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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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이석기
李石基 | Lee Suk-ki


파일:lsk.jpg

출생
1962년 2월 2일 (62세)
전라남도 목포시
전과
국가보안법 위반[1]
내란선동
업무상횡령
형량
징역 2년 6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 2003년 8월 15일 가석방
- 2005년 8월 15일 특별복권

징역 9년 및 자격정지 7년 (내란선동 등 혐의)
징역 8월 (업무상횡령 혐의)
- 2021년 12월 24일 가석방[2]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티스토리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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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슬하 1남 1녀[1]
학력
성일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분교[2] (중국어 / 학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이병 소집해제 (방위병)
소속 정당
[3]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9[4]
경력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CN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제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1. 개요
2. 생애
2.2. 가석방
4. 평가
6. 소속 정당
7. 선거 이력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정치인이자 전직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2. 생애[편집]


1962년 2월 2일, 전라남도 목포시 출생으로, 성일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3](현 글로벌캠퍼스)를 졸업하였다.


2.1. 통합진보당 활동[편집]


2012년 5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제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통합진보당 내란선동 사건으로 인해 구속 수감되었다. 이후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국회의원 자격심사가 계류되었다. 이 인물의 행각으로 인하여 이후 한국의 진보 정당들이 NLPDR, 종북과 선을 긋는 태도를 보이게 되며 국민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신뢰도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013년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되었으며, 2014년 2월 17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8월 11일 2심 항소심에서 내란 음모 혐의가 인정되지 않아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으로 감형되었다. 2014년 12월 19일에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선고에 의하여 소속 의원 나머지 4명과 함께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2023년 5월까지 징역을 살아야 하는 수형자였다. 그리고 그의 사건은 통합진보당 해산의 밑거름이 되고 있으나, 진보당의 지상목표 중 하나로 항상 이석기의 석방을 요구하는 만큼 출소하고 나서도 둥지가 사라졌다고 판단을 내리긴 힘들 것이다.[4]

2017년 11월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민중당 대표단이 만난 자리에서 민중당 측은 이석기의 석방에 더불어민주당이 도움을 줄 것을 요청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측은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2019년 3월에 선거홍보회사를 차려 후보자들의 선거 물품 비용을 부풀리고 지자체에 선거 보전 비용을 과다하게 청구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관련 혐의는 무죄를 받았다.

2020년 11월에는 진보주의자라도 북한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고, 이후 감옥에서 책을 출간하였다.[5]


2.2. 가석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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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4일 오전 10시에 가석방되었다. 가석방 조건인 전자발찌 착용을 출소 시간까지도 완강하게 거부하였으나, 이에 불응하면 가석방이 불가능하다는 법무부의 방침에 따라 결국 전자발찌를 부착한 채 출소하였다.[6]

오전 10시, 지지자들의 환영 속에 대전교도소 정문을 나선 이석기는 이날 박근혜의 사면 소식에 관해 "과연 공정과 정의란 단어가 존재하느냐, 정말 사면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냐"고 말하면서 "박 정권의 악랄한 탄압으로 말 몇 마디한 사람을 감옥에 넣어 놓고 사면이라니"라면서 "그 피해자가 이제 가석방 형식으로 나왔다는 데 통탄한다"라고 언급했다.

가석방 후 정계 활동을 다시 재기해서 진보당에 입당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단은 가석방이라 할 뿐 엄연히 형 집행중인데다, 자격정지까지 추가되어 2028년은 되어야 선거권이 회복되기 때문에 정계활동을 이어가기는 어렵다. 다만 피선거권만 제한받을 뿐, 소위 진보인사들의 개인적인 모임 등에 참가하는 식으로 원외에서 내부조직 발언권이나 실권을 행사하거나 선거 유세를 할 가능성은 열려있다.

2023년 5월 5일부로 형 집행이 종료되었다.

3.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석기/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평가[편집]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 당시 증거로 제출되고 변호인단에 의해 검토된 녹취록을 살펴보면, 이석기는 철저한 반미, 반서방주의자로서 한반도의 자주(적화) 통일을 위해서 궁극적으로 미국을 몰아내고, 서구 진영을 멀리해야 하며 반대로 북한,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해 북한이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교섭해야 하므로 북의 핵 보유를 인정 및 변호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강연에서 종종 핵 보유국 상호간에는 국지전과 대치전 위주의 무력 분쟁이 벌어지며, 심리전과 사상전, 정치전(예컨데 종북몰이)이 횡행하므로 이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발언을 자주 하였다. 자주적인 민족 통일을 위해서는 이러한 정치적 세태를 뿌리채 뽑아서 바꿔야 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주장과 발언 내역이 문제가 되어 법정에서 내란선동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녹취록에 "절두산 성지"를 "결전 성지"로 바꿔 기술하는 등, 112개 단어의 납득하기 어려운 오류들이 녹취록에서 드러났다. # 이에 대한 논란은 통합진보당 내란선동 사건/논란을 참고하길 바란다.

내란선동 유죄판결과는 별개로 사상이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여러 문제점들을 지적받는데, 80년대 NL계 운동권과 같이 단순히 반미, 반제국주의에만 치중하여 북한과 중국에 대한 비판 의식과 현실 파악 능력은 완전히 결여되었고, 세계 정세를 바라보는 안목 역시 비현실적이고 편향되어 있다. 예컨대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벌어진 6.25 전쟁을 이석기는 2013년까지 계속해서 민족해방전쟁으로 부르고 있었다.[7]

80년대 북한에 불법 월북한 친북 NL계 인사 김영환 같은 사람들조차 북한의 현실을 알고 90년대 중반부터 성향을 180도 선회하여 반북(엄연히 말하면 反김씨 정권)으로 돌아서는 등, 해가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탈북자와 처참해지는 북한의 현실 속에서 대중적으로 반북 정서가 확대되는 추세고, 현실과 상반되는 이러한 이석기의 사상은 점점 힘이 약해져 공감대를 완전히 상실한 상황이다. 진보세력조차도 이미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김씨 왕조 종교국가가 된 북한을 극우라며 비판하고[8], 온건적으로 가도 대한민국 주도의 남북교류를 통한 평화통일로 가자고 주장하는 게 현실이다. 이미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기 전부터 여/야로부터 거의 정신병자에 준하는 취급을 받기 시작했고, 내란선동죄에 판결에 논란이 있음에도 정치적인 지지기반이 겉으로는 거의 소멸한 상황이다.[9]

민혁당 사건 당시 주도자 3인방이 전부 그때와 다른 길을 걸었으므로, 이석기를 굳이 한 마디로 표현하면 살아있는 NL계의 화석이라고 할 수 있다. 구 NL계가 가지는 단점을 이석기 역시 그대로 다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5.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 포함 논란[편집]


좌익계 인사 98명으로 구성된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등 37명을 양심수로 분류하고, 이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추진위가 선정한 양심수는 총 37명으로 노동자 12명, 국가보안법 위반 25명 등이다. 이 명단에는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9년 및 자격정지 7년형을 받은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되었다.

민가협에서 발행하는 양심수 목록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석방 운동에 적극 나설 것임을 공표해 논란이 예상된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까지 석방 운동에 합세하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10]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까지 참여한 석방운동은 청와대에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보라색 엽서를 말하는 것으로 8.15에 맞춰 1만 6천 명이 참여한 가운데 청와대에 전달되었다. 하지만 청와대 측은 특별사면을 감행할 뜻이 없다며 진보계 일각의 요구를 일축했다. 결국 8.15에 석방되지 않았다.

다만 양심수석방 추진위원회는 단체에 속한 인사 98명이 가입한 단체(이하 추진위)이다. 추진위에서는 일반적으로 폭력을 사용하지 않은 채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여 정치/종교/인종/문화 등의 온갖 요인으로 인해 박해를 받아 구속된 모든 사람을 석방하라는 요구이지 오직 이석기 석방만이 주가 된 것이 아니다. 이석기가 양심수 명단에 들어있다는 것만으로 싸잡아 종북 행위라고 보는 것도 논리 비약에 해당하나, 그렇다고 반대로 아예 의심하는 것조차 비논리적이라는 듯한 실드를 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

또한, 이로 인해서 이석기가 양심수로 버젓이 선정됐다는 점에서 다른 양심수들이 정말 탄압과 박해를 받은 양심수인가 하는 점이 논란거리가 될 수 있으므로 주도한 인물이 따로 있는지 전체의 의견인지는 불명이나 양심수에 이석기를 포함시킨 행위 자체가 양심수 전체의 신뢰도를 낮추는 자승자박의 결과를 끌고 올 수 있다. 다른 이전 버전의 기술인 "어느 단체나 인물도 왜 이석기가 양심수로 선정됐냐고 공식적으로 항의나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석기가 박해받은 양심수라는 점에는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상대가 내 주장에 반박하지 않았으니 내가 이겼다"라는 정신승리의 논리에 입각한 주장으로 볼 수 있으므로 주의하도록 하자. 물론 이석기를 양심수라고 보는 국민들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며, 그렇지 않은 국민들도 있다.

차라리 이석기가 "난 북조선을 사랑한다!"고 당당히 커밍아웃하여 구속된 거라면 그 사상이 옳냐, 그르냐를 떠나서 사상의 자유를 탄압받은 양심수라고 볼 여지는 있으나, 그냥 다 정부와 국정원이 조작한 거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딱히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는지도 의문라는 지적이 있다. 더군다나 이석기 녹취록이 공개되자 통진당도 녹취록을 어느 정도 인정하여 술자리 농담이었다고 말을 바꿨다는 점, 국정원도 단지 이석기가 북한을 좋아해서 체포한 게 아닌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했다는 점에서 단순 술자리 농담이냐, 아니냐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언정 왜 "양심수"인지는 의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냥 억울하게 체포됐다고 다 양심수는 아니며,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처럼 당당히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다 감옥간 것도 아니다. 이석기 측에선 자신을 탄압하려고 증거 조작을 했다고 주장하므로 양심수에 포함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러면 먼저 녹취록이 조작됐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 NL 성향 언론에서조차[11] 내부고발자를 파악하고 대충 어느 대학 나왔고 집이 어디인지 직접 기자가 찾아가기도 했다는 점, 평상시 내부고발자 보호를 부르짖던 세력들이 이석기 내부고발자를 프락치라고 벼르고 있어서 그 제보자가 신상에 위협을 느끼고 해외로 도피했다는 점에서 녹취록 자체는 거짓이 아닌 걸로 보인다.

다만, 여기에는 민가협의 성향도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민가협에서 지명하고 있는 양심수 중에는 폭력을 부분적 동반하는 이들도 있으며, 사상의 차이로 검거된 모든 정치사범을 양심수라고 부르고 있다. 즉 양심이라는 개인의 매개체적 요소로 붙잡힌 이들을 총칭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공공연하게든 개인적으로든 표출하였으나 그로 인해 붙잡힌 이들 전체를 양심수라 총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양심수의 범위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세워지지 않아 사람마다 해석은 갈릴 수 있다. 넬슨 만델라의 경우엔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지만 양심수라 부르는 점에 대해서도 포함되며 인권주의 내지 인권 근반적 사상을 가지고 있거나 양심이라는 키워드에 초첨을 둔 이들, 일부 종교단체들의 주장을 보면 정치적 신념으로 붙잡힌 이들은 모두 인권 탄압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실 개개인마다 이에 대한 해석은 다르며 일각에선 한상균, 정석만은 양심수라 불릴 만 하지만 이석기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으며 실제로 이재명 시장도 종북은 문제라고 하며 내심적으로 표출한 적이 있다. 더불어, 오해해선 안 되는 것이 양심수라는 것이 양심적으로 신념을 표출하다가 붙잡힌 것이 아니라 신념을 표출하다가 검거된 모든 이들을 통칭한다. 그렇기에 개인과 나라마다 범용의 해석이 갈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석기가 신념을 표출하다가 검거된 인물이냐는 점이다. 만델라처럼 자신의 신념 표출 수단으로 폭력을 행사한 인물도 아니고, 녹취록에서 보듯 때를 기다려야 한다면서 비교적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지내왔던 인물이었다. 뜬금없이 애국가로 인해 논란이 된 적이 있으나, 딱히 정부와 심한 대립각을 세우던 인물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놓고 반정부 투쟁의 선봉으로 나섰던 것은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이었으며 필리버스터를 주도하기도 했었으니 만약 정말 정부에 대한 사상의 차이로 탄압받는 국가였다면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먼저 구속됐을 것이다. 거기에 같은 당에서도 대정부 투쟁에서 더 활발하게 모습을 드러낸 사람으로 이정희가 있다. 하지만 당시 정부와 심한 대립각을 세우던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이 2017년 합법적으로 정권을 쟁취한 것만 봐도 단지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막 잡아넣는 국가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집권 제 1과제를 적폐청산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국정원 TF팀을 구성하여 댓글부터 시작해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국정원의 댓글 대선 개입을 덮기 위해 조작된 사건으로 주장하는 이석기에 대한 내란선동과 관련된 언급은 없다. 한편 지난 박근혜퇴진 촛불 때부터 문재인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이석기를 비롯한 양심수 석방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당연히 구 통합진보당 NL계 잔당과 그 관련자들의 목소리이지만.

2017년 12월 6일 7대 종단 지도자들과 연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해서 사실상 사면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내비친 상태이다.

靑, 대규모 성탄 특사 고심… 이석기·한상균 포함될지 미지수다

결국 2017년 성탄 특사에서 이석기, 한상균은 제외되었다.[12]

2019년 연말 특사가 이뤄졌는데 한상균은 사면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이석기는 또 다시 제외되었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에선 사면의 기회는 없을 것이란 게 중론이고, 사면없이 형기를 다 채우고 만기 출소할 것으로 보인다.

순수하게 정략적인 면에서 봐도 이석기의 사면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겐 위험 부담이 큰 편이다. 통합진보당이 공식 해산당하기 전까지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은 야권연대 등 과거 통합진보당과 연대한 행적 때문에 '종북 NL과 결탁했다'라는 비방을 오랫동안 들어왔고, 이로 인해 정계에서 불리한 입장을 강요받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석기를 함부로 사면하면 간신히 확보한 중도 및 보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을 위험이 너무 크다. 반면 이석기를 석방한다고 해서 이석기를 지지하던 부류들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확실하게 지지해 줄지도 미지수이고, 그 규모 자체도 상당히 작다. 또 이석기는 2003년 가석방, 2005년 특별사면을 이미 받은 사람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사면을 해준다면 2번째 사면이 되는 셈이니 특혜 시비까지 붙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선 사면을 선택하지 않는 게 당연히 더 이익이 크므로, 앞으로도 사면의 가능성은 매우 낮다.

2020년에도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되었다.[13]

2021년 12월 23일에 가석방되었으나 여전히 사면이 된 건 아니다. 가석방 조건을 만족했기 때문에 가석방이 된 것 뿐이다. 이로 인해 자유의 몸인 상태에서 전자발찌를 착용한채 2023년 5월 4일까지 징역을 계속 살아야한다.[14]

2022년 윤석열 정부 특별사면에서도 이석기의 사면은 검토되지 않았다. # 가석방이라 반쯤 자유의 몸인 게 컸고, 지금 현재는 만기출소하여 자유인 신분이다.


6.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파일:조선로동당 한글.png

(
파일:민혁당_글자.png
)
1992 - 1999
지하정당

[[무소속|
무소속
]]

1999 - 2012
정계 입문

[[통합진보당|
파일:통합진보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2 - 2014
입당

[[무소속|
무소속
]]

2014 - 현재
위헌정당 해산



7.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통합진보당|
파일:통합진보당 흰색 로고타입.svg
]]

2,198,405 (10.30%)
당선 (2번)
초선[15]



8.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3 23:27:44에 나무위키 이석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반국가 단체 구성, 반국가단체 등 활동 찬양 · 선전 · 동조, 이적표현물 소지.[2] 2023년 5월 4일이 공식적인 만기출소일이나, 법무부의 가석방 결정으로 24일 오전 10시 대전교도소에서 출소했다. 석방 상태에서 형을 살았기 때문에 잔여 형기인 2023년 5월 4일까지는 보호관찰을 받았다.[3] 재학 당시에는 분교였다.[4] 다만 진보당이 이석기 전 의원을 받아준들 이쪽은 2022년 들어 겨우 울산 동구청장직과 한자리수 단위의 지방의원직을 따냈을 뿐 중앙정치엔 발도 못들이는 당이라 힘을 얻기 힘들다. 그렇다고 국회에 의석이라도 있는 정의당이나 원내 과반인 더불어민주당은 성향 이전에 지지율을 위해서라도 안 받아준다. 그러나 진보당이 202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원내에 입성하며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생겼다.[5] 책의 제목은 <새로운 백년의 문턱에 서서: 이석기 옥중수상록>, 민중의소리에서 출판하였다.[6] 전자발찌 착용을 계속 거부하는 경우 규정 준수 위반으로 가석방 결정이 취소될 수 있다.[7] 놀랍게도 북한은 이와 비슷한 명칭인 '조국해방전쟁'으로 부르고 있다.[8] 극좌로 보기도 하나, 김씨 왕조의 행태만 본다면 또 다른 형태의 극우로 봐도 이상할 게 없다.[9] 이석기를 지지할 정도의 골수좌파라면 입지가 불리해졌을 때 그저 겉으로 입만 닫고 활동만 멈출 뿐, 지지 자체를 철회하거나 전향하는 일은 거의 없다. 당장 가석방으로 풀려나온 이석기를 교도소 정문에서 환영하는 지지자들만 봐도...[10] 해당 언론에선 양심수(이석기)라는 병기를 사용 중이지만, 해당 언론사는 박근혜를 반대하는 국민을 촛불 세력이라 규정하거나 트럼프의 행적을 지지하거나 수리온에 대해 옹호적이고 문재인 및 원내정당 중 자유한국당, 대한애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에 비판을 가하는 언론사이므로 걸러서 들어야 한다.[11] 진보 언론이나 잡지 중에서도 그나마 정상적인 좌파 성향을 가진 한겨레, 경향신문, 시사인, 오마이뉴스에선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12] 이때 이들 대신 사면된 이가 정봉주였다. 그는 이로부터 약 3개월 후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에 억울하게 휘말렸다.[13] 애초에 정치인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14] 2018년부터 교정시설이 포화되는 바람에 웬만한 강력범이 아닌 이상 형량의 70~80퍼센트만 채우면 가석방시키고 있다.[15]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으로 인한 의원직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