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급 호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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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울산급 호위함(FF: Frigate)은 대한민국 해군의 첫 국산 호위함으로, 해군 조함단과 국내 조선업계가 1,000톤이 넘는 군함을 건조한 첫 사례다.
길이 102m, 경하 배수량 1,500톤의 울산급 호위함은 해역 방어, 대간첩작전 등을 위해 중무장한 채 빠른 속력을 내며, 장기간 항해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76mm 주포 2문과 30mm 부포 4문 또는 40mm 부포 3문, 어뢰, 폭뢰 등을 장착했고, 1980년대 후반 하푼(Harpoon) 함대함유도탄을 추가 탑재했다. 북한 해군의 고속함정을 상대하기 위해서 2대의 가스터빈과 2대의 디젤엔진을 장착해 최대 속력이 36노트(시속 63km)에 달한다.[2]
총 9척이 건조된 FF는 본래 '한국형 구축함'(FFK)으로 개발돼 구축함에 지정되는 900번대 선체번호를 받았고,[3] 함장의 계급도 대령이었다.[4] 초도함 울산(FF 951)은 1981년 1월 1일 취역했고, 시제함인 울산함의 미비점을 보완해 1984년부터 후속함인 서울함·충남함·마산함·경북함을 순차적으로 취역시켰다. 1989년부터는 사격통제장비가 향상된 전남함·제주함·부산함·청주함을 인수했다. 울산급 호위함의 전력화로 미 해군에서 인수한 구축함들은 일부 퇴역했으나, 헬기 탑재가 가능한 광개토대왕급 구축함(DDH)이 전력화돼서야 전량 퇴역할 수 있었다.
해역함대의 주전력으로 활약한 FF는[5] 차기 호위함(FFX)인 인천급(FFG-I), 대구급(FFG-II) 호위함의 등장으로 2014년부터 퇴역을 시작해,[6] 2023년 현재 부산함과 청주함만이 활약 중이다.
2. 동급함[편집]
- 호위함의 경우 도·특별·광역시, 도청소재지 지역 名을 붙이는데,# 울산함은 건조 당시 초도함을 건조한 울산 지역의 조선업을 상징하는 의미로 명명됐다.
- 활약상
- 1988년 해군사관학교 43기 사관생도의 순항 훈련 임무를 수행하면서 마산함과 경북함이 국산 호위함으로는 처음으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기록을 세웠다.
- 1990년 해군 함정으로는 처음으로 서울함과 마산함이 환태평양훈련(RIMPAC)에 참가했다. 서울함은 경쟁사격 분야 탑건(Top Gun)’을 차지했고, 마산함은 해군 최초로 하푼 함대함 미사일 실사격 훈련을 성공하는 성과를 거둔다.
- 1991년 충남함이 해군 최초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했다.
- 1992년에는 충남함과 마산함이 한국 해군 최초로 세계일주 항해를 했다.
- 1993년 9월 22일 우리 해군 최초로 울산함과 전남함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입항했다.#
- 1997년 충남함은 1997년 5월 23일 해군 해상지휘관회의 때 ‘벤치마크 십(Benchmark Ship)’ 칭호를 받았다. 벤치마크 십은 해군의 기준과 목표가 돼 전투발전을 이끄는 함정을 일컫는다.
- 1999년 제1연평해전과 2009년 대청해전 당시 전남함이 기함 임무를 수행했다.
3. 사업 배경[편집]
1975년 베트남의 공산화는 한국의 자주국방 노력을 더욱 자극했다. 새로운 전력증강계획이 마련됐고, 1980년 초까지 북한과 대등한 군사력을 육성, 확보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았다. 전력증강계획의 주요 내용으로는 1980년대 초까지 방위전력을 확보하고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는 억제전력 기반조성, 방위전력 보강, 전력의 질적 향상, 억제전력의 건설 등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1980년대 말까지 억제전력 확보를 주된 목적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해군 방어해역 내에서 완벽한 해상 통제권을 확보, 유지해 방어해역에 대한 적의 사용 및 침투를 방지하고자 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작전해역을 확대해 한반도 전 해역에 대한 해상 우세를 장악하는 것을 해군 전략목표의 기본으로 했다.
해상작전에 소요되는 전투함 전력을 살펴보면 톤수 2,800톤 및 1,800톤급으로 30노트 이상의 속력을 내며 대함 및 대공 유도탄을 보유한 다목적 전투함과 750톤급 한국형 경비함이 있다. 소요함정을 개발, 건조하여 전투 경비함의 노후 대체에 대비함과 동시에 자주적인 조함발전에 기여하고자 했고, 함대함 유도탄을 확보해 구축함에 장착시키고 공대함 유도탄을 확보, 헬기에 장착해 해상 공격능력을 보유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아래 한국형 구축함(FFK)은 1970년대 중반,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내 건조를 추진하게 되었으나, 그 당시 소형 고속경비정만을 설계한 기술만으로는 구축함 설계기술이 부족해 기본설계를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따라서 해군과 현대조선(현 현대중공업)의 기술진은 해외 기술용역의 실태를 조사하고 타당성을 검토했다. 1976년 6월, 미 해군 함정 FFG-7의 설계 경험이 있는 JJMA사에 기술용역을 의뢰하여 기본설계 및 건조지원을 받고 1976년 7월, 시험제작업체로 선정된 현대조선에서 상세설계를 추진하되 설계요원 및 건조요원을 미국에 파견하는 내용으로 정부 승인을 받았다.
1976년 8월 미국 JJMA사와의 기술용역 가계약 체결을 위한 협의에 들어갔으나, 한국 해군이 요구하는 작전성능을 100% 반영할 수 없으며 성능보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또한 국내 기술축적과 기술자료의 적기공급에 동의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보안유지에도 어려움이 있어 협상이 결렬되었다. 협상결렬에 따라 국내 기술진에 의해 기본설계가 불가피하게 되어 해군 주관으로 국내 기술진에 의한 기본설계를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1976년 12월 국방부 승인을 받았다. 당시 국내 조선업계는 구축함의 국내 설계에 극히 회의적이었으나, 현대조선이 정부와 해군 당국에 구축함 설계 및 건조에 참여할 뜻을 밝혔으며 1975년 7월 현대조선이 한국형 구축함 시험제작업체로 지정받았다.
1976년 12월 현대조선과 설계계약을 체결했으나 설계 관련 계획 및 자료구입이 어려워 현대조선은 기술로 직접 해결하기 어려운 사항은 JJMA사의 설계기술과 기술인력을 지원받기 위해 상호기술협력계약을 체결했다. 1978년 기본설계가 완료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현대조선과 해군 사이에 시제함 상세설계 및 건조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한국형 구축함 건조에 착수했다. 2,000톤급 함정설계 및 건조 경험이 전혀 없는 우리 해군은 무모하다고 할 정도로 도전적인 시제함(울산함) 건조계획을 수많은 시행착오와 난관을 극복하고 계획된 기간 내에 마쳤다. 이후 시제함 설계 및 건조와 관련된 자료와 경험을 활용하여 후속함을 현대조선, 대한조선공사, 코리아타코마조선, 대우조선(현 대우조선해양) 등에서 건조했으며, 함형별로 별도의 무기체계와 장비 및 성능 개량을 통해 점차 발전된 함정을 보유하게 되었다.
김효철 외, 『한국의 배』 (지성사, 2006).출처
1975년 7월 9일 박정희 대통령은 변화하는 안보환경에 대응하고, 자주국방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조치로 해군참모총장에게 구축함 개발 가능성을 검토하여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13] 해군은 중무장한 채 빠른 속력을 내며, 장기간 항해가 가능한 최신예 플랫폼을 구상했다. 이제 갓 소형 함정을 만들기 시작한 해군은 고속정 설계 기술을 보유했지만 대형 전투함의 설계 경험은 전무했다. 해군은 1976년 12월 31일 현대중공업과 ‘1800톤급 구축함 기본설계 계약’을 했다. 최초에는 한국형 구축함으로 불렸지만 함정 크기를 고려해 호위함으로 사업명을 변경했다. 한국형 호위함은 개념설계를 거쳐 1978년 3월 31일 기본설계를 완료했고, 같은 해 10월 28일 현대중공업과 ‘상세설계 및 함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1980년 4월 8일 초도함 ‘울산함’의 진수식을 치렀으며.# 최규하 대통령이 기념사를 했다. #
1970년대 ~ 1980년대 초반 당시의 한국은 공업 능력도 성숙하지 못한 상황에 국내 조선 업계에서는 호위함 건조 경험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서 외국 회사의 도움을 받아 설계와 제작에 나섰다. 당장 1970년대에는 30톤 ~ 70톤급의 고속정이나 건조가 된 시점이었다. 미 해군의 퇴역 엔지니어들이 설립한 설계회사와 기술제휴를 맺었고, 이 배를 만들면서 군함 건조 경험을 쌓았다. 1, 2번함인 울산함과 서울함을 만들 때 처음으로 조함 규정과 매뉴얼을 만들었다. 따라서, 태생부터 장기간 운용에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1980년에 울산급을 막 건조한 직후 시험평가에서 밸런스가 맞지 않아 함수에 시멘트를 부어 균형을 맞추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14] 그래도 해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배임에는 틀림없다. 이때 쌓은 노하우는 이후 세종대왕급 구축함까지 이어지는 해군 현대화의 기틀이 되었다.
4. 제원 및 특징[편집]
- 울산급은 1~3차선으로 나누는데 무장과 센서의 차이로 구분한다. 2차선과 3차선의 무장은 76mm 함포 2기, 40mm 함포 3기, 어뢰, 폭뢰, 하푼 대함 미사일 8발이다. 1차선은 부포가 40mm 브레다 3기 대신 EM-30mm 함포 4기이다. 1차선은 사통장치가 WM-28에 미스트랄 발사대의 위치가 어뢰갑판에 있다. 2차선은 사통장치가 WM-28에 부포가 40mm 브레다이며 미스트랄 발사대가 O-2데크에 있다. 3차선은 무장은 2차선과 동일하지만 함미부포의 위치가 어뢰갑판 위에 O-2데크를 설치하고 그 위에 있으며 사통장치가 국산화된 WSA-423이다.
- 울산급은 함수 76mm 함포를 주갑판보다 1층 높은 위치(0-1 deck)에 두었다. 간첩선이 함포의 사각지대로 바싹 접근해 기관총을 난사하고 도망간 경험 때문이었다. 울산함 개발 사업을 이끈 엄도재 제독의 회고에 따르면, 해군참모총장이 "주포가 0-1 deck에 설치된 전투함이 어디 있느냐"고 힐난하자 "구축함이 간첩선을 잡아야 하는 경우는 어디 있습니까?"라고 되물어서 승락을 얻어냈다고 한다.
- 70년대에 설계되었기 때문에 구축함용 비싼 함대공미사일 시스템과 대공레이더를 달 수 없었다. 후에 휴대용 대공 미사일인 미스트랄을 달았다. 대함미사일 요격능력은 없지만, 미스트랄 달기 전의 울산급은 대함미사일이 아니라 항공기의 무유도 폭탄 공습에도 취약했다.[22] 대잠 능력은 2차대전 수준이고 소나도 예산에 맞춘 정도다.[23]
- 구축함에나 쓰는 CODOG 추진방식을 채용해서 최대시속이 38노트에 달한다. 추진 기관이 광개토대왕급(DDH 1차선)과 동일하다. 전속 시 고속정인 참수리보다 더 빠르거나 비슷하다. 이는 주적인 북한의 고속정을 상대하기 위함이었다.
- 고속 기동을 위해 선체 상부는 중량이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제작했는데 균열이 발생하여, 2002년부터 울산급 호위함 전 함정의 상부 구조물에 신축성 연결부를 설치하고, 주갑판과 선체 옆 부분에 보강판을 붙이는 선체 보강 작업도 병행했다. 국방TV "첨단국가의 초석, 방위산업" 울산급 편에 따르면 초도함 울산함에서 원양항해 후 주갑판 균열 발생이 보고됐고, 이를 극복하고자 후속함에서 주갑판 재질을 강화하니 갈 곳 없는 응력이 기관실에 쏠려서 기관실 측벽에 균열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5. FFX(차기 호위함)[편집]
'차기호위함'(FFX) 사업은 노후화된 호위함(FF)과 초계함(PCC)을 대체하는 신형 호위함을 확보하는 사업이다. FFX 사업은 울산급의 이름을 따 울산급 Batch-I(FFX Batch-I)/Batch-II/Batch-III라는 사업명 아래 단계별로 진행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인천급 호위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해외의 유사한 호위함[편집]
- 방글라데시 해군의 방가반두
- 벨기에 해군의 비엘링엔급
울산급과 동시대에 건조됐으며 배수량도 비슷하고 센서도 유사하다. 1978년부터 4척이 취역했으며, 현재는 1척은 퇴역하고 3척은 불가리아에 매각됐다. 이쪽은 100mm 함포 1문, RIM-7 시 스패로 8연장 발사기 1문, 엑조세 대함미사일 4발, 폭뢰투사기와 어뢰발사기로 무장하고 대신 헬기운용능력을 제외했다.
- 말레이시아 해군의 카츠리급
- 스페인 해군의 데스쿠비에르타급
비슷한 센서에 배수량도 비슷한 위 함정들과 울산급의 차이는 무장 외에, 2차대전 주력 구축함을 연상시키는 울산급 특유의 고속능력. 위 함정들은 보통 디젤 추진이거나 디젤 2기+가스터빈 1기 조합으로 최고속력이 25~28노트 선에 그친다. 고속침투하는 소형함정을 식별해 기동과 포화로 차단하는 일은 주임무가 아니고 주로 느긋하게 해역을 초계하거나 대잠작전에 참가하는 배들.
7. 사건·사고[편집]
- 청주함 어뢰 오발 사고
- 서울함 30mm 함포 오발 사고
- 경북함 부사관 실종 사건
- 전남함 사적운용 사건
7.1. 마산함 폭발 사고[편집]
자세한 내용은 마산함 폭발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기타[편집]
- 해군 내부에서는 울산급이라 하지 않고 'FF'라고 칭한다. 미해군의 분류인 호위함 FF를 한국해군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FF는 호위함(Frigate), 해군 내에선 고유명사처럼 사용한다. 충무공이순신급, 세종대왕급 같은 구축함(DD)들도 미해군 분류법을 모방해 유도탄, 헬기탑재 의미로 DDG, DDH로 분류한다. 역시 고유명사 취급해 광개토대왕급, 충무공 이순신급 대신 DDH라고 부른다. 퇴역한 기어링급 구축함들은 DD라고 불렀고 동해급 초계함과 포항급 초계함은 동해급, 포항급이라고 하지 않고 PCC라고 부른다.[26]
- 지금은 호위함으로 분류되지만, 80년대까지는 대내적으로 "한국형 구축함(FFK)"이라고 불렸다. 주력함인 이유도 있지만, 2차대전 기준으로는 소형이 아니었던 플레처급 "구축함"(우리 해군도 운용했고, 울산급과 포항급을 배치하면서 퇴역했다)과 비교하면 크기가 거의 같다. 만재배수량도 전기형이 조금 작고 후기형은 비슷하다.[27]
- 광개토대왕급 구축함이 건조되기 전까지 울산급은 우리 해군의 실질적인 주력함이었으며, 그만큼 혹사당했다. 30년을 넘어 40년 넘게 쓰기를 밥먹듯이 하는 해군에서 30년이 넘자 제꺽제꺽 퇴역시켜 버릴 정도이다. 콘크리트 일화처럼 경험 부족도 있었고, 많은 무장을 실은 상부 구조물, 그리고 고속성을 추구하다 보니 악천후에 버티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독도해역에서 배수량이 훨씬 큰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과 대치할 때는 아무리 악천후라도 일본이 철수할 때까지는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한, 대공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북한군이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을 가동하면 긴급 회항하는 긴박한 일도 벌어지기도 했다. 다만 초도함 또는 초기함번보다는 후기 건조된 함번이 기술적으로 개선되어서 항해능력이 낫다.
- 초도함인 울산함을 건조할 때 에피소드. 함을 완성하고 해상에서 황천(荒天) 시운전이라 하여 악천후 상황에서 항해하는 시운전을 해야 하는데, 건조에 참여한 외국인 기술자들이 출항을 거부했다. 이제 막 만들어진 함선이라서 안전을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당시 울산함 함장은 꼼수를 썼다. 외국인 기술자들을 함내 격실로 안내한 뒤, 그대로 출항해 버린 것. 국방일보 기사
- 울산함은 날개, 함안정기, 핀 등으로도 불리는 핀 스태빌라이저가 없어서 2m 파도에도 PCC보다 훨씬 더 흔들거렸다고 한다.[28] 다른 함보다 빠른 노후로 인하여 2000년대 들어서는 비공식적으로 교육사소속으로 훈련함으로만 쓰다가 퇴역하였다. 퇴역한 울산함은 고향인 울산광역시에 일부 장비를 철거한 뒤 해군이 무상임대 형식으로 제공되어, # 장생포 울산해양공원 고래박물관 부지에 전시하고 있다.[29]
- 서울함은 퇴역 직전에는 3함대에 있었지만 2함대 시절에는 고장이 잘 나 공포의 함정으로 유명했다.[30] 3함대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 였다고 한다. 퇴역한 서울함은 2017년 11월 22일 망원한강공원에 조성된 한강함상공원(서울함 공원) 개장을 맞아, 돌고래급 잠수정, 참수리급 고속정 등과 함께 일반에 개방되었다.[31]
- 서울함 공원에서 서울함 내부를 볼 수 있는데 1층은 중앙에 복도가 있고 그 양옆으로 격실들이 붙어있는 형태다. 함내식당은 승조원식당과 사관식당 이렇게 2개가 있다. 상사, 원사들은 원상사실에서 식사한다. 지하층에는 부사관, 수병 침실이 있고 1층에는 장교, CPO 침실이 있으며 2층에는 함장실이 있다.
- 충남함은 원래 1함대 소속이었는데, 함대 지통실의 피항 지시가 늦은 탓에 태풍을 직격으로 얻어맞아 마스트와 함포가 모조리 박살나는 피해를 입었다. 이후 정밀조사한 결과 손상이 워낙 심해 완전복구 불가 판정을 받고 임무가 상대적으로 널널한 3함대로 내려가 남은 함생을 보냈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이후 3함대 기함이었던 양만춘함이 2함대 서울함과 전환배치되며 3함대 기함이 된다. 추후 전북함 취역까지 함대 기함으로 활약하게 된다. 이후 2017년 12월 27일 퇴역하였다.
- 마산함은 2017년부터 교육사령부 실습전대에 배속되어 실습함 임무를 맡다 2019년 12월 24일 퇴역하였다.
- 퇴역한 포항급 초계함이 해외로 공여되는 것과 달리 울산급은 아직 해외로 공여된 사례가 없다. 2019년엔 아르헨티나가 퇴역한 울산급을 인수하려고 검토했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불어닥친 경제난으로 당분간 소식이 없는 상황.[32] 그 외에도 필리핀 해군이 울산급의 공여를 원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33]
- 2001년경에 기관포 하나를 떼고 RIM-116 RAM을 추가하려는 계획안이 검토되었으나 취소되었다. 당시 해군 인트라넷에 RAM 장착 예상도면이 올라오기도 했었다.
- 울산급의 디자인 및 설계사상은 이후에 건조되는 해군 함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동해급/포항급은 중갑판 등의 세부형상만 다를 뿐 거의 울산급을 줄여놓은 수준이고[34] , 광개토대왕급은 함수 부분의 형상이 울산급과 꽤 많이 닮았다.
- 초도함인 울산함은 프로토타입의 성격 때문인지 순항훈련, 림팩 등의 원양훈련 및 작전에 차출된 적이 없다. 울산함의 원양항해는 1993년의 러시아 방문 정도가 거의 유일하다.
- 대만이 1983년부터 추진한 광화 2호 계획 이라는 호위함 도입 사업에서 울산급이 선정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그러나 대만 내부의 반발 및 프랑스의 로비에 의해서 캉딩급 호위함이 도입되었다. 이후 온갖 비리와 추문에 휩싸이면서 대만 건함 사업은 표류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캉딩급 호위함 참고.
8.1. 매체에서[편집]
- 트랜스포머(영화)에서 서해에 대한 언급이 나올 때 잠깐 등장하기도 한다.
- 전함소녀에 네임쉽 울산이 유도탄구축함으로 등장했다.
-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했던 대체역사물인 격랑의 바다에서 포항급 초계함과 함께 필리핀 해군에 공여물자로 이동하다가 태평양 전쟁 시기로 넘어간다. 오늘 날 함포를 주렁주렁 달았다는 평가와 달리 이들의 정체를 모르는 연합군에선 뭔놈의 만재배수량이 2천톤에 달하는 군함이 4~5인치급 함포 4, 5문이 아니라 꼴랑 3인치 함포 1, 2문 정도라 덩치가 아깝다며 경비함이라며 혀를 차는 부분이 웃음 포인트.
8.2. 모형화[편집]
- 옥스포드가 출시한 코브라전투단 해군전투함의 원본이 되었다. 비록 외형이 다르고 이름도 해군전투함이지만 함교, 마스트, 연돌, 함포 배치 형태, 후방 함포와 연돌 사이에 유도탄이 탑재되어 있는 등 울산급 호위함이랑 닮았고 함체에 0-FFK 라고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