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제국

덤프버전 :


이슬람 제국
الإمبراطوري الإسلامية[1] | Islamic Empire
파일:이슬람 제국 전체 지도.jpg

1. 개요
2. 범위
2.1. 일반적 의미(632 ~ 750, 118년간)
2.2. 오스만 제국을 포함시(632 ~ 1922, 1,291년간)
3. 문화
3.1. 학문
3.1.1. 의학
4. 역사
4.1. 통일 제국 시대(632 ~ 750)
4.2. 분열기
4.2.1. 페르시아 지역
4.2.2. 이베리아 지역
4.2.3. 이집트 지역
4.2.4. 마그레브 지역
4.3. 튀르크인 도래 후
4.3.1. 아나톨리아 지역
4.3.2. 아라비아 지역
4.3.3. 페르시아 지역
4.3.4. 인도 지역
5. 여담
5.1. 당대 이슬람 법학자들의 정통성 비판
5.2. ISIL의 참칭
6. 각종 매체에서



1. 개요[편집]


선지자 무함마드가 창조한 이슬람이 세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탄생해 유지되었던 제국.


2. 범위[편집]



2.1. 일반적 의미(632 ~ 750, 118년간)[편집]


단순히 이슬람 제국이라고 하면 이슬람을 국교로 삼는 모든 제국들을 다 가리키는 말이 되겠지만, 일반적으로 역사에서 이슬람 제국이라 하면 이슬람 초기 통일된 판도를 자랑하던 제국들, 즉 아바스 칼리파조 이후 사분오열되기 이전의 118년간의 제국을 가리킨다.

이라클리오스 왕조사산 왕조간에 치열하게 벌어진 로마-페르시아 전쟁으로 양대 제국이 피폐해졌을 때, 어부지리로 성장했다. 두 제국의 견제에서 벗어나기도 했고, 전통적인 교역로가 전쟁통이 되자 아라비아 사막이 대체 교역로로 쓰이며 경제적으로도 이득을 보았다.

동로마 제국의 이라클리오스 황제가 끝내 사산 왕조호스로 2세를 꺾으며 오랜 전쟁이 끝났으나 두 제국은 막대한 국력을 소진했고, 새로이 일어난 이슬람 제국이 사산 왕조를 정복하고 동로마 제국의 시리아, 예루살렘 일대와 북아프리카(이프리키야)를 점령하며 진정한 승자가 되었고, 당대에 세계적인 강대국이 되었다

아랍 제국이나 사라센(Saracen) 제국이라는 말도 널리 쓰인다. '사라센'이란 사실 서방만의 표현인데, 고대 로마 제국 말기에 시나이 반도(Sinai-peninsula)에 사는 유목민들을 가리키는 말에서 나온 것이 사라센이었다.

지중해 이슬람 제국의 팽창은 우마이야 왕조가 동으로는 동로마 제국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까지, 서로는 732년 프랑크 왕국카롤루스 마르텔 궁재가 이끄는 군대에게 패한 투르-푸아티에 전투까지 확장을 계속했다.

다만 이런 말들은 정작 당대 이슬람 제국 사람들이 '다르 알 하릅'으로 구분했던 국외자 비이슬람교도들이 마음대로 부르는 이름이었고, 굳이 정식 국호를 말한다면 어디까지나 다르 알 이슬람이었다. 아바스조에서 여러 아미르들이 짜개져나가고 아바스조 할리파가 10세기 이후 실력도 권위도 상실하는 즈음에 가선 다르 알 이슬람이란 말 자체가 한 국가만 가리키기엔 영 실질도 명분으로도 어색하게 되어 국호로는 잘 쓰이지 않게 되지만, 적어도 우마미야조 및 아바스조 전성기 때까지는 그 말이 실질에 부합했었다. 한편 이슬람 제국 사람들 본인들이 상당히 이념적인 이런 정식 국호와는 별도로 평상시에 흔히 즐겨 자칭하던 명칭은, 알 바이다(아랍어. 한국어로 직역하면 '하얀 땅'이란 뜻이다.)였다.


2.2. 오스만 제국을 포함시(632 ~ 1922, 1,291년간)[편집]


이슬람 제국은 이후 오랫동안 분열된 상태에 놓였다가 오스만 제국때가 되어서야 다시 동시대 유럽 국가들을 압도하는 통일된 세력으로 재등장한다. 이슬람 세계로서는 1,000년쯤 지난 뒷시대로, 오스만은 16세기 중엽까지 크게 번영했으나 16세기 말, 그리고 17세기에 이르러 점차 쇠퇴했다. 그리고 오스만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수니파 칼리파 직위도 폐지된다. 이런 방법으로 계산하면 이슬람 제국은 무려 1,291년간 존재했었다.


3. 문화[편집]



3.1. 학문[편집]



3.1.1. 의학[편집]


실용 기술 분야인 의학 같은 경우 중세 이슬람 세계가 탁월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역시 중국이나 서유럽보다 훨씬 수준이 높았던 동로마 제국 의학이 '이슬람 제국으로부터 전파 되었다'고 간주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초기 이슬람 제국의 학문이나 기술 수준은 그리 높지 못했고, 확장 과정에서 페르시아, 동로마, 인도의 영향을 받으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이슬람 문명이 탄생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이슬람 제국의 높은 과학 기술 수준이 페르시아, 동로마, 인도 등으로부터 전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애당초 이슬람 제국을 건국한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들은 원래 동로마와 페르시아에게 야만족이라 멸시받는 유목민족이었다. 중국사에서 몽골 고원의 유목민들이 중국을 정복했으나 시간이 지나 한족 문명을 받아들이고 정주 문명국가로 전환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쉽다.

또한, 사산조 역시 동로마에서 박해받고 찾아온 네스토리우스 교인들의 고전 그리스-로마 문화를 잘 흡수했으며, 뿐만 아니라 동쪽에서 인도 세계의 의학적 지식까지 흡수했다고 전해진다. 이와 같은 문화적 배경이 중세 이슬람 황금기의 기반이자 중세 이슬람 발전의 시작이었다.

다만 하나 더 말하자면, 물론 이슬람 의학계는 본인들이 '그리스'의학계에게선 많은 유산과 혜택을 봤다고 인정하였으나, '로마'(= 즉 동로마 제국)한테선 별로 받은 게 없다고 여겼다. 이슬람 의학계가 스펀지 빨아들이듯 흡수했던 그리스 의학의 유산은 그들이 정복했던 동아나톨리아, 시리아, 이집트 등에 살던 '그리스인'들에게서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동로마측은 이런 견해에 대해 분개했지만 당신들은 그리스 철학이나 의학에 대해선 우리보다도 아는 게 없지 않냐고 지적하는 이슬람측의 논리에는 그다지 대응 논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7~9세기 동로마의 군사적, 재정적, 경제적, 문화적 난맥상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기 때문으로, 사실 이 시기 여러모로 열악한 상태였던 동로마 의학계는 국가 역량 회복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이슬람 의학계로부터 다시 역수입해서 배워야만 했다. 굳이 말하면 동로마 제국 의학계가 많은 걸 잃어버렸다가 그걸 보존한 이슬람 의학계로부터 선조의 유산을 되찾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슬람 의학계는 굳이 말하면 동로마 + 페르시아 + 인도 의학을 집대성한 기초 위에서 이슬람 제국 사람들의 독자적인 개선과 연구로 큰 발전을 이룬 의학 체계기에 전적으로 그랬다고도 보긴 어렵다.

실제로 이븐 시나가 11세기쯤 집필한 《의학 정전》은 16세기 인물인 파라켈수스가 500년 전 이슬람의 의학서를 우리 기독교인이 아직도 못 따라잡고 있다면서 한탄했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 외에도 이슬람 황금 시대에 활약한 수많은 학자들은 다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이 있으니 한번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영문위키에는 중세 이슬람 세계의 뛰어난 학자들만 모아 놓은 항목이 따로 존재한다.


4. 역사[편집]



4.1. 통일 제국 시대(632 ~ 750)[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Age-of-caliphs.png
갈색은 예언자 무함마드 시대, 주황색은 그 뒤를 이은 칼리파 우스만 시대(650년대) 그리고 노란색 부분이 우마이야 시대에 확장한 영토이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현재 중앙아시아 남부, 인도 구자라트, 파키스탄과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이 한 나라에 있음을 알 수 있다.

4.2. 분열기[편집]


파일:이슬람 이란쉬아.jpg
10-12세기 존재했던 쉬아 왕조들을 모아둔 지도

이 문단에서는 술탄이나 칼리파 이상을 칭했던 국가들만 서술한다. 압바스 왕조 쇠퇴와 셀주크 제국 성립 사이의 분열기는 동시에 억눌려 있던 쉬아 세력의 역량이 표출된 시기이기도 하다. 열두이맘파의 부와이 왕조는 바그다드를 점령, 칼리파를 좌지우지하였고 비슷한 시기 북아프리카를 석권한 이스마일파의 파티마 왕조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스로 칼리파를 칭하였으며 1050년대에는 잠시나마 바그다드까지 점령하여 압바스 칼리파가 아닌 파티마 칼리파의 이름으로 쿠트바 (금요 예배)를 진행할 정도였다. 이러한 시아파 전성시대는 1174년 살라흐 앗 딘이 파티마 조를 멸하며 종식된다.

4.2.1. 페르시아 지역[편집]


  • 아바스 왕조
  • 부와이 왕조 [쉬아]
  • 셀주크 제국
  • 호라즘 왕조
  • 티무르 제국(몽골/튀르크계[2])

4.2.2. 이베리아 지역[편집]



4.2.3. 이집트 지역[편집]


  • 파티마 왕조 [쉬아]
  • 아이유브 왕조
  • 맘루크 왕조

4.2.4. 마그레브 지역[편집]



4.3. 튀르크인 도래 후[편집]



4.3.1. 아나톨리아 지역[편집]



4.3.2. 아라비아 지역[편집]



4.3.3. 페르시아 지역[편집]


  • 사파비 왕조 [쉬아]

4.3.4. 인도 지역[편집]



5. 여담[편집]



5.1. 당대 이슬람 법학자들의 정통성 비판[편집]


초기 이슬람 제국의 위대성 중 하나가 무엇인고 하니, 자기 비판에 대단히 유연하고 여론을 가급적 탄압하지 않았으며, 기독교와 유대교에 대해서도 대단히 관대했다는 점이다. 체제를 군사적으로 전복하려드는 하와리즈파에 대해선 탄압과 감시가 기독교나 유대교보다도 심했음도 특기할 부분이다. 이 관대함 중에 하나가 바로 당대 이슬람 법학자들의 정통성 논란이었다. 무아위야 VS 알리의 대결 중 무아위야가 저지른 협잡과 휼계는 굳이 시아파나 하와리즈파가 아니더라도 그런 일이 없었다곤 부정할 수 없었으며, 이슬람 법학자들은 다름아닌 무아위야조 시절에도 이 점을 꺼내들면서 무아위야 왕조는 무슬림들이 혼란보다 나으니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종의 필요악임을 분명히 하면서, 무아위야조 할리파들은 엄연히 정통 할리파 시대의 할리파들보다 열등함 또한 확실히 하였다. 그들이 가장 문제 삼았던 점은 무아위야 왕조의 할리파들이 갈수록 '로마의 카이사르들'이나 '페르시아의 샤들'과 비슷해져 간다는 점인데, 실제로는 아바스조의 할리파들이 오히려 페르시아 정치학적 개념을 상당 부분 수용해서 통치 강화에 활용했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여론에 관대했고 나름대로는 할리파 노릇을 제대로 해보려 했던 전반적인 무아위야조 할리파들 입장에선 나름 억울할 일이다.


5.2. ISIL의 참칭[편집]


2014년 들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가 이슬람 제국을 자칭했다. 이들의 도덕적 문제는 별개로 다루더라도, IS는 이슬람 제국으로 분류될 만한 규모가 못 된다. 일단 이슬람의 역사적 중심지는 비옥했던 메소포타미아레반트, 이집트 지역 및 이슬람의 발상지인 아라비아 반도, 특히 두 성지가 모여있는 서안 지역이고, 역대의 이슬람 제국들은 이 지역을 포괄한 중근동을 지배하며 주변의 다른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종주권을 인정받거나 혹은 제압해왔다. 단, 후우마이야 왕조는 이에 해당하지 않지만... 얘들은 최소한 이슬람 제국의 왕조가 세운 망명 정권이기라도 하다.

그런데 ISIL의 경우는 영토도 이라크 일부 + 시리아 일부에 불과하고(가장 범위를 넓혔다고 해도 리비아 북부 해안의 일부 도시만 차지했던 수준 + 그 외 다른 이슬람권 국가들에서 친ISIL계열 추종 세력의 지부가 약간만 있었던 정도), 주변에 이들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국가는 하나도 없다.[3] 특히 두 성지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국가이자 사우디 아라비아부터 이들에게 매우 적대적이다.[4] 그리고 농업 생산력이 높은 이집트, 레반트, 메소포타미아, 마그레브 일대를 지배하면 척박한 아라비아 반도는 대강 느슨하게 제압해서 종주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근대 이전과는 달리, 현대의 아라비아 반도는 석유를 기반으로 막대한 부가 창출되는 지역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 IS 자신은 칼리파 국가 드립을 치면서 이슬람 제국 비슷한 것이 되고 싶은 모양이지만, 현실의 세력과 영향력 측면에서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에 있는 다른 국가들이 엄연히 존재하며, 이들을 적대하기까지 하는 이상 그 주장을 인정해 줄 가치는 전혀 없다. 그냥 자칭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위에서 일단 차치한 도덕적 문제를 포함하여 IS가 실제로 국가인지까지 따져본다면 애초에 해당 집단이 제국 이전에 국가로 불릴 만한지부터가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6. 각종 매체에서[편집]



6.1. 문명 4[편집]


1000AD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 실제 역사보다 100년 앞서 십자군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플레이어가 유럽 문명이라면 아주 좋은 먹잇감이고 플레이어가 이슬람 제국이라면 약간의 수완을 통해 십자군을 방어하고 아프리카, 인도, 중국, 러시아 등지로 진출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난이도가 '신' 이기 때문에 연구, 재정 등에 페널티를 받는다. 덩치는 크지만 생산성은 낮고, 기술력은 나날이 뒤쳐지고, 유럽 전체-러시아-인도와 원수지간이라 무너질 때가 많다.

6.2.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편집]


기독교 영주만 플레이 할 수 있었던 1편의 경우 십자군의 목표로써 일종의 최종 보스격으로 등장했지만... 2편에서는 DLC '이슬람의 검'을 구입하면 플레이 가능하다. 이슬람 플레이의 경우, 이슬람 제국 특유의 신정일치 칼리프제를 반영하여 교황 플레이가 불가능한 가톨릭과는 달리 칼리프를 직접 플레이 할 수 있고, 성 영지뿐 아니라 모스크 영지 역시 페널티 없이 소유할 수 있다. 또한 깨알같이 최대 4명까지 아내를 맞아들일 수 있고, 제1부인 자리를 두고 아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암투라거나, 아내들 중 동성애자가 여럿 있으면 아내끼리 서로 사랑에 빠져서 도주하는 이벤트 등도 등장한다. 이러한 이슬람 플레이의 중요한 특징으로는 신앙심 500을 소모하여 왕국령 단위 침략전쟁 선포가 가능하고, 자신이 칼리프라면 직접 대성전을 선포할 수도 있으며, 이웃 이슬람 영주 간에도 백작령을 빼앗기 위한 전쟁이 신앙심 소모가 있기는 하나 자유로운 등 몹시 공격적인 플레이가 가능한 점, 그 대신 퇴폐도 시스템이라는 고유 요소가 있어서 내분이나 반란으로 안에서 무너지기 쉬운 점, 여성 상속이나 모계 결혼이 불가능하고, 이슬람의 고유 상속법으로 가장 큰 세력 아들 하나에게 모든 영토를 물려줄 수 있고, 그 때문인지 기본적으로 형제들 사이에는 관계도 페널티가 붙고 형제 살해 시 받는 페널티도 적은 점 등을 들 수 있다.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역사 시뮬레이션 답게 여러 이슬람 제국을 골라 플레이 할 수 있는 점 역시 특징. 처음 발매될 당시에는 1066년이 시나리오의 시작인 관계로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나 셀주크에 종속된 상태로 바그다드를 통치하고 있는 아바스 왕조, 그리고 중기나 후기 시나리오에서 아이유브 왕조, 맘루크 왕조 등을 플레이 할 수 있고, 후반 시나리오에서는 아직 제국으로 거듭나기 이전 토후국이던 시기의 오스만 왕조 정도를 플레이 할 수 있었으나... DLC의 발매로 769년과 867년 플레이가 가능해지면서 전성기의 아바스 왕조나 이베리아 반도의 후우마이야 왕조를 플레이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4 03:26:50에 나무위키 이슬람 제국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아랍어권에서는 기본적으로 이 시대를 아랍 제국(الإمبراطورية العربية) 정도로 통칭하며, 정식으로는 아랍 이슬람 제국(الإمبراطورية العربية الإسلامية)이라고 한다. 현대 무슬림들에게 종교성 '이슬람'은 당연한 것이기에 지역성 '아랍'과 국체 '제국'이 표제가 된 것.[쉬아] A B C 열두이맘파[2] 일 칸국 참고.[3] 이들의 팽창은 중세 이슬람 제국처럼 주변국을 차례로 복속해 영토를 넓힌 것이 아니라, 세계 각지의 이슬림 극단주의 반군이 스스로 칭호를 갈아치워 IS를 자처했던 방식이다. 딱히 팽창의 주체라고할 주요 집단이 없었다.[4] 사우디는 아예 미국의 중동 내 전략적 우방국이다.