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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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멍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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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멍
王濛 | Wáng Méng


파일:external/assets1.sportsnet.ca/meng_wang.jpg

출생
1984년 7월 9일[1] (39세)
헤이룽장성 치타이허시
국적
[[중국|

중국
display: none; display: 중국"
행정구
]]

신체
167cm
종목
파일: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픽토그램.svg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주종목: 500m, 1000m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시나 웨이보 아이콘.svg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주니어 시절
2.2. 2003~05 시즌
2.3. 2005-06 시즌
2.4. 2006-07 시즌
2.5. 2007-08 시즌
2.6. 2008-09 시즌
2.7. 2009-10 시즌
2.8. 2010-11~2011-12 시즌
2.9. 2012-13 시즌
2.9.1. 월드컵 시리즈
2.10. 2013-14 시즌
2.10.1. 월드컵 시리즈
2.10.2. 은퇴
3. 지도자 및 해설자 경력
4. 평가
5. 수상 기록
6. 관련 항목



1. 개요[편집]


중국의 前 여자 쇼트트랙 선수이며 양양(A)을 잇는 중국의 쇼트트랙 스타였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주니어 시절[편집]


2002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500m 금메달을 따낸 후 꾸준히 대표팀에 승선하였다. 그 후 2002년까지 미친 활약을 하고 있던 양양이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왕멍이 후계자로 주목받았다.


2.2. 2003~05 시즌[편집]


2004 세계선수권 종합 준우승, 2004-05 시즌 월드컵 종합 우승을 거두면서 짧은 시간 안에 단거리와 장거리에서 큰 성장을 했다.


2.3. 2005-06 시즌[편집]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500m 금메달, 1000m 은메달, 1500m 동메달을 따면서 양양(A)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3000m 계주에서는 결승에서 진선유를 밀치는 바람에 실격당했다.


2.4. 2006-07 시즌[편집]


본격적으로 전성기가 시작되어 월드컵 1000m[2]에서 진선유와 주고 받으면서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중요한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번번이 진선유에게 1000m에서 우승을 내주면서 쓴맛을 봤다.


2.5. 2007-08 시즌[편집]


그러다가 진선유가 2008년 2월에 열렸던 6차 월드컵에서 레이스 도중 큰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결국 가장 큰 걸림돌이 없어졌던 왕멍은 2008 세계선수권에서 500m, 1000m, 1500m에서 1위를 하면서 압도적으로 종합우승을 차지해 4관왕에 올랐다. 이후로 왕멍의 독주 체제가 시작됐다.


2.6. 2008-09 시즌[편집]


2008-09 시즌 월드컵 종합 우승과 2009 세계선수권 2연패에 성공했으며, 2년 연속 세계선수권에서 4관왕을 달성했다. 1500m에서도 1위로 들어왔지만 실격을 당했는데, 만약 반칙을 하지 않았다면 전관왕을 차지할 만큼 당시의 압도적인 1인자였다.


2.7. 2009-10 시즌[편집]



2.7.1. 월드컵 시리즈[편집]


500m와 1000m에서 랭킹 1위를 달성하며 월드컵 시리즈를 종합 우승했다. 500m 종목은 4차례의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며 전승을 하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2.7.2.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편집]


올림픽에서도 그녀의 적수가 없었기 때문에 500m, 1000m에서 정말 손쉽게 금메달을 걸었고 1500m에서는 넘어져서 실격을 당했지만 3000m 계주에선 심판의 수혜 덕분에 금메달을 따내면서 진선유에 이어 올림픽 3관왕을 했으며 그 덕분에 중국은 여자 쇼트트랙 종목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했다.[3]

파일:external/www3.pictures.zimbio.com/Short+Track+Speed+Skating+Day+13+-U4e33jarubl.jpg

덧붙여 이후 중국 선수 장후이가 상처를 입은 게 알려졌는데 금메달을 딴 직후 왕멍이 너무 기뻐서 스케이트를 신은 채로 펜스를 넘으려다가 옆에 있던 동료 선수 장후이의 얼굴에 상처를 입힌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경기가 끝나면 안전 사고 방지를 위해 반드시 스케이트 날에 날집을 착용하고 펜스를 넘어가야 한다. 근데 그 기본 중에 기본도 안 했다. 누가 보면 훈육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위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조금만 왕멍의 발 높이가 낮았으면 그 자리에서 장후이가 스케이트 날에 목이 베여 사망할 뻔했다.[4][5]


2.7.3. 2010 세계선수권[편집]


세계선수권에서도 올림픽의 기세를 이어가 500m, 1000m에서 1위을 하면서 3연패가 유력시되었으나 만 18세의 박승희가 1500m, 3000m 슈퍼파이널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역전 우승을 해 종합 준우승에 머물렀다.


2.8. 2010-11~2011-12 시즌[편집]


총 2시즌의 공백기를 겪었는데, 2010-11 시즌은 부상으로 스킵했으며, 2011-12 시즌에는 대표팀에 복귀했으나 2011년 7월,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인 왕춘루[6]와 싸움을 벌였으며, 몸싸움 도중 팔을 부상당해 병원으로 이송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파일:external/www.szdaily.com/001422474e550fa98f3915.jpg

이후에는 각자 잘못을 모두 서로에게 떠넘겼고, 결국엔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사건이 종료된 뒤 본인은 대표팀에서 퇴출당했고 왕춘루도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이외에도 호텔에서 만취된 상태에서 "내가 금메달리스트야!"라고 외치면서 행인을 폭행한 적도 있었다.


2.9. 2012-13 시즌[편집]



2.9.1. 월드컵 시리즈[편집]


그러다가 2012년 다시 대표팀에 들어올 수 있도록 자격 정지가 풀렸으며 월드컵에 참가하게 됐다. 2013년 2월 10일, 드레스덴 월드컵에서 500m 세계 신기록을 42초 597로 갱신했다. 처음으로 시즌 월드컵 500m에서 금메달을 딴 2004년 이후 10년 가까지 지나도록 기량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계속해서 발전해 나갔는데 2시즌을 쉬고 복귀했는데도 6번의 대회에서 500m를 모두 우승하며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했다. 이로서 2009-10 시즌 월드컵 이후로 두번째 500m 전승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복귀한 후 그녀는 유독 박승희와의 마찰이 많았는데, 월드컵 시리즈 동안 노골적인 반칙과 거친 몸싸움을 걸어왔다. 박승희가 2010년 세계선수권 3연패를 저지했던 사연도 있었고 박승희가 2012-13 시즌부터 500m 기량이 상승해서 왕멍의 주종목인 500m에서 위협이 될 만한 선수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2.9.2. 2013 세계선수권[편집]


박승희와의 라이벌리는 세계선수권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졌는데 결국 개인종목에서 우승자가 가려지지 못하고 3000m 슈퍼 파이널[7]에서 최종 승부를 보게 되었다. 왕멍이 중간순위 1위, 박승희가 2위였으나 포인트는 3000m에서 뒤집히는게 가능한 상황이었고, 왕멍은 공백기에서 복귀한 후로는 체력에 문제를 보이며 1500m 이상의 장거리는 포기한 상태였지만 박승희는 중장거리에도 강점을 보이기에 박승희의 우승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파일:external/pds.joinsmsn.com/htm_20130311154325427.jpg

슈퍼파이널 경기에선 박승희를 거의 몸통박치기 수준으로 밀쳐내는 행위를 벌여 실격당했으며 클로즈업 카메라에도 분명히 잡혔을 텐데 방송에서는 공중에서 찍은 화면만 송출했다. 그 바람에 박승희가 6위로 들어와 종합 순위 2위를 기록해 왕멍이 커리어 3번째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을 달성했다.

정정당당한 승부를 피하고 반칙을 저지른 것도 상상을 초월한 언스포츠맨십이었고, 저 행동은 자칫하면 박승희가 부상을 당할 뻔한 위험한 반칙이었다. 그럼에도 ISU는 어떠한 징계도 내리지 않았고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왕멍의 이 플레이에 대한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물론 관객들과 선수들 아무도 박수쳐 주지 않는 '부끄러운 챔피언'이었다.


2.10. 2013-14 시즌[편집]



2.10.1. 월드컵 시리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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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희와의 악연은 2013-14 시즌에도 계속해서 이어졌는데, 월드컵 중에는 리젠러우가 준결승전에서 박승희를 밀면서 넘어질 뻔한 상황이 있었고, 결승전에서도 스타트에서 팔로 밀치고 인코스를 위험하게 파고들어 넘어지면서 박승희를 넘어뜨렸다.

겨우 들어와서 은메달을 받은 박승희는 계속되는 거친 반칙과 몸싸움으로 화가 나서 리젠러우에게 항의를 했는데 이 때 본인이 "왓(What)? 왓?" 거리면서 끼어드는 바람에 둘이 싸움 일보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일명 왓멍사건. 박승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를 아예 대놓고 "선수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일갈했던 적도 있다.

1차 월드컵 500m에서는 준준결승에서 스타트를 하며 넘어졌지만 2, 3, 4차 월드컵에서는 500m를 모두 우승했다. 중장거리 능력은 떨어졌어도 여전히 2014 소치 동계올림픽 500m 금메달 유력 후보였지만, 1월 16일자 기사에 따르면 훈련 도중 넘어지면서 심하게 다쳐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수준의 큰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 되었다. 소치 동계올림픽까지 1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중상을 입었다는 것은 올림픽 참가 불가능이란 결론이 난 거나 마찬가지다. 국내 네티즌들은 한국 선수들이 왕멍을 포함한 중국 선수들에게 당한 것이 있던지라 "반칙을 신나게 해대더니 꼴 좋다"는 식으로 비난했다.

전력상으로는 왕멍의 이탈이 중국 여자 대표팀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실이었으나, 리젠러우엄청난 행운으로 주종목도 아닌 500m 금메달을, 밴쿠버 올림픽 시즌 이후 뚜렷한 활약은 없었던 저우양은 저력을 발휘해 한국의 신예 심석희를 제치고 1500m에서 금메달을 땄으며, 판커신도 1000m에서 은메달을 따며 선전하는 등 왕멍이 없어도 충분히 좋은 성적이 나왔다. 물론 3000m 계주에서 중국이 실격 당했으나 반칙 없이 깨끗하게 스케이팅 했다면 그대로 은메달을 받았을 것이다.


2.10.2. 은퇴[편집]


나이를 감안해서 기량이 서서히 떨어져 가는 타이밍이기도 했고 소치 동계올림픽이 마지막 올림픽 무대가 될 예정이었으나 출전이 무산되자 복귀하지 않고 사실상 은퇴를 하게 된다.


3. 지도자 및 해설자 경력[편집]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선수 대신 해설자를 맡게 되었으며, 올림픽이 끝나고 중국에서 스포츠 의류 사업을 시작한다.

2019년 5월 24일 한팀으로 통합된 중국 국가대표 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코치로 부임했다.[8] 그러나 2021년 중국 팀의 실적이 부진했단 이유로 국가대표 코치직에서 해고되었다.

자국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선 쇼트트랙 해설위원을 맡았는데 해설은 제대로 하지 않고 중국 선수가 선두 주자로 달릴때마다 함성만 질러대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한국 선수들이 넘어질 때마다 굉장히 기뻐했다. 2000m 혼성 계주 준준결승 1조 경기 당시에는 한국 팀이 넘어지자 "잘 넘어졌어. 정상적인 현상이야. 리플레이 제대로 한 번 봅시다. 한국팀이 어떻게 넘어졌는지 보게!"라는 망언까지 내뱉었을 정도였다. 이후 결승에서 중국팀이 골인하는 장면을 해설할 때는 "내 눈이 자라서 정확하므로 리플레이는 필요 없다", "첫 금메달이다"라는 뇌피셜이 가득한 해설로 한국에서 논란이 되었다.

왕멍은 2014 소치 동계올림픽때도[9] 타국 선수들이 모두 넘어지고 중국 선수 리젠러우가 금메달을 딸 기미를 보이자 해설은 뒷전이고 함성만 질러대는 바람에 옆에 있던 다른 중국 해설위원들도 이런 모습에 당황했을 정도였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도 다시 한번 해설을 맡았는데 2,000m 혼성 계주 준준결승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경기 중 넘어지자 잘됐다며 발언(!)하자 논란이 일어났다.# 이런 왕멍도 2월 7일 황대헌실격은 뜻밖이었는지 "네? 진짜요? 놀랍네요. 이건 진짜 의외의 결과네요."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히려 경기가 끝나고 오랫동안 비디오판독이 이루어지자 1위2위는 문제가 없었는데 왜 비디오판독이 이루어지냐고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후에 반칙이 맞다고 말을 바꿔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500m 결승에서 황대헌이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금메달을 따내자 "오 황대헌 선수 축하합니다. 한국이 오늘 결국 금메달을 가져가네요.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습니다."라고 인정했다.결승에 중국 선수가 없어서 그런가?

이후 남자 5000m 계주 결승에서 자국 선수인 쑨룽이 넘어져서 결국 최종 5위에 그치게 되자 대놓고 똥씹은 표정을 지으면서 "여기서 욕해봤자 사이버 폭력밖에 더 되겠냐. 내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라고 반응했다.


4. 평가[편집]


좋은 체격에 힘과 체력 모두 여자 선수들 중엔 견줄 자가 없을 정도며 근 10년 간 단거리에서 적수가 없던 500m 역대 최강 스케이터다. 전성기 시절에는 단거리부터 장거리까지 모든 종목에서 다 활약이 가능한 올라운더였으며, 2010년 이후 체력 저하로 장거리 능력이 현격히 떨어졌으나 500m 만큼은 압도적이었다. 반칙도 탑급이다.

장거리 최강자였던 대한민국진선유와 더불어 2000년대 여자 쇼트트랙을 평정한 여성 스케이터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와 은메달과 동메달 각각 1개를 수상한 레전드지만 부적절한 인성과 비매너, 거친 플레이로 실력에 비해서 존경은 못 받는 선수이지만, 이러한 비매너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평을 받는 후대의 판커신보다는 덜하다는 평이다.[10]

사실 왕멍이 본격적으로 불량한 인성과 비매너를 보인 건 나이를 먹으면서 커리어가 내리막을 타기 시작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나서였고,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적수가 없다고 느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더티 플레이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11] 거의 비슷한 시기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 경쟁을 펼쳤던 진선유도 왕멍에 대해 자신과 한참 경쟁을 펼칠 때는 그래도 이 정도로 불량한 인성과 비매너는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아무래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박승희를 비롯한 한국의 선수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것에 대해 크게 인식을 해서 본색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왕멍은 중국의 한 예능 방송에 나와서 대놓고 박승희에 대해 다짜고짜 성형한 거 같다는 식으로 망언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 반대로, 당사자인 박승희는 인스타그램에다가 왕멍이 본인에 대해 망언을 늘어놓은 장면을 캡쳐해서 올려놓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마디로 실력이 좋은 선수인 것은 확실하나 나이를 먹어가며 실력이 떨어지는걸 반칙과 편파판정으로 이겨내고 있는 탓에 갈수록 논란만 더 일으키는 선수가 되었다.


5. 수상 기록[편집]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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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
올림픽
4
1
1
세계선수권
18
8
3
세계 팀선수권
2
4
0
아시안 게임
2
2
1
주니어 세계선수권
1
2
1
합계
27
17
6

파일:오륜기(여백X).svg 올림픽
금메달
2006 토리노
500m
금메달
2010 밴쿠버
3000m 계주
금메달
2010 밴쿠버
500m
금메달
2010 밴쿠버
1000m
은메달
2006 토리노
1000m
동메달
2006 토리노
15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3 바르샤바
3000m 계주
금메달
2004 예테보리
500m
금메달
2006 미니애폴리스
3000m 계주
금메달
2006 미니애폴리스
500m
금메달
2008 강릉
종합
금메달
2008 강릉
500m
금메달
2008 강릉
1000m
금메달
2008 강릉
1500m
금메달
2009 비엔나
3000m 계주
금메달
2009 비엔나
종합
금메달
2009 비엔나
500m
금메달
2009 비엔나
1000m
금메달
2010 소피아
500m
금메달
2010 소피아
1000m
금메달
2013 데브레첸
3000m 계주
금메달
2013 데브레첸
종합
금메달
2013 데브레첸
500m
금메달
2013 데브레첸
1000m
은메달
2004 예테보리
3000m 계주
은메달
2004 예테보리
종합
은메달
2004 예테보리
1500m
은메달
2005 베이징
3000m 계주
은메달
2005 베이징
500m
은메달
2006 미니애폴리스
종합
은메달
2006 미니애폴리스
1500m
2위
2006 미니애폴리스
3000m S.F.
은메달
2010 소피아
종합
동메달
2005 베이징
1000m
동메달
2005 베이징
1500m
동메달
2008 강릉
3000m 계주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 팀선수권
금메달
2008 하얼빈
단체전
금메달
2009 헤이렌베인
단체전
은메달
2003 소피아
단체전
은메달
2004 상트페테르부르크
단체전
은메달
2005 춘천
단체전
은메달
2006 몬트리올
단체전
파일:아시안 게임 로고.svg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7 창춘
3000m 계주
금메달
2007 창춘
500m
은메달
2003 아오모리
500m
은메달
2007 창춘
1000m
동메달
2007 창춘
15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2 춘천
500m
은메달
2002 춘천
2000m 계주
은메달
2002 춘천
종합
동메달
2002 춘천
1000m
3위
2002 춘천
1000m S.F.


6. 관련 항목[편집]



[1] ISU 프로필에는 1985년 4월 10일 생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본인이 밝히기를 실제 생일과 다르다고 한다.[2] 왕멍은 단거리 전문, 진선유는 장거리 전문으로 둘이 겹치는 종목은 1000m였다.[3] 대한민국이 먼저 1위로 골인했음에도 중국인을 좋아하는 제임스 휴이시가 한국에게 실격 판정을 내려 2위로 들어온 중국이 금메달을 받은 것 뿐만 아니라 세계신기록까지 세웠다.[4] 실제 장후이는 턱 근처를 베였다.[5] 실제로 아이스하키에서 스케이트 날에 선수의 목이 베이는 사고가 있었는데 클린트 말라축이라는 선수가 NHL 경기 중 경동맥이 스케이트 날에 베이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이 선수는 빠른 응급처치와 대수술 끝에 살아남았으며 이후에도 몇 년 더 선수생활을 하다가 은퇴했다. 이후 Richard Zednik이라는 선수도 비슷한 사고를 당했는데 이 선수도 살아남았다. 물론 이들이 살아남은 데는 행운이 따랐다.[6] 중국의 전직 쇼트트랙 선수며, 왕멍이 국제 무대에 데뷔했을 당시 중국 여자 대표팀의 최고참이었다.[7] 2013년 3월 10일[8] 왕멍이 임명되었던 직책은 롱트랙과 쇼트트랙 두 종목의 총 감독 개념이었으며, 각 종목에도 따로 헤드코치가 임명되었는데 쇼트트랙은 前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김선태가 맡게되었다. 롱트랙에는 다른 코치가 있다가 2021년 前 쇼트트랙 감독이었던 리옌이 부임했다.[9] 부상으로 다리에 깁스를 한 채 해설을 했다.[10] 후술하겠지만 초반부터 더티플레이를 선보이는 판커신과 달리 왕멍은 전성기 시절에는 그냥 초반부터 선두로 치고 나가는 식으로 경기를 했을 뿐 누군가를 대놓고 밀치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11]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주종목이었던 500m에서 경기를 수행할 때 딱히 누군가를 고의적으로 밀치거나 하지 않고 바로 선두로 뛰어나가는 방식으로 경기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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