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모토 유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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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岡本行夫

일본의 외교평론가.

2. 생애[편집]


1968년, 히토쓰바시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이후 일본 외무성에서 북미 1과장 등을 지내며 주로 미·일 외교 분야를 담당했다.

1991년에 회사를 그만 뒀고, 외교 컨설팅을 하는 기업을 차리기도 했으며,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총리 보좌관을 지냈다.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 당시엔 전후 미군 기지 업무를 전담했으며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때는 이라크 관련 지원 업무를 맡았다. 퇴임 후 외교평론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신케이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세이론의 집필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2014년에 아사히 신문이 한 '위안부 강제 연행' 보도에 대해 외부 검증위원으로 활동했다가 2015년이 되어 70주년 담화 작성을 위한 아베 신조 내각의 자문기관인 21세기구상간담회에 참여하였으며, 이때 미쓰비시 그룹 머티리얼 사외이사로 재직중이었는데, 7월 28일에 도쿄도에서 인터뷰까지 진행하였다. 그러다 미쓰비시 관계자가 미군 포로 노동자와 중국 강제 노동자에 대한 막말을 한게 논란이 되었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모두에게 사과할때 유키오가 각각 2015년 7월 제2차 세계 대전 미군 포로 노동자와 2016년 6월 중국 강제 노동자에 대해선 직접 사과하며 소송에 대하여 보상책을 마련했지만, 한국의 강제노동에 대해서는 조금의 언급 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국을 언급을 했는데 한국의 강제노동에 대해선 "법정 상황이 다르다"며 이중잣대의 모습을 보였다.

2019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위안부 질문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한국이 주장하는 성노예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망언을 하였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에서 일본 유조선이 피격당하는 일이 일어났고, "일본 유조선은 일본이 지켜야된다"며 재무장 필요성을 주장했다.

2020년 4월 24일, 사망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으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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