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노야

덤프버전 :

요시노야
𠮷野家(よしのや)[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Yoshinoya_Shop.jpg
오사카에 있는 요시노야 지점
1. 개요
2. 상세
3. 일본 외
3.1. 한국
3.2. 미국
3.3. 중화권
4. 논란
4.2. 여성 비하발언
4.3. 외국인 채용설명회 참가 거부
5. 여담


홈페이지


1. 개요[편집]


규동을 주로 파는 일본의 대형 음식 연쇄점. 마츠야, 스키야와 함께 일본 3대 규동 체인점 중 하나로 본사는 도쿄 니혼바시에 있다.

2. 상세[편집]


1899년 니혼바시 어시장에서 처음 문을 열었으며, 1926년 츠키지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52년에 24시간 영업을 시작했으며, 1975년 덴버에 미국 내 첫 지점을 열었다.

2020년 현재 일본 대 규동 연쇄점 가운데 점포 수로 두 번째이며 일본 외에 중국, 홍콩, 대만,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미국등 여러 국가에 점포를 두고 있다.

요시노야의 상징은 그릇이 있다면 그것과 거의 비슷한 지름의 길이를 가진 국자가 있다는 점이다. 요시노야의 서빙법에는 손목 스냅이 있는데 국자를 위로 단숨에 들어올리면서 한번 튕겨지는 효과로 그릇에 정확히 안착하게끔 플레이팅하는 기법이 있다. 과거 전후 세대들이 젊었던 일본에서 많은 수의 규동을 한 번에 플레이팅하고자 하는 방법으로 고안되었으며 이 방법이 지금의 요시노야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혀있다.

요시노야 하면 근육맨과 연결고리가 굉장히 강하다. PPL을 받았던 모리나가 코코아와 달리, 근육맨에 등장한 요시노야 규동은 PPL 대상도 아니었는데 마치 도라에몽도라야키의 관계처럼 근육 스구루가 좀 마이너한 아저씨 음식인 규동을 좋아한다는 설정이 채택되면서 대히트를 쳤다.[2]


3. 일본 외[편집]



3.1. 한국[편집]


한때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1995년 두산이 공식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고 요시노야 미국[3]과 기술제휴를 맺어, 1996년 강남역에 1호점을 연 것이다. 1호점은 당시 뉴욕제과 뒷편에 위치하였으며, 130석 규모의 대형 매장이었다. 돼지고기 덮밥, 소고기 덮밥, 닭고기 덮밥 등의 단품 메뉴는 3~4천원대로, 『서울근교 드라이브: 맛있는 집, 전원 카페, 데이트 코스』(1997)를 보면, 요시노야의 주요메뉴 가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비프볼 3,700원 / 치킨볼 3,500원 / 콤보볼 5,300원[4]

/ 그린샐러드 1,500원 / 아이스티 1,000원

이처럼 3~4천원대의 저렴한 메뉴들을 등에 업고 큰 인기를 끌면서, 1997년 2월 신촌에 2호점을 열었다. 이와 함께 1997년말까지 전국에 10여 개의 직영점을 추가로 세울 계획을 한다.관련 기사

당시 여러 일본외식업체가 국내에 진출중이었고, 우동, 초밥, 돈까스 등 일본음식전문점들이 1만여 개에 달할 시절인지라, 요시노야의 국내 진출도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1997년 외환 위기 직전까지 서울 내에 4개의 체인점[5]이 영업하였으며, 뒤이어 샘표식품에서도 일본식 덮밥 체인점을 계획하였다.[6]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하여 외식산업 자체가 직격탄을 맞게 되면서 상황이 변화한다. 당시 두산그룹은 핵심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7] 그 과정에서 요시노야도 1순위 정리 대상이 되었다. 외식 인구의 급감으로 인하여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것. 특히나 거의 모든 점포가 번화가에 위치한 대형매장이었던 터라 매장 하나당 7억 원이 넘는 돈이 투입되었고, 이에 따른 적자 문제가 심각했다. 당시 두산 그룹의 부채비율은 600%에 달하여 주력사의 통폐합과 매각이 이루어지던 시기였고, 이는 요시노야도 피해갈 수 없었다. 두산측은 요시노야가 직접 인수하여 경영하지 않는 이상 폐쇄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1998년 4월 7일, 요시노야와 공식 프렌차이즈 계약을 파기하고[8] 국내영업점을 폐쇄하였다. 이로써 요시노야는 한국 내에서 공식적으로 철수하게 되어 두산그룹은 식품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즉, 인터넷에 떠도는 것처럼 7000원대의 창렬한 가격으로 내놓거나 현지화 전략을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망한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러한 소문이 완전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00년 출간된 유재은의 『한국시장의 프랜차이즈 전략』에서는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실패 사례로 두산의 요시노야를 거론하면서 다음과 같은 실패 이유를 밝힌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외환위기가 없었더라도 요시노야 매장은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단언한다.

첫째, 외식업의 필수인 맛전략의 실패이다 (중략) 예를 들어 규동이 일본맛 그대로 들여온다면, 일본 음식전문점의 한가지 메뉴로서 들어오면 모를까 그 아이템이 매출의 주류를 이루는 대중화된 외식매장으로는 접근이 어렵다는 얘기다. 일본맛을 버리고 한국식 불고기맛으로 바뀌었어야 했는데 다른 나라의 성공만 믿고 음식의 개성이 매우 강한 한국에 그대로 도입한 것이 시행착오였다고 보아진다.

둘째, 가격전략의 실패이다. (중략) 겉보기에는 3,000원 내외는 저렴한 가격이지만 여기에 한국인 식사의 기본인 국과 김치를 따로 사서 먹어야 하는 시스템이라 결국 4,000~5,000원을 주어야 하는데, 90년대 후반 IMF 당시로서는 중고가의 가격대를 형성하게 된다.

셋째, 주문식단제의 실패이다. (중략) 일일이 김치 하나에 돈을 내고 국물 하나에 돈을 내야 하는 것을 귀찮게 여기고 인심 고약한 불편함으로 여기는 우리의 정서와 일본인 정서와는 매우 다른 것이다. 이와 같이 3가지 주요 요인 때문에 두산의 요시노야 프랜차이즈 사업이 실패를 가져왔다고 본다.


상기 분석은 두산이 요시노야와 프랜차이지를 계약할 당시, "일본식 그대로 한국에 판매하려고 한다는 우려"에 대해서 두산 측이 "이미 대만 등 외국에서 성공을 거둔 업체로서 일본맛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기사"를 근거로 하고 있다. 즉 제대로 된 현지화 전략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산상사가 요시노야 매장을 폐쇄하기 직전까지 점포당 하루 평균 4백명의 고객을 유지했다. 게다가일본음식이 한국인의 입맛을 점령한다는 우려가 있을 정도였다. 이는 당시 한국의 소비자들이 요시노야를 외면하지 않았으며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애초에 두산상사가 요시노야와 계약을 한 것도 값싸고 빠르다는 점 때문이었고, 20~30대의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박리다매로 수익을 올리기 위하여 대형 매장을 고집했다. 그렇기에 1호점을 강남역에 열었고, '부담없는 가격'과 '1분 내에 메뉴가 제공되는 "전문" 패스트푸드점'을 표방했다. 아울러 매장별 음식과 서비스 질을 균질하게 맞추기 위해서 가맹점을 모집하지 않고 직영점 정책을 고수했다. 추후 20~30여 개의 직영점이 생기면 가맹점 체제로 변경할 예정이었는데, 20~30개의 매장이 들어서면 안정적인 운영과 적절한 수익이 들어올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산은 해외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무턱대고 대중화를 하려던 것이 아니라, 전문화를 먼저 꾀하여 인지도를 올린 다음에 본격적으로 대중화를 할 작정이었다. 결국 메뉴나 가격보다는 오히려 대형 매장 중심의 직영점 정책이 외환위기 이후 수익을 크게 악화시켰고, 그것이 바로 요시노야의 한국 철수를 가져왔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물론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한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지는 못했지만,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두산에서 운영했던 KFC 보다 수익은 낮았어도 매장당 일 평균 200만 원은 벌었다. 그리고 당시 두산은 요시노야 일본 본사와 기술 제휴를 한 것이 아니라, 요시노야 미국과 기술제휴를 맺었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는 없는 닭고기 덮밥이 존재했다. 즉, 일본인 입맛을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미국화된 형태를 국내에 제공했다.

결국 이것이 두산그룹의 마지막 식품 사업이 되었다.

3.2. 미국[편집]


미국의 요시노야는 푸드 스탬프를 받는 곳이기 때문에 고객들의 분위기가 사뭇 좀 다른 느낌이다. 일본의 요시노야를 생각하며 방문했다간 좀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날계란은 제공되지 않고 플라스틱 포크가 기본 식기라 적응이 쉽지 않다. 물론 매장에 따라 나무젓가락을 고객의 요구에 따라 따로 준비해주기도 한다. 또한 메뉴부터가 단 하나 있는 규동 메뉴를 제외하면 대부분 오렌지 치킨, 칠리새우같은 미국식 중화 요리 메뉴밖에 없다.


3.3. 중화권[편집]


중국과 홍콩, 마카오 등지에서도 유행 중이다. 일본과 메뉴는 거의 같고, 1인용 샤브샤브도 판매하고 있다. 가격도 현지와 마찬가지로 매우 저렴한 편이라, 여행객 뿐만 아니라 현지인도 많이 찾는다. 일본의 규동 메뉴는 짠 편인데, 이 곳은 반대로 좀 심심해서 짠 음식에 민감한 사람들도 좋아하고, 우리나라의 불고기와는 부위도 육질도 달라서 국내 소불고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이 곳의 규동은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중화권에서 모든 식당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규동 계열의 메뉴에 한해 도시락 포장도 가능하기에 편리하다.

중화권 요시노야는 굉장히 현지화가 잘 된 케이스로 손꼽힌다. 일본식 규동 외에도 1인 훠궈나 간단한 중국식 음식을 메뉴에 넣음으로서 오히려 원조 프랜차이즈와 차별화 된 현지 식당으로 정착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홍콩에서는 거의 '김밥천국' 수준으로 어딜 가도 이 가게를 볼 수 있다. 돈 없는 유학생들이 이따금 기분 내고 싶을 때 종종 가는 가게.


4. 논란[편집]



이 정도면 한국에서의 롯데리아베스킨라빈스에 비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4.1. 먹어서 응원하자! 참여[편집]


후쿠시마현의 농민들과 후쿠시마에서 직접 쌀을 재배해서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양파, 배추도 생산 예정이다. 이름은 '농업 생산 법인 요시노야 농장 후쿠시마'로 정했고 자본금은 1,000만 엔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일본에 가거나 제 3국으로 가는 길목으로 쓸 때 후쿠시마 문제에 민감한 사람들은 저 캠페인에 참여하지 않는 마츠야에 가서 먹는 것이 현명하다. 또한 계란도 후쿠시마 산을 쓰는 경우가 있다.

나리타 국제공항에도 지점을 냈으니 일본을 부산 등지에서 출발하여 제 3국으로 가는 길목으로 쓰는 (즉, 일본에 입국하지 않음) 사람들도 조심하자. 더군다나 일본항공의 AIR SERIES 메뉴 중 하나가 요시노야에서 만든 규동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으며, 주로 일본발 장거리 노선에 공급되므로 부산 출발로 장거리 가는 사람이라면 일본에 입국하지 않더라도 조심하고, 미국, 캐나다나 유럽이 목적지라면 중국 특유의 향으로 인해 기내식이 입맛이 안맞을지라도 중국국제항공이나 중국동방항공 등 중국 항공사를 이용하는 게 차라리 낫다. 중국에서 기내식이 실리기 때문에 방사능 걱정 정도는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남미행은 아메리칸 항공 / 일본항공밖에 옵션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다.

2022년 기준 양파와 배추는 아예 중국산만 사용하고 쌀은 홋카이도산을 사용한다. 공식적으로는 쌀, 양파, 배추 모두 후쿠시마산을 포기한 셈. 쌀의 경우 점포에 따라서 수입산 쌀 또는 타지 쌀을 혼합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불안하면 가지 않는 것이 맞겠지만.

4.2. 여성 비하발언[편집]


2022년 4월 16일, 와세다대의 사회인 대상으로 실시한 강연회에서 자사의 마케팅 전략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여성 비하발언 논란이 일었다.

논란의 당사자인 이토 마사아키 상무는 발언에 앞서서 "이렇게 말하면 안좋게 생각하겠으나.." 라는 식으로 시작해서, 여성들이 시골에서 상경하자마자 남자들한테 비싼 밥을 얻어먹어 규동을 먹지 않게 되었다고 설명하며[9] 미리 여자들로 하여금 규동에 길들여지게끔 마케팅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걸 "숫처녀 히로뽕 중독 전략"[10] 이라고 표현하는 바람에 큰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다 "요시노야는 자신들의 주력 상품을 그정도로만 생각한다"는 인상도 주었기 때문에 회사 마케팅 입장에서도 좋지 못했고, 결국 논란을 일으킨 이토 마사아키 상무는 해임되었다. #

넷상에서도 요시노야 규동을 키무스메 샤부즈케동 이라고 부르며 장난으로 아헤가오를 지으며 규동을 먹는 트윗이 10만 좋아요를 찍기도 했다.


4.3. 외국인 채용설명회 참가 거부[편집]


2022년 5월 9일, 일본국적을 가진 혼혈 학생이 요시노야로부터 "취업비자 취득이 어렵다"를 이유로 채용설명회 참가를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메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국적임에도 이런 취급을 받은것은 해당 학생의 이름이 가타가나인걸 보고 제대로 확인도 없이 취소한 것으로 보이며, 그외에도 외국인, 혼혈에 대해서 설명회 참가 취소를 통보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요시노야는 이에 대해서 "취업비자 전환, 취득이 어렵다"는 이유를 반복해서 표명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안정적으로 사업을 지속할 수 있고 해당 외국인 학생의 일본 체제를 확인하고 책임질 수 있는 고용주라면 어지간한 경우가 아닌 한, 대부분 인정되며 1부 상장기업인 요시노야가 자사원의 비자 취득도 어렵다는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요시노야의 해명은 회사차원에서 이에대한 서포트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인셈. 웃기는 점은 회사 홈페이지에서는 다양성을 모토로 외국인 사원도 적극적으로 등용한다고 쓰여있다는 것.


5. 여담[편집]


특이한 매장으로 나가타초1초메점(永田町一丁目店)을 들 수 있다. 입점한 자리가 어마무시한데, 국회의사당 안이다. 사실 국회의사당에는 직원들과 방청객 등을 위해 입점해 있는 일반 상점들이 여럿 있는데(세븐일레븐도 있다) 요시노야도 그 중 하나. 이 곳의 명물은 쿠로게와규 덮밥(黒毛和牛重)으로, 전국의 요시노야 중 취급하는 점포가 이 곳을 포함해 단 두 곳뿐인 메뉴다. 나머지 한 곳은 하네다 공항 제3터미널점이기 때문에 먹어보고 싶다면 여길 가는 편이 훨씬 편하다. 비슷하게 인근 카스미가세키에 있는 정부합동청사 3호관에도 카스미가세키 3호관점이 입주해 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아빠가 야구부에서 활동하는 초등학생 아들에게 규동을 선물해주는 단순한 내용의 광고가 있었다. 명대사는 "やったねパパ、明日はホームランだ"(고마워 아빠, 내일은 꼭 홈런 칠게!) 지금도 유튜브에서 해당 일본어로 찾아보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광고에 나오는 남자아이 이름이 '이치로'라서 요시노야가 스즈키 이치로의 등장을 예견했다는 농담도 있다.

매장마다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가 걸려 있는데, 아르바이트 공고와 함께 올라온 사진 속 인물 중 웹툰 작가 이말년과 닮은 사람이 있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말년 본인도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선수 타나하시 히로시는 학창 시절에는 '요시노야의 간판을 보면 무조건 안에 들어가 규동 나미모리(보통 사이즈)를 먹는다'라는 규칙을 스스로 정했는데, 집 가는 길에 요시노야가 세 점포 있어서 항상 규동 세그릇을 먹었다고 한다. 신일본 입단 이후에는 신일본의 오랜 스폰서가 마침 요시노야인지라 콜라보 메뉴 등으로 자주 얼굴을 비추게 되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0 22:06:27에 나무위키 요시노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컴퓨터에서는 그냥 吉野家라고 쓰는 게 일반적이기는 하다. 심지어 요시노야 공식 홈페이지도 텍스트는 吉를 쓴다. 다만 정식 표기는 사진에도 나와 있듯이 吉(윗부분이 士)이 아니라 𠮷(윗부분이 土)을 사용한 𠮷野家이다.[2] 하지만, 규동 문서에도 나와있듯 요시노야와 유데타마고와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3]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는 없는 닭고기덮밥이 있었다. 메뉴 명칭도 전부 영어로 되어 있었다.[4] 덮밥, 샐러드, 음료 등을 포함한 세트메뉴이다.[5] 이 가운데에는 두산이 프렌차이즈 계약을 맺고 운영하던 라운드테이블 피자가 국내에서 철수하면서 해당 매장을 요시노야 매장으로 변경한 곳도 있다.[6] 일본 진돈데이와 계약을 맺고 매장을 열 예정이었지만 때마침 외환위기가 불어닥치면서... [7] 그 이전에도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탓에 두산그룹의 이미지는 안 그래도 좋지 않은 편이었다. 어쨌건 이 두 사건을 계기로 두산그룹은 완전히 건설업과 중공업에만 집중하는 재벌이 되었다.[8] 최초 7년간 계약을 맺었다.[9] 이 시점부터 이미 시대착오적인 발언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요시노야는 시골에도 스트립몰(strip mall, 교외형 점포) 형태로 다 진출한 상태였다.[10] 원문: 生娘シャブ漬け戦略. シャブ는 야쿠자가 주로 쓰는 은어에, 生娘는 키무스메라고 읽는데 철지난데다 혐오 성향이 짙어서 현지에서도 사장된 단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아다년 같은 표현인데 이걸 공적인 장소에서 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