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스톡 페스티벌

최근 편집일시 :

파일:external/vignette4.wikia.nocookie.net/Jimi_Hendrix01.jpg
파일:woodstock.jpg
지미 헨드릭스의 우드스톡 페스티벌 공연모습
공식 포스터

1. 개요
2. 1969년
2.1. 라인업
2.1.1. 8월 15일
2.1.2. 8월 16일
2.1.3. 8월 17일
3. 1999년
3.1. 개요
3.2. 준비 과정
3.3. 1999년 우드스톡의 문제점
3.4. 난장판이 계속되다
3.5. 이후
4. 우드스탁 뮤직 앤 아트페어2023
4.1. 이야깃거리
4.2. 논란/발언
4.3. 관련 사이트 및 채널
5. 대중 매체




1. 개요[편집]


웹사이트

정식 명칭은 Woodstock Music & Art Fair. 1969년 8월 15일 ~ 17일까지 3일간 미국 뉴욕주에서 있었던 전설적인 록 페스티벌이다. 모든 락 페스티벌의 시초이자 1960년대 후반을 휩쓸었던 히피 문화의 절정이었다.

우드스톡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에 나와있는 '우드스톡'은 뉴욕주 얼스터 카운티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본래 여기에서 행사를 열려고 했기에 페스티벌의 이름에 우드스톡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하지만 우드스톡 주민들의 반발과 정부 당국의 규제로 공연 부지 선정에 어려움을 겪는 바람에 공연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 그러다가 이 소식을 알게 된 막스 야스거(Max Yasgur)라는 농장주가 73만평에 달하는 자신의 농장 부지를 제공하여 개최될 수 있었는데, 여기는 사실 우드스톡에선 약 100km 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또한 애초에 공연장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드스톡은 음향 시설은 물론 화장실이나 급수시설 등 위생 시설이 제대로 설비되지 않았다. 페스티벌 중에 있었던 폭우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거대 진흙 뻘이 되기도 했는데 히피들은 낙천적이게도 폭우에 샤워하고 물 웅덩이에서 수영을 하고 놀았다고 한다. 장소를 제공한 농장주 막스 야스거의 시점에서 제작된 영화가 2009년작 테이킹 우드스탁이다.

최초 3일로 계획된 행사였으나 뜨거운 관객들의 호응으로 1일 연장되어 4일간 개최되었다. 32팀의 밴드가 무대에 올랐으며, 입장객은 최소 30만에서 최대 40만까지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중 절반은 펜스를 부수고 무임승차했기 때문에 정확한 입장객 수는 알 수 없다. 티켓 판매 수입이 지미 헨드릭스의 32,000달러 개런티 등 출연료와 무대 시설 비용에 미치지 못해 공연 자체는 13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적자를 기록하지만 이후 기록물 영상 저작권등으로 어마어마한 이윤을 창출해 결국 대성공했다.

특히 지미 헨드릭스의 공연이 제일 유명한데, 지미 헨드릭스는 여기서 미국 국가를 즉흥연주하여, 이펙터를 사용해 폭격기 소리를 연출해내며 베트남전과 미국을 풍자했다.

레드 제플린이 이 공연에서 설 예정이었으나 몇달 앞두고 취소했다. 당시 레드 제플린은 1집을 내고 활동을 한창 하던 때인데, 지미 페이지가 밴드 홍보를 위해 모든 러브콜에 오케이를 했다고 한다. 덕분에 멤버들은 잔뜩 지쳤고, 어쩔 수 없이 우드스톡 페스티벌 참가는 무산됐다. 같은 이유로 롤링 스톤스 로큰롤 서커스 출연도 고사했다.

1994년과 1999년에 각각 25주년과 30주년 기념으로 다시 페스티벌이 열렸으나 1969년 때의 근본 정신이 사라졌다는 비난을 들었다. 그나마 1994년의 우드스톡 리바이벌 페스티벌은 크랜베리스, 그린 데이, 에어로스미스 같은 당시 핫한 밴드들과 베테랑들의 참여에 힘입어 꽤 괜찮은 평가와 흥행성과를 냈고 역대급 공연을 펼치고 마지막 무대에서 악기들을 모두 부숴버리고 퇴장한 사이프러스 힐을 위시해서 볼거리도 많고 그나마의 의미가 살아있던 공연이었다.

하지만 이 1994년의 성과에 고무되어 MTV가 적극개입하여 키드락, 림프 비즈킷등의 자극적인 밴드들을 라인업에 넣고 개최한 199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은 강간, 절도, 방화를 비롯한 이런저런 사고와 폭동이 발생해 미쳐돌아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데 사실 1969년의 원조 우드스톡에서도 강간, 절도, 방화가 있었다. 대규모로 한껏 들뜬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느슨해진 사람들을 노리는 소매치기는 으레 발생하기 마련이고, 30~40만명이나 모인 곳임에도 변변한 취사장이나 화장실도 갖춰지지 못한 곳에서 아무 일이 없었다는 건 말이 안된다. 당시의 히피 문화 덕분에 큰 신경 안썼다는 게 맞겠다. 애초에 1969년과 1999년은 사회분위기나 성 인식 등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하지만 1999년 행사는 폭력배나 부적절한 경호 인원을 고용하여 인사사고가 난 다른 페스티벌들을 상당히 의식했는지, 경비인력을 아예 "평화 경비대"(?) 로 명명하고 남고생이나 남자 대학생 등의 일반 계약직 아르바이트생으로 편성했다. 하지만 질서 유지라는 측면에서 보면 100킬로그램은 족히 넘는 문신 투성이의 총이나 칼을 허리에 찬 거구들이 대배기량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일탈 행위를 살벌하게 지적하는 것이 1999년 우드스톡에서는 더 나은 선택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범생이같은 또래 남자들이 돌아다니며 "이건 안됩니다." "저건 하지 마세요." 하고 다녔으니 1999년 관객은 아무도 경비인력을 겁내지 않았다.

99 우드스톡이 끝난 지 3개월 뒤 코첼라 페스티벌이 첫 개최되는데, 99 우드스톡을 보고 큰 교훈을 얻었는지 물과 주차가 무료로 제공되었고 현재까지도 20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50주년인 2019년에도 열려고 했으나 취소되었다. #

다만 2023년에 한국의 한 회사에서 미국 측의 정식 라이센스를 받아서 포천시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2. 1969년[편집]



2.1. 라인업[편집]



2.1.1. 8월 15일[편집]




2.1.2. 8월 16일[편집]




2.1.3. 8월 17일[편집]




3. 1999년[편집]



3.1. 개요[편집]


1999년 7월 23일(금)~25일(토), 미국 뉴욕주 로마(Rome)시에 있는 전 그린피스 공군기지에서 열린 우드스톡 페스티벌.

1999년의 우드스톡 페스티벌은 1969년 선대 우드스톡 페스티벌을 모욕하는 수준을 넘어, 20세기동안 열린 전세계 음악 페스티벌 중에서도 손꼽히는 개막장 중의 개막장으로 일컬어지는 음악행사였으며 그 지독한 악명으로 인해 이후에도 꾸준히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99년 이후로 충분히 프랜차이즈가 될수 있었던 우드스탁의 명맥이 끊겨버렸을 정도. 현재 코첼라를 비롯한 매머드급 행사나 국내 워터밤에서 경직적인 성향의 통제나 안전팀의 태도도 이 우드스탁 99에서 얻은 결과물이다.

1999년 우드스톡은 30주년을 기념해 1969년을 주최하고 총괄했던 마이클 랭과 당시 메트로폴리탄 엔터테인먼트의 존 셰어가 공동으로 다시 개최했다. 당초 마이클 랭은 오랫동안 우드스탁을 되살릴 뜻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의 피스 앤 러브 정신과 플라워 파워가 다시 통할것 같지 않다는 이유였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와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위시로 총기 사고가 늘어나자 당시 10~20대 세대들에게 68세대 당시의 우드스탁 정신을 알리고자 개최를 하게 된다.


3.2. 준비 과정[편집]


1999년 우드스톡 행사장은, 1969년 당시의 넓은 대평원 대신 미국 뉴욕주 롬의 폐쇄된 상태였던 그리피스 공군기지가 개최지로 낙점되었다. 15,000명을 수용할 주거 부지와 도로가 있었고 보안 체계와 병원,소방서 등이 갖춰져 1994년에 했던 것 처럼 수백만 달러를 들여 시설을 구축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으며 69년 우드스탁에서 있었던 대규모의 무단침입 사태를 막을수 있는 콘크리트 방벽까지 갖추고 있었다. 원년 우드스탁 당시 이 대규모 도둑 입장 때문에 주최측은 성황 대비 그리 흑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군 기지 특유의 콘크리트 방벽은 주최측 입장에서는 든든한(무단입장 방지) 시설물이었지만 그 특유의 살풍경함으로 인해 임직원들간에 리모델링 의견이 나왔고 합판을 댄 후 화가들을 불러다 각종 그림들을 그려 넣었다. 뜻은 좋았으나 이 합판들은 후술할 폭동에 아주 좋은 재료가 된다.

당시 뉴욕의 롬은 그리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도시였고 시장은 잉여부지라도 살려볼까 하는 심정으로 섭외에 응했다고 한다. 그 후 진수식의 패러디격으로 무대 골조에 타이다이 티셔츠(홀치기 나염. 히피의 상징이자 69년 오리지널의 키워드)로 감싼 포도주 병을 부딪혀 깨려고 하나 아무리 천으로 감쌌을지언정 무려 10회정도 병을 휘둘러 쇠파이프에 겨우 깼다. 시장 술회에 따르면 이때부터 전조가 안 좋았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영상을 보면 성인 남성이 풀스윙으로 휘둘러도 병이 기이하게 깨지지 않는다.

개최를 확정하고 난 뒤 주최측은 세계구급 인지도의 아티스트들을 섭외하기 시작했는데 당시의 흐름에 맞춰 하드락 또는 누메탈 밴드들이 다수였다. 내부에서도 섭외 명단을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묵살당했다고 한다. 당시 현장관리 부책임자였던 리 로젠블렛이 회고하길 콘, 림프비즈킷 같은 라인업을 보고 '사랑과 평화'라는 우드스탁의 취지에도 안 맞고 너무 선동적이며 분노 어린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라 라인업을 재고해야 할 것 같다고 임원 회의 중에 제안을 하였으나 가볍게 무시 당했다고 한다. 당시 22세였던 로젠블렛은 누메탈에 대해 잘 아는 세대였지만 일단 핵심인 마이클 랭과 기성세대 임원들은 콘이나 림프 비즈킷,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 어떤 음악을 하는 밴드인지 관심조차 없었고, 일단 이유야 어찌 됐든 "돈 되는 밴드"를 섭외한 것이다. 새파란 애송이가 대선배이자 어른들 앞에서 훈수 두는 듯한 모양새가 되어버려 임원 전원이 쏘아보자 로젠블렛은 꼬리 내리고 바로 의견을 접었다고 한다.

이렇게 우드스탁99는 이 공격적 성향의 누메탈 밴드들을 필두로 술과 마약에 절어버린 관객들과 이들이 미쳐 날뛰기에 아주 좋았던 통제불능의 밀레니엄 분위기, 무능한 운영에서 비롯되어 무너진 행사 내 치안과 제반사항이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며 막장의 길로 치닫게 된다. 당시 유료관객으로 집계된 인원만 25만명에 달한다. 이 인원이 피부로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 정도면 경주시의 총인구임을 상기하자.


3.3. 1999년 우드스톡의 문제점[편집]


  • 살인적인 바가지
당시 주최측은 케이터링, 머천다이즈 업체들과의 1대1계약이 아닌 중간업체를 통한 계약을 맺었으며 입구에서부터 식수, 도시락 반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입구에서부터 관객들이 싸온 식수, 빵, 음료수, 먹거리들이 마구잡이로 압수당해 버려졌으며 이것들은 하절기 32~34도를 웃도는 뉴욕 롬의 날씨에 속절없이 썩어나가며 갖은 오염을 발생시켰다. 한마디로 우드스탁 주최사가 아닌 중간업체가 판매권을 독점했으며 무시무시한 바가지를 행사했던 것이다. 당시 시중에서 60센트 정도면 살 수 있었던 500ml 생수를 무려 4달러라는 현시점 기준에서도 미친 바가지를 씌운 것도 모자라, 금요일에 시작된 공연이 일요일날까지 진행되면서 품귀현상이 발생해 생수는 한 통에 무려 16달러선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이에 참가 관객들은 심각한 불만을 가졌고 마지막날 벤더 빌리지(푸드코트)를 습격하는 폭동을 일으키기에 이른다. 한편 버드와이저 가든에서는 염가로 술을 뿌려댔고 미성년자이건 성년이건 확인조차 안하고 맥주 탭이 닳도록 술을 팔았다. 그리고 음료수 한 잔에 풀떼기가 전부인 샐러드 콤보가 당시 가격으로 9달러였다고 한다.

  • 부족하고 미숙한 진행인력
3일간 진행되는 행사임을 고려할 때 위생팀을 직영으로 편성해서 상시 쓰레기들을 외부로 실어나르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이 역시 외주계약으로 수거트럭이 아주 가끔 오는게 다였고, 폭동이 일어난 토요일 오후부터는 무섭다는 이유로 행사장 내로 들어가길 거부했다. 쓰레기와 오물들은 방치되어갔고 폭염에 무섭게 부패하기 시작했다. 또한 관객들의 수에 비해 생리 현상을 해결할 만한 기본적 시설도 턱없이 부족했으며 분노한 관객들이 부순 상수도 라인에 노상방뇨, 대변, 이동식 화장실에서 흘러나온 분변이 섞이며 1차 세계 대전 이후로 발병 사례가 전무했던 이른바 "참호구강염"(Trench mouth)이 1990년대 뉴욕에서 발생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또한 진행측은 무더위를 이유로 열을 식힌다는 명목으로 현시대의 워터밤을 방불케 할 정도로 물을 뿌려댔고, 이렇게 뿌려진 물은 이동식 화장실이 설치된 잔디지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군중들이 부순 상수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 역시 화장실로 흘러들어갔고 수용량 초과로 인해 오물 섞인 물이 그대로 역류하여 반경 수 미터가 오물로 뒤덮혀 버리는 참극이 일어났다.

그리고 경비인력 또한 무능하긴 마찬가지여서 10대 후반에서 20대 청년들로 구성된 팀이 존재했으나 소수인원인 것도 모자라 관객들은 아무도 이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은 경비업 경험도 없고 일에 대한 책임감도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관객들의 방종을 넘어선 기행에 이들도 겁을 먹기 시작했던 것. 특히 마지막 날 레드핫 칠리 페퍼스 스테이지에서는 그나마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총기반대 단체와 연합하여 10만여 개의 양초를 나뉘어주고 촛불집회를 연출하려고 했지만 이는 대규모 폭동으로 번진다. 나름 행사장 내 흉기 및 화기 반입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통제했던 행사였는데, 관객들이 미쳐버린 공연 막바지에 10만여 개의 불을 손에 쥐어준 것이었다.

어찌보면 소요를 촉발시킨 만악의 근원격 행사이다. 취지는 주간 스테이지에서 여흥이 덜 풀린 관객들을 위한 대규모 야간 클럽이라는, 페스티벌 관객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할 프로그램이었다. 스테이지 공연이 끝난 후 야간부터 격납고를 개조한 파티장에서 레이브 파티가 개최되었고 취지는 정말 좋았다. 하지만 대낮부터 이미 술과 마약에 쩔어버린 4천여명의 관객들이 격납고 안으로 한꺼번에 몰려들었고 금요일 밤의 케미컬 브라더스, 토요일 밤의 팻보이 슬림이라는 미친 라인업으로 달리게 된다. 공연장에는 LSD 등 마약을 급조해서 판매하는 업자들이 아주 많이 숨어들어와 있었는데, 격납고 같이 어둡고 외부와 차단된 공간은 이들의 좋은 영업장이 되었다. 결국 여기선 약에 취한 채 이성을 잃은 천명 단위의 사람들이 발광하며 춤추고 난교하는 지옥이 펼쳐지게 되었던 것이다.

7월 24일 토요일 공연이었던 팻보이 슬림의 무대는 완전 아수라장이었다고 전한다. 팻보이 슬림이 훗날 진행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로는, 어두운 격납고 안에서 공연을 하던 중 손전등으로 무대 아래를 비추어 보니 사람들이 뒤엉켜서 성관계를 하고 있었고 멀리서는 사람들이 난교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쉐보레 승합차가 격납고 안으로 들이닥치고 거기에서 약 20에서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승합차 난입을 재미있는 이벤트의 일종으로 착각했던 팻보이 슬림은 이에 실망한다. 거기에 추최 측은 사태를 진정시킨 뒤 격납고 안으로 난입한 승합차를 바깥으로 빼기 위해, 디제이인 팻보이 슬림으로서는 굴욕에 가까운 뮤직 컷을 하였으며 팻보이 슬림은 어이를 상실한다. 거기다 공연이 갑자기 멈춘 것에 대해 분노한 관객들이 그에게 쓰레기 세례를 날려 졸지에 망신도 당한다. 여튼 주최 측 관계자 중 한명이 승합차를 빼기 위해 문을 연 순간 안에서 마체테를 든 괴한과 옷이 벗겨진 채로 정신을 잃은 소녀, 바지를 주섬주섬 올리고 있던 소년의 모습을 발견하고 곧바로 이들이 차에서 윤간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팻보이 슬림의 매니저는 이 장면을 목도하고 공연장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선 최대한 빨리 팻보이 슬림을 데리고 공연장을 탈출하여 공항에서 날밤을 새운 후 바로 영국행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고 한다. 차에서 윤간을 당한 소년과 소녀는 곧바로 앰뷸런스에 태워져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 관객들의 방종
주최측에서도 30주년 당위성('사랑과 평화')을 위해 티벳 승려들을 초청해 축복, 명상회를 열었고 이에 편한 마음으로 참여한 관객들도 있었으나 이들도 점점 광기 어린 분위기에 미쳐가게 된다. 첫날 금요일 일찍 무대에 오른 락커이자 여장부인 셰릴 크로우의 공연에서는 남성관객들이 'Show your tits'(찌찌를 보여줘)라는 챈트를 합창했으며 크로우는 내 가슴을 보고 싶으면 돈 더 내라고 일갈하고는 쿨하게 넘겼으나, MTV 인터뷰 코너에서도 챈트가 쏟아지자 대놓고 저 머저리들 패러 내려가고 싶다고 한마디 남겼다. 일요일 후반무대에 올라온 쥬얼은 쉐릴 크로우의 이야기를 듣고 잔뜩 긴장한 채 무대에 올랐다가 서둘러 레퍼토리를 끝내고 바로 버스를 타고 떠나버렸다. 주최측 임원의 증언이 따르면 원래 금요일부터 그런 미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백인 남자 대학생으로 보이는 그룹들이 대학교 사교동아리처럼 보이는 막가파식 술판과 기행을 벌이면서 그 분위기가 퍼진 것 같기도 하다고 하였다.

한편 1999년 당시는 밀레니엄을 앞두고 발맞추어 봇물터진 인터넷 문화로 인해 이른바 엽기(bizarre) 문화가 전세계적인 키워드였으며 한국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탈권위, 탈장르적인 사조가 대두되며 고전 헤비메탈의 강력함, 하드코어 펑크의 폭력성과 힙합의 랩핑, 그루브한 훵크, 그런지 문화, 스케이트 보드 문화가 뒤섞인 누메탈이 전 세계를 강타하던 시기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매체는 하루가 멀다하고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하던 때이다. 또한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개의치 않던 첫 세대인, 이 30만에 달하는 (78~82년생) 관객들은 찌는듯한 더위, 도처에 널린 술과 마약, 주최측의 무능한 운영에 같이 미쳐가기 시작한다. 공식적으로 보고된 강간은 10건 미만이나 그 몇십 배는 족히 넘을 것으로 추정되며 공식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게 희한할 정도.

MTV가 개입하면서 페이퍼뷰(Pay Per View)로 현장중계를 했는데 이 역시도 취지는 좋았으나 결국 토플리스 여성들, 나체같은 자극적인 영상만 골라서 내보내며 여성 관객들의 탈의를 부추겼다. 이는 집단 성추행, 강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당시 MTV 진행자였던 흑인 여성은 실황 인터뷰 때 갑자기 엉덩이가 뜨거워 화들짝 놀랐는데 누군가가 담배빵을 놓은 것이었다고 한다.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던 게 더 기가 막혔다고 한다. 또한 원년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히피 중년들도 과거의 추억을 찾아 공연장에 들어왔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목불인견의 광경에 개탄하며 공연장을 떠나 버렸다.

  • 뮤지션들의 책임감(?)
지금도 이견이 있는 사항이다. 일단 역사적인 1999년 7월 23일 금요일 첫무대의 주인공인 제임스 브라운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뭔가 계약조건에 불만을 가진 브라운이 무대에 오르길 거부했던 것이다.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는 당시 영상을 보면 심기 불편한 표정의 제임스 브라운이 무대를 기웃거리며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브라운은 잔금(?)을 즉시 입금 안하면 공연 안하겠다고 버티고 있었던 것. 계속 공연이 딜레이 되고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지자 무대에 미리 올라와있던 브라스밴드 리더는 다급해졌고 연주를 강행해버렸다. 이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무대에 오른 제임스 브라운은 첫곡 섹스머신을 착잡한 표정으로 불러야 했다.

금요일 헤드라이너였던 은 콘 역사에 남을 역대급 무대로 말 그대로 박살을 내버렸고 관객들은 날뛰기 시작했다. 다음 주자인 부쉬의 개빈 로스데일은 콘이 너무 분위기를 띄워놔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까봐 상당히 불안했다고 하며 분위기를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차분히 당대의 히트넘버 swallowed를 열창했다. 그리고 열띤 호응을 받으면서도 장내 분위기를 차분히 만들며 퇴장했다. 하지만 3일 내내 이어지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키드락, DMX같은 강력한 뮤지션들은 분위기를 들끓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정점은 7월 24일 토요일에 있었던 림프 비즈킷 무대였다. 당시 비즈킷은 전세계 넘버원 밴드임과 동시에 동세대 미국 틴에이저ㅡ20대 사이의 남성들에게 아이돌과 같은 존재였고 보컬 프레드 더스트의 안하무인적 자신감은 어마어마한 영향력이 있었다. 게다가 그동안의 락스타와는 달리 흔한 브랜드의 (DC,디키즈)티셔츠에 바지,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무대를 뒤흔드는 더스트는 동시대 소년과 청년들에게 롤모델 그 자체. 등장하자마자 "여기 엔씽크 좋아하는 사람있냐?"라는 디스부터 시작해서 히트곡 메들리로 달리자 관객들은 슬램을 하다 방송탑을 뒤흔들기 시작하고 방송탑 골조에 박아놓은 합판 자재를 떼어내고 무차별 패싸움이 시작됐다. 게다가 그 합판을 보드삼아 군중위에서 서핑(!)을 하는 위험천만한 장면이 펼쳐졌고 당시 비즈킷 최대의 히트곡인 Faith를 연주하는 장면에서는 프레드 더스트도 그 합판 위에서 서핑을 타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연출했다. MTV 자본이 깊숙히 개입한만큼 인터뷰어가 무대에서 내려올 때부터 따라붙으며 인터뷰를 했는데 위험에 대해 관중을 계도했었어야지 않냐라는 질문에 더스트는 난 상관없다는 식으로 쏘아 붙이듯 답하고는 자리를 떠나버렸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은 밴드 결성부터 지금까지 초지일관인 단시간에 부수고 앵콜곡 없이 내려간다를 시전했고 항상 공연마다 장렬하게 불태우는 것으로 유명한 이들 역시 관객선동에 일조했다.

마지막날인 7월 25일 일요일의 헤드라이너였던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림프 비즈킷이 지른 불에 다이너마이트를 까버렸다. 밴드의 베이시스트인 플리는 아예 팬티까지 벗고 나체로 연주했으며 역시 역대급 무대를 선보이다 선술한 주최측의 촛불집회 유도로 인한 방화사태가 발생한다. 이에 주최측에선 공연중단을 선언하고 소방대 투입을 결정하나 소방대는 무서워서 못들어간다는 이유로 거부.. 대기하던 레핫칠에게 주최측은 당신들 말은 들을거라고 올라가서 한마디 해달라고 하나 앤서니 키디스는 뭔 할 말이 있겠냐고 거절했고 사태가 조금 수습되자 다시 공연은 시작된다. 그런데 앵콜곡으로 부른 게 지미 헨드릭스 트리뷰트 커버 "Fire "였다.... 이때부터 방화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며 일요일 소요사태로 이어진다.

사실 이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콘의 역대급 무대에서 이어진 부쉬의 공연에서 개빈 로스데일이 발휘한 통찰력은 주목해야 할 부분으로 시종일관 달리는 무대였음에도 자각으로 완급조절을 한 것은 높게 평가받고 있다. 콘의 조나단 데이비스도 무대에 올라 이런 개판은 처음봐서 긴장했다고 술회했으며 펑크밴드인 오프스프링도 대놓고 "여기저기 다 벗고 뛰어다니고 있네. 이게 멋있는거냐?"라며 일갈하고 공연했다.

평상시 캐리비안 흑인의 뿌리와 한을 노래했던 푸지스(Fugees)의 와이클리프 쟝이 7월 24일 토요일 공연에서 솔로로 나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금부터 나에게 쓰레기를 던져라라고 외친 후 기타로 미국 국가를 연주했다. 이때 압도적인 쓰레기들이 무대위로 던져졌고 쟝은 국가연주를 마친 뒤 기타를 부숴버렸다. 주최임원 술회에 따르면 이때부터 뭔가 잘못되어감을 느꼈다고. 특히 관객들을 제대로 선동해 놓은 림프 비즈킷은 평가가 매우 갈리는데 당시 주최측 임원중 한명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프레드 더스트를 "개자식" 이라고 부르면서 매우 혐오하는 모습을 보인다.

  • 부족하고 미숙한 진행인력2
1999년 7월 25일 일요일 오전, 더위와 비위생, 바가지에 질린 사람들이 오전부터 떠나기 시작했다. 남은 사람들의 이유는 단 한가지. 우드스탁99 특유의 방종에 맛이 갔거나 진성 헤드라이너는 따로 있다는 괴소문 때문이었다.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레드핫 칠리 페퍼스 다음 스테이지로 재결성한 건즈 앤 로지스가 나올 거라든가, 그레이트풀 데드가 나올 거라든가, 블러드 스웻 앤 티어스가 나올 거라든가, 프린스가 나올 거라든가, 심지어 마이클 잭슨(!)이 역대급 무대로 올라올 거라더라는 식이었다. 한마디로 주인공은 아직 무대에 올라오지 않았다는 기대감.

하지만 레드핫 칠리 페퍼스가 마지막이었고 더이상은 없었다. 당시 주최측에서도조차 마지막 헤드라이너가 있다는 카더라가 있었을 정도. 페퍼스가 마지막으로 지미 헨드릭스 커버를 하고 퇴장하고 그때도 남아있던 관객들은 끝판왕이 올라오길 고대하는데... 결국 남아있던 관객들이 본 건 스크린에 펼쳐지는 69 원년 공연의 지미 헨드릭스 영상이었고 "감사합니다. 곧 다른공연에서 만나요~" 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였다. 애초에 히든카드는 없었고 주최측 직원들도 그런 게 있대 라면서 수근거린 결과이며 수장 마이클 랭조차 여기에 대해 아니라고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이때부터 남아있던 잔존관객들이 정말로 미쳐버리기 시작한다.


3.4. 난장판이 계속되다[편집]


일단 하루 일정이 끝난 다음날 주최측과 기자단이 기자회견을 가졌으나 별일 없었던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기자들이 이 비정상적인 운영에 대해 질타해댔고 주최측은 소수 정신나간 관객들의 일탈일 뿐 행사진행은 차질이 없다는 식으로 두루뭉실하게 넘어갔다. 게다가 정확한 대처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아 기자단을 어이상실하게 만들었다. 그 아비규환을 행사내내 바로 앞에서 목도해온 기자단은 그저 헛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이런식의 수수방관이 사태를 키운것이다.

레드핫 칠리 페퍼스의 공연이 끝날 무렵 여러군데서 불기둥이 치솟았다. 불기둥의 원인은 몇몇 관객들이 펜스와 방벽 목재를 마구 잡아뜯어 방화를 한 것이었고,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관객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족히 10미터가 넘는 스피커 구조물에 여러 사람이 기어 올라갔고 그 구조물을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채로 밀어서 넘어뜨리기(!)까지 했다. 폭도로 변한 관객들은 행사 차량에 방화를 했고 차량 안에 있던 프로판 가스통이 연달아 3차례 대폭발을 일으켰다.이때 주최측은 폭동을 통제할 의지를 잃은 채 사무실에 숨어 문에 못질을 하고 있었다.

외부에서는 소수의 경비인력들이 폭도들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방화에 흥미를 잃은 폭도들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노래(Fuck you, I won't do what you tell me! - killing in the name)를 합창하며 벤더 빌리지(푸드코트)로 향했고 겁에 질린 상인들은 도망쳐 버렸다. 이후 마음껏 벤더빌리지 내의 물품들을 약탈하고 ATM 기기들을 부수고는 약 22,000달러에 달하는 돈을 훔쳐가는 등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치닫는다. 결국 중무장한 뉴욕주 경찰과 기동대가 그리피스 기지로 밀고 들어왔고 해산을 명령했다. 정신 못차리고 이에 불복하여 달려드는 폭도들에겐 무차별 곤봉세례가 쏟아졌고 곧 사태는 일단락된다.

당시 벤더빌리지의 상인들은 마이클 랭에게 굉장히 실망했는데 이와 같은 대참사에 작은 위로라도 기대했건만 쑥대밭이 된 벤더빌리지를 휙 둘러보고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 마이클 랭의 술회에 따르면 그땐 이거 다 언제 치우나 이 생각밖에 안들었다고 한다...

사태가 수습된 후 임직원들은 비밀보장 각서에 도장을 찍어야 했으며 이를 끝으로 이 전대미문의 행사는 막을 내렸다.

일단 원년 행사나 94년 행사때도 사건사고는 있었으나 99년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었고 99년처럼 생지옥이 열리진 않다. 99년 우드스톡과 비견할 만한 공연 참사로는 경비 요원을 잘못 고용해(진짜 갱. 즉 악명높은 바이크 갱인 헬스 엔젤스를 고용) 살인 사건이 발생한 1969년 알타몬트 공연 정도 밖에 없을 것이다.


3.5. 이후[편집]


강간당한 여성 관객들의 부모들이 대규모 고소를 진행했으나 아비규환 속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한 범행이라 용의자를 특정하기가 어려워 대부분 유야무야 넘어갔고 주최자 마이클 랭도 책임에서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갔다. 학부모, 기성세대가 된 관객들은 무용담처럼 그때 이야기를 즐겨한다고 한다. "그때 우린 정말 인간이하로 놀았지만 그래도 그때가 인생에서 최고였다."는 투. 그리고 마이클 랭은 긍정적인 부분만 편집해서 담은 공연실황 dvd 등의 부가수입으로 큰 돈을 벌었다.

상술한 부정적인 요소를 뒤로 하고, 긍정적 평가로는 과연 이름값 답게 라인업 또한 입이 벌어질만 한 수준이었으며 나온 뮤지션들마다 인생공연을 펼친것인데 콘과 림프 비즈킷은 말 그대로 밴드 역사에 남는 명연을 펼쳤고 금요일 첫 출연자 제임스 브라운은 브라스 밴드를 대동하고 소울의 제왕다운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리고 참가자 중 거의 유일한 힙합 뮤지션인 DMX역시 DJ 한명만 대동한 채 혈혈단신으로 30만 관객을 떡주무르듯 조련했다. 그리고 자미로콰이는 대규모 밴드를 이끌고 무대 위에 레일까지 설치하여 Virtual insanity를 부르는 장관을 연출했으며 키드락핌프를 연상시키는 밍크코트를 걸치고 느릿느릿 입장해서 히트곡 bawitdaba의 첫 소절인 "my name is ki~~d!!"를 샤우팅 한 순간 30만 인해가 파도로 울렁이는 역사적인 광경을 연출했다.


4. 우드스탁 뮤직 앤 아트페어2023[편집]


Woodstock Music & Art Fair 2023
장소 : 포천시 한탄강 다목적광장일대

웹사이트


[우드스탁 개최지 결정] - 경기도 포천

"전설의 오리지널 우드스탁 한국 유치 성공! 레전드 아티스트들이 펼치는 3일간의 평화와 음악 포천 한탄강 둔치에서 펼쳐지는 한국 최대 규모의 록 페스티벌! 역사적인 우드스탁을 한국에서 만나보세요!"


(공식 한국 명칭은 우드스톡이 아닌 '우드스탁'이라고 표기)


포천에서 7월 28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 미국 측에 라이센스 계약으로 우드스탁 페스티벌 이름으로 개최하는데, 언론 매체에선 1999년 난장판에 대해 입다물고 긍정적인 면만 보도하고 있다. 마케팅에 대한 신뢰도가 부족하여 록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불신이 크다. 당시 사건이 워낙 엄청난 사건이었던 만큼 그때를 언급하는 기사도 적지 않은 편이다.

실제로 논란거리는 매우 다양하다. 공식 블로그에 맞춤법이 모두 틀리고, 일기장 같이 두서 없는 말들을 늘어놓는다거나, 60여개의 아티스트들이 모두 1시간씩 공연을 진행할 것이고, 헤드라이너가 35개 팀들이다 라는 발언, 공개된 영상의 조잡스러운 수준, 공식 네이버 블로그/유튜브/트위터/페이스북 채널에서는 기획사가 이전에 진행한 성인 예능 및 과거 이력을 그대로 남겨 두고 있어 보기 불편하다는 점(심지어 인스타그램에서는 대표의 개인 계정으로 홍보 중), 또 라인업 발표를 두서 없이 공개하는 점도 문제점인데 2차는 홈페이지, 3차 네이버 블로그, 4차는 보도자료가 올려진 것을 유저가 먼저 사진 캡처해서 뿌리게 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대개 한 곳에 먼저 신규 라인업이 올라가면 몇 시간이 지난 뒤에 다른 SNS 계정들에도 업로드가 되는데, 그마저도 일정치가 않다. 기존 페스티벌 홍보 선례를 따르지 않는 독자적인 운영 방식에 많은 음악팬들이 기가 막혀 하는 중이다.

2023년 5월 15일, 공식 블로그에 사심이 가득한 특정 아티스트를 덕질하는 포스팅이 올라왔다. 링크 공식 블로그임에도 불구하고 공지와 사심담긴 포스팅이 뒤섞여 전혀 관리가 안되고 있다. 이와중에 맞춤법도 틀림

2023년 5월 16일, 공식 블로그에 4차 라인업을 포함한 포스터가 공개되었다.
하지만, 공식 블로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맞춤법은 무시했으며, '금지된것을 금지합니다'라는 조잡하게 긁어온 명언을 쓰며 여전히 흑역사를 생성중이다. 68혁명 중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의 문구를 인용한 것으로 보이나, 오기인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페스티벌 부지는 해당 기간에 상습 침수 지역이라는 점 링크 , 주변 숙소/교통편의 문제, 공식 홈페이지 내 스폰서 무단도용 문제 링크 , 페스티벌 총괄 기획/관리 직원을 페스티벌 3달 가량 전에 채용한다는 문제,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을 받지 못함을 공식 블로그에 투덜(?)대는 사건, 주최 기업은 기업 후기 사이트에 의하면 급여가 밀리지만 뻔뻔하게 대응하는 블랙기업이며, 뮤직 페스티벌을 진행한 경험이 없음에도 대중의 지적에 일관적인 무대응으로 대응하지만 언론 플레이만 화려하게 진행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2023년 6월 20일 기준으로 한달 남짓 남은 시점에서 해외 라인업 공개 또한 늦어지고 있어서 해외 라인업 역시 섭외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의혹이 많다. 지금까지 공개된 해외라인업 중 일본의 LOUDNESS가 그나마 유명밴드이며, SoundCloud 30명 팔로워인 무명밴드가 나머지 해외라인업의 전부이다. 물론 신인을 소개할 목적으로 데려오는 것[1]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명색이 전설적인 록페스티벌 이름을 빌렸으면서 해외 라인업이 펜타포트보다도 못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개최를 코앞에 둔 2023년 7월 7일 오후 5시, 인터파크에서 파격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는 공지사항이링크 게시 되었다. 블라인드 티켓은 물론 앞서 예매가 진행되었던 모든 티켓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의 할인가로, 먼저 티켓을 구매한 관객들을 싸그리 무시하는 행동에 록팬들에게 한 번 더 웃음벨 취급이 되고 있다. 개최측에서 제시한 정가의 1/3을 넘는 가격으로 할인 행사가 진행되는 것으로 보아 위에서 언급된 온갖 기행에 가까운 운영 태도로 인해 티켓 판매가 매우 저조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추가적으로 해외라인업으로 Akon, New Hope Club, 프레데릭, 헨리 무디가 발표되었으나 이중 누구도 공식 홈페이지나 SNS에서 투어 스케쥴을 업데이트하지 않았고[2], 심지어 프레데릭 측은 이에 대해 논의중일 뿐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고 발표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티켓 판매가 매우 저조하여 한장이라도 더 팔아보고자 가격을 1/3로 할인하고 아직 출연이 확정되지 않은 뮤지션까지 동의 없이 섣불리 공개해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2023년 7월 14일, 결국 페스티벌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이 인천일보 단독 기사를 통해 전해졌다. 곧바로 우드스탁 측은 10월 7일부터 9일까지로 연기되었을 뿐 취소된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였다.[3] 이 역시 포천시와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된 일이였는지 포천시장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며 다른 개최 장소를 찾아보라는 입장을 전했다.링크 일방적인 취소 및 연기로 인해 관객, 아티스트, 지자체까지 신뢰를 모조리 잃어버린 상황에서 페스티벌이 정상적으로 개최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4.1. 이야깃거리[편집]


미국 우드스탁 라이센스를 정식으로 사왔다고 기자회견까지 해서 초반에 어느 정도는 음악팬들의 기대를 받았었다. 그러나 라인업이 하나둘 발표될 때마다 그런 기대감이 쏙 들어갔다.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자유와 평화 그리고 사랑'이란 주제를 가지고 있으면서, 전범기를 팀 심볼로 쓰는 일본 밴드 라우드니스 LOUDNESS가 해외 헤드라이너로 올라가 있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링크

다른 해외 아티스트는 SNS 팔로워가 흔한 일반인보다 적은 신인 밴드 아르고나우타(Argonauta) 뿐이다. 링크 링크 링크 링크

주최측은 해외팀이 10팀이라고 밝혔지만 링크 개최가 한달 밖에 안 남은 현재까지도 라우드니스와 아르고나우타 밖에 공개되지 않았다. 해외 아티스트를 제외한 전체 국내 아티스트 54개팀 중에 락밴드가 일부 들어가 있기는 하나, 대다수가 우드스탁이란 이름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대중음악가수와 아이돌들로 채워져 있다.
주최측이 출연진 중에 한국 국적이 아닌 사람을 해외 라인업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 소리도 있다


[공중파 홍보 영상] - 우드스탁 TV 광고, MBC

포스터와 광고 영상까지 공개된 것으로 보아, 저게 사실상 최종 라인업인 것 같다.

결론적으로 우드스탁 코리아라면서 라인업이 명성에 걸맞지도 않을 뿐더러, 중구난방이란 지적이 많다. 이럴거면 비싼 우드스탁 이름을 살 게 아니라, 그냥 포천 열린음악회를 열지 그랬냐는 여론이 팽배하고 있음에도 주최측은 강행 중에 있다. 링크

차라리 행사 1주일 전에 엎어진 2010년 우드스탁 코리아 때 링크 링크 링크 라인업이 훨씬 좋았다는 의견도 있다.



  • 모든 금지된 것을 금지한다. 뜬금없이 슬로건을 발표했다. 우드스탁에 영향을 주었던 프랑스 68혁명의 구호인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를 기획사 대표가 자기식으로 바꾼 듯 하다. 정작 본인은 모든 댓글을 금지했다. 대다수 음악 커뮤니티 내에서는 "금지된 것을 금지하면 그냥 아무 것도 아닌 것 아닌가?",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반응. 어떤 곳에서는 "금지된 것을 금지한다는 글을 올리는 것을 금지합니다." 와 같은 식으로 응용해서 댓글놀이를 하고 있다. '금지'라는 단어가 밈화 되고 있는 것 같다.

  • 2022년에 포천 우드스탁 주최측에서 신림 우드스탁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문제는 주말에는 예약이 안될 정도로 바쁜 신림 우드스탁에 포천 우드스탁 사람들이 단체로 찾아가 굳이 발대식을 해야겠다고 음악 꺼달라고 한 것. 당연히 신림 우드스탁은 거절했다. 그런데 포천 우드스탁 측에서는 이것에 앙금이 남았는지, 어처구니 없게도 본 계정으로 신림 우드스탁의 별점 점수를 낮게 주면서 '불친절' 하다고 리뷰를 남겼다. 우드스탁이 우드스탁을 팀킬하다니 전례가 없던 이 일에 많은 이들이 까무러쳤다. 링크

  • 우드스탁 대표로 추정되는 사람이 우드스톡 페스티벌 나무위키 문서를 몇차례나 삭제하고 있다[4]. 특정 아이피가 이 문서 수정만 반복하고 있고 삭제 사유가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 푸드트럭 업계에서는 우드스탁 코리아와 손절을 시작하고 있다. 주최측 내부적으로 문제가 심해 보인다. 링크

  • 위와 관련해 다른 업체가 푸드트럭 모집 공지를 올렸는데, 하필 제안서 이미지를 그대로 올리는 바람에 해외 라인업이 유출되었다. 아마도 처음 구상한 라인업으로 보이며, 아티스트 개런티가 다들 높기 때문에 정가 티켓 3일권 45만원도 그에 맞게 책정된 것으로 보인다. 기획된 해외 라인업에는 기존 라우드니스를 포함하여 아이들즈, Yoshiki + 나카시마 미카, 라르크 앙 시엘, 세카이노 오와리, GLAY, 건즈 앤 로지스, The Ventures가 들어가 있었다. 현재 원본 게시물의 이미지는 삭제되었다. 그 와중에 Idels, NAKASIMA MIKE, 라크르앙시엘 철자 오타가 있었다. 의외로 일본밴드에 진심인 듯한 우드스탁 코리아

  • 몇몇 참가 뮤지션의 팬카페에 단체 티켓 구매 공지가 떴다. 각각 최소 인원은 10명 이상이며 구매 시 30프로 할인가로 제공이 된다고 한다. 1일권 20만원인지, 3일권 45만원인지는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 않으나, 얼리버드(그땐 라인업도 공개 하지 않았으나 사실상 블라인드나 다름 없다) 티켓가가 20프로 할인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할인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장애인 및 국가유공자 할인이 30프로다. 물론 이와 같은 단체 할인은 어느 공연장에도 있긴 하다. 하지만 매우 특이한 경우일 때만 발생하지, 이처럼 불특정 다수로 남발한 사례는 이제껏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티켓을 정가로 주고 산 관객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 되버린 셈. 위에 언급한 푸드트럭 해외 헤드라이너 유출 건과 더불어, 대형 뮤직페스티벌을 개최하는 주최측의 허술함이 속속 드러난 경우라고 볼 수 있겠다. 근데 최소 인원이 안 모여서 취소 되었다카더라

  • 결국 7월 14일 우드스탁이 취소 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링크 이 기사가 뜬 지 얼마 안되어, 우드스탁 코리아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취소가 아닌 10월 연기'라고 공지했다. 링크 공연을 불과 14일 남겨둔 상황에서 갑자기 공연 연기를 통보한 것에 대해 포천시는 "아주 유감스럽다"고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링크

  • 행사 연기 사유가 제각각이다. 우드스탁 컴퍼니는 홈페이지, 티켓 판매처인 인터파크, 주요 언론을 통해서 '안전한 행사 운영 및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드스탁을 집중적으로 다뤘던 인천일보 측에 따르면 '실제로는 일부 아티스트들의 비자 문제로 입국이 어려워 공연을 연기'했다고 한다.

  • 우드스탁 행사 개최 연기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지하철 광고가 돌아가고 있어서 많은 이들에게 큰웃음을 주고 있다. 7월 28일 (금) ~ 30일 (일) 개최 예정이었기 때문에 7월이 끝날 때까지는 계속 흘러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7월까지 미디어 비용을 지불한 상태라 이제와서 내리지도 못하고 그런다고 환급도 받을 수 없는 모양이다. 취소 안내 영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면 또 비용처리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냥 두고 있는 것 같다. 총체적 난국

  • 이후 후속 기사에 따르면 기획사 관계자는 "예매자들에게 그냥 콘서트가 될 수도 있고, 페스티벌일 수도 있지만 ‘우드스탁’이다. 포천시와 10월 공연을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의 입장은 달랐다. 백영현 포천시장은 "기획사가 공연을 연기하겠다고 하길래 ‘더는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장소 대관은 물론 행정적인 절차까지 도와줬다”면서 “그런데 갑자기 일방적으로 행사 연기를 통보했다. 그래서 공연을 하려면 포천 말고 다른 지역을 알아보라고 전달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드스탁 포천 개최는 사실상 불투명해 보인다. 링크 포천 우드스탁 스나이퍼 인천일보

  • 우드스탁 취소할 때 인터파크 홈페이지나 모바일 등을 통한 직접 취소 시 취소 수수료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반드시 인터파크 고객센터로 유선문의 및 요청해야 수수료 없이 환불이 되니 유의할 것. 취소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4.2. 논란/발언 [편집]


공식 블로그에 올린 글과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 논란거리였다.

문서의 길이가 길어서 읽기 불편한 관계로 이쪽으로 옮겼다. 아래의 텍스트를 눌러서 펼친 후 확인 요망.

[ 펼치기 · 접기 ]


  • 모든 금지된 것을 금지한다.

금지된것을 금지합니다.

원본


모든 금지된 것을 금지한다.

원본


위에서 언급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23년 음악 커뮤니티 내 최고의 유행어가 되었다.


  • 5-60대 올드팝을 좋아하는 부모님이 2-30대 자녀들과 자연경관이 수려한 음악여행으로 초대합니다.

최고의 무대를 준비하는 우리는 누구의 말처럼 임팩트?있는 전체 라인업 발표가 시각적으로 효과적일까?

아니면 매주 이벤트로 발표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과 검토를 했지만 정답은 없지요궁금하시더라도

매주 꼭 라인업을 발표하도록 준비 잘 하겠습니다.

라인업에 대한 많은 의견 있으시겠지요, 너무 올드하다 KPOP가수만 나오는 것이 아닌가? 걸그룹은? 미국의 밴드는 누구나오는지? 왜 일본 밴드를 섭외한 것이냐? 많이 궁금하시겠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곧 공개됩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3개월의 준비기간있으니깐요

유명한 밴드가 단순하게 아티스트에 출연했다고 유명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드스탁의 가치가 훌륭했고 무대가 뜻있기에 출연했던 모든 출연진들이 레전드가 될 수 있었지 안았나 생각합니다. 아시겠지만 3일중 우천 등으로 공연을 진행한 팀이 몇 팀되지않았지만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것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음악은 기본이지요

세계적인 음악축제라는 자부심으로 준비하지만 그 흔한 문광부 후원명칭 사용도 많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이해는 가지 않지만, 후원금을 요청한 것도 아니고 단순한 명칭사용인데 상업공연이라는 이유,,,

그럼 다른 상업공연은 어떻게 받을 수 있었지 근본적인 물음이 듭니다. 어느 기준으로 고무줄 판단이라면 이것을 지적하는 기사도 없는지?

더 언급은 아닌 뜻합니다

여러 장소와 대관을 협의했지만 그것도 어느 곳에서는 소음발생의 이유로 불허 받았지요음악축제를 소음이라니,T.T 한심하지요, 그것이 그들의 이유라고 하니 근데 5회이상 미팅할 때는 소음문제는 언급도 없었으면서

그동안 길지 않는 준비기간을 거기서??허비하다니 많이 아쉽고 서운하고 조금 화도 났지요!

1999년 우드스탁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언론사도 계시더군요.

물론 문제가 있지요 근데 그래서요우리가 24년 전 우드스탁의 과실을 반복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부정적인 기사를 어떻게라도 작성하고픈 그 마음은 대체 무엇일까요? 다른 여러 축제에서 사건사고가 있다고 하여 그것을 모방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낙인효과의 가해입니다. 그리고 선을 넘는 차별입니다.

오히려 반면교사로 더 준비를 하지요, 답변을 구하는 분께 드리는 글입니다.

1969년의 우드스탁은 미국문화의 정점, 그리고 최고의 문화사건입니다.

김도균선배님의 말씀처럼 20세기 미국의 문화를 한국에 오는 것입니다. 단순한 공연이 아니며 그것은 매일 치르는 축구경기가 아닌 월드컵경기에 열광하는 것과 같을 이치일 겁니다.

음악장르는 섭외에 따라 계속 고민입니다. 다양한 장르를 보여드리자니 열린 음악회라고 말씀하시고

흥행을 위해 케이팝 가수를 섭외하자니 우드스탁 라이센스가 아깝지요

하지만 ...,,,

5-60대 올드팝을 좋아하는 부모님이 2-30대 자녀들과 자연경관이 수려한 음악여행으로 초대합니다.

통제는 최소화하고 힐링할 수 있는 우드스탁

자유, 평화 그리고 사랑

음악과 아트페어 인간성회복, 갈등해소, 전쟁반대, DMZ, 친환경

이것을 가능하게끔 동행하고 곁을 지켜주신 포천시장님과 관계 분들

그리고 지금도 매일 회의하면서 끝없는 고민하는 연출, 시스템포함 운영위원회 분들

감사합니다.

- 우드스탁 3차 라인업을 발표하면서 올린 글 원본


3차 라인업을 올리면서 술 취해서 쓴 것 마냥 횡설수설하는 TMI성 글을 같이 올렸다. 그것도 과다한 비문 사용에 맞춤법은 엉망이다. 정황상 우드스탁 컴퍼니 대표가 쓴 글로 보인다. 전 KBS 피디 출신이라는 대표가 왜 이렇게 글을 못 쓰냐면서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유명한 밴드가 단순하게 아티스트에 출연했다고 유명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5-60대 올드팝을 좋아하는 부모님이 2-30대 자녀들과 자연경관이 수려한 음악여행으로 초대합니다.

게다가 문체부 후원 명칭을 무단으로 사용했으면서, 지적을 당해 삭제한 것에 대해서 억울하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흥행을 위해 케이팝 가수를 섭외하자니 우드스탁 라이센스가 아깝지요" 라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라인업 내 케이팝 가수가 몇 들어가 있다. SNS에 우드스탁 관련 긍정적인 글을 보면, 대부분 우드스탁 참가 결정을 한 케이팝 가수들의 팬계정이다.

이와 관련해 댓글로 여러 사람들이 비판을 했는데 며칠 뒤 댓글을 막아 버렸다. 이 글은 현재까지도 수정되지 않고 있다.


  • 최고의 공연과 무대가 하루에 20시간넘게 진행되는 우드스탁 기대하세요

지금까지 발표한 발표시리즈 3탄까지 정리한 스팟영상입니다.

국내 락을 비롯한 최고의 가수와 아티스트이 즐비한 가운데

다음부터 해외 해드라이너 공개됩니다.

많은 기대와 성원을 부탁드리며

철저한 준비로 하루에 20팀 공연이 무조건 1시간씩 진행됩니다.

좋아하는 가수를 하루에 20개팀이상 공연을 진행하는데 그런다면 희망하는 3명의 가수 공연을 볼 수 있다면

3시간 콘서트를 본 것과 다름이 없을 만큼 최고의 연출과 무대가 될 것입니다.

노래 2-3곡하고 가는 그런 공연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가수가 밴드 공연을 원칙으로 진행됩니다,

유명한 그분들도 마찬가지로 밴드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방금 언급한 1시간씩 공연을 진행합니다.

타 페스티벌에서는 메인 해드라이너로 무대를 선사할 그분들께서

우드스탁의 뜻을 이해하고 참여해주셔서 오히려 제가 준비하면서 몸둘바를 모를 지경입니다.

해드라이너만 25팀이나 되니 ^^

최고의 공연과 무대가 하루에 20시간넘게 진행되는 우드스탁 기대하세요

- 우드스탁 스팟광고 영상을 올리면서 쓴 글원본


좋아하는 가수를 하루에 20개팀이상 공연을 진행하는데 그런다면 희망하는 3명의 가수 공연을 볼 수 있다면
3시간 콘서트를 본 것과 다름이 없을 만큼 최고의 연출과 무대가 될 것입니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아무튼 이 글 또한 과연 공식 블로그에 올라올만한 글인가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던졌다. 이전 글과 더불어 읽는 내내 웃음벨.


  • 다음주부터 빅 뉴스가 있을 예정입니다.

1, 제작사 경험 ( 록 페스티벌 및 대형 공연)

2010년 9월 3,4일 비바코리아 록 페스티벌 - https://n.news.naver.com/article/014/0002327954? sid=103

https://youtu.be/ZCXgZsKwyVU

힙합 대전 (천하제일, 전무후무, 힙합 대전 3)

힙합가수 4-50팀, 공연시간 5시간 이상, 5천 명에서 2만 명까지 모시고 공연

천하제일 힙합 대전 : 네이버 이미지 검색 (naver.com)

2, 라우드니스

아시아 80년대 록 밴드의 대표주자, 일본 4대 메탈 밴드 그리고 2010년 방송사 제작 공연인 비바코리아

록 페스티벌 출연 경험으로 이번에 재 섭외한 것입니다. 욱일기 논란은 아주 과거이며 이번 행사에서는

우드스탁 취지와 맞는 연출과 공연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3, 소통 방식

우리에게는 초반에 옳고 그름을 빨리 판단하려는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행사 장소를 섭외코자 여러 곳을 체크한 결과, 가장 취지가 맞는 곳으로 판단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소통을 선호해서 유튜브, 블로그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4, 우드스탁 상표권

미국 우드스탁에서 공식 홈페이지와 SNS에 한국 우드스탁 개최 사실과 축하 인사를 게시했습니다.

5, 국내 라인업

국내 모든 록 밴드에게 최대한 모시고 싶은 마음에 캐스팅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록 장르를 포함한 여러 장르의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분들을 모시고 싶었습니다.

레전드 가수님을 우드스탁의 취지에 맞게 모시고 싶었습니다.

1969년에는 미국, 영국 밴드가 대세였지만 지금은 K POP 가수분들도 다른 페스티벌의 헤드 라이너로 초청되고

있습니다. 만약 다시 미국에서 우드스탁이 재현된다 하려도 K POP 한류가수 님의 초청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입니다.

신인가수 밴드를 도우고자 모시게 되었습니다.

6, 푸드 업체

본사와 계약한 푸드 대행하는 3개월 전 계약 완료되었습니다. 품목 선정, 관계당국의 허가 절차를 남은 상태입니다. 선정 방식은 공개경쟁으로 선정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탈락한 업체의 블로그 내용처럼 그분들과 연을 맺지 못한 것이며 현재 이상 없이 준비가 되고 있습니다.

7, 성우 멘트

아주 억울합니다. 금지된 것을 금지한다. MBC 송출 중인 광고 문구이며 성우로 도와주신 임진모 평론가님과 협의해서 문구를 수정한 것입니다. 의도된 것이며 오인이나 실수가 아닙니다.

더욱 소통하는 우드스탁이 되겠습니다.

8, 해드라이너

여러 국가의 가수님을 보시고자 접촉, 에이젠트와 협의도중에 마약??과 과거의 총기 등의 문제로 계약난항, 비자불발을 계속 경험중입니다. 현재 발표하지못한 해외 아티스트 5팀을 계약완료했으며 비자신청이 종료된 것과 동시에 발표예정입니다. 순조롭게 진행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 다음주부터 빅 뉴스가 있을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많은 문의에 답변드립니다.원본


더욱 소통하는 우드스탁이 되겠습니다. 고 했지만 여전히 댓글은 금지되었다.

7월 6일 게시글. 우드스탁에 대한 우려들로 여러 커뮤니티와 SNS에 하도 오르내리니까, 하나하나 답변하는 방식으로 쓴 글. 이게 다 댓글을 금지해서다 비판적인 여론을 어느정도 의식하고 있는 듯. 이전 글보다는 읽을만 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라우드니스 욱일기 논란은 아주 과거'라는 발언에 대해서는 계속 비판을 받았다. 최근 활동 사진과 영상 좀 찾아 보시라

'* 다음주부터 빅 뉴스가 있을 예정입니다.' -> 결국 이 발언은 우드스탁 취소 연기 소식이 되버렸다.


  • 우드스탁 대표 인터뷰 발언 논란
7월 8일자 엑스포츠뉴스와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여기서 했던 발언 몇 가지가 논란이 되었다. 직접 보고 판단하자. 1편 2편 3편
여기에는 몇 개만 옮겨 본다.

Q. '우드스탁 2023'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편견과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유명한 록 밴드를 기대하고 온다면 '우드스탁'에 대한 기본 정신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중략)

Q. 아티스트들도 '우드스탁 2023' 무대에 오른다는 자체로 의미가 클 것 같다.

"(생략)왜 아이돌이 '우드스탁' 무대에 오르냐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어떤 장르 가수가 나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드스탁 2023' 정신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이 중요하다."

Q. 헤드라이너 공개가 늦어진 이유는.

"헤드라이너는 우드스탁벤쳐스(우드스탁 오리지널 라이센스권자)와 상표권 계약체결 당시 미국과 영국 등 헤드라이너 섭외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당사에서는 믿고 기대를 했지만, 여러 아티스트들의 계약 성사가 불발됐다. 자체적으로 섭외한 일부 아티스트들도 마약 및 총기 관련 전과 등으로 비자가 지연되었는데, 우드스탁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판단되어 선정 과정이 늦어졌다."

Q. 전범기를 팀 심볼로 쓰는 일본 밴드 라우드니스 출연 논란에 대한 생각은.

"라우드니스는 일본의 4대 메탈 밴드 중 한 팀이다. 일본 밴드가 전범기를 활용하는 것이 문제될 일이 있나 싶다. 아티스트는 음악으로 실력을 보여주면 된다. 이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무대만 생각한다. 다만 혹시라도 '우드스탁'과 함께 굿즈를 만들자고 할까봐 걱정한 적은 있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4.3. 관련 사이트 및 채널[편집]




  • 공식 네이버 블로그 :링크
대표의 하소연과 덕질을 비롯해, 홍보 영상등을 볼 수 있다. 댓글은 금지된다.

"본 계정에서는 우드스탁 공연의 공식 유투브 계정으로 가장 빠른 소식과 영상으로 여러분에게 공지하겠습니다." 라고 설명란에 적혀 있지만 실상은 원 기획사인 SGC엔터테인먼트의 계정에서 이름만 바꾼 유튜브다. 우드스탁 관련 영상은 몇 개 있지도 않다. 홈 화면 인기동영상 메뉴에 먼저 제작한 리얼 예능프로그램인 고디바쇼와 서울걸즈컬렉션 패션쇼 같은 다른 영상들이 더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유튜브 첫 인상이 굉장히 혼란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조회수를 심히 의식한 듯 일부러 선정적인 제목과 썸네일을 넣은 영상도 제법 된다. 당연히 조회수가 우드스탁 영상 보다 높다 특이사항으로는 과거 서울걸즈컬렉션에 출연했었던 엑소, 트와이스, 2PM 같은 대형 아이돌들의 활동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과 그렇게 유튜브 구독자수와 조회수를 빨아 먹고 있다 이제는 역사 속에 사라진 그룹인 원더걸스, 모모랜드, 장미여관 등의 영상도 있다는 점이다. 우드스탁 관련 영상에서는 댓글이 금지되어 있다.

  • SGC엔터테인먼트 김은수 대표 인스타그램 : 링크
우드스탁 코리아는 별도의 인스타그램이 없고, 주최사 대표의 개인 계정을 활용하고 있다. 심지어 광고까지 돌린다. 여기서도 예전에 제작한 고디바쇼 등의 프로그램을 홍보했었다. 당시 고디바쇼도 PD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만 소식을 받을 수 있어서 불편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착실히 쌓아온 팔로워 숫자 우드스탁 관련 피드에는 댓글이 금지된다.

  • 비공식 티스토리 블로그 :링크
우드스탁에 관한 글이 연재되고 있는 티스토리 블로그. 다른 계정들과는 달리 SGC엔터테인먼트의 컨텐츠를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우드스탁' 컨텐츠만 있다. 6월 6일 포스팅이 첫 포스팅으로 최근에 개설된 듯 하다. 우드스탁 홍보 블로그인데 어째서 '비공식'이란 이름이 붙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모 인터넷 매체가 이곳을 직접 언급하거나 게시글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아, 바이럴용 블로그인 것 같다.


5. 대중 매체[편집]



  • 테이킹 우드스탁 : 1969년 첫 회 우드스톡 페스티벌을 다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이안 감독 연출. 제62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출품작.

  • 난장판이 된 사건사고: 우드스톡 1999 : 1969년의 우드스톡은 평화와 음악을 약속했지만, 1999년에 부활한 우드스톡은 며칠에 걸친 분노와 폭동, 그리고 실질적인 피해를 가져왔다. 축제는 왜 이렇게 최악으로 꼬여버렸을까? (공식 소개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링크




이 문서의 r26 버전에 위키백과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저작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포함된 버전으로 문서를 되돌리거나 링크하는 행위는 금지됩니다. 만일 되돌리거나 링크할 경우 저작권 침해로 간주되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0 23:50:05에 나무위키 우드스톡 페스티벌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쪽 이야기지만, 월디페의 경우 Young gunz라고 요즘 뜨는 해외 신인을 섭외하는 선례가 있었다.[2] 7월 28일 라인업에 올라와 있는 크라잉 넛도 공식 SNS에서 발표한 7월 스케줄에링크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국내외를 막론하고 비슷한 상황으로 보인다.[3] 페스티벌을 연기한 이유는 보도자료마다 다르다. 어디서는 아티스트 비자 문제 때문이라고 하고 어디서는 장마철 관객 안전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주최측이 적당히 둘러댄 것일 뿐이며 많은 사람들은 티켓 매출이 저조하여 아티스트에게 개런티를 지불할 수 없기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다.[4] 파일:1688557650.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