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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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제작방법
3.1. 잿물 없이 제작하는 옹기
4. 지역
5. 관련 장소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甕器

도자기(陶瓷器)란 단어는 본래 도기(陶器)와 자기(瓷器)를 아울러 이르는 말인데, 현대 사회에서 생산되고 쓰이는 도자기들 중 절대다수는 거의 대부분 '자기'이다. 도기와 자기의 차이점은 도자기 항목을 참고하라.

하지만 현대 한국에서 아직도 생산되고 사용되는 도기[1]들이 있으니 바로 옹기(甕器)이다. 옹기 또한 잿물 없이 구운 과 잿물을 발라 구운 오지로 나뉘지만, 현대에는 거의 오지와 동의어가 되었다. 옹기 같은 도기류는 사치성이 짙고 크기가 일정한 자기와는 차이가 있다. 주로 장식 및 관상용으로 쓰이는 자기와는 다르게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서민적이고 정겨운 이미지가 있다.

현대 한국에서 옹기는 주로 김치를 숙성시키거나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장류를 저장할 때나 삭힐 때 사용한다. 전근대 시절에는 옹기를 더더욱 폭 넓게 사용하였다. 옹기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고, 지역별로 특색에 따라 또는 기후에 따라 다르게 빚으므로 모양이나 제작방법 또한 서로 조금씩 다르다.


2. 역사[편집]


옹기가 한반도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신석기시대로 알려졌으며 이후 삼국왕조, 통일신라, 고려왕조, 조선왕조 때까지는 옹기를 빚어내는 일이 번성하여 장류를 보관하거나 담글 때 주로 사용하였다. 조선의 천주교 박해 시절, 천주교 신자들은 산속에 숨어서 교우촌을 이루고 옹기업에 종사하였다. 옹기장수로 위장하여 옹기를 팔러 다니면서, 동료 신자들을 방문하고 돌보았다고 한다. 조선판 카쿠레키리시탄 훗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만든 '옹기장학회'도, 이러한 역사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들어서 일제의 탄압으로 점차 위축되었고, 현대에 들어서는 스테인레스플라스틱 용기가 등장하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아져서, 실생활에서 옹기는 점점 덜 쓰이는 추세이다.

실생활에서는 용도가 위축되었지만, 공예분야에서는 새로이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 현대에는 전통방식으로 옹기를 만드는 장인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1990년대 들어서는 문화부령에 의거하여 옹기를 보호하고 장려하는 차원에서 옹기장(甕器匠)을 중심으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전통을 잇도록 하였다.

옹기로 머그컵 등을 만드는 이들도 있지만, 정말 전통방식으로 만들면 크기에 비해 좀 무겁기 때문에 수요가 별로 없다. 전통옹기토에는 굵은 모래가 섞여서 굽고 난 뒤에도 표면에 알갱이가 만져지는데, 이 또한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감점요소. 정말로 옹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이런 점을 감수하고 옹기 머그나 옹기 잔을 사용할 것이다. 그래서 대개는 옹기로 잔 종류보다는 그릇이나 장식품, 또는 발효용기, 화분을 만들어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잔을 만든다면 좀 더 매끄럽게, 덜 무겁게 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쌀독으로 사용하면서 옹기로 보관을 하면 정말 좋다.

2021년 이후로 전통주에 관심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원래 전통주 숙성용으로 사용하는 옹기의 수요가 증가하였다. 오크통 숙성과는 달리 보관용기의 성분이 술에 녹아들어 맛이 변하는 효과는 있을 수 없지만, 옹기에 숙성한 기간이 긴 술일수록 풍미가 부드럽다는 평이다.

전통주를 숙성시키는 용도로는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운 항아리를 사용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운 옹기, 즉 '질항아리'는 물이 샌다! 물론 콸콸 쏟아진다는 것은 아니지만 미세하게 물이 항아리를 뚫고 새어나와서 항아리의 표면을 적신다. 그래서 과거에는 열대에 가까운 더운 지방에서 일부러 질항아리에 물을 담아 미세하게 새어나오는 물이 증발하며 차가워지는 효과를 이용하기도 했다.

물이 새지 않으려면 유약을 발라서 구워야만 한다. 현대 한국에서 제작되는 도기가 바로 옹기인데, 그 옹기 중 거의 대부분이 오지인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오지는 잿물을 유약 삼아 바르지만 자기가 될 만큼 높은 온도에서 굽지는 않기에, 물이 새지는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통기성이 생긴다. 물이 새지는 않으면서 공기는 미세하게 통하기 때문에 오지 항아리가 김치나 장류를 만드는 용도로 쓰였다.

따라서 전통주 담그는 용도로 질항아리를 사용한다면 이상하다. 잠깐 담아두는 정도도 아니고 장기간 숙성시킨다면, 항아리 안에 담긴 술은 다 증발되어 없어질 터이다. 유약을 발라 구웠어도 광택이 잘 나지 않는 오지들이 있는데, 이런 오지를 유약 없이 구웠다고 사람들이 착각했기 때문인 듯하다. 진짜로 아무런 유약도, 자연유도 없이 구워진 질그릇들은 박물관에 있는 삼국시대 도기들을 보면 된다. 사실 삼국시대 도기들 중에서도 일부는 자연유가 입혀졌다.

1970년대에 광명단 유약 파동이 일어났다. 전통적으로 옹기 제조업자들은 나무를 태운 재, 특히 조선 시대에 흔했던 소나무를 태운 재로 만든 '잿물'을 유약 삼아 옹기를 구워왔다. 그런데 온 나라가 민둥산이 되어 소나무재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이런저런 나무의 재를 가리지 않고 잿물로 만들었는데, 순 소나무 잿물에 비해 녹는 온도가 높아서 가마 속에서 잘 녹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해주던 것이 바로 납 성분이 섞인 광명단이었다. 잡다한 재가 섞인 잿물에 광명단을 섞으면 녹는 온도가 낮아져서 가마 속에서 잘 녹았고 옹기에도 윤기가 반질반질 흘렀다.

이 사실이 70년대에 알려져서 큰 소동이 일어나자 1977년 납 규제법이 제정되어 광명단 유약 사용이 금지되었고[2] 이후로 '유약'을 발라 만든 옹기를 막연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또한 옹기 제조업체에서도 자신들이 만든 옹기를 아무 유약 없이 구웠다고 거짓 주장하며 파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잿물을 유약 삼아 빚은 옹기도 제대로 구우면, 광명단만큼 반짝거리지는 않으나 어느 정도 광택이 돈다. 우리나라의 옹기장들에게 유약 없이 구운 옹기를 판매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옹기장들은 그런 질항아리는 사용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중국자사호나 건수자도, 니흥도, 조주주니호 같은 무유도기류를 보고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러 거친 알갱이가 많은 점토로 빚는 옹기와 달리, 자사호 등 중국의 무유도기는 산화철 등이 포함된 특수한 소재를 이용하기 때문에 물이 새지 않는다.

3. 제작방법[편집]


옹기는 점토로 만드는데, 흙을 일부러 성긴 체로 거르기 때문에 일반 자기용 흙보다 굵은 모래나 작은 알갱이가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구운 뒤에도 표면에 울퉁불퉁한 알갱이가 만져지는 등 '곱고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있다. 흙을 반죽하여 응달에 약간 말리고 떡메로 쳐서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내고 바닥에 쳐서 타래미로 만든 후 물레 위에 올려놀고 방망이로 다듬어서, 재와 약토를 섞은 유약에 담갔다가 말린 뒤 가마에서 굽는다. 유약을 만드는 데 쓰인 재에 따라 가마에서 나온 뒤 색깔이 달라진다.


3.1. 잿물 없이 제작하는 옹기[편집]


현대 한국에서 생산되는 옹기 거의 대부분은 잿물을 유약 삼아 바르고 굽는 '오지'이고 이 또한 분명 의심할 바 없는 전통 옹기지만, 잿물을 바르지 않는 굽는 전통 옹기도 일부나마 전해지고 생산된다. 도자기 제작기술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삼국시대의 도기 유물 중에도, 분명 유약은 바르지 않았는데 일부 광택이 도는 도기들이 있다. 가마에서 굽는 과정에서 땔감의 재가 도기 위에 내려앉아 녹아서 유약처럼 코팅이 된 것인데, 이를 자연유(自然釉)라고 부른다.

그래서 아예 자연유를 의도하고 굽는 기법도 생겼다. 잿물을 발라 굽는 오지와 달리 잿물을 바르지 않는 이면서도 물이 새지가 않는다. 이런 기법으로 굽는 옹기로는 제주도에서 발전한 제주옹기와 서울에서 발전한 푸레독이 있다.

제주도에서 만드는 제주옹기는 잿물을 바르지 않고 굽지만, 대신 땔깜으로 사용하는 섬피[3]의 재가 옹기에 내려앉아 녹아 자연유 효과를 낸다. 서울 지역의 푸레독은 구울 때 가마 안에 소금을 뿌리는데, 땔감의 재와 소금이 합쳐 녹으며 유약의 효과를 어느 정도 대신하게 한다. 제주도 옹기나 푸레독은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삼국시대 토기 유물들의 색감에 더 가깝다.

그러나 좀 더 흔한 오지 장인들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을 꾀할 만큼 숫자가 적은 마당에, 제주도 옹기나 푸레독 전통대로 옹기를 만드는 장인들은 더더욱 드물고, 따라서 이들이 만든 옹기는 가격도 더욱 비싸다.


4. 지역[편집]


옹기는 지방에 따라서 크기도 다르고 쓰임새도 조금씩 달랐다.

  • 서울, 인천, 경기 지역: 좌우가 볼록하면서 중부지방의 특성을 살려 옹기를 빚는다.

  • 강원 지역: 추운 지방이라는 특성상 길쭉하게 빚는다.

  • 대전, 세종, 충청 지역: 입구가 작지만 좌우가 볼록하며 바닥이 다소 넓다.

  • 광주, 전라 지역: 남부지방의 향토성에 따라 좌우의 윗부분이 볼록하고 밑바닥이 작다.

  • 부산, 울산, 경남, 대구, 경북 지역: 중간 좌우가 볼록한 편으로 입구와 바닥이 적다.

  • 제주 지역: 물독으로 자주 사용하였던 영향으로 좌우 윗부분이 볼록해 보인다.

  • 황해 지역:

  • 함경 지역:

  • 평안 지역:


5. 관련 장소[편집]




  • 외고산 옹기마을: 울산광역시에 소재한 국내 최대 규모의 집단 옹기촌이며, 울산옹기박물관도 이곳에 있다. 많은 장인들이 전통기술에 현대적 감각이 가미된 옹기제작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곳이다. 직접 도자기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주소]


6.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0 14:05:24에 나무위키 옹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도기'를 분야에 따라서는 토기(土器)라고도 부르는데 같은 것을 지칭한다.[2] 후일 밝혀진 바에 따르면 광명단에 섞인 납 성분의 함량이 낮아서 광명단을 잿물에 섞어 옹기를 굽는다고 건강에 해가 올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 인식은 나빠질대로 나빠진 뒤였다.[3] 제주도 옹기가마에서 사용하는 땔감을 가리키는 말. 나뭇잎과 가지가 달린 관목이나 잡목을 잘라서 사용한다.[주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 3길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