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윌리엄 허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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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프레드릭 월리엄 허셜 경
Sir John Frederick William Herschel


출생
1738년 11월 15일
잉글랜드 슬라우
사망
1822년 8월 25일 (향년 83세)
잉글랜드 콜링우드
국적
[[영국|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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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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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학자, 작곡가
분야
천문학, 수학, 생물학, 음악
가족
아버지 이사이크
배우자 메리 피트 볼드원
아들 존 허셜

1. 개요
2. 생애
3. 누이동생 캐롤라이아 루크레티아 허어셸
4. 아들 존 허셜
5. 여담



1. 개요[편집]


독일 태생 영국천문학자, 작곡가, 수학자, 생물학자다.


2. 생애[편집]


신성 로마 제국하노버 선제후국에서 존 프리드리히 빌헬름 헤어셸로 태어났다. 허셜 부인이 낳은 10자녀 중[1] 3째.

부친 이사아크는 하노버 군악대의 오보에 연주자였으며, 빌헬름은 4살 때인 1743년에 바이올린를 연주했다 하며, 1753년부터는 형 야콥 허어셸과 함께 하노버의 보병친위대에 들어가 오보에를 연주했다.

7년 전쟁이 발발하여 하노버프로이센 및 영국과 손잡고 오히려 마리아 테레지아 (합스부르크)와 루이 15세 (프랑스)에게 등을 돌리자 1757년 이사아크는 야콥과 빌헬름 형제를 영국으로 보냈[2]으며 이는 빌헬름이 19세부터 영국에 정착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곧 영국 음악교사, 작곡가, 오르가니스트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고 1766년에는 바아스(남서 영국의 소머셋 지역)에서 음악을 가르치다 수학적 음악이론을 공부하면서부터 수학 그리고 천문기기 제조, 판매 일을 하기도 했다.

1781년 3월 13일 천체를 관측하다 천왕성을 발견했고, 그에 따라 같은 해 코플리 메달을 수상했다. 독일계 영국인인 그와 누이동생인 카롤라이네 루크레티아 허어셸은 영국에서 가난 속에 어렵게 살면서도 돈을 모아 망원경을 사고 손수 렌즈를 갈아 가면서 연구하던 중, 천왕성의 발견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 덕분에 윌리엄은 나이 50살인 1788년에서야 메리 피트 볼드윈(1750 - 1832)과 당시에도 엄청나게 뒤늦게 결혼도 하여, 아들인 존 허셸[3]을 50살이 넘어서야 얻게 되었다.

다만 그 홀로 천왕성을 발견한 게 아니라 누이동생인 캐롤라이네 루크레티아 허어셸도 공동으로 발견했음에도 묻혔다. 존 프레드릭 윌리엄 허셸은 누이동생인 캐롤라이네 루크레티아 허어셸이 돕고 같이 발견했다고 누누이 강조했지만, 당시 여성이 천시받던 시대라 모든 공로는 오빠인 존 프레드릭 윌리엄 허셜에게 돌아갔다. 존 프레드릭 윌리엄 허셜은 영국 왕립천문학회의 초대 회장(1821-1822)을 지냈다.

프리즘을 통해 빛의 색(파장)별 온도를 측정하는 도중에 빛이 쏘이지 않은 부분도 온도가 변화한 모습을 관찰하여 적외선(자외선은 빌헬름 리터가 발견)을 최초로 발견했다. 다른 과학자들은 단순히 빛이 쏘이지 않았다고만 생각했으나 사실 인간의 이 적외선과 자외선을 인식하지 못하여 생긴 일이였다.


3. 누이동생 캐롤라이아 루크레티아 허어셸[편집]


캐롤라이나 루크레티아 허어셸 또한 뛰어난 천문학자였음에도 여자라서 당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빠인 존 프레드릭 윌리엄 허셜에게 천왕성 발견자의 영광이 돌아갔다. 오빠인 존 프레드릭 윌리엄 허셜도 죽을 때까지 동생의 공적을 언급하며 명예를 살려주려 했으나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서야 그녀의 공로가 알려졌지만 여전히 그녀의 명성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캐롤라이나 루크레이티아 허어셸은 어려서 병을 앓은 탓에 난쟁이가 되었다고 한다. 키가 4f 3I로 약 130cm 남짓이었다고 한다. 독신으로 산 캐롤라이나 루크레티아 허어셸은 존 프레드릭 윌리엄 허셜이 죽고난 후에도 천문학 연구를 계속하면서 새로운 혜성, 소행성들을 발견했으며, 나이 78살이 된 1828년에야 영국 왕실 훈장을 받았고 그 해, 역사상 처음으로 왕실천문학회 여성회원이 되었으며 왕립 천문학회 공로 금메달을 여자로서 처음 받았다. 캐롤라이나 루크레티아 허어셸 이후로 여자가 이 금메달을 받은 것은 무려 168년이 지난 1996년에서야 미국 여성 천문학자 베라 루빈이 받았다.

조국인 프로이센 왕실에서도 1834년 훈장을 받고 왕실천문학회 회원이 되었기에 늦긴 했어도 살아 있을 때 이 모든 영예를 조금이라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장수한 나이지만 당시에서는 더더욱 엄청난 장수를 누리며 1848년 1월에 97살로 눈을 감았다. 독신으로 살았기에 늘그막을 윌리엄의 아들이자 그녀의 조카인 존이 돌보았는데, 97살로 죽기 몇 달전인 그 나이에도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망원경에 늘 붙어 지냈다고 한다.

참고로 캐롤라이나 루크 레이티아 허어셸은 1788년 허셜 리골레트 혜성을 발견하여 천문학 역사상 처음으로 혜성을 발견해 이름을 남긴 여성 발견자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이 혜성 발견을 인정받지 못하다가 무려 150여년이 지난 1939년에서야 이 혜성이 지구로 오면서 재발견한 프랑스 천문학자 로제 리골레트의 성을 따서 이 이름이 된 것이다. (참고로 이 혜성은 2091년에서 2092년쯤에나 지구에 다시 나타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Sir_William_Herschel_and_Caroline_Herschel._Wellcome_V0002731.jpg
망원경 렌즈를 같이 갈고 있는 존 프레드릭 윌리엄 허셜과 누이동생 캐롤라이나 루크레티아 허어셸. 이 그림은 엄밀히 따지면 캐롤라이나의 외모를 미화한 것이다. 캐롤라이나는 키가 매우 작았기 때문.


4. 아들 존 허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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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의 존 허셜

윌리엄 허셜은 54세의 나이에 존 허셜이라는 늦둥이 아들을 두었는데 윌리엄은 아들을 생전에 끔찍이도 아꼈다, 그도 아버지와 고모의 뒤를 이어서 저명한 천문학자이자 공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존 허셜은 사진술의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했는데, 어린시절에 아버지와 함께 지냈던 행복했던 기억 때문에, 찰나의 순간을 잡아낼 수 있는 사진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사진을 뜻하는 'Photography'란 용어를 처음 제시했으며, 청사진을 발명하기도 했다. 또한 베텔게우스변광성임을 처음 발견했고, 천체목록에서 메시에 천체 목록과 쌍벽을 이루는 NGC 목록의 기반을 다졌다.

5. 여담[편집]


허셜은 의외로 생물학 쪽으로도 중요한 업적을 하나 남겼는데 산호가 동물이라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산호를 현미경으로 관찰해 식물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세포벽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 이 당시엔 과학의 분화가 아직 뚜렷하지 않았고, 과학자들이 이런 저런 분야를 다 건드려 보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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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자녀 중 4명이 어렸을 때 죽었다. #[2] 당시 영국과 하노버는 동군연합이었다.[3] 아들인 존 허셜(1792–1871)도 뛰어난 천문학자이자 수학자로 영국 왕실에서 경 작위를 받았고 토성목성의 여러 위성을 발견하고 관련 연구에 기여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