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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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맥락
3. 내용



1. 개요[편집]


Statute of Westminster 1931

1931년 영국 의회에서 성립시킨 법률. 영국 본토와 대영제국 산하 자치령이 서로 동등한 자치적 공동체의 일원이 됨을 규정하였다.


2. 역사적 맥락[편집]


1867년부터 웨스트민스터 헌장 이전 영국 본국과 자치령의 관계는 내정에서는 자치령 정부가 전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외교권과 군사권은 영국 정부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큰 희생을 치른 대영제국식민지들과 자치령은 그 보답으로 자치권 확대를 요구했다.

영국 정부의 주요 인사들도 이 요구를 고려해, 1926년밸푸어 선언[1]이라는 보고서를 올렸다. 이 보고서는 영국대영제국자치령의 관계를 재정의하여, 영국 본국이 군사권과 외교권을 가지고 나머지 내정은 각 자치령 정부에 위임하던 체제에서 벗어나 각 자치령을 영국 본국과 동등한 주체로 승격시켜 군사권과 외교권을 위임하도록 제안하는 것이 그 골자였다. 이 보고서는 그 요구를 영국 정부 차원에서 공식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제안을 두고 영국 정부에서도 갑론을박이 오갔지만 캐나다를 시작으로 각 자치령에 점차 적용되기 시작하고, 마침내 1931년에 법률로써 반영된 것이 웨스트민스터 헌장이다.

3. 내용[편집]


1931년 이전까지는 자치령은 영국 정부의 지휘를 받아 각 자치령 내 총독들은 총리의 휘하에 있었으나, 헌장이 비준된 이후부터 영국 총리와 각 자치령의 총독은 대등한 관계가 되었고 자치령은 대영제국 내의 자치공동체로 규정되어 있었지만 독자적 외교권과 군사권도 지닌 사실상의 독립 국가가 되었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헌장에 의해 사실상 분리 독립한 각 자치령 간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영연방이 만들어졌다.

모든 영국의 자치령이 이 선언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각 자치령이 자치권 확대를 요구했던 것은 사실이나, 군사권과 외교권까지 받으면 사실상 독립국가가 되기 때문에 완전한 독립을 바라지 않았던 주민들의 반대에 직면한 것이었다. 그래서 각 자치령 의회에서 이를 비준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천차만별인데, 가령 뉴질랜드 의회는 1947년이 돼서야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비준했다.

또한 이로써 영국 의회는 각 자치령에 대한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잃게 되었다. 모든 자치령 내 법률은 자치령 의회가 제정하게 되었으며, 영국 의회는 자치령 헌법개정에 대해 비준해주는 권한만을 갖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는 이 자치령들이 유엔에 독자적으로 가입하는 등 따로 놀게 되어, 1953년까지 명목상으로 대영제국의 자치령이 남아 있기는 했으나 이미 영국 본국도 이들에 대해 자치령(dominion)으로 부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각 자치령은 독단적으로, 혹은 영국 정부와 합의해 영국 정부가 각 자치령의 헌법에 대해 비준해주는 권한을 철폐해 명목상의 자치령 체제도 철폐하고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었다. 예외적으로 아일랜드 자유국은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비준하지 않았는데, 이미 1921년의 영국-아일랜드 조약에서 영국 의회의 아일랜드 자유국 내 입법 권한은 없어졌다는 시각을 취했기 때문으로, 1937년에 독단적으로 자유국 헌법을 개정해 대영제국에서 완전히 독립해 나갔다. 자세한 과정은 아일랜드 자유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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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대 국가의 설립을 선언한 1917년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1926년의 밸푸어 선언의 밸푸어1917년밸푸어는 같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