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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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嶺南大學校
Yeungnam[*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의하면 Yeongnam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 'eu'는 'ㅡ(으)'이다.]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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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학정신
민족중흥의 새 역사창조
교훈
힘 • 슬기 • 정성
상징
천마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분류
사립대학
지역
경상북도 | 대구광역시
개교
1947년 9월 22일 (76주년) 대구대학(최준[1]이병철)
1950년 4월 10일 청구대학(최해청)
1967년 12월 22일 영남대학교
설립자
박정희 (제5-9대 대통령)
이사장
제19대 한재숙[2]
총장
제16대 최외출[3]
법인
학교법인 영남학원
대학병원
영남대학교병원
영남대학교영천병원
주소
경산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 (대동)[4]
대구
대구광역시 남구 현충로 170 (대명동)[5]
(2022년)[6]
(2019년)
교원
872명(2019년)
면적
2,718,970㎡[7]
대학기본역량진단

일반재정지원 선정대학(2021년)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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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캠퍼스


대구캠퍼스


1. 개요
1.1. 역사
1.2. 캠퍼스 이전
2. 교가
3. 재단
4. 학풍
4.1. 영남대 인문학파
4.2. 슬로건과 Y형 인재
4.3. 자교 우대
9. 교통
11. 학생 커뮤니티
12. 이모저모
12.1. 교내, 주변 시설
12.2. 캠퍼스 건물들과 중앙도서관
12.3. 교내 명소
12.3.1. 박물관
12.3.2. 민속촌
12.4. 고양이
12.5. 등록금이 비싼 학교?
12.6. 마인크래프트 서버
12.7. 동명의 학교
12.8. 영호남 4개 사학 교류
12.9. 교내 언론기구
12.10. 국내 최초 여성 행정고시 합격자 배출
1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영남대학교 홍보 영상 (2020)

경상북도 경산시대구광역시 남구에 있는 4년제 사립 종합대학. 사실상의 본 캠퍼스라 할 수 있는 경산 캠퍼스는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 (대동)에 위치하며, 의과대학과 영남대학교 의료원, 일부 대학원이 소재한 대구 캠퍼스는 대구광역시 남구 현충로 170 (대명동)에 있다. 학교의 상징은 천마이다.

대학교 교명은 경상도의 다른 이름인 영남(嶺南)[8]에서 따왔다.


1.1. 역사[편집]



영남대학교의 전신은 야청(也靑) 최해청(崔海淸·1905~1977)[9]이 1950년 지금의 노보텔 자리에 세운 청구대학[10]과 한국의 명가로 유명한 경주의 만석꾼 경주 최씨 부잣집의 마지막 부자이자 독립운동가인 12대손 최준(崔浚·1884~1970)이 1947년에 설립한 대구대학(현재의 대구대학교와는 전혀 다른 곳이다[11])이다. 참고로 최해청과 최준 둘 다 경주 최씨 집안이다.[12] 이 두 대학을 박정희 정권 시절 통합하여 만들어진 대학이 바로 지금의 영남대이다. 이때 영남대의 법인인 학교법인영남학원 정관 1장 1조에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써 놓았다. 박정희의 사후에도 이 조항은 변경되지 않다가 현재는 결국 설립자 박정희로 변경되었다.[13]

청구대학은 1948년 9월 최해청에 의해서 대구문리과전문학원 야간부로 종로에서 개교했으며, 1950년 3월 포정동으로 이전하고 4월 25일 재단법인 청구대학 설립, 청구대학으로 개편했다. 1955년 문화동 현 노보텔 자리로 이전하고 1963년 병설 공업고등전문학교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경일대학교의 전신이다. 1964년 효목동으로 본부를 이전했으나, 대학정비사업으로 한차례 흔들린 끝에, 붕괴사고가 일어나고 교직원 비리가 발견되자 이사회가 1967년은 청구대학이 학내외의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 때문에 자력으로 존립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시기였다. 이때 청구대학 교수로 있던 노산 이은상 선생이 그해 5월, 5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6대 대통령에 연임된 박정희에게 “각하. 임기를 마치고 나면 마당 쓸 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진언했고, 이 의견이 받아들여져 영남대 탄생의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전해진다. #

대구대학의 설립자 최준 선생은 조선시대 무관 최진립 장군[14]의 후손으로, 12대에 걸쳐 내려온 어마어마한 부[15]를 쌓은 부농이었으며,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에 독립자금을 제공, 안희제의 백산상회를 통해 임시정부에도 독립자금을 제공했으며, 무장투쟁계의 총무도 맡는 등 부를 민족과 나라를 위해 쓴 독립운동가였는데, 해방 후 새 나라를 위해서는 인재의 교육이 절실함을 알고 자신도 대구대학을 설립하고 손수 운영했다.

대구대학은 1945년 10월 대구대학 전신 경북종합대학 기성회 조직했고 1947년 3월 경북종합대학이 가칭 대구문리과대학으로 개교하고 1947년 9월 재단법인 대구대학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48년 9월 교사를 대봉동 현 대구중학교 자리로 이전했으며, 1951년 4월 교사를 포정동 청구대학 구내로 이전, 향교재단과 합류하여 공동 운영했다. 1952년 5월 교사를 남산동 향교 구내로 이전했으나, 1954년 12월 대명동 신축 교사[16]로 이전했고 1957년 6월 본관이 준공되었다.

하지만 대구대학은 1960년대에 재정난에 빠지게 된다. 사재를 거의 다 투자하는 식으로 학교를 운영했는데, 당시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측은 대대적인 대학정비사업을 추진한다. 이때 대구대학 설립자 최준은 당시 학생을 그만 받든지[17], 과를 줄이든지, 소유 대학인 대구대학에 더 많은 투자를 하든지 하라는 통보를 받는다. 이에 결국 최준은 마치 고려대학교이용익 선생이 손병희에게 넘기듯 대구대학을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에게 학교를 잘 운영하라는 일념하에 아무런 대가없이 학교 경영권을 넙죽 넘겨주었다. 이렇게 학교의 경영권은 삼성 이병철 회장에게로 넘어간다.

전말은 과거 대구대학 교수를 지냈던 신현확[18]이 시멘트 사업을 확장하면서 홍보 목적으로 고심하던 이병철 회장에게 대구대학의 인수를 제안하고 이병철 회장은 경주시로 내려가 인수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 사건 때문에 이병철 삼성 회장이 퇴진하고 2년 뒤 현장에 복귀하는 조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양도되었다. 정확히는 대구대를 넘기고 성균관대학교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대구대학의 경영권을 이병철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넘긴 것이다. 즉, 대구대학 재단의 소유권은 경주 최씨 일가 → 삼성그룹 이병철 前 회장 → 박정희 前 대통령으로 이어진다[19]. 이때 경주 최씨 집안 고택과 선산도 다 영남대 재단 소유가 되었다. 후일 영남대 재단에서 선산을 매각할 때, 경주 최씨 집안에서 조상들의 산소가 있는 선산을 매각가의 2배를 제시하면서 되사겠다고 했지만,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린 뒤였다. 매각 주도자는 최태민의 의붓아들이자 최순실의 의붓오빠 조순제였고, 이로 인해 영남대의 많은 재산이 헐값에 팔려갔다고 한다.

경주 최부자집은 박정희에게 어떻게 몰락했나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청구대학과 대구대학 두 대학이 통합하여 1967년 12월, 현재의 영남대가 출범하게 된다.

영남대학교의 탄생 과정


파일:external/www.yu.ac.kr/about_01_e_img2.jpg
2대 이선근 총장[20]

위 이사진 구성으로 통합 영남대학교가 출범하였다. 1970년대 영남대는 이선근 박사(신간회 출신으로 문교부 장관, 영남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동국대학교 총장 역임. 문교부 장관 시절 현재 국사편찬위원회를 설립한 장본인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전신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총장 재임 시절(1969년 4월 ~ 1974년 2월)이 리즈 시절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국사 가정교사였던 그에게 전폭적인 신임을 나타냈다. 이선근 총장의 승용차에는 ‘경북 1호’ 번호판이 부여되었고[21], 경북 각급 기관장들은 대통령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하던 그 앞에서 90도로 머리를 조아려야 했을 정도이다. 학교가 뻗어나가는데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신생 대학에 불과했던 영남대학교가 아웃풋 좋은 대학으로 평가받는 명성은 대부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22] 이러한 내력 덕분에 현재에도 대경권에선 아직 인식과 평판이 좋은 편이다.

그러나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학교 또한 혼란에 빠졌고, 이후 장녀 박근혜 前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토지 이면 계약 등으로 국정조사를 받은 최소의 사립대학이 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비수도권 대학에서 충남대학교, 한남대학교, 전남대학교, 조선대학교, 부산대학교와 함께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대학이기도 하였다.

1990년대 총학생회가 1989년 임수경 방북 사건 등으로 논란이 되어오던 운동권 단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를 탈퇴하면서 기존 학내 운동권 세력과 총학생회와의 다툼이 있었다. 이후 2009년 박근혜 대통령의 추천이사 4명을 포함한 7인 이사회로 개편되면서 정상화되었다. 매일신문 '영남대 설립에 얽힌 이야기' 매일신문 '영남대 설립 이면사'

이 시기에 경제금융학부 교수이자 상경대학 학장을 역임하였던 이효수 박사가 총장이 되었고, 이때부터 영남대는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지금의 Y형 인재상 제도도 이효수 총장 시기에 제정된 것이다[23]. 이 때문에 오늘도 수많은 영남대학교 학생들은 Y형 인재상을 타기 위해 경쟁을 하지만, Y형 인재상이 계명대학교의 K-STAR처럼 요건만 되면 '막 퍼주는' 게 아니라 단과대학과 대학본부의 승인을 거쳐서 선정될 정도로 깐깐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Y형 인재상을 타지 못하고 졸업한다. 기준도 엄격하고 심사도 아주 공정하다. Y형 인재상에 대하여는 문서 하단에 기술되어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이효수 박사가 총장직에서 물러나고 2013년, 노석균 박사가 제14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노석균 총장은 3년 뒤인 2016년 말, 임기 만료 100여 일을 앞두고 사퇴했다. 한국일보 기사를 참고하면 된다. 총장 관사 사용, 약학대학 신관 건축 등과 관련하여 교직원에게 내려지는 징계를 막지 못한 것과 내부 소통 문제가 주된 이유였다. 그는 총장 사퇴 이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후임 총장인 서길수 박사와 영남학원에 고소를 수 차례나 했지만 죄다 기각당하였고, 2019년에 영남대를 떠났다.

영남대학교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돈도 많았고, 그와 함께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많았지만, 지금은 '돈 없는 가난한 학교'라는 자조가 학부생들 사이에서 떠돌 정도로 재정 상황이 상당히 열악해졌다. 오죽하면 '쓸데없이 넓은 땅 팔아서 차라리 학교 재정을 더 확충하면 어떻겠나?' 하고 한탄하는 재학생들도 있을 지경이다.

노석균이 사퇴한 후, 국제통상학부(現 무역학부)의 김진삼 부총장이 총장 직무 대행을 하였으며, 2017년 서길수 박사가 총장으로 정식 취임하였다. 서길수 총장은 재정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영남대의 경쟁력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덕분에 영남대는 「2020년 THE 세계대학 영향력 평가」에서 경북대학교와 함께 국내 공동 17위를 달성하였다. 서길수 총장은 2021년 최외출 박사에게 총장직을 이임하고 정년퇴임하였으며, 현재 최외출 총장이 영남대를 이끌어가고 있다.

2023년 대입 정시 경쟁률 5.96:1을 기록하며 영남대 역대 정시모집 최고 경쟁률을 기록하였다.

1.2. 캠퍼스 이전[편집]


파일:dnFEuTAoyuwRzrrVCXJgVD7LX41b.jpg
이전 초기의 영남대학교 경산 캠퍼스 전경 (1975년)

대구 시내 대명동 캠퍼스(현재 대구캠퍼스)의 부지가 좁아 1970년대부터 단과대학과 각종 학내 시설 등을 점차적으로 대구의 동쪽에 위치한 경산시[24]로 옮기면서 넓기로 유명한 현재의 영남대 경산캠퍼스의 역사가 시작된다. 현재 대학본부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본관 또한 1976년 8월에 준공되었다. 단일 캠퍼스의 면적으로는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다음으로 전국 2위였다. 현재는 땅의 일부를 매각하여 대구대학교 경산캠퍼스에 전국 2위 자리를 내어주고 전국 3위가 되었다. 본관 뒤편으로 펼쳐진 토지를 한국조폐공사에게 팔기 전까지는 흔히 말하는 100만 평 부지였는데 지금은 대략 82만 평으로 부지의 대부분은 거의가 평지다. 교내가 평평하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모든 곳을 갈 수 있다.


2. 교가[편집]



보라 여기 신라의 옛땅 민족의 혼이 살아 뛰는 곳

금호강 기슭 달구벌 언덕 장엄하다 진리의 전당

어둠과 거짓 물리치려고

밝음과 참됨 가르치시네

너 슬기론 젊은 얼들아 너 억센 젊은 힘들아

새역사의 창조자되라 겨레를 위해 인류를 위해

아 조국과 함께 크는 영남대학교

아 정의의 샘터여 학문의 등대여

이은상 작사, 김동진 작곡



3. 재단[편집]


주소
파일:A16miDu.jpg
재단은 학교법인 영남학원으로 재단의 주축인 영남대학교가 경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단 사무처는 영남대학교의료원(대구광역시 남구 현충로 170)에 위치하고 있다. 영남학원은 영남대학교와 더불어 영남이공대학교를 산하에 두고 있다. 현재 한재숙 영남대 명예교수를 제19대 이사장으로 선임하였다.

사실 영남학원은 IMF 사태 이전에는 막대한 토지, 목장과 더불어 학교법인으로서는 드물게 종합금융회사인 영남종합금융을 소유하는 등 건실한 재단으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영남종합금융은 서울과 구미에 지점을 두고, 1995년에 증권거래소에 상장까지 되어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의 금융사와 마찬가지로 IMF 사태의 여파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다가 공적자금까지 투입되었고, 하나로종합금융(現 우리종합금융)으로 통폐합되고 말았다.


4. 학풍[편집]



4.1. 영남대 인문학파[편집]


박정희에 의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학풍이 특징이었던 학교이다. 창비 계열의 많은 진보적인 교수들이 있어서 영남학파 또는 영남대 인문학파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였는데 4.19 혁명을 경험한 서울대 문리대[25] 출신들의 취업 시기와 영남대의 교수 채용 시기가 맞아떨어졌고, (특히 박정희 사후에) 교수들이 재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다음 교수들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 같은 진보적인 이미지는 없다. 구성원들이 보수화되었기 때문이다. 재학생과 졸업생, 교직원 대부분이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당장 영남대 출신 국회의원들과 기초자치단체장들 또한 대부분 국민의힘 소속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임병헌 의원(대구 중구남구), 강대식 의원(대구 동 을), 김상훈 의원(대구 서구), 김승수 의원(대구 북 을), 김용판 의원(대구 달서 병) 등 대구 지역 국회의원, 류규하 대구 중구청장, 류한국 대구 서구청장 등이 국민의힘에 소속되어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은 장세용구미시장, 보수정당 출신 무소속이었다가 민주당에 입당한 권영세 전 안동시장 등 몇 명이 채 되지 않는다.


4.2. 슬로건과 Y형 인재[편집]


파일:Y-Brand_01.gif
파일:슬로건_가로형-1.png
공식 슬로건 YU the Future
제13대 이효수 총장 취임 이후로 21세기 세계화와 지식기반사회에 부합하는 Y형 인재[26][27]를 길러내는 것을 대학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미래를 만드는 대학 YU, the Future"를 슬로건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학 캠퍼스 내에서는 서길수 총장의 취임 이후로 "밝고 강한 대학"이라는 표현이 많이 보이며, 학교 홈페이지에서는 "미래를 여는 밝고 강한 지역거점대학" 이라는 슬로건을 활용하고 있다.

2021년 1월 29일 최외출 신임 총장이 취임하고 나서는 슬로건이 바뀔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특히 Y형 인재와 관련해서는 매년 전반기, 후반기가 끝나면 Y형 인재상이라고 하여 영남대 학생들 중 특출난 성과를 뽑낸 학생들에게 상장을 수여하는데, 자격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운데 해당 조건은 '1) 전국 규모 및 유사한 대회에서 1위로 수상한 학생, 2)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학생, 3) 기타 해당부서에서 우수하다고 인정하여 추천한 자 중에서 학생포상규정 제5조 학생포상심사위원회에서 인정한 학생, 4) 단체인 경우 3명까지는 상장과 개별 부상을 수여하며, 4명 이상인 경우는 상패만 수여'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수상 인원에 제한을 두진 않지만, 한 해에 대략 40~50명 정도의 학생들이 수상을 하는 것으로, 학교 측에서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현재는 Y마일리지 장학금이 도입된 상태이다. 이 장학금은 학교에서 Y마일리지 점수가 가장 높은 순서대로 줄을 세워서 5개 등급으로 차등 지급해서 준다. 1등급은 학교 전체에서 Y마일리지가 가장 높은 1명에게 지급되며, 2등급은 소속 단과대학 전체에서 Y마일리지가 가장 높은 1명, 3등급은 소속 학부(과)에서 Y마일리지가 가장 높은 1명, 4등급은 소속 학부(과)에서 Y마일리지 점수가 상위 5% 이내인 사람 중에서 고득점자 순으로, 5등급은 소속 학부(과)에서 Y마일리지 점수가 상위 10% 이내인 사람 중에서 고득점자 순으로 지급된다.

4등급은 50만 원, 5등급은 30만 원이 장학금으로 지급된다.

이 장학금을 받으려면 1년에 한 번 시행되는 Y형 인재 정기진단 역량검사를 무조건 받아야 한다. 이 검사는 주로 하반기에 이루어진다. 이 검사를 받지 않으면 Y마일리지 점수가 학교 전체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도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니 정기진단 역량검사를 받는 것을 절대 잊어버리지 말 것을 명심하자.

정기진단 역량검사도 받아야 하지만 Y형 마일리지도 열심히 쌓아야 한다. Y형 마일리지를 쌓는 방법은 영남대학교에서 제공하는 비교과프로그램을 결석하지 않고 성실하게 참여, 수료하는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쉽고 안전한 방법이다. 어울림에서 비교과 프로그램이 많이 제공되고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어울림에서 제공하는 비교과 프로그램은 결석에 대해서 기준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기준 일수 이상 결석할 경우 절대 수료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시점으로부터 6개월간 어울림을 통한 비교과 프로그램 신청 자체가 불가능함을 명심하자.

비교과 프로그램 외에도 국내 전국단위 및 국제 공모전에서 동상 이상 수상하거나, 공인회계사, 행정고시, 국립외교원 외교관후보자 시험, 세무사 시험에서 최종 합격하거나 CFP, CFA, 국제FRM 등 전문 자격증 시험에서 최종 합격하여 이를 URP에 등록하여 Y마일리지 점수를 얻는 방법도 존재한다.

국내 학술지나 외국 저널에 본인이 주저자로 작성한 논문을 URP에 등록하여 Y마일리지 점수를 얻는 방법도 있다. 단, 이 경우에는 주저자가 본인이어야 하면서도 동상 이상 수상을 해야 가능하다. 공과대학, 기계IT대학, 자연과학대학, 생활과학대학, 의과대학 학생들이 이렇게 해서 Y마일리지 점수를 얻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Y마일리지 장학금은 보통 2월 하순에 지급되며, 2021년에는 2월 하순에 지급하였다. 2022년에는 교직원과 통화해본 결과 3월 2일 개강 이후에 지급된다고 한다.


4.3. 자교 우대[편집]


영남대학교는 서울대학교에 이어 자대 학부 출신 교수임용 비율이 가장 높은 대학이다[28]. 특히 의학[29], 약학, 경영학[30], 인문과학[31], 자연과학(통계학과 등 일부 과는 예외), 공학(일부 과는 예외) 분야에서 이러한 경향이 심하다.

이러한 동종교배의 문제점으로 교수 간 관계가 곧 지도교수-지도학생 관계로 환원되어 독립된 연구책임자가 된 후에도 과거의 지도교수에게 매여서 자유로운 연구를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학문의 발전방향상 다양한 학문적 배경의 연구자들이 교류하여야 하는데 영남대학교는 이러한 측면에서 불리한 점이 있다[32]. 영남대학교 출신들도 수도권 유수 대학의 교수로 부임하여 동종교배를 빠르게 탈피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동종교배는 설립 당시 진보적이던 학풍이 점차 보수화되었다는 상기문단의 진술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여담으로 대구대학교 또한 일부 전공에서는 영남대학교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자대 학부 출신 교수임용 비율이 꽤 높다.

5. 캠퍼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영남대학교/캠퍼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학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영남대학교/학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동아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영남대학교/동아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대학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영남대학교/대학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교통[편집]


영남대 일대의 교통량은 상당하다. 북쪽으로는 진량읍하양읍으로 향하는 도로(대학로)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경산시장 및 경산역과 같은 경산시의 주요 시가지로 향하는 도로(대학로, 경안로)가 있고, 서쪽으로는 대구광역시로 향하는 달구벌대로가 있다. 이렇게 영남대학교 일대에는 세 주요 지점으로 향하는 도로가 만나기 때문에 교통량이 매우 많다.


9.1. 시내버스[편집]


영남대 주위에는 상당히 많은 시내버스가 다니는데 경산시를 종점으로 설정한 상당수의 대구버스 노선들은 이곳을 경유하며[34] 다수의 경산시 시내버스 노선들도 이곳을 거칠 만큼 영남대 일대는 경산 교통의 요충지로 손꼽힌다.

정문으로는 대구 309번, 449번, 509번(영남대동문 방면), 609번, 649번, 719번, 840번[35], 909번, 980번, 경산 100번(윤성A-삼주A 가지 노선 한정), 109번, 399번(자인~마곡 가지 노선 한정), 803번, 809번, 911번, 918번, 990번(가일~서문시장~자인 가지 노선 한정),[36] 991번, 경산1(-1)번, 경산3번, 압량1번이 다닌다.[37]

동문으로는 309번, 509번, 609번, 719번, 980번, 991번이 다니며, 991번을 제외한 노선들은 영남대동문이 종점이다. 991번은 다른 노선과는 다르게 압량한라빌라트에서 직진하지 않고, 신대리 안 동네를 경유하여 영남대동문으로 내려온다.[38] 본래 정문 건너편에 삼천리버스 차고지 겸 종점[39]이 있었는데, 삼천리버스압량읍 부적리로 차고지를 이전하면서 갑제동 영대동문 건너편에 새로 조성한 회차지로 이전한 것. 2020년 2월 15일에 정식 인가를 받아 종점이 됐다.[40]

후문으로는 대구 509번(소라아파트 방면), 경산 100번, 109번, 990번, 경산1(-1)번, 경산2(-1)번, 남산1번, 남산2번(정평역 지원운행 한정), 용성1번(정평역 지원운행 한정)이 다닌다. 후문에서 내릴 때는 삼풍동 태왕드림하이츠에서 내리면 된다.[41]

특이한 점은 경산 109번, 경산1(-1)번은 노선 특성상 유이하게 영남대 정문과 후문을 모두 경유하는 노선이다.

영남대 경유 또는 영남대동문 종점 시내버스 노선들은 사월역에서 옥산네거리~경산역~경산시장~중방네거리~경산네거리 구간으로 우회한다.[42][43] 하지만 사월역에서 정평동~경산네거리 구간으로 직진하는 대구 449번, 649번, 경산 991번은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에 대구 도시철도 2호선영남대역까지 연장되기 전까지 상당히 많은 승객을 확보했다. 참고로 대구 509번 계양동 분리 노선도 사월역에서 직진하여 정평동~경산네거리 구간으로 직진하지만 이 분리 노선은 영남대로 직진하지 않고 경산네거리에서 우회전해서 중방네거리~경산오거리~계양네거리~계양동으로 가 버린다. 하지만 도시철도 2호선이 영남대역까지 연장된 지금은 거의 모든 시내버스 노선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승객들이 많이 줄어든 상태다.

영남대는 대구 시내버스가 들어오는 대구권 종합대학 중에서 유일하게 급행버스가 경유하지 않는다. 이는 2호선의 영향으로 보인다. 게다가 캠퍼스가 넓은데도 캠퍼스 안에 시내버스가 단 한 대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9.2.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역[편집]


앞서 설명한 대로 대구와 경산 간의 이동량은 상당히 많다.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역이 영업을 개시하면서 대구와 경산간의 이동이 원활해졌으며, 교통량이 이전보다 늘어나고 있다. 일 평균 탑승객 수 1만 명(대구광역시 중심가인 동성로 입구에 위치한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대구역과 유사한 수준)을 넘겨 2만 명에 육박할 만큼 상당히 많은 승객들이 이용하고 있다.

또한 영남대역이 생김으로써 영남대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대구대학교, 대구한의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경대학교, 경일대학교 같은 다른 학교 학생들의 통학 환승 거점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9.3. 철도[편집]


학교에서 시내버스로 약 20분 거리에 경부선 경산역이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대구로 나가는 시내버스들 중 90%는 경산역 및 경산시장으로 들어간다(정평동으로 직진하는 449번, 649번과 안심교를 경유해 대구 동구 반야월 일대로 빠져나가는 719번, 980번 등 제외). 택시를 타게 되면 요금은 약 5,000원 정도 나온다.


9.4. 시외버스[편집]


경산역 근처에 있는 경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영남대 국제교류센터(대구은행 영남대지점, KFC, 서점 등이 있는 정문 근처의 건물) 앞에서도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영남대 국제교류센터 안에 중간 정류장 및 시외버스 매표소가 있기 때문인데 단, 경주-포항울산 방면 시외버스만 정차하기 때문에 해당 방면 노선만 이용할 수 있다. 그 외에 당연하지만 경주-포항 및 울산에서 경산행 시외버스를 타고 올 때도 영남대 국제교류센터 건너[44]에 중간 정차한다.


9.5. 스쿨버스[편집]


영남대역이 개통하기 이전에는 등하교시간에 사월역과 영남대를 오가는 스쿨버스가 10분마다 1대씩 올 정도로 수요가 상당했다.[45] 가끔 학생들이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사월역 출입구의 계단에서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2년 9월 19일 정문 앞에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역이 생기면서 사월역과 학교를 오가던 셔틀버스는 당연히 폐선되었다. 현재는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반야월역과 대구 일대(칠곡, 침산, 대곡, 복현, 화원, 용지), 경산시(경산역, 하양, 진량)를 오가는 스쿨버스가 자주 운행 중이며 구미시, 영천시, 경주시, 포항시, 울산광역시를 오가는 스쿨버스도 운행 중이다. (단 대구, 경산지역 외의 시외지역 스쿨버스는 월마다 이용료를 납부하여야 이용할 수 있다.)

2015년부터는 모든 스쿨버스 승차 시 버스 내에 설치되어 있는 단말기에 학생증을 태깅하여 확인을 받아야만 승차할 수 있다(자신의 학번을 단말기 키패드에 입력해도 된다). 예전에는 학생증 검사도 거의 안 했지만, 지금은 학생증 검사를 한다. 학생증이 없으면 승차가 거부된다.

2020년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의 전공 수업과 교양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면서 스쿨버스가 다니지 않고 있다.

2022학년도부터 스쿨버스는 더 이상 운행하지 않는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스쿨버스의 부재에 따른 불편 의견이 나오고 있다.


9.6. 순환버스[편집]


학교 캠퍼스가 상당히 넓기 때문에 순환버스를 운행하며 2개의 노선이 있다. 영남대역이 개통하기 전까진 복지관 뒷편이 순환버스의 시종점이었으나, 개통 이후에는 노천강당 주위, 공대운동장으로 시종점이 변경되었다. 도시철도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순환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지만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이전보다 순환버스를 이용하기 힘들다.

2020년 2월 코로나19 확산 이후 지금까지 교내 순환버스를 운행하지 않는다. 2021학년도 1학기에 부분적으로 대면 수업이 진행되었지만, 그 당시에도 교내 순환버스는 단 한 대도 돌아다닌 적이 없었다[46] 거의 모든 수업들이 대면으로 전환된 2022년을 기점으로 운행이 재개되어 현재 다시 운행중이다.


10. 기숙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영남대학교/기숙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무려 학교 부지 밖 서문로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대학본부는 대동에 있지만, 기숙사는 계양동에 있다. 그래서 영남대 정문과는 다르게 기숙사는 북부동주민센터에서 내리고 영대오거리를 경유, 도보로 15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11. 학생 커뮤니티[편집]


개인이 운영하는 웹페이지인 와이유키키#[47], 페이스북 영남대학교 대나무숲 #[48], 그리고 영남대학교 에브리타임[49]이 있다. 간편하고 시간표 기능까지 제공하는 에브리타임의 등장 때문에 와이유키키는 예전보다는 이용자 수가 적다.


12. 이모저모[편집]



12.1. 교내, 주변 시설[편집]


일단 많은 자취생이 사는 대학로가 횡단보도 건너서 있다. 그리고 양방향의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2호선 영남대역의 존재 덕분에 아침이면 정문 근처는 육상선수권대회를 방불케 하는 레이스가 펼쳐진다.

거대한 학교 정문 앞에는 자전거보관소가 있는데, 여기는 거의 빈 자리가 없고 정문 곳곳에는 불법주차된 자전거, 전동 킥보드, 오토바이, 스쿠터 등이 매우 많아서 통행에 불편함을 준다. 캠퍼스가 광활하기 때문에 교내에서도 상기한 개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다만 최근 들어 전동킥보드 개체수가 상당히 많아지면서 안전수칙 등에 관해 대나무숲이나 에브리타임에 간간히 불편, 항의, 증언이 올라온다.

학생식당은 중앙도서관 옆 학생회관 건물과 과학도서관 옆에 두 곳이 있다. 중도학식은 2019년 2학기 때 업체가 변경된 적이 있으며, 지금은 '더큰'에서 운영하고 있다. 둘 다 맛과 가격은 그럭저럭. 다양한 대학교들의 학식을 먹어 봤는데 정말 평균 지점에 있는 수준이다. 중도학식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야구장 옆에 인문계식당 건물이라고 해서 양식점(1층)과 교직원식당(2층)이 있다. 교직원식당은 일반 학생도 이용 가능하다. 에브라타임에 고닉 19학번혼밥장인[50][51][52]이 매주 식단표와 학식 사진을 올려준다. 식단표는 오늘의 학식 게시판에서 확인 가능하며 학식 사진은 영대의 먹거리 게시판에서 볼 수 있다. 사진은 주로 인문관 교직원 식당과 중도학식을 올리며 가끔 정문에 있는 식당도 올라오는 편이지만 빈도가 매우 적다.

교내에는 편의점이 세 지점 있는데, 정치행정대학과 중앙도서관 사이 GS25[53]와 상경대학 안 세븐일레븐[54], 이과도서관 앞 세븐일레븐이 있다. 캠퍼스 밖에 위치한 기숙사 부지 내부 세븐일레븐까지 포함한다면 총 네 군데다. 참고로 기숙사 가는 길 근처에 CU와 GS25가 있으며, 삼풍동 후문에도 GS25가 두 군데, CU가 한 군데, 세븐일레븐이 한 군데 있다.

일단 을 먹으려면 꿀막을 먹자. 그리고 푸른영대라는 막걸리집이 유명한데, 정문 쪽 큰 막걸리집을 앞푸영, 후문 쪽 구멍가게 같은 막걸리집이 뒷푸영이다. 맛은 뒷푸영, 분위기는 앞푸영이다. 보통 개강파티 때 많이 간다. 오칠구 야시장이라는 술집이 헌팅의 메카이자 숨겨진 안주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목향'이라는 술집도 유명한데, 고량주를 판매한다.

스시를 좋아한다면 '손시스시'와 '오아스시'를 추천한다. '손시스시'는 '오아스시'보다 좋아서 많은 학생들이 찾았으나, 2020년에는 장기간의 리모델링 공사 관계로 문을 열지 않았다. 2021년에 다시 영업하였다. 손시스시가 리모델링되는 기간에는 오아스시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오아스시는 와사비가 너무 맵다는 단점이 있다.

찜닭을 먹고 싶다면 x가찜닭이라는 곳이 가장 맛있다. 요새는 동x찜닭이 가장 인기가 많은 편이다. 장x찜닭이란 곳도 있긴 한데 여긴 찜닭집 주제에 제육볶음이 가장 맛있다.

핫도그는 이마트24 옆 감자핫도그가 진리이니 한번쯤은 먹어보길. 이삭토스트도 바로 옆에 있다. 위치가 아주 좋아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편. 비교적 최근 생긴 영대 노브랜드 버거도 가성비 맛집으로 떠오르고 있으니 한번쯤 확인해보자.

햄버거는 버거시그널이 가장 맛있다. 쉐이크쉑과 비슷한 맛이다. 프랭크버거도 맛있게 잘 하는 편이니 햄버를 좋아한다면 버거시그널과 프랭크버거를 추천한다.

교내는 아니고 학교 밖 구역이지만 인근에서 가장 젊고 큰 유흥가인 오렌지 거리가 정문 건너편에 형성되어 있다. 통계상으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원룸촌이 영남대학교를 낀 권역에 존재하는데 서문 쪽의 기숙사 인근, 음대 근처의 출입구인 동문쪽에 있는 신대부적지구와 본관 뒤쪽의 원룸촌, 남쪽 테크노파크 인근 삼풍동 일대, 구 경산소방서 인근의 조영동 일대와 임당동 등등 원룸촌이 교정을 에워싸다시피 조성되어 있다. 특히 정문 건너쪽 원룸촌은 조영동과 임당동, 압량면 등지를 걸쳐서 원룸촌이 빼곡하게 형성되어 있으며 경산시에서 가장 젊고 큰 유흥가라고 할 수 있는 오렌지 거리가 있어 밤이 되면 경산권의 수많은 대학생들이 영남대로 몰려들어 유흥을 즐긴다. 지금도 오래 된 개인주택을 허물고 원룸을 올리는 공사현장이 제법 있다. 정문 쪽은 교통이 편리해 영남대학교 외의 대학교(대구한의대, 대경대 등 하양지역에 위치하지 않은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 중 자취생은 대부분 이 일대에 거주한다)에 재학중인 학생들이 영남대 근방 원룸촌에서 자취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술 진탕먹고 해장하고 싶으면 이마트24 골목길 안쪽 스타벅스 앞에 가x라는 해장국집이 있는데 7000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미칠듯한 가성비로 유명하다. 영대에서 뼈해장국, 갈비탕을 먹고 싶다면 무조건 가x 밖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거기서 한블록 더 건너서 경양식집 2층에는 가x밀면이라는 곳이 있는데 역시 가성비 및 맛에서 재학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추천메뉴는 밀면 + 삼겹살이다.

어느 대학교가 안 그러겠느니만은 근처에 카페가 많은 편이다. 대부분의 메이저 커피숍과 중저가 브랜드뿐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학교 내부(중앙도서관 1층 로비, 천마아트센터)와 정문 횡단보도 맞은 편까지 스타벅스가 3개나 입점해있다. 2014년 8월경 중앙도서관 1층 로비('영남대중앙도서관점')와 '천마아트센터'('영남대아트센터점')라는 공연장 건물에 입점을 허락하여 교내에 스타벅스가 두 개나 있는 특이한 사례를 만들었다.[55] 학교 소유 부지는 아니지만, 정문 바로 앞에 있는 '영남대점'(2013년 10월 오픈)까지 포함하면 학교 이름이 있는 매장이 3개가 된다. 2020년 하반기에 북부동주민센터 정류장에 스타벅스가 입점하였다. 이렇게 하여 영대 안팎에는 스벅이 네 지점이나 있게 되었다.

영남대 정문 일대의 대학가(소위 영대 정문)[56] 는 많은 대학이 존재하는 대구, 경산권 대학의 대학가 중에서도 경북대학교 북문(소위 경대 북문),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동문(소위 계대 동문)[57]과 함께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영대뿐 아니라 타 대학생들의 모임이나 행사 역시 영대 정문 유흥가에서 열리는 경우가 꽤 잦은 편. 영대 정문은 대구가톨릭대, 대구대 학생들도 놀러갈 일 있으면 자주 찾을 정도이다.

2020년 정문 앞 신축 건물에 서브웨이가 생겼고, 과거에는 있었으나 철수했던 KFC도 대구은행 영대지점 옆 자리에 있던 엔제리너스가 철수한 뒤 다시 입점했다.

대학본부 건물이 판문점 북측 건물과 닮았다. 때문인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남남북녀의 촬영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영화에서 쓰인 역할은 병원. 그만큼 북한 스타일 건물과 닮긴 했다. 대구·경북지역 내에 비슷한 이유로 드라마에서 북한 건물 행세를 하는 곳이 한 곳 더있는데 그곳이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건물이다. 이곳은 등록문화재 지정으로 건물 외부 리모델링이 불가피해서 그렇다.

12.2. 캠퍼스 건물들과 중앙도서관[편집]


영남대는 캠퍼스가 상당히 넓은 편인데, 대학관계자들이 칠곡과 경산 등 몇군데 대학부지 후보를 선정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더니.. 직접 헬기를 타고 돌아본 후 경산으로 정해 주었다고 한다.[58] 이 넓은 캠퍼스 부지 덕에 교직원들은 기아 모닝이나 대우 다마스급의 경차, 그리고 1톤 트럭을 몰고 다닌다. 아예 학교 마킹의 소형차들이 즐비하다.

파일:영남대학교도서관.jpg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59]

캠퍼스 내의 건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앙도서관이다. 20층 빌딩의 형태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한쪽이 튀어나온 의 형태를 하고 있다. 주변의 3, 4층 건물들 중심에서 혼자 잘난 듯한 포스를 풍기지만 실상은 3, 4층까지만 도서관 겸 열람실로 운영되고 나머지 윗층은 전부 교수들의 연구실이다. 1975년 당시 대구 도심에도 없던 21층 건물을 왜 건축했을까에 대해서는 몇 가지 도시전설이 있다. 어느 날 경산 인근을 지나가던 박정희 대통령이 "영남대가 어느 쪽인가?"라고 묻자 측근들이 "저쪽입니다 각하"라면서 방향을 가르쳐주었는데, 그러자 박 대통령은 "여기선 안보이는구만"이라고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얼마 안 있어 거대한 도서관이 세워지면서 그 위치에서 보이게 되었다는 설이다[60]. 두 번째는 박 대통령이 그 당시에 고층이었던 김일성종합대학의 도서관보다 높은 21층 높이로 도서관을 지으라고 지시했다는 설이다. 세 번째는 캠퍼스가 위치한 압량벌 주변에 크고 작은 못과 저수지들이 실제로 많은데 덕분에 음기가 가득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남성의 성기 모양의 건물을 지어 이 음기를 누르려고 했다고도 한다.[61] 우스개에 가까운 도시전설이니 실제로 믿지는 말자.

학교 건물의 구조가 복잡한 건물이 몇 군데 있다. 인문관의 경우 제2 인문관이라는 건물이 별도로 있는데 이 건물이 인문관에 인접한 것이 아닌 길을 건너 있는 종합강의동 건물의 뒷편에 있어 대부분의 신입생과 공대생들을 혼란을 겪게 한다. 게다가 이 제2 인문관은 종합강의동과 연결이 되어 있는데 지하와 2층이 연결되어 언뜻보면 연결이 안 되어 있는것으로 느껴지게 한다.[62] 상경관 역시 증축에 증축이 더해져 1층으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갔더니 1층으로 나온다든지 계단식 강의실의 존재로 계단을 올라가도 같은 층에 있는 괴랄한 구조[63]를 갖추고 있다. 덕분에 상경관 건물은 익숙한 상대생 외에 시험 때 처음 상경관에 들어선 타 단대 학생들에게는 지리감각을 혼란케 하는 미궁 수준이다.[64][65]

중앙도서관 지하입구로 들어가는 큰 길 앞에 별 7이라는 제목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재학생들은 이 동상의 키가 상당히 크다고해서 홍만이라고 부르고 있다. 2015년 즈음에는 알수없는 누군가가 이 동상의 신발에다가 발가락을 하나하나 그려놓은 낙서를 해놓은 적도 있었는데 이후 그 발가락 낙서는 한동안 방치되다 어느 순간 지워졌다. 보통 모임의 약속장소나 야외 교정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의 배달 포인트로 많이 이용되는 편이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홍만이 얼굴에 마스크를 씌워 놓았다. 문제는 그 마스크가 세월을 타면서 때도 많이 탔기 때문에 교체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마스크 교체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2023년 지금은 마스크를 벗었다.

여담으로 진량에 위치한 대구대학교는 본관이 영남대 중앙도서관과 비슷한 높이를 자랑하는데 하양-대구간 도로에서 시계가 좋을 경우 두개의 높은 건물이 서로 마주보는 장관을 본다.


12.3. 교내 명소[편집]


파일:영남대학교벚꽃길.jpg
생활과학대학 뒤편 벚꽃길[66]

교내에는 러브로드라는 유명한 벚꽃 산책로가 있다. 거울못과 생활과학대, 법학전문도서관을 오른쪽에 끼고 주욱 올라가는 벚나무 흙길이다. 막 시작하는 커플이 이 긴 러브로드를 끝까지 걸으면 그 커플은 깨진다는 미신이 존재한다. 또한 동성 친구와 둘이서 같이 이 러브로드를 걷게 되면 3년 동안 애인이 없다는 미신도 있다. 러브로드는 교내 야산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산책로로 애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교정 중간을 크게 가로지르는 천마로나 천마로에서 이도(이과도서관, 과학도서관)로 올라가는 길이 벚꽃철 산책로로 많이 찾는다. 야산에는 군부대 훈련용 사격장 역시 있으나 근래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학교 근처에 연못 역시 많으며 그 수가 20개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20개의 연못을 다 찾아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미신이 있는데 맑을 때에는 지표면에 없다가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나야 나타나는 연못도 있어서 다 찾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거울못, 남매지, 생과대 앞 연못 정도가 많이 찾는 연못이다.


12.3.1. 박물관[편집]


파일:영대박물관.jpg
영남대학교 박물관

국제교류센터(구 복지관)와 축구장 옆에는 박물관이 있다. 대구, 경산, 포항 등 인근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영남대 근처의 여러 고분군(일명 임당동 고분군)의 출토품을 전시하는 특별 전시관이 있다. 때때로 특별 전시도 하고 있으며, 박물관 앞에는 고인돌과 석탑 등을 조경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12.3.2. 민속촌[편집]


파일:영대민속촌.jpg
영남대학교 민속촌

본관 뒤편에 민속촌이 조성되어 있다. 구계서원, 쌍송정, 의인정사, 까치구멍집 등이 있는데 이는 안동댐 건설 수몰구역에서 이전 복원한 것이다. 그 외에도 경주맞배집, 인왕동 고분군, 화산서당 등 경주나 칠곡 등지에서 건축 중 발굴, 수몰 등의 이유로 이전 복원한 건물 및 유적지가 제법 있다. 나즈막한 야산을 끼고 있어서 봄철 꽃놀이 뿐만이 아니라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12.4. 고양이[편집]


영남대학교에서는 고양이들이 많이 서식한다. 중앙도서관-GS25 편의점, 정치행정대학, 과학도서관-자연계 식당, 미술대학, 자연과학대학, 약학대학 구관(1970년대에 지어진 흰색 건물), 외국어교육원, 산학협력단을 비롯하여 교정 내 어디서든 고양이의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중앙도서관-GS25 편의점-정치행정대학 사이에 있는 광장에는 노랑색 고양이(곽구)와 검은색 고양이(우족이)가 살고 있다. 두 고양이는 과거 GS25 편의점 부군에서 학생들의 사랑을 받고 자주 기웃거렸지만 현재는 돌보는 사람들이 있어 기웃거림이 덜해졌다. 곽구는 애교가 많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최근에는 살이 많이 쪘으며 우족이는 털이 축축하게 젖어 있다.

다음으로 정치행정대학에는 '하트'라는 이름을 가진 흰색 고양이가 서식하는데, GS25 편의점에서 살고 있는 곽구와 마찬가지로 다정다감하고 사람들에게 애교도 잘 부린다. 하지만, 하트가 정치행정대학 앞 연못에 있는 물고기를 탐내기 때문에 그 연못을 개인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행정학과의 성도경 교수가 가끔씩 하트를 쫓아내기도 한다. 성도경 교수 본인도 하트가 연못에 살고 있는 물고기를 탐낸다는 사실과 하트가 학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과학도서관-자연계식당[67] 사이에 있는 광장에는 삼색 고양이(공주), 치즈태비 고양이(쌀), 턱시도 고양이(보리)가 한 마리씩 서식한다. 공주가 쌀, 보리의 어미이다. 세 마리 모두 사람에게 굉장히 사교적인 성격으로 학생들이 바로 옆으로 지나가거나 다가와 쓰다듬어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아 과학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과 직원들에게 귀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교정을 방문하는 학생의 수가 줄었음에도 광장 앞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세 고양이의 모습을 수시로 볼 수 있다.

미술대학에서는 회색 고양이(심바)[68]와 노랑색 고양이(항몽이)[69]가 서식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경계를 하지 않는다. 미술대학의 항몽이는 중도 곽구보다 몸집이 크지만, 심바는 최근 덩치 면에서 곽구에게 따라잡히고 있다. 아무쪼록 심바와 항몽이 둘 다 미대생들과 미대 교수들이 돌봐주었지만 2023년 상반기에 항몽이가 들개의 습격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외국어교육원-종합강의동-제2인문관 사이에 서식하는 고양이들은 사람들이 다가가려고 하면 잽싸게 피한다. 산학협력단에도 2마리의 고양이가 있는데(한 마리는 흰색, 한 마리는 회색이다.), 그 고양이들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다가가려고 하면 자리를 유유히 피한다. 다만, 산학협력단 쪽 고양이들은 외국어교육원 고양이에 비해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

중앙도서관 근처의 공원에 고양이 집과 먹이통이 설치되어 있다.

12.5. 등록금이 비싼 학교?[편집]


등록금이 비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 당시 2009년에 영남대 제2캠퍼스(대명동 캠퍼스)가 1위를 하게 되었는데 이 경우 본교만 발표한게 아니라 각각 캠퍼스를 따로 등록금 발표를 했었기 때문에 비싸다고 알려진 의대나 이공계열만 있는 학교들의 캠퍼스같은 경우 최상위권에 올라가게 되었고 반면에 실제 대학교 본교가 비싼 학교들은 은근슬쩍(?)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고 한다.

자칫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저 대학교 본교가 비싸구나 라고 오해를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비싼 의대만 위치해 있는 영남대 대명동 캠퍼스(제2캠퍼스)가 1위를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영남대학교는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막상 2009년 전국의 의대 등록금 순위만 놓고 보면 영남대 의대는 9위라고 한다. 2013년 영남대 의대 등록금은 964만 원으로 전국 의대중에서 18위이다. 아무튼 이 때문에 대구 경북권 학생들이나 어른들은 이 통계를 보고 영남대가 등록금이 비싸다고 잘못 알려지게 됐으며 아직까지도 영남대 등록금이 톱10 안에 든다고 잘못된 사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또한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박근혜사학법과 영남대와 반값등록금을 거론하며 토론을 했었다. # 더군다나 박근혜는 영남대 이사장을 지냈던 경력이 있다.

영남대 본교 경산캠퍼스 같은 경우 2013년 기준 대학알리미 사이트 자료를 확인해보면 1년간 평균 등록금이 730만 원으로 전체 대학교 중 69위에 랭크 되었으며 이 통계는 웬만한 서울 소재 사립대학보다는 등록금이 싸고 전국 사립대학 등록금 순위에서는 중위권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같은 대구, 경산 지역 대학교인 대구한의대학교 평균 등록금이 732만 원으로 68위, 계명대학교가 714만 원으로 84위, 대구가톨릭대학교가 710만 원으로 88위에 각각 랭크되었다.

12.6. 마인크래프트 서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영남대학교 마인크래프트 서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학교의 지원을 받는 마인크래프트 서버가 존재한다. 대학발 서버 중에서는 가장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마인크래프트로 개최된 2022학년도 공식 입학식 행사는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2022학년도 메타버스 입학 페스티벌


12.7. 동명의 학교[편집]


홍콩에 동명의 대학인 링난(嶺南)대학교가 존재한다.링난대학교 홈페이지 2007년에 한국과 홍콩의 두 영남대가 자매결연을 맺기도 하였다. 관련 기사 광저우에도 동명의 링난대학교가 있었으나, 지금은 중산대학에 합병되었다.


12.8. 영호남 4개 사학 교류[편집]


동아대학교, 조선대학교, 원광대학교와 함께 1998년부터 영, 호남 4대 사학으로서 정기학술제, 학생 나눔 봉사 활동, 공동 취업 캠프, 행정 워크숍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상호 발전을 도모하며 교류하고 있다. #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면서 과거에는 지방 4대 명문 사학으로 불렸던 것에 비해 현재는 상대적으로 쇠퇴하였다.


12.9. 교내 언론기구[편집]


아래의 단체가 언론 3사다. 영대신문과 옵저버의 경우에는 발행된 신문들이 교내 곳곳에 비치되어 쉽게 읽을 수 있다. 오전 8시와 오후 6시경 대부분의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에는 교육방송국 UBS의 아나운서들이 학교 곳곳의 야외 스피커들을 통해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 라디오 형식으로 멘트를 읽어주고, 다양한 오디오 코너 진행과 음악도 튼다.
영남대학교 언론기구
방송국
신문사
영자신문사
UBS
영대신문
Observer


12.10. 국내 최초 여성 행정고시 합격자 배출[편집]


이 대학의 행정학과를 졸업한 전재희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내 최초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여성이다. 전재희 장관은 1973년에 행시에 최종 합격하였다#.

13.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영남대학교/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4. 출신 인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영남대학교/출신 인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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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주 최부잣집[2] 영남대학교 가족주거학과 명예교수, 前 위덕대학교 총장.[3] 우동기, 이효수 전 총장에 이어 세 번째 자교 출신 총장이다. 그리고 국내파 석·박사 출신으로는 이효수에 이어 두 번째이다..[4] 정문은 대동, 서문은 계양동, 동문은 압량읍 신대리, 후문은 삼풍동에 있다.[5] 같은재단의 2.3.4년제 전문대학인 영남이공대와 부지를 같이사용하며 대구캠퍼스의 경우 의과대학이라 의대생만 있다. 경산캠퍼스 학생들은 갈 일이 없다.[6] 휴학생 8,402명, 학사학위취득유예학생 18명 미포함[7] 약 82만 평.[8] 조령과 죽령의 남쪽.[9] 부친은 조선 말기의 유학자였던 일화(一和)‧만정(晩靜) 최현달(崔鉉達·1867~1942)인데, 청렴결백한 인물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군수 자리 하나 운좋게 얻어걸리면 삼대가 떵떵거리면서 부유하게 살 수 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최현달은 이와 반대로 칠곡군수와 청도군수를 하면서도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얼마나 동네에서 베풀기로 유명했으면, 별명이 최칠곡, 최청도에다 대구판관으로 전임될 때 마을 주민들이 감사의 의미로 선정비와 공덕비만 각각 4개를 세운 것도 모자라, 생사당(生祠堂)까지 세우려고 했다고 한다. 다만, 생사당은 세우지 못하게 말렸다고 한다. 평생 노모를 모시고 살던 효자로도 유명했는데, 1905년에 서울에 노모가 있는 칠곡군수가 상경하자, 그와 자리를 맞바꾸고 11월에 칠곡군수로 발령을 받아 스스로 낙향한 것도 모자라서, 1907년에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길 때 자결하려 했으나, 노모가 말려서 자결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말년에는 영양실조로 고생하다가 생을 마감했다.[10]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 하는데, 전국 최초의 야간대학이기도 하다. 왜 야간대학으로 설립했냐면, 최해청 본인이 중학교(당시 고등보통학교) 중퇴자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 차별하려고 만든 동화교육정책은 조선의 고보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대구고보도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모자라서 병마도 있었기에, 20살이던 해에 학업을 그만뒀다고 한다.[11] 청구대와 대구대가 통합해서 오늘날의 영남대로 바뀌자, 기존 한사대(한국사회사업대학)가 버려진 대구대의 이름을 가져다 썼다.[12] 다만 최해청은 최준과는 달리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이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경주 최씨 집안 아니랄까봐 아버지 최현달의 뜻을 이어받아서 평생을 청렴결백하게 살았다고 한다.[13] 그래서 영남대학교는 당시 진보 성향 지식인층에서 왕립대학, 로열 유니버시티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14] 임진왜란병자호란 때 활약한 장군이며, 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며 공을 세웠고 이후 정식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다가 호란 때 인조남한산성에 갇히자 주변의 만류에도 왕을 구하기 위해 북진하여 청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인조는 죽음을 애석해 하며 제문을 지어주었고, 숙종 때에 사액 서우가 내려졌는데, 당시까지 무반의 사당에 왕이 현판을 내린 사례는 충무공 이순신김시민의 사례 하나밖에 없었다. 국가의 양난에 무공과 충정을 보였으나, 안타깝게도 현재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인지도는 별로인 위인이다.[15] 최진립의 손자인 최국선(1631 ~ 1682) 이후로 이 집안은 지역민•소작농에게 공정하고 베푸는 경영을 하고, 모든 식객에게 공평한 대접을 하는 등 명망이 높아 경주 최부자라는 명성과 함께 20세기까지도 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16] 현재의 영남대학교병원, 영남대 의과대학, 영남이공대학교가 있는 자리다.[17] 당시엔 등록금과 교수 월급을 다 설립자가 냈었다.[18] 3.15 부정선거 관련으로 구속된 적도 있으나 제9, 10대 국회의원에 부흥부 차관, 부흥부 장관, 보건사회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국무총리,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을 역임했다.[19] 지금도 영남대학교 졸업자들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 많이 진학한다. 회계세무학과의 박종국 교수도 영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였다. 숙명여대 화학과 김수민 교수도 영남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이학 박사를 취득했다.[20] 영남대를 비롯해 성균관대, 동국대 총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21] 당시 경상북도지사 번호판이 경북 가 1001호였고, 영남대 총장 번호판은 경북 나 1001호였으며, 경북대학교 총장의 번호판은 대구1 가 1111호였다.[22] 그저 막연한 주장은 아닌 것이, 70~80년대 졸업생들은 TK 일대에서 막강한 파워를 행사함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도 지방 사립대학으론 유례없는 전성기를 누렸다. 그래서 현재도 대기업이나 고위 공직자 중에서 영남대학교 출신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23] 지금까지도 12학번 이전의 영남대 출신들은 이효수 총장과 전임자인 우동기 총장을 영남대를 살린 분으로 칭송한다. 우동기 또한 영남대 총장을 했을 때 '일 잘 한다.'는 호평을 들은 사람이었다. 총장 퇴임 후 8년간 대구광역시교육감을 지냈으며, 2021년에는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이토록 우동기와 이효수는 지금까지도 영남대에서는 존경과 추앙의 아이콘으로 인식되어 있다.[24] 당시 경산군. 1989년 시로 승격되었으며 1995년에 도농통합시가 되었다.[25] 지금도 마로니에는에서 당시 서울대 문리대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26] 영남대학교의 이니셜인 Y와 더불어 Yield의 의미도 담고 있다[27] D. McMgregor의 XY이론에 따르면 Y형 인간은 지시를 받기보다는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기를 선호하며 능력 발휘와 자아 실현을 중요시하는 능동적 인간이라고 한다.[28] 다만, 서울대학교는 최근 교수 임용 시 일정 비율을 타 학부 출신으로 임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에는 계명대학교 미국학과 학부 출신 박진수 교수가 정교수로서 MIS를 강의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도 배재대학교 학부 출신 정해명 교수가 정교수로 근무하고 있다.[29] 의학 분야는 순혈주의로 유명하다는 경북대학교보다 더 심하다. 최근 경북대학교 의과대학경북대학교병원 교수진 중에서는 영남대학교, 계명대학교 등 타 대학 출신들이 신규 임용되는 사례가 보이고 있다.[30] 경영학과가 심각하다.[31] 국어국문학과, 중국언어문화학과, 문화인류학과에서 특히 심각하다. 문화인류학과 교수진들은 거의 다 자대 출신만 있다.[32] 대구·경북의 종합대학에서 동종교배에서 자유로운 대학은 사실상 계명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밖에 없다고 보면 된다. 두 학교 출신 학부생들이 졸업하고 대학원에 갈 생각이 없다는 점도 한 몫 한다.[33] 이 버스들은 거의 대부분이 대구대로 간다.[34] 경산버스보다 대구버스가 훨씬 많다. 단, 대구~경산 하양 구간을 운행하는 대구 급행5번, 518-1번, 708번, 808번, 814번, 경산 818번, 영천 55번, 555번은 제외한다.[33][35] 대구, 경산 노선을 모두 통틀어 유일하게 하양~진량~영남대~경산시장~서문시장 구간을 운행한다.[36] 399번, 990번은 해당 가지 노선만 운행 하며 영남대학교 건너편으로 편도 운행만 한다.[37] 2011년 8월 18일 이전에는 대구 939번도 있었으나, 사동으로 조정되었다.[38] 991번은 영남대동문에서 정차하지 않으며, 갑제동회관에서 하차가 가능하다. 갑제동회관은 영남대 본관 뒷편에 있다.[39] 일명 75번 종점. 75번은 현 609번의 전신이다.[40] 바로 다음 정류장이 한국조폐공사 경산 조폐창이다.[41] 아파트 단지쪽으로 들어가면 G구역에 위치한 경북테크노파트가 보인다.[42] 719번980번은 예외로, 이 두 노선은 경산네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안심교를 건너 안심(반야월)으로 간다. 다만 980번은 ((2009년 1월 개편 때 직선화되어 영남대방면 경산시장 편도 경유가 폐지되어) 영대방면도 안심교를 건너 경산네거리에서 바로 좌회전하는) 719번과는 달리 영남대 방면에 한해 편도로 정평역~경산역~경산시장으로 우회하여 경산네거리에서 우회전해 영남대로 간다.[43] 이는 과거 시계외요금을 징수하던 시절의 흔적이다. 사월역 인근 시경계에서 정평동을 거쳐 직진하면 4km가 안 되지만, 경산시장으로 우회하면 시계외요금 징수 기준이었던 시경계에서 4km 기준을 충족하기 때문이다.[44] 버스 정류장 쪽, 정문에서 횡단보도 바로 건너 정차[45] 학생회에서 피터지게 싸워서 얻어낸 것이다. 권리는 공짜가 아니다.[46] 그때 학사대응단계가 1단계였기 때문에 실험/실습/실기 수업은 모두 대면으로 진행되었고, 교양과목과 일부 전공 이론 과목들도 대면으로 진행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다수의 학과들은 실시간 비대면 혹은 동영상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다만, 비대면 과목들도 시험을 대면으로 응시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47] 2021년 서버를 닫았다. (폐쇄)[48]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49] 메인 커뮤니티[50] 경영학과 학생으로 추정이 된다.[51] 학사 전반에 대한 정보력이 매우 뛰어난 편이다. 에브리타임 자유게시판에 올라오는 학사일정과 전반적인 학교생활에 대한 꿀팁이 자주 HOT게시판에 가는 것을 볼 수 있다.[52] 2023년 1학기 재무관리원론 오픈카톡방에서 학점을 공개한 적이 있었는데 4. 후반대로 매우 높은 편이다. 에브리타임 자유게시판에 과탑 인증을 한 적이 있다.[53] 중도지에스라고 불린다.[54] 학기 중에만 운영된다. 이마저도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 여파로 영업을 하지 않다가 2021년 3월 부분적으로 대면 수업이 재개되면서 다시 영업한 것이다.[55] 한국에서 교내에 스타벅스 매장이 두 곳 이상 입점된 곳은 영남대가 유일하다.[56] 정확히는 오렌지거리[57] 사실 계대동문은 예전부터 막창골목으로 유명한 곳이라 굳이 재학생이 아니더라도 대구시민이 자주 애용했던 곳이다.[58] 경주 교동고택과 경주최씨 가문 선산도 영남대 소유이다. 일부는 영남대에서 민간 업체에게 매각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59] 현재는 #자 부분에 시계가 설치되어 있다.[60] 가장 메이저한 설이라서 대구 시민은 물론 교직원들도 사실이라고 믿는 설이다[61] 캠퍼스 안에도 6-7개의 못이 있다. 실제로 이 못들을 다 보고 졸업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이 숨겨진 못들을 보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일부러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한다. 후술했듯 이 연못들을 전부 찾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미신도 있다.[62] 실제로 교내방송 기획 중 공대생이 제2인문관 내 강의실을 찾아가는데 강의실을 찾는데 길을 못 찾아 헤메는 경우도 발생했다.[63] 이 점은 인문관도 같으나 인문관은 상경관보단 건물이 작아 길 찾기가 쉽다.[64] 상대에 대형강의실이 많아 타과 수업이나 시험에 종종 이용되곤 한다.[65] 출입이 가능한 문도 10곳이 넘어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간 길 잃어버려 빠져나가지도 못한다.[66] 러브로드가 아니다![67] 바로 옆에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있다.[68] 후츄 혹은 심바라고 불린다. 이 친구를 부르면 애옹 소리와 함께 등장해서 엉덩이를 들이민다.[69] 사람들이 항몽이를 쓰다듬고 있으면 후츄(심바)가 와서 매서운 눈빛으로 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