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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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2.1. 도국(圖國)
2.2. 요적(料敵)
2.3. 치병(治兵)
2.4. 논장(論將)
2.5. 응변(應變)
2.6. 여사(勵士)
3. 특징
4. 손자병법과의 관계
5.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6. 여담



1. 개요[편집]


고대 중국의 병법서이자, 무경칠서 중의 하나. 손자병법과 함께 무경칠서의 양대산맥으로 불린 병법서로, 흔히 손자병법과 하나로 묶어 손오병법(孫吳兵法)이라 칭했다.

저자는 손자를 비롯하여 춘추전국시대의 저명한 병법가 중 한 명이자 정치가이기도 했던 76전 무패의 오기(吳起).

저서인 《오자병법》은 원래는 48편이었다 하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6편뿐이다. 현재 전해지는 《오자병법》의 내용은 위나라 문후와 무후와의 대화 내용을 담은 것이다.


2. 내용[편집]


내용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13편의 손자병법에 비해 다수 유실된 것으로 추정. 한서 예문지에 따르면 오자병법은 48편이라고 하였다. 일설에는 같이 등재된 손자병법이 전부 82편이라고 하는데, 오자병법 48편(혹은 68편)와 손자 13편을 포함하여 기록된 것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현재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현재 오자병법은 현재 도국, 요적, 치병, 논장, 응변, 여사 등의 6편만 남아있을 뿐이다.

오자병법은 손자병법과 달리(적어도 현재 남아있는 6편으로 미루어 볼 때) 전략과 같은 거대 담론보다는 구체적인 용병술과 그 방법론에 그 중점을 두고 있다.

내용은 위 문후나 무후와 오기의 대화 내용들. 문후나 무후가 묻고, 이에 오기가 대답하여 이 대답에 의해 생겨난 의문이나 곤란한 상황을 왕이 물으면, 오기가 입에 기름 바른 듯이 대답한다. 이들 내용에 따르면 무경칠서 대부분이 그러하듯 전략, 전술 뿐만 아니라 치국강병을 함께 논했으며, 유실된 부분에서는 권모술수나 계략 등을 함께 논하지 않았을까 추측되고 있다.


2.1. 도국(圖國)[편집]


오기가 유생(儒生) 차림으로 병법을 진언코자 위문후(魏文侯)를 배알하였다. 그런데 위문후가 "과인은 전쟁을 좋아하지 않소." 하고 너스레를 떨자, 오기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드러나는 현상을 보면 뒤에 숨겨진 것을 짐작할 수 있고, 과거를 미루어 미래를 살필 수 있습니다. 주군께서는 어찌 속뜻과 다른 말씀을 하십니까? 지금 주군께서는 사철 내내 짐승의 가죽에 옻칠을 하고 채색을 입히며 문양을 그려 넣게 하고 계십니다. 이런 갑옷은 겨울에 입어도 따뜻하지 않고, 여름에도 시원하지 않습니다. 또 2장 7척이나 되는 긴 창과 1장 2척의 단창을 만들고, 수레에 가죽을 씌우고 튼튼한 바퀴를 달게 하고 계십니다. 이런 창과 전차는 보기에 아름답지도 않을 뿐더러, 사냥하기에도 그리 적합하지 않습니다. 저는 주군께서 이런 것들을 어디에 쓰려고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공격하고 방어할 만한 군사력을 충분히 갖췄다 하더라도 이를 운용할 인재가 없다면, 이는 마치 알을 품은 닭이 너구리와 싸우고, 새끼 달린 어미 개가 호랑이에게 덤비지만, 이들이 투지가 있더라도 결국 잡아먹히고 마는 경우와 같게 될 것입니다.

옛날 승상씨(承桑氏)는 덕만 닦고 군사력을 소홀히 하다가 망국의 화를 입었으며, 유호씨(有扈氏)는 군사력만 믿고 전쟁을 일삼다가 사직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영명한 군주는 이러한 사실을 거울 삼아 안으로 문덕(文德)을 닦고 밖으로 무비(武備)에 힘쓰는 것입니다. 군주로서 적의 침략을 받고도 나아가 싸우지 않는 것은 의롭다[義] 할 수 없으며, 전쟁에 패하고 나서 죽은 병사의 시신을 보고 슬퍼하는 것은 어질다[仁]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위문후는 친히 자리를 마련하고 자기 부인에게 술을 따르게 하였으며, 종묘(宗廟)로 가서 오기에게 술잔을 올려 고하게 한 뒤, 대장군으로 삼아 서하(西河)를 지키도록 하였다. 이후 위나라는 제후들과 76회의 큰 싸움을 벌여 64회의 대승을 거두고 나머지는 무승부를 이루면서 사방으로 천리나 영토를 확장하였으니, 이는 모두 오기의 공이었다.

오자(吳子)가 말하였다.

"옛날 나라를 잘 다스렸던 군주들은 반드시 먼저 백성을 교화하고 만민과 친화를 이루는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그것은 인화(人和)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군주가 각별히 유념해야 할 불화(不和)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나라가 하나로 결속되어 있지 않으면 군대를 출진시켜서는 안 됩니다.

둘째, 군(軍)이 하나로 뭉쳐있지 않으면 부대를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셋째, 진영(陳營)이 단합되어 있지 않으면 나아가 싸우게 해서는 안 됩니다.

넷째, 전투에 임하여 일사불란하지 않으면 결전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때문에 영명한 군주는 반드시 나라의 화합을 이루고 나서 국가대사를 도모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혹시 군주 자신의 생각이 잘못일지 몰라 반드시 종묘에 고한 다음, 거북점을 치고 천시를 살펴 길조로 나타나야만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백성들은 군주가 자신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희생을 아까워한다고 믿게 됩니다. 이와 같이 된 후에 군주가 전쟁에 임한다면 병사들은 용감히 싸우다 죽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물러나 살아 남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

오자가 말하였다.

"무릇 도(道)란 근본으로 돌아가 시작하는 것이요, 의(義)는 마땅한 일을 실행하여 성취하는 것이며, 모(謀)란 해악을 막고 이로움에 나아가는 것이요, 요(要)는 업적을 보전하고 성과를 지키는 것입니다. 만약 어느 지도자의 행위가 도에 합당하지 않고, 그 조치가 의에 부합하지 않으면서 지위만 높게 있으면 반드시 재앙이 그에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도(道)를 지켜 만민을 평안케 하고, 義(의)로써 매사를 처리하며, 禮(예)에 따라 행동하고, 仁(인)으로 포용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의 덕을 잘 닦으면 나라가 흥성하고, 이를 소홀히 하면 나라가 쇠망하였습니다. 따라서 옛날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폭군인 하(夏)나라 걸왕(傑王)을 쳤을 때 하나라 백성들은 오히려 기뻐했고,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쳤을 때 은나라 백성들은 이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거사는 바로 하늘과 민심에 순응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무릇 국가를 잘 다듬고 군사력을 기르려면 반드시 예(禮)를 가르치고 의(義)를 고취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알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알게 되면 크게는 적을 향해 공격하기에 충분하고, 작게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싸워서 이기기는 쉬워도 이를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천하가 어지러울 때 다섯 번을 싸워 이긴 나라는 결국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요, 네 번 만에 이긴 나라는 피폐해질 것이며, 세 번 만에 이긴 나라는 패자(覇者)가 되고, 두 번 만에 이긴 나라는 왕(王)이 될 것이며, 한 번에 쳐 이긴 나라는 황제[帝]가 되리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여러 번 이겨서 천하를 손에 넣은 자는 드물고, 망한 자가 오히려 많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명분을 다투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익을 다투기 때문이며,

셋째는 증오심이 쌓였기 때문이고,

넷째는 나라 안이 어지럽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나라에 기근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쟁에 임하는 군대에는 의병(義兵), 강병(強兵), 강병(剛兵), 폭병(暴兵), 역병(逆兵)의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폭정을 물리치고 혼란에서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군대를 '의병'이라 하고,

군사력만 믿고 정벌에 나선 군대를 '강병(強兵)'이라 하며,

분노로 인해 일으킨 군대를 '강병(剛兵)'이라 하고,

도의를 저버리고 이익을 탐해 나선 군대를 '폭병'이라 하며,

나라가 어지럽고 백성이 신음하고 있는데도 동원한 군대를 '역병'이라 합니다.

이러한 다섯 가지 군대에는 각각 대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의병에게는 반드시 예(禮)로써 대처해야 하고,

강병(強兵)에게는 겸양의 자세로 임해야 하며,

강병(剛兵)에게는 설득을 해야 하고,

폭병에게는 속임수로 응수하며,

역병에게는 권모술수를 써서 대적해야 합니다."

위무후가 물었다.

"군대를 육성하고 인재를 등용하며 나라를 튼튼히 하는 방법에 관해 의견을 듣고 싶소."

그러자 오기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옛날의 명군들은 반드시 군신(君臣) 간의 예의와 상하간의 법도를 세우고, 관리와 백성들이 저마다 자기 직분에 충실하도록 하였으며, 풍습에 따라 올바르게 가르치고, 훌륭한 인대를 가려 뽑아 부족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였습니다. 옛날 제환공(齊桓公)은 5만의 군사로 패자(覇者)가 되었고, 진문공(晉文公)은 4만의 전위대로 자신의 뜻을 달성하였으며, 진목공(秦穆公)은 3만의 특공대로 주변 적대국들을 굴복시켰습니다. 이처럼 강국의 군주들은 자기 백성들의 특성을 잘 헤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백성들 가운데 담력과 기백이 있는 자들로 한 부대[卒]를 편성하고, 기꺼이 전쟁터로 달려가 자신의 용맹과 충성심을 보이려고 하는 자들로 또 한 부대를 편성하며, 높은 곳을 잘 뛰어넘고 발이 빨라 잘 달릴 수 있는 자들로 다시 한 부대를 편성하고, 관직에 있다가 과실로 쫓겨나 다시 공명을 얻고자 하는 자들로 한 부대를 편성하며, 전에 지키던 성을 버리고 달아나 그 불명예를 씻고자 하는 자들로 한 부대를 편성하십시오.

이렇게 편성한 다섯 부대는 그야말로 군의 정예입니다. 이러한 정예들로 3천 명만 있으면 어떠한 포위망도 돌파할 수 있으며,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위무후가 이렇게 물었다.

"진을 치면 반드시 안정되고, 수비에 들어가면 반드시 견고하며,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방법에 대해 듣고 싶소."

그러자 오자가 대답하였다.

"바로 보여 드릴 수도 있는데 듣기만 하시겠습니까? 주군께서 유능한 자를 위에 앉히고, 무능한 자를 아래에 두실 수만 있다면 진지는 안정됩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하며 관리들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면 방어태세는 견고해 집니다. 또 백성들이 군주를 옳다 여기고 적국을 나쁘다 여기게 할 수만 있다면 전쟁은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요약: 위문후가 전쟁을 준비하던 중 오자가 와서 조언을 한다. 그 내용인 즉,
  • 민심이 천심이니 이를 규합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온전히 규합된 뒤에야 전쟁을 논하라. 옛 군주가 종묘에 고하여 점을 친 것 역시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닐까 행한 것이며 앞서 말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 대의명분을 지켜 행동해 민심이 자신을 따르게 하라.
  • 싸워서 이길 수는 있어도 이를 지키는 건 어려우니라. 여러 번 이긴 자는 재앙을 면치 못하고, 한 번에 쳐 이긴 자가 황제가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니.
  • 전쟁에 임하는 군대의 종류에는 다섯 종류가 있고 대처하는 방법 역시 이와 같다.
    • 의로운 군대에는 반드시 예의를 갖추어 대처하라.
    • 힘만 믿고 나대는 깡패에게 숙여야 한다면 일단 숙이라.
    • 분노로 인해 일어선 이들은 설득을 시도해야 한다.[1]
    • 이익만을 좇는 자들은 속임수로 물리치라.[2]
    • 천하가 어지러운 가운데 전쟁을 벌인 자들은 권모술수로 내부를 혼란시켜 응수하라.[3]
  • 군을 육성하고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다른 것 없다. 예로부터 법을 엄격히 하여 상벌을 명확히 하고, 각자의 의무에 충실하게 하며, 특성에 따라 정예병을 가려뽑았다. 특히 심지가 굳고 체력이 좋은 이들이 정예병으로 제격이며, 이들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 담력과 기백이 큰 자들
    • 용맹과 충성심이 높은 자들
    • 발이 빠른 자들[4]
    • 과오로 관직에서 쫓겨나 그 죄를 씻고 복권되고자 하는 자들
    • 성을 버리고 달아난 불명예를 씻고자 하는 자들
  • 위 사항을 준수하여, 유능한 자가 지휘하게 두고, 백성들이 관리와 군주를 믿고 생업에 종사하며 적국을 적대하게 만들라. 그리하면 전쟁은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없으니.

2.2. 요적(料敵)[편집]


위무후(魏武侯)가 오자에게 물었다.

"지금 진(秦)은 우리의 서쪽을 위협하고, 초(楚)는 남쪽을 둘러싸고 있으며, 조(趙)는 북쪽에서 핍박하고, 제(齊)는 동쪽에서 대치하고 있소. 또 연(燕)은 우리의 후방을 차단하고 있고, 한(韓)은 전방에 버티고 있소. 이처럼 여섯 나라가 우리를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어 형세가 몹시 불리하기에, 과인은 이것이 걱정이오. 무슨 좋은 방책이 없겠소?"

이에 오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무릇 국가를 안전하게 지키는 길은 무엇보다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 주군께서는 이미 이러한 경각심을 갖고 계시니 화를 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제부터 여섯 나라의 실상을 하나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나라의 군대는 두터워 보이지만 견실하지 못하며, 진나라의 군대는 산만하여 제각기 싸우고, 초나라의 군대는 정연하여 보이나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또 연나라의 군대는 방어엔 능하지만 퇴각할 줄 모르며, 삼진(三晉)의 군대는 체제는 잡혀 있지만 실전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제나라의 국민성은 강직하고 국력도 튼튼하지만, 군주와 신하들이 모두 교만하고 사치를 즐기며 백성들에게 소홀합니다. 정치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지만 계층 간의 대우가 불공평합니다. 진중에도 상하가 두 마음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앞은 두터우나 뒤는 허술합니다. 그래서 제가 '두터워 보이지만 견실하지 못하다' 고 한 것입니다. 이를 격파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우리 부대를 셋으로 분리하여 그들의 좌우측을 급습하고, 후방을 위협하며 추격해 들어가면 그 진열은 반드시 허물어질 것입니다.

진나라는 국민성이 사납고 지세가 험준합니다. 정치가 엄격하며 상벌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국민들은 서로 양보할 줄을 모르며 모두가 공명심에 불타 강한 전투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산만하여 제각기 싸운다' 고 한 것입니다. 이를 격파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먼저 탐낼 만한 미끼를 보여주고 유인하면 이들은 서로 이를 얻고자 장수의 지휘로부터 벗어날 것입니다. 이처럼 체계가 문란해진 틈을 타서 각개격파를 하고 매복공격을 가하면 틀림없이 적장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초나라는 국민성이 여린 반면, 국토가 광대합니다. 따라서 외침이 잦아 정치가 늘 어수선하며 백성들은 지쳐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정연하게 보이나 오래 버티지 못한다' 고 한 것입니다. 이를 격파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먼저 진지를 기습하여 기선을 제압한 뒤, 슬쩍 치고 재빨리 빠지는 전법을 반복합니다. 이때 단지 이들의 전투력을 소모시키며 지치게 만들되, 직접적인 교전은 피합니다. 이렇게 하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연나라의 국민들은 고지식하고 매우 신중합니다. 또 용기를 중시하며 속임수를 잘 쓰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방어에 능하나 퇴각할 줄 모른다' 고 한 것입니다. 이를 격파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먼저 적과 접촉하여 압박을 준 후, 약을 올리고 멀리 후퇴합니다. 추격하면 달아나는 척 하다가 갑자기 역습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적장은 우리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여 의구심을 갖게 되고, 병사들은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때 아군의 전차와 기병을 적절히 운용하여 후방을 차단하면 틀림없이 적장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삼진(三晉)의 조(趙)와 한(韓)은 중원에 있는 나라라서 국민성이 온화합니다. 정치는 평온하지만 백성들은 거듭되는 전쟁에 이골이 나도록 익숙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장수의 권위가 높지 않고 녹봉도 아주 낮으며, 병사들은 죽음을 무릅쓰려 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체계는 갖춰졌지만 실전에는 쓸모가 없다' 고 한 것입니다. 이를 격파하는 방법은 막강한 진용으로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며, 공격해 오면 저지하고 후퇴하면 추격함으로써 적군을 피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지금 육국(六國)의 형세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위(魏)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부대든지 호랑이처럼 용맹한 병사가 있는가 하면, 힘이 세서 솥을 들어올리는 자도 있고, 걸음이 말보다 빠른 자도 있을 것이며, 적의 군기를 빼앗고 적장을 사로잡을 만한 자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병사들은 선별하여 아끼고 우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군대의 핵심전력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 가운데 각종 병기를 잘 다루고, 신체조건이 뛰어나며, 전투의지가 왕성한 자들은 반드시 직위를 높여주어야만 싸움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들의 부모처자를 돌보아 주고, 상벌을 엄정하게 하면 병사들은 진지를 끝까지 사수하게 될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이러한 점을 널리 헤아려 실천하신다면 두 배가 넘는 적도 능히 격퇴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오자의 말을 듣고, 위무후가 말하였다.

"옳은 말씀이오."

오자가 말하였다.

"적정(敵情)을 살펴서 길흉을 따지지 않고도 싸울 수 있는 경우는 다음 여덟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 바람이 심하게 부는 혹한의 날씨에 아침 일찍 숙영시설을 거두고 병사들의 고통은 무시한 채 얼어붙은 강을 무리하게 건너려 할 때입니다.

둘째, 무더운 여름날에 출발에 늦어 행군 도중 휴식을 취하지 못했는데도, 병사와 말의 허기와 갈증은 돌보지 않고 계속 장거리 행군을 강행할 때입니다.

셋째, 출병한지 오래되어 식량이 떨어졌으며, 그 나라 백성은 조정을 원망하고 불길한 징조가 자주 나타남에도 군주가 이를 무마하지 못할 때입니다.

넷째, 군수품이 고갈되고 땔감도 모자란데, 날씨마저 악천후가 거듭되어 현지 조달이 불가능한 경우입니다.

다섯째, 병력은 적고, 수질과 지형이 나빠 병사와 말이 질병에 시달리는데도 증원군이 오지 않을 때입니다.

여섯째, 오랜 행군 중에 해가 저물어 병사들은 지치고 사기가 떨어졌으며, 귀찮은 나머지 식사도 하지 않고 갑옷을 벗고 쉬려고만 할 때입니다.

일곱째, 지휘관은 무능하고 간부들은 경솔하며, 병사들은 단결되지 않아 자주 동요하고, 상호간에 협조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입니다.

여덟째, 진지 배치가 불안정하고 숙영태세도 엉성하며, 지형을 높은 곳에 선정해 절반 가량이 노출되어 있을 때, 이러한 적들은 지체없이 공격해도 무방합니다.

반면에 길흉을 따져 볼 것도 없이 적과의 교전을 피해야 할 경우는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국토가 넓고 인구가 많으며 경제력이 풍부할 때입니다.

둘째, 군주가 백성을 아끼고, 정치를 잘 하여 혜택이 전 백성들에게 골고루 미칠 때입니다.

셋째, 상벌이 공정하고 항상 적시에 이루어질 때입니다.

넷째, 전공을 세운 자가 높은 지위에 오르고,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될 때입니다.

다섯째, 병력이 많고 군비가 충실할 때입니다.

여섯째, 외교에 능하여 유사시 인접국이나 강대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때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비교하여 우리가 적보다 못하면, 절대로 싸움을 피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승산이 있을 때 공격하고, 어렵다고 판단되면 물러선다' 는 것입니다."

무후가 물었다.

"나는 적의 외형을 보고 내면을 파악하며, 적이 전진하는 것을 살펴 그 목표가 무엇인지 짐작함으로써 승부를 예측할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싶소. 여기에 관해 조언을 들려 줄 수 있겠소?"

그러자 오자가 대답하였다.

"전진해 오는 적이 산만하고 경계가 소홀하며, 깃발이 무질서하게 움직이고 병사와 말이 주위를 자주 살피면, 한 명으로 열 명을 무찔러 꼼짝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또 주변국과 동맹관계가 돈독하지 못하고, 군신관계가 원만치 않으며, 방어진지가 허술하고, 軍令(군령)이 엄격히 시행되지 않으며, 전군이 뒤숭숭하여 공격과 후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적이라면 절반의 병력만으로 충분히 격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백 번 싸워도 지지 않을 것입니다."

무후가 언제 적을 반드시 공격해야 하는지 묻자, 오자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공격은 반드시 적의 허와 실을 면밀히 분석하여 그 약점을 노려야 합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경우입니다.

적이 먼 곳에서 막 도착하여 대오가 정돈되지 않았으면 공격할 수 있습니다.

적이 식사를 마치고 전투 태세가 아직 갖춰지지 않았을 때 공격할 수 있습니다.

무질서하게 달리는 적은 공격할 수 있습니다.

적이 일에 시달려 지쳐 있을 때 공격할 수 있습니다.

불리한 지형에 자리잡고 있는 적은 공격할 수 있습니다.

시기를 자주 놓치는 적은 공격할 수 있습니다.

적이 먼 길을 행군하여 대열의 후미가 아직 휴식을 취하지 못했을 때 공격할 수 있습니다.

적의 병력이 절반쯤 강을 건넜을 때 공격할 수 있습니다.

험한 길이나 좁은 길에 있는 적은 공격할 수 있습니다.

깃발이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적은 공격할 수 있습니다.

진지를 자주 이동하는 적은 공격할 수 있습니다.

장수가 병사들과 떨어져 있는 적은 공격할 수 있습니다.

공포에 떨고 있는 적은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적들은 먼저 정예부대를 뽑아 돌파하고 본대를 나누어 계속 몰아치되, 신속히 공격해야 하며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요약: 위무후가 오자와 함께 적을 맞아 싸우는 법과 현황을 논한다. 오자는 이미 위무후가 경각심을 잘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 오자는 위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6국의 문화 및 군의 현황에 따라 알맞을 것으로 보이는 전술을 제시한다.
    • 제나라: 고위층이 사치를 즐기고 계층간 대우가 매우 불공평하여 상하가 서로를 믿지 못하여 앞은 두터우나 뒤는 허술하다. 좌우로 급습하여 후방을 위협하여 추격해 들어가면 전열은 무너진다.
    • 진나라: 지세의 영향을 받아 사람도 험악하고 정치가 엄격하며 상벌이 분명하다. 전투의지 역시 높으나 공명심에 눈이 멀어있다. 탐스러운 미끼로 유인해 전열을 붕괴시킨 뒤 각개격파를 하면 무너진다.
    • 초나라: 안 그래도 국민성도 여린데 국경이 너무 넓어 백성들은 전쟁에 지쳤다. 기선을 제압하고 치고 빠져 저들을 지치게 하면 알아서 물러갈 것이다.
    • 연나라: 고지식하고 신중하며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그럼 우리가 약을 올려 쫓아오게 만든 다음 역습도 한 번씩 가하면서 가둬서 먹어버리면 된다.
    • 삼진(조나라와 한나라): 중원에 있으며, 전쟁에는 익숙하나, 그로 인해 장수들의 급료는 낮고 병사들은 의욕이 없다. 막강한 진용으로 위압감을 주고 공격을 잘 저지하고 후퇴하면 맹렬히 추격해 적을 지치게 만든다.
    • 위나라가 해야 할 것: 위에서 언급했던 심지가 굳고 체력이 좋으며 여러 특성을 지닌 자들을 각 부대에 맞게 배치하고, 능력과 의지에 따라 직급과 급료를 높여주어 사기를 올려주며, 이들의 가족도 돌보아 주고 상벌을 엄히 집행하라. 그러면 두 배가 넘는 적도 능히 물리칠 것이니.
  • 이어 오자는 적정의 상황에 따라, 길흉을 따지지 않고서도 싸울 수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가 존재하며, 이를 잘 따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 싸울 수 있을 때
      • 혹한의 날씨에 아침 일찍 강을 건너려 할 때.[5]
      • 혹서기에 병사와 말의 상태를 살피지 않고 장거리 행군을 강행할 때[6]
      • 출병한지 오래되어 식량도 없고 백성들이 조정을 원망하여, 흉조가 자주 나타남에도 군주가 무마하지 못하는 것이 보일 때.
      • 보급품이 고갈되었는데 악천후가 거듭되어 현지 조달도 못할 때.
      • 병력은 적고 병사와 말이 질병에 시달리는데도 증원의 기미가 없을 때.
      • 너무 지쳐 밥도 안 먹고 쉬려고만 할 때.[7]
      • 지휘관이 무능하고 간부가 경솔하여 병사들이 딱 봐도 우리의 주적은 간부를 외치고 있을 때.
      • 진지 배치가 이상하고 초병 경계 근무 상황도 엉성하고 지형을 높은 곳에 선정해 절반 가량이 노출되어 있을 때.
    • 싸울 수 없을 때
    • 위와 같이 깃발이 무질서하고 적이 산만한 것이 보이면 한 명으로 열 명을 무찌를 수 있고, 많은 면에서 뒤숭숭한 적이라면 백번 싸워도 지지 않을 것이다.
  • 오자는 또한 위 상황에 더불어 지체없이 반드시 들이쳐야만 할 때 역시 존재하며 이는 다음과 같다고 역설한다.[10]
    • 적이 먼 곳에서 막 도착하여 대오가 정돈되지 않았을 때.
    • 적이 식사를 마치고 전투 태세가 아직 갖춰지지 않았을 때.
    • 무질서하게 달리고 있을 때.
    • 적이 일에 시달려 지쳐 있을 때.
    • 불리한 지형에 자리잡고 있는 적.[9]
    • (나아가고 물러서야 할)시기를 자주 놓치는 적.
    • 적이 먼 길을 행군하여 대열의 후미가 아직 휴식을 취하지 못했을 때.
    • 적의 병력이 절반쯤 강을 건넜을 때.
    • 험한 길이나 좁은 길에 있는 적.
    • 깃발이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적.
    • 진지를 자주 이동하는 적.
    • 장수가 병사들과 떨어져 있는 적.
    • 공포에 떨고 있는 적.

2.3. 치병(治兵)[편집]


위무후가 물었다.

"용병에서 우선시 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소?"

여기에 오기가 대답했다.

"먼저 사경(四輕), 이중(二重), 일신(一信)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슨 뜻이오?"

"땅이 말을 가벼이 여기고, 말이 수레를 가벼이 여기며, 수레가 사람을 가벼이 여기고, 사람이 싸움을 가벼이 여기도록 해야 합니다. 지휘관이 지형을 잘 선택할 수 있다면 말이 경쾌하게 달릴 수 있을 터이니 땅이 말을 가벼이 여길 것이요, 제때에 먹이를 주면 힘이 넘치므로 말은 수레를 가벼이 여길 것이며, 바퀴 축에 기름칠을 충분히 하면 수레는 사람을 가볍게 여길 것이고, 병기와 갑옷이 예리하고 튼튼하면 병사들은 싸움을 가벼이 여길 것이니 이를 사경(四輕)이라 합니다.

나아가 싸운 자에게는 큰 상을 주고, 뒤로 물러난 자는 무거운 형벌을 내려야 합니다. 이를 이중(二重)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벌의 시행이 공정하고 분명하여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이를 일신(一信)이라 합니다. 이러한 이치를 헤아려 시행하는 것이 바로 승리의 원동력입니다."

위무후가 물었다.

"전투에서 승리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오?"

이에 오자가 대답하였다.

"잘 육성된 군대라면 승리합니다."

"병사의 수에 달려있는 것은 아니오?"

"만약 군법과 지휘체계가 명확하지 않고 상벌이 불공정하다면, 병사들은 징을 쳐도 멈추지 않고 북을 울려도 나아가지 않을 터이니, 백만 대군이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른바 잘 육성된 군대란 평상시에는 예절이 깎듯하고, 일단 움직였다 하면 위풍이 당당하여 공격에 당할 상대가 없고, 후퇴하면 쫓아오지 못합니다. 전진과 후퇴에 절도가 있고, 좌우 이동이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지면, 설령 부대가 단절되더라도 진을 유지하고, 분산되어 있더라도 대오를 갖추게 됩니다. 또한 상하가 동고동락하고, 생사를 함께 합니다. 이러한 군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 흩어지는 일이 없으며, 전투가 벌어지면 지칠 줄을 모르므로 어디에 투입해도 천하에 당할 자가 없습니다. 이를 일컬어 '부자지병(父子之兵)'이라 합니다."

오자가 말하였다.

"행군의 원칙은 전진과 정지의 법칙을 어기지 않고, 식사 때를 놓치지 않으며, 인마의 힘을 탈진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장수의 명령이 권위가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명령이 서야 잘 육성된 군대가 됩니다. 만약 전진과 정지가 무질서하고, 식사 시간이 부정기적이며, 인마가 피로해도 쉬지 않는다면, 그것은 명령이 서지 않은 이유입니다. 장수의 명령이 무너지면 그 부대는 평소에도 질서가 문란하고, 전투가 벌어지면 패하게 됩니다."

오자가 말하였다.

"전쟁터란 항상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죽기를 각오한 자는 살고, 요행히 살아남기를 바라는 자는 죽습니다. 훌륭한 장수는 그 임전 태도가 마치 물이 세어 침몰하는 배나 불에 타 무너지는 집에 있는 사람처럼 결연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지모가 뛰어나고 용맹스러운 적과 맞붙어 싸울지라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자고로 용병에 있어서의 가장 큰 병폐는 주저함이요, 전군을 재앙으로 몰고 가는 것은 의구심을 갖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오자가 말하였다.

"군인이 전사하는 것은 통상 전투기술에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전투에서 패하는 것은 전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용병에는 교육과 훈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전투기술을 배우면 열 명을 가르칠 수 있고, 열 명은 백 명을, 백 명은 천 명을, 천 명은 만 명을, 만 명은 전군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전술에 있어서는 먼 곳에서 오는 적을 기다리고, 적이 피로해지기를 기다리며, 적이 허기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원진(圓陳)을 갖추다가 방진(方陳)으로 바꾸고, 앉았다가 일어서고, 가다가 멈추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기고, 전진하다 후퇴하고, 나누었다 합치고, 모였다가 흩어지는 등 매번 변화하면서 훈련시키고 나서 여기에 숙달이 되면 비로소 병기를 다루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장수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오자가 말하였다.

"전투훈련 요령은 이렇습니다. 키가 작은 자는 창을 들고, 키가 큰 자는 활을 들며, 힘이 센 자는 깃발을 들고, 용감한 자는 징과 북을 들게 하며, 허약한 자는 잡일을 시키고, 영리한 자는 참모로 씁니다. 예하 부대간에는 서로 협력체제를 유지하여 서로 지원하고 보호하게 합니다.

부대 통제신호는 북을 한 번 치면 병기를 갖추고, 두 번 치면 진법(陳法)을 행하고, 세 번 치면 식사를 하고, 네 번 치면 출동채세를 갖추며, 다섯 번 치면 대열을 갖춥니다. 이렇게 해서 각 부대의 북소리가 일치하는지 확인한 후에 비로소 군기(軍旗)를 세우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위무후가 물었다.

"삼군(三軍)이 전진하고 멈추는 데에도 원칙이 있지 않소?"

오기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천조와 용두의 지형은 피해야 합니다. '천조'란 큰 계곡의 입구를 말하며, '용두(龍頭)'는 큰 산의 산기슭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진을 쳤을 때는 반드시 왼쪽에 청룡기(靑龍旗), 오른쪽에 백호기(白虎旗), 앞쪽에 주작기(朱雀旗), 뒤쪽에 현무기(玄武旗)를 꽂아 방위를 표시하고, 중앙에 초요기(招搖旗)를 세워 지휘소로 삼습니다. 전투에 임할 때에는 바람을 잘 살펴서 바람이 적을 향해 불면 함성을 지르며 공세를 취하고, 역풍이 불면 진지를 견고히 하여 수비를 해야 합니다."

위무후가 물었다.

"군마를 사육하고 관리하는 방법은 어떻소?"

이에 오기가 대답하였다.

"말은 거처를 편안케 하고, 먹이를 제때에 주며, 배가 고프거나 부르지 않도록 양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겨울에는 마굿간을 따뜻이 하고 여름에는 서늘하게 해주며, 털과 갈기를 잘 깎아주고 발국이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눈과 귀는 잘 덮고 가려서 놀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내달리는 것을 연습하며, 나아가고 멈추는 것을 훈련시키고 사람과 말이 친숙해진 후에 써야 합니다. 안장, 굴레, 재갈, 고삐 등의 마구는 반드시 온전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말은 부리다가 손상을 입는 것이 아니라 처음 사육할 때 손상되며, 먹이가 모자랐을 때보다 너무 많이 먹었을 때 탈이 나는 법입니다. 먼 길을 갈 때는 종종 내렸다가 타도록 해서 차라리 사람이 피곤할 지언정 말을 지치게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이처럼 말이 항상 여력을 갖도록 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치에 밝은 자만이 천하를 누빌 수 있는 것입니다."


요약: 오자는 위무후에게 병사를 다룰 때는 이 원칙을 우선하라고 한다.
  • 4가지를 가볍게
    • 지면이 말을 가볍게 지탱해야 한다.[11]
    • 말이 수레를 가볍게 여겨야 한다.[12]
    • 수레가 사람을 가벼이 여겨야 한다.[13]
    • 사람이 싸움을 가벼이 여겨야 한다.[14]
  • 두 가지를 무겁게 - '상'은 통 크게, '벌'은 무겁게.
  • 한결같은 믿음을 - 상벌을 시행하는데 공정하고 분명하여 신뢰를 주어야 한결같은 믿음을 얻을 수 있다.

  • (병사의 수에 달려있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지휘체계가 명확하지 않고 상벌이 엉망이면 백만대군이 허깨비다. 잘 육성된 군대는 결국 한 덩어리로 움직여 흩어지지 않는다.
    • 행군이란 움직일 때와 멈출 때를 아는 것, 식사를 제때 하는 것, 인마를 탈진시키지 않는 것. 장수에게 권위가 있는지는 위 세 사항이 장수의 명령에 따라 집행되는지가 제일 중요. 권위가 없으면 이 모든 것이 무질서해지므로 반드시 패한다.
    • 전쟁터는 죽음이 도사리는 곳.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고자 내빼면 죽는다. 훌륭한 장수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초연하며, 이로서 모든 면에서 뛰어난 적과도 싸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승리하기까지 한다. 주저함과 의구심은 군을 다루는 데 가장 위험한 요소이다.
    • 군인이 죽는 이유는 보통은 숙달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므로, 교육과 훈련이 제일 중요하다. 보병 진형을 훈련시켜 숙달되게 하면 비로소 무기를 잡게 한다.
    • 체격에 따라 알맞은 무기를 지급하고, 일선에 서기에 허약한 자에게는 잡일을, 똘똘한 놈은 참모를 시키며, 예하 부대들은 협력체제를 유지하여 서로 지원하고 보호한다(제병협동).
    • 신호 체계를 잡아 특정 신호에 맞춰 특정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15]
    • 진을 칠 때에는 산기슭과 계곡을 피하고[16], 또한 항상 중심과 전후좌우에 신호기를 두어 스스로의 상대방위를 살피게 하여 진형을 갖춘다. 바람 역시 등바람이 불어오면 함성을 지르며 공격을 하고, 맞바람이 불어오면 수성을 한다.

군마 사육은 겨울엔 마구간을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눈과 귀는 잘 가려 놀라지 않게, 말이 탈진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것 등등의 내용이다.[17]

2.4. 논장(論將)[편집]


오자가 말하였다.

"문(文)과 무(武)를 겸비하는 것은 지휘관의 요건이요, 강(剛)과 유(柔)를 겸용하는 것은 용병의 요건입니다. 사람들이 장수를 논할 때 흔히 용(勇)만을 보는 경우가 많지만, 용(勇)은 지휘관의 덕목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용장(勇將)은 무턱대고 적과 싸우려고만 하는 법입니다. 경솔하게 싸울 줄만 알고 득실을 살필 줄 모른다면, 훌륭한 장수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장수가 늘 새겨야 할 사항은 다섯 가지가 있는데 이(理)·비(備)·과(果)·계(戒)·약(約)이 그것입니다. 이(理)란 많은 병사들을 적은 인원 다루듯 지휘하는 '통솔력'이고, 비(備)는 문 밖에 적이 있는 것처럼 대처하는 '준비태세'이며, 과(果)란 적과 싸울 때 살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과감성'이고, 계(戒)는 전투에 이겨도 마음이 전투를 시작할 때와 같은 '신중성'이고, 약(約)은 군령이 간단명료하여 복잡하지 않은 '간결성'을 뜻합니다.

일단 출전명령을 받으면, 집에 알리지 않고 나아가 적을 무찌른 후에 돌아왔다고 말하는 것이 지휘관의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출전하는 지휘관에게 명예로운 죽음은 있을지언정 수치스러운 삶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자가 말하였다.

"전투의 승패를 가늠하는 요소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가 기세(氣勢)이고, 둘째가 지세(地勢)이며, 셋째가 용병술(用兵術)이고, 넷째가 전투력(戰鬪力)입니다.

백만 대군이라 하더라도 그 위용과 사기는 지휘관의 역량에 좌우됩니다. 이를 '기세'라 합니다. 길이 좁고 험하며 큰 산이 가로막고 있는 지형은 열 명이 지켜도 천 명의 적이 지나가지 못합니다. 이를 '지세'라 합니다. 첩자를 잘 이용하고 기동부대를 적절히 운용하면 적의 병력을 분산시킬 수도 있고, 군신상하간을 반목시킬 수 있습니다. 이를 '용병술'이라 합니다. 전차나 배를 튼튼하게 만들도 잘 손질하며, 병사들에게 전투기술과 진법을 숙달시키고, 말이 잘 달릴 수 있도록 조련하는 것을 '전투력'이라 합니다. 이 네 가지를 잘 아는[智] 자라야 지휘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2)

여기에 지휘관이 위엄[威]·덕망[德]·어짊[仁]·용기[勇]을 갖추게 되면 부대를 잘 통솔하고, 적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며, 부하들로 하여금 추호의 의구심도 없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명령을 내리면 부하들은 이를 어기지 않으며, 그 장수가 있는 곳에는 적이 감히 덤비지 못하게 됩니다. 이처럼 얻으면 나라가 강성해지고, 떠나면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인물을 훌륭한 장수라 하는 것입니다."

오자가 말하였다.

"무릇 북과 징과 방울은 병사들의 귀를 통해 명령에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며, 각종 깃발은 눈을 통해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고, 군령과 형벌은 마음을 통해 복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로 전달되는 소리는 뚜렷해야 하고, 눈으로 전달되는 색은 분명해야 하며, 마음으로 전달되는 형벌은 엄정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제대로 서지 않으면, 나라는 필경 적에게 패망하고 맙니다. 따라서 이르기를 지휘관이 명령하면 어디든지 따라 이동하고, 지시하면 죽더라도 전진한다 하였습니다."

오자가 말하였다.

"전투의 요결은 반드시 먼저 적장(敵將)이 어떤 인물인지 판단하고 그 능력을 관찰해 보는 것입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적의 모습에 따라 수단을 강구하면, 힘들이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적장이 만약 어리석고 남을 잘 믿는다면 속임수를 써서 유인합니다.

탐욕스럽고 명예를 가볍게 여기면 재물로 매수합니다.

변덕이 심하고 책략이 없으면 피로하게 만들어 곤경에 빠뜨립니다.

상관은 넉넉하고 교만한데, 부하들은 궁핍하고 불평하면 그 사이를 이간시킵니다.

진퇴에 결단력이 부족하여 부하들이 믿고 따르지 못하면 놀라게 하여 도망치게 합니다.

병사들이 지휘관을 경시하고 향수에 젖어 있으면 평지를 차단하고 험지를 열어놓아 요격합니다.

진출은 용이하나 퇴로가 어려운 적은 계속 전진하도록 유도합니다.

전진하는 길은 험하고 퇴로가 평탄한 적은 근접하여 공격합니다.

적이 지내가 낮은 습지에 있어 물이 잘 빠지지 않고, 비가 자주 내리면 수공(水攻)을 씁니다.

적이 벌판에 있고 잡초가 무성하고, 바람이 자주 불면 화공(火攻)을 씁니다.

적이 장기간 주둔하여 병사들이 나태하고 전투태세가 허술하면 기습을 가합니다."

위무후가 물었다.

"양군이 대치한 상황에서 적장에 대해 전혀 모를 때, 그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이에 오기가 대답하였다.

"신분은 낮으나 용감한 자에게, 약간의 정예병을 딸려 보내 시험해 봅니다. 이들에게는 전과를 올릴 필요 없이 그저 도망쳐 오도록 지시하고, 쫓아오는 적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때 만약 적군의 행동이 짜임새가 있으며, 추격을 하면서도 못 미치는 척하고, 미끼를 보아도 모르는 척하며 말려들지 않는다면, 그 적장은 지장(智將)이 분명하므로 섣불리 싸워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만약 적의 부대가 소란스럽고 군기가 무질서하게 날리며, 병사들이 제멋대로 행동하고 병기를 아무렇게나 잡으며, 기를 쓰고 추격해 오거나 미끼를 보고 혈안이 되어 달려든다면, 그 적장은 어리석은 자임이 분명하므로 적병이 아무리 많아도 능히 무찔러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요약: 오자가 "장수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하고, 이어 적장의 모든 것에 대해 논한다.

2.5. 응변(應變)[편집]


위무후가 물었다.

"전차와 말이 모두 튼튼하고 지휘관과 병사가 모두 용맹무쌍한데, 갑자기 적과 조우하여 질서를 잃고 대오가 흐트러지면 어떻게 하오?"

오기가 이에 대답했다.

"통상 전장에서는 낮에는 깃발을 지휘수단으로 삼고, 밤에는 징, 북, 피리를 신호로 삼습니다. 가령 기를 왼쪽으로 휘두르면 병사들은 왼쪽으로 이동하고, 오른쪽으로 휘두르면 오른쪽으로 이동합니다. 또 북을 치면 전진하고, 징을 치면 정지합니다. 그리고 피리를 한 번 불면 행군하고, 두 번 불면 모입니다. 신호에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군법에 따라 규율합니다. 만약 전군이 장수의 권위에 절대 복종하고 병사들이 명령에 철저히 따른다면, 어떠한 적과 맞붙어도 이길 수 있고 아무리 견고한 적진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위무후가 물었다.

"만약 적이 아군보다 수가 많을 때는 어찌하오?"

오기가 이에 대답했다.

"평탄한 지형을 피하고, 험한 지형에서 적을 맞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옛말에 하나로 열을 치는데는 좁은 곳이 가장 좋고, 열로 백을 치는 데는 험한 곳이 가장 좋으며, 천으로 만을 치는 데는 막힌 곳이 가장 좋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소수의 병력이 있다고 할 때, 이들이 좁은 길에 있는 적에게 갑자기 징과 북을 울려댄다면 적은 아무리 병력이 많다 해도 혼비백산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부대를 거느리면 평지를 차지해야 하며, 소부대를 거느리면 험지를 차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위무후가 물었다.

"적은 병력이 많은데다 훈련도 잘 되어 있고, 지형마저 우위를 점하여 전후좌우로 이상적인 조건을 갖췄으며, 진지는 견고하고 무기도 강력하오. 군대의 위용을 보면 후퇴할 때는 마치 산이 움직이는 것 같고, 공격할 때는 마치 비바람이 몰아치는 듯하며, 게다가 식량도 충분하오. 이러한 적과는 오래 대치하기가 어려울 터인데 어찌 해야 하오?"

그러자 오기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좋은 질문이십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단순히 외형적인 힘으로 대응하지 말고 전술을 써야 합니다. 먼저 1천대의 전차와 1만의 기병을 준비하고 여기에 따라 보병을 편성한 다음, 5개의 부대로 나누어 각각 배치합니다. 아군이 5개 방향으로 포진해 있으므로 적은 틀림없이 당혹하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심하게 될 것입니다. 적이 만약 수비를 강화하고자 한다면, 재빨리 첩자를 침투시켜 그들의 의도를 염탐하는 한 편, 사신을 보내 협상을 병행합니다. 적이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의지가 관철된 것이므로 진형을 풀고 철수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적이 거부하여 사신을 죽이고 문서를 불태운다면, 즉시 5개 부대를 움직여 공격합니다.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추격하지 않고, 도중에 밀리는 것처럼 물러섭니다. 이와 같이 패한 척하면서 적이 쫓아오면 서서히 움직이다가 갑자기 공세로 전환해야 합니다. 한 부대는 적의 선두를 견제하고, 한 부대는 적의 후방을 차단하며, 두 부대는 은밀히 기동하여 적의 좌우를 급습합니다. 이처럼 5개 부대가 번갈아 공격하면 반드시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강한 적을 치는 법입니다."

위무후가 물었다.

"적군이 우리 진영으로 육박해 오는데, 퇴로는 끊기고 아군은 매우 두려워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오기가 대답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우선 적군과 아군의 병력을 견주어 보아야 합니다. 만약 아군이 적보다 많다면 병력을 분산하여 적의 허점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아군이 숫적으로 열세일 때는 병력을 집중하고 임기응변의 전술로 대처해야 합니다. 변칙공격으로 의표를 찌르며 여유를 주지 않는다면 적이 다수라 해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위무후가 물었다.

"계곡에서 적과 조우했는데 지형은 험하고, 병력도 열세라면 어찌해야 하오?"

오자가 대답하였다.

"구릉이나 골짜기, 깊은 산이나 넓은 늪지와 같은 지형에서는 빠른 속도로 벗어나야지 절대 망설여서는 안됩니다. 만약 높은 산이나 깊은 계곡에서 갑자기 적과 마주쳤다면 반드시 북을 잡고 함성을 지르며 공격하여 적이 당황하도록 하고, 사수(射手)들을 전진배치하여 활로 쏘아 죽이거나 사로잡습니다. 이때 적진의 움직임이 어떤지 유심히 살펴서 무질서하다면 주저없이 공격해야 합니다."

위무후가 물었다.

"좌우에 높은 산이 있고, 지형이 아주 협소한 곳에서 갑자기 적과 마주쳐 공격도 후퇴도 여의치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오?"

오기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러한 경우를 곡지전(谷地戰)이라 합니다. 이때는 병력이 많아도 쓸모가 없으므로, 유능한 병사들만을 가려 적과 상대해야 합니다. 몸이 날랜 병사들에게 예리한 무기를 주어 앞에서 싸우도록 하여, 적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그동안 전차와 기병은 분산시켜 사방에 숨겨두고, 멀찍이 간격을 띄워서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합니다. 적은 필시 진지를 강화하느라 전진도 후퇴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틈을 이용하여 본대는 대열을 갖추고 유유히 빠져 나와 산 밖에 진을 칩니다. 이렇게 되면 적은 틀림없이 깜짝 놀라고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때 전차와 기병을 움직여 계속 공격을 가함으로써 적에게 숨돌릴 여유조차 없게 만듭니다. 이것이 곡지전의 요령입니다."

위무후가 물었다.

"만일 물이 많은 늪지에서 적과 만나, 전차와 기병이 수렁에 빠지고 배도 없어 진퇴가 곤란할 때는 어떻게 하오?"

오기가 대답하였다.

"이러한 경우를 수전(水戰)이라 합니다. 이때는 전차나 기병이 쓸모가 없으므로 그대로 두고, 우선 높은 곳에 올라가 사방을 살펴서 지형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어느 곳이 넓고 좁은지, 어디가 깊고 얕은지를 낱낱이 알고 난 후에 적의 의표를 찌르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적이 만약 물을 건너면 절반 정도를 건너갔을 때 공격합니다."

위무후가 물었다.

"연이은 비로 땅이 진창이 되어 말과 전차를 기동할 수가 없는데, 적에게 사방을 포위당하여 전군이 동요할 때는 어떻게 하오?"

오기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전차는 보통 비가 오고 습하면 쓰지 않고, 맑고 건조할 때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지형은 높은 지대를 선택하고 저지대를 피해야 합니다. 전차를 운용할 때에는 전진하건 멈추건 간에 반드시 이러한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적이 만약 전차를 움직일 때는 그 바퀴자국을 추적하면 됩니다."

위무후가 물었다.

"갑자기 비적(匪賊)들이 들어와 아군의 곡물을 노략질하고 가축을 탈취할 때는 어찌하오?"

오기가 대답하였다.

"비적이 들어오면 우선은 그들의 전투력이 강한 점을 고려하여 수비를 강화하고 섣불리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약탈을 마치고 철수할 때는 필경 짐이 무겁고, 혹시 공격을 받을까 마음도 불안하여 빨리 빠져나가는 데만 급급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적의 대열은 간격이 벌어지고 흐트러집니다. 그때를 노려 추격해서 공격하면 비적들을 궤멸시킬 수 있습니다."

오자가 말하였다.

"적국을 공략한 후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성을 함락시키고 나면 먼저 각 궁으로 들어가 관속을 통제하고 모든 기물을 접수합니다. 군대가 주둔할 때에는 함부로 양민들의 나무를 베거나 집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며, 곡식을 약탈하고 가축을 도살하거나 재산을 불태우지 않도록 하여, 백성들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투항을 원하는 자가 있으면 이를 받아주고 아량을 베풀어야 합니다."


요약: 위무후와 오자는 갑작스러운 접적에 대한 임기응변에 대해 문답한다.

  • 질서를 잃고 대오가 흐트러진다 - 통상 전장에서는 낮에는 깃발을, 밤에는 타악기를 신호로 삼으며, 신호를 따르지 않으면 군법에 따라 벌을 내린다. 이렇게 상명하복이 철저하면 대오가 무너져도 금새 복구되며, 반대로 우리가 쳐들어가 적진을 무너뜨릴 수 있다.
  • 적이 아군보다 수가 많다 - 아군은 무조건 평지를 피하고 험지에서 적을 상대한다. 좁은 곳에서 진을 치고 한 번에 한 놈 법칙을 적에게 강제한다.
  • 적이 아군보다 지형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 뛰어남이 확실하다 - 아군을 5개 부대로 나누어 진형을 과시하여 적을 당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 퇴로가 끊겼을 때 - 아군이 많다면 분산하여 허점을 파고들고 아군이 적다면 병력을 집중하여 임기응변.
  • 계곡에서 조우했을 때, 지형도 험하고 병력도 열세 - 구릉지나 골짜기, 깊은 산이나 넓은 늪지는 무조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데 집중. 접적시 일단 닥돌하여 상대를 당황하게 하고, 활을 쏘아 적을 죽이며, 적의 움직임이 무질서해지면 주저없이 공격.
  • 좌우에 산이 있고 지형은 협소하며 갑자기 적을 마주쳐 공격도 후퇴도 힘들 때(곡지전) - 정예병들 골라 탱킹을 시키고 적이 진지를 강화하는 사이 보병은 빨리 산 밖으로 나와 진을 치고 기병과 전차 역시 분산 배치 후 적이 놀란 틈을 타 밀 것.
  • 늪지에서 만나 진퇴가 곤란할 경우(수전) - 전차와 기병은 쓸모가 없으므로 버리고 무조건 고지대로, 지형을 파악할 것. 적이 도강하고 있다면 즉시 친다.
  • 연이은 비로 말과 전차가 기동불능 - 전차는 원래 그런 날씨에 쓰는 것이 아님. 지형 역시 고지대를 유지. 적이 전차를 움직이면 바퀴 자국 추적.
  • 도적 - 마음껏 털어가게 두어라, 짐으로 몸이 무거워지고 마음이 조급해졌을 때 치면 된다.
  • 적국 공략 후 - 성을 함락시킨 뒤 황궁을 비롯한 관청을 신속하게 접수. 군대는 민간의 물건을 바늘 하나라도 건들지 말아야. 투항을 원하는 자가 있다면 받아줄 것.

2.6. 여사(勵士)[편집]


위무후가 물었다.

"상벌을 엄정하게 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소?"

오기가 이에 대답하였다.

"그것은 군주가 해야할 일인지라 신하인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보다는 군주가 포고령을 내렸을 때 백성들이 기꺼이 따르고, 나라가 동원하면 기꺼이 나아가 싸우며, 전투가 벌어졌을 때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것, 이 세 가지를 갖춘다면 군주는 승리를 확신해도 됩니다."

위무후가 물었다.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그러자 오기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주군께서 공이 있는 모든 자들을 불러 잔치를 베푸시고, 공이 없는 자도 격려하십시오."

이에 위무후가 종묘의 뜰에 자리를 마련하여 사람들을 세 줄로 앉히고 잔치를 열었다. 전공이 탁월한 자들은 앞줄에 앉혀서 고급 기물과 최고의 음식을 올리고, 약간의 공이 있는 자들은 가운데 줄에 앉혀서 조금 못한 기물과 음식으로 상을 꾸몄으며, 공이 없는 자들은 뒷줄에 앉히고 평범한 식탁을 차렸다. 그리고 연회가 끝나고 나가려 할 때, 유공자에게는 다시 상급(賞給)을 하사하였다.

문밖에 있는 그들의 부모처자에게도 상을 내렸는데, 이 역시 전공에 따라 차등을 주었다. 또 전사자(戰死者)가 있는 집에는 해마다 사신을 보내 그 부모를 위로하고 상급을 내림으로써 국가가 항상 잊지 않고 있다는 뜻을 표시하였다.

이러한 일들을 시행한지 3년이 지났을 때, 진(秦)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서하(西河)를 침범하였다. 위나라의 장정들은 이 소식을 듣자 동원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스스로 갑옷을 입고 달려가 용감히 싸웠는데, 그 수가 수만 명에 이르렀다.

진나라를 격퇴한 후 위무후가 오기를 불러 말하였다.

"그대가 지난 번 가르침을 준 일이 그대로 이루어졌소."

그러자 오기가 대답하였다.

"제가 듣기로 사람에게는 저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고, 원기는 왕성할 때와 침체될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군께서 시험삼아 제게 전공이 없는 자 5만을 주십시오. 제가 그들을 이끌고 적과 상대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일 싸워 이기지 못한다면, 제후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천하에 위신이 떨어지겠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죽음을 각오한 도적 한 명이 벌판에 숨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천 명이나 되는 인원이 그를 쫓는다 해도 겁먹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도적이 갑자기 나타나 자기를 해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 명이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하면 천 명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제가 5만의 군사를 죽기로 작정한 도적처럼 만들어 싸움에 임하면 아무도 상대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에 위무후가 승낙하고 별도로 전차 5백과 기병 3천을 딸려 보냈더니, 과연 진군(秦軍) 50만 대군을 격파하였다. 이는 바로 군사들을 잘 독려한 결과였다.

싸우기 바로 전 날, 오기는 전군에 명을 내렸다.

"그대들은 이제부터 적의 전차와 기병과 보병을 맞아 싸워야 한다. 만약 우리 전차가 적의 전차를 사로잡지 못하고, 기병이 적의 기병을 사로잡지 못하고, 보병이 적의 보병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설령 적군을 격파했다 하더라도 나는 그대들의 전공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전투가 벌어지자, 더 이상 명령이 없었는데도 그 위세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요약: 위무후가 "상벌을 엄하게 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가?" 하고 묻가 오자가 "군주의 일이라 잘 모릅니다만, 제 식견으로는 그렇진 않사옵니다. 그보다는 백성들이 포고령에 따르고, 기꺼이 나아가 싸우며, 전투에서 기꺼이 죽을 수 있다면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라고 답하며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 공이 있는 자들을 불러 잔치를 베푸시고, 공이 없는 자에게도 격려하여 공을 꼭 세울 수 있도록 하되, 잔치 및 상급은 차등을 두어 낮은 등급의 신하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것.
  • 문 밖에 있을 신하들의 가족들에게도 약소하게나마 상을 주며 역시 신하들의 공적에 맞추어 차등을 두고, 특히 매년 전사자 및 그 유족에 예우하여 국가가 그들을 잊지 않았음을 알릴 것.

3년 후, 진나라가 서쪽 국경을 침범하자, 이 소식을 들은 장정들이 채 동원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스스로 소집되어 전선에 나서길 주저하지 않았고, 진나라를 성공적으로 격퇴한다. 특히 오자가 이끌던, 전공이 없던 5만 명의 병력이 주목할 만했는데, 오자가 위무후에게서 할당받은 이 5만 명에게 미리 "너희들, 전공을 인정받고 싶나? 그럼 주저하지 말고 앞장서서 싸워라! 그리고, 적 전차를, 적 기병을, 적 병사를 사로잡아라! 사로잡지 못해 표시를 할 수 없다면, 적을 격파해도 전공을 인정해줄 수 없으니 말이다!"라고 자극시켰고, 5만 명의 병사들 50만 대군을 능히 격파해버린다.

3. 특징[편집]


오자병법의 특징은 수하들을 손자병법과 다르게 파악한다는 지점에 있다.

손자병법은 수하의 사졸(士卒:장교와 병사)들을 단순한 객체로 본다. 신체에 비유하면 근육과 뼈에 불과하다. 이를 보여주는 구절은 구지편에 나온다.

能愚士卒之耳目, 使之無知, 易其事, 革其謀, 使人無識.

능우사졸지이목, 사지무지, 역기사, 혁기모, 사인무식.

사졸들의 이목을 우둔하게 하여, 하고 있는 것을 모르게하고, 일을 바꾸어도, 모략을 고쳐도, 알지못하게 한다.

다시말해 지휘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부하들은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좋다는 것이다. 여기서 손자가 지휘관과 병사들의 관계를 사람과 장기말의 관계로 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수하들을 수동적인 객체로 바라본다는 것은 병세편에도 등장한다.

木石之性, 安則靜, 危則動

목석지성, 안즉정, 위즉동

목석의 성질이란, 안전한 곳에서는 멈추고, 위태로운 곳에서는 움직인다.

사졸들을 목석(=무생물을 뜻하는 한자 표현)에 비유하는 것인데, 안전하면 가만히 방어를 하고, 위험할 것 같으면 움직이려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휘관이 기세를 만들어서 움직여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이는 그의 핵심 사상인 기정(奇正:변칙과 원칙)에서도 나타난다. 손자에게 병법이란 군대를 물의 흐름 다루듯 하는 것을 말한다. 그에게 군대란 물줄기이고, 병사란 그것을 구성하는 물분자 정도인 것이다. 그 맥락에서 지휘관은 그 흐름을 예측하고 계산해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공학자로써 그려진다.

반면에 오자는 사졸들을 제각각의 욕망을 지닌 존재들로 파악한다. 저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자가 보기에 그 욕망들 사이에는 위계가 존재한다. 즉,

이익을 쫒는 물욕 < 남들에게 인정 받고 싶은 명예욕

가져보지 못한 것을 가지려는 욕망 < 한번 가졌다가 잃은 것을 되찾으려는 욕망

이를 보여주는 것이 부국편에서 5종류의 정예병을 논하는 장면인데, 그가 그중에서도 꼽는 최고는 다음 둘이다.
  1. 관직에 있다가 실책을 범해 관직에서 물러나 공명을 되찾고자 하는 사람
  2. 전장에서 도망친 과거가 있어 명예를 되찾고자 하는 사람 [19]

다시말해 오자에게 사졸들은 결코 물분자와 같이 다 균등하고 똑같은 존재들이 아니다. 같은 사람이더라도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느냐, 지금 얼마나 강하게 욕망하냐가 곧 정예병과 아님을 나눈다. 때문에 오자에게 전투력을 높게 만들고, 유지하는 노력에는 사졸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오자에게 지휘관이란 일종의 스포츠 팀의 코치인 것이다.

동기부여를 강조하는 오자의 특징은 공을 세우지 못한 자들을 다루는 방법의 차이에서도 나타난다. 손자가 보기에 사졸들을 다루는 방법이란 명령을 따르면 상을 주고, 몰라서 못따르면 가르치고, 알고도 안따르면 벌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해서 상벌 두가지만으로 사람을 다룰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오자는 상벌도 결국은 동기부여에 이르게하는 수단들에 불과하다는 관점을 취한다. 공을 세운자들을 치하하는 자리에서, 오자는 공을 크기에 따라서 자리를 구분해서 앉히는데, 마지막에 공이 없는 자들도 자리를 깔아서 같이 대접을하고 격려를 하라고 조언한다. 동기부여만 된다면 상벌이 아니라 격려해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동기부여를 실행에 옮기는 모습은 오자가 병사들의 종기를 직접 입으로 빨았다는 것과 전사자의 유족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고 해마다 사람을 보내서 예를 표하게 해야한다고 말하는 일종의 국가보훈부를 강조했던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그가 병사의 종기를 빨자 그 병사의 어미가 이제 아들이 오자를 위해 목숨을 잃을 때까지 싸우다가 죽을것이라 예견하면서 통곡하는 장면은 오자가 꼭 진정으로 병사들을 아버지 아들 수준으로 사랑한다기 보다는, 동기부여를 위해서라면 지휘관은 때로는 정치인 마냥 그러한 이상과 이미지에 부합하게 행동하는 것도 필요하다 여겼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졸들을 공학자스럽게 보느냐 아니면 팀 코치 같이 보느냐의 관점차이는 손자와 오자가 점술을 바라보는 관점 차이에서도 나타난다. 손자병법에서는 '점술은 전쟁의 결과와 무관하므로 가치가 없다'고 하였는데, 이는 현대의 이공계의 태도하고 유사하다. 하지만 오자는 반대로 '점술을 잘 이용하면 조직원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다'는 문과스러운 접근을 내놓는다.[20]

이와 같이 오자병법 중 상당한 분량은 조직에서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방법을 다룬다. 이는 오자가 유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오자는 증자에게서 배우다가 쫒겨난 파문 제자다. 증자는 감성을 중시하는 맹자와 달리 엄격함과 권위도 중시해서, 순자에게 영향을 주었고, 이는 간접적으로 법가의 사상의 뿌리가 되기도 했다. 그 맥락에서 보면 오자는 초기 유교사상과 위화감이 없다. 참고로 손자병법도가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고 해석된다. 또한 오기의 일대기에 대해 적은 책에서도 그가 문후를 만나러 갈 때에도 선비들이 입는 옷을 입고 있어서 병법가인지 선비인지 헷갈려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손자와 오자의 차이는 우열을 쉽게 가르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현대전에는 시민이 주축이 되는 군대가 주력이 되는데, 이미 국가의 이념이 너무나 발달해서 굳이 봉건주의시대의 오자와 같은 자질보다는 오히려 손자가 강조하는 공학자스럽고 전문가적인 자질이 더 높이 요구되는 편이다. 즉 조직이 이미 잘 갖추어진 군대는 손자 같은 지휘관이 중요하고, 아예 군대를 바닥부터 만들어야하는 상황이라면 오자가 탁월하다고 볼 수 있다.

4. 손자병법과의 관계[편집]


손오병법 최고의 전성기 당시에는 중국에서는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을 집집마다 한권씩 배치해놓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으니, 그 명성은 손자병법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할 수 있으나, 시대상 읽어봤으리라 추정되는 조조 본인은 그 자신이 봐온 병법서 중에서 손자병법이 가장 깊다고 발언했다는 점에서는 당대의 평가는 손자병법보다 조금 밀리는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또한 대화 내용에 따르면 손자병법에 비해 좀 더 명확하게 수단과 방법, 전술을 논하는 편. 그러나 오기 그 자신이 상황에 따라 병법을 달리 쓰는 유연한 사고가 있을 뿐더러 용병술이 뛰어남은 알 수 있으나, 오자 자신의 용병관이나 전쟁관을 알기에는 담긴 내용이 짧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의 차이를 청동기에서 철기, 전차에서 기마로 전환된 것과 연관짓는 주장이 있다. 청동기와 전차가 주력인 시절엔 군사력을 유지하는데 드는 부담이 철기와 기마 시대보다 더 컸고, 주 병력을 구성하고 있는 계층이 농민병이 아니라 왕족과 경, 대부, 사를 비롯한 상위층의 명예전쟁 비슷한 형태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 시대에 쓰인 손자병법은 가급적 전쟁으로 손해를 입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대량생산과 유지가 쉬워진 철기와 기병이 주력이 된 시대에 쓰인 오자병법은 전투를 통한 상대편의 전투의지와 역량살상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21]

즉, 병서로서 손자병법이냐 오자병법이나 하는 것은 성격 차이지 어느 쪽이 우수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인지도는 손자병법이 좀더 앞서간 편이며, 이유는 손자병법의 애독자기도 했던 오자가 아무래도 손자병법에서 이미 다룬 부분은 가급적 생략하고 그 자신이 생존했던 시기에 맞는 각론에 치중한 탓이 크다. 그러다보니 적어도 전국 시대 때는 오자병법이 실전에 응용하기 더 쉬운 저서였겠지만 그만큼 보편성과 통시성이 떨어지게 되었고, 때문에 조조 같은 후대의 병법가들이 보기엔 아무래도 손자병법보다 깊은 맛은 떨어진다고 봤을 개연성은 높다. 이는 오자가 손자보다 통찰력이나 역량이 떨어지는 게 원인이 아니라, 저자의 저술 의도 자체가 손자병법이 이미 통찰한 총론은 가급적 제외하고 다루고자했던 이유가 커 보인다.


5. 대중매체에서의 등장[편집]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통솔 아이템으로 등장. 고대무장인 저자 오기가 들고 다닜다.

삼국지 영걸전에서는 적군 네임드 무장들은 개나소나 들고다니는 아이템으로 등장, 적군의 맷집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는 아이템이자 그로서 샌드백이 되어 아군의 일용할 경험치를 주는 고마운 아이템. 그러나 아군이 가질 수 있는 오자병법서는 단 하나.


6. 여담[편집]


충무공 이순신이 애독자인 것으로 보인다. 명량 해전 이전 그가 남긴 명언 중 필사즉생행생즉사는 본인이 창작한 것이 아니라 오자병법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또한 일부당경 족구천부(한 사람이 길을 막으면 천 사람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의미) 역시 오자병법에서 나온 구절이다. 장군 본인도 '병법에 이르기를'이라고 언급한다.[22]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우크라이나군은 오자병법의 조언과 일치하는 행동을 하여[23] 자국군의 사기와 전투 의지를 드높이고 있는 반면, 러시아군은 조언과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거듭함으로써 일선 장병의 전투 의지가 크게 낮아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1] 9.11 테러와 미국-아프간 전쟁 및 컬럼비아 우주왕복선 폭발 사고 당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신의 징벌" 운운하면서 어그로를 잔뜩 끌어 분노에 눈이 돌아간 미국의 침공이라는 큰 화를 불러왔다. 아무 명분 없는 침공이니만큼 미국 역시 잘한 건 없었지만, 사담 후세인 역시도 입을 다물고 있느니만 못한 짓을 벌였고...[2]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약탈에 눈이 먼 군대를 상대하는 방법은 그 약탈품으로 함정을 놓는 것이었다.[3] 고구려-수 전쟁 당시에는 고구려가 굳이 손을 쓰지 않아도 113만 대군이라는 무리한 수를 동원한 끝에 천하가 매우 어지러워 곳곳에서 반란이 터져 양광은 끝내 살해당했고, 당국공 이연장안을 함락하여 수공제바지사장으로 삼다가 양광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선양'받아 당을 건국했다.[4] 경보병은 정찰 및 유격과 소규모 전투, 측면 타격 부대로서의 역할을 주로 수행했다. 즉 운용하는 입장에서는 전술의 다변화를 추구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운용했다. 현대의 경보병은 여러 병과로 나뉘어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발전된 이동수단에 기대어 가장 먼저 투입되는 병력을 총칭한다.(특공대, 수색대, 기동대, 공수부대 등등)[5] 혹한의 날씨에 강을 무리하게 건너는 것은 얼어 죽는 지름길.[6] 찬물을 양껏 보급할 수 있는 현대 국군에서도 혹서기 훈련은 그늘을 찾는 걸 우선하거나 가라로 진행하고 치우고 행군마저도 미루고 실내 체력단련으로 때우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다.혹한기에는 옷과 이불을 껴입기라도 할 수 있지 혹서기라고 홀딱 벗을 수는 없잖은가? 문자 그대로 몸이 산채로 익어버리는 불상사와 함께 전투력 저하로 직결되기 때문이다.[7] 둘째와 이어진다. 차이는, 둘째는 혹서기에 발생하고, 이 경우는 어느 시점에든 나올 수 있다.[8] 첫 번째 경우와 다른 점은,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경제력을 군비에 충실히 투자하여 유지하지 않을 경우 군대가 약체화될 수 있다. 독일 연방군이 좋은 예시다.[9] 고지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적이 좋은 예시.[10] 하나같이 대오가 어지러울 때 즉각 들이치라고 오자는 역설한다. 그만큼 정돈되지 못한 대오는 군사작전에 치명적임을 잘 보여준다.[11] 라스푸티차가 좋은 예시이다. 동슬라브의 땅을 침략했던 침략자들 중 이런 진창에 대비를 하지 않은 경우 예외없이 보급난에 시달렸다.[12] 현대에도 차량에 연료가 없으면 차량은 짐덩어리에 불과하고, 더욱이 과적은 차를 골로 보내게 하는 지름길이다. 이를 잘 따져 무게 배분을 신중히 해야 한다.[13] 예시의 기름칠은 현대의 정비에 해당한다. 정비를 제때 하지 못해 차가 퍼지면 역시 짐덩어리.[14] 잘 훈련된 병력에게 질 좋은 무기를 주어 사기를 충천시키면 더욱 전장에 나서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15] 당시에는 전근대, 근거리 통신조차 어렵던 시절이라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타악기들과 하늘 높이 띄울 수 있는 연들과 깃발들이 전진과 후퇴, 진형 배치 등등의 신호를 담당했다. 현대에는 전자장비가 신호 장비들의 상당수를 대체했다.[16] 고지대의 습격을 우려한 것이며, 이는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이 왜 고지전으로 흘러갔는지를 생각해보자.[17] 대전쟁 이후의 현대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차량의 보급으로 인해 일개 반군조차 효율이 뛰어난 차량을 사용한다. 차량 정비에 필요한 건 점화 플러그와 타이어 같은 예비 부품들과, 알맞은 연료 정도.[18] 동수 혹은 두 배의 병력만을 추격 및 정찰 삼아 보내고 본대는 갈 길 가는 식.[19] 한국사에서 여기에 정확히 해당하는 부대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고려 삼별초를 구성했던 신의군이었다. 신의군은 삼별초의 대몽 항쟁 때도 대부분은 고려 근왕군에 가담하여, 한때는 같은 삼별초였던 배중손·김통정 등이 이끄는 반란군과 격렬히 투쟁했었다.[20] 양쪽 다 점술을 믿지 않는 것은 같으나 활용 가치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21] 이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하책으로 놓은 것과 비슷하다.[22] 2022년 4월 28일 충무공 탄신일 기념 다례제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이 구절을 인용하며 '충무공의 글귀'라고 할 정도로 잘못 알려져 있다.[23] "관직에 있다가 과실로 쫓겨나 다시 공명을 얻고자 하는 자"에 정확히 해당되는 인물인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내에서 자유롭게 지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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