사회적 맥락에 제대로 연결짓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고 하였다. 이후에 수행된 나미수(2005)의 분석에서는 17편의 논문에서 방법론적 정당화 서술이 부족하고 연구자의 성찰성 역시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초기에는 방법론적 오용이라 할 수 있는 텍스트 분석이 주류였지만 점차 체계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서브컬처 참여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는 추세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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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보아츠에 의한 분류기준[2] 어원은 사람들(people)을 의미하는 'ethnos', 그리고 쓰기(writing)를 의미하는 'graphien' 이 합성된 것이다. 즉, 에스노그라피라는 단어는 '사람들에 대해서 쓴 글' 이라는 뜻에 기원하고 있다.[3] 김영천 (2013). 질적연구방법론 II: Methods. 파주: 아카데미프레스.[4] 나미수 (2005). 민속지학적 수용자 연구에 대한 비판적 성찰: 국내 연구사례에 대한 분석과 평가. 커뮤니케이션이론, 1(2), 68-105.[5] Boellstorff, T., Nardi, B., Pearce, C., & Taylor, T. L. (2012). Ethnography and virtual worlds: A handbook of method.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6] 김영찬 (2015). 질적 연구의 특성: 민속지학을 중심으로. 이여진, 한나래 편저, 미디어 문화연구의 질적 방법론 (pp. 37-74). 서울: 컬처룩.[7] Abramson, C. M., Joslyn, J., Rendle, K. A., Garrett, S. B., & Dohan, D. (2018). The promises of computational ethnography: improving transparency, replicability, and validity for realist approaches to ethnographic analysis. Ethnography, 19(2), 254-284.[8] Denzin, N. K., & Lincoln, Y. S. (2011). Introduction: The discipline and practice of qualitative research. In Denzin, N. K., & Lincoln, Y. S. (Eds.), The SAGE handbook of qualitative research (pp. 1-20). SAGE Publications.[9] Hammersley, M., & Atkinson, P. (1995). Ethnography: Practices and principles. New York: Routledge.[10] Spradley, J. P. (1979). The ethnographic interview. Belmont, CA: Wadsworth. (박종흡 역, 2003, 문화기술적 면접법, 서울: 시그마프레스).[11] Jorgensen, D. L. (1989). Participant observation: A methodology for human studies. Thousand Oaks: SAGE Publications.[12] Turner, V. W. (1982). From ritual to theatre: The human seriousness of play. Paj Publications.[13] 박순용, 장희원, 조민아 (2010). 자문화기술지: 방법론적 특징을 통해 본 교육인류학적 가치의 탐색. 교육인류학연구, 13(2), 55-79.[14] Reed-Danahay, D. (1997). Auto/ethnography. New York: Berg.[15] Hine, C. (2000). Virtual ethnography. SAGE Publications.[16] 조영한 (2012). 인터넷과 민속지학적 수용자 연구: 인터넷 에스노그라피의 가능성과 과제. 미디어, 젠더 & 문화, 21, 101-134.[17] 오영범, 김영천 (2013). 인터넷 문화기술지의 방법적 특징 및 연구 절차 탐색. 교육인류학연구, 16(2), 83-120.[18] 조영한 (2015). 인터넷 민속지학 설계하기: 가능성과 한계. 이여진, 한나래 편저, 미디어 문화연구의 질적 방법론 (pp. 349-382). 서울: 컬처룩.[19] 정재철 (1997). 민속지학적 수용자연구(Ethnographic Audience Research)의 방법론적 과제와 전망: 문화연구에서의 연구전통을 중심으로. 한국방송학보, 9, 103-144.[20] Pollner, M., & Emerson, R. M. (2001). Ethnomethodology and ethnography. In P. Atkinson, A. Coffey, S. Delamont, J. Lofland, & L. Lofland (Eds.), Handbook of ethnography (pp. 118-135). London: SAGE Publications.[21] 나미수 (2005). 민속지학적 수용자 연구에 대한 비판적 성찰: 국내 연구사례에 대한 분석과 평가. 커뮤니케이션이론, 1(2), 68-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