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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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亨
? ~ 1587년(선조 20) 9월 24일[1]

1. 개요
2. 대중매체


1. 개요[편집]


조선 중기의 무신.

1587년 무과급제하고 녹둔도의 수호장에 임명되었다.

그해 발발한 녹둔도 전투 당시 갑청아, 사송아 등이 이끄는 여진족의 공격에 항전하다가 등에 화살을 맞고 얼굴과 목덜미 왼쪽이 가로 잘리며 전사했다.#


2. 대중매체[편집]


불멸의 이순신에서 불같은 성격으로 병사들을 죽도록 하지 않기 위해 혹독하게 훈련을 하며, 여동생으로 곱단이가 있다.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두는 와중에 백성 한 명이 누워서 길을 막는 것을 보고 그 백성을 패면서 칼로 죽이려다가 날발의 제지를 받았다.

이순신은 초병이 여진족에게 공격받아 크게 겁먹는 것을 지켜보고 그들을 위기에서 구해줬는데, 초병들의 기강이 허술하다는 이유로 곤장을 맞는다. 이순신이 일부러 백성들에게서 식량을 빼앗아 쌓아두는 것으로 여진족을 유인했는데, 이순신에게서 매복하고 있다가 도망가는 여진족을 배후에서 공격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싸우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나서서 사송아가 매복을 눈치채게 된다.

이로 인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순신에게 질책받으며, 이전에는 자신이 습사수, 사수를 자신이 통솔해 훈련했지만 이순신이 습사수의 훈련을 장백수가 맡게 하면서 자신은 사수의 훈련만 통솔하게 되자 불만을 품는다. 이순신 휘하의 날발에게 이순신에 대해 욕을 하는 것으로 도발해 날발과 겨루며, 여동생 곱단이 여진족에게 납치당하자 단독으로 여진족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자 이순신이 저지하면서 차분하게 생각하게 하며, 여진족과의 협상을 통해 곱단이를 풀어낼 수 있게 하려고 했지만 원균이 여진족 포로를 모두 죽인 일로 인해 여진족이 분노하면서 선전포고를 하고 곱단이를 잃게 된다. 이후 곱단이를 잃고 분노한 군관이 여진족을 혼자 공격하겠다고 나서자 이를 말려 가지 못하게 한다.

장백수의 처가 아이를 낳은 일로 인해 돈이 필요하게 되면서 무기를 빼돌리는 일로 군법을 어겨 참수되는 상황이 일어나자 참수 직전에 이를 말리기도 하며, 녹둔도에서 여진족과의 전쟁을 준비하지만 여진족의 군사에 대한 규모가 큰 것을 보고받아 임경번이 녹둔도를 포기하자고 하자 이에 반발한다.

여진족이 녹둔도를 공격하자 맞서 싸웠지만 함락당하며, 사송아를 죽이려고 겨루었지만 그 와중에 여러 개의 화살을 맞은 후에 사송아의 칼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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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조수정실록에는 9월 1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