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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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530년 11월 3일
모스크바 대공국 모스크바 콜로멘스코예
사망
1584년 3월 28일 (향년 53세)
루스 차르국 모스크바
묘소
대천사 성당
재위기간
모스크바 대공
1533년 12월 3일 ~ 1547년 1월 16일
루스 차르
1547년 1월 16일 ~ 1584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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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류리크 가문
이름
이반 바실례비치
(Ива́н Васи́льевич)
아버지
바실리 3세
어머니
옐레나 글린스카야
형제자매
유리
배우자
아나스타샤 로마노브나 (1547년 결혼 / 1560년 사망)
마리야 템류코프나 (1561년 결혼 / 1569년 사망)
마르파 소바키나 (1571년 결혼 / 1571년 사망)
안나 콜톱스카야 (1572년 결혼 / 1572년 이혼)
안나 바실치코바 (1575년 결혼 / 1576년 이혼)
마리야 나가야 (1580년 결혼)
자녀
안나, 마리야, 드미트리, 이반, 예브도키아, 표도르 1세, 바실리, 드미트리
종교
러시아 정교회


1. 개요
3. 이반의 살해
4. 평가
4.1. 과연 전제군주였나?
5. 기타
6. 현대 매체에서



1. 개요[편집]


러시아의 모든 군주들은 전제군주이기 때문에 누구도 비판할 수 없다. 군주는 하느님으로부터 하사받은 노예들을 자기 뜻대로 부릴 수 있다. 군주가 불의한 일을 저지를 경우가 있을지라도 그대가 군주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중죄를 범하는 것이 될 뿐이 아니라 그대의 영혼을 지옥에 떨어뜨리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그대에게 그대의 군주를 맹목적으로 따르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안드레이 쿠릅스키 대공에게 보낸 편지.

루스 차르국차르.

흔히 이반 뇌제(雷帝)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Ivan the terrible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백성들이 그를 부른 칭호이자 별명인 그로즈니(Гро́зный)[1]의역한 것으로 "두렵다.", "끔찍하다."라는 뜻으로 현대 영어에서 사용되는 "형편 없는~"이란 뜻보다[2] "적을 두렵게 한다."라는 뜻이 있다. 이반 4세 통치 초기 카잔 칸국아스트라한 칸국을 때려부수던 동시에 자국 내 보야르들을 찍어누르던 시절에 주어진 별명이라 '강한' 리더라는 뜻이 강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폭정으로 공포 정치를 펼쳤으므로, terrible이라는 표현은 중의적 의미로 그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별칭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그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뇌제라는 번역은 일본어에서 만들어진 조어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로즈니(Гро́зный)라는 단어 자체는 '무서운', '두려운'이라는 뜻이지만, 그 어원이 뇌우를 뜻하는 그로자(Гроза́)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뇌제라고 번역한 것으로 추측된다.[3] 또한, 자에는 우레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나운 모양새를 나타내는 뜻도 있으므로 뇌제 자체가 사나운 황제라는 뜻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끔 이반 뇌제 대신 폭군 이반이라고 의역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로즈니(Гро́зный)라는 표현에는 폭군 이미지만 포함된 것이 아니라, "민중에게 경외심을 일으킨다."는 이미지도 포함되어 있다. 폭군 이반이라는 표현은 이반 4세의 폭정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완전히 합당한 번역어는 아니다.

이반 4세는 이전까지 대공국의 수준에 불과했던 러시아를 처음으로 국가의 지위에 올려놓았고 스스로를 대공이 아닌 모든 루스인의 차르라는 칭호로 즉위한 최초의 러시아 군주이기도 하다. 차르라는 명칭 자체는 선군인 이반 3세 때부터 쓰였지만 그것은 서유럽 국가들과 주고받는 외교문서에 국한되어 있었을 뿐 당시 군주의 정식 명칭은 모든 루스인의 대공(大公)이었다.


2.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반 4세/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이반의 살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반 4세/살해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반 4세의 숙청에는 이유가 없었다. 아들이 이반 4세에 충성해 보겠다고 아버지를 죽이기도 하고 이반 4세를 충직하게 따랐던 인물들도 있었다. 고위 성직자는 물론 토사구팽 되는 경우도 허다했으며. 심지어는 오프리치니크 중에서도 살해된 이가 있었다.


4. 평가[편집]



4.1. 과연 전제군주였나?[편집]


러시아사 전반에 걸쳐 황제들은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다고 두루둥실하게 묘사하지만 애당초 무제한적 전제권력이라는 것은 해석하기 나름인 모호한 이데올로기적 개념이다. 무제한적이라는 것은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며 따라서 언제 어디서나 쉽사리 왕권이 견제받는다는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의 역사를 보면 귀족들에게 선출된 차르들, 귀족, 농민, 상인, 카자크들 회담에서 선출된 차르에다가 러시아 제국 성립 이후에도 아예 귀족들 쿠데타로 제위에 오르거나 희생된 황제만 9명이다.[4]

마찬가지로 이반 4세가 실제로 강력한 전제권력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은 간단히 증명할 수 있다. 차르는 3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독살 당했으며 본인이 보야르들에게 학대당하면서도 어떻게 하지 못했다. 잔인하게 복수했다는 단편적인 일화들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묻히지만 이것들 상당수는 불분명한 야사거나 귀족들이 차르를 비난할 때 썼던 구실들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는 이반 4세의 정적들 상당수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거나 외국으로 망명했다. 1547년에 모스크바에서 대반란이 일어났을 때, 반란군은 이반 4세가 머물고 있던 근교의 마을로 갔고 거기서 차르는 자신이 보야르들과 같은 편이 아니라고 힘들여 설득해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5] 본격적으로 통치에 들어간 후에도 국가의 중대사는 일종의 의회에 해당되는 보야르 두마와 젬스키 소보르에서 논의되어야만 했다. 안드레이 쿠릅스키는 차르와 척을 지다가 외국으로 망명했고 다른 대귀족들도 그를 따라하거나 할거라는 의심을 받았다.[6]

왕권신수설에 대한 견해도 이를 잘 보여준다. 바실리 3세 시절부터 모스크바 대공들은 교회와 불편한 동맹관계였다. 러시아 정교회는 군주의 절대권력이 신이 내려준 것이라 주장했지만 동시에 군주가 그걸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신이 다시 거두어들일 수 있다는 이중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반 4세 초기 조언자 중의 성직자 실베스트르는 차르의 어린 시절부터 직접 이런 주장을 표방했다. 이 같은 배경을 알고 보면 이반 4세에 대한 왕권신수설에 대한 확신과 강조는 오히려 약하고 불안정한 왕권에 대한 콤플렉스였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본 문서 맨 위에 게시된 안드레이 쿠릅스키에게 보낸 편지도 차르가 외국으로 망명한 배신자 귀족에게 자신의 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쓴 것이다. 군주가 반역자에게 직접 자신이 전제군주임을 증명하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전제군주는 아니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당시의 러시아는 군약신강의 봉건제 국가였으며 이반 4세는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집권화와 왕권강화를 위해 귀족들과 싸운 것에 가깝지 무소불위한 전제권력을 휘두른 절대군주는 아니었다. 결국 러시아 국가 내부에서 봉건제와 전제군주제라는 두 체제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도기[7]였고 이반 4세의 전제권력에 대한 지나친 강조와 표현, 당대 러시아인 관점에서도 기이하거나 잔인한 행동들은 오히려 약하고 열세에 놓인 군주의 최후의 발악으로 해석될 여지가 더 크다.


4.2. 시베리아 개척[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Russian_Tsardom_1500_to_1700.png
1500년 ~ 1700년 사이의 러시아 영토의 확대. 진한 순서대로 각각 1500년, 1600년, 1700년의 러시아 영토.
특히 이반 4세가 러시아에 남긴 또 다른 큰 유산은 바로 광대한 러시아의 영토다. 러시아는 1550년에서 1700년까지 매년 무려 35000㎢씩 영토가 확장되었다. 이것이 카잔 칸국과 아스트라한 칸국 정복 이후 시베리아 진출 때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이반 4세가 없었더라면 러시아의 팽창이 가능했을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분명한 것은 이반 4세의 시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점이며, 이런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바탕으로 러시아는 이후에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물론 이 과정에는 표트르 대제처럼 러시아를 근대화시켰던 인물이나 이오시프 스탈린처럼 러시아를 산업화시킨 인물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들 모두는 이반 4세에 의해서 마련된 러시아의 광대한 영토와 인구가 아니었더라면 그 과업을 달성하기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8]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반 4세는 현재의 러시아를 만든 군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이반 4세에 대한 이해 없이는 러시아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해석하기 애매한 여러가지 기행이나 잔인성에도 불구하고 이반 4세의 행동과 정책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현대의 러시아 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그의 숙청과 학살이 전제 권력을 확립하기 위한 의도된 잔인한 숙청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미쳐서 그랬는지, 그리고 리보니아 전쟁은 서방으로의 나가는 길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적인 전쟁이였는지 아니면 여기서 질 수 없다는 오기의 결과였는지는 등 쉽게 해석되기는 어려운 부분이 아직도 많이 있다. 그리고 이반 4세를 선뜻 러시아의 위대한 차르라고 부르기에는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는 행동을 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지금도 그 업적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상당히 평가가 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5. 기타[편집]


  • 동시대 사람들처럼 이반 4세 또한 독살을 피하기 위해 여러 방비책을 갖춰 놓았는데, 그 중 하나는 유니콘의 뿔이었다.[9] 그가 가진 뿔은 북극해에서 발견한 것으로 값으로 따지면 7만 루블에 달했다고 한다.

  • 54세에 사망했기 때문에 장수한 것은 아니었지만 3세부터 군주 자리에 있었다보니 러시아 역대 군주 가운데서 가장 오래 재위한 인물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 여러모로 러시아판 진시황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6. 현대 매체에서[편집]


수백년 후, 소비에트 치하에서 러시아 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유명한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에 의해 이반 4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폭군 이반>이 만들어진다. 당초 3부작으로 기획된 이 영화는 "이오시프 스탈린을 이반 4세에 빗댔다."는 혐의로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결국 2부는 예이젠시테인 사후에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격하한 1958년에야 해금되어 상영될 수 있었고, 3부는 예이젠시테인 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취소되고 4분 정도의 단편 분량만 남아있다. 1부는 이반의 대관식[10]과 카잔 원정, 리보니아 전쟁이 배경이며 2부는 이반의 과거 및 오프리치니크를 동원한 폭정을 다룬다.

  • 소련의 코미디 영화 <이반 바실리예비치 씨, 직장을 바꾸다>는 이반 뇌제와 먼 미래의 소련 아파트 관리인인 이반이 시간여행으로 바뀌어 버리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원작은 미하일 불가코프의 연극인데, 원작은 이반 4세와 이오시프 스탈린을 비교하는 정치 풍자물 성격도 있었지만[11] 영화에서는 시대상의 차이도 있고 해서 설정이 다수 변경되었다.[12]

러시아의 지도자로 등장하며, Ivan the terrible을 의역해서 폭군 이반이라고 표기한다. 성우는 김기현.

기간 한정 5성 라이더로 참전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반 뇌제(Fate 시리즈) 참조.

<러시아편 1부>에서 등장하며, 95페이지 6번째 칸에서 즉위식 복장은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영화 <폭군 이반>에서 이반을 연기한 니콜라이 체르카소프의 복장과 닯았다.


  • 소설《역사 속 세기의 로맨스 7: 이반 4세와 아나스타샤》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에 관해 홀로보로드코와 격론을 주고 받던 중, 쓰러진 그를 감싸 안으며 일리야 레핀의 그림과 유사한 구도를 오마주한다.
[1] 체첸의 수도인 그로즈니도 이 뜻이다.[2]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2》에 등장한 이반 4세는 자신의 별칭이 'Terrible'이 아니라 'Awesome'이라고 주장한다. DVD에 수록된 제작진 인터뷰에서 해당 장면은 개그를 의도한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 말이 맞다고 확인했다. Awesome도 원래는 "두렵다." 같은 뜻이었으나 근래에는 "멋지다." 같은 뜻으로 변질되었다. 반대로 Awesome과 같은 어원인 Awful은 Terrible과 비슷하게 "끔찍하다."나 "형편없다."는 뜻으로 바뀌었다. 재밌게도 Terrible과 같은 어원인 Terrific은 Awesome과 같은 뜻이다. 그러니까 Awesome = Terrific, Awful = Terrible인데, 어원이 같은 단어들끼리 반댓말이 되어버렸다.[3] '뇌우의'라는 뜻의 형용사는 그로조보이(Грозово́й)라는 낱말이 따로 있다.[4] 애시당초 러시아 군주들이 강력한 전제권력을 휘둘렀다는 것도 비슷한 시기 봉건정이었던 타 유럽국가들과 비교해서 그런거지 진짜 전제군주중화제국 천자나 조선 왕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5] 이것은 차르가 실질적인 통치자가 아니며 (인질로 잡거나 협상할 만한) 어떠한 정치적 의미도 없다는 것을 일반 평민들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6] 키예프 루스 때부터 이어져온 전통으로 보야르들은 자신의 주군을 선택할 수 있었다.[7] 핵심은 최소한 이반 4세의 통치기 동안은 그 두 체제 중에 어느 한쪽도 완전히 승리하지 못했다는 것[8] 또한 표트르 대제와 이오시프 스탈린은 업적은 뛰어나지만 선정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에서 이반 4세와 비슷한 인물이기도 하다. 표트로 대제는 농노제를 강화하고 샹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반발을 억누르는 등 선정과는 거리가 멀었고, 스탈린도 소련을 세계 2위 경제대국 겸 초강대국으로 만들고 독일군을 패퇴시키다 못해서 동유럽과 중앙유럽 지역을 소련의 위성국들로 채워넣는 업적을 세웠지만 우크라이나 대기근대숙청 항목에서도 보이듯, 관료로써 재능이 뛰어났고 관료제를 완성시킨 것과는 별개로 인품이 훌륭하거나 선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9] 진짜 유니콘이 아니라 일각고래상아나 뿔이 있는 동물의 을 당시 그렇게 불렀다.[10] 1부 도입부에서 즉위식 때 대주교가 이반을 요한이라고 부르는데, 이반요한러시아어 발음이다.[11] 당시가 스탈린 시대였고, 어지간한 공산당 고위관료들도 대숙청 때 태반이 처형당하거나 시베리아로 끌려가서 강제로 삽질을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간이 배 밖에 튀어나온 행동이었다. 다만 스탈린이 볼가노프의 팬이었기 때문에 불가코프는 출간 금지만 당하고 말년을 비교적 편하게 보냈다.[12] 예를 들어 아파트 관리인 이반이 귀족의 아들이라는 설정이었지만 1973년 시점에서는 그 귀족들의 자녀들도 연금받는 노인으로 살고 있었을 때였으니(...) 설정 자체를 갈아엎을 수 밖에 없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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