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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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의 주요 수상 및 선정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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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골든디스크 시상식_로고.png
음반 대상
조용필
<허공>
(1986년)

이문세
<사랑이 지나가면>
(1987년)


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
(1988년)














이문세
李文世 | Lee Moon Sae


파일:80049764_org.jpg

출생
1959년[1] 1월 17일 (65세)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동[2]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전의 이씨 (全義 李氏)[3]
신체
178cm, 78kg, 275mm, B형
배우자
이지현(1966년생)
자녀
아들 이종원
학력
서울청덕국민학교 (졸업)
경신중학교 (졸업)
광성고등학교 (졸업)
명지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 / 학사)
명지대학교 대학원 (정보처리학 / 석사 수료)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종교
개신교(기성)[4]
소속사
파일:9108D83C-0BCD-45C3-BA37-D52B7DA365D5.png
데뷔
1978년 CBS 세븐틴 MC
1983년 1집 <나는 행복한 사람>[5]
활동
가수, 라디오 DJ, 방송 MC
별명
밤의 문교부 장관
관련 링크
유튜브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공식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팬카페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마굿간)

1. 개요
2. 평가 및 위상
4. 대표곡
6. 방송
6.1. TV
6.2. 라디오
7. 광고
8. 수상내역
8.1. 가요 프로그램 1위
9. 여담
9.1. 페르소나 이영훈
9.2. 이문세와 라디오
9.3. MC
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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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MC가수.

명지대 공대 재학 시절 대학밴드 동아리 화이트 호스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음악을 시작한 것이 생업이 되었다고 한다.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 밝힌 바에 의하면, 전유성에 의해 픽업돼서 무대를 최초로 설 수 있었다. 당시 라이벌이었던 사람이 역시 전유성에 의해 뽑힌 주병진이었다. 결국 두사람은 70년대 후반의 경쟁자에서 절친이 되어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했다. 주병진이 90년대에 사업을 하겠다면서 연예계 잠정 은퇴를 한 후에는 멀어진 듯 하다. 하지만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는 이문세, 주병진, 이성미, 신형원이 사적인 모임을 10년 넘게 했었을만큼 매우 절친했다고 한다. 일밤에도 이문세-주병진 특집방송이 따로 있었었다. 모임 자체가 주병진과 이문세가 주도해서 생겼던 것.

말솜씨도 좋고 유머 감각도 좋아 전성기 때엔 토크쇼 진행이나 예능 프로그램 (MBC의 영11 MC) 출연도 많았다. 애초에 공식적인 연예계 데뷔부터 가수가 아닌 라디오와 TV 프로그램 진행자로 출발한 만큼 MC이자 방송인으로서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MBC 표준FM 별이 빛나는 밤에의 DJ(별밤지기)로 1985년 4월 8일부터 1996년 12월 2일까지 12년 동안 이 프로그램의 DJ로 있었고, "밤의 문교부장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인데 당시에는 문화와 교육을 함께 묶어 문교부였다. 청와대 부의 경우 정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개편이 지속되어 왔다. 실제로 1995년, 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

이문세는 이후 '2시의 데이트 이문세입니다'를 거쳐 '오늘아침 이문세입니다'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 DJ로 20년 넘게 활약했고, MBC 라디오 골든 마우스를 수상했다.


2. 평가 및 위상[편집]


데뷔 이래 현재까지도 꾸준히 대한민국의 대중 음악을 대표하는 가수 중 한 명으로 평가되며, 이영훈과 함께 협업하며 이전까지 대한민국의 가요에 존재했던 뽕끼를 최대한 배제하며 수많은 명곡을 만들어 낸, 한국식 발라드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최초의 가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과거의 이문세는 좋게 말하면 '말랑말랑하게 노래하는 가수', 혹평을 받을 때는 '작곡가 잘 만나서 좋은 곡 받고 덜 부담스러운 외모로 친근감이나 어필하는 가수'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하지만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아무리 가수를 갈궈도 최종 출력물인 앨범에서 그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문세는 수많은 명곡을 자기 스타일로 잘 해석하는 가수이며, 자신의 강점인 중저음역대를 강조해서 음색이 쉽게 틀어지는 단점을 잘 커버하면서 김광석과 같이 표현력의 교과서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또한 '안개꽃 추억으로'에서 3옥타브 레(D5)를 진성으로 낼 정도로 음역대 역시 꽤 넓고 호흡과 발성도 좋아 가수로서의 기본기는 꾸준히 호평받는다.

이문세의 성공에는 작곡가 이영훈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영훈의 곡도 이문세의 보컬로 빛을 보게 되었다. 특히 내공이 쌓이면서 공연을 수행하는 능력이 탁월해졌고 뛰어난 음악적 직관력까지 갖춘 전형적인 대기만성형의 고수가 되었다. 그는 대중에게 직접 표현을 하는 가수로서 그 전달력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 음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상을 지녔으며 현재 정태춘, 조용필 등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구세대 음악가처럼 아직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이라 할만한 가수이다.

80년대 뽕끼 넘치는 트로트 창법에서 탈피한 세련된 발라드 창법을 내세우며 당시 10대들에게 큰 인기를 구사했으며,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 이후 가요계 격동기에도 구시대적인 음악에 집착하지 않고 K-POP의 트렌드를 열심히 따라가고 창법마저 세련되게 갈고닦아 7080의 뽕끼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오늘날 젊은 가수들과 다르지 않은 세련된 보컬을 구사하며 꾸준히 신곡들을 발표하는 중이다.

나는 가수다에서 김연우가 '나와 같다면'을 불러서 높은 인기와 많은 관심을 받을 때, 2006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이문세가 불렀던 '나와 같다면'도 덩달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3. 음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문세/음반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그의 음악은 이영훈과 함께한 3집부터 잠재력을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한 음반에서 히트곡이 하나만 나오는 게 대부분이었던 당시에 음반 수록곡의 대다수가 히트곡이 되는 전례를 남겼으며 음반의 완성도뿐 아니라 한국 대중가요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이문세-이영훈 라인은 가요 전체 역사를 놓고 봐도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작곡가 듀오로 손꼽히며 대중가요 100대 명반 중 4집이 16위, 5집이 50위에 랭크되었다.


4. 대표곡[편집]


히트곡이 무수히 많은 가수인 만큼 대표하는 곡들도 많다. 이문세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도 제목은 잘 몰라도 한 번쯤 들어봤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 위상만큼이나 리메이크도 많이 되었다. 많은 히트곡들이 있지만, 그 중 비교적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노래들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5. 콘서트[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문세/콘서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방송[편집]


단순 일회성 출연이 아닌 진행자 혹은 출연자 중 메인인 경우만 서술한다.


6.1. TV[편집]


연도
출연작
1981년
KBS TV <달려라 중계차> MC
1983년
MBC TV <영11> MC
1984년
MBC TV <제5회 MBC 강변가요제> MC
1986년
MBC TV <제7회 MBC 강변가요제> MC
1991년
MBC TV <제9회 MBC 창작동요제> MC
1992년
MBC TV <제13회 MBC 강변가요제> MC
1993년
MBC TV <제11회 MBC 창작동요제> MC
MBC TV <제14회 MBC 강변가요제> MC
1993년~1994년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 MC
1994년
MBC TV <제12회 MBC 창작동요제> MC
1995년
MBC TV <제13회 MBC 창작동요제> MC
1995년~1996년
KBS2 TV <이문세 쇼> MC
1996년
HBS 스페셜 <이문세의 오래된 꿈 읽기> MC
1997년
MBC TV <제15회 MBC 창작동요제> MC
SBS TV <이문세 라이브> MC
1998년
MBC TV <쇼! 토요특급> MC
2003년
SBS TV <이문세의 사이언스 파크> MC
2005년
MBC TV <이문세의 오아시스> MC
2010년
SBS TV <사랑해요 코리아> MC
2012년
TV조선 뮤직 다큐 <이문세와 떠나요! 비밥바룰라>


6.2. 라디오[편집]


연도
라디오
1978년
CBS 세븐틴
1984년
MBC AM 가요데이트
1985년~1996년
MBC 표준FM[6] 별이 빛나는 밤에
1997년~2000년
MBC FM 2시의 데이트
2004년~2011년
MBC FM4U 오늘 아침 이문세입니다


7. 광고[편집]


연도
광고주
제품
1990년
서울우유
요델리
2002년
빙그레
투게더 클래스
2004년
LG전자
디지털LG
2021년~2022년
밀레
아웃도어의류


8. 수상내역[편집]


연도
수상내역
1985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
1986년
골든디스크상
1987년
골든디스크 대상
MBC 라디오부문 연기대상 최우수상
1988년
골든디스크상
MBC 10대 가수상
1989년
MBC 10대 가수상
1993년
골든디스크상
MBC 연기대상 MC상
1994년
보건사회부 장관상
1995년
교육부 장관상
1996년
MBC 라디오 골든마우스상
KBS 10대 가수상
KBS 우수프로그램 평가상 및 보도상 진행상
2001년
SBS 가요대상 올해의 최고 공연상
2003년
제2회 스타선행대상
2003 고객만족경영대상
정치, 경제, 연예, 체육, 문화계에서 뽑은 굿피플 101인
2005년
제12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라디오진행자상
SBS 가요대전 라이브공연상
2007년
MBC 골든마우스상
2008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최우수상
2013년
제50회 저축의 날 금융위원장 표창
2015년
제6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


8.1. 가요 프로그램 1위[편집]


총 10회 1위
날짜
방송명
곡명
비고
1986년
6월 18일
KBS 가요톱텐
난 아직 모르잖아요
(5회)
첫 1위
6월 25일

7월 2일

7월 9일

7월 16일
5주 연속
(골든컵)

1996년
11월 13일
KBS 가요톱텐
조조할인
(5회)

11월 20일
2주 연속
11월 23일
KMTV 쇼! 뮤직탱크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1월 27일
KBS 가요톱텐
3주 연속

9. 여담[편집]


  • 전성기 시절인 4~5집 시절에는 TV에 출연하지 않고 음반과 라디오 위주로 활동했다. 간혹 연말에 MBC 10대 가수 가요제 정도 나오는 것 외에는 TV에서 보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당시 별이 빛나는 밤에 일요일 코너인 공개방송 방청권을 얻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따라서 수록곡 전체가 히트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어마어마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가요톱10 1위는 없다.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골든컵을 탄 뒤 다음 1위는 10년이나 지난 뒤 조조할인에 와서야 그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

  • 하관으로 인해 이라고 놀림당하는 일도 잦았다. 방송에서도 이 말상이 캐릭터였다. 비슷한 외모의 유열, 이수만과 더불어 馬삼 트리오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마삼 트리오는 음악적 요소가 기본적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셋 다 당대 음악계를 풍미할 정도는 아니었어도 각자의 영역에서 인정받았고, 그것이 감성을 자극하는 발라드로 듣는 이의 감성을 촉촉하게 적시는 공통점이 있었다. 후대에는 셋 다 하관이 긴 걸로 기억에 남았다. 셋이 같이 콘서트를 하기도 했고 심지어 CF도 같이 찍기까지 했다.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예전엔 말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연예인이었고 경마장 드립 등 다양한 유머[7]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건 본인도 인정했다. 공식 홈페이지 이름은 이문세의 마굿간이다. 1994년 출간한 이문세의 자서전 제목도 "마굿간 이야기"이다. 예전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 당시 게스트였던 솔리드는 이문세가 제안한 야자타임에서 "이 말같이 생긴 놈" 드립을 쳤고, 이문세 역시 호기롭게 웃으며 받아주기도 했다. 이 공개방송에 단골로 자주 나온 이경규도 여러번 "이문세씨는 집이 마굿간이잖아요!"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밖에도 게스트로 나온 다른 연예인들도 자주 들먹이던 개그였다. 이를테면 신해철도 90년 초반에 여기서 공개방송에 여고생 흉내 인터뷰를 하면서 "문세 오빠 얼굴 길이 좀 재보고 싶어요! 얼마나 긴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외에 말에 대해서 다룬 다큐멘터리 3일 0.001초 승부의 세계, 과천 경마장(2007년 6월 28일 방송) 편의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 1994년 LG 트윈스 우승 주역인 우완 선발 투수 김태원과 닮은 꼴이라 일밤 진행 당시 김태원이 LG 트윈스 경기복 입은 채로 초대된 적도 있다. 그리고 이문세는 LG 트윈스 명예 선수이기도 하다. #

  • 팬클럽 이름은 '마굿간'이다. 1998년 천리안, 하이텔에서 각각 시작된 이문세 팬클럽이 교류를 갖기 시작하고 이문세의 활동에 활발히 참여한 것이 시초이며 이후 새로 생긴 다음 팬카페, 개인 팬페이지들, 연예전문사이트의 홈페이지 등 다양한 커뮤니티의 팬들이 통합하여 공식 팬사이트를 만들고 ‘마굿간’으로 통칭하게 된다. 현재도 공연, 방송 등의 공식 활동뿐 아니라 이문세와 함께 하는 운동회, 소풍 같은 비공식적 활동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 정규 8집에 수록된 '종원에게'라는 노래의 '종원'은 아들의 이름이다. 즉, 많은 성장통을 겪어가면서 어른이 될 아들에게 미리 들려주는 응원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 1987년부터 근육병 환자들을 위한 자선 공연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 10집 《花舞(화무)》에 수록된 난 괜찮아는 표절로 판명됐다. 작사.작곡을 한 게 바로 김현철. 1987년에 바비 콜드웰이 부른 China라는 곡의 표절이라는 게 1997년에 판명나서 KBS프로 방송금지 조치를 받았다.

  • 2004년, 쟁반노래방에 게스트로 출연할 당시, 세트장에 네임펜으로 가사를 쓴 낙서를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정작 1번은 유재석이 걸렸고, 예상대로 적힌 가사만 부르고 바로 쟁반을 맞았다. 덤으로 이 낙서는 세트 바꾸기 직전인 138회까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제작진들은 끝내 이 낙서를 지우지 못했다.

  • 2007년, 2013년에 두 차례 산악회 ‘설레발 마운틴’을 통해 네팔에 희망학교를 설립하는 자원봉사를 진행하였고 2019년 팬클럽 '마굿간'과 함께 이전에 설립했던 두 곳의 희망학교를 보수하는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 2012년, 2015년 ‘숲 속 음악회’ 공연을 통해 얻은 수익 전액을 각각 외국인 근로자 무료 진료소와 독거노인을 위해 기부했다.

  • ‘이문세X프렌즈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일러스트레이터, 캘리그래퍼와 크리스마스카드를 제작해 판매 수익 전부를 위안부 할머니들의 후원금으로 기부했다.링크

  • 슈퍼스타K2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참가자들이 자신의 곡을 미션으로 불렀는데 이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다시 인지도가 높아졌다. 예전에는 말상이라고 놀림 받는 등 비주얼이 뛰어난 가수는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미중년으로 변신했다. 슈퍼스타K에서는 참가자들이 엄청 몸 좋고 키 크고 잘생긴 분이 들어오셨는데 이문세 선생님이었다라는 말을 할 정도. 그도 그럴게 이문세는 배드민턴 매니아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운동을 통한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고 한다. 심지어 배드민턴 잡지에 표지모델로 나온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이소라의 살을 빼주기 위해 같이 배드민턴을 치기도 했다고. 이소라 특유의 느릿느릿한 행동과 목소리를 흉내내며 썰을 풀었었다.

  • 동안으로 유명하다. 외모만 보면 젊어 보이지만 사실 이문세는 1959년생으로, 배우 박상원, 가수 김흥국과는 30년 지기 동갑내기 절친이고, 가수 설운도는 1958년 8월생이라 정확히 고작 6개월 차이나는 형이다.[8] 환갑을 훌쩍 넘긴 시점에서도 관리도 잘 하였고 패션 센스도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인지라 도저히 그 나이대로 보기 힘들 정도의 동안을 유지 중에 있다.

  • 제일기획에서 유출되어 세간의 화제가 된 연예인 X파일에서 '친구사이인 박상원은 가식적이고 이문세는 성격이 까칠하다.'라는 말이 나와서 논란이 된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문세 본인이 이후 인터뷰에서 그 말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 한때 나는 가수다 2에 PD 김영희가 섭외하려고 했다는 기사가 떴었다. 딱히 한다 안 한다의 의사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7월까지는 남아공에서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때문에 참가가 힘들 거라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TV조선에 편성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문세와 떠나요! 비밥바룰라 참조.

  • 2013년 히든싱어(E12, 2013년 5월 18일 방송분)에 출연하여 멋진 무대를 펼쳤다. 특히 마지막 미션곡이었던 옛사랑에서는 연예인 판정단 전부가 기립까지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방송에서 박경림이 말하기를 이문세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아서 두문불출한 것이라 한다.


  • 2014년 7월에 갑상선암 재수술을 받았다. 2015년 3월 30일 《힐링캠프》에 출연해 갑상선암 투병에 대해 회고했다. 여기서 암이 성대 옆으로 전이되어 일반인이라면 성대 쪽 암 조직까지 제거했을 것이나, 본인은 가수이기 때문에 이를 남겨두었다고 고백했다.


  • 2015년에 냉장고를 부탁해박정현과 같이 출연했다. 본인이 이르길 목양인 체질이라고 한다. 체질은 사상의학이 아닌 8체질의학에서 분류한 체질이다.

  • 냉장고를 부탁해 당시 홍석천정창욱의 대결에서 홍석천을 선택하였는데 그 이유를 “완벽하게 갖춘 자의 도도함보다는 정상을 위해 0.1%의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서 도전하는 정신을 높이 샀다.”고 밝혀 홍석천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홍석천도 “정말 힘들고 외로웠을 때 선배님의 라디오를 들으면서 굉장히 위로를 받았었고 존경하는 선배님이 건강하게 저희와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해서 울었다.”고 눈물의 의미를 밝혔다. 요리사 이연복도 함께 울었다.


  • 2015년 응답하라 1988의 시청지도서 나레이션을 맡았다. 응답하라 1994 7화 및 8화에 나온 이문세의 목소리는 히든싱어 이문세 편에 출연한 안웅기가 대역을 했다.


  • 한 방송에서 일요일 일요일 밤에 MC로 잘 나가던 시절, 예능을 그만두고 뮤지션으로서 자존심을 지켜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이상은의 말 한 마디 때문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 2016년 11월에 SBS판타스틱 듀오에 출연해, 원일중 코스모스 김윤희와 듀엣으로 파이널 곡 '그녀의 웃음소리뿐'을 불렀다. 역대 사상 최고 점수인 300점 만점에 295점을 획득해 전인권을 꺾고 8대 판듀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 이후 11월 20일 판타스틱 듀오 시즌1 마지막 무대에서 원일중 코스모스 김윤희와 듀엣으로 파이널 곡 '휘파람'을 불렀고, 다시 한번 역대 최고 점수인 300점 만점에 296점의 신기록을 세우며 마지막 판듀 자리에 올랐다.


  • 2017년 4월 2일, 전 시즌 판듀 최종 우승자 자격으로 판타스틱 듀오 시즌2의 포문을 열었다. 새로운 MC로 참여한 이소라와의 대결에서 '천안 낭만기타 황주명'과 함께 '옛사랑'을 불러 시즌2의 1대 판듀로 등극, 유종의 미를 거뒀다.



  • 2017년 8월 봉평 허브나라농원에서 자선 콘서트인 <제9회 이문세 숲속음악회>를 연다고 한다. #

  • 2017년 12월 10일, 판타스틱 듀오2에서 낭만기타 황주명과 <광화문 연가>를 선보였다.


  • 2017년 12월 4일, 자이언티와 콜라보한 음원 <눈>이 발매되었다.

  • 2018년 10월 7일 16집 앨범을 발표했으며, 앨범 발표 직후 3년 6개월 만에 2018년 10월 8일 SBS 나이트라인 초대석에 다시 출연하여 새 앨범에 대해서 인터뷰했다. 인터뷰 영상

  • 2018년 10월 21일, 28일에 SBS 집사부일체 19대 사부로 출연했다.

  • 90년대 말 당대 최고의 아이돌이었던 H.O.T.와 함께 음악 순위프로그램에서 1위 후보로 올랐고, 그때 조조할인이라는 곡으로 그 주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었다. 이후 토크쇼에서 밝히길, 이때 본인은 아이돌 음악 일색이던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해서 매우 의기양양하게 귀가했는데, 아들이 울며불며 왜 아빠가 H.O.T.한테 이기고 1위를 했냐고 투정을 부린 적이 있다고 밝혔다. 힐난조로 말한 것은 아니고, 그저 후배가수인 H.O.T.의 인기를 증명하는 정도의 가벼운 토크였다.




  • 다만 활동 중 독재정권 시절에는 학생들의 비난이 있었다고 한다. 주 논조는 '사람이 죽어나가는 이 시국에 이문세는 사랑 노래만 쓰면서 정권에 아부한다'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연예인들이 정치에 대해 발언하는 것에 찬반이 갈리지만 양희은이 남북 관계를 유화적으로 은유하는 작은 연못을 불렀다 금지곡이 되었기도 하였으니 다소 대조가 되긴 하였을 것이다. 아무튼 이문세는 이러한 여론을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1989년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이라는 노래를 발표한다. 그리고 다음 엘범부터 다시 사랑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설마 긴 코로 얼큰하게 코렁탕이라도 들이마신 것인가 사족을 달자면, 그 시대(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이문세의 음악세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이영훈임을 부정하기 어렵고, 그 이영훈이 만든 음악들 대부분이 사랑 노래였다는 점을 상기하자. (사실 상기한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역시 이영훈의 곡이다.) 따라서 독재정권을 살아갔던 그 시대 학생들의 관점으로 보자면 밉게 보일 수 있을 것이지만, 지금에 와서 위 관점으로 이문세를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볼 수 있다.

  • 한국 현대무용의 대모로 불리는 육완순[9] 여사가 그의 장모님이다. 이문세의 콘서트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다만, 이화여대 교수 시절인 1991년에 입시비리에 연루돼서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 추징금 1300만원을 선고받은 흑역사가 있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그런지 경향신문을 제외하면 부고 기사들 중 이 사건이 언급된 기사가 사실상 없다. 자세한 사건 전개는 연합뉴스의 이슈돋보기에 기록되어 있다. # 2021년 7월 20일 저녁에 두통을 호소하고 쓰러진 뒤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심한 출혈로 인해 깨어나지 못하고 3일 뒤인 7월 23일에 별세했다. 향년 88세.

  • 뛰어난 음악성으로 K-POP의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고 따라가기에 50년대생 가수로서는 유일하게 서태지와 아이들이후 시대에도 흘러간 성인가요 가수가 아닌 젊은 층들에게 현역으로 인정받는 뮤지션이며, 창법조차도 트렌디하게 고쳐나가 30대 이하의 젊은 세대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9.1. 페르소나 이영훈[편집]



파일:563281_429979_1105.jpg

1990년대에 촬영된 사진

기자: 이문세와 이야기하면서 이영훈이라는 이름을 건너뛰기란 불가능하죠.

이문세: 그럴 필요도 없고요. 이문세의 새 노래를 듣는 사람이 “이영훈 노래보다 어떻다”는 식으로 감상하는 것도 자연스럽죠. 이영훈과 이문세는 작곡가와 가수만의 입장을 뛰어넘었죠.#


영훈 씨는 나무와 같은 사람입니다. 부침이 심한 가요계에서도 이문세라는 가수만 생각하고 저만을 위한 곡을 썼던 나무와 같은 사람이었죠.

2008년 7월 9일 MBC <무릎팍도사> 방영분


너무 유명한 얘기지만 작곡가 이영훈과는 그야말로 한국 가요사 최고의 음악적 파트너이자, 페르소나로 평가받고 있다. 1985년 정규 3집 앨범부터 함께 작업했으며, 이 후 17년동안 함께하면서 그야말로 가수 이문세의 음악사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문세의 히트곡들 대부분이 이영훈의 작품으로 <난 아직 모르잖아요>, <소녀>, <옛사랑>,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광화문 연가>, <깊은 밤을 날아서>, <그녀의 웃음소리 뿐> 등 다 적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3집부터 7집까지 쭉 함께 작업하다가 잠시 헤어졌는데, 무릎팍도사에 밝히길 이영훈이 늘 이문세의 그늘에 가려져있다보니 자신의 음악을 하기 어려워 서로를 위해 잠시 각자의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 후 정규 9집, 12집, 13집 전곡을 프로듀싱했으며 중간중간 앨범에도 수록곡으로 참여했다. 이소라와 함께 부른 <슬픈 사랑의 노래>, 정규 13집 타이틀 곡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10]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마지막 앨범은 바로 2002년 발매된 이문세의 컴플레이션 앨범 <OLD&BEST>다. 이영훈은 이 앨범의 레코딩 프로듀서를 맡아 과거 자신이 작곡한 이문세의 히트곡들과 숨겨진 명곡들, 라이브 콘서트 녹음본의 음질을 복원해 이를 '작곡가의 선물' 이라는 제목의 추가 트랙으로 수록했다. 이영훈이 오랜 페르소나 이문세에게 주는 최후의 선물이자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을 끝으로 두 사람은 다시 각자의 음악작업으로 돌아갔고, 이문세는 같은 해 정규 14집을 낸 뒤 앨범 발매에는 손을 때고 10여년간 콘서트에만 몰두하게 된다.[11]


이영훈을 병문안 해 기도하고 있는 이문세. 두 사람의 생전 마지막 사진이다.

이영훈이 위암 판정을 받은 뒤에도 이문세는 이영훈의 건강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영훈이 이문세가 걱정할 까봐 마지막까지 자신의 상태를 어느 정도 숨겼는데, 이문세가 병문안을 간 자리에서 이영훈이 "나는 내 병을 아는데, 오래 못 삽니다." 라고 담담하게 말했을 때 비로소 이영훈의 건강상태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문세는 자신의 활동에만 몰두하느라 이영훈의 상태를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 미안해서, 병상에서 이영훈의 손을 붙잡고 함께 기도를 해줬다고. 이문세는 이영훈의 임종도 지켜보며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했다.[12] 이영훈이 병상에서 입원하던 시절 함께 마지막으로 음반을 하나 더 제작하자고 제안했지만 결국 그 약속을 못 지켰다며 두고두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무릎팍도사에서 이 얘기를 했을 때 울먹거리며 말을 잘 하지 못했고 옆에 있던 강호동유세윤, 올라이즈밴드도 눈물을 흘렸다. 이문세는 매년 이영훈의 기일마다 그를 추모하는 글을 올리고 있고, 이 후 출연하는 방송에서 종종 이영훈에 대한 회상적인 시각의 인터뷰를 하곤 한다. 이영훈 헌정 콘서트에도 참석했다.

유튜브 등지에서 종종 이문세와 이영훈의 병문안도 가지 않고 아픈데도 매몰차게 대했다는 내용이 올라올 때가 있는데, 이는 명백한 가짜뉴스이다. 이문세가 직접 기자회견에서 이에 대한 해명을 했을 정도. "(루머 관련) 기사와 동영상이 어떻게 유포됐는지 모르겠지만 악의적."이라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썼어요. 진실을 밝히려면 저나 유가족과 인터뷰를 하는 것이 당연한데, 혼자 드라마틱하게 추측을 해서 안티를 생산했어야 하나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토로했다.이문세는 "사실 영훈씨와 품성, 인격이 아니라 취미활동, 선호하는 음식들은 달랐어요."라면서 "정말 '부부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는 말을 할 정도였죠. 음악할 때는 너무 둘 사이가 찰떡궁합이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각자 삶에 충실했죠. 그러다 영훈씨가 세상을 떠났어요."라고 답했다. #


9.2. 이문세와 라디오[편집]


그의 음악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라디오다. 애초에 CBS 라디오 DJ로 데뷔했으니 커리어 시작부터 라디오와 함께했다. 특히 1985년부터 1996년까지 진행한 별이 빛나는 밤에는 DJ로서 그의 대표적인 걸작. 11년동안 진행하면서 이문세는 밤의 문교부 장관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높은 청취율을 기록했고, 10~20대 팬들의 열성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이문세가 별밤을 그만둔지 30여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도 X세대들은 이문세를 떠올릴 정도로 당시 그의 인기는 절정이었다. 1996년 방송을 그만둘 당시 이문세는 마지막 시그널 음악을 틀며 눈물을 흘렸다.

별밤을 그만두고 반년도 지나지 않은 1997년 MBC FM4U의 두시의 데이트로 라디오에 컴백했다. 1995년 오랫동안 두데를 이끌어오던 김기덕이 금품수수 비리 혐의로 하차한 이후 경쟁 프로그램으로 인해 청취율이 하락한 상황에서, 혼란스러웠던 프로그램의 상황을 잘 넘겨받아 3년동안 진행했다. 박명수가 오랫동안 고정 코너로 진행을 맡았던 <퀴즈 땡칠이>, <애정수배> 등이 전부 이문세 시절에 시작된 것이다. 지금도 윤도현, 박명수, 윤종신, 박경림, 안영미-뮤지 등과 함께 두데를 대표하는 DJ로 손꼽히고 있다. 2000년 10월까지 진행하다가 윤도현에게 넘기고 하차했다.

2004년에는 다시 MBC 표준FM으로 자리를 옮겨 <오늘 아침 이문세입니다>의 진행을 맡았다. 이 프로그램 역시 7년동안 진행하며 아침 라디오 청취율 상위권을 꾸준히 기록했다. 정지영 아나운서 다음으로 장기 진행한 DJ이며,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골든마우스를 받았다. 1985년부터 2011년까지 쉰 기간을 빼면 총 22년간 라디오를 진행한 셈이다. 오늘 아침에서 하차한 뒤에는 더 이상 라디오 DJ를 맡고 있지 않지만, 게스트 출연은 꾸준히 하고 있으며 가끔 대타 DJ로 나가기도 한다.


9.3. MC[편집]


MC로서도 탄탄한 커리어를 지녔다. 가장 유명한 건 바로 창작동요제강변가요제로, 총 합쳐 11회 진행했다. 특히 강변의 경우 대학가요제에 이수만이 있다면, 강변가요제에는 이문세가 있다고 할 정도로 강변가요제 진행 경력이 많다. 또 1996년 KBS에서 <이문세 쇼>를 진행했는데, KBS 심야 프로그램의 시초다.[13] 이 방송에서 유희열, 이소라, 윤도현, 정재형, 이적 등 지금은 내로라하는 가수/작곡가들이 데뷔했다.[14]

이 후 TV MC로 자리를 옮겨 <이문세의 사이언스 파크>, <사랑해요 코리아> 등의 진행을 맡았다. 다만 2005년 MBC에서 진행을 맡았던 <이문세의 오아시스>는 그의 말 못할 흑역사다. 총 7회 진행으로 방송 사상 최단기 프로그램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유세윤이 이걸로 진탕 놀려먹었다.[15] 2010년 <사랑해요 코리아> 이후에는 TV 프로그램 MC는 안 맡고 있다. 그나마 성공한 프로그램이 <사이언스 파크> 로, 이 후 방송된 스펀지약간 더 위험한 방송 같은 포멧의 원조였다.

SBS 인기가요에서 MC를 맡기도 했고, 2002년~2006년까지 SBS 가요대전의 MC도 맡았다.


10. 관련 문서[편집]


  • 발라드
  • 이영훈
  • 사랑과 평화(김명곤) - 배우 김명곤과는 다른 사람. 밴드 사랑과 평화의 키보드 보컬이었다. 이문세의 명반 3 음반들의 편곡을 담당했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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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9년은 호적상 출생년도고 1957년이 실제 출생년도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무근이며 실제 1959년 출생.[2] 참고. 성북구 정릉동으로 나왔던 자료들이 있는데 출생지는 왕십리다. 어렸을때 정릉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자랐다고 한다.[3] 전서공파 군자판관공파 29세 '世'자 항렬이다.[4] 신촌성결교회 안수집사다.[5] 사실 1집 음반을 발매하기 이전인 1982년에 <떠돌이 인생도 하늘은 있다> 라는 비공식적 데뷔 음반을 발매한 적이 있다. 다만 매우 극소수만 생산되어 라이브 카페 등지의 DJ들에게 주로 판매되었기에 이문세 본인도 소장하지 않고 있는 음반으로도 알려져 있다.[6] 1987년 12월 15일 FM방송 개시.[7] 가령 이런 거다. 최불암과 이문세가 등산을 갔다가 미끄러진 이문세를 최불암이 붙잡았는데 "이문세 씨 괜찮으세요?"라고 묻자 매달린 이문세가 "선배님 말 놓으세요~"라고 답하자 을 놓아서 떨어져 버렸다거나.[8] 한 번은 설운도가 라디오에 나와 "사람들이 이문세 선배(데뷔가 빠르니)보다 내가 나이가 아주 더 많고 더 선배인지 아는 사람이 많다."면서 후배 가수들은 이문세에게 형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무슨 선배님이라면서 나이가 더 많게 대한다고 투덜(?)거린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인터넷으로 올리면서 네티즌들도 "어? 설운도가 이문세 선배 아니었어? 반대라고?"라는 식으로 놀라워하는 경우가 많다.[9] 공정택의 부인인 육완숙의 셋째 언니이다. 즉, 이문세는 공정택의 처조카사위이다.관련 기사[10] <슬픈 사랑의 노래> 는 이영훈 개인이 가장 완벽하게 작업했다고 생각하는 노래라고 한다.[11] 이영훈은 이 후 자신의 소품집과 영화 <보리울의 여름> OST 작업에 참여했다. 이 곡의 주제가는 개그콘서트 봉숭아 학당 주제곡으로 쓰여 매우 유명해졌다. 또한 쥬얼리에게 곡을 주기도 했는데, 제목은 <How Are You?> 이다.[12] 이 때 이문세는 이영훈에게 마지막 인사로 하늘에 가서도 음악을 해야 하니 먼저 가셔서 작곡을 해달라고 부탁했다고.[13]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이문세쇼-이소라의 프로포즈-윤도현의 러브레터-유희열의 스케치북. 원조는 노영심이지만 본격적으로 시청률이 몰리기 시작한 건 이문세 때였다.[14] 과거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을 때 이걸 자료화면으로 틀었는데, 당시 갓 토이 2집을 냈던 유희열의 출연본도 나왔다. 고개 못 드는 유희열이 압권[15] 참고로 이 프로그램 2회 게스트가 무려 양현석이다. 이 때 모자도 벗고 나왔으며,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최초로 그의 춤을 볼 수 있다(...) 다만 악마의 연기 이후 오랫동안 춤을 안 춘 탓인지 몸이 덜 풀려서 영 엉성하게 췄다.[16] 이정선이 편곡된 3곡이 수록된 3집을 제외하고 거의 전곡을 편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