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요(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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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황자
왕요
王堯


파일:external/img2.sbs.co.kr/CH65748132_w666_h968.jpg

본명
왕요 (王堯)
부모
아버지 왕건
어머니 황후 유씨
형제
동복형제 왕태, 왕소, 왕정
이복형제 왕무, 왕욱, 왕은, 백아, 황보연화
배우
홍종현
카게히라 류이치(일본판 더빙)
원작 인물
2황자 윤잉[1]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일찍부터 어머니인 황후 유씨에 의해 ‘황제’로 길러진 완전무결한 사내.

외모, 집안, 재능...어느 것 하나 차기 황제로 모자란 것이 없건만, 그저 늦게 태어난 이유로 ‘정윤’이 되지 못한 게 한이다. 이복형 ‘무’를 볼 때마다 내 자리를 대신 꿰차고 있는 듯해서 불쾌할 지경.

늘 남의 것을 바라보며 자랐으니, 아무리 사소한 것도 전부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린다. 욕심 많고 오만한데, 외가까지 든든하니 형제들 사이에서도 어려운 존재다. 남의 약점을 파고들어 쥐고 흔들기 좋아하지만, 실은 감정이 섬세하고 제 손에 피 묻히는 걸 싫어하는 결벽증을 지녔다. 그는 고려의 3대 황제, <정종>이다.


1. 개요
2. 작중 행적
3. 평가
4. 실제 역사에서
5. 여담



1. 개요[편집]


황제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타고나야 하는 것. 고려의 주인은 ‘나’다.[2]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의 등장인물. 모티브는 정종.

원작 소설 보보경심에서는 강희제의 유일한 적자이자 황태자인 애신각라 윤상으로 나오며 실제 역사의 모티브도 똑같이 강희제의 적자이자 폐태자였던 이밀친왕 윤상이다.[3]

2. 작중 행적[편집]


태조의 3남이자 유씨의 차남이었으나 바로 위의 동복 형 왕태가 일찍 죽는 바람에 사실상 유씨의 장남이다.

원작의 폐태자 윤잉 포지션에 가까운 건 태자(정윤) 속성만 빼면 오히려 이 쪽이 더 가까운 듯 하다. 사실 원작에는 비슷한 역이 없다.[4]

주요 인물이지만 드라마가 러브라인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황권 다툼의 주요 인물인 왕요는 분량이 거의 없다.[5] 11회에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20부작인데 12회부터서야 제대로 된 황권 다툼 내용이 시작된다.[6] 13회에서 반란을 일으키지만, 왕소, 왕욱, 13황자 백아의 연합으로 결국 패배한다. 그리고 왕소와의 일기토로 강으로 떨어진다. 혹시 해수로 인해 역사가 바뀌는가 했더니 강에서 살아났다. 아무래도 이대로 서경으로 가 연합하여 역습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최지몽 왈 원래 역적의 별 밖에 타고나지 않았다는데 그 때문인지 황위에 오른 이후 점차 미쳐가는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해수에게 그저 살고자 했을 뿐이라는 유언을 남기며 사망.


3. 평가[편집]


메인빌런 중 한 사람이지만 동복동생 왕소와 더불어 불우한 가정환경을 겪은 인물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어머니인 황후 유씨에게 완벽하다는 칭찬을 들으며 자랐지만 이는 왕요를 권력의 도구로 키우고 본인이 바라는 완벽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수단이었다. 출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거만하고 형제들을 무시하며 막 나가는 것 같지만, 실은 영특한 동생에 대한 반감으로 절대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도 내면은 열등감에 찌들었다. 어머니에게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나자 속절없이 무너질 정도로 유약한 사람이었다.

전문가의 진단이 없기에 정확히는 모르지만,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에게서 보이는 증상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왕요의 모습은 유년 시절 애착을 가진 대상(주로 부모)에게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받으면서도 비정상적인 애정을 받는 등, 극단의 감정을 동시에 반복적으로 겪은 아동 학대 피해자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증세다. 실제로 왕요는 성인이 된 뒤에도 황후 유씨에게 왕소 못지않은 정신적 학대를 받았지만, 황제가 된 뒤에도 그녀를 제대로 거역하지 못하며 정신적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방황했다.

결국 왕요 또한 왕소와 마찬가지로 권력욕과 물욕으로 완전히 타락하고 폐인으로 전락한다. 타국 사신단 앞에서 벼락이 떨어지자 그대로 기절해 뻗는 추태를 보이고, 자식을 영달의 도구로 보는 어머니에게 평생 이용당하다 마지막에서야 자신이 어머니에게 아들이 아닌 권력의 도구였음을 깨닫고, 동생의 아픔에 동감하며 세상을 떠나면서 만악의 근원인 어머니에게서 벗어났다. 하지만 살면서 부모에게는 물론 형제들에게도 제대로 된 애정 한번 받지 못한 채 고려의 황제라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으니 어찌보면 불쌍하다.


4. 실제 역사에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정종(고려 3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실제 역사에선 숙부인 왕식렴의 서경 세력을 군사적 기반으로 외가인 충주, 처가인 승주(박영규)와 매형이 되는 경순왕 등의 지지를 얻어 혜종 지지세력인 경기도 광주의 왕규, 박술희 등을 제거하고 즉위한다. 허나 즉위 4년 후 사망. 2비 문성왕후[7]에게서 얻은 유일한 아들 경춘원군은 혜종의 아들 흥화궁군과 함께 광종에게 사사되었다. 딸은 효성태자(태조의 11비 소생)에게 시집갔는데 효성태자는 광종라인이라 경종 즉위 후 원녕태자(태조의 10비 소생)와 함께 경종에게 사사되었다.

KBS 대하드라마 제국의 아침에서는 야인시대마루오까 경부, 불멸의 이순신원균 역할 등으로 유명한 배우 최재성이, MBC의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는 류승수가 각각 맡은 바 있다.


5. 여담[편집]


  • 프로필 사진 속 파지가 잘못되었는데, 국궁은 화살을 검지와 엄지로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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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무가 황태자 포지션은 담당했으나, 작중 행적들에 대해서는 왕요가 가져갔다고 보면 될 것이다.[2] 어쩌면 그에게 딱 맞는 말일 것이다. 왕무를 제외하고는 서열 1위, 그리고 어머니가 대표 호족인 충추 유씨, 장인이 후백제의 대표 호족인 박영규, 여기에 왕실 종친인 왕식렴의 지지까지 합하니 완벽한 조합이라 할 수 있다. 애당초 장인과 어머니의 배경이 왕식렴의 지지를 끌어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누이 혹은 여동생인 낙랑공주가 신라 마지막 군주인 경순왕과 결혼했으니 사실상 경상도까지 그의 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몇몇 세력을 제외하고 그와 맞설 수 있는 세력은 없다고 할 수 있다.[3] 실제로 보보경심의 윤잉은 황태자고 보보경심 려의 왕요는 황태자가 아니라는 설정만 빼놓고 보면 작중 행적이 유사하다.[4]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왕무에서 왕요로 넘어가는 시기가 굉장히 모호한 데다 왕요는 최승로가 평가했듯 왕소 못지 않게 피의 숙청을 단행해 고려를 반석 위에 올려 놓았다. 물론 일찍이 요절하여 완벽하게 숙청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는 형 왕무와 달리 압도적인 배경을 갖추고 있었다. 비록 왕식렴과 손을 잡았다고 해도 충주 유시와 후백제의 대표 호족인 박영규의 사위인 그가 왕식렴에 밀렸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왕식렴이 대세에 따라 왕건의 뜻과 달리 왕요와 손을 잡았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5] 다른 조연 황자들보다도 분량이 더 없을 때가 상당하다.[6] 하지만 왕무가 아직도 황제가 아니고 남주인 왕소는 여전히 황제가 될 생각이 없다.[7] 1비가 박영규의 차녀였는데 딸이 후사를 낳지 못하자 3녀를 마저 사위에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