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카테리나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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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 제2대 여제
예카테리나 1세
Екатери́на I


파일:1280px-Catherine_I_of_Russia_by_Nattier.jpg

출생
1684년 4월 15일
쿠를란트-젬갈렌 공국 야콥슈타트
(現 라트비아 예캅필스구 예캅필스)
사망
1727년 5월 17일 (향년 43세)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차르스코예 셀로
묘소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
재위기간
전러시아의 여제
1725년 2월 8일 ~ 1727년 5월 17일
서명
파일:예카테리나 1세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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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로마노프 가문
이름
폴란드어: 마르타 헬레나 스코브론스카
(Marta Helena Skowrońska)
러시아어: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 로마노바
(Екатери́на Алексе́евна Рома́нова)
아버지
사무엘 스코프론스키
어머니
엘리자베트 모리츠
형제자매
크리스티나, 안나, 카롤, 프레데리크
배우자
표트르 1세 (1712년 결혼 / 1725년 사망)
자녀
안나[1], 옐리자베타, 나탈리야
종교
개신교 (루터회)러시아 정교회


1. 개요
2. 생애
2.1. 황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2.2. 여제가 되다
2.3. 죽음
3. 대중매체에서



1. 개요[편집]


러시아 제국여제.

러시아 제국의 첫번째 여제로, 하녀에서 표트르 1세의 정부(情婦), 황후를 거쳐 황제까지 되는 어마어마한 신분 상승을 이룬 여성이다.


2. 생애[편집]



2.1. 황실에 들어가기 전까지[편집]


본명은 마르타 헬레나 스코브론스카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출신의 평범한 농민 또는 하급 공무원[1]의 자식이었던 그녀는 1689년 부모가 역병으로 사망하자 스웨덴령 리보니아의 유복한 발트 독일인 가정의 하녀로 들어가 일하게 된다.

여제 즉위 이후 그려진 초상화를 보면 다 살이 쪄서 전혀 그래보이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부터 매우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검은 머리가 아름다웠다고. 그녀의 고용주였던 요한 글뤼크(Johann Glück)가 일기에 자신의 아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을 정도였다. 17세의 나이에 스웨덴 군인과 약혼했으나 대북방전쟁에서 스웨덴군표트르 1세에게 패배해 철수하면서 이는 없던 일이 되었다. 이때 루스 차르국 군대의 포로가 되어 루스 차르국으로 끌려갔다는 설과, 고용주인 요한 글뤼크가 표트르 1세측의 번역가로 일하게 되면서 함께 모스크바로 떠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와중에 러시아 장교들과 관계를 맺은 적도 있었던 듯 하다.

모스크바에서도 그녀의 외모는 귀족들의 관심을 샀으며 곧 표트르 1세의 친구인 멘시코프 공작에게 팔려가 그의 정부가 되었다. 하지만 멘시코프 공작은 결혼하게 되면서 그녀와의 관계를 청산했고, 1703년에 멘시코프 공작의 저택을 방문한 표트르 1세가 그녀를 마음에 들어하여 그에게 헌납되었다.

1704년부터 표트르 1세의 정부가 되었다. 원래 표트르 1세의 황후였던 예브도키야 로푸히나는 이미 1698년 강제로 이혼당하고 수녀원에 유폐되어 있던 처지였던지라, 마르타는 표트르 1세의 여러 정부들 중에서 유독 그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1712년 정식적으로 황후로 책봉되어 예카테리나라는 이름을 받았다. 처음엔 루스 차르국 황후였지만 1721년 남편이 러시아 제국 황제가 되자 그녀도 러시아 제국 황후가 되었다. 황후가 된 후 바람을 피다가 걸려서 상대남[2]은 효수되었고 예카테리나도 하마터면 처형될 뻔 했지만, 표트르 1세가 종종 앓은 편두통 발작 때 표트르를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이 그녀밖에 없어서 황후 자리를 보존할 수 있었다.


2.2. 여제가 되다[편집]


표트르 1세의 전처 소생인 알렉세이 페트로비치 로마노프 황태자가 1718년 표트르 1세 정책에 대한 반역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고, 1725년 표트르 1세가 죽자 표트르 황태손을 제치고 표트르 1세의 측근들과 근위대가 힘을 합쳐 그녀를 즉위시켰다.[3] 그러나 여제로써 궁정에 호화로운 삶을 누리는 것에 관심을 두었던 반면 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문맹이었기 때문에 업무도 모르는터라 실질적인 권력은 귀족들에게 있었다.

여제가 된 이후 호화로운 궁정 파티와 만찬을 자주 즐겼기 때문에 살이 많이 찐 것을 초상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2.3. 죽음[편집]


그러나 예카테리나 1세는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에 행사에 참가했다가 감기에 걸린 것이 화근이 되어 나중에는 폐렴으로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이후 그녀의 둘째 딸 옐리자베타쿠데타를 일으켜 여제로 즉위했고, 나중에 맏딸 안나의 아들이 표트르 3세로 즉위했다. 이후의 역대 러시아 제국 황제들은 모두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1세의 후손이다.


3. 대중매체에서[편집]


막시밀리언 셀이 주연한 미국-이탈리아-소련 합작의 미니시리즈 <피터 대제>에서는 젊은 시절부터 표트르를 마음에 둔 지고지순의 순애보 처녀로 묘사되고 있다. 표트르가 스웨덴군에게 털린 후 고뇌할 때 사랑을 고백하고 지긋히 안아주는 건 명장면. 마지막에는 역사대로 가장 믿을만한 가족으로 인정되어 제위에 오른다. 더빙 성우는 송도영.
[1] 그녀의 부모의 신분은 제대로 알려진 게 없지만, 매우 한미한 신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2] 표트르 1세의 첫 정부인 안나 몬스의 오빠였다.[3] 로마노프 왕조 혈통이 아닌 황후가 황제가 되는게 이상하지만 그때 러시아는 군주 지명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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