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원, 강성훈 듀엣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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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젝스키스 멤버들
3. 장수원 어머니
4. 김기영
5. 정리
5.1. 팬들 입장
5.2. 반대 입장
5.3. 팬들 입장
5.4. 반대 입장
5.5. 팬들 입장
5.6. 반대 입장
5.7. 팬들 최종 입장
5.8. 반대 입장
5.9. 팬들 입장


1. 개요[편집]


2000년 당시 은지원과 강성훈이 듀엣으로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 젝스키스 멤버들[편집]


Q. 은지원과의 듀엣설도 있었는데…

A. 네. 얘기가 있었어요. 사실, 여섯 명중 한명이었던 제가 오랜만에 나와서 혼자 무대에 서는 게 겁나죠. 솔로로 부족할 것 같았고 또 지원이 형도 저와 의견이 같아서 함께 해보자는 얘기를 하더라구요. 서로의 메리트를 잘 배합하면 더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함께 활동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어요. 그러다 지원이 형이랑 술자리를 가지며 허심탄회한 얘기들을 나눴는데. 각자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지원이 형이 그럼, 우리 각자 활동하자… 그래서 각자 솔로 활동을 결심하게 된거예요.

Q. 솔로 활동 결심, 워너뮤직 계약… 등등 곁에서 도와주고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지

A. 어머니요. 사실, 음악 욕심도 나고 무대도 그리웠지만 솔로 활동에 대해 쉽게 결정을 못했어요. 지원이 형이랑 듀엣하는 것도 힘들고 해서 다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어머니가 많은 도움이 되어 주셨어요. 어머니랑 얘기도 많이 했고 이번 활동도 어머니가 많이 알아봐주신 거예요. 어머니의 힘이 컸어요.

2001년 1월호 주니어, 강성훈 기사 #


은지원: 근데 저희가 이제 회사랑 합의를 본 게 성훈이랑 저는 남아라는 얘기를 (사장님이) 하셨어요.

장수원: (나머지 멤버들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저희는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강성훈: 이게 절대 오해 소지가 없어야 되거든요. 저희끼리는 사이가 굉장히 좋았어요.근데 이제 회사 입장에서는 은지원, 강성훈은 남아라 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저희가 화장실에서 얘기를 했어요. '남긴 뭘 남냐, 나머지 멤버들도 있고 그건 말이 안 된다.' 저희 둘이 합의를 보고 우리도 그냥 그 회사를 나와버린 거죠. 나오게 된 거죠.

2016년 6월 1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3. 장수원 어머니[편집]


팬클럽 사이트에 올라온 인터뷰 - 다만 본 인터뷰는 출처가 불명확해 신빙성에 의문이 든다.

Q. 둘이 듀엣 설은?

A. 사장 혼자 신문에 냈다. 부모들은 허락을 안 했는데.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2000년 8월 티비넷 인터뷰

Q. 가수로서 미련을 많이 가지고 있을 텐데…

A. 기획사에서는 더 이상 미련도 없고 의욕도 없어서 해체를 결정했다고 말하고 있어요. 아들이 좋다고 하니까 내버려 뒀는데, 안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미련 많이 가지고 있죠. 어차피 '젝키'야 처음부터 지원이랑 성훈이 이렇게 2인조로 하려던 거니까 걔네들은 다시 '젝키'로 나오겠지만 다른 애들은 기획사에 남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어차피 계약으로 묶인 게 아니니까 자유로운 몸이죠. 의리를 생각해서 남을 수는 있어요.

Q. TV에서 '젝키' 해체 문제를 다룬건 알고 계시죠?

A. 네. 방송이 미뤄졌던 걸로 알고 있어요. 엄마들이 입을 안열어서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거죠. 엄마들이 한마디만 해주면 뭔가 나올 것 같은데, 누가 함부로 방송에 나가 그런 말을 하고 싶겠어요? 그리고 성훈이와 지원이는 기획사에 계속 남아있을 거니까 엄마들끼리 쉬쉬 하기로 한거죠. 기획사에 남아있는 애들한테 피해가 되니까. 그리고 '젝키'의 주요 인물이 그 둘이니까 뭐든 두 멤버가 주축이 되잖아요.

Q. 다른 기획사에서 '젝키'를 스카웃 하려고 하지 않나요?

A. 그런 제의도 있었죠. 다른 기획사에서는 스카웃 조건이 '6명 모두' 였어요. 그런데 성훈이와 지원이가 듀엣으로 나올거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죠.



4. 김기영[편집]


Q. 그럼 기획사에 남게 되는 멤버는 누구누구인가요?

A.우선 재진이는 직원으로 남았어요. 지금도 안무 짜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성훈이랑 지원이는 둘이 작업 중이구요.

Q. 2인조 젝키는 어제 나오나요?

A.내년 초쯤 나올거예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대충 그 정도로 잡고 있어요. 저 솔직한 심정으로는 걔네들 안하고 싶어요. 별로 애정도 없고, 될 거 같지도 않고. 팬들도 부정적이구요.


Q. 게시판에 올라온 여러 가지 의문은....?

A. 조그만 사실에 살을 붙여서 팬들이 과장을 한 것이다. 일단 젝키 팬들은 젝키가 해체를 했으니까 여섯 명을 하나의 그룹으로 좋아했다가 해체가 돼서 기사를 보고하는 것인데... 멤버 중에 두 명은 내년에 나온다.

Q. 언제?

A. 내년 초가 될 것 같다.

Q. 확정된 사실인가?

A. 그렇다.

Q. 어떻게 여섯 명에서 두 명으로 줄인 이유는?

A. 그것은 우리가 줄이려고 해체를 한 게 아니라 해체를 하고 나서 얘들의 향후 계획을 듣고 그것을 수렴해서 계속 가수 활동을 하겠다는 멤버 둘이 남게 돼서 듀엣을 하게 된 것이다. 듀엣을 시키려고 고의로 해체를 시켰다는 소문이 있는데 인터넷이라는 것은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도는 것이다. 심지어는 잭키 팬들이 어떤 일까지 하냐면 인터넷에 우리 D기획 관계자라고 해서 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퍼왔다고 한다. 심지어는 기자가 올린 글처럼 해서 문체를 베껴 써서 비리가 어떻다느니, 음반 판매가 어쩌느니....뭐도 모르고 통신을 하는 사람은 그런 말을 사실로 믿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좋게, 발전적으로 애들이 10대에 가수를 시작해서 지원이 같은 경우는 나이가 제일 많은데 23살이다. 솔직히 남자면 자기 미래를 이미 설계하고도 남았을 애들인데 이때까지 가수활동 빡빡하게 하느라고... 아직 살아갈 날이 얼마나 많냐, 다른 것을 둘째치고 계속 음악을 하겠다는 애들이고 (여섯 멤버 중에 아닌 사람도 있다). 공부를 하겠다고, 연예활동에 지친 멤버들은 계속 공부를 할 것이고 자신들의 미래를 생각하려고....... 솔직히 4년 정도 활동을 했으면 10대 댄스그룹으로 시작했는데 인정을 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국내 가요계에서는 댄스 가수가 4년, 5년씩 활동을 하는 것은 한계라고 본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들이 해체를 한 것이지 ....


5. 정리[편집]


강성훈- 2001년 인터뷰: 강성훈 생각에 솔로로 나오면 부족할 것 같았음. 은지원도 강성훈 의견과 같았음. 이에 은지원이 함께 해보자고 제안을 함. 다만 각자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겨 솔로 활동을 결심함.
은지원, 강성훈- 2016년 라디오스타 발언: 은지원, 강성훈이 원해서 남겠다고 한 DSP의 입장과는 반대로 은지원, 강성훈이 DSP로부터 듀엣 제의를 받고 듀엣을 하기로 합의를 보았으나, 최종적으로 거절
장수원 어머니 - 다른 기획사에서 스카웃 제의가 있었는데, 그 조건이 6명 모두 였음. 하지만 강성훈과 은지원이 듀엣으로 나올거기 때문에 불가능했음. / 출처 불명확한 인터뷰에 따르면 듀엣에 대해 부모들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사장 혼자 신문에 냄.
DSP 입장- 해체를 하고 나서 향후의 계획을 듣고 그것을 수렴해서 계속 가수 활동을 하겠다는 멤버 둘이 남게 돼서 듀엣을 하게 됨.


5.1. 팬들 입장[편집]


이에 대한 팬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은지원은 듀엣을 회사와의 합의라고 표현했는데, 무엇에 대한 합의인지는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해당방송의 문맥상 해체 관련한 합의일 가능성이 높다. 은지원은 훗날 계약서가 없는 게 더 무서웠다면서 DSP를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었다고 회고하였는데(후술), 이 합의에 대한 부분으로 볼 여지가 있다.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DSP의 은지원, 강성훈 듀엣제의는 타회사의 젝스키스 스카웃 제의에 중요한 걸림돌로 작용되기도 했는데, 이 증언은 듀엣논의 시점이 해체 이후라는 회사의 입장과는 반대로 해체 이전으로 볼 여지가 있다. 통상적으로 팀 전체로서의 스카웃 제의는 팀으로써 유지가 되고 있을 때 행해지기 때문이다. 이미 공식적으로 해체 된 팀에게 해체 직후 전원 이적을 제의하는 것도 이상하고, 도의적인 측면이나 상업적으로 볼 때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강성훈, 은지원 듀엣 기사는 해체 당일인 5월 18일에 언론에 보도됐는데,[1] 그 시점 또한 지나치게 빠르다. 듀엣제의는 해체 이전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무엇보다 은지원, 강성훈 듀엣설은 DSP가 이를 언론에 공식화하기 전인 해체 이전 몇 달 전부터 있었다는 것도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한다.[2] 결론적으로 해체 이후에야 은지원과 강성훈의 의견을 수렴해서 듀엣결성 논의를 했다는 DSP의 입장은 신뢰하기 어려우며, 이는 DSP가 성난 팬들을 무마하기 위한 거짓말이 분명하다.
한편, 장수원 어머니는 DSP의 은지원, 강성훈 듀엣 기사가 나간 것에 대해 이호연이 독단적으로 행한 것이라고 하였다. 듀엣에 대해 어머니들은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은지원, 강성훈이 듀엣제의를 받았으나, 처음에는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장수원의 증언에 의하면 해체 이후인 8월 경 장수원은 여전히 DSP에 잔류할 가능성도 있었고, 또한 2인조 젝스키스에 대한 문제 때문에 DSP의 추문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 할 수 없다고 하기도 했다. 실제로 김기영의 인터뷰에 의하면 강성훈과 은지원은 8월 경에도 DSP에 남아 음악 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이재진은 안무를 짜고 있었다.[3] 즉, 2000년 5월경 해체는 했지만, 강성훈, 은지원, 이재진, 김재덕은 회사에 남아있었고, 장수원은 DSP 잔류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나머지 멤버들이 최종적으로 DSP를 떠날 준비를 하고, 은지원과 강성훈도 멤버들과의 의리를 생각해서 최종적으로 듀엣을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 1년 뒤 은지원은 인터뷰(후술)에서 기자에게 회사에 불만이 해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는데, 나 혼자 살겠다고 회사에 남는 것은 배신아니냐는 반문을 하기도 했다.


5.2. 반대 입장[편집]


이에 대한 반대입장은 다음과 같다. 우선 사실관계에 대해서만 보자면, 위 입장은 "강성훈, 은지원 듀엣 기사는 해체 당일인 5월 18일에 언론에 보도됐는데, 그 시점 또한 지나치게 빠르다. 듀엣제의는 해체 이전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재진이 2016년 무한도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해체는 원래 4월달로 예정되어 있었다. 자기가 지방으로 잠적해버린 바람에 기자회견이 한달 미뤄졌다고 밝혔다. 그리고 라디오스타에서의 발언을 보면, 나머지 4명 멤버들은 듀엣제의 시점에 이미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미 해체가 결정된, 혹은 해체가 거의 확실시 된 상황이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듀엣 제의는 해체 이전이 아니라 해체가 이미 거의 결정된 시점 혹은 해체 이후에 있었을 것이다.[4]

그리고 위 입장은 2016년 라디오스타에서의 발언을 근거로 서술하며 DSP가 거짓말을 쳤다고 비판을 하는데, 2001년 강성훈의 인터뷰에서는 분명 은지원과 강성훈이 듀엣을 하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강성훈 생각에 솔로로 하면 부족할 것 같았는데, 은지원이 강성훈 의견과 같아서 함께 해보자고 듀엣 제안을 했다. 다만 각자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겨 솔로 활동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사실 2016년 라디오스타에서 강성훈의 발언은 좀 부정확한 면들이 보인다. 16년이나 지났으니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보인다. 예를 들어 고지용에 대한 발언을 봐도, 2016년 라디오스타에서 강성훈은 '고지용이 먼저 강성훈한테 가수를 하고 싶다고 진지하게 부탁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고지용은 자서전에서나 인터뷰에서나 늘상 원래는 가수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언급해왔고 방송에서도 사업가가 꿈이었다고 얘기했다. 또한 가수를 하게 된 계기를 물었을 때에도 '성훈이의 추천으로' 라고 대답했었다. 즉, 강성훈의 말에서 '고지용이 가수를 하고 싶어했다' 라는 것은 먼저 가수를 하고 싶다고 자기 의견을 낸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강성훈의 제안을 거절하고 난 뒤 설득 끝에 승낙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5.3. 팬들 입장[편집]


이에 대한 팬들 입장은 듀엣 논의가 하루 아침에 나오고 결정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듀엣 논의는 적어도 해체 이후인 8월 경에도 계속 되었으며, 7월 경에도 고지용과 장수원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DSP에 남아있었음이 확인된다.[5] 따라서 장수원이 언급한 듀엣 논의 시점에 나머지 멤버들이 떠날 준비를 했다는 것은 적어도 8월 이후여야 한다.

팬들은 듀엣 제의 시점에 대해 라디오스타를 근거로 삼은 적 없으며, 라디오스타라는 글자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관계 왜곡은 지양하길 바란다. 본 입장이 일관되게 근거로 둔 것은 다음과 같다.
1. 듀엣 기사가 해체 당일인 5월 18에 보도된 것. 이는 듀엣 제의가 이미 해체 이전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정황증거가 된다. 상식적으로 해체한 당일에 듀엣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의문이다.
2. 그리고 이미 팬들 사이에서는 그 전부터 은지원 강성훈 듀엣설이 2000년 초부터 해체설과 더불어서 크게 퍼져있었다. 이것이 두 번째 정황증거이다.
3. 듀엣 기사는 이미 해체 이전인 2000년 4월에도 젝스키스 5집은 은지원, 강성훈만이 참여한다는 내용이 텐텐클럽을 통해 알려졌다.[6]

따라서 듀엣 논의가 해체인 5월 18일 이후에야 있었다는 DSP의 공식 입장은 거짓말인 것이다. 해체 이전인 2000년 4월에도 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와 해체 당일에 듀엣 기사가 떴다는 것은 해체 이전에 듀엣 논의가 있었다는 것과 2000년 초에도 팬들 사이에서 듀엣에 대한 설들이 퍼졌다는 것이 정황증거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리고 강성훈이 듀엣 의지가 있던 것이 본 듀엣제의 시점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수개월동안 은지원과 함께 듀엣 논의를 했는데,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 되려 이상하다. 듀엣제의를 받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긍정적인 의지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본 입장은 이를 부정한 적이 없다.


5.4. 반대 입장[편집]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은 다음과 같다. 일단 사실관계에 대해서 보면, 위 입장은 4명이 계속 [DSP]에 남아있었다고 말하는데, 잡지 기사를 제대로 보면 김재덕과 이재진만 DSP에 남아있다고 했지 강성훈과 은지원이 DSP에 남아있다는 말은 없다. 그리고 7월에 김재덕과 이재진이 DSP에 남아있다는 사실 가지고, 이 둘이 DSP를 떠날 준비를 8월 이후에 했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다. 이전부터 떠날 준비는 얼마든지 하고 있었을 수 있고, 실제로도 정황상 그렇게 보는 것이 옳다. 이재진은 4월달에 지방으로 잠적해버려 소속사의 해체 기자회견을 한달 미루는 사태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가 8월 이후에야 DSP를 떠날 준비를 했을까? 실제로 그 둘이 하고 있던 일은 안무 만들기 정도였다. 그 정도야 프로젝트 개념으로 소속사가 '이거 안무 만들면 얼마 줄게'라고 제안해, 그 둘이 응한 수준일 것이다. 애초에 이재진은 젝키 멤버들의 춤을 가르쳐주는 안무 선생님 같은 역할이었다. 그러다 김재덕과 은지원이 사장을 설득해 멤버로 뽑혔었다.


5.5. 팬들 입장[편집]


이에 대한 팬들 입장은 다음과 같다. 8월에 한 김기영의 인터뷰에 따르면 은지원과 강성훈은 분명히 DSP에서 듀엣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그 이전의 언론에서도 이 둘은 DSP에서 듀엣준비를 하고 있었다. 7월 기사에서 구체적인 언급을 안 했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해체 이후 김재덕은 DSP에서 프로듀서나 작곡가로 남겠다는 기사만 확인될 뿐 안무가로 남았다는 언급은 전무하다.[7] 김재덕이 안무가로 남았다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또한 이재진은 김기영의 인터뷰나 언론에 의하면 분명히 직원으로 남았다. 프로젝트라는 것은 아무런 근거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반대입장은 폭넓은 자료를 찾지 않고 자신이 미리 내려놓은 결론에 맞추어 자의적인 추측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확실한 팩트는 다음과 같다.
은지원, 이재진, 강성훈은 DSP에 적어도 8월경까지, 김재덕은 7월경까지 남았으며 듀엣논의는 수개월 동안 있었다. 결국 라디오스타에서 장수원의 언급이 언급한 나머지 멤버들이 떠날 준비를 한 시점은 은지원, 강성훈 듀엣 논의 시점으로 적어도 이재진과 김재덕이 직원으로 남아있던 7, 8월 이후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5.6. 반대 입장[편집]


폭넓은 자료를 찾지 않고 자신이 미리 내려놓은 결론에 맞추어 자의적인 추측에 의존하는 경향은 팬들 입장에 있다고 보인다. 당장 강성훈의 2001년 인터뷰 자료가 중요한데도, 이를 빼놓고 다른 자료에 추측을 더해 결론을 내렸다.

위 반대입장에서 링크를 걸어 근거로 들은 기사의 문구가 다음의 것이다. 이 문구만 봐서는 강성훈과 은지원이 회사에 남아있다고 볼 수가 없어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좀 더 정확한 근거를 들어주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쓴 것이다.

"소속사와 면담을 갖고 ‘발전적인 해체’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룹에서 안무를 맡아온 이재진(21)과 김재덕(21)은 계속 DSP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남아 후배들을 양성할 예정이며, 올 초 미국 비자를 받은 고지용은 유학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장수원(20)은 좀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진로를 결정하기로 했다.또한 강성훈(20)과 리더 은지원(22)은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가수와 프로듀서 활동을 병행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머지 안무가라든지 프로젝트 등의 말을 한 것은, 전술했듯이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당연히 반론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옳다고 끝까지 주장할 생각은 없다.

지금 위에서 서술한 것은 "7월에 김재덕과 이재진이 DSP에 남아있다는 사실 가지고, 이 둘이 DSP를 떠날 준비를 8월 이후에 했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다."라는 점이다. 이전부터 떠날 준비는 얼마든지 하고 있었을 수 있고, 실제로도 정황상 그렇게 보는 것이 근거없는 추측이 아니다. 이재진은 4월달에 지방으로 잠적해버려 소속사의 해체 기자회견을 한달 미루는 사태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그가 8월 이후에야 DSP를 떠날 준비를 했을까?

사실 멤버들이 8월달에 떠날 준비를 했는지 안했는지 여부는 부차적 문제고, 지금 논의의 핵심은 다음의 점이라고 보인다. 일부 팬들은 DSP의 듀엣 제의가 해체 결정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며, 이런 듀엣 제의 같은 DSP의 이간질 때문에 젝키가 해체된 것이지 멤버들 잘못은 없다는 논리로 이끌어간다. 그러나 2016년 라디오스타 발언을 보면 DSP가 듀엣제의를 한 시점에 나머지 4명 멤버들이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하며, 그 시점은 해체가 거의 결정되거나 혹은 결정된 이후 시점이다.

일부 팬들이 또 이걸 가지고 강제해체 당했다는 주장으로 이끌어가길래, 반대입장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끝으로 팬들 입장은 위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은지원은 듀엣을 회사와의 합의라고 표현했는데, 무엇에 대한 합의인지는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해당방송의 문맥상 해체 관련한 합의일 가능성이 높다. 은지원은 훗날 계약서가 없는 게 더 무서웠다면서 DSP를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었다고 회고하였는데(후술), 이 합의에 대한 부분으로 볼 여지가 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건지 이해가 안간다. DSP가 못 나가게 막았으며, 해체를 하고 싶으면 강성훈과 은지원은 반드시 남으라고 협박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것인가. 그러나 결과론으로 보면 강성훈과 은지원은 둘다 DSP에서 잘만 나왔으며, 솔로 활동도 jtL이 이수만의 방해를 받아 크게 문제가 된 것 같은 사건 없이 잘 하고 다녔다. 일부 팬들은 DSP랑 이호연이 막아대서 솔로 활동 성적이 안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전혀 근거가 없다. 자세한 내용은 젝스키스/DSP 관련 루머 참조 바란다.


5.7. 팬들 최종 입장[편집]


김기영이 8월에 은지원과 강성훈이 DSP에 남았다는 것은 이미 예전에 이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 반대입장은 본인이 찾아볼 노력도 이미 올려놓은 자료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이미 예전에 올려져 있는 자료이기 때문에 재차 언급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 근거 요구나 섣부른 단정은 자신이 찾아볼 수 있는 선에서 찾아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논의에 앞서 자료수집과 확인은 기본이다. 2001년 강성훈의 듀엣 발언과 라디오스타의 은지원, 강성훈의 발언도 상충하는 부분은 전혀없다.


본 논의의 발제자로서 새로운 주요 논점 및 본인 입장을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1. DSP의 듀엣제의 시점(해체 이후 혹은 해체 이전) 발언 진위여부
본 입장- 이미 2000년 초에 듀엣설이 해체설과 함께 퍼졌고, 2000년 4월에 라디오에서 기자에 의해 이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났고 2000년 5월 해체 당일에 듀엣 결정 기사가 보도 됐으므로 적어도 듀엣 결정은 해체 이전이어야 한다. 따라서 듀엣 결성이 해체 직후에 있었다는 DSP의 공식입장은 완전히 거짓이라는 것이다.

2. 듀엣제의를 어느 측이 먼저 했는지에 대한 여부
본 입장- DSP는 2000년 해체 이후 강성훈과 은지원의 의견을 수렴해서 듀엣 결성을 해서 2001년 초에 컴백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1년 1월 강성훈은 인터뷰에서 은지원의 제의로 듀엣 논의를 했으나 음악적 견해 갈등으로 불발됐다고 한다. 그러나 라디오스타에서 은지원과 강성훈은 DSP에서 먼저 회사에 남으라고 제의하였다. 이를 종합해보면 DSP가 은지원과 강성훈은 회사에 남으라고 제의한 후 은지원이 강성훈에게 듀엣할 것을 제의 그리고 DSP는 이 둘의 의견을 수렴하여 2001년 초를 목표로 소위 2인조 젝스키스를 준비했으나, 최종적으로 불발.

3. 은지원, 강성훈 이외의 멤버들이 DSP를 떠날 준비를 했다는 시점
본 입장- 라디오스타에서 장수원은 은지원, 강성훈이 DSP에 남기로 합의를 한 시점에 나머지 멤버들은 떠날 준비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작 당시의 기사들을 보면 김재덕은 7월경까지 DSP에 프로듀서를 할 계획으로 잔류하기로 한 것이 확인되나, 이 무렵 퇴사하고 부산으로 잠적한 것으로 보인다.[8] 그리고 장수원은 다른 멤버들과 달리 해체 직후의 다른 보도들에 의하면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스포츠서울 11월 21일자에서 보도한 젝스키스 근황에서 이재진이 DSP에 남은 것과 달리 김재덕과 장수원은 11월 경에는 학교를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보도에 의하면 장수원은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평범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보도에 의하면 장수원은 10월 경 이미 학교를 다니면서 작곡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 인터뷰에는 DSP에 대한 언급이 전혀없다.[9] 다른 일반인 후기를 보면 김재덕과 장수원은 9월 경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10]

우선 해체 당일인 5월 18일 공식입장은 은지원, 강성훈 그리고 이재진과 김재덕을 포함한 4명이 남게 된 것이다.[11] 그리고 해체 기자회견 당시 젝스키스는 4명은 DSP에 남을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이때 은지원은 듀엣 가능성이 있다고까지만 언급했다. [12] 2000년 초에 DSP가 은지원과 강성훈에게만 잔류를 제의한 것은 사실로 보이며, 이후 어떠한 과정을 통해 5월 18일 이전에 이재진과 김재덕도 잔류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위를 토대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은지원- 10월 13일 G프로덕션을 설립한 것[13]으로 보아 적어도 9월 말경에는 DSP를 퇴사한 것으로 보인다.

김재덕- 이미 해체 이전인 2000년 4월무렵은 물론 해체 당일인 5월 18일의 보도와 기자회견, 7월 무렵까지 DSP에 프로듀서를 할 계획으로 잔류했었으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부산에 잠적한 것이 확인되므로 7월 중순 이전에 DSP를 퇴사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9월 경 김재덕은 장수원과 함께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이후 2000년 말에 김재덕은 장우혁과 만나 맥주를 마시면서 사업에 대한 조언을 얻은 것이 확인된다.

이재진- DSP에 11월 말경까지 직원으로 남았음이 확인된다. 이재진이 4월에 잠적을 했다고 해서 떠날 준비를 했다는 것이야 말로 논리적 비약이다. 그렇게 볼 근거는 전무하다. 오로지 추측일 뿐이다.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입장은 변할 수 있다. 결국 가장 오랜 시간 동안 DSP에 잔류한 멤버는 이재진이다.

강성훈- 11월 7일에 워너뮤직과의 계약성사가 보도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DSP를 퇴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라디오스타의 발언으로 보아 은지원과 합의하여 동반퇴사한 것으로 보인다.

장수원- 9월경에 김재덕과 함께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10월경에는 작곡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를 종합해보면 김재덕은 7월경, 은지원과 강성훈은 9, 10월경, 이재진은 11월에 DSP를 퇴사하였다.

해체 기자회견에 이미 DSP에 남을 것을 밝힌 김재덕과 이재진이 반대입장처럼 해체 당시부터 DSP를 떠날 준비를 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특히 이재진은 DSP에서의 활동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당시 은지원, 김재덕, 이재진, 강성훈, 장수원 모두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입장이 초지일관적이지 않고, 유동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자가 DSP를 떠난 시점도 다르다. 라디오스타에서의 장수원 발언은 사실 굉장히 모호하고 정작 본인은 DSP에 잔류하지 않았고, 오히려 잔류할 여지를 남겨둔 멤버로 어폐까 있는 것이 사실이며, 강성훈의 거절 과정도 모호하다. 이는 당시의 복잡했던 상황을 함축적으로 현재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위의 상황들을 보았을 때 장수원이 말한 떠날 준비 시점은 본인이 DSP에 잔류여지가 있던 8월 이후로 보는 것이 그나마 합리적이다.


5.8. 반대 입장[편집]


위 입장은 "본인이 찾아볼 노력도 하지 않고 이미 올려놓은 자료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며, 논의에 앞서 자료수집과 확인은 기본"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그러나 반대 입장이 그 말 그대로 팬들 입장에게 하고 싶은 상황이다. 팬들 입장은 위 잡지 기사가 2000년 8월에 나왔음을 근거로 8월에 은지원과 강성훈이 DSP에 남았다고 말하고 있다. 8월달 잡지 기사라는 이유만으로 7~8월달 상황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해당 잡지 기사의 제목은 "6Kies 소문 실체 대특집 완결판! 은퇴전 '극비10일"이다. 은퇴날짜는 5월달이다. 내용을 봐도 7~8월달의 상황은 아니다. 왜 8월달에 돼서야 이 인터뷰를 실었나 찾아봤더니, 8월달에 창간된 잡지였다.# 이전 달에 실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반대 입장이 위 2000년 8월 인터뷰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위 입장은 "듀엣논의는 우선 그 둘이 남는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순서상 잔류제의와 듀엣논의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고 있는데, 논리적인 근거가 빈약하다. 2001년 인터뷰만 보면 은지원이 강성훈에게 듀엣제의를 했다. 듀엣논의 후에 잔류제의가 있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팬들 입장은 반대 입장을 추측일 뿐이라고 몰아세우는데, 물론 추측이 맞다. 당사자가 아니고 자료가 부족한 이상 추측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팬들 입장은 자기들이 추측한 것은 팩트라고 확정하니 문제를 삼은 것이다. 99년부터 다들 소속사와 불화가 있었는데, 2000년 8월 이후에 DSP를 떠날 준비를 했다는 것이 팩트라고 어떻게 확정할 수 있겠는가. 떠날 준비는 몇달 전부터 하고 있었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전술했다시피 이런 논의는 부차적인 문제다. 다시 말하자면, 일부 팬들은 DSP의 듀엣 제의가 해체 결정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며, 이런 듀엣 제의 같은 DSP의 이간질 때문에 젝키가 해체된 것이지 멤버들 잘못은 없다는 논리로 이끌어간다. 그러나 2016년 라디오스타 발언을 보면 DSP가 듀엣제의를 한 시점에 나머지 4명 멤버들이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하며, 그 시점은 해체가 거의 결정되거나 혹은 결정된 이후 시점이다. 일부 팬들이 또 이걸 가지고 강제해체 당했다는 주장으로 이끌어가길래, 반대입장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논점에 대해서 쓰자면
1. DSP의 듀엣제의 시점(해체 이후 혹은 해체 이전) 발언 진위여부: DSP가 듀엣 제의를 한 시점은 소속사 내부에서 해체가 결정된 이후, 혹은 이후가 아니더라도 이미 해체가 거의 결정난 것과 다름없는 시점이다.

2. 은지원, 강성훈 이외의 멤버들이 DSP를 떠날 준비를 했다는 시점: DSP를 떠날 준비를 한 시점은 7~8월보다 몇달 전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위 팬들 입장은 7~8월이라고 확실시하며 주장하는데, 99년부터 멤버들이 DSP와 불화가 있었던 점 등의 정황을 봤을 때 그렇게 확실시 할 수는 없다. 이 부분은 부차적인 문제이니 그쪽 입장을 설득할 생각은 별로 없다.


5.9. 팬들 입장[편집]


은지원과 강성훈이 잔류했다는 기사는 찾아보면 더 많다. 반대 입장은 99년부터 다들 소속사와 불화가 있었는데, 2000년 8월 이후에 DSP를 떠날 준비를 했다는 것이 팩트라고 어떻게 확정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으나, 본 입장은 이를 팩트라고 확정한 적 없다. 다만, 여러 메체에서 보도된 바 있는 멤버들의 동향으로 보아 7, 8월 이후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을 뿐이다. 사실관계 규명 사안에서 심리상태까지 추측하여 해당 사건의 성격을 단정짓는 행위는 추측의 범주를 벗어난 상상의 영역이다. 알 수 없는 부분 특히 당사자가 아닌 이상에야 인간의 심리상태 같은 경우 함부로 추측하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섣부르고 위험하다. 보여지는 자료에 한해서 논하는 게 합리적이기에 이를 권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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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cafe.daum.net/FinKL/12u/4150?q=%B0%AD%BC%BA%C8%C6+%C0%BA%C1%F6%BF%F8+%B5%E0%BF%A7+%C1%A7%BD%BA%C5%B0%BD%BA+%C7%D8%C3%BC [2] 해체설에는 듀엣설도 포함돼 있었다.[3] 김재덕은 7월경까지 DSP에 남아 있던 것이 확인 된다.[4] 이에 대한 팬들 입장은 "우리도 듀엣제의는 해체 논의 시점으로 보고 있다. 해당 파트의 글 이해를 잘못한 듯하다. 반대입장은 DSP가 듀엣제의를 해체 이후에야 했다는 거짓말을 여러 자료를 들어 반박한 것이다."라고 여기 썼는데, 팬들 입장은 분명 "듀엣 제의가 해체 이전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서술했다. 그러나 반대 입장은 해체 이전이 아니라 해체가 이미 거의 결정된 시점 혹은 해체 이후에 듀엣 논의가 있었다는 말을 한 것이다.[5] http://cafe.daum.net/LoveHoonEun/DyM/946?q=%C1%A7%BD%BA%C5%B0%BD%BA+%C7%D8%C3%BC+%B1%E8%C0%E7%B4%F6+%C7%C1%B7%CE%B5%E0%BC%AD+%C8%C4%B9%E8+%C0%CC%C0%E7%C1%F8+%C7%D0%BE%F7[6] http://cafe.daum.net/happysuwon/7mR/50?q=%C1%A7%BD%BA%C5%B0%BD%BA+%C7%D8%C3%BC+%C0%B1%B0%E6%C3%B6+%B1%E2%C0%DA[7] http://m.cafe.daum.net/aplusdeoks/4cO/283?q=%EC%A0%9D%EC%8A%A4%ED%82%A4%EC%8A%A4%20%ED%95%B4%EC%B2%B4%20%EA%B9%80%EC%9E%AC%EB%8D%95%20%ED%94%84%EB%A1%9C%EB%93%80%EC%84%9C%20%EC%9D%B4%EC%9E%AC%EC%A7%84%20%EC%9E%91%EA%B3%A1[8] http://cafe.daum.net/LoveHoonEun/DyC/708?q=%C1%A7%BD%BA%C5%B0%BD%BA+%C0%E5%BC%F6%BF%F8+%C7%D0%B1%B3[9] http://cafe.daum.net/LoveHoonEun/DyC/1752?q=%C1%A7%BD%BA%C5%B0%BD%BA+%C0%E5%BC%F6%BF%F8+%C7%D0%B1%B3[10] http://cafe.daum.net/youngbok311/FR4/174?q=%C1%A7%BD%BA%C5%B0%BD%BA+%B1%E8%C0%E7%B4%F6+%C7%D0%B1%B3[11] http://cafe.daum.net/FinKL/12u/4150?q=%C1%A7%BD%BA%C5%B0%BD%BA+%C7%D8%C3%BC+%C0%BA%C1%F6%BF%F8+%B0%AD%BC%BA%C8%C6+%B5%E0%BF%A7+%C7%C1%B7%CE%B5%E0%BC%AD[12] http://cafe.daum.net/ssypoto/85kU/91?q=%C0%BA%C1%F6%BF%F8+%BC%D6%B7%CE+%C0%DB%C7%B0%C1%FD+G[13] http://cafe.daum.net/kongjin/3pD/1368?q=%B0%AD%BC%BA%C8%C6+%BC%D6%B7%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