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당포 야마시로호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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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편집]


1924년 4월 25일 정오경 황해도 해주군 해주읍의 석동(席洞)공립보통학교, 의창학교(懿昌學校), 동아강습소 등 여러 학교의 학생 및 기타 주민을 합해 약 250여 명이 용당포[1] 앞바다에 정박해 있는 일본 해군구축함 우메(梅)와 쿠스노키(楠)를 관람하기 위해 일본식 짐배[2] 야마시로호(山城丸, 44t급)를 타고 우메(梅) 함에 접근하려다 거센 바람으로 충돌, 야마시로호의 밑바닥이 깨져 침몰해 68명[3]이 익사한 사건이다.## 총독부는 구축함까지 동원해 사체를 수색했지만 성과가 없자 인천에서 잠수부와 '해녀'를 데려다가 수색했다.#

폭풍·폭우로 여러 곳에서 어선이 침몰한 경우를 제외한 단일 사건으로는 일제강점기 하 조선 최악의 수상 사고였으나 위키백과의 일제강점기 해양 사고 목록에 없다.[4]

문제의 배 야마시로호의 선장 하마자키(濱岐淸二六)는 4월 22일 황해도 겸이포에서 철물을 싣고 용당포에 입항하였다가, 25일 구축함이 입항하여 관람자가 많은 것을 보고 청부업자 나가노(永野道助)와 협의, 한 명당 8전씩 받기로 하였다고 한다. 50間 거리에서 닻을 내려야 할 것을 20間 거리에서 내리려다가[5] 폭풍에 쓸려 충돌한 것이라고 한다.# 선장의 증언에 따르면 밑바닥이 깨져 물이 3자나 들어왔는데도 군함에서는 구조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마자키는 해주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 금고 1년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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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주시의 외항[2] 문헌에 따라서는 발동선이라고도 한다.[3] 초기 보도에서는 90여명[4] 1936년의 대안환호 침몰 사고도 있지만 국경하천인 압록강 하구의 만주국 배에서 일어난 사고이며 조선인 승객은 4명이었다.[5] 1間은 약 1.818m이니, 50간은 91m, 20간은 36m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